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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복음과 믿음</title>
    <link>https://chninsn.tistory.com/</link>
    <description></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Sun, 31 May 2026 19:13:4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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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nagingEditor>정인순</managing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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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야고보서 3:6-12 / 지옥의 불</title>
      <link>https://chninsn.tistory.com/17213217</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야고보서 3:6-12&amp;nbsp; 지옥의 불&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근호&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지옥의 저주를 짊어진 채 인간은 이 세상에서 태어났다는 겁니다. 인간이 움직인다는 것은 지옥에서 올라온 지옥 탱크가 불을 뿜어대면서 움직이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갈라디어서 5:22-23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amp;ldquo;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여기서 &amp;lsquo;금지할 법이 없음&amp;rsquo;에 주목해봐야 합니다. 이미 다른 세계가 수립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즉 이 세상에 속하는 인간은 그 어떤 행위를 하든지 간에 그 안에 사랑과 희락과 화명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함유되어 있고 담겨 있다는 겁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렇다면 이 세계에 포함되어 있지 못하는 인간은 그 사람이 그 어떤 마음가짐이든 행동을 할 때에도 지옥의 저주를 뿜어내는 양상을 보여주는데 그것이 &amp;lsquo;말&amp;rsquo;을 통해서 확인될 수 있다는 겁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즉 천국으로 옮겨지지 못한 인간은 하나님께서 금지할 수밖에 없는 저주받은 내용이 멈추지 않고 쏟아내게 된다는 겁니다. 따라서 사랑(=성령)을 품은 사람과 성령이 없어 지옥 삶의 모습을 이 지상 생활에서 미리 보여주는 사람의 차이를 발견하라는 겁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말이란 사람이 길들일 수 없는 현상이라고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이성과 양심으로 통제되지 못하는 요소 각각 차이나게 지니고 있는 두 종류의 사람을 교회만큼은 알아차려야 한다는 것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갈라디아서 5:19-21을 봅시다. &amp;ldquo;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한마디로 말해서 &amp;lsquo;분노&amp;rsquo;란 자신 외에 자기를 유지하고 지킬 수 없는 자는 따로 없다는 의식에서 비롯된 겁니다. 성도는 정과 욕심을 이미 십자가에 못박은 자입니다.(갈 5:24)&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신약 설교, 강의(이근호)/야고보서</category>
      <author>정인순</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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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chninsn.tistory.com/17213217#entry17213217comment</comments>
      <pubDate>Sun, 31 May 2026 13:37:1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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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6'여름 수련회 / 그리스도 안의 창세기 / 교재</title>
      <link>https://chninsn.tistory.com/17213216</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리스도 안의 창세기&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Ⅰ 서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현대과학과 철학과 성경은 다음의 차이가 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과학: 장(場) &amp;rarr; 점(입자) &amp;rarr; 인간 &amp;rarr; 세계&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철학: 의미의 장(場) 있음 &amp;larr; 언어 &amp;larr; 형상 &amp;larr; 인간 &amp;larr; 세계 있음&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여기서 철학은 현대 과학의 성과를 바탕으로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 출발하여 의미를 찾는 식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반면에 성경의 세계는 &amp;lsquo;없음&amp;rsquo;에서 시작하기에 결국 돌아올 의미도 없다.&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성경: 없음 &amp;larr; 말씀(계시) &amp;larr; 하나님 형상 &amp;larr; 창조 세계 &amp;larr; 없음&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1) 과학으로 보는 창조 세계&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공간이 있는 게 아니라 장(場)이 있다. 이것이 공간 개념을 대신한다. 이 장은 비어 있는 장이 아니다. 힉스장(Higgs field)은 우주 전체에 퍼져 있다고 생각되는, 보이지 않는 물리적 장(場)이다. 질량은 여기서 생겨난다. 입자는 여기서 생겨난다. 우주 전체가 보이지 않는 &amp;ldquo;끈적한 공간&amp;rdquo;으로 채워져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어떤 입자는 이 장과 강하게 상호작용하여 움직임이 둔해지고, 그 결과 큰 질량을 갖게 된다.&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반대로 어떤 입자는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아 질량이 매우 작거나 없다. 예를 들면 광자(빛 입자)는 힉스장과 거의 상호작용하지 않으므로 질량이 없다. 반면에 전자나 쿼크 같은 입자는 힉스장과 상호작용을 해서 질량을 가진다. 이 입자들에 의해서 인간과 세계가 형성되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2) 철학에서 보는 창조 세계&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 물질에서 형상으로&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물질이 형상을 지니는 것에 주목한다. 에너지(=힘) 파동이 춤을 추고 물결치는 공간에서 임의로 형상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주형의 능동적인 형상은 수동적인 물질에다 자신의 형태를 새겨 넣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상호작용으로 형상이 생긴다. 질료에 형상이 부여되었던 것이 아니라 주형과 재료 형상 사이에 변조가 생긴다. 점토는 벽돌이 되지만 주형은 어떤 작용이 끝난 후에도 존속된다. 형태(주형)는 물리적 틀과 재료의 힘이 함께 변조되는 방식, 즉 공통의 체계, 연합 환경이 만들어진다. 형태와 물질은 물리적 힘의 평면에서 연속적으로 정보/형태화를 교환하면서 더불어 개체화-벽돌-의 작용을 현실화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는 결정체의 싹이 과포화된 용액 및 결정의 형성으로부터 &amp;lsquo;형태가 만들어짐&amp;rsquo;을 일으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수동적인 질료와 외적인 힘 간의 불모적인 만남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주형과 재료의 공동작용이, 다시 말해 힘의 평면에서 실효화된 변조가 존재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 공통의 영역은 힘들이 교환되는 영역, 식별 불가능하고 분자적인 근방역(近傍域)의 영역에 해당한다. 이런 의미에서 주형, 변조, 기술, 예술, 사회도 자연적 개체화와 마찬가지로 &amp;lsquo;형태의 만들어짐&amp;rsquo;에 속한다. 이 &amp;lsquo;형태의 만들어짐&amp;rsquo;이 문제로 삼는 것은 질료와 형상이 아니라 힘과 재료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예를 들면 망막은 저마다 이차원 이미지로 덮여 있지만 두 개의 이미지는 시차로 인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누구나 먼저 한쪽을 감고 그다음에 반대쪽 눈을 감음으로써 이를 관찰할 수 있다. 즉 두 망막 사이 두 이미지의 비정합성을 해소할 수 있는 2차원의 광학 이미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3차원에서 해소된다. 여기서 시각의 객관적 구조화가 이루어진다. 이처럼 자연은 자동적으로 문제는 일어나고 제시되고 스스로 해결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여기에 인간의 뇌도 합류한다. 인간의 뇌는 새로운 3차원성의 정합성을 띠기 위한 조건으로서 이 자연적 문제 제기에 호응한다. 부피, 깊이에 대한 지각, 3차원 시각은 2차원적인 대립의 해소로서 이처럼 새로운 차원, 즉 3차원성을 실증적으로 창조할 때 생겨나는데, 앞서 두 망막 이미지는 이 3차원성에 포함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어 다른 변화와 문제 제기의 원인이 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해(解)는 최초의 모순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최초의 문제 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새로운 차원을 창조하는 데서 생겨난다. 이것이 바로 자연에서 스스로 일어나는 창조 과정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엄밀하게 말해서 &amp;lsquo;종합&amp;rsquo;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종합은 실효화되지 않으며, 결코 완수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관계는 오히려 항들의 특징적인 비대칭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우월한 종합이 이루어지지 않는 까닭은 애초에 비대칭이 해소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망막 이미지의 양립 불가능성은 여전히 존속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불균등화는 차이를 보존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모순의 해소가 아니다. 각각 이질성을 띠고 유지한다. 여전히 긴장 상태에 놓여 있으며 또다시 문제 제기를 위해 대기한 상태에 놓인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개체는 전(前)개체적 환경과 개체화의 출현 간의 불균등화를 실행하는 어떤 작용으로서 체계의 불균등화를 점진적으로 해소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결정체가 물질을 동화시키는 한에서 우리는 결정체의 참된 내면성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 이 물질은 결정체가 펼쳐나가는 환경의 일부로, 원래는 무정형이지만 풍부한 잠재성을 지니고 있어 질서가 부여한 특수한 배치에 따라 결정체를 점진적으로 구조화한다. 결정핵은 준안정적인 용액에 해당하는 불균등성을 해소하고 반복을 통해 결정화를 유도한다. 결정체 구조는 결정핵이 도입되는 지점으로부터 방사상으로 펼쳐지면서 점점 퍼져 나간다. 결정 개체는 이런 방식으로 형성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처럼 변환은 창조와 분화를 함축한다. 이질적인 불균등화를 통한 구조화는 장을 완전히 재편하기에 이르는데, 이러한 재편은 분화를 일으키는 새로운 재구조화의 출발점 구실을 한다. 불균등화는 다음과 같은 유형의 변환적 구조화를 특징짓는다. 즉 그것은 뷸균등한 두 실재, 여기서는 핵과 결정체, 전개체적 환경과 변형의 담지자인 독특성 사이에서 문제적 긴장을 형성하며, 새로운 차원의 출현과 결정 개체의 형성은 이러한 문제적 긴장을 해소한다. 따라서 개체화는 동시에 대립의 해소이자 양립 불가능성의 발견이며, 새로운 형태의 창조로 이해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무정형의 환경 속에서 어떤 구성된 개체도 출현할 수 없으며, 오히려 존재하는 것은 항상 &amp;lsquo;형태의 만들어짐&amp;rsquo;, 즉 우연의 방식, 촉발하는 사건의 방식으로 작용하는 변조, 다시 말해 환경과 핵의 불균등화에 의한 변조이기 때문이다. 개체는 개체의 결과만이 아니라 개체화의 환경이기도 하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따라서 개체는 결코 실재성의 단일한 질서와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변환적이다. 개체는 상이한 차원들 사이의 불균등화를 함축하고 있으며, 어떤 문제적인 것의 해소, 불균등한 것들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의 해소를 통해 산출된다. 개체는 응답으로 나타나며, 역동적인 동시에 발생적인 것으로 드러난다. 실제로 단일한 개체는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라는 것은 개체화의 다수적 과정들 뿐이다. 게다가 개체는 어떤 단일성이나 통일성도 함축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개체가 이질적인 상들의 이질성을 요구한다는 데 있으며 개체는 이 이질성으로부터 분화를 통해 생겨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일자(一者)는 감산(빼기)을 통해서, 인간들이 전체성으로부터 뽑아낸 국지적&amp;middot;가변적 중심이라는 형식하에서 항상 n-1에서 만들어진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amp;ldquo;우리는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을 실제로 일어나게 만드는 과정에 어쩔 수 없이 관여하고 있다&amp;rdquo;라는 말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 기호(=문자)&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인과성(원인과 결과)이라는 논리적 관계가 신호화라는 물리적 과정을 따라 파악된다. 정보/형태화가 바로 그것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인간은 비대칭적인 요소들을 갖추고 불균등한 크기의 질서들을 거느리고 있는 어떤 체계를 &amp;lsquo;신호&amp;rsquo;라 부른다. 그리고 그런 체계 안에서 발생하는 것, 간격 안에서 섬광처럼 번득이는 것, 불균등한 것들 사이에서 성립하는 어떤 소통 같은 것을 &amp;lsquo;기호&amp;rsquo;라 부른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문제의 해소로서 섬광처럼 번득이는 기호는 그것이 보여주는 어떤 실재성, 선재(先在)하는 어떤 실제성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인 방식으로 어떤 대립을 불균등하게 해소한다. 여기서 불균등한 생성은 모방적 유사성을 결정적으로 대체한다. 기호라는 용어는 정보/형태화 이론을 대체하며, 기호학은 이처럼 신호를 어떤 현상의 개별화를 촉발하는 준안정적 평형에 해당하는 불균등화로, 섬광처럼 번득이는 기호로 이해함으로써 형성된 것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질적인 계열들 사이에 소통이 일어나면, 이로부터 체계 안에는 온갖 종류의 구절들이 따라 나오게 된다. 그 가장자리 사이에서 어떤 일이 &amp;lsquo;일어난다.&amp;rsquo; 번개나 천둥처럼 사건들이 터져 나오고 현상들이 번득인다. 이로써 비대칭적인 것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양자물리학에서 말하는 양자 제노 효과(Quantum Zeno Effect)가 그 예다. 어떤 양자 상태를 아주 짧은 간격으로 계속 관측하면, 그 상태의 변화가 억제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amp;ldquo;계속 들여다보면 변화가 멈춘다&amp;rdquo;라는 양자역학적 현상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분기는 장의 예측 불가능한 재구조화를 표현하게 되는데, 이는 일련의 새로운 재구조화를 위한 출발점 구실을 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들뢰즈가 말하는 시간의 모델은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을 참조하게 되었다. 이 정원에서 결정화의 지점에 해당하는 각각의 분기, 각각의 독특성은 새로운 분화의 선들을 촉발한다. 이처럼 생물학적 분화는 분화를 일으키는 현실화를 통해 이루어지며 발산하는 계열, 분화의 다발, 분화들의 분화 형태를 띤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기호는 문제를 제기한다. 이제 이 표현은 엄밀한 의미에서 이해될 수 있다.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은 수동적 종합을 산출하도록 감성을 강요하는 미분적 강도들의 문제 제기적 장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 제기적 장에서 기호는 어두운 전조, 계속되는 불일치의 뒤를 이어 나타난다. 계속되는 불일치는 생성을 구성하는 우주론적 원리의 수준에서 비대칭, 압력으로 받아들여지며, 또한 감성적 변용의 수렴이 아니라 그것의 발산 및 이질성을 보증해 주는 구성적 차이로 이해된다. 따라서 감성적인 것은 이질성으로서 비대칭적 종합의 대상이 된다. 또한 불균등한 계열 간의 소통을 보증해 주는 감성의 특권은, 감각하게 만드는 분화적 차이소(差異素)를 매개로 감성과 실재성이라는 이질적 계열들을 관계 맺게 하는 데서 성립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인간은 기호의 입력하에서 무언가를 배우게 되는데 이는 기호를 방출하는 대상과 함께 체계를 형성하는 미분(微分)적 감성들에 의해 이념이 경험적 만남을 통해 산출되기 때문이다. 아담이 이름을 지은 것은 분류했을 뿐이지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른다(창 2:19).&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 정지상태에서 기호, 곧 의미 있는 언어가 생겨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 의미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의미는 위치에 따라 주어진다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이 발화행위&amp;middot;꿈&amp;middot;무의식의 생산&amp;middot;사회적 갈등&amp;middot;친족관계&amp;middot;신화 등과 구별되는 다른 요소들이라 하더라도, 이 요소들은 실재 속에서 주어진 어떠한 경험적 지시 대상과도 무관하며, 논리적 의미작용이나 주어진 본질을 가리키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이 요소들이 지닌 의미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의미는 이 요소들이 체계의 다른 요소들에 대해 점유하는 위치, 즉 자리에서 생겨나는 효과다. 이 요소들은 대립적이라고 부르는 상호적인 위치를 통해서만 분화된다. 다시 말해 어떤 항이 지닌 가치는 동일한 열의 다른 항들과의 차이를 통해 주어진다. 의미는 복수의 요소들 사이의 자리바꿈이나 결합을 통해 외부 작용의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이 요소들 자체는 의미작용적이지 않으며 서로 간의 위치를 규정해 주는 규칙들의 유희 속에서만 어떤 의미를 받아들인다. 이 기호는 사람들의 남성과 여성에도 적용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어떻게 의미가 차이의 두 계기를 따라 실제로 생산되는가? 먼저 의미는 현실화되면서 생성된다. 이는 차이의 첫 번째 측면인 현실화에 부합한다. 다음으로 이러한 의미의 현실화 혹은 생산은 의미의 잠재적 구조를 가리키는데, 이 잠재적 구조는 차이의 두 번째 측면에 부합한다. 현실적이면서 잠재적이라는 차이의 이원성은 의미의 생산을 표면 효과로 설명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상징계라는 세 번째 규준이다. 상징계는 변별적인 것과 독특한 것의 유희로서 보편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 일반적인 것과 특수한 것, 지성적인 것과 감성적인 것 사이의 추상적 대립을 대체하고 그 자격을 박탈시킨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 자체로는 어떠한 규정된 가치를 지닌 요소들이 변별적 관계에 따라 현실화되면서 상호적으로 규정될 때, 이 관계는 상징적이다. 무의미가 떠돌아다니면서 사물과 사물, 대상과 대상을 이어주면서 의미가 발생하는 것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의미는 주체의 활동으로 산출되는 것이 아니다. 역으로 상징적 평면은 의미를 의식적 활동에서 떼어 놓으며, 의식에 대해서는 하위주체적인 무의식적인 것을 의미의 생산자로 제시한다. 의식은 무의식의 공격에 의해서 빈칸을 마련하고 있고, 기호(언어)는 이 빈칸을 순환하게 하면서 전(前)개체적&amp;middot;비인격적 독특성들을 방출한다는 것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여기서 차이가 나타나는데 이 차이에서 의미가 방출, 발생하고 경험을 대신한다. 차이는 구조를 발생의 질서로 이해한다. 이 질서에서 이념이 나온다. &amp;lsquo;정신적 질서&amp;rsquo;다. 각가지 다양한 이념들이 수시로 쏟아져 나온다. 그래서 세상은 전부 다양체로 구성되어 있다. 국가체제에 포함되지 않는 다수의 연결이 시공간에 역동성을 부여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의미는 더 이상 초월적 난입으로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비(非)의미작용적 요소들의 결합에서 유래하는 구조의 순수 효과, 표면 효과가 된다. 따라서 인간은 의미를 선재(先在)하는 것으로 간주하지 않으면서도 의미의 생산을 이처럼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초월론적 사상, 곧 종교가 나온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따라서 구조는 주체라는 습관으로 수축된 자아를 만들고 남성과 여성이라는 인식도 예외가 아니다. 남성이나 여성도 기호에 불과한 의미를 나타낸다.&lt;/span&gt;&lt;br /&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 남성과 여성&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여성은 본질을 갖고 있지 않는다. 곧 여성은 없다. 이 여성에 의해 태어난 모든 이(여성으로 출발하는 존재를 가진 자)는 다 죽는다. 여성 이야기는 모조리 허구(fiction)이다. 잡히는 진실(fact)은 실재 안으로 소멸될 것들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여성성은 하나의 기이한 수수께끼이자 당혹스러운 스캔들로 남아 있다. 여성은 허구의 구조를 담고 있는 존재다. 여성은 냉혹한 진실이나 진정성이 있는 본질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사라지는 실재에 가깝다. 그리고 사라지는 실재에 대해서는 어떤 확정된 팩트로 있을 수 없다. 팩트 체크가 좌절되는 한계 지점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여자가 절대적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남자의 중계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여성성은 더는 남성이 필요 없다. 하지만 여성 그 자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남성의 중재가 필요하다.&lt;/span&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언어가 통하는 세계, 곧 의미의 세계라는 구조 안에서 여성은 남성의 기준 없이 정의되기 어렵다. 하지만 남성의 요소가 여성의 요소에 들어온다는 말이 아니다. 여성에게 있는 남성은 필연성이 아니다. 하지만 예외적 가능성이 연결된다. 남성이 세상 의미를 독점하고 중심점으로 행세하는 조건에서는 그러하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남성이 의미의 전체를 대표한다고 주장한다면 여성은 비(非)전체에 해당한다. 그런 남성의 조건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남성이 의미를 잃을 때, 비로소 여성의 본래성이 드러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여자가 남자의 증상이라면 남자는 여자의 재난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2) 성경적 의미&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인간은 모두 죽는다. 아니 살해된다. 천사에 의해서(마 13:38-42) 죽는다. 마치 유월절 그 날밤처럼(출 12:30 &amp;ldquo;이는 그 나라에 사망치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amp;rdquo;). 모든 자들이 없어지고 그들이 죽은 빈자리에 유월절의 피가 차지한다. 인간은 땅에서 살 자격이 애초부터 없다. 땅은 이 인간 살해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땅은 없어질 자를 없애는 기능으로 작용해 왔다. &amp;ldquo;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창 4:10-12).&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렇다면 이 세상의 과학과 철학은 &amp;lsquo;있음&amp;rsquo;에 대한 &amp;lsquo;없음&amp;rsquo;의 저항인가, 아니면 &amp;lsquo;없음&amp;rsquo;에 대한 &amp;lsquo;있음&amp;rsquo;의 저항인가? 어떻게 &amp;lsquo;내가 여기 있음&amp;rsquo;이라는 전제를 빼고서 하나님의 창조를 이해할 수 있느냐가 관권이다. &amp;lsquo;내가 여기 있다&amp;rsquo;라는 의식으로 인해 하나님의 모든 창조와 활동을 왜곡시켜 다른 의미를 내뱉기 때문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amp;lsquo;의미&amp;rsquo; 곧 &amp;lsquo;뜻&amp;rsquo;은 이미 주기도문으로 결정 났다. &amp;ldquo;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Ⅱ 본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줄거리)&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창조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 말씀이고 온천지가 말씀의 기초위에 자리 잡고 있다면 하나님과 피조물의 만남의 자리도 말씀일 수밖에 없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amp;ldquo;보기에 좋았다.&amp;rdquo;라고 하는 선언은 피조물이 말씀대로 위치해 있을 경우에 국한한다. 이처럼 성경 처음부터 말씀에 대한 부각은 &amp;ldquo;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성립&amp;rdquo;은 말씀 이외에 다른 것으로 대치될 수 없음을 선언하고 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하나님께서 인간을 통해 이 세상을 지배하고 통치케 하는 그 모든 행사도 하나님의 일방적인 의중에서 나온 것이기에(1:26) 하나님의 형상대로 된 피조물인 인간이 &amp;lsquo;좋았더라&amp;rsquo;는 평가를 받으려면 본래 하나님의 의중에 일치된 상태를 유지해야만 한다. (&amp;ldquo;그대로 되니라&amp;rdquo; 1:30)&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복, 거룩, 안식은 하나님 보시기에 그 피조물이 만족스러운 상태에 놓여있을 때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만약 현 세상에 혼란과 무질서가 개입된다면 이는 필시 최초의 창조된 모습은 아닐 것이다. 그 원인은 인간이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말씀을 위배했기 때문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처음 세상은 인간이 말씀을 지키는 한 행복이 극치에 이르는 환경이었고 다른 피조물과의 관계, 부부 사이도 정상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말씀에 대한 위배로 말미암아 저주와 심판과 분열과 갈등과 불안과 죽음이 초래된 것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여기서 또다시 하나님 말씀이 갖는 의의가 부정적 측면에서 재확인된다. 말씀에 대한 거절은 반 창조로 내려가는데 반(反) 창조란 소멸이나 무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창조 이전의 무질서와 혼돈으로 전환되는 것을 말한다(1:2/2:7/3:19).&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창조 사역에서 말씀의 역할은 세계를 무질서에서 질서로 전환하고(1일, 2일, 3일의 사역) 비어 있는 질서를 채우시고(4일, 5일, 6일의 사역) 그 채워진 존재에 축복하사 팽창하고 확산되도록 하셨다. 그런데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이 체제가 와해되고 다시 무질서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여기에 말씀을 극복하고 등장한 것이 있으니, 그것이 여호와께서 주신 약속이다(3:15).&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여자의 후손이 나타나 말씀에 도전하는 세력을 와해시키고 다시는 하나님의 창조 정신과 충돌되는 것이 없게 하신다. 그 후로 세계 역사는 여자의 후손이 등장한다는 약속이 어떻게 이어지며 어떻게 성취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하나님께서 세상을 그런 쪽으로 유도해 가신다. 또한 약속에 기대를 거는 자들도 하나님의 이러한 역사관에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 이제부터 인류가 활동하고 쉬는 터전인 땅은 그 모든 변화가 약속을 위한 역사적 배경과 공간으로서만 의미가 주어진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인간들이 만나고 투쟁하고, 갈등을 일으키고 몸부림치고 애쓰고 죽고 죽이는 사건 하나하나는 결코 약속의 내용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 창세기 4장에 나타난 가인이 아우를 죽이는 살인사건의 경우를 봐도 그러하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가인의 살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아벨의 제사를 받았고 자기의 제사는 거절한 데 있다. 