복음과 믿음
요나의 복음 23051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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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의 복음 230514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오늘 이 시간에는 요나, 요나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요나는 하나님 믿는 나라의 선지자이지만 아주 비겁하게 짝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냥 하나님 없는 곳에서 살고 싶다. 요나가 선지자이지만 하나님 없는 곳에 살고 싶다는 이 마음은 사실은 우리 내부의 마음에, 우리 마음속에 깊숙이 들어있는 악마의 음성이죠. 하나님 믿는 것은 안 다치려고 믿고 진짜 본심은 뭐냐? 나 하나님 없이 내가 하나님처럼 살고 싶어. 이게 우리의 본심이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만드시고 만드신 이유가 이스라엘을 보고 잘하라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꼬깃꼬깃 감추어져 있던 인간의 본성, 나는 나만을 위해서 살고 싶어. 근데 이게 사는 게 나쁜 거야. 이건 옳지 않은 거야. 그건 하나님께서 분노하시고 나중에 지옥 갈 일이야, 라고 아무리 아무리 그게 옳고 옳다 할지라도 사람은 옳은 대로 사는 게 아니고 본성대로 살아요. 기분 따라 살아요. 내 기분은 뭐냐 하면 나 혼자서 최고가 되고 싶어. 이 기분을 너나 모든 인간이 다 숨기고 있는 거예요. 숨기고 있어요.
애들은 지금 못 속여가지고 막 튀어 나오지만 어른 되면 요령이 있어가지고 숨겨요. 제발 좀 나를 좀 그냥 내버려 둬요. 제발. 이런 식으로 태어날 때부터 이미 오류, 잘못됐어요. 이거 자체가 고장 난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이 고장 난 이스라엘을 고장 난 대로 받아들이면서 이걸 선지자를 보내서 이걸 고치십니다. 고치는데 선지자부터 고장 난 이스라엘을 대표해서 고장 난 선지자로 하나님께서는 이걸 찍었다는 사실. 얼마나 친절한 하나님이십니까?
요나가 자기의 고장 난 본심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그 여정을 요나 선자가 보여줍니다. 요나 선지자가 고국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고국에서 어떻게 활동했는지 거기에 대해서 요나에는 나오지도 않아요. 몇 명 전도했는지 그건 나오지도 않고. 어쨌든 요나 선지자가 보여줄 것은 뭐냐? 도망치는 비겁한, 나만 편하면 된다는 우리의 감추어진 내부를 선지자이기 때문에 그대로 날 것으로 생생하게 그걸 다 드러내는 일을 요나 선지자가 하는 거예요.
요나 선지자가 도망을 쳤거든요. 도망을 치니까 여기서 하나님이 모를 줄 알고 먼 곳으로 도망쳤습니다. 배 타고 가면서 이제는 배 탔으니까 바다에는 설마 관여할까? 육지에서는 하나님이지만 바다에서는 이제는 관여 안 할 거야. 너무 멀리 왔기 때문에 하나님한테 멀리 왔기 때문 여기까지 손대지 않을 거라 하고 희희낙락 하면서 마음 편하게 잠을 자고 있었어요. 배 밑에서 잠을 자고 있었어요. 이제는 뭐 됐다 이 말이죠.
그런데 요나를 태운 배를 하나님께서 바다 풍랑을 일으켜서 그걸 뒤집게 해놨습니다. 배가. 이게 뒤집게 해놨으니까 하나님은 요나 하나를 겨냥했는데, 겨냥을 했는데 같이 요나하고 배표 끊었던 그 사람은 무슨 죄입니까? 그 사람들은 생난리가 나는 난리도 아니고 그 선장부터 해가지고 지금껏 내가 이렇게 운송을 해도 이런 일은 없었다. 세상에 이런 경우는 없다. 이게 특별한 경우다. 파도가 치는데 파도가 요나 탄 배를 향하여 아주 노리고 치는 거 같아요. 배가. 먼 바다는 조용해. 그런데 갑자기 주변에 있는 파도가 어떤 용구름 돼가지고 괴물처럼 덮쳐가지고 하나만 잡자 하는 식으로, 하나만 잡자하는 식으로 달려드니까 표적이 되어 공격 표적이 되었으니까 이 선장도 눈치 챘어요. 뭔가 재수 더러운 사람 우리 배에 탔다. 그래서 다 깨웠어요.