하나님의 선별에 대한 가인의 불만 표시였다. 그러나 땅은 이러한 가인의 행위를 수용할 수 없어 하나님께 호소한다. 말씀에 어긋나기 때문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하나님은 가인을 그 땅에서 추방하고 아벨을 대신하여 셋을 낳게 하신다. 이것이 바로 여자의 후손이 주어지는 방식이다. 즉 하나님이 생각한 여자의 후손만이 대신할 가치가 있다. 아벨을 대신한다는 말은 아벨의 죽음에 하나님께서 의의를 갖고 계시다는 증거이다. 역으로 가인의 보호는 아벨의 죽음이 어떠한 사고방식을 지닌 자로부터 당한 피해인가를 증명하기 위한 시도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여기에 약속의 실체가 보인다. 하나님이 생각한 약속의 후손은 오직 하나님이 선택한 자에 한하고 그분은 거기에 반기를 드는 자로부터 희생되는 경험을 갖게 될 것이다. 셋의 가문이 무사히 이어지는 것을 보며 비로소 사람들은 약속의 하나님이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게 된다(4:26).&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약속의 계보는 또한 인간들이 고생스럽게 저주받은 땅에서 수고하는 어려움도 해결해 주는데(5:29) 노아의 등장이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땅의 질서 회복은 인간들의 범죄로부터 땅을 지키는 데 있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여호와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 언약을 세우는데(6:18) 그 언약으로 말미암아 땅이 회생한다. 언약은 8:21-22에 나와 있는 것처럼 노아의 의(義)를 담보로 하여(6:9) 그가 드리는 제사를 흠향하시는 방식을 두고 말하는데, 이는 인간들이 생각하는 것이 어려서부터 항상 악하기에 이 언약이 동원될 수밖에 없다. 노아도 언약 안에서만 구원이 가능한 이유는 그와 그의 가족도 비완전하기 때문이다(9:20-27).&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처럼 하나님은 노아 언약(노아가 아님)을 땅의 중보자로 삼아 땅의 질서를 회복하셨다. 노아의 선택도 또한 하나님의 은혜에 기인한 것이다(6:8). 노아가 드린 번제란 정결한 것을 골라 드림으로서(8:20) 불결한 짐승(7:2)의 구원도 가능케 되었다는 사상이 들어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로써 땅은 언약에 의한 언약의 땅이 되었고, 그 이후 땅 위에서 생존하고 번식하고 복을 받으면서(9:1) 살게 된 모든 피조물은 노아언약의 은혜를 바탕으로 한 땅에 사는 것이 되기 때문에 만약 그 은혜에 배치되는 생각을 갖게 되면 땅의 이 원리 때문에 저주받게 되어 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노아의 가정에서 일어난 일에서 셈은 노아의 하체를 덮어줌으로 말미암아 은혜의 원리를 바로 이해한 자로 인정받는다. 노아는 셈에게 그런 행동을 하게 한 하나님을 찬양한다(9:26). 그뿐 아니라 야벳을 창대케 하여 셈의 장막에 들게 하고, 함은 셈으로부터 지배를 받게 하여 땅의 질서를 유지케 하신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가나안 족속에 대한 셈 족속의 정복에 대한 정당성은 이로써 부여된 것이다. 인간은 자신들의 힘의 집결에 의하여 땅 위에서 팽창과 복의 창출을 시도해 보지만 은혜의 땅에서 그 땅의 속성과 배치되는 일이기에 하나님은 그러한 인간들의 뜻을 거부하고(11:1-9) 오직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선택해서 은혜의 땅에 합당한 의인으로 만들어 나가시기 위해 세운 아브라함 족속만이 창대할 것이라고 하신다(12:2).&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내용은 &amp;ldquo;내가 지시하는 땅에서 너는 복의 근원이 되고 너의 가문은 팽창할 것&amp;rdquo;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에 도착했을 때는 기근이 한창이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 땅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갔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거기서 그는 복의 근원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아내를 바로 왕에게 상납하고 자신을 보호했다. 하지만 애굽에서 아브라함이 발견한 사실은 자신에게 약속한 여호와라는 신은 애굽의 바로 왕조차 다스리고 계시다는 것이다. 거기서 아브라함은 이 약속은 자신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홀로 자기(아브라함)를 사용하여 이루신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조카 롯에게 에덴동산 같은 땅까지도 양보하면서 자신의 신앙 노선을 따라간다(13:8-10).&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 뒤 가나안 땅에서 도시 왕국끼리 전쟁이 있었는데 조카 롯이 사로잡혔기에 아브라함도 참여하게 되었다. 아브라함은 자기 집에서 기른 사병(私兵)을 이용하여 승리하고 돌아올 때 소돔 성의 왕과 살렘 성의 왕 멜기세덱을 동시에 만나게 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살렘 왕 멜기세덱은 가나안 땅의 소산물인 떡과 포도주를 갖고 나와 아브라함을 축복하기를 이번 전쟁을 아브라함에게 붙여서 승리케 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찬양한다. 여기에 대해 아브라함은 이번 전쟁의 승리에는 배후에 자기에게 약속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관여한 것으로 여기고 그 제사장에게 십일조를 드림으로 그의 신(神)에게 예속됨을 고백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동시에 소돔 왕으로부터는 어떠한 전리품도 거절하는데 이는 이번 전쟁은 자신이 승리한 전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승리한 여호와 전쟁임을 선언하는 행동을 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아브라함이 자기 가족을 해치는 자를 치는 것은 결국 자기 소관이 아니라 하나님 약속의 수행이라는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아브라함에게 여호와는 방패요 상급이 되는 것은 전쟁이라는 경험을 통해서 확인된 것이다(15:1).&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런 여호와에게 무조건 신뢰하게 되니 이는 노아의 순종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여호와로부터 의인(義人)이라는 칭호를 듣게 된다(15:6/6:9).&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하나님은 이러한 아브라함을 노아의 경우처럼 언약의 본질로 세우려고 한다. 즉 복의 근원이 되게 하는 언약이다(15:8). 그 내용은 가나안 땅의 정복과 차지이다. 즉 죄에 대한 의(義)의 승리를 낳게 하는 언약이다(15:16).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복의 실체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즉 복이란 인간에게 죄로부터의 해방이요 극복게 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에게서 나오는 자손이 이 일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자손은 결코 인간의 자연적인 생식능력에서 기인된 자손은 아니다. 하나님이 그런 방식을 거부하는 이유는 그 자손의 출생을 두고 인간들 사이에 공과(功過)에 대한 시비가 일어나기 때문이다(16:4).&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 누구도 자신의 공로라고 내세울 수 없게 하는 것이 아브라함 언약에 적합한 인물이 된다. &amp;lsquo;구별되었다&amp;rsquo; 또는 &amp;lsquo;거룩하다&amp;rsquo;라는 증표(할례)가 아브라함 언약의 속성을 나타내는 것이라면(17:13&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14) 그 할례 정신을 영원히 구현할 수 있는 자식이 태어나야 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거룩 또는 의인의 존속이 왜 그리 중요한가 하는 것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불심판에서 생생하게 드러난다. 의인이 하나도 없는 소돔과 고모라의 최후 시점에서 롯만 생존할 수 있었다는 것은 복의 근원 자격으로 서 있는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생각해서 취한 조치였다(19:29).&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amp;lsquo;악&amp;rsquo;에서의 건짐이라는 그 행위의 배후에는 대리 의인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상의 사실은 아브라함이 그날 왕 아비멜렉에게 아내를 주었을 때도 드러나는데 자칭 의인인 아비멜렉 가문에(20:4) 갑자기 태가 닫히는 사건이 발생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는 고의는 아니었지만 남의 아내(사라)를 그 왕이 취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아브라함 존재의 가치를 깨닫게 하시는데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지 아니하면 너는 죽게 되고 만약 기도하게 되면 태가 열리게(복이 회복) 된다는 것이다. 이상의 사실을 미루어 봐서 죽은 태의 열림이 바로 복이 회복을 말하는 동시에 그 복은 자신에게 이유가 있지 않음을 나타낸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드디어 사라의 태가 열리면서 이삭이 태어난다. 이삭이 태어남으로 약속 사역의 중심이 이삭으로 옮겨짐과 동시에 복의 전수에 있어 어떤 특정한 형(形)을 구성하게 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소위 장자권(또는 복의 상속권)이 약속 성취를 추진하는 데 있어 어떤 위상(位相)을 점하는가에 대한 정형(定形)이 아브라함과 이삭의 관계에서 수립된다. 복의 근원으로서의 아브라함과 그 복을 물려받을 이삭 사이에서 서로가 무엇을 알게 되며 무슨 변화가 수반되는 것일까?&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제물로 하여 제사 드리기를 요구하셨다. 아브라함은 이러한 요구에 순응했다. 여기서 아브라함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된다. 즉 장자란 바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정상화되도록 번제의 제물로 등장하는 것이라고(창 4:4-5의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서 볼 수 있고 또 8:21의 노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장자의 희생을 통해서 복은 인간 세상에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게 아니라 여호와의 이러한 지시를 경외하는 것으로 복은 주어지고(22:12) 번제의 제물은 따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 것(여호와 이레)으로 말이다. 이 제물 이외에 어떠한 제물로도 복의 근원으로서 가치가 없다(인간의 제물이라도 안됨 &amp;ndash; 22:14).&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아브라함의 시선은 이제 [여호와 이레(준비하심)]를 지향하는 여호와의 사역에 모아진다. 복의 근원은 바로 거기서부터 나온다. 이삭의 존재는 바로 [여호와 이레]를 가르치기 위해 준비되었던 것이다. 그 속성과 역할이 복에 끼치는 영향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아브라함의 입장에서는 자기에게 기대를 거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다만 [여호와 이레]를 바라보는 믿는 자의 표본으로서 서 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자기는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다만 믿는 자의 선조로서만 위치를 점하고 있을 뿐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기(아브라함)의 이름과 존재를 동원하여 아브라함 언약을 만들어 낸 것이다(마치 노아를 이용하여 노아언약을 세운 것같이).&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렇듯 아브라함과 이삭의 사이에서 복의 전수는 장자에게만 주어지고 그 장자란 바로 여호와에게서 자신의 언약을 표현할 수 있도록 선택된 자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복을 제공하는 아브라함 언약은 내용상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복은 이제 아브라함의 순종을 근거로 하여 아들 이삭으로 하여금 아브라함에게 준 약속을 이루게 한다(22:16-18).&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삭에서 나타난 언약의 모습을 아브라함은 죽었다가 여호와께서 친히 준비하신 일 때문에 도로 살아난 내용으로 보았다. 즉 그는 자손의 번창과 대적의 문을 여는 것을 부활의 시각을 바탕으로 하여 다시 보게 된 것이다(22:17-18). 즉 수많은 자손이란 바로 이삭처럼 다시 살아난 자의 많음이요, 대적이란 바로 인간으로부터 죽음을 초래케 한 세력을 두고 말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래서 사라가 죽고 난 뒤에 그는 자신과 사라의 부활을 기약하면서 그 땅을 앞당겨 자기 소유로 삼고자 나선다. 정식으로 값을 주고 사게 되므로 후일에 이 땅의 소유권 시비에 하자가 없게 한다(23:18).&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제는 이 가나안 땅에서 나그네나 이방인이 아니라(23:4) 하나님의 약속에 의하면 언젠가는 언약 족속의 땅이 될 것을 아브라함은 이미 맛보고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 언약은 이삭을 통해 내용이 보다 풍부해지고 구체화 되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이제 이삭의 하나님도 되신다. 이삭의 앞으로의 운명은 번제물로 여호와께서 친히 준비하신 자의 모습을 띠면서 진행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의 후손은 번제물 되었던 운명에 동참하게 된다. 여호와께서 친히 준비하신 것으로 말미암아 번제가 열납되면서 인간 세상에 언약의 복이 지속된 이 시점에서 그 이삭의 언약(아브라함 언약)이 존속하는 한 죽음의 세력은 이쪽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장자란 이처럼 세상을 위한 화목 제물로서 인간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책임지는 존재로 등장하며 그 방법은 하나님이 제시한 언약을 존속시키는 것뿐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24:60에 보면 이삭에서 나온 자손이 원수의 성문을 열 수 있는 복을 받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리브가는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성이다(25:21). 그렇다면 원수의 성문을 열 수 있는 자는 여자의 자연적인 출산력의 개입 없이 태어난 자식일 것이다. 이것 또한 언약의 요소로 들어간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삭이 가진 아기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원수의 성문을 열 장자는 그렇지 못하는 자의 조상과 함께 태어나며 또한 그쪽을 섬김으로 오히려 장자로서 입증되는 운명을 갖게 된다(25:23).&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하지만 정작 그 두 아들(에서와 야곱)뿐 아니라 그 부모까지도 각자의 기호에 따라 살아간다. 야곱이나 리브가나 이삭은 언약 편에 서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편에서 장자권을 이해하려고 했다. 야곱은 장자권을 팥죽으로 뺏을 수 있다고 여기고 있으며, 이삭은 먼저 난 자를 자연적으로 장자로 보고 있고, 더 나아가서는 창세기 12:3에 근거하여 자신이 복의 근원인 줄 알고 자기의 기쁜 뜻대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오는 자를 복 주고자 한다(27:4).&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에서는 아예 장자권의 의미도 모르고 있으며 리브가는 속임을 통해서라도 주어질 수 있다고 여기고 있다. 이삭이 받은 언약은 이와 같이 인간의 무지(無知) 안에서 싹 터면서 언약이 그들의 무지와 인간적인 생각을 고발할 수 있는 증거와 여지를 확보해 놓게 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즉 하나님이 언약을 이루시는 방식과 인간이 생각한 언약 성취 방법이 얼마나 다른가 하는 이 점이 바로 언약이 고발의 요소를 갖게 되는 핵심적인 것이다. 언약은 빼앗고 속임 당하는 그런 혼란 속에서 진정한 희생자와 섬긴 자가 누군가를 알게 하고 차후에 이 세상에 등장할 민족도 섬기는 자를 잇는 민족과 섬김을 받기 원했던 자를 추종한 후손들의 민족으로 양분되리라는 것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야곱과 에서의 갈등 속에서 인간적인 선입감으로 언약을 이해한 이삭의 한계가 드러난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삭의 시도를 좌절시킨다. 그 이유는 진정한 언약 안에서의 장자는 자연적인 출산 시기와 무관함을 보이기 위함이다. 언약의 의의를 표현할 수 있는 자가 장자가 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삭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이삭에게 많은 재산 증식이 일어나고 땅은 가나안 땅에서 확장이 되는데 이는 모두 언약이 갖는 영향력 안에 있기 때문이다(26:1-33). 그만한 영향력을 가진 축복이 야곱에게 돌아가자 에서는 야곱을 제거할 의사를 가지게 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여기서부터 야곱의 환난은 시작되는 데 그동안에 자기가 자라온 배경을 이루었던 세계에서 복의 개념을 그대로 야곱이 지니고 있었던 것에도 환난의 원인이 있다. 예를 들면 삼촌의 집에서 살아온 세월 가운데서도 그의 인생 목표는 번창과 부유한 자가 되는 것이었다(30:43).&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는 그가 아버지 집에서 떠나온 후 벧엘에서 가졌던 경험 안에서도 같은 생각을 가졌다. 27:28에서 아버지 이삭이 자기에게 축복하기를 풍부한 곡식과 포도주를 준다고 했기 때문이며 이 사실을 마치 확인이라도 하듯이 벧엘에서 하나님은 사다리를 보여주시고 천사를 분주히 그 위에 왕래시킴으로 하늘의 복이 마구 야곱에게 떨어지는 광경을 봤고 네 자손이 온 땅에 편만할 것이라는 소리도 실제로 들었기 때문이다(28:14).&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나 27:29에 나타난 축복은 야곱의 축복이 아니라 야곱 언약에 준 축복이었다. 왜냐하면 야곱에게 많은 형제들이 없어서 그러하다. 야곱 자신도 그 언약 안에 있음으로써 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는 요셉에게서 이루어진다. 벧엘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이나 이삭 때처럼 야곱도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신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야곱을 떠나지 않고(28:15) 아브라함 언약 정신으로 변화시켜 나가게 하신다. 즉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 진정한 장자로 삼게 하신다. 야곱에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이 그를 이스라엘로 변화시키실 때까지 말이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한다는 말은 천사를 그에게 보내겠다는 말과 같다(32:1).&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많은 무리의 천사가 야곱을 지키게 되며 야곱이 어디를 가든지 동행하게 된다. 언약의 성취는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어 이루어 나가시는데 다만 야곱을 사용하실 뿐이다. 얍복 강가에서 야곱은 손해 보기 싫어하면서 평소의 사고방식대로 열심히 살해자와 싸우며 밤새도록 버텨낸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살해자는 쉽게 그를 굴복시킬 수 없음을 깨닫고 그 몸의 일부를 파손시킨다. 여기에 그만 그가 평범한 인간 존재가 아님을 깨닫고 살려 달라고 그에게 애걸복걸한다. 인간을 이기려다가 그만 하나님마저 이겨 보려고 덤벼든 셈이 되었다. 여기서 하나님은 그에게 축복하기를 인간도 이기고 하나님마저 이겼다는 이름으로 그의 생존을 지켜준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겼기에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만들어 주신 것이다. 이러한 이름은 단순히 야곱만의 이름이 될 수가 없다. 야곱에게 언약하신 그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의 이름, 또는 하나님을 뵙는다고 할지라도 생존할 수 있는 무리의 이름으로 세워진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야곱은 죽음과 생존 사이에 축복이 놓여있음을 알게 되었으며 그 축복은 인간 쪽에서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과 싸워서 지게 된 그 사실에 근거하고 있음도 알게 되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것은 야곱의 축복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전폭적인 낮아지심이며 야곱을 이용하여 사다리를 통해 왕래한 천사의 낮아짐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죽을 수 있었던 상황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통해 살았다는 명확한 증거는 브니엘(하나님과 대면 했는데도 살았다)이란 지명에서 보여진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환도뼈의 힘줄을 먹지 않음으로 증명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 이후 야곱은 진실로 섬긴 자는 자기가 아니라 하나님 그 자신임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런 모습의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거는 것이다. 자기가 언약을 이룬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안에서 이루신 것이다. 섬기는 자세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아브라함 언약을 바로 이해했다고 볼 수 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야곱은 적으로 여기던 형 에서를 마치 자기의 주인처럼 섬기게 된다(33:5&amp;ndash;11).&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런 사실에 눈이 어두운 야곱의 아들들은 무력으로 여동생의 수치를 복수하려다 야곱의 입지를 곤란하게 해서 그곳(하나님이 야곱의 하나님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알게 되어 값을 주고 사게 된 땅)을 떠나게 된다(33:18-20/ 34:30).&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아직 아들들에게는 이스라엘 하나님의 이미지가 힘의 정복으로만 비쳐진 것 같다. 이 11 아들의 본질은 마지막 12째 아들의 출생을 통해서 밝혀진다. 12번째 아들은 난산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어머니 라헬은 그 아들 출산을 마지막으로 목숨을 거둔다. 그래서 이름을 베노니라고 짓는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슬픔 속에서 출생한 자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로 달라진 야곱의 눈에는 그가 슬픔의 아들로 해석되지 않는다. 오히려 오른손의 아들(베냐민)로 보여진다. 오른손, 즉 하나님의 능력으로 출산한 아들로 본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마치 얼마 전에 야곱이 이스라엘로 바뀔 때의 자아의 죽음을 연상케 하는 자식인 것이다. 야곱식의 의식구조가 다 무너지고 깨어졌을 때, 외부적으로 실패로 보이겠지만 야곱은 그것이 자기에게 찾아온 하나님의 올바른 처리 방법임을 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 베냐민을 통해서 지금까지 낳았던 11아들 모두가 아버지 야곱처럼 새롭게 변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베냐민만이 이름이 바뀌고 새 이름이 주어졌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축복의 아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축복의 아들로 간주한 야곱 시절의 잘못은 이제 베냐민의 경우를 통해서 보이듯이 뭔가 새로운 시각으로 달라질 필요성이 있게 되었다. 즉 야곱의 아들들이 이스라엘의 아들로 전환할 계기가 다가온 것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야곱의 아들 중에 요셉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이 아들이야말로 27:29에 나오는 축복을 성취할 수 있는 자이다. 그런데 다른 형제들이 이 아들이 지니는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시기하여 그들의 손에 의해 애굽나라 종으로 팔려 가게 하신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삭의 축복에 의하면 형제들의 주가 된다고 하지만 그는 지금 종이 된다. 결국 하나님은 요셉을 종으로 만듦으로 인하여 형제들이 어디서 아브라함 언약을 오해하고 있는지를 밝혀내려 하시는 것이다. 형들의 요셉 추방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가진 자가 추방되므로 결국 하나님 자체의 추방인 셈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하지만 하나님은 요셉을 단순히 꿈 가진 자로서만이 아니라 급기야는 꿈의 해석자로서 등장시켜 요셉의 배후에는 역사의 흐름을 주관하는 분이 있음을 나타낸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로써 요셉뿐 아니라 그 형제들에게 야곱 하나님의 실상을 알게 하시는데 45:5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amp;ldquo;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면 그 생명 보존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45:8에 보면 &amp;ldquo;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내는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바로가 자기의 주가 아니라는 말이다) 애굽 온 땅의 치리자로 삼으셨나이다.&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죽음에서 생명으로 구원하는 것은 이삭의 경우에는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 수양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번에 야곱 집안의 경우에는 형제들에 의해서 배척당한 형제 하나가 그들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구출시켰다. 여기서 주의 개념에 새로운 변화가 주어진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즉 주란 하나님의 언약 때문에 땅에서 비언약적 사고를 가진 자로부터 배척당한 그 당사자를 하나님은 인정하시고 그를 배척케 한 그자들은 그 주로부터 지배받는다는 역사법칙과 원리가 정해져 버렸다(참조: 빌 2;5-11).&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것은 이미 야곱에게 내린 축복의 일환이었다. 따라서 비록 요셉이 애굽에서 낳은 자식이라 할지라도 야곱의 하나님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이 애굽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야곱의 축복에 참여하게 된 사정은 그 운명의 배후에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긴다는 장자의 원리가 작용했음을 알려주기 위해 손을 어긋맞게 해서 축복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마지막으로 야곱은 12아들을 불러 놓고 말하기를 언약의 기준에 따라 저주와 축복을 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각자 운명을 통해 아브라함의 하나님과 이삭의 하나님과 야곱 하나님의 모습을 보이게 하는(부정적이든지 긍정적이든지)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언약은 요셉에게 찾아온 죽음까지도 극복할 능력이 있는 것이다(50:24-26).&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Ⅲ 결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성경 지식이 어떻게 삶의 변화를 일으킬까? 그것은 고통이다. 난데없는 고통이 찾아들면서 &amp;lsquo;내가 있음&amp;rsquo;은 실은 &amp;lsquo;나의 없음&amp;rsquo;을 알리는 신호인 것이다. 이로써 성도의 행복은 자동으로 파기된다. 그 대신 주님 고통이 나의 존재 자리를 대신한다. 이는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 온 우주는 이미 주님의 고통으로 가득 차 있고 성도는 그 일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모든 일들이 십자가 사건에서 퍼져나간 파동임을 창세기의 모든 구절이 증명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성도는 이미 창세기라는 현실 안에서 사는 동시에 십자가 사건 안에 살고 있는 자이다.&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십자가마을 수련회/26여름(창세기)</category>
      <author>정인순</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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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29 May 2026 14:52:2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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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열왕기하 7:1-2 / 하늘과 땅의 대립</title>
      <link>https://chninsn.tistory.com/17213215</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a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href=&quot;http://media.woorich.net/%EC%84%B1%EA%B2%BD%EA%B0%95%ED%95%B4/%EC%97%B4%EC%99%95%EA%B8%B0%ED%95%9826/%ED%95%98%EB%8A%98%EA%B3%BC%EB%95%85%EC%9D%98%EB%8C%80%EB%A6%BD260527.mp3&quot;&gt;음성&lt;span&gt;&amp;nbsp;&lt;/span&gt;&lt;/a&gt;&lt;a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href=&quot;http://media.woorich.net/%EC%84%B1%EA%B2%BD%EA%B0%95%ED%95%B4/%EC%97%B4%EC%99%95%EA%B8%B0%ED%95%9826/2026-05-27%2019-28-55.mp4&quot;&gt;동영상&lt;span&gt;&amp;nbsp;&lt;/span&gt;&lt;/a&gt;&lt;a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href=&quot;https://www.youtube.com/embed/RnYnov8qfow&quot;&gt;Youtube&lt;/a&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하늘과 땅의 대립&amp;nbsp;&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근호&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2026년 5월 27일&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본문 말씀: 열왕기하 7:1-2&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7:1)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7:2) 그 때에 한 장관 곧 왕이 그 손에 의지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엘리사가 가로되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현실, 인간들로서는 유일하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현실입니다. 좋든 싫든 현실에 적응해야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현실이 지금 북이스라엘에서는 절망적입니다. 아람 나라가 성을 포위하므로서 양식은 바닥이 났습니다. 성 안에서는 참혹한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먹을 양식이 없으니 자신들이 낳은 아기를 양식으로 여겨 먹을 지경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이러한 광경을 지켜본 여호와람은 이런 비극에서 온 충격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의 분노의 양대로 폭발합니다. 이판사판입니다. 그 누구를 향하여 분풀이를 할 수밖에 없는 지경입니다. 그래서 그 열왕기하 6:33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amp;ldquo;왕이 가로되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이 분풀이는 엘리사 선지자를 제거하는 것으로 결정내려집니다. 하나님을 살해하는 심정으로 엘리사를 죽이겠다고 합니다. 이때 엘리사는 다음과 같이 말입니다. &amp;ldquo;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amp;rdquo;(왕하 7:1)&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이 이야기는 누가 들어도 곤궁에 빠진 인간들을 더욱 약 올리는 이야기로만 들리게 하는 말씀입니다. 몇 달 후도 아닙니다. 당장 내일, 이 사마리아 도성에 돈에 넘치고 먹을 것이 넘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것은 그대로 믿을 위인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현실에 어느 정도로 극심하게 양식이 바닥이 났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절감하고 실감하고 있는 그 현실에서 말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따라서 일반인들의 심정을 유력한 장관 하나가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즉 자신의 나라인 이스라엘이 이렇게 괴롭힌 하나님께서 그 누구도 고마움으로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음이 대세가 된 지경에서 장관은 도리어 하나님에게 욕하듯이 다음과 같은 발언으로 선지자의 약속에 대응합니다.&amp;nbsp;&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amp;ldquo;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amp;rdquo;(왕하 7:2) 그렇습니다. 하늘에 창이 열려서 하늘에게 소낙비 쏟아지듯이 양식과 돈이 쏟아져야 엘리사가 말한 다음날의 상황에 일치됩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께서 말같찮은 말을 했다는 겁니다. 정도를 넘어서 무모한 발언을 했다는 겁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왜냐하면 그렇게 하늘에서 비 내리듯이 한꺼번에 양식을 내릴 수 있는 마음이 계신다면 오늘에 이를 데까지 이토록 철저하게 이스라엘 자신들을 괴롭힐 리가 없다는 겁니다. 즉 갑자기 마음을 바뀌실 근거가 없다는 겁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이 모르고 있는 게 있습니다. 그것은 &amp;lsquo;현실 구성&amp;rsquo;이 어떤 식으로 조성되어지는 가를 모르고 그저 적응하면서 자신네들 목숨 부지하는데 열중했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하나님의 현실 경영은 의도적으로 인간의 소원성취를 틀어지게 하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그것은 인간들이 나름대로 자신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본인들이 상상한 자아상을 그리면서 일방적으로 자신이 자기가 상상한 자태를 유지해야 만족하겠다는 겁니다. 인간들은 자신의 평소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을 대립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인간은 자기가 보기에도 남들이 보기에 의젓하게 사는 모습을 갖추고 싶은 겁니다. 그것을 충족시켜 생활이 바로 직장 생활입니다. 인간이 직장을 가짐으로서 대외적으로 자신의 자긍심을 갖게 만든다고 여깁니다. 장관의 직장은 장관입니다. 그는 자신의 맡은 일을 잘 수행해서 장관으로서 자기 위상을 지켜려고 합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그는 인간이라는 누구나 자연스럽게 가질 수밖에 없는 이런 자세가 하나님 보시기에 &amp;lsquo;균열된 자아상&amp;rsquo;이라는 점을 알지를 못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찾으시는 이상적인 자아성이 어떤 것인지 신약 시대를 통해서 알아봅니다. 마가복음 7:26-28에 보면, &amp;ldquo;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amp;rdquo;라고 되어 있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이 이방여인은 자신이 하나님과 균열되어 있음을 자인합니다. 주님께 도움을 받을 자격이 없음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어느 집에 개가 있다면 주인은 결코 자녀를 놔두고 개를 키우고 먹이기 위해 돈을 벌고 양식을 사고 음식을 만들지는 아니할 겁니다. 즉 자녀와 개 사이에 분명한 균열을 갖추고 있는 겁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예수님께서 이 사실을 거론했을 때, 이 수로보니게 여인은 말합니다. 자녀들이 배불리 먹고 더는 먹지 못하고 버리게 되는 남은 음식은 비록 자녀는 아니지만 개는 고맙다하고 먹을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이게 바로 예수님께 원하신 믿음입니다. 피아노 건반을 열고 의지에 앉아 손가락으로 건반을 칠 때 소리가 납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이것은 바로 행함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피아노 근처에 가지도 않았음에도 피아노가 저절로 두껑이 열리고 건반이 움직여 음악 소리를 내면서 연주가 되면 이것은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행함이 일체 개입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하나님에 대해서 믿음 관계에 놓여 있음을 인정해야 했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그럴려면 자신들의 먹어야 될 양식은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함에 의해서 신란하게 욕을 다 얻어먹는 하나님의 고통에서만 주어짐을 알아야 했습니다. 인간이 감히 하나님을 상대로 내기를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기를 해도 악마와 하십니다. 자기 백성을 자랑스러워하시면서 말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왜냐하면 신앙인의 등장은 인간들의 솜씨나 행함의 결실이 아니라 인간으로부터 결핏하면 욕을 먹으시는 그 하나님의 고통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거저 주신 신앙은 온 천하보다 귀합니다. 균일된 하늘과 땅 사이에 하나님께서 신약에 열쇠를 마려하셨습니다. 악마의 힘으로도 손탈 수 없는 열쇠입니다.&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amp;nbsp;&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그 열쇠는 오로지 예수님의 죽으시는 행위만이 본질이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만이 악마의 권세를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amp;ldquo;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amp;rdquo;(마 16:21)&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기도합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전부, 곧 영생을 주셨사오니 나의 전부를 잃는다 할지라도 감사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lt;/span&gt;&lt;/p&gt;
&lt;hr contenteditable=&quot;false&quot; data-ke-type=&quot;horizontalRule&quot; data-ke-style=&quot;style2&quot; /&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녹취:오용익&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17강-열왕기하 7장 1-2절(하늘과 땅의 대립) 260527-이근호 목사&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하나님의 말씀은 열왕기하 7장 1절에서 2절까지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열왕기하 7:1-2&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amp;ldquo;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 그 때에 한 장관 곧 왕이 그 손에 의지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엘리사가 가로되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amp;lsquo;아람 나라한테 포위된 이스라엘이 얼마나 양식이 없었는지, 이제 마지막 남아 있는 양식은 자기 배에서 낳은 어린아이들밖에 없었다.&amp;rsquo; 이게 실제로, 현실로 사람이 사람 고기를 먹어야, 아이를 잡아먹어야 어른이 사는 처참한 환경에 처해 있었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여호람 왕이 그걸 목격했습니다. 자기 아들은 내놨는데, 상대방이 자기 아들을 내놓지 않는다는 것으로 다투는, 애를 양식으로 삼는 그 현장을 왕이 대하면서 &amp;lsquo;이 모든 일은 우리 인간이 그렇게 못된 짓을 해서 된 게 아니라,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순전히 하나님께서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amp;rsquo;는 겁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하나님 보고 대놓고는 욕을 못 하고 &amp;lsquo;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를 죽여버리겠다&amp;rsquo;라고, 화가 단단히 난 여호람 왕이 엘리사를 살해하기 위해서 자기 부하들을 보냅니다. 그때 엘리사 선지자가 여호람 왕에 대해서 말하기를 &amp;ldquo;이 살인한 자의 자식이 내 머리를 취하려고 사람을 보내는 것을 보느냐&amp;rdquo;(왕하 6:32)라고 하지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amp;lsquo;살인한 사람의 자식이다.&amp;rsquo; &amp;ldquo;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 조상의 살인 충동을 네가 그대로 받았구나&amp;rdquo;라고 하면서 엘리사 있는 곳에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열왕기하 6장 33절에서 왕이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amp;ldquo;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amp;lsquo;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니까 모든 책임은 우리한테 없고 하나님 잘못이다&amp;rsquo;라는 것을 선언하지요. 어쨌든 현실은 그 지경이 되었으니까요. 먹을 게 없어서 사람 고기 삶아 먹어야 될 그런 입장이 되었으니까, 인간의 입장에서 마지막 인간이 긁어낸 솔직한 마음은 하나님께 발악하듯이 대드는 거 외에는 없지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이게 그 당시 현실이었습니다. 아람 나라한테 포위된 이스라엘의 현실이에요. 그리고 그 현실과 지금의 현실이 다른가? 다르지 않습니다. 같습니다. 여호람 왕이 엘리사 선지자를 공격했지만 사실은 하나님을 공격한 거예요. 선지자는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니까요. 마지막 때에 하나님이 직접 사람이 되셔서 이 땅에 왔다면 사람들은 &amp;lsquo;이 땅에서 내가 생활하고 행복하게 사는 데 있어서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거추장스럽고 장애가 되는지&amp;rsquo; 인간은 절실하게 느끼고 거기에 대해서 항거하게 될 것입니다. 그걸 보여주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다시 한번 정리하면 현실이란 뭐냐? 현실은 인간들이 걸핏하면 하나님께 항거하고, 대들고, 하나님을 욕보이는 그게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입니다. 지금 양식 좀 있고 먹고 살 만하니까 우리는 &amp;lsquo;하나님, 하나님!&amp;rsquo; 찾지만 오늘 본문같이 극단적으로&amp;hellip;, 인간이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사람 고기를 어떻게 먹습니까?&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그 상황, &amp;lsquo;내가 이렇게 불행하고 힘든 것은 다 하나님 탓&amp;rsquo;이라는 그 발언을 쏟아내는 그 순간에 인간은 자기 자신의 본래 모습을 숨기지 못하고 털어놓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 인간이 생각하는 현실과 하나님이 유도해 나가는 현실과 차이가 나지요. 인간이 생각하는 현실이라고 하는 것은 안정된 현실 속에서 자기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 우리를 인간답게 해 줘야 한다는 그것이 당연한 거고 마땅한 것처럼 그렇게 여깁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amp;lsquo;현실을 현실답게 그냥 질서 있게 해서 우리에게 그대로 줄 것을 줘. 우리는 그 안에서 행복을 만끽할 테니까. 그게 현실이 해야 할 일이야. 그게 자연이 해야 할 일이야.&amp;rsquo; 이런 식으로 인간들은 평소에 생각했다 이 말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현실 속에서 현실을 비틀어버리니까 인간은 바락바락 하나님께 대들고 싶은 본심을 결국은 감추지 못하고 털어놓게 돼 있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오늘 본문에서 엘리사가 약을 올리듯이 툭 던집니다. 어떻게 약을 올리느냐 하면, 엘리사가 하나님 말씀을 이야기합니다. &amp;ldquo;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맘때에&amp;hellip;&amp;rdquo; 두 달이나 석 달 뒤가 아니고 내일 이맘때입니다. 24시간 남았어요. 24시간 이후에, &amp;ldquo;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amp;rdquo;(왕하 7:1).&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보리가 어디 있으며 고운 가루가 어디 있어요? 지금 먹을 가루가 있었으면 애를 잡아먹겠습니까? 그게 없는 거예요. 없는데 엘리사가 이야기합니다. &amp;lsquo;하나님의 뜻은 24시간 이후에, 내일 고운 가루도 있고 보리도 있다&amp;rsquo;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들이 풍족하게 남아 있어서 배급제가 아니라 시장에서 상거래가 형성될 것이라고 이야기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그걸 누구 보고 이야기하느냐? 지금 모두 한마음으로 일치되어서 하나님께 욕하고 있는 그 현실이라는 것, 비참한 현실 속에서 엘리사가 그런 이야기를 한 겁니다. 이것은 누가 들어도 인간을 향하여 엘리사가 약을 올리는 발언이에요. 누가 들어도 약을 올리는 발언입니다. &amp;ldquo;두 달쯤 뒤에 너희들이 회개 기도하면 들어준다.&amp;rdquo; 이게 아니고 24시간 이후에, 내일 당장 준다는 거예요. 아무리 눈 닦고 봐도 없는데, 양식 자체가 없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이 대목에서 성경 그 뒷부분을 우리가 모른다 친다면 우리의 심정은 어떤 심정이냐? &amp;lsquo;이것은 말이 안 된다. 엘리사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하도 대드니까 그에 대한 반박으로 인간을 부정하기 위해서 했던 발언이다.&amp;rsquo; 누구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방금 엘리사가 한 이야기가 무슨 내용으로 했는지, 제가 다른 내용을 가지고 설명해 드릴게요. 잘 들어보세요. 어떤 집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립니다. &amp;lsquo;어떤 사람이 피아노 앞 의자에 앉아서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치면 피아노 연주가 된다.&amp;rsquo; 이것은 보통 인간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이 다 알아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엘리사가 이런 이야기 합니다. &amp;ldquo;어떤 집에서 피아노 소리가 나는데 거기서 피아노에 손댄 사람 아무도 없었다. 피아노가 저절로 뚜껑 열고, 저절로 건반이 움직여서 소리가 났다. 믿어라.&amp;rdquo; 엘리사가 그런 이야기한다는 것, 이것은 욕이에요. 우리 인간들 싸잡아 욕하는 겁니다. 앞에 예를 든 것, 피아노 손을 대서 치는 것을 &amp;lsquo;행함&amp;rsquo;이라 하고, 손도 안 댔는데 저절로 피아노에서 소리가 나오는 것을 &amp;lsquo;믿음&amp;rsquo;이라고 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로마서 4장에서 이야기합니다. 인간을 행함으로 구원받지 못하고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거예요. 그냥 &amp;lsquo;인간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amp;rsquo;라고 이야기했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고 할 거예요. 그러나 로마서 4장에서 분명히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하기 이전에 &amp;lsquo;행함으로 구원받지 못하고&amp;rsquo;가 전제가 돼 있어요. 이게 완전히 인간을 엿 먹이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말도 안 되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왜 하느냐 하면, 현실 자체가 인간을 행복하기 위해서 인간을 위해서 일이 벌어지는 공간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면 현실은 어떤 현실인가? 인간의 소원 성취가 있고, 주님께서 인간의 소원 성취를 의도적으로 기피함으로써 인간은 자기의 소원이 성취되지 않을 것이라는 그 절망에 대놓고 하나님께 욕하고, 그렇게 욕하는 그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믿음이 없다고 꾸짖는 현장 그 자체를 하나님께서 현실로 구성하고 있는 중이라는 뜻이에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문장이 많이 길었습니다마는 이걸 어떻게 달리 쉽게 할 수가 없어요. 현실은 인간이 일방적으로 만들어낸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만들어낸 것도 아니고 &amp;lsquo;하나님과 인간의 대립 관계가 어떻게 심각하냐?&amp;rsquo;를 들춰내기 위해서 인간의 모든 소원 성취를 기피해요. 인간에게는 어떤 소원 성취의 기대가 있을 거 아니겠습니까? 소원 성취의 기대를 나오게 유도해서 의도적으로 그 소원 성취를 피해 가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그러면 인간에게 나오는 것은 악밖에 안 나오죠. 그게 바로 현실이에요. 그게 현실이에요! 하나님께 욕할 수밖에 없고, 그 욕을 얻어먹은 하나님은 이 현실을 뭐로 가득 채우는가? 하나님의 고통으로 가득 채우는 현실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고통으로. 그게 십자가 사건이죠. 이 현실의 중심은 십자가 사건이었는데 그게 하나님의 피 흘림이고, 고통이고, 아픔이에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인간들 속에서는 하나님의 신음소리, 아픈 소리, 십자가에서 외쳤던 그 &amp;lsquo;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amp;rsquo; 그게 들려오지 않아요. 반대로 들립니다. &amp;lsquo;하나님은 뭔데 내 소원을 그때그때 마다 들어주지 않습니까?&amp;rsquo; 그러면 인간의 소원이 뭐냐? 인간의 소원은 본문의 장관이 우리들 인간들을 대표해서 말해줬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amp;ldquo;그 때에 한 장관 곧 왕이 그 손에 의지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amp;rdquo;(왕하 7:2).&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뭐냐 하면, &amp;lsquo;하늘의 문이 창을 열어서 그야말로 하늘에서 뭐가 쏟아지느냐 하면, 고운 가루, 보릿가루, 돈 같은 게 막 쏟아져서 인간으로 하여금 배고프지 않게, 배터지게 먹도록 해 주시는 것&amp;rsquo; 이게 지금 양식이 없는 이 지경에서 인간이 뽑아낼 수 있는 소원이에요. 이게 인간의 소원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이스라엘의 장관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 엘리사가 너무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했잖아요. 다시 말씀드릴게요.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터무니없는 이유는, 인간 자기 나름대로 행복을 위한 소원 성취의 기대가 있는데 그걸 아예 하나님이 비켜 가니까 속에서 악에 받쳐서 &amp;lsquo;하나님이라면 이 정도 이 정도는 해야지&amp;rsquo;라는 분노에 섞인 본심이 나오는데 바로 그것을 들춰내어서 &amp;lsquo;하나님이 하시는 그 뜻에 반발하는 그 요소로서 이 현실을 꾸려 나가겠다&amp;rsquo;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어떻습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현실은 어떤 현실이죠? 나 잘났다는 것을 만끽하고 자랑질 할 수 있는 공간 그걸 현실로 생각합니까, 아니면 주님의 십자가의 여파로 현실이 지금 운영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람들은 현실을 빈 공간으로 생각하고, 인간들이 설치면 마음대로 설칠 수 있는 어떤 운동장 같은 걸 생각합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어린아이가 학교 끝나고 난 뒤에 운동장에서 혼자 신나게 놀잖아요. 우리는 공간을 그렇게 생각합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이런 거요.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이 이야기한 것처럼 평소에 우리는 그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러나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하나님의 계시에 입각해서 보면, 그것이 바로 현실관과 전혀 맞지 않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현실관과 전혀 맞지 않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따라서 이쯤에서 제가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신앙이 무엇이냐? &amp;lsquo;신앙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알게 해 주시면 제가 믿겠습니다.&amp;rsquo; 이렇게 성급하게 나오지 마시고, 먼저 &amp;lsquo;불신앙이 무엇인가?&amp;rsquo;부터 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엘리사 편에 서지 말고 여러분이 장관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양식이 전혀 없는 이 현실에서 여러분이 내무부 장관이라고 생각해 봅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오늘 본문의 이 장관은 왕이 의지할 정도의 실권자이기 때문에 그래요. 자, 여러분이 이 장관 입장, 장관이라고 생각한다면 양식이 다 떨어진 이 백성들에게 어떤 정책을 내놓겠습니까? 5초 드립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장관 자꾸 욕할 생각하지 말고 우리가 장관이라면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 이 말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장관이 제대로 이야기했잖아요. &amp;ldquo;하나님 같으면 하늘에 창을 내서 양식이 하늘에서 쏟아지게 되면 우리는 고맙다고 하겠습니다.&amp;rdquo; 지금 그 이야기밖에 못 하잖아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하는 장관은 본인이 이야기하면서 &amp;lsquo;이것은 터무니없다&amp;rsquo;는 것을 본인이 너무 잘 알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이것은 뭐냐? 하나님을 엿 먹이겠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욕하고 엿 먹이겠다는 것, 그게 바로 현실이에요. 그게 바로 하나님이 꾸려 나가는 현실이라는 거예요. 아닌 척하지 말라는 겁니다. &amp;lsquo;하나님을 존경한다. 하나님을 좋아한다.&amp;rsquo; 그런 말도 안 되는 조작은 하지 말라, 그런 위선은 떨지 말라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살 만하니까 &amp;lsquo;하나님, 하나님&amp;rsquo; 하지 어려워 보세요. 하나님 욕하죠. 그렇다면 신앙이 뭐냐? 신앙이 뭐냐를 알기 위해서는 그 발길을 어디로 둬야 하느냐? 친절하게도 오늘 장관 나왔잖아요. 장관의 마음에 내 마음을 합쳐 봅시다. 합치면 이렇게 돼요. 장관은 지금 직장인입니다. 장관은 백성들의 살림, 나라의 살림을 책임지는 직장인이에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자 직장이 뭡니까? 직장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자신의 자긍심을 채워주는, 사는 보람을 주는, 나의 나 됨을 충족시켜 주는 것이 직장이에요. 직장에 있음으로써 대외적으로 사람 구실을 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우리는 그러한 좋은 평가에 기분이 좋아지죠. 그래서 그 힘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 인간 세계에서 떳떳한 존재로서 사는 보람을 갖는 게 직장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직장 생활하는 장관이 자기 직장에 걸맞은 정책을 못 세우고 있어요. 난감합니다. 인간은 자기의 이상형을 항상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청소년 때 서로 좋아했던 첫사랑이 있다고 합시다. 나이 60이 넘어도 그 첫사랑을 보고 싶어요. 그런데 50년이 지난 그 사람을 보고 싶은 게 아니고, 그 첫사랑의 그때 그 사람을 보고 싶은 거예요. 50년 동안 늙어 온 것은 나타나지 말라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그러니까 첫사랑이든 둘째 사랑이든 인간은 자기의 행위로, 자기의 상상으로 꾸며낸 그 상황을 자기가 갖고 싶은 거예요. 자신이 타인을 통해서 뭔가 상정해서 그것과 일치될 때 사람은 즐거움을 느낍니다. 직장이라는 게 얼마나 인간의 기분을 높여주는지요?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서울의 어떤 경찰서에서 여경이 로스쿨 가겠다고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근무에 태만할 수밖에 없지요. 팀장이 결재할 서류를 보니 성의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팀장 같으면 보통 경감이나 경정 정도 되겠죠. 팀장이, 서류에 뭐가 잘못됐고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니까 여자 경찰관이 &amp;ldquo;그렇게 잘하면 본인이 직접 하세요!&amp;rdquo; 자기는 로스쿨 준비한다고 힘들고 바쁘다는 식이지요. 이것은 하극상이죠. 그런데 부하직원 입장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이에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그래서 서장이 그 여경을 감봉 처리하니까 국가를 상대로 행정법원에 감봉 처리 취소하라고 소송을 냈는데 패소했어요. 직장이 뭐냐? 직장은 나의 나 됨의 주체를 살려주는 게 직장이에요. 직장이 없다 하면 나는 사람 취급을 못 받아요. 그래서 죽기 살기로 졸업하고 취직하려고 하잖아요. 