다 깨워가지고 배에 있는 사람들 다 불러가지고 니 전과 있지? 전과 몇 번이야? 니 무슨 짓 했어? 신에게 노할 짓을 자백하라. 딱 하니까 사람들이 배가 전체로 그러니까 이게 어려운데 뭐냐 하면 그 배 탄 사람의 나쁜 짓을 모아 모아서 하나님께서 배를 뒤집는 게 아니고 가만히 조사를 해보니까 그 죄가가 별로 배를 뒤집을 만한 함께 몰살할 죄는 나타나지 않았어요.
그러면 이건 뭐냐? 선장은 알았어요. 딱 한 사람의 죄로 어부지리로 우리가 다 죽는구나. 그러면 여기서 해결책이 되는 게 딱 소리 나야 하는데. 해결책이 돼요. 뭐냐 하면은 한 사람만 우리 일행에서 배제해버리면 나머지 우리는 산다가 되는 거예요. 한 사람만 노리기 때문에 보니까 한 사람 어디 있는가 보니까 자고 있어요. 잘 군번도 아니죠. 깨웠어요. 깨워서 당신이 뭐요? 정체를 밝히세요. 우리 지금 신이 노했는데 들어보니까 노할 만큼 배가 뒤집힐 정도는 아닌데 당신은 뭐 분명히 수상한 사람인데 당신이 뭐 무슨 죄지었느냐?
그제사 요나가 더 이상 자기를 방어할 수 있는 건 포기했고 사실은 내가 하나님의 종 선지자입니다. 선지자인데 지금 하나님 명 따르기 싫어서 내가 도망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따라 왔구만. 따라왔어. 당신이 위치 추적기에 당신 때문에 당신이 하나님과의 결별을 선언했기 때문에 신이 당신 잡으러 왔네. 이게 미안하게 됐는데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는 난처하다. 그러니까 당신 하나 좀 죽어주세요. 죽어주세요. 미안한 거 알지만 당신 때문에 우리까지 죽을 수 없으니까 당신도 이해하지? 당신 죽으면 끝난다고.
그러니까 요나도 “예. 맞습니다. 하나님이 내보고 이 배 다 뒤집는데 내 하나 죽어 드릴게요.” 그래서 요나는 물에 빠졌습니다. 이야기 끝. 보통 세상 사람들은 이야기 끝이 이게 끝이에요. 요나가 까불다가 하나님께 벌 받아 들켜 가지고 물에 빠졌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평안히 잔잔한 지중해에서 편하게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이게 이제 이야기 끝. 자기 집에 가서 잘 먹고 잘 살고 결혼해서 잘 살았다. 이게 이야기 끝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을 벌하는 하나님인 동시에 이스라엘을 죽은 데서 살리는 하나님이에요. 이스라엘 대표자가 누구냐? 지금 선지자입니다. 그 이야기 그 다음 이야기를 들어보면 물에 빠졌어요. 물에 빠져서 물에 빠졌으니까 이제 그걸 이제 촬영을 해보는 거예요. 드라마 촬영해보면 요나는 물에 퐁당하고 난 뒤에 대자로 팔을 벌리고 그냥 목을 뒤로 빼고 그냥 서서히 수면의 중력에 의해서 밑으로 빠지고 있지요.
그런데 이 웬 반전입니까? 큰물에서도 살아요. 뭐 이렇게 나온 거예요. 물속에서도 살아요. 이게 물속에서 산 게 있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고래예요. 고래. 고래 알지요? 무슨 고래, 무슨 고래 많이 안 나오던가요? 변호사 이야기 드라마에 보면. 고래가 큰 고래가 이거는 물에서도 사는 거예요. 그러면 요나가 고래 뱃속에 이 물고기에 들어갔다는 말은 요나는 뭐냐 하면 물에서도 살아요. 니만 사는 게 나도 물에서도 살아요.
조건이 있어요. 물고기 속에 들어가 있을 때. 죽음 속에서 살아있는 사람 그런 존재에 그 삼킴을 당할 때 비로소 인간은 육지에서 산다는 그 산다는 거 말고 죽음 속에서도 산다. 두 번째 산다가 성사되는 겁니다. 이걸 하나님께서 복음으로 준비한 거예요. 죽어서도 살아요. 예수님의 이야기죠. 예수 안에 있으면 죽어도 살아요. 이게 복음이죠. 나는 부활이고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내 안에 들어온 자는 죽어도 살고. 그게 예수님이 요나를 삼킨 물고기입니다. 고래입니다. 고래예요.