어엿한 직장, 어엿한 명함이 있을 때 사람 대접을 받아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이 장관의 입장에서 뭘 모르냐 하면, 하나님께서 그동안 양식을 준 것이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섬겨서 준 것처럼 오해하고 있는 거예요. 참 어려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제가 요약해서 말씀드리면 &amp;lsquo;균열이 없으면 금고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amp;rsquo; 균열이 없으면 금고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말은 뭐냐? &amp;lsquo;일부만 맞고 나머지 모든 것은 안 맞는다&amp;rsquo;는 뜻이에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자물쇠 열 때 이래도 안되고 저렇게 해 봐도 안되다가 어떻게 하면 찰칵, 열리잖아요. 여는 쪽과 열리는 쪽이 그 지점에서만 맞닥뜨렸기 때문에, 딱 통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인간의 세계와 하나님의 세계가 균열이 돼 있는 겁니다. 균열이 돼 있는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선지자를 뒀지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그 균열 된 세계 - 이방 민족은 아예 균열 돼 있고요 - 이스라엘에게 균열된 이 현실을 준 것은 균열 속에서도 딱 맞아떨어질 수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고마워하라는 겁니다. 그게 바로 선지자예요. 그런데 인간은, 오늘 본문의 장관도 마찬가지지만 왜 균열 됐는지 이유를 몰라요. 그래서 왜 균열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 신약 성경 마가복음 7장 26-28절을 보겠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amp;ldquo;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 주시기를 간구하거늘&amp;rdquo;(막 7:26).&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이 귀신들려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amp;ldquo;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찌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amp;rdquo;(막 7:27).&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이 말은 뭐냐 하면, 어떤 집안에 자녀가 있고 개도 기르고 있는데, 부모에게 있는 양식은 개 주려고 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렇다고 개를 굶기는 건 아니지만, 이 양식은 개 주려는 것이 아니고, 목적이 뭐냐? 자기 자식에게 주기 위해서 양식을 있다는 거예요. 자기 자녀들이 떡을 먹었으면 먹고 남은 것이 있을 거 아닙니까?&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에이 버리자, 하고 버리니까 그 주인이 버린 떡을 누가 딱 기다리고 있다가 먹는가? 개가 와서 &amp;lsquo;반갑다, 양식! 고맙습니다&amp;rsquo; 하고 그걸 먹는 거예요. 자 그렇다면 이 말씀은 뭐냐 하면요, 인간이 어떤 양식을 먹는다는 것은 없어도 그만인데 남이 다 먹고 난 뒤에 혹시 부스러기라도 있으면 고맙다, 하고 먹어야 할 그 양식, 그런 자가 과연 인간 중에서 나타날 수 있느냐는 겁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amp;lsquo;내가 일하고 월급 받았다. 내가 번 내 돈이니까 내가 알아서 먹는다.&amp;rsquo; 이런 인간들밖에 없어요. 현실이 어떻게 대립돼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현실이 어떻게 하나님과 인간이 끊어져 있는 현실인 것도 모르고, &amp;lsquo;내가 직장 생활해서 월급 타고, 밥 먹고, 나만 번듯한 인간처럼 행세하게 만들고, 그러면 그것이 나의 행복이다. 이게 바로 현실이 존재하는 이유가 아니냐?&amp;rsquo; 이런 식으로 살아가더란 말이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하나님이 어떻게 현실 속에서 현실을 운영하고 현실에 관여한다는 것을 인간치고 아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7장 28절에, &amp;ldquo;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amp;rdquo; &amp;lsquo;저 주님한테 당당하게 도와달라고 온 게 아니고요, 안 도와주셔도 됩니다. 왜? 제가 바로 감히 사람들이 먹는 양식을 넘볼 수 없는 개 같은 존재거든요.&amp;rs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지금 욕하는 거 아닙니다. 욕하는 거 아니에요. &amp;lsquo;제가 개같은 존재거든요!&amp;rsquo; 그게 바로 피아노앞에 아무도 없는데 피아노 소리 나는 거예요. 그게 바로 믿음이라는 말이지요, 그게! 이 믿음을 위해서 주께서 오신 거예요, 이 믿음을 위해서. &amp;lsquo;믿음&amp;rsquo;이라고 하는 것은 현실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통으로 삽입시켜 놓고, 그 고통이&amp;hellip;&amp;hellip;, 균열 된 이 현실 세계에서, 땅이 하늘과 떨어진 사이에서 어떻게 하늘이 열리겠습니까?&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장관이 이야기했어요. &amp;ldquo;하늘의 문이 열려서 양식이 하늘에서 떨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늘에 창을 낼 수가 있습니까?&amp;rdquo; &amp;ldquo;너 말 잘했어.&amp;rdquo; 네가 &amp;lsquo;하늘에 창을 낼 수 있습니까?&amp;rsquo;라고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뭐냐? &amp;ldquo;하늘의 창을 낼게&amp;rdquo;라고 하는 거예요. 인간은, &amp;lsquo;이것은 말도 안 된다&amp;rsquo;라고 해서 &amp;lsquo;창(窓)&amp;rsquo; 이야기를 했는데, 마태복음 16장에서 주님께서는 하늘에 창을 내버렸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마태복음 16장 18-19절에, &amp;ldquo;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하늘과 땅이 균열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요. 열쇠가 있다는 말은 뭔 뜻입니까? 균열 돼 있다는 뜻이에요. 아무리 인간들이 땅에서 호소해도 하늘의 문은 열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열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유가 뭐냐? 인간 자체가 열쇠가 아니니까요. 인간 자체가 열쇠가 되지 못하니까, 음부의 권세를 인간들이 이기지 못하니까, 악마의 힘을 인간들이 이기지 못하니까 인간에게서 열쇠가 나올 턱이 없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빌고, 또 빌고 뭐 어떻게 노력하고 몸부림쳐도 하늘은 끄떡도 없고 문을 안 열어줍니다. 끊어져 있어요. 끊어져 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서 우리가 궁금한 게 뭐냐? &amp;ldquo;도대체 이 열쇠가 뭡니까?&amp;rdquo; 이게 궁금하겠죠. 다른 말로 해서 인간을 &amp;lsquo;꼼짝 마라&amp;rsquo; 하고 있는 이 악마, 악마의 힘이 손 탈 수 없는 그 열쇠가 뭐냐, 그 열쇠가?&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그 열쇠가 어디에 나오느냐 하면 21절에 나옵니다. 마태복음 16장 21절, &amp;ldquo;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열쇠 이야기하고, 그 열쇠에 대해서 어떤 누구도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을 뻔히 아는 입장에서 인간들은 열쇠가 어떻게 생기느냐에 대해서 궁금할 수밖에 없어요. 그때 예수님이 열쇠로 끼어듭니다. 예수님의 열쇠로 끼어들어요. 예수님이 교회의 반석이에요. 그러면 베드로는 뭐냐? 베드로는 베드로가 아니고 시몬이죠. &amp;ldquo;바요나 시몬아.&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시몬인데 아무것도 아닌 시몬이 베드로 되게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베드로가 생각하는 그 현실&amp;hellip;, 아까 현실을 제가 여러 번 이야기 했죠. 현실은 뭐라고요? 자기의 행복과 자기의 인간 됨, 자기의 자긍심, 마지막 남은 앙금처럼 자존심 세우는 거, 그게 인간이 생각하는 인간의 현실과 자기 자신이잖아요. 살면서 사는 보람, 남한테 인간으로 인정받는 것, 그게 사는 보람이잖아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그것은 악마의 힘 안에서, 악마로부터 벗어나지 못해서 이 고통 많은 세상에서 나름대로 버티기 위해서 자기가 의견을 제시하는 거예요, 버티기 위해서. 따라서 이 열쇠는 인간이 아니고, 열쇠는 예수님 자신이 천국의 열쇠가 돼요. 악마가 딴 사람은 다 건드려도 예수님은 못 건드리니까요. 악마가 예수님을 건드려 죽였잖아요. 그렇게 죽여서 악마는 게임 끝났다고 생각했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그러나 어떻게 되었습니까? 죽은 지 사흘 만에 살아남으로써 주님은 악마 보고 빠이빠이, 한 거예요. &amp;lsquo;바이 바이~&amp;rsquo; 끝났어요. 악마가 손 못 대요. 이제 열쇠가 꽂히는 사람은 전부 다 악마가 더 이상 그 사람에게 손을 탈 수가 없어요. 왜? 그 사람 자체가 열쇠가 되었으니까. 시몬이 베드로가 되었으니까요. 성령을 받아서.&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이렇게 성령 받아 반석이 된, 열쇠를 받은 이런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누구냐 하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취지로 복음을 설명했어요. &amp;ldquo;복음을 받게 되면 온 천하보다 귀한 것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로선 그 복음을 받았을 때 할 말을 잃는다.&amp;rdquo; &amp;lsquo;온 천하보다 귀하다&amp;rsquo;는 것이 마태복음 16장 26절에 나오는 이야기예요. &amp;ldquo;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amp;rdquo; 그 대목이에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온 천하보다 귀한 걸 받았으면, 그걸 받은 사람의 남은 생활은 이제 뭐냐? &amp;lsquo;온 천하를 잃는 순서&amp;rsquo;가 남아 있겠죠. 왜? 감산, 빼기(-), 온 천하를 빼기. 온 천하보다 더 귀한 복음을, 생명을 받았으니까 이 온 천하와 같은 내 것이 빠진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기쁨은 소실되거나 소멸되지 않겠죠. 그래야 말이 되잖아요, 말이. 온 천하보다 귀한 복음을 받았으면, 예수님의 영생을 받았으면 이제는 &amp;lsquo;온 천하 되는 게&amp;rsquo; 없어진다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염려하거나 걱정하거나 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예를 들면 욥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욥한테 묻지도 않고 악마와 내기했어요(욥 1:6-12). &amp;ldquo;욥을 봐라.&amp;rdquo; 내기를 누구하고 하느냐? 하나님은 악마 보고 내기했어요. &amp;ldquo;욥을 쳐라.&amp;rdquo; 악마가 말하기를, &amp;ldquo;욥을 치면 욥은 하나님께 항의할 것입니다.&amp;rdquo; &amp;ldquo;내기할까?&amp;rdquo; &amp;ldquo;내기합시다.&amp;rdquo; 그래서 욥기 1장에서 내기를 했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그 내기는 인간의 의견이 개진되지 않는 내기예요. 그 말은 이 세상의 현실은, 이 세상의 현실은 인간이 &amp;lsquo;슬프다, 걱정된다, 염려된다&amp;rsquo; 할 그러한 권리가 일체 없는 식으로 현실이 돌아가게 되어 있다는 뜻이에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하고 내기한 게 아니니까. 나를 지배하는 악마와 내기했거든요.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여자의 후손은 뱀의 후손과 상대하지, 우리 인간 보고 상대한 게 아니잖아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뱀은 주님하고 상대하지, 우리 인간하고 상대하지 않습니다. 왜? 인간은 이미 뱀한테 굴복되어서 죽기를 무서워하기 때문에 게임도 안 되고요. 하나님께서 현실을 이끄실 때 그 진실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걱정하거나 염려하거나 두려워할 그런 현실을 하나님께서는 성도에게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냥 우리는 복음을 받고 입을 다물 뿐이죠, 너무 놀래가지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어떻게 피아노 치는 사람도 없이 피아노 소리가 들리냐, 어떻게 복음의 소리가 들리냐? 이거 분명히 내가 친 게 아닌데. &amp;lsquo;내가 친 건 아닌데&amp;hellip;&amp;rsquo; 이게 바로 &amp;lsquo;믿음&amp;rsquo;이에요. 그래서 믿음은 그냥 &amp;lsquo;믿음&amp;rsquo;이 아니라 &amp;lsquo;행함이 아니고&amp;rsquo;를 반드시 거쳐야 돼요. &amp;lsquo;내 행함으로 구원받는 게 아니다&amp;rsquo;를 거쳐야 그다음에 &amp;lsquo;믿음&amp;rsquo;이 나와요. 나의 행함은 &amp;lsquo;불신&amp;rsquo;의 모습, 불신에 대한 고백이에요. &amp;lsquo;하나님이 좀 창을 열어서 내일 이맘쯤에 곡식 팍 내려주면 좋겠다.&amp;rsquo; 그걸 인간들이 미리 건의했습니까? 건의 안 했거든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입을 다물게 만드는 구절이 있어요. 그게 갈라디아서 5장 24절, &amp;ldquo;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amp;rdquo; 그러니까 인간이 &amp;lsquo;이것 달라, 저것 달라&amp;rsquo; 하는 이것은 뭐냐? 인간의 정, 감정과 욕심에서 나왔잖아요. 이걸 이미 십자가에 못 박아서, &amp;lsquo;죽은 욕심, 죽은 감정&amp;rsquo;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인간은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고맙다는 이야기, 고맙다는 말 외에 할 말이 없죠. 할 말이 없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오늘 장례식장에 갔는데요. 그 돌아가시는 분이 그렇게 고래고래 고함을 지른다는 거예요. 그 호실에 있는 사람들 전부 다 돌아가실 때 몸이 아프니까 다들 고함을 지른다는 거예요. 고함을, 왜 고함을 칠까요? 아파서, 아파서 고함을 치죠. 그 이야기 듣고, 제가 요한복음 11장 41절이 생각났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 되었을 때 주님께서 사람들을 나사로 무덤에 딱 데려갔어요. 죽은 나사로 무덤에 사람들을 데려갔습니다. &amp;ldquo;돌문을 치워라.&amp;rdquo; 했습니다. 치우고 난 뒤에, &amp;ldquo;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amp;rdquo;(요 11:41). 이거 중요하죠. 하나님은 누구 말 듣습니까? 사람 말 듣습니까? &amp;lsquo;열쇠&amp;rsquo; 말만 들어요. 사람 말 안 듣습니다. 현실은 예수님의 고통, 십자가 고통 중심입니다. 우리 말 안 듣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amp;ldquo;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amp;rdquo;(요 41:42). 믿는다는 것, 치는 사람도 없는데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거죠. 그리고 난 뒤에, &amp;ldquo;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amp;rdquo;(요 41:43).&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amp;ldquo;나사로야, 나오너라.&amp;rdquo; 큰 소리로 이야기해요. 큰 소리로! 이 세상에 큰소리치실 분은 십자가에 죽어서 우리에게 이렇게 영생을 주신 분 외에, 아무도 우리에게 큰소리칠 사람 없습니다. 이재명 대통령 큰소리칠 자격 없어요. 아무도 큰소리칠 수가 없습니다. 목사가 교인 보고 큰소리칠 자격이 없어요. 우리는 개 같은 존재입니다. 하루하루 양식 안 줘도 되는데 그냥 은혜로 주신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부스러기 주시고 그게 은혜인데, 부스러기인데 긍휼의 부스러기, 사랑의 부스러기를 우리가 얻어먹을 때 이 대립된 현실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거예요. &amp;lsquo;아, 내가 사는 것이 이게 당연한 게 아니구나. 정말 하나님께서 창을 냈구나.&amp;rsquo; 창을 냈어요. 그리고 오늘 본문에 보면 창을 내시고, 뭘 얼마나 준다는 겁니까?&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열왕기하 오늘 본문 7장에 보면, 창을 여시고 &amp;ldquo;고운 가루 한 스아&amp;rdquo;, &amp;lsquo;한 스아&amp;rsquo;라 하는 것은 리터로 약 7.3리터쯤 되고요. 무게로는 약 4kg 정도 됩니다. 은 한 세겔, 한 세겔은 &amp;lsquo;은 10g&amp;rsquo; 정도로 돼 있는데 은 1g이 11,100원 정도, 그러니까 은 한 세겔은 110,000원 정도입니다. 별로 뭐 헐하지도 않아요. 그런데 곡식이 없는 입장에서는 대단한 양이죠. 그리고 보리 두 스아, 두 스아니까 약 14리터에 은 한 세겔, 우리 돈으로 110,000원 정도인데 이걸 주신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우리는 믿음이 좋아서 그런지 &amp;lsquo;믿습니다&amp;rsquo; 하지만, &amp;lsquo;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믿습니다&amp;rsquo; 하지만, 그렇게 성급하게 나서지 마시고요, 성경에서 장관의 의견을 왜 거론했겠습니까? 우리가 장관 자리부터 출발을 하자는 거예요, 장관 자리부터. 자신의 행복 추구, 자기의 직장의 권위, &amp;lsquo;모든 것은 내 의미가 있어야 나는 산다&amp;rsquo;라는 그것 자체가 주님의 은혜에서 잘린 자가 되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그래서 오늘 본문 마지막에 이렇게 했어요. &amp;ldquo;그 때에 한 장관 곧 왕이 그 손에 의지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엘리사가 가로되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amp;rdquo;(왕하 7:2).&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인간이 개가 돼야 하는데 개가 안 되고 &amp;lsquo;자기가 인간이다&amp;rsquo; 우기고 있으니, 하나님이 개한테 거저 주시는 그 &amp;lsquo;믿음의 선물&amp;rsquo;을 이 장관이 맛볼 수가 없죠. 오늘 이야기가 이걸로 본문이 끝나거든요. 끝내면서 우리는 생각해 봅시다. 그렇다면 장관 말이 이것은 진짜 터무니없는 데, 우리는 장관 말에 동의하고 싶은데, 그러면 24시간 내에 어떻게 그 많은 곡식과 돈을 얻을 수 있느냐? To be continued, 그거는 다음 시간에&amp;hellip;.&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기도합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하나님 아버지, 신앙도 없으면서 있는 척하는 우리들. 사실은 우리의 소원 성취를 위해서 하나님 믿는다는 우리의 속셈이 이 현실 자체로 인하여 마구마구 들쑤셔지고 들키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십자가가 보일 때 이미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영생을 거저 다 얻었다는 그 기쁨으로 살아가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구약 설교, 강의(이근호)/열왕기하</category>
      <author>정인순</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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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8 May 2026 07:53:2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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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9강 / 아브라함 자손 / 260525</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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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a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href=&quot;http://media.woorich.net/%EC%8B%A0%ED%95%99%EA%B0%95%EC%9D%98/%EB%8C%80%EC%A0%8426/%EC%95%84%EB%B8%8C%EB%9D%BC%ED%95%A8%EC%9E%90%EC%86%90260525.mp3&quot;&gt;음성2&lt;/a&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녹취:이하림&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대전-복음이냐 교회냐(9강) 창15:5(아브라함 자손)20260525b(강의: 이근호 목사)&lt;/span&gt;&lt;br /&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복음이냐 교회냐』 93페이지 하겠습니다. 위에서 7번째 줄, [&amp;hellip;이삭을 죽임으로써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고, 아브라함의 &amp;lsquo;믿음&amp;rsquo;의 자손이 되는 겁니다. (롬4:16)]&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여기서 &amp;lsquo;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고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손이 된다.&amp;rsquo;는 말은 아브라함 자손은 따로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브라함 자손은 갈라디아서 3장에 보면 나와요. 거기 보면 여럿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amp;lsquo;오직 한 분&amp;rsquo;이라 했어요. 3장 16절, &amp;ldquo;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amp;rdquo; 이렇게 되어 있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게 우리의 상식으로 보면 어렵죠. 아브라함 자손들이 복을 받는다고 했는데, 다수를 말하는 게 아니고 굳이 &amp;lsquo;아브라함 자손&amp;rsquo;이라고 하나를 딱 집어야 될 이유가 있을 게 아니겠습니까. 여러 명이 아니고 &amp;lsquo;다른 사람은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amp;rsquo;라는 말을 해야 될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그걸 빼먹어버리면 믿음에 대해서 지금 오해하고 있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창세기 15장에 보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약속을 줍니다. 15장 5절에 &amp;ldquo;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amp;hellip;&amp;rdquo; 아브람을 이끌고 밖에 나갑니다. 밖에 나가는데 그때가 낮일까요, 밤일까요? 밤입니다. &amp;ldquo;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amp;rdquo; 땅을 보는 게 아니고 밤하늘의 별을 봤어요. 하늘을 보니까 거기에 뭐가 있습니까? 별이 있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밤중에 아브라함이 땅 위에 서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고개를 쳐들고 위를 봐요. 아브라함이 위를 본 거예요. 땅이 아니고 하늘을 보죠. 하늘을 보니까 하늘에 뭐가 있어요? 별이 있죠, 별. 별이 있으니까 아브라함의 자손이 있어요, 없어요? 있죠. 많아요, 적어요? 무수한 별처럼 아브라함의 자손이 많다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면 여기서 아브라함의 자손은 이미 박혀 있어요. 어두운 하늘의 별로서 박혀 있단 말이죠. 이미 있어요. 그런데 시선을 지상으로 돌리면 아브람의 자손은, 없어요. 왜? 아기를 못 낳으니까 없다 이 말이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믿음이 뭡니까? 하나님은 있다고 이야기하고, 아브라함의 눈으로 볼 때는, 아브라함이 알고 있는 과거 경험이나 인생 경험으로 볼 때 있습니까, 없습니까? &amp;lsquo;없다&amp;rsquo;죠. 그러니까 믿음이라는 것은 인간에게는, 없어요. 인간에게는 없는데, 믿음이 없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오게 되면 새삼스럽게 별이 생기는 게 아니고, 전에부터 하늘의 별이 박혀있었던 것처럼 전에부터 하나님의 자손은 &amp;lsquo;있었다&amp;rsquo;가 돼요. 있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amp;lsquo;있을 것이다&amp;rsquo;가 아니고 &amp;lsquo;있었다&amp;rsquo;가 돼요. &amp;lsquo;있을 것이다&amp;rsquo;라는 것은 과거, 현재, 미래를 따지는 이 지상에서 통하는 시간 개념이고요. 그렇게 되면 믿음이라는 것은 &amp;lsquo;앞으로 잘할게요&amp;rsquo;가 아니라, 과거부터, 내가 뭐를 잘하기 전부터 이미 나는 어떤 존재고 나의 팔자와 운명은 애초부터 결정되었다가 받아들여지고 이해되는 거예요. 그게 바로 &amp;lsquo;믿음&amp;rsquo;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따라서 내가 뭘 해서 새로운 성과를 이룰 필요가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참 어리석은 거예요. 인간은 계획세울 자격과 권한이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계획을 세운다는 말은 무엇을 믿는다는 것인가? 자기의 행함과 거기에 대한 노동과 내가 정했던 목표가 성취될 것을 내가 믿는 거죠. 그래서 인간의 믿음은 자기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이것은 가짜 믿음이 되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인간에게 나오는 것은 가짜 믿음이라는 것을 미리 또 하나님이 아셨어요. 그래서 아브라함에게는 자손이 없습니다. 자식 갖고 싶더라도 자식이 없어요. 그래서 아브라함은 어떤 아브라함이냐? &amp;lsquo;자식 없는 아비&amp;rsquo;가 돼요. 자식 없는 아비. 그런데 아비 자체가 성립 안돼요. 자식이 없는데 성립이 안 되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아브라함은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니까 자기 믿음밖에 없는, 엉터리 믿음밖에 없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주게 되면 인간은 철저하게 자기 행함이 거부당하는 채로 100% 오롯이 주님의 믿음, 내 믿음 말고, 내가 하나님 믿는 믿음 말고 하나님이 주신 믿음으로 많은 하늘의 별들이 이미 있었다,가 드러나겠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면 이 별들이 존재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믿음 없는 아브라함을 철저하게 이용했다고 보는 거예요. 활용했다고 보면 됩니다. 오늘날 우리와 똑같은 거예요. 눈 떠서 (하나님이 주신) 믿음으로 보니까 내가 뭘 하나 안하나 관계없이 우리의 운명과 팔자는 이미 끝났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점쟁이 찾아가고 굿할 필요 없습니다. 사주 같은 거 볼 이유가 없어요. 그런 것은 뭔가 노리겠다 이 말 아닙니까. 팔자 한번 고쳐볼까, 이런 거란 말이죠. 아들이 여자 사귀니까 아들 엄마가 &amp;ldquo;잠깐 기다려 봐라. 내가 누구한테 말 한번 들어볼게.&amp;rdquo;하고 점집 가서 궁합 맞는지 보는 거. 그거 안 맞으면 어떻게 할 건데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따라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일을 벌일 때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끽소리 못하게 만드는 그러한 상황부터 시작이 됩니다. &amp;ldquo;별 봐라. 이미 있잖아. 너는 자식 없지? 그러나 이미 있어. &amp;lsquo;없음&amp;rsquo;과 &amp;lsquo;있음&amp;rsquo;의 차이에 내가 개입할 거야. 내 약속이 개입할 거야.&amp;rdquo; 그게 아브라함이에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갈라디아서 3장 다시 보겠습니다. 이것은 몇 번을 해도 참 어려워요. 갈라디아서 3장 9절, &amp;ldquo;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amp;rdquo; 이 대목 딱 보면 확 땡기죠. &amp;lsquo;와, 나도 믿어서 복 받겠다. 나는 행함으로 아니고 믿음으로 복 받겠다.&amp;rs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 다음에 6절을 보게 되면 &amp;ldquo;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amp;rdquo; &amp;lsquo;그래, 나 믿어야지.&amp;rsquo; 이렇게 확 땡긴단 말이죠. 땡기는데, 그러나 아까 이야기한 3장 16절, &amp;lsquo;이것은 여럿을 말한 게 아니고&amp;rsquo;라 했죠. 그럼 아브라함과 예수님 올 때까지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후손들이 생겼겠습니까. 그 여럿이 &amp;lsquo;여럿이 아니오&amp;rsquo;가 되려면 그 여럿을 제키는 것, 그들의 믿음을 다 믿음이 아니라고 제켜버리는 그런 작업을 바로 3장 10절에서 율법이 합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amp;ldquo;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amp;rdquo; 이미 저주 아래 있다고 되어 있어요. 저주의 반대말이 뭐죠? 복이죠, 복. 그런데 아까 갈라디아서 3장에서 아브라함이 믿으매 의가 되고 복을 받는다니까 우리도 복 받으려고 설쳤는데 중간에 율법이 끼어드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아브라함 이후에 사백삼십 년 후에&amp;hellip; 사백삼십 년이라는 것은 갈라디아서 3장 17절에 나와요. &amp;ldquo;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amp;rdquo; 이렇게 되어 있으니까.&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미리 정한 것을 다수가 받기 전에 먼저 누구를 경유하는가? 한 분을 경유해서 새로운 다수가 받지요. 내가 다수라 기대하는 다수가 아니고, 내가 기대한 내가 아니라 내가 아는 나 말고, 예수님을 경유한, 내가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나의 이미지, 나의 자아가 바로 율법을 경유하면서 나온다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면 율법 안에서 저주받는 자는 누구입니까? 나잖아요. 나죠. 그러면 그 저주를 통과해서 아브라함처럼 복을 받고 천국 가는 나는 누구입니까? 그것은 어디에서 온 믿음입니까? 바로 다수, 곧 나의 믿음은 율법에 의해서 전부 다 배제당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그 하나의 믿음을 분산되게 할당받은 자들이 오직 누구든지 동일한 믿음으로 동일한 나라, 천국에 가는 거예요. 복을 받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니까 구원받은 사람의 특징은 뭐냐 하면 두 번 다시 자기를 쳐다보지 않죠. 자기의 행위나 자기의 행동이 발랐느냐, 안 발랐느냐 그걸 안 봐요. 왜냐하면 그것은 율법에 의해서 다 걸러내야 되니까.&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3장 18절에, &amp;ldquo;만일 그 유업-천국,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천국입니다-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라&amp;rdquo;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주신 약속 덩어리가 뭐냐? 이삭이에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면 아브라함은 이삭을 받고 누구하고 누구를 바꿔치기해야 돼요? 아브라함 자기 계열과 누구 계열을 바꿔야 돼요? 이삭 계열과 바꿔야 돼요. 왜냐하면 이삭 계열은 죽었다가 수풀 옆에 어린 양 때문에 살아난 것이고, 아브라함은 아브라함 육의 계열이 있잖아요.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데려가서 그것을 바꿔치기하는 작업을 하게 하셨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amp;ldquo;이삭을 바쳐라.&amp;rdquo; 이삭을 바치란 말은, 그것도 사랑하는 독자를 바치라는 말은, &amp;lsquo;아브라함 너는 천국 계열이 아니었다. 아니다.&amp;rsquo; 바통이 아브라함에서 이삭으로 바뀌어야 됩니다. 바뀌면 &amp;lsquo;아브라함이 있고 그다음에 이삭이 있다.&amp;rsquo; 시간상 그렇게 되죠.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에 의하면 &amp;lsquo;이삭을 위하여 아브라함이 시기적으로 약간 일찍 왔을 뿐이다.&amp;rsquo; 이렇게 돼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세례 요한이 먼저 태어났습니까, 예수님이 먼저 태어나셨습니까? 세례 요한 어머니 엘리사벳과 예수님 어머니 마리아가 서로 친족 관계고 출생에서 6개월 차이나요. 누가 봐도 세례 요한이 6개월 먼저 이 땅에 선배에요. 나중에 태어난 것은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세례 요한이 반대로 이야기해요. &amp;ldquo;그 분은 나보다 먼저 앞섰다.&amp;rdquo;(요 1:15)고 이야기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 고백을 오늘날 예수님의 믿음을 받은 우리도 똑같이 하면 돼요. &amp;ldquo;나보다 예수님이 먼저였었습니다.&amp;rdquo; 그게 바로 믿음 아닙니까. 그게 믿음이거든요. &amp;ldquo;호두과자 누가 구웠어요?&amp;rdquo; &amp;ldquo;나보다 먼저 계신 주께서 구웠습니다.&amp;rdquo; 이러면 되잖아요. &amp;ldquo;당신은 이제 늙어 죽습니다.&amp;rdquo; &amp;ldquo;아니요. 나보다 먼저 죽으신 분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본받기 위해서 우리가 뒤따라 죽습니다.&amp;rdquo; 이게 믿음이잖아요. 참 쉽죠? 참 쉬운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 여러 군데 나오는데요. 제자들이 다른 건 다 예수님을 믿는데, 예수님이 죽는다는 것은 죽을 때까지 못 믿었어요. &amp;ldquo;주님, 그럴 리는 없습니다.&amp;rdquo; 그 말이 입에 달렸어요. 그들은 예수님이 실제로 죽는다는 것을, 잡히고 죽을 때까지도 몰랐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심지어 유대인들도 예수님이 긴가 민가 했겠죠. 그래서 유대인들이 예수님 죽이는 것을 뭐로 실시했느냐 하면 진짜 그 사람 말대로 하나님인지, 그냥 허망하게 죽는 인간인지 시험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시험 삼아 죽여 봤어요. &amp;ldquo;진짜 천사가 와서 구하나 보자.&amp;rdquo; 뭐 이렇게 했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이 시험을 거는 시험 안에, 확인해보겠다는 그 확인 안에 인간이 꼼짝 못하고 갇혀 있다는 것을 십자가를 통해 발각시켰어요. 이걸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amp;lsquo;인간은 자기 믿음 안에 갇혀있다.&amp;rsquo; 인간은 자기 믿음 안에 갇혀있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것은 스데반 집사를 죽일 때 참여한 사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율법에 흠이 없다고. 그런데 사울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예수님은 우리 인간이 믿음에 갇혀있는 그것으로부터 탈출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내 믿음으로 포착될 분이 아닌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래서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는 먼저 내 믿음이 작살나야 됩니다. 내 믿음이. &amp;lsquo;나는 예수를 믿습니다.&amp;rsquo;라는 이것이 바로 마귀 짓인 것을 인정해야 돼요. 우리는 믿음 없이 한 순간도 살아본 적 없기 때문에. 저는 이것을 오늘 본문에서 &amp;lsquo;폭파&amp;rsquo;라는 말로 하겠습니다. 폭탄가지고 폭파시킨다, 폭발시킨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자, 예를 들면 지금 이 책상 위에 만년필이 몇 개 있습니까? 만년필이 몇 개 있어요? (없습니다.) 없지요? &amp;lsquo;없다&amp;rsquo;는 것을 사람들은 &amp;lsquo;0&amp;rsquo;이라고 해요. 사람들은 &amp;lsquo;없다&amp;rsquo;를 &amp;lsquo;0&amp;rsquo;이라 했습니다. 왜 0이라는 숫자를 붙였느냐 하면 &amp;lsquo;없음&amp;rsquo;을 살려내기 위해서. 없음까지 아울러서 내가 이 세상의 모든 현상과 움직임을 내 믿음 안에 다 포함시키기 위해서 0을 만들었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1,2,3,4,5,6,7,8,9, 그 다음에 뭐냐 하면 &amp;lsquo;0&amp;rsquo;이에요. 처음 찾아온 0이라서 &amp;lsquo;1&amp;rsquo;자를 붙여요. 그러면 &amp;lsquo;10&amp;rsquo;이 되는 거예요. 그 다음부터는 11,12,13,&amp;hellip; 이렇게 하면 돼요. 그 다음에는 100. 얼마나 편리해요. &amp;lsquo;편리하다&amp;rsquo;는 말은 세상의 어떤 현상도 숫자화 시켜서 무한까지 전부 다 내 믿음 안에 집어넣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죠, 인간에게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이걸 생각해봅시다. 6&amp;divide;0은 얼마죠? 6&amp;divide;0=x. 0을 옮기면 x&amp;times;0=6, x가 어떤 숫자가 되면 0을 곱했을 때 6이 될까요? 똑같은 수식이에요. 6&amp;divide;0=x, 이 말은 x&amp;times;0=6이 된다 이 뜻이거든요. 어떤 숫자에 0을 곱하면 6이 나올까요? 어때요? 그런 숫자가 없어요. 수학에서 &amp;lsquo;이것은 정의되지 않는다.&amp;rsquo; 이렇게 했어요. 수학이 항복을 선언했습니다. 모든 현상을 수식으로 다 설명하는 것은 이게 안 되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래서 여기 나오는 &amp;lsquo;0&amp;rsquo;은 인간의 모든 숫자를 &amp;lsquo;폭파&amp;rsquo;시키는 겁니다. x-3=0이라 할 때, 이것은 폭파가 아니에요. 이때 &amp;lsquo;0&amp;rsquo;은 &amp;lsquo;없다&amp;rsquo;입니다. &amp;lsquo;어떤 숫자에서 3을 빼면 없어집니까?&amp;rsquo; 이것을 수식으로 할 때, x-3=0이에요. 정답은 0+3=x가 되니까 x=3이 되죠. 3에서 3을 빼면 &amp;lsquo;없다&amp;rsquo;가 돼요. 토마토 한 개 있는데 먹으면 있어요, 없어요? &amp;lsquo;없다&amp;rsquo;가 되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amp;lsquo;없다&amp;rsquo;가 되면 앞에 토마토가 없어졌잖아요. 그래서 이 말도 마찬가지에요. &amp;lsquo;0&amp;rsquo;이라 하는 것은 앞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없애버리는 거예요, 없애버리는 것. 그게 &amp;lsquo;없음&amp;rsquo;이에요. 하나님께서는, 인간세계 속에 숫자로 &amp;lsquo;0&amp;rsquo;으로 표현된 그 &amp;lsquo;없음&amp;rsquo;을 지목하고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모든 있는 것들은 다 사라지도록 만들었어요. 0이 되게 만들었어요. 없음이에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것에 대해 제가 약간 언급한 것이 어제 낮 설교였습니다. 낮 설교 앞부분 잠깐 해볼까요? 아담이 만들어졌죠. 아담이 만들어졌으니까 살아있어요, 죽어있어요? 살아있죠. 살아있는 자는 살아있으면 끝이잖아요. 그런데 왜 &amp;ldquo;선악과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amp;rdquo;는 말을 해서 살아있는 사람 기죽게 만들었냐는 말이에요, 왜? 살아있으면 살아있는 걸로 종결시켜야죠. 계속 살 것 같으면 죽음 이야기가 뒤따라오면서 말씀을 할 필요가 없잖아요. 없다고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하나님의 뜻은 인간이 살아있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 아니고, &amp;lsquo;이것을 따먹는 날에는 죽는다.&amp;rsquo;는 말씀이 살아있는 것이 창조의 뜻입니다. 말씀이 살아있는 것. 말씀이 나중에 육신이 됐잖아요. 주님 아닙니까. 예수님이 영원한 것이 주의 뜻이에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려면 아담이 살아있는 것이 방해가 될까요, 아니면 도움이 될까요? 생명나무를 안 따먹었잖아요. 생명나무를 안 따먹은 상태에서 인간은 자꾸 살아있다고 우긴다고요. 영원한 생명은 아담이 아니고 생명나무 자체가 영원한 생명이거든요. 왜? 나무의 이름이 &amp;lsquo;생명&amp;rsquo;이니까요. 그걸 위해서 방해되는 누구를 제거해야 되죠? 임시적으로 살아있는 인간을 제거하잖아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면 우리가 늙어죽는 것은 주의 선한 뜻입니까, 선한 뜻 아닙니까? 선한 뜻이죠. 우리가 죽어줘야 말씀이 사니까. 그러니까 죽는 걸 그렇게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amp;ldquo;달리다굼&amp;rdquo;이 뭐에요? &amp;ldquo;소녀야 일어나라&amp;rdquo; 소녀는 왜 일어나야 돼요? 말씀대로 &amp;lsquo;정녕 죽으리라&amp;rsquo;를 품은 채 일어났기 때문에 &amp;lsquo;달리다굼&amp;rsquo;, 살았잖아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예수님도 죽었다가 사흘 만에 살아나죠. 누구도 예수님을 따라올 수 없게 하기 위해서 삼일 간의 텀을 줘요. gap을. 3일 간에 gap을 줘버리죠. 그 gap이 &amp;lsquo;시간의 막(幕)&amp;rsquo;이 되는 겁니다. 시간의 막이 되면 막을 통해서 새롭게 안과 밖이 성립됩니다. 고린도전서 16장 22절 말씀처럼 &amp;ldquo;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예수님이 &amp;lsquo;있다&amp;rsquo;, &amp;lsquo;없다&amp;rsquo;의 새로운 기준으로 등장해요. 내가 있으니까 &amp;lsquo;있다&amp;rsquo;가 아니라, 네가 있다고 &amp;lsquo;있다&amp;rsquo;가 될 수 없고, 주님의 사랑이 있을 경우에만 우리는 &amp;lsquo;있다&amp;rsquo;가 돼요. 하늘의 별처럼. 하늘의 별이 되어야 돼요. 땅에서 하늘의 별이 되게 되면 이것은 애초부터 창세 전부터 별이어야 했기 때문에 별이 되는 겁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하나님 약속의 승리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 약속의 승리, 인간의 능력에서 벗어나는 승리. 그래서 예수님이 죽는다는 것은 모든 인간이 마땅히 죽는다,를 보여주고 그리고 성도가 죽는다는 것도 하나님께서 귀하게 보시는 겁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 &amp;lsquo;없다&amp;rsquo;에 대해서 &amp;lsquo;없다&amp;rsquo;가 나오는 성경구절을 찾아보겠습니다. 시편 37편 10절, &amp;ldquo;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amp;rdquo; 어떤 인간도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어요. 그러면 어떤 인간도 죄인입니다. 그러면 죄인은, 악인은 어떻게 되어야 돼요? 이 땅에서 마땅히 없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예언대로 되는 거예요, 예언대로.&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amp;lsquo;우리&amp;rsquo;를 없애고 &amp;lsquo;우리&amp;rsquo;를 나타나게 하는 거예요. 자꾸 안 없어지려고 발악할 게 아니고, 우리가 없어짐으로써 없어지는 우리가 이미, &amp;lsquo;이미&amp;rsquo;입니다, 이미 하늘에 별이 되어서 영생을 얻은 우리와 꼬랑지가 연결되어 있는 거예요. 연결되어 있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내가 모르는 &amp;lsquo;나&amp;rsquo;와 지금의 알고 있는 &amp;lsquo;나&amp;rsquo;가 연결되어 있어요. 계열화 되어 있어요. 이 계열화 중간에 누가 들어갑니까? 멜기세덱 반차를 따르는 예수님이 들어가죠. &amp;ldquo;네가 오늘 밤에 낙원에 있으리라.&amp;rdquo; 연결되는데 이것은 내가 아는 &amp;lsquo;나&amp;rsquo;가 아니에요. 내가 아는 &amp;lsquo;나&amp;rsquo;가 아니고, 이것은 시간 속에 있는 내가 시간 이전에 벌써 확정된 나와 교체되기 위해서 중간에 예수님이 들어가신 것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래서 우리를 죽이는데, 그 죽음을 대신 죽으심으로 예수님이 끼어드는 거죠. &amp;ldquo;너 대신 내가 죽었다.&amp;rdquo; 그게 논리 따지지 말고, 확실히 따지지 말고 &amp;ldquo;예수님이 십자가에 나 대신 죽었지.&amp;rdquo; 이게 순하게, 마치 빨려 들어오듯이 확 밀려 들어오면 그게 바로 내 믿음이 아니고 쳐들어온 믿음이고 오늘밤에 죽더라도 네가 오늘밤에 주님과 함께 있는 거예요, 그 믿음이.&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걸 옆에서 &amp;ldquo;네가 어떻게 해서 그 믿음을 가졌느냐? 복도 많지.&amp;rdquo; 이렇게 하고 &amp;ldquo;어느 기도원에서 응답 받았어? 말씀을 몇 독해서 그렇게 되었냐?&amp;rdquo;&amp;hellip; 이거는 미리 예측한 게 아니고 일방적으로 찾아온 거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여러분들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세요. 시장에 갔을 때나 극장같이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그런 장소에서 여러분들이 네 살쯤 됐다 치고. 여러분들 누구 따라갑니까? 풍경 볼 시간 없어요. 엄마, 아빠만 죽자고 따라가잖아요. 우리는 엄마, 아빠 뒤만 따라간단 말이죠. 그럼 어른의 특징은 뭐냐? 자기가 헤쳐 나가야 되는데, 어린아이의 특징은 앞에 누굴 보고 따라가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내가 선두에 설 거냐, 아니면 복음, 다른 말로 하면 성령님이 선두에 설 거냐? 그러면 여기서 믿음이라 하는 것은 뭡니까? 앞에서는 성령님과 말씀과 복음이 있어 나와 연관되어 있고 그 뒤에서 쳐다보며 따라가는 것, 이게 바로 믿음이고요. 내가 선두에 서는 것은 뭡니까? 이건 믿음이 아니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래서 인간이 계획하는 것은 다 헛방이라는 겁니다. 내가 나서서 이렇게 하면 될 거다, 하는 거. 삼성 팔아야 돼, 일주일 뒤에 환매해야 돼, 이런 거 있잖아요.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주식이 오르고 돈을 벌겠습니까, 돈을 꼴아 박겠습니까? 돈을 벌죠. 왜? 믿음이 없으니까. 야, 이거 되네? 그럼 다른 거 또 하겠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럼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누가 헤엄쳐 나갑니까? 본인이 헤엄쳐나가는 거예요. 어린아이같이 되지 않으면 아무도 천국에 못가요. 그런데 본인이 어른이라. 본인이 헤쳐 나가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래서 제자들도 마찬가지에요. &amp;lsquo;하늘나라에서 누가 높겠습니까?&amp;rsquo; 한 이유가 예수님이 자기하고 반대쪽으로 죽는다는 사실을 제자들은 죽을 때까지 몰랐어요. 베드로도 세 번씩 배신했잖아요. 몰랐습니다. 자기 인생은 내가 나서지 않으면 아무도 해결해주지 않기 때문에. 나서고 안 나서고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앞에 누구 꽁무니가 보이는 그쪽이 본인에게 없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어린아이처럼 따라가야 된다고요. 따라 가보면 주님께서 어떤 현상을 일으키는가? 복음을 주고 성령을 줄 사람과 안 줄 사람을 귀신같이 알아서 미꾸라지가 수초를 헤치고 가듯이 날렵한 지느러미로 물고기가 해초 사이로 숨어 가듯이 사람들이 &amp;lsquo;믿습니다&amp;rsquo;해도 다 피해버려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어제 오후 설교에서 했잖아요. 팔 내민다고 손잡지 마란 말이죠. 여기! 여기! 손 내민다고 가지 마라. 왜? 그들은 개돼지거든요. 복음을 줘봐야 개돼지처럼 활용하는 사람들이에요. 자기 복 받기 위해서 사용하는 사람들이에요. 귀한 것을 개돼지에게 주지 마라. 설마 말씀을 진짜 자기가 키우는 개돼지한테 줄 사람은 없을 것 아닙니까. 인간으로 생겼기 때문에 줬는데 나중에 보니 개돼지라.&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자기 개에게 자기 주식투자나 자기 인생에 보탬 될까봐 예수 믿는 사람들. 그냥 교회죠, 그냥 교회. 그냥 딱 교회죠. 그런데 주님께서 귀신같이! &amp;ldquo;안줘. 안줘. 너한테는 안줘.&amp;rdquo; 해서 꼭 줄 사람에게만 찾아갑니다. 줄 사람에게만 찾아가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어제 낮 설교에서 제가 예를 들었는데 &amp;lsquo;제자 국제 크리스천 학교&amp;rsquo;라는 것, 대구 경산에. 가까운 데에 그런 학교가 있는 줄 몰랐죠. &amp;lsquo;부모를 떠나 자식을 우리한테 보내서 중학교 때부터 기숙사 생활하게 되면 우리는 반드시 좋은 대학에 넣어드리겠습니다. 그것도 유수한 외국대학에. 출세 길이 훤히 폅니다.&amp;rsquo; 이렇게 하는데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설교 시간에 시간이 좀 있었다면 제가 여러분들보고 반박해보라 했을 거예요. 자식을 가진 부모 중 어느 부모가 거기에 대해 탐을 안 내겠습니까? &amp;lsquo;야, 저런 데가 있구나.&amp;rsquo; 왜 부모가 그걸 탐내냐 하면 본인은 믿음이 없어서 애를 그렇게 신앙적으로 키울 자신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부모가 통박을 굴립니다. &amp;lsquo;나는 믿음생활 안 해도 좋으니까 자식만큼은 제대로 믿음생활해서 이 부모한테 자랑스러운 자식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면 내가 아낌없이 국제학교 비싼 공납금도 댈 용의가 있다.&amp;rsquo; 그래서 자식을 보내거든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그 학교가 조건이 있어요. 아빠, 엄마 양부모가 다 거듭나야 돼요. 이단 말고 기존 교회에서 세례교인으로서 거듭나야 된다는 거예요. 거듭나지 않은 자식은 우리 학교에 못 보냅니다. 거듭난다는 기준은 뭐겠어요? 본인 교장 선생님과 남편 되는 목사님이 갖고 있는 신앙과 일치될 때 거듭난다고 보는 거예요. 기존 교회 안 다니는 사람 끝났어, 끝났어. 아이비리그 끝났어, 이제.&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제가 그랬거든요. 그걸 반박하면서, 엄마 나는 망하는데 자식은 믿음생활 잘 하고 복 받기를 원한다? 이거 욕심 아닙니까? 그거 욕심이죠. 그게 탐욕이잖아요. 이게 엄마가 갖고 있는 하나의 계획이고 엄마의 믿음이잖아요, 엄마의 믿음. 이렇게 이렇게 하게 되면 내 계획대로 이렇게 될 것이라는 엄마의 믿음이죠. 뭐 엄마의 희생정신입니까, 자기 신앙생활 잘 못하는 게?&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자식을 누가 신앙생활 시켜야 합니까? 엄마, 아빠가 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잘 되는 건 욕심나고, 엄마 아빠는 성경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신앙생활 잘할 자신도 없고, 또 자기가 말하면 권위가 없으니까. 잠잘 때 민수기가지고 축복하자고 &amp;ldquo;얘, 민수기로 축복하자.&amp;rdquo;하면 아이는 &amp;ldquo;하세요.&amp;rdquo;하고 자기는 게임하고 있어요. 엄마를 너무 잘 알잖아요. 자기 과거에 자식을 오냐오냐 그렇게 키웠기 때문에 권위가 없으니까 돈 들여서라도 경산까지 보내면서 그렇게 하는 것.&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래서 제가 이야기했습니다. 부모가 신앙이 없으면 부모를 신앙 없게 만드는 하나님의 그 사랑 안에서 자식을 키워야 돼요. 자식을 키워야 됩니다. 자기는 믿음 없어도 자식은 신앙 있게 하겠다는 그게 망한 거예요. 그게 자기 욕심에 망한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믿음은 그냥 주는 게 아니고, 아무리 망했다, 강도다, 살인강도다 할지라도 미꾸라지처럼 찾아와서 &amp;ldquo;너는 내 백성이야.&amp;rdquo;하고 딱 말씀과 믿음과 성령과 함께 주시는 그 성령의 활동, 그 활동에 의해서 그 사람은 구원받습니다. 빈틈이 없어요. 하나님은 차질 없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 나와요. 자기 택한 자를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살리는 거예요. 인간들의 조작이나 어떤 계획이나 프로그램, 거기에 하나님은 휘둘리지 않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럼 그 학교에서 다음과 같은 교육을 시키겠습니까? 요한복음 12장 25절, 어떤 자에게 생명이 주어진다고요?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어떻게 돼요?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생명을 잃어버리죠. 그러면 그 학교에서 이 식대로 한다면? &amp;ldquo;아이비리그 가고 싶어요. 가고 싶어요.&amp;rdquo;하면, &amp;ldquo;그런 인간을 네가 미워해야 돼!&amp;rdquo; 이렇게 가르치겠어요? &amp;ldquo;네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면 네가 원하는 좋은 대학 하나님께서 다 보내주실 것이다. 이게 약속된 축복이다.&amp;rdquo; 이렇게 나올 거란 말이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니 한번 생각해보세요. 모든 걸 아시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그 얕은 수를 간파 안하겠습니까? 다 간파하죠. 그래서 고맙게도 하나님께서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좌절시킵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amp;ldquo;어때? 기쁘지 아니하냐?&amp;rdquo; &amp;ldquo;기쁩니다.&amp;rdquo; 이게 바로 성도잖아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내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을 때, 내가 안 설쳐도 이미 모든 것은 확정되어 있고 정해졌다는 그 점을 다시 보게 만들어요. 그 점을 다시 보게 만든다고요.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모독하고 방해해왔는가를, 내 뜻대로 안 경우에만 다시 한번 새롭게 십자가의 그 사랑뿐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겁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주식해도 대박 나고 뭘 해도 잘되고 아이는 아이비리그 가면, 내가 결정하는 수법에 대해서 본인이 점점 의존하게 되죠. 그 방향은 바로 주님이 하신 일을 전부 시답잖게 여기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망했던 이유가 거기에 있어요. 좀 살만하니까 그렇게 되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번에는 시편 37편, 이번에는 36절을 보겠습니다. &amp;ldquo;사람이 지날 때에 저가 없어졌으니 내가 찾아도 발견치 못하였도다&amp;rdquo; 그건 아까 이야기했죠. 그 다음 보세요. &amp;ldquo;완전한 사람을 살피고 정직한 자를 볼찌어다 화평한 자의 결국은 평안이로다&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니까 순서가 어떻게 되느냐 하면, 악인은 어떻게 돼요? 무대에서 퇴장하고, 퇴장을 해줘야, 예수님이 죽어야 부활한 예수님이 나타날 것 아닙니까? 내가 죽어야 내가 나타나요! 예수님 돌아가시고 난 뒤에 제자들은 고기 잡으러 갔잖아요. 아직도 그들은 자기가 자긴 줄 알았어요. 자기가 주도권이에요. 누구를 따라갈 필요 없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그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오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냐고 할 때, 베드로가 고백하기를 사랑이 앞장서 있고 나는 그 사랑에 이끌린 새로운 관계에 들어갔음을 고백합니다. 항상 &amp;ldquo;너의 죄는 이미 다 용서했느니라.&amp;rdquo;하는 그 사랑이 어떤 시장통에 밀집된 군중 속이나 전쟁과 선거와 월드컵과 온갖 시사와 사건이 터지는 가운데서도 우리는 미꾸라지가 자기 길 찾는 것처럼 뭐만 발견하면 돼요? 십자가의 사랑만, 그 꽁무니를 따라가면 되는 거예요. 참 쉽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림대회에서 대상받아도 그런 것 보지 마시고, 사랑만 따라가세요! 사랑만. 사랑 없이는 난 못 살아. 사랑만. 이렇게 못난 나도 사랑했다는 그것만 따라가면 되는 거예요. 가끔은 한 눈 팔고 엉뚱한 일에 기웃거리고 다 하죠. 다 해도 주께서 또 기웃거리는 그 일을 좌절시키죠. 그게 바로 말씀을 통해서 계속 우러나게 하는 겁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시편 104편 보겠습니다. 시편 104편의 전체 내용이 뭐냐? 피조세계는 하나님이 관장하고 피조세계, 곧 지상에 있는 모든 것, 바다에 있는 생물들, 새와 고기 어느 것 하나 심지어 채소까지 주께서 친히 기르시는데 그 모든 것이 35절, &amp;ldquo;죄인을 땅에서 소멸하시며 악인을 다시 있지 못하게 하실찌로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할렐루야&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니까 주께서 이 땅에 일을 하시는 이유가 악인을 의인과 같이 못하도록 구분 짓기 위해서 일하시고 있는 겁니다. 사랑 받을 자와 결코 사랑받지 않아야 될 개돼지 같은 인간과 그것을 완전히 둘로 쪼개고 나누는 일을, 지금도 주님께서 쉬지 않고 모든 일을 다 하십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대전역 앞에 보면 성심당 빵집이 있잖아요. 빵집 있죠, 유명한 빵집. 빵집에서 줄을 서서 빵을 사더라도 불신자가 줄을 서서 빵 사는 태도와 신자가 빵 사는 태도를, 심지어 성심당까지 성령께서 찾아가서 그 마음을 움직인다니까요. 감사로. 항상 끝부분에 성도는 뭐가 나옵니까? 감사가 나와요. 고마움과 감사만 계속 됩니다. 어디서 빵을 사든 뭘 하든 간에 채소를 가꾸든 꽃을 가꾸든 간에 늘 그래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끝으로 성경 한 구절 더 설명하고 마치겠습니다. 마태복음 13장 44절. 성심당 빵 살 때 주께서 물으시는 것은 간단해요. &amp;ldquo;이거 네가 사고 싶으냐? 아니면 네가 이 빵 사고 싶은 마음을 내가 너한테 줬느냐?&amp;rdquo; 그걸 묻죠, 좀 길지만. 처음엔 내가 사고 싶다 하다가 빵 사고 난 뒤에는 &amp;lsquo;이렇게 맛있는 것을 주께서 주셨구나.&amp;rsquo; 이렇게 되죠. 그러면 되잖아요. 어디에도 사랑 없는 곳이 없다 이 말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자식이 말을 안 듣는다. 자식한테 아주 험한 소리를 했다. 그럼 주님이 그 현장에 찾아옵니다. &amp;ldquo;자식에게 험한 소리한 것은 내 뜻인가, 네 뜻인가?&amp;rdquo; &amp;ldquo;주께서 하게 하셨습니다.&amp;rdquo; &amp;ldquo;그래서 어떻게?&amp;rdquo; &amp;ldquo;고맙습니다.&amp;rdquo; 이러면 끝날 문제에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amp;lsquo;다시는 자식에게 그런 말 안 하겠습니다.&amp;rsquo; 이렇게 반성 같은 것 좀 하지 마세요. 모든 일이 주께서, 얼마나 내가 못난 자이며 내가 앞장서서 일한다는 것을 까발림으로써 주님이 그 현장에서, 그렇게 일어난 것조차도 주께서 일으킨 사랑의 사건인 것을 받아들이면 되잖아요. 참 쉽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 기쁨이 나옵니다, 마태복음 13장 44절. 이 대목이 상당히 어려운 대목이에요. &amp;ldquo;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amp;rdquo; 이렇게 되어 있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걸 흉내를 낼 수 없습니다. 흉내를. 도저히 이것은&amp;hellip; 인간이 속해있는 인간과 인간 세계에서, 남들과 교류하는 세계에서 혼자 히죽히죽 웃는다는 것이요. 히죽히죽 웃으면서 남한테 이걸 설명할 길이 없어요. &amp;lsquo;나는 밭에 보물이 있어서 웃는다.&amp;rsquo; 이렇게 설명하더라도 상대방은 히죽히죽 웃는 그 기쁨의 분량이 공유가 안 돼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왜냐하면, 이것은 좀 어려운 말인데 적어보겠어요, 어렵지만. &amp;lsquo;감추어진 것이 공개가 되어도 여전히 감추어졌다.