이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고자, 이스라엘에게 약속했던 바로 언약의 완성입니다. 요나는 선지자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대표자이기 때문에 그걸 미리 체험한 거죠.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습니다. 본인은 살았지만 할 일은 해야죠. 그래서 물고기가 이동을 했는데 하나님이 시켜서 이동했는데 니느웨 성에서 지금 이라크입니다. 이라크에 가장 가까운 지중의 해변가, 지금은 레바논 쯤이죠. 거기 해변가에다가 에이페 하고 욱하고 요나를 토해버렸어요.
그러니까 요나는 고마운 것은 요나의 입장에서는, 오늘날 성도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성도가 한국 싫다, 미국 이민가고 캐나다 가고 뉴질랜드 가봤자 퉤! 니가 어디에 있어도 어디냐? 어디에 있서도 고래 안에,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구원 받은 상태로 살아갑니다. 이민 가지 말라는 뜻이 아니고 어디에 가도 같은 하늘 다른 곳에 있어도 우리 서로 사랑했는데. 주님의 사랑은 어디 어디 가도 한결 같이 죽은 우리를 살려주시는 그 작용은 북한에 가든 어딜 가든 한결 같이 변함이 없습니다. 이것도 복음이죠.
그 다음에 이 복음, 그렇게 왜 살려주느냐를 알기 위해서는 요나에게 다음 두 번째 또 사명이 주어집니다. 니느웨 사람들에게 저주와 심판을 전해라. 요나가 전하나 마나 그 이방인들 멸망당했는데 내가 전한다고 안 망하고 안 전한다고 망하고 그런 거 없잖아요. 그냥 내가 전하라고 하니까 전하기는 하겠습니다마는 저는 팔짱 끼고 저 산에 가서 구경이나 하겠습니다. 진짜 40일 할 걸 사흘 만에 다 전하고 지는 산위에 가가지고 얼마나 망하나 싶어서 쳐다보는 거예요. 어디부터 어느 지역부터 이제 망하는가, 불심판 받는가? 이렇게 보고 있는데 그런데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났어요.
이게 뭐냐 하면은 그냥 주저 없이 전했는데 그쪽에서 주저 없이 그냥 주어 먹었어요. 복음은 그냥 주저 없이 먹으면 따지지 않고 주저 없이 먹으면 이게 나한테 생명이 돼요. 그냥 이게 믿겠나 말도 안 돼. 말도 안 되는데 너무나 어리석은 일을 누가 믿겠어? 하고 집어 던졌는데 그게 주어 먹은 거예요. 그래가지고 우리는 죽어 마땅합니다. 하고 뭐 밥 먹지도 않고 가축까지 사료를 안 주고요. 그때 집에 개 애먹었어요. 사료 안 줘가지고. 하고 다 같이 강제로 금식 다 시켜버렸어요.
하니까 하나님께서 “요나야. 봤지? 요나야. 봤지? 바로 하나님의 구원이라 하는 것은 내가 구원을 챙기는 게 구원이 아니라 내가 진즉에 심판받아 마땅함을 유지시키는 것이 그것이 복음 안에서의 너의 위치이고 이스라엘의 위치니라.” 하고 알려줬지요. 그 중간에 요나가 또 삐져가 지고 죽네 사네 해도 “니가 니 생각하지 말고 좀 넓혀라. 이 세상 난 전부를 상대해서 니를 선지자 했지 니 하나 천당 가라고 한 게 아니야. 니는 사명 전체에게 어에게 전하듯이 니가 이 사실을 니 나라 이스라엘에 가가지고 마음껏 전해라. 너는 이미 구원받았잖아. 손해 볼 거 없잖아. 전해라. 해여 아냐. 주어먹을 사람이 있을지.” 우리가 어떤 직업에 있든지 이미 구원받은 사람으로 주저 없이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 먹고 사는 게 내 할 일이 아니라 복음 전파가 우리 할 일인 것을 사명인 것을 놓치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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