&amp;rsquo; 이 이야기입니다. 내가 알던 복음을 남한테 설명한다고 그 사람이 공유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말을 잘 해서 믿어지는 게 아니에요. 그건 고린도전서 2장 4절에서 분명히 사도 바울이 이야기했어요. &amp;ldquo;내가 말한 것은 사람의 지혜로 말한 것이 아니고&amp;rdquo; 그 뒤에 나온 말이 뭐냐? &amp;ldquo;성령의 나타남으로 했다.&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amp;ldquo;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amp;rdquo;(고전 2:4-5)&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렇다면 그걸 역으로 보게 되면, 내가 어떤 농부인데 밭을 갈다가 뭔가 다른 느낌이 왔단 말이죠. 철커덕 금속 느낌이 왔어요. 뭐 이런 게 걸려서 내 농사를 망치나 해서 파보니까 거기 궤짝이 있고 궤짝 안에 보물이 들었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첫째, 예측이 안됐죠. 이건 불가능이에요. 이쯤 해서 뭐가 나올 건데, 이게 아니잖아요. 예측이 전혀 안되니까 예측이 누구를 짓밟느냐? 나의 자아의 선택과 결정과 행위를 이 예측이 나를 사정없이 짓밟아버려요. &amp;ldquo;너 쪼다 맞지? 네가 여기 보물 있는지 알았어, 몰랐어?&amp;rdquo; &amp;ldquo;몰랐습니다.&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니까 너는 그 자체로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아무것도 아님을, 새삼스럽게 보물이 나타남으로서 그게 확인되어지고 분명해진 거예요. &amp;lsquo;나의 예리한 촉으로&amp;hellip;&amp;rsquo; 촉 같은 소리하고 있네. 촉이 필요 없어요. 촉이 아무 소용없다니까요! 아무것도 아닌 자의 촉은 아무것도 아닌 촉이에요, 그거. 그거 의지하고 믿을 필요 없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동시에 더 나가야 돼요. 내가 이 보물을 발견했다,가 아니라 보물이 나를 기다린 거예요. &amp;ldquo;이제 와? 이제 땅을 팠어?&amp;rdquo; 주도권이 보물에게 가 있는 거예요. 그게 바로 하늘나라의 특성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포도원에 하루 일꾼을 삼았을 때 노동의 대가를 받을 거라고 해서 아침과 오후에 포도원을 갔잖아요. 그런데 진짜 포도원에 나를 취직시킨 것을 아는 사람은 마지막에 온, 퇴근 직전에 온 사람이 유일하게 알죠. &amp;ldquo;이것은 주께서 먼저 아셨습니다.&amp;rdquo;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 하셨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amp;ldquo;주께서 이걸 먼저 아셨습니다. 나는 그 앞에서 아무것도 아닙니다. 십자가 사건 앞에서 내가 태어났다는 사건, 내가 취직하고 결혼했다는 사건, 내가 몸이 아프다는 사건은 십자가 사건 앞에서 아무것도 아님을 드러내기 위해서 주께서 나한테 그러한 징조를 지금 발생시켰습니다.&amp;rdquo; 징조.&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기쁨이죠. 이게 성령의 기쁨인데, 성령의 기쁨만 있으면요, 자동적으로 그 옆에 온유와 화평과 자비와 양선과 그것은 덤으로 같이 생기는 거예요, 덤으로. 이것 지키고 이것도 지키고 온유 지키는 것이 아니고. 기쁨만 있으면 자동적으로, 공작새가 꼬리를 펼치는 것처럼, 오므렸다가 보물이 등장하니까 알아서 활짝 펴버리는 거예요. 만세! 기쁨이 오는 거예요, 기쁨이.&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이 보물의 특징은 어떻게 되느냐? 마태복음 13장에 가루 서말 나와요(33절). 가루 서말 속에 누룩은 밀가루가 소유합니까, 안 합니까? 소유되지 못하죠. 오히려 누룩이 밀가루를 점점 더 팽창시키죠. 하나님 나라가 오게 되면 하나님 나라가 알아서 나를, 기쁨이 유지되도록 형상을 만들어가요, 우리 인생을.&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내가 보물을 가졌다고 생각하지만, 보물이 나를 가져요. 나는 보물에게 소유권을 빼앗겼습니다. 사나 죽으나 내 것이 아니고 주의 것이 되는 거니까. 그래서 그 다음에 나온 말씀, &amp;ldquo;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amp;rdquo; 그 다음에 뭡니까? &amp;ldquo;그 밭을 샀느니라&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 밭을 샀다는 것은 소유됐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모든 소유를 다 팔았으니까 소유가 넘어간 거죠. 소유가 넘어갔어요. 내가 보물을 소유한 기쁨 같으면 이 보물을 잃을까봐 걱정이지만, 보물이 나를 소유했다면 그 보물이 있는 한 나는 계속해서 보물이 주는 그 때 그 기쁨을 소멸하지 않겠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게 바로 처음부터 이야기한 겁니다. &amp;ldquo;이미 확정된 보물이 하늘에 박혀있는데 저 별이 바로 너다. 그런데 네가 지금 땅 보며 살잖아. 내 언약으로 언약을 이루어서 네가 예전부터 있었던, 이미 있었던 구원받은 그 별이 되게 해줄게.&amp;rdquo;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기도하겠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하나님 아버지, 아&amp;hellip; 성경이 우리의 예상을 넘어서는, 성경 자체가 말씀 자체가 이제 보물로 다가오게 하옵소서. 성경을 보고 이해해서 기쁜 것이 아니고 말씀 자체가 이제는 기쁨이 되어서 말씀이 포함된 내용대로 우리가 움직여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것이 새로운 기쁨으로 등장케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복음이냐 교회냐(26대전,24광주)</category>
      <author>정인순</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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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5 May 2026 17:48:2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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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9강 / 권력관계 / 260525</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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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a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href=&quot;http://media.woorich.net/%EC%8B%A0%ED%95%99%EA%B0%95%EC%9D%98/%EB%8C%80%EC%A0%8426/%EA%B6%8C%EB%A0%A5%EA%B4%80%EA%B3%84260525.mp3&quot;&gt;음성1&lt;/a&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녹취:김혜근&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대전-신명기(39강) 신명기18:5(권력관계) 20260525a(강의: 이근호 목사)&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신명기 하겠습니다. 오늘은 18장입니다. 18장 1절 &amp;ldquo;레위 사람 제사장과 레위의 온 지파는...&amp;rdquo;이렇게 되어 있죠. 여기에 제사장이 나옵니다. 제사장이 나오는데 제사장 나오기 전에, 지금 여기가 18장이잖아요. 그런데 신명기 16장에 누가 나왔느냐 하면 재판장이 나왔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16장 18절 &amp;ldquo;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각 성에서 네 지파를 따라 재판장과 유사를 둘 것이요 그들은 공의로 백성을 재판할 것이니라.&amp;rdquo; 해서 재판장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인간이 모인 곳에서는 항상 서로 자기가 옳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제3자가 개입되어야 하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서로 자기가 옳다고 하니까 제3자가 재판을 해야 되는데, 재판할 때 뭐가 필요하냐 하면, 권위가 필요해요. &amp;lsquo;재판하는 너나 나나 똑같다.&amp;rsquo;고 해버리면 재판 하나마나예요. &amp;lsquo;나, 그 재판 거부한다.&amp;rsquo; 하면 끝나는 문제잖아요. 인간들끼리 관계를 맺는데 &amp;lsquo;내가 잘났다, 난 손해 안 보련다.&amp;rsquo; 이러면 관계성이 다 해체됩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래서 이 관계의 끈을 끊기 위해서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권위를 집어넣어요. 권위라는 말을 더 쉽게 이야기하면, 권력입니다. 권력을 집어넣어요. 위에서 주어진 권력의 거미망 속에 인간은 하나의 점으로, 연결되는 매듭으로, 매듭이 적당하네요, 매듭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집에 남매 아이들이 있다 합시다. 남매간에 싸운다 할 때, 그 조정을 누가 합니까? 아빠나 엄마 중에서 하죠. 그러면 아빠, 엄마가 &amp;lsquo;이것은 동생이 잘못했네, 누나가 옳다.&amp;rsquo; 할 때, 동생이 &amp;lsquo;나는 그 조정을 안 받아들이겠다.&amp;rsquo;라고 하면, 아빠, 엄마는 어떻게 합니까? &amp;ldquo;짐 싸서 집 나가!&amp;rdquo; 이러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면 집은 뭐예요? 보통 &amp;lsquo;집이 있다, 가옥이 있다.&amp;rsquo; 그래서 그 안에 네 사람이 살면 그게 가족입니까? 그거는 동거인이죠. 그것은 하숙집이고, 세 들어 사는 거죠. 그러면 가족이 뭐예요? 그냥 산다고 식구가 아닙니다. 가족이라 하는 것은 초월적인 권력이 들어가야 가족이 돼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amp;ldquo;아빠, 엄마 말 안 들으려면 집 나가!&amp;rdquo; 그러면 아이가 &amp;ldquo;싫어!&amp;rdquo; 이렇게 나오겠죠.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amp;lsquo;아빠, 엄마가 짜 놓은 권력망이 잘 통할 수 있는 매듭에 네가 있어라.&amp;rsquo; 이 말이죠. 배관공사 할 때, 관이 있잖아요. 관과 관이 교차하는 접점지점이 있잖아요. 거기에 식구 하나가 놓여있다고 보면 돼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니까 권력이라는 것은 제가 어느 강의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참 설명하기 힘들어요. 권력은 눈에 보이지를 않아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내가 이 권력에 복종할 것인지, 아니면 &amp;lsquo;나 몰라라.&amp;rsquo; 하고 팽개칠 것인지, 그것이 매순간 정해져야 되는 겁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혼자 사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혼자 사는데, 이웃집에서 층간소음을 일으켰다. 그 사람이 오지 않았으면 자기 혼자 살면 돼요. 혼자 산다는 말은 자기 고유의 권력망을 자기 나름대로의 자기 생활권을 본인이 만들어나가면 되거든요. 그런데 층간소음 때문에 결국 여기에 누가 동원되어야 되느냐? 경찰권이 동원되어야 돼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경찰권이란 것은 권력인데, 평소에 경찰 보고 싶어서 그리워한 거 아니잖아요. 사태가 일어나니까 경찰이 왔고, 경찰의 제일 위의 권력은 어디서 옵니까? 대통령에게서 오죠. 그런데 헌법은 뭐라고 거짓말 하느냐 하면, 모든 권력은 어디서 난다고 합니까? &amp;lsquo;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amp;rsquo;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예요. 이 세상에는 민주주의라는 게 성립이 안 됩니다. 개인은 보이지 않는 어떤 권력에 복종하고 예속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성경은 이 권력을 뭐라고 하느냐, 짐승의 권력, 그리고 어두움의 권세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에베소서 2장에 &amp;lsquo;너희가 그 때에는 어둠의 권세에 복종하였더니..(엡2:2)라고 나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거기서 뭐가 나와요? 새로운 권력이 너를 납치했다, 그 새로운 권력이 뭐냐 하면 바로 제사장입니다. 초월자. 제사장, 그리고 왕이 나와요. 신명기 17장 14절에서 왕이 나옵니다. 신명기 17장 14절에서 20절인데, 왕은 옆에 뭐를 두어야 되느냐 하면, 17장 18절 &amp;ldquo;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 보관한 이 율법서를 등사하여(18)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19)&amp;rdquo; 라고 되어 있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신명기에서는 왕 그리고 제사장 위의 권력이 어디서 나온다? 율법에서 나온다는 거예요. 율법은 말씀이고, 그 말씀이 인간들이 지어낸 게 아니고 어디서 등장했지요. 말씀이 어디서 나왔습니까? 신명기 4장에 보면, 시내산 불 속에서 나왔어요. 누구라도 들어가면 타 죽는 불속에서 나왔다고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타 죽는다는 것은 있는 것도 없어진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모세가 화산 속에 들어갔다가 40일 만에 내려오면서 그냥 내려온 게 아니고, 머릿속으로는 율법 외웠고, 양 손에는 돌판을 들고 내려왔잖아요. 그러면, 모세가 40일 동안 사라졌을 때, 그 때 모세는 어디에 있었습니까?&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성경에 보면 어디 있었어요?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아니죠. 사람들이 없는 곳에, 가지 못하는 곳에, 사람이 가면 반드시 죽는 곳에 모세가 튀어나온 거예요. 이게 말이 됩니까?&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여기서 한 문장을 적어보겠습니다. 이 문장은 우리가 계속해서 생각을 해야 돼요. 천국 가는 것은 어렵다? 아니지요, 아니지요. 북한 말로 &amp;lsquo;아니디요, 아니디요.&amp;rsquo; &amp;lt;천국 가는 것은 어려운 게 아니고, 천국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amp;gt; 왜? 죽으니까. 천국은 말씀 완성의 세계잖아요. 말씀이라는 것은 불 속에서 나왔잖아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니까 그 말씀의 세계에 간다는 것은 인간이 살아서는 못 가지요. 살아서는 못 간다는 그 말을 출애굽기, 레위기, 신명기에서 이렇게 표현해요. 살아서 못 간다는 말은, &amp;lsquo;더러워서 못 간다.&amp;rsquo;는 뜻입니다. 부정스러워서 못 간다. 더러운 것은 천사의 깨끗함에 합류가 안 돼요. 천사 파티에 더러운 게 끼면 안 넣어줍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벌써 두루 도는 천사가 커트시키죠. 더러워서 못 들어가요. 그러면 천국 백성이 되려면, 처음이고 끝이고 딱 하나만 해결하면 돼요. 더러운 죄가 죄 사함을 받으면 천국 갑니다. 그러면 천국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은 달리 이야기해서 인간이 스스로 행함으로 죄 사함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게 가능하면 천국 가지요. 이게 불가능한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내가 살아있는 공간에서 내가 말씀에 의해서 죽는 공간으로 옮겨지게 되면, 죄 사함의 권력이 작용하는 세계로 들어갈 수 있어요. 그게 바로 로마서 8장 1절의 &amp;lsquo;그리스도 예수 안&amp;rsquo;이라는 공간에서는 뭐가 없느니라? 결코, &amp;lsquo;결코&amp;rsquo;라는 말이 들어가요. &amp;ldquo;결코 정죄함이 없나니&amp;l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왜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했을까요? 인간의 관심사와 하나님의 관심사가 다르기 때문에 그래요. 인간의 관심사는 &amp;lsquo;예수 안에 있는 자는 복이 있을 것이다. 돈이 있을 것이다.&amp;rsquo; 이거잖아요. &amp;lsquo;주 안에 있으면 사업이 잘 될 것이다.&amp;rsquo; 이런 거요. 어제 낮에 &amp;lsquo;제자 국제 크리스천 학교&amp;rsquo;처럼. 그 학교가 다른 국제 학교보다는 좀 저렴하다고 자부하는 거예요. 어쨌든 사업은 돈이 있어야 일을 벌이니까.&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나 그 공간 말고, 그건 인간이 벌이는 공간이고, 주님 안의 공간은 인간이 해낼 수 없는 죄 사함, 죄를 씻는 것, 그게 있어요. 정죄함이 없어요. 그만큼 뭡니까? 더러웠다는 거예요. 더러움을 받아들여서 &amp;lsquo;정죄함이 없다.&amp;rsquo;를 거쳐서 예수 안에서, 그것이 바로 그 자체가 깨끗함이 되면서 천사가 사는 세계에 같이 합류할 수가 있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자, 그렇다면 두 사람 간에 재판이 있다, 이스라엘에서 재판이 있다고 한다면, 그 재판의 판결의 조항은 어디서 흘러나와야 돼요? 율법에서 흘러나와야 되죠. 이 말은 &amp;lsquo;이번 일에 내가 이익이냐 손해냐?&amp;rsquo; 이거는 일체 접어야 돼요. 율법이 나를 어떤 식으로 덮칠 것인가가 그 재판의 제일 중요한 포인트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앞집이랑 뒷집이 재판한다. 자기 땅이라 하더라. 뭐 이런 거. 어디서 많이 듣던 재판이죠. &amp;lsquo;측량 해 볼까?&amp;rsquo; 그런데 측량 자체가 골치 아파요. 돈도 들고 골치 아프단 말이죠. 만약 그 문제 가지고 재판장이나 또는 제사장도 재판해요. 제사장, 유사, 소소한 일은 유사, 유사는 공무원이에요. 그런 자들에게 재판을 할 때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재판할 때, 재판 결과가 어떻게 나오겠습니까?&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재판 결과는 간단해요. 이스라엘을 거쳐서 신약에 오게 되면 재판 결과는 이겁니다. &amp;lsquo;정죄함이 없나니&amp;rsquo;로 마감이 되죠. 이걸 사랑이라 하고, 긍휼이라 하는 겁니다. 긍휼, 사랑. 다시 말해서 &amp;ldquo;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amp;rdquo;라는 말씀이 덮쳐지는 것으로 판결문이 종결돼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하나의 예를 들겠습니다. 모세가 청년 때에 자기 백성이 압제당하는 것을 보고 굉장히 마음이 괴로웠지요. 그런데 그 히브리인들을 어떤 애굽 사람이 학대할 때, 정의에 가득 찬 청년 모세가 나와서 그 사람을 죽였잖아요. 그리고 자기 백성을 건졌단 말이죠. 이로써 자기는 정의를 구현했다고 생각했잖아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그 방법이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까? 아니었죠. 출애굽기 2장 11절에 &amp;ldquo;..어떤 애굽 사람이 어떤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좌우로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에 감추니라.&amp;rdquo; 하고 난 뒤에 감췄는데 이걸 까발린 자는 누굽니까? 애굽 사람입니까, 같은 동포입니까?&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같은 동포가 까발렸어요. 그리고 말합니다. &amp;lsquo;누구 마음대로 너를 우리의 법관으로 세웠느냐?&amp;rsquo; 이렇게 나옵니다. 뭐가 없어요? 권위라는 게 없지요. 이거는 모세의 개인적인 권위는 이스라엘에게 전혀 통할 수 없다는 거. 그래서 모세는 삐져 가지고 도망치고, 삐지기도 삐졌지만 이제 애굽 사람을 죽였으니까, 자기가 잡히면 죽으니까 도망을 쳤고, 그 모세에게 주께서 찾아왔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찾아왔는데 지금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그 정도가 아니라 출애굽기 4장에 나오는 4장 27절과 31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4장 27절 &amp;ldquo;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이르시되 광야에 가서 모세를 맞으라 하시매 그가 가서 하나님의 산에서 모세를 만나 그에게 입맞추니&amp;rdquo; 그 앞에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 하다가 부인되는 십보라가 얼른 할례를 행해 가지고 죽은 데서 살아났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 이야기 다음에 하나님께서 누굴 찾아갔다 했어요? 모세입니까? 아론입니까? 아론에게 찾아갔지요. 그러면 모세와 아론 두 형제의 권위는 어디서 왔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왔지요. 따라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갈 때, 율법에 의한 제사장은 누구 담당이냐 하면 모세 담당이 아니고, 아론 담당이에요. 하나님께서 아론에게 권위를 줬으니까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래서 제사장은 출애굽기 40장에 보면 이렇게 돼 있습니다. 우리가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그 복잡한 것에서 제가 권력망을 지금 이렇게 정돈해 드리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40장 12절에 보면, &amp;ldquo;너는 또 아론과 그 아들들을 회막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12) 아론에게 거룩한 옷을 입히고...(13)&amp;rdquo; 이렇게 돼 있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니까 모세가 제사장입니까, 아닙니까? 아니에요. 그러면 누가 제사장이냐? 아론이 제사장이에요. 그럼 여기서 사람들이 뭘 또 따지길 좋아하냐 하면, 제사장이 높아요, 선지자가 높아요? 왕이 높아요? 이렇게 따진다고요. 그런데 왕과 제사장, 선지자, 공통적으로 다 기름 부은 자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성경에서 기름이라 하는 것은 이 세상 말고 우월한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지상의 기름을 바름으로써 표식을 하는 거예요. 거룩한 기름을 바름으로써. 그러니까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서 전체를 한꺼번에 인식하려면 이렇게 겹겹이 쌓인 샌드위치처럼 위쪽과 아래쪽으로 일단은 나눕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래야 복잡한 것이 정리가 돼요. 위와 아래를 나누고, 그 위에서부터 뭐냐? 거룩한 권력이 와요. 그 권력이 말씀의 권력입니다. 말씀을 모세가 독점했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말씀이 인간의 기능과 직능별로 분산되어 있다고 보면 돼요. 한쪽은 왕, 한쪽은 제사장, 한쪽은 선지자로.&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면 모세는 셋 중에 어디에 속합니까? 선지자에 속하지요. &amp;lsquo;나중에 모세 같은 선지자가 나타난다.&amp;rsquo;(신34:10) 이렇게 돼 있으니까 선지자에 속한단 말이죠. 삼인 과두정치를 하고 있는 거예요. 세 명의 기름부음 밑에 또 뭐가 있겠습니까? 제일 위가 말씀의 층, 말씀과 인간의 기능과 결합된 층(레벨), 그 밑에는 뭐냐? 일반 백성. 일반 백성은 농사짓는 일반 백성, 일단은 수직적으로 그렇게 세 단계로 구분하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왕과 제사장과 선지자, 이 사람들은 전부 다 기름부음을 받았고, 말씀의 세 가지 기능을 분산해서 이 사람들이 역할로 보여 줍니다. 그 역할은 뭐냐 하면, 말씀이 적용하는 역할, 더 정확하게는 말씀의 힘, 또는 권력, 말씀의 힘과 권력을 적용하는 역할이 되겠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리고 그 밑에는 법을 다루는 재판관, 유사들(공무원) 같은 문과, 그 밑에는 일반적인 백성들, 농사짓는 백성들, 목축하는 백성들. 옛날에는 직업이 가축 치거나 농사짓는 거 외에는 별로 없기 때문에. 바다가 있으면 어부도 있겠고.. 이런 구조로 돼 있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 구조를 장악하는 것은 말씀의 힘이에요. 말씀의 힘. 말씀의 힘인데, 그런데 성경에서 이 셋이 나란히 되어 있지만, 셋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자꾸 왕을, 장차 이스라엘이 왕을 원한다는 걸 미리 알고 왕은 율법 쪽에 있으라 했는데, 초반에는 왕이 없어요. 없고 뭐가 있느냐 하면은 왕과 선지자의 기능을 같이 결합시킨 지도자가 있어요. 그게 바로 모세고, 그리고 그다음에 나온 여호수아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모세 죽고, 여호수아 죽고 난 뒤에 지휘 체제는 누구와 누구에게 독점되었겠습니까? 왕과 제사장이 죽고 난 뒤에 지휘 체제는 누구한테 옵니까? 제사장한테 오겠죠. 그래서 너희들은 제사장 나라가 돼 버렸어요. 출애굽기 19장에 있는 말씀(출19:6), 제사장에는 뭐가 없어야 된다? 왕이 없어야 되고, 제사장은 선지자도 없어야 되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왜냐하면 율법을 압축해 보니까 제사장은 제사 기능으로 움직이죠. 제사 기능은 특정한 장소가 있는데, 그 장소는 레위지파가 아니면, 그리고 제사장이 아니면 들어가지를 못하죠. 제사장은 뭐고 레위지파는 뭐냐? 아론이 레위 지파인데, 아론의 자손들은 제사장이 되고, 그 외의 모든 사람은 레위 지파가 되는 거예요. 대충 아시겠죠? 자, 신명기 18장 오늘 본문을 봅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다시 말씀드려서 그렇다 치고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원하는 건 뭐냐? 서로 재판하고 송사할 때 마지막 도착지점은 제사 드리는 효능과 효과 덕분에 너희가 남 하고 싸울 수 있는 그러한 존재나 힘이라도 생겨난다. 이거는 &amp;lsquo;내가 옳다 네가 옳다&amp;rsquo; 할 것이 아니고 거기에 누가 들어가는가? 제사장이 들어가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제사장이 들어가기 전에 재판장이 들어가겠죠. 재판장은 모세 율법 가지고 재판하겠죠. 재판 결과, 재판에 이긴 사람이 있다. 이긴 사람은 좋다고 어디 가느냐? 제물 들고 제사장한테 찾아가고, 진 사람은 &amp;lsquo;잘못됐습니다. 내가 율법을 잘 이해 못했습니다. 용서하소서.&amp;rsquo; 해 가지고 제물 들고 어디 갑니까? 제사장한테 가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제사장은 뭐 합니까? 제사하죠. 제사하는 장소는 성막이죠. 언약계가 있는 곳, 거기로 가는 거예요. 그러면 제사장과 레위 지파가 밥 먹고 사는 방법은 뭐냐? 이게 신명기 18장에 나옵니다. 18장 1절 &amp;ldquo;레위 사람 제사장과 레위의 온 지파는 이스라엘 중에 분깃도 없고 기업도 없을찌니 그들은 여호와의&amp;rdquo; 그다음에 뭡니까? &amp;ldquo;여호와의 화제물&amp;rdquo; 불에 태우는 제물을 드리고 나머지 불에 태울 수 없는 제물은 제사장과 레위 지파의 식량이 된다, 이 말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리고 &amp;ldquo;그 기업을 먹을 것이라.&amp;rdquo; 이 말은 자기 기업이 없고, 농사지을 시간도 없고, 제사하느라 바쁜데 그럼 누가 가져오느냐? 불에 드릴 제물 말고 또 여분이 있잖아요. 그런 제물들이 제사장과 레위지파의 양식이 되는 겁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18장 2절에 &amp;ldquo;그들이 그 형제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은 그들에게 대하여 말씀하심같이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심이니라.&amp;rdquo; 그들의 상속분은 뭐라고요? 무슨 땅이 아니고, 어떤 땅이 기업이 아니고, 어떤 분이 기업이에요. 그분이 누굽니까? 하나님. 하나님이 그들의 기업이 되심이라.&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3절에 &amp;ldquo;제사장이 백성에게서 받을 응식은&amp;rdquo; 마땅히 얻을 권리 같은 음식이란 말이죠. &amp;ldquo;이러하니 곧 그 드리는 제물의 우양을 물론하고 그 앞 넓적다리와 두 볼과 위라 이것을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amp;rdquo; 이건 동물성이잖아요. 너무 동물만 먹으면 뱃살 나오잖아요. 식물도 먹어야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4절 &amp;ldquo;또 너의 처음 된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너의 처음 깎은 양털을 네가 그에게 줄 것이니&amp;rdquo; 5절 &amp;ldquo;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지파 중에서 그를 택하여 내시고 그와 그의 자손으로 영영히 여호와의 이름으로 섬기게 하셨음이니라.&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러한 취지가 민수기 3장 12절에 보면 잘 나와 있습니다. &amp;ldquo;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첫 태에 처음 난 자를 대신케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amp;rdquo; 레위인은 내 것이라고 했어요. 그러면 다른 지파는 뭡니까? 하나님의 것이 아니란 말이죠. 그렇게 되잖아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amp;lsquo;레위 지파는 내 것이다. 다른 지파 다 놓쳐도 레위지파는 내가 놓을 마음이 없다.&amp;rsquo; 그럼 다른 지파는 내놓은 자식이냐? 아니지요. 그래서 뭐냐? &amp;lsquo;대신&amp;rsquo;이란 말을 썼어요. 모든 다른 지파의 처음 난 것을 대신해서 일대일 대응으로 레위 지파의 숫자와 처음 난 자의 숫자를 대응해서 일대일로 대신했다는 말은, 레위 지파가 있음에 온 지파가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 그 안에 모든 정보가, 모든 내용이, 호적이 다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레위 지파가 다른 지파를 대신하기 때문에, 대신한 것만 있다면 다른 지파는 덤으로 레위 지파에게 종속되는 식으로 하나님의 것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 말을 &amp;lsquo;그렇다.&amp;rsquo; 하고 끝나는 게 아니고, 다른 지파들은 토지가 있잖아요. 상속받는 토지에서 농사지은 것 가운데서 십일조를 누구한테 바치느냐? 레위 지파한테 바쳐야 됩니다. 십일조를.&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것이 민수기 18장에 나옵니다. 민수기 18장 21절부터 보면 &amp;ldquo;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amp;rdquo; 그들의 일을 계속하게 하라. 그 다음에 십일조 이야기 쭉 나와요. 30절까지 쭉 나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30절에 보면 &amp;ldquo;이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그중에서 아름다운 것을 취하여 드리고 남은 것은 너희 레위인에게는 타작 마당의 소출과 포도즙 틀의 소출같이 되리니(30) 너희와 너희 권속이 어디서든지 이것을 먹을 수 있음은 이는 회막에서 일한 너희의 보수임이니라(31)&amp;rdquo; 상급이다, 이 말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자, 다시 신명기 18장 봅시다. 그러면 이 레위지파가 거주하는 곳이 어디냐? 신명기 18장 6절과 7절에 보면 &amp;ldquo;이스라엘의 온 땅 어느 성읍에든지 거하는 레위인이 간절한 소원이 있어 그 거한 곳을 떠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 이르면, 여호와 앞에 선 그 형제 모든 레위인과 일반으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섬길 수 있나니&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예를 들면, 서울에 조계종 있잖아요. 조계종이 있는데 거기에 식당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강원도 어느 깊은 산골의 암자나 절에 있던 승려가 서울에 와서 조계종 본사에 와 가지고 &amp;lsquo;비빔밥 한 그릇 먹을 수 있습니까?&amp;rsquo;하면 줍니까, 안 줍니까? 줘야 된다, 이 말입니다. 총 본사니까.&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지방에 근무하는 레위지파 사람이 왔을 때 중앙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박대하지 말라는 이야기예요. 근무지가 다르다 뿐이지, 중앙에 있다고 해서 권세 부리거나 그러지 말라는 거예요. 그런데 민수기 35장, 또 레위기 25장 같은데 보면 지방에 거주하는 레위인이 중앙으로 이사를 왔을 때, 자신이 소유한 가옥이나 다른 소유를 처분하는 게 가능하다고 되어 있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레위기 25장 32절에서 33절 보면, 그리고 또 지방, 촌에 있다가 자기 집을 안 팔고 있는데 다시 돌아갔을 때는 또 팔았다 할지라도 32절 &amp;ldquo;레위 족속의 성읍 곧 그 기업의 성읍의 가옥은 레위 사람이 언제든지 무를 수 있으나&amp;rdquo; 내가 판 거 다시 무른다 하면 무를 수 있다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자, 여기서 복잡하니까 한 번 정리해 봅시다. 말씀은 불속에서 나왔어요. 불속에는 못 들어갑니다. 못 들어가는 데서 말씀이 나왔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거룩한 백성으로 삼기 위해서 그 말씀 안에 어떤 조치가 있어야 돼요. 조치가 없으면 불속에서 나온 말씀에 의해서 그들이 다 죽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 조치가 뭐냐 하면, 그 말씀에 대해서 제사법이 같이 있어 가지고, 이 제사법은 말씀 자체가 인간이 더럽다는 것을 겨냥해서 준 말씀인데 더러운 것을 정죄함이 없고,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서 어떤 기능이 또 주어지느냐, 제사에 관한 말씀이 중간에 말씀 속에 끼어들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면 말씀의 기능이 두 종류가 되겠죠. 하나는, 인간의 죄를 지적하는 기능, 또 하나는 &amp;lsquo;네가 그 죄를 알렸다.&amp;rsquo; 아는데 이 죄에서 네가 의가 되는, 죄가 사함이 되는 그 기능을 하는 율법이 또 있겠죠. 그 두 가지가 짝을 이루어야 돼요. 짝을 이루어야 된다고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자, 십자가 봅시다. 십자가는 인간의 죄를 대신하신 분이 아버지로부터 저주받은 거죠. 그럼 십자가는 무엇을 한다? 모든 인간은 뭐 받아야 합당하다? 저주받아야 마땅하다. 주일날 설교의 본문 같으면, &amp;lsquo;네가 심판받을 자로 여기면서 말하고 행동하라. 심판의 대상이 된 것을 기뻐하라.&amp;rs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왜? 자기가 누군지를 그동안 몰랐으니까. 그런데 십자가를 통해서, 강도가 그랬듯이, 강도가 예수님 십자가 보고 저게 자기 모습인 걸 알았잖아요. 그거 땡잡은 거예요. 강도질을 반복한다고 내가 누구냐를 몰라요. 나의 미래를 앞당겨서 내 미래가 코 앞에 딱 들이닥쳐야, 바로 지금 미래를 내 쪽에서 가는 것이 아니고 미래가 오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면 여기서 아코디언 기능이 있어서 쫙 벌렸다가 접으면 좁아지잖아요. 나의 마지막이 아직 마지막에 가지도 않은 현재 내 코앞에 도달했을 때, 나의 마지막에서 나온 위력이 뭐냐? 저주다 이 말이에요. 저주. &amp;lsquo;아, 내가 저주받을 자였구나.&amp;rsquo; 하는 거를, 나의 마지막 모습이 내 모습이거든요. 내 마지막 모습이.&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세상에서는 인간의 자아의 모습 또는 자아의 발생은 거울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했어요. 거울을 보고 거울 앞에 있는 모습이 &amp;lsquo;저게 나네.&amp;rsquo;라고 안다면, 아이는 이미 거기서 자아가 발생됐다는 거예요. 그 다음부터는 육신으로 사는 게 아니고 뭐로 산다? 자아로 사는 거예요. 그때부터 자아로.&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맨날 &amp;lsquo;내가, 내가, 내가, 내가&amp;rsquo;, 그러면 나는 어디에서 어디까지 끼었어요? 저 거울에 뭐가 있다, 이 말이죠. 강남 강의에서 했어요. &amp;ldquo;저 거울에 있는 쟤 누구야? 저거 나잖아.&amp;rdquo; 하면 결국 인간의 모든 생각은, 자아는 어디서 어디까지 갇혀 있습니까? 나와 내 이미지로 떠오르는 나 사이에 갇혀 있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사람이 자기 나이가 60이 돼도, 꿈속이나 평소에 자기 생각은 본인을 60으로 느끼지 않고 한 32살? 27살 정도로....이걸 어제 설교에서 항구성, 동질성이라고 했지요. 비록 내 몸은 늙었어도 마음은 하나같이 그때 그 마음이다, 이렇게 주장하죠. 나의 이미지, 나의 착각이죠. 나의 이미지에 갇혀 있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샌드위치처럼 갇혀 있어요. 갇혀 있는데 이렇게 갇혀 있어서는 세상에 나가서 못 살아요. 세상에 나가서 타인의 시선이 끼면 그 갇혀 있는 것이 수정이 됩니다. &amp;ldquo;아, 내가 이런 인간이구나. 아, 내가 겸손할 때는 겸손해야 되겠구나. 잘난 체 하면 안 되겠구나.&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막 시집온 새댁이 결혼하기 전까지는 자기 집에서 밤 2시에 자고 아침 10시에 고양이 껴안고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다가 시집을 와서 보니 시어머니는 아침 6시부터 주방에서 부스럭부스럭 뭘 하고 있단 말이죠. 시어머니는 주방에서 아침을 하든 말든 나는 10시에 일어나거든요.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시집 식구가, 가족에 뭐가 있다 했죠? 권력이 있다 했죠. 권력이 있어 가지고 교육을 시키는 거예요. &amp;lsquo;네가 시집을 왔으면 아침 6시가 되면 네 손으로 시아버지 시어머니 위해서 그전에 일어나서 쌀 씻고 해야 된다.&amp;rsquo; 그게 누굽니까? 타인이잖아요. 타인의 힘이죠. &amp;lsquo;싫어.&amp;rsquo; 그러면, 헤어지라고 나오죠. 그러면 눈치 보게 되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 다음부터는 친정이 소환되죠. 친정 들먹이면 곤란하잖아요. 그래서 &amp;lsquo;할게요.&amp;rsquo;가 되죠. 그래서 수정에 들어갑니다. 내 이미지에 합당한 나로 개선되는 겁니다. 이 버릇이 교회에 가도 마찬가지예요. 성경 말씀의 이미지에 십자가는 안 보여요, 없어요. 십자가는 없고, 그냥 성경에서 목사님이 시키니까 시키는 대로 하면 어디 간다? 천국 가는 줄 알고 있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amp;lsquo;천국이고 뭐고 가 봐야 아는데, 미리 준비는 단단히 하자. 단디 하자.&amp;rsquo; 이런 생각으로 교회 간다, 이 말이죠. 시키는 대로 다 하면 되지 않겠는가? 근데 마지막 모습은 뭐냐? 끝났어요. 마지막 모습은 뭡니까? 우리는 저주받은 죄인의 모습으로 이미 출생할 때부터 오메가가 알파예요. 오메가가 저주받은 자는 알파도, 처음도, 시작도 동일한 거예요. 저주받아 합당한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그 십자가에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 긍휼이 나오죠. 긍휼과 사랑이 나오죠. 죄 사함이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강도가 뭐라 합니까? 주님의 십자가 안에 그 강도가 들어가기를 원했을 때 &amp;lsquo;네가 오늘 밤에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amp;rsquo;(눅23:43) 왜? 왜 구원해 줍니까? 십자가의 효과 때문에.&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십자가에서 나오는 사랑의 권력 때문에. 사랑의 힘. 사랑의 힘이 모든 이 세상의 시험을 박살냈던 거예요. 내가 시험 받기 위해서 환장한 세상적인 모든 것, 남한테 좋은 이미지를 얻겠다는 이 유혹, 악마의 유혹을 긍휼 하나로 완전히 작살을 내버리는 거예요, 작살을.&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니까 여기서 이스라엘은 뭐 중심이냐 하면, 제사 기능이 왜 있느냐? 제사 기능, 다른 말로 하면 희생이죠. 나는 농사짓기 바쁜데 왜 레위인들은 애꿎은 어린 양, 소, 염소로 저 제단 앞에서 왜 자꾸 희생 제물을 드리느냐, 이 말이죠. 저 희생 제물과 내가 농사지어서 곡식 이루는 것과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겁니다. 연관성.&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죄인이 제사를 잘 드리면 농사지을 때 농사의 열매가 맺히도록 주님께서 힘을 실어 주는 거예요. 힘을 실어 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거기서 나온 제일 좋은 첫 열매, 십일조는 누구에게 드려야 돼요? 레위인을 통해서 제사장, 제사장을 통해서 누구한테 드려야 됩니까?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가 되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 덕에 레위인들과 제사장은 밥 먹고 산다. 뭐 그 이야기를 오늘 본문에서 하고 있는 겁니다. 이제 정리가 됐지요. 모든 율법은 뭐라고요? 지적받기 위해서. 우리가 지적받기 위해서 모든 말씀을 주신 거예요. 그럼 지적받을 때마다 성도는 아주 신이 나죠. 신바람 이박사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내가 잊어버렸던 주님의 긍휼과 사랑, 처음 사랑, 첫사랑을 다시 한 번 회복하는 거예요. 그걸 제가 어제 낮에 좀 강조해서 이야기했습니다. 한 번 따라 해볼까요? &amp;lt;매사에 엄살떨지 말라.&amp;gt; 뭐 벌레 물렸느니, 위가 좋지 않다느니, 검사를 해 봐야 된다느니, 좀 덥다느니, 땀 난다느니..&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엄살떤다는 것은 십자가에서 눈을 돌려 버리면 그 다음부터는 엄살이 돼요. &amp;ldquo;뭐 어쩌란 말이냐, 할 도리 다 했는데 더는 못 한다.&amp;rdquo; 십자가에서 눈 돌아가 버리면 그 다음에 나오는 게 자기 이미지 관리예요. 내 마음에 드는 이미지를 내가 유지하고 싶은 거예요. 그놈의 이미지 안고 지옥이나 가라고 할 수밖에 없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레위 지파가 했던 제사 기능 중심으로 대신하심으로써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 오셨습니다. 대제사장으로. 그게 바로 히브리서 5장 1절부터 10절에 나와 있습니다.&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5장 1절 &amp;ldquo;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amp;rdquo; 하는 일이 뭐예요? &amp;ldquo;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1) 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amp;rdquo; 뭐 할 수 있는 것은? &amp;ldquo;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2)&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제사 드리는 제사장이 공부 많이 하고 똑똑해서, 남보다 자질이 뛰어나서, 영특해서, 아이큐가 높아서 제사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율법의 제사 기능이 제사하는 제사장마저 짐이 힘으로, 그 제사 기능이 짐으로 힘으로 하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자기도 연약하고 누구도 연약하고? 남들도 연약하고. 연약하다는 말은 인간이 세운 제사장 가운데서 영원한 제사장은 있다, 없다? 영원한 제사장은 없다. 다만 영원한 제사장은 인간의 연약을 아주 개무시하고 &amp;lsquo;이것도 못했지?&amp;rsquo; 이게 아니라, 인간의 연약한 육신에 참여했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인간의 연약함을 통과해서 연약함을 초월해 버린 분이 이제는 &amp;lsquo;하나님의 제사 기능이 미흡하다는 소리를 하지마라. 입 다물어라.&amp;rsquo; 인간이 연약한데, 연약함을 이미 알고 연약함마저 뛰어넘은 분이 영원한 제사장이 되었기 때문에, 인간이 연약해서 어떻다, 저떻다 소리는 적어도 예수님의 속죄 기능에 흠집이 될 수가 없다, 이 말입니다. &amp;lsquo;자기도 뭐 인간이면서 어떻게 자기 속죄가 우리의 죄를 용서한단 말인가?&amp;rsquo; 이런 구시렁대는 소리는 하지 말라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면 모든 제사장은 한 분 제사장, 영원한 제사장을 향하여 질주하고 달려왔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노선은 뭐냐? 인간의 육의 노선으로 온 게 아니죠. 인간의 육 말고, 말씀의 노선이 인간의 육과 더불어서 이스라엘과 함께 있었습니다.&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걸 히브리서 5장 6절에서는 이렇게 돼 있어요. &amp;ldquo;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댁의 반차(반열)를 좇는 제사장이라.&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10절에 &amp;ldquo;하나님께 멜기세댁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amp;rdquo; 갑자기 멜기세댁이 툭 튀어 나오죠. 멜기세댁이 어떤 사람이냐? 히브리서 7장 3절에 보면 &amp;ldquo;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amp;rdquo; 아비도 어미도 없으니까 그 다음에 뭐가 없어요? 족보, 땅의 육의 족보 자체가 없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면 육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 수직적으로 꽂아 넣었다는 거죠. 시간에 적용받지 않는 영원한 속성이 시간에 적용받는 이 연약한 인간 속에 꽂혀 버린 그 사건을 히브리서는 그걸 바로 십자가 사건이라고 보는 겁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예수님께서 스스로 제사장 되시고, 제물 되시고, 그래서 제사를 이루었다, 스스로 속죄가 되시고, 스스로 제사 드리는 분이 되시고, 그리고 이제 소나 양의 피가 아니라 그분 자신의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얻는다. 히브리서 9장 14절 &amp;ldquo;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12절 &amp;ldquo;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amp;rdquo; 단번에 실체가 되는 성소, 하늘나라에 들어가셨느니라.&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면 하늘나라에 들어간 예수님과 우리 사이는 뭐 단번에 드린 뭐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입니까? 피죠. 피가 권력이다, 이 말이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신명기에서 이야기하는 모든 율법의 최종 권력이 바로 신약에 가서 나타나서 지금도 그 예수님의 피 안에서 하늘과 땅에 있는 우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분은 왕이고, 우리는 백성이죠. 그럼 우리의 왕은 누굽니까? 이재명 대통령이에요? 김정은이에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우리는 이 세상 대통령이 누구든, 우리의 지도자는 영원한 지도자, 선지자, 제사장, 왕은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몸은 그 분의 소유고, 우리는 그 분에게 순종함으로써 섬기는 그런 권력적 관계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나라에서 돈 주거든 받고, 누구든 인간이 인간을 섬기지는 마세요. 10분 쉽시다.&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구약 설교, 강의(이근호)/신명기</category>
      <author>정인순</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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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5 May 2026 17:47:2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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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야고보서 3:1-5 / 선생된 자(십자가를 껴 안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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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a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659f00; text-align: start;&quot; href=&quot;http://media.woorich.net/%EC%84%B1%EA%B2%BD%EA%B0%95%ED%95%B4/%EC%95%BC%EA%B3%A0%EB%B3%B4%EC%84%9C26/%EC%9E%90%EB%A6%AC%EC%9D%B4%EB%8F%99260531.mp3&quot;&gt;음성&lt;span&gt;&amp;nbsp;&lt;/span&gt;&lt;/a&gt;&lt;a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href=&quot;http://media.woorich.net/%EC%84%B1%EA%B2%BD%EA%B0%95%ED%95%B4/%EC%95%BC%EA%B3%A0%EB%B3%B4%EC%84%9C26/2026-05-31%2010-58-31.mp4&quot;&gt;동영상&lt;/a&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야고보서 3:1-5&amp;nbsp; 선생된 자&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근호&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amp;lsquo;선생 된 자&amp;rsquo;와 구약의 &amp;lsquo;제사장&amp;rsquo;과는 다릅니다. &amp;lsquo;제사장&amp;rsquo;이 근본입니다. 그것은 온 몸 자체가 &amp;lsquo;거룩&amp;rsquo;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율법 완성이 인격화로 나타난 것이 곧 제사장의 몸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amp;ldquo;아론에게 속옷을 입히며 띠를 띠우고 겉옷을 입히며 에봇을 더하고 에봇의 기묘하게 짠 띠를 띠워서 에봇을 몸에 매고 흉패를 붙이고 흉패에 우림과 둠밈을 넣고 그 머리에 관을 씌우고 그 관 위 전면에 금패를 붙이니 곧 거룩한 관이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았더라&amp;rdquo;(레 8:7-9)&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반면에 선생은 제사장의 기능에서 파생된 자입니다. 거룩이 발산되는 현상의 한 단면이 선생의 기능입니다. 가르치는 일을 하는 자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amp;ldquo;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amp;rdquo;(고전 12:28)&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거룩한 내용만이 내놓아야 될 자들입니다. 그래서 선생 된 자들의 가르치는 내용은 일반적인 상식과 지혜와는 전제가 다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첫째, 인간은 이미 악마 정신으로 물들어져 있음을 기본으로 해야 합니다. 즉 영적인 전제를 분명히 언급해야 합니다. 둘째는, 이 세상에서 얼마나 인간들이 행복한가 혹은 남들로부터 인정받는가가 교육 목표가 아니라 결국에 천국에 도달된 존재인가 아니면 지옥에 도달될 존재인가를 스스로 파악되도록 돕는 자이어야 합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특히 선생은 말을 해야 하는데 이는 로마서 10:13-15의 원칙에 따른 현상입니다. &amp;ldquo;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선생은 완성된 제사장이 아니기에 예수님처럼 십자가 진 자는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자신을 십자가 앞에 가리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lt;/span&gt;&lt;/p&gt;
&lt;hr contenteditable=&quot;false&quot; data-ke-type=&quot;horizontalRule&quot; data-ke-style=&quot;style2&quot; /&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십자가를 껴 안기&amp;nbsp;&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2026년 5월 31일&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본문 말씀: 야고보서 3:1-5&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3: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을 알고 선생이 되지 말라&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3: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에 굴레 씌우리라&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3:3)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온 몸을 어거하며&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3: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3: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amp;lsquo;선생되기&amp;rsquo;를 말리고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자의에 의해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에게 있어 선생, 곧 스승이란 그 위치와 자리가 율법에 의해서 지정되어 있습니다. 선생은 제사장의 기능에서 파생된 자입니다. 거룩이 발산되는 현상의 한 단면이 선생의 기능입니다. 가르치는 일을 하는 자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amp;ldquo;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amp;rdquo;(고전 12:28) 거룩한 내용만이 내놓아야 될 자들입니다. 그래서 선생 된 자들의 가르치는 내용은 일반적인 상식과 지혜와는 전제가 다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도대체 어떤 점에서 세상 지혜와 다르다는 겁니까? 세상 지혜는 인간들이 &amp;lsquo;살아 있다&amp;rsquo;고 여깁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율법 세계에서는 모든 인간은 &amp;lsquo;죽은 인간&amp;rsquo;입니다. 이 &amp;lsquo;죽음 있음&amp;rsquo;을 분명히 하기 위해 참으로 살아 있는 것과 참으로 죽어 있는 것을 레위인들과 제사장과 대제사장의 존재로 구획확합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amp;ldquo;그들은 그 장막과 그 모든 기구를 운반하며 거기서 봉사하며 장막 사면에 진을 칠지며&amp;nbsp; 장막을 운반할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걷고 장막을 세울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세울 것이요 외인이 가까이 오면 죽일지며&amp;rdquo;(민 1:51-52) 이번에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구분이요 구획 결정책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amp;ldquo;장막 앞 동편 곧 회막 앞 해 돋는 편에는 모세와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이 진을 치고 이스라엘 자손의 직무를 대신하여 성소의 직무를 지킬 것이며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일지니라&amp;rdquo;(민 3:38) &amp;ldquo;너희는 고핫 족속의 지파를 레위인 중에서 끊어지게 말지니&amp;nbsp; 그들이 지성물에 접근할 때에 그 생명을 보존하고 죽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너희는 이같이 하여 아론과 그 아들들이 들어가서 각 사람에게 그 할 일과 그 멜 것을 지휘할지니라 그들은 잠시라도 들어가서 성소를 보지 말 것은 죽을까 함이니라&amp;rdquo;(민 4:18-20)&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언약궤는 3중으로 인간의 접근을 막습니다. 최종적으로 제사장이라고 할지라도 언약궤가 있는 지성소에는 들어설 수 없습니다. (레 16:17)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 차례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로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저주와 거룩을 모시는 유일한 민족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 &amp;lsquo;죽음&amp;rsquo;과 &amp;lsquo;삶&amp;rsquo;이란 이미 지성소의 존재에서 결정났음을 아는 유일한 민족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구원이란 이처럼 공간 이동입니다. 죽음의 공간에서 생명의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인간이 이미 죽음과 저주의 공간에서 출생해 있는 상태입니다. 생명의 공간으로 이동될 수가 없습니다. 생명되시는 분이 이 죽음의 공간, 저주의 공간에 찾아오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찾아오시므로서 구원의 절차는 비로소 알려집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amp;ldquo;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amp;rdquo;(엡 2:1-2) 이미 인간은 죽어 있는 존재입니다. 공간이 이점을 결정내린 겁니다. 이 공간 안에서 아무리 바르게 살아도 &amp;lsquo;살았다&amp;rsquo;고 말할 수 없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죽은 것은 죽은 겁니다. 각자가 모두 죽은 겁니다. 인간의 삶이란 모두 무의미한 것이며 한낱 해프닝에 불과한 현상입니다. 이스라엘에 있어 제사장은 선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그들의 활동하는 공간은 언약궤가 있는 그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amp;lsquo;사망에서 생명&amp;rsquo;으로 옮기는 현상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공간에 이들 제사장이 있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amp;lsquo;사명에서 생명으로&amp;rsquo;옮겨지기 위해서는 먼저 전면적인 &amp;lsquo;죽음&amp;rsquo;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 &amp;lsquo;죽음&amp;rsquo;이 어떤 사고방식으로 드러날까요? 누가복음 17:11-19에 잘 나와 있습니다. &amp;ldquo;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궁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amp;rdquo;열명의 문둥병자들 중에 아홉명의 문둥병자들은 병고침을 받고서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즉 그들은 비록 문둥병이 들었지만 사는 것은 여전히 살아있다고 자부했습니다. 하지만 한명의 문둥병자는 병고침을 받고 난 뒤, 예수님 계신 곳으로 돌아왔습니다. 구원의 병들고 안 들고가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자리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십자가 사건 현장에 있던 강도도 마찬가지였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하나님께서는 사망의 자리에게 영생의 자리로 옮기는데서 있는 인간의 노력으로 불가능함을 아십니다. 그래서 제사들을 향하여 &amp;lsquo;사람 낚는 어부&amp;rsquo;가 된다고 말씀하신 겁니다. 강제 조치있습니다. 이들 제자들은 이 &amp;lsquo;사람 낚는 어부&amp;rsquo;의 기능을 몰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십자가 이후에 고기잡으로 갔습니다. 본래의 자기 자리로 돌아간 겁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의 고기 잡는 현장에 나타나셔서 어부의 기능이 끊어진 것이 아님을 알려주십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선생이 될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물으십니다. &amp;ldquo;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amp;rdquo;(요 21:15)&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에베소서 2:4-6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amp;ldquo;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amp;rdquo; 이 &amp;lsquo;큰사랑&amp;rsquo;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자가 바로 모든 인간의 지혜를 능가하는 복음의 내용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기도합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하나님 아버지, 세상에 소소한 모든 일이 우리를 죽이는 죽음의 일인 것을 이제는 감사하게 받아들여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신약 설교, 강의(이근호)/야고보서</category>
      <author>정인순</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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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4 May 2026 23:20:4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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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요한계시록 2:1-4 / 성도와 교회의 차이</title>
      <link>https://chninsn.tistory.com/17213210</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a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659f00; text-align: start;&quot; href=&quot;http://media.woorich.net/%EC%84%B1%EA%B2%BD%EA%B0%95%ED%95%B4/%EC%9A%94%ED%95%9C%EA%B3%84%EC%8B%9C%EB%A1%9D26/%EC%84%B1%EB%8F%84%EC%99%80%EA%B5%90%ED%9A%8C%EC%9D%98%EC%B0%A8%EC%9D%B4262524.mp3&quot;&gt;음성&lt;span&gt;&amp;nbsp;&lt;/span&gt;&lt;/a&gt;&lt;a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href=&quot;http://media.woorich.net/%EC%84%B1%EA%B2%BD%EA%B0%95%ED%95%B4/%EC%9A%94%ED%95%9C%EA%B3%84%EC%8B%9C%EB%A1%9D26/2026-05-24%2013-58-20.mp4&quot;&gt;동영상&lt;span&gt;&amp;nbsp;&lt;/span&gt;&lt;/a&gt;&lt;a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href=&quot;https://www.youtube.com/embed/sThv7zKVlM8&quot;&gt;Youtube&lt;/a&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성도와 교회의 차이&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근호&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2026년 5월 24일&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본문 말씀: 요한계시록 2:1-4&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2: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2: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2: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에베소 교회의 사자, 곧 천사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는 교회는 주님께서 천사를 통해서 친히 드러나게 하시는 것이지 교인들의 집단에게 교회를 맡기지 않으시겠다는 겁니다. 도리어 정반대 취지입니다. 교회의 사자에게 준 계시에 위배하면 아무리 &amp;lsquo;교회&amp;rsquo;라고 자처해도 주님께서 가차없이 제거해 나가시겠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그래야 성도들의 집단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교회는 일찍이 사도 바울로부터 편지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 편지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amp;ldquo;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amp;rdquo;(엡 1:1)&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여기에 나오는 &amp;lsquo;성도&amp;rsquo; 혹은 &amp;lsquo;신실한 자&amp;rsquo;라는 것은 인간이 마련하거나 구성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서 나오는 능력 자체가 달성합니다. 따라서 사도를 통해서 실현되는 교회는 소위 &amp;lsquo;교회&amp;rsquo;라고 우기는 것들을 삭제하고 제거하는 도구로 말씀이 사용되어집니다. 이렇게 제거되는 이유는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제거되기 싫어하기 때문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말씀의 용도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겁니다. 말씀을 동원해서 자신을 지키는 식으로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기초에 대해서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 자신의 뿌리, 기초에 문제가 있음이 드러납니다. &amp;ldquo;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amp;rdquo;(막 4:36-41)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으므로 예수님의 존재 기초와 자신들의 존재 기초가 동일하다고 여겼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인간들은 시공간을 그동안 존재의 기초로 알고 있습니다. 이는 육신이 사는 데 있어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으로 안정적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땅과 천체의 변화가 한결같이 그러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 자기 존재에 대한 애착이 너무 강렬하여 예수님과 함께 있음이 그다지 귀한 일인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참으로 예수님과 함께 있음을 원한다면 바다에 풍랑이 일어 다 죽게 되었을 경우를 고맙게 여겨야 합니다. &amp;ldquo;이참에 잘되었다. 예수님과 함께 죽을 수 있었어&amp;rdquo;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배에 들어온 물 퍼내기에 급급합니다. 결국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협조를 구합니다. 무슨 협조 말입니까?&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자신들의 존재 뿌리를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이 되기를 주님에게 요청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주님은 제자들을 나무랍니다. &amp;ldquo;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amp;rdquo;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도리어 예수님의 존재에 대해서 신기해 합니다. &amp;ldquo;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amp;rdquo;(막 4:41)&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인간에게 있어 육은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 니고데모는 예수님에게 찾아와서 자신의 육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육 말고 다른 기초, 다른 바탕을 제시하십니다. &amp;ldquo;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amp;nbsp;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amp;rdquo;(요 3:6-8)&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따라서 인간들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들을 끌어모아서 그것을 실천하신다고 해서 구원되는 것이 아닙니다. 뿌리 자체가 육에 그대로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교회의 사자는 교회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있고 열심도 있고 자칭 사도도 아닌 자를 들추어내고 어떤 어려움에도 인내하고 게으르지 않는 것에 대해서 칭찬합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이것으로 성도되는 데 충분하지 않을까요? 도리어 자신의 잘하는 것은 그대로 두고 거기에다가 책망한 것을 고쳐서 책망받지 않아서 추가시키면 구원되는 성도가 된다고 여기는 것이 바로 가짜 교회의 특징입니다. 기본적으로 책망하는 것은 인간의 육의 뿌리를 겨냥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말씀 실천에 열심히라고 자신의 육의 근본은 바뀌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인내하고 악한 자를 용납하지 않고 열심내는 것은 놀랍게도 처음 사랑이 없이 가능한 일이라는 점입니다. 이점에 대해서 고린도전서 13:1-3에 잘 나와 있습니다. &amp;ldquo;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amp;rdquo;(고전 13:1-3) 지식, 신앙, 구제, 기적 이 모든 것도 &amp;lsquo;아무 것도 아닌 것&amp;rsquo;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그것은 이 모든 행위가 &amp;lsquo;사랑&amp;rsquo;에서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사도 바울을 통해서 에베소 교회에 복음이 전달되었습니다. 그 내용을 보게 되면 1장에서 &amp;lsquo;영원한 때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예정해 두신 자에 대한 구원&amp;rsquo;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런 예정된 선택 구원도 사람이 해내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하십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그 성령님께서 일하시면서 드러나는 체제가 바로 성전입니다. &amp;ldquo;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amp;rdquo;(엡 2:21-22) 교인들이 아무리 노력해 봤자 첫 사랑을 유지하는 능력은 나오지 않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따라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나오는 지적을 기적으로 여기게 됩니다. 감사의 이유가 됩니다. 구원을 위한 일관성 있는 취지로 봅니다. 말씀이 말씀대로 되어지면 성도는 구원이 됩니다. 교회는 떨어져나가고 성도들만 남는 것이 바로 말씀의 지적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기도합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대하면서 지적받은 즐거움에 감사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lt;/span&gt;&lt;/p&gt;
&lt;hr contenteditable=&quot;false&quot; data-ke-type=&quot;horizontalRule&quot; data-ke-style=&quot;style2&quot; /&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녹취:송민선&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8강-요한계시록 2장 1~4절(성도와 교회의 차이)260524-이근호 목사&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하나님의 말씀은 요한계시록 2장 1~4절입니다. 신약성경 376페이지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amp;ldquo;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amp;rdquo; 아멘.&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에베소 교회에 편지한 것이 아닙니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했습니다. 그 차이는 뭐냐 하면, 에베소 교인들 집단이 에베소 교회가 아니라는 겁니다. 인간들의 집단은 어디에 저촉을 받느냐 하면, 인간이 알고 있는 시간과 공간에 저촉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 사이에서, 늘 불안에 떨고 미흡하고 어떤 것도 안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뭔가 스스로 신앙이 되었다 싶다가도 어느새 새로운 사태가 날아오게 되면, 무서워서 벌벌 떨게 되어있어요. 마가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같이 배 타고 가는 대목이 나옵니다.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는데요, 예수님의 시공간과 제자들의 시공간에 대해서, 제자들은 동일한 시공간이라 생각하고, 예수님은 동일한 시공간에 있지 않다고 봤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나는 불안정한 시공간에 두 발을 딛고 거기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 육적인 존재인데, 그것을 늘 잊어버려요. 마가복음 4장에서 갈릴리 바다를 지나가는데, 갑자기 광풍이 일어났어요. 마가복음 4장 35~41절까지 보면, 광풍이 일어나서 파도 때문에 배가 뒤집어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물 퍼낸다고 난리도 아니죠. 왜 물을 퍼내지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바람이 불고 배가 뒤집어지게 되면, 절호의 찬스가, 기회가 왔잖아요. 주와 함께 죽을 수 있는 찬스가 왔잖아요. 태도가 바뀌어야 하지 않습니까? &amp;lsquo;고맙다. 바람아~신난다. 신난다, 풍랑아!&amp;rsquo;라고 이래야 하는데, 물 퍼낸다고 바쁜 것은, 뿌리가, 예수님한테 뿌리를 둔 게 아니고, 자기가 익히 아는 기존의 시공간에 뿌리를 두고, 그다음에, 예수님한테는 한번 잘해보면 되겠지, 좋은 관계 유지하면 되겠지, 그러면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겠지, 이런 식이에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인간이 딛고 있는 존재의 뿌리에 자기가 예수님을 끌어당겨서, 내 뿌리는 뿌리대로 유지하면서, 구원은 구원대로 되고, 천국 가려고 한 거예요. 천국이 어디 골프장입니까? 그런 것은 여호와 증인의 그림에만 나오죠. 그런 게 아니거든요.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게 아니에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성령 안에서 희락과 의와 평강이라 했습니다. 성령 안에서. 그게 하나님의 나라예요. 하늘나라에서 투표하는 거, 이런 거 없어요. 기초 자체가, 이게 예수님과 함께할 수 없는 기초를 두고, 인간은 자기 기초가 흔들린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을 때, 40절에서, &amp;ldquo;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amp;rdquo;라고 그렇게 하니까, 자기 믿음 없는 것을 인정하는 게 아니고 41절 제자들이 서로서로 수근 대면서 하는 말이에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amp;ldquo;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amp;rdquo;라고 되어있어요. 이 원인이 이제, 이게 마가복음입니다. 마가복음. 그런데 요한계시록을 썼던 사도 요한의 요한복음에 보면, 인간의 그 존재의 뿌리에 대해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니고데모가 와서, &amp;ldquo;어떻게 하면 천국 갑니까?&amp;rdquo;라고 하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모든 인간이 궁금해하고 정말 묻고 또 묻고 싶은 이야기. &amp;ldquo;어떻게 하면 내가 천국 갑니까?&amp;rdquo;라고 할 때, 예수님은 이렇게 이렇게 하면 천국 간다고 하시는 게 아니라, 뭘 하느냐 하면은, 우리의 육의 뿌리, 존재의 뿌리부터 건드려요. &amp;ldquo;네가 너의 엄마한테서 태어났다. 그게 문제다. 바로 네가 잘못해서 지옥 가는 게 아니고, 벌써 육으로부터 태어난 그 자체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조건을 네가 가지고 있는 거야. 네 뿌리부터 잘못됐다는 거야&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그러면 그 존재의 뿌리를 뭐로 교체하느냐?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3장 7~8절에, &amp;ldquo;존재의 뿌리를 육에 두지 말고, 네가 든든하게 믿음과 애착과 육에 두지 말고, 영에 두어라&amp;rdquo;라고 하니까, 영이 뭔지를 모르죠. 그것은 좀 설명해야 됩니다. &amp;ldquo;내가 영에 두라고 하니까 네가 기이히 여기지 말라&amp;rdquo; 영에 두라 하는 것은, 이건 바람 같아요. 바람 같은데, 설명하면, &amp;ldquo;어디서 오는지 어디로 가는지 네가 알지 못한다&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쉽게 말해서 &amp;ldquo;네가 딛고 있는 뿌리 잘라라&amp;rdquo;라는 이 말이에요. 이걸 오늘날 복음 전파 또는 전도에다가 적용하면 이렇습니다. 팔을 내미는 자에게 손을 잡아주지 마세요. 그 사람은 몸통은 안 옮기고 팔만 내민 사람이에요. 예를 들면 그게 열왕기하 5장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나아만 장군이라는 사람이 문둥병에 걸리니까 팔만 내밀었어요. 몸통은 두고, 옛날에 나의 깨끗한 몸을 얻고 싶어서, 엘리사라는 용한 의사의 소문을 듣고 가서 문둥병을 낫게 해 달라고 갔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하나님의 명을 받은 엘리사는 자신의 뿌리 자체가, 그게 바로 저주가 되는 거예요. 네가 문둥병을 나아도, 뿌리 자체가 저주에서 올라오는데, 그거 나아져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래서 요단강에 7번 들어가라고 했죠. 수요설교에서 설명하면서, 그 요단강이 뭐냐 하면은 이스라엘이 구원받은, 애굽에서 탈출한 인간의 그 뿌리를 언약궤로 뿌리 존재 자체를 바꾸는 일이 요단강에서 일어났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너는 건너올 수 없는 약속의 땅으로 건너오는 그 뿌리가 언약궤이지, 네가 잘 건너온 두 다리가 아니라는 거죠. 길이 없는 곳에 주께서 그들을 데려가는데, 네가 그동안 이 길에서 걸어왔고 또 걸어왔다고 여기는 그 뿌리는, 여기서 그만두자! 하직하자! 약속의 땅이 타박타박 걷는다고 갈 수 있는 땅이 아니다. 시공간이 동일한 시공간이 아니다. 언약궤와 함께 껴안지 아니하면, 너는 그 땅에 가도 쫓겨나는 겁니다. 살 수 없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그 언약궤 때문에 요단강을 건너왔듯이, 주께서 나아만 장군에게 그 요단강으로 들어가라고 합니다. 그래 억지로 들어가는데, 들어가고 난 뒤부터는 비로소 그동안 내가 인생을 살아온 내 뿌리는 이 육을 유지하는 데 나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한 그 님몬당, 기존에 자기의 환경, 살아왔던 환경에서 지배적으로 가르쳤던 종교, 자기는 그게 신이지 우상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그 님몬, 그 신의 세계 자체가 저주의 세계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그 저주로 문둥병 걸렸고요. 그런데 이 문둥병이 나았다는 것은, 이제는 뿌리가 바뀐 거예요. 내가 다시 고향에 돌아와서 님몬당 성전에서 절을 하더라도, 나는 내 뿌리인 여호와께 뿌리를 두고 절하는 것으로, 그렇게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 대신 내가 흙을 가져가겠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흙을 가져가는 거예요. 무슨 흙? 약속의 땅의 흙을 가져 가요. 약속이 이제는 약속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내 인생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시공간에 있는 저주는 어디로 가느냐? 엘리사의 사환인 게하시에게 가요. 엘리사 바로 옆에 있던 비서한테 나아만의 저주가 떠돌아다니다가 거기에 도달한다고요. 이 말은 뭐냐 하면은, 어느 인간치고 자기 뿌리를 하나님의 약속에 두지 않는 자는 비록 그자가 선지자 편에 선 것처럼 여겨지더라도, 사실 그 뿌리는 저주의 뿌리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이게 오늘 본문과 관련 되어있습니다. 여기 오늘 본문 2~3절에, &amp;ldquo;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amp;rdquo;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에베소 교회에서 2~3절 읽었잖아요. 이걸로 끝내고 에베소교회 교인들은 전부 다 한꺼번에 휴거(携擧)하든지 뭐 다 죽이든지 해서, 천국 보내면 되잖아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요한계시록 2장에 에베소 교회에서 이걸 언급하면서 제일 난맥이라 할까요? 이해가 안 되는 것이, 2~3절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amp;ldquo;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amp;rdquo; 이걸로 신앙의 절정에 이른 게 아니겠어요? 우리는 사적으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amp;lsquo;내가 신앙의 최정점에 섰을 때, 주여 저를 데려가옵소서&amp;rsquo;라고. 이 무슨 꼼수를 부리고 있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2~3절 칭찬해 놓고, 그러면 여기서 이야기를 끝내야 하는데, 왜 4절에 &amp;ldquo;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amp;rdquo;라는 이 대목이 왜 나옵니까? 여기서 성경 보는 사람이 진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처음 사랑을 버린 자도 얼마든지 행위와 인내로 폼을 내고,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의 정체를 드러내고, 그리고 복음이라는 이름으로 인내하고 견딜 수 있다는 거, 게으르지 않고 열심을 낼 수 있다는 거예요. 처음 사랑이 없는 상태에서도.&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그걸 어떻게 해명합니까? 보통 문제 아니죠. 우리가 평소에 얼마나 본인이 자꾸 신앙이라는 것을 조립하는 경향이 있는데, 제가 아까 그 마가복음 이야기했듯이, 내가 자기의 뿌리를 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 든든한 뿌리에, 신앙적인 폼으로 거기에 가득 채우면, 그 뿌리와 가득 채우는 나는 하나의 덩어리로, 몽땅 천국에 가서 영원한 영생을 누린다는 이 계산, 이 계산이 요한계시록에 에베소 교회의 편지로 인하여, 이거 사달 난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그런 꼼수는 주님 앞에 통하지 않는 겁니다. 인간은 장벽에 막힌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amp;ldquo;네 뿌리, 네가 신앙생활을 하는 그 뿌리의 주체가 너냐,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이 내 뿌리가 되느냐?&amp;rdquo;라는 그것을 보라는 거예요. 처음 사랑을 버리게 한 것도, 버렸으니까 처음 사랑을 찾으면 되잖아요. 그러면 인내했다, 그다음에 성실했다, 자칭 사도라 하는 악한 거짓 사도를 들춰냈다, 게으르지 않았다, 거기에다가 플러스(+) 처음 사랑까지 확보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그러면 하나님, 저는 그럼 합격입니까? 그러면 이거는 온전한 신앙의 절정입니까? 이렇게 하나님 앞에 따지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amp;ldquo;가만히 있어봐. 여기 8절에 서머나 교회가 있어. 그것도 네가 들어야지&amp;rdquo; 왜? 편지를 보낸 에베소 교회 사자가 결국은 7개 교회의 몸통을 따라가면, 하나의 몸통인 그리스도의 몸으로 귀착된다면, 나는 뭐 에베소 교회니까, 서머나 교회 책망하는 것은 나랑 상관없지. 나는 에베소 교회니까 에베소 교회의 책망에 대해서 하자 없도록 완비하면 된다는 꼼수를 또 쓰기 마련이에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참, 이 신앙생활을 좀 잘 해보려고 하다가, 점점 더 추가적이고 추가적인 그러한 문제가 자꾸만 생기죠. 이게 육신이 시공간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겁니다. 에베소교회에서 나왔던, &amp;ldquo;이러면 안 돼&amp;rdquo;라는 그 에베소라는 교회, 항구 도시예요. 그 에베소라는 지역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서, 서머나 교회 교인이 &amp;lsquo;나는 그 동네 사람 아니야&amp;rsquo;라고 할 수 없는 이유가, 에베소 교회의 시공간과 서머나 교회의 시공간이 동일한 시공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amp;lsquo;그렇다면 우리는 이 에베소 교회에서 나오는 이 모든 말씀뿐만이 아니라, 다른 일곱 교회 모든 말씀을 다 지키지 않는 한, 천국은 이제는 물 건너갔네&amp;rsquo;라고 또 이렇게 절망하고 좌절해요. 하고 싶으면 하라 하세요. 그게 바로 자기의 팔만 내민 사람이에요. 내 구원에 환장해서, 내 구원에 미쳐서, 성경 말씀에 팔만 내밀면서, 나를 건져 달라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팔 내미는 것은 자기가 할 수 있잖아요.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없는 그 뿌리를 건드려서, 삽을 통해서 통째로 뿌리까지 뽑아서 건지게 된다면, 이런 에베소 교회든, 서머나 교회든, 우리는 감사함으로 받으면 되는 겁니다. 어떻게?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그것마저도 이게 내 일이 아니고 주님께서 나를 그렇게 몰아붙인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면 되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참 쉽지요. 제가 여러 번 이야기했잖아요. 사람이 내가 믿음이 없다고 인식하는 것이, 그게 바로 신앙이 있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신앙이 넉넉하게 있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하나님이 일으키는 일이에요. 어떤 인간이 믿음이 없어요? 다 태어나면서 믿는데요. 인간은 태어나면서, 다 믿음을 갖고 태어나요. 그게 거짓된 믿음이지만, 하여튼 믿음은 다 갖고 태어나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근데 내가 태어날 때 갖고 있던 믿음 자체가, 아무리 종교적인 흉내를 내도, 그거는 무조건 육이라는 이유 때문에, 무조건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고 신나게 믿어버리는, 신나게 믿어지는 현상은, 내가 믿는 게 아니고, 육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영에서 주입된 거거든요. 제가 아주 쉽게 가겠습니다. 너무 어렵게 이야기했는데, 쉽게 가겠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고린도전서 13장 1절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요. &amp;ldquo;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amp;rdquo; 누가 옆에 와서 귀에 대고, &amp;lsquo;이게 복음이야&amp;rsquo;라고 귀 바로 옆에다가 말하면 이거는 뭡니까? 갱!갱!갱!갱! 꽹과리 치는 거예요. &amp;lsquo;근데 이게 천사의 복음이거든&amp;rsquo; 이렇게 해도, 천사의 복음이라도 갱!갱! 꽹과리 치는 거예요. 그리고 구제를 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어려운 사람 구제하고,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다고요? 산을 옮길 만한 믿음, 기적을 유발하는 믿음, 그것은 성경에서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 보면, 그거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어요. 왜? 이유는 사랑이 빠져 있기 때문에. 사랑이 빠져 있는 채, 기적을 행하든, 권능을 행하든, 복음을 전파하든, 주의 이름으로 강의를 하든 설교를 하든, 그거는 아무것도 아닙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사랑으로 전달돼야 해요. 그래서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고 언급하는 이유가, 앞에 있는 너의 열심, 거짓 사도를 드러내는 그 지식, 그 모든 지식이 사랑이 빠져버리니까 그거는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그래서 오늘 본문을 축약하면 이겁니다. &amp;ldquo;에베소 교회야&amp;rdquo; 예, &amp;ldquo;넌 아무것도 아니야!&amp;rdquo; 감사합니다!! 이러면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교회는 사람의 집단이 교회가 아니기 때문에.&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하나님의 계시는 교회의 사자에게 줬지, 교회의 당회장 목사부터 집사나 장로한테 준 게 아니에요. &amp;ldquo;이미 하나님의 사자, 성령, 천사에게 붙잡힌 사람이 누구예요?&amp;rdquo;라는 이거 확인하기 위해서 준 거예요. 이거 확인하기 위해서. 천사에 붙들리는 사람은 성경에서 어떤 욕설을 하더라도, &amp;lsquo;당연하죠!&amp;rsquo; 왜? 아무것도 아니니까. 이러면 끝날 문제 아닙니까?&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이러면 끝날 문제라고요. 변명하면서, &amp;lsquo;주여, 내가 거짓 사도를 드러낸 건 잘했잖아요&amp;rsquo;라는 뭐 이런 게 있는데, 여기서 이 짧은 시간에 설교를 끝내면서, 이 점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도대체 이 에베소 교회에 사도 바울이 뭐라고 계시했는지, 분명히 에베소서라는 편지가 있어요. 그 편지에서, 사도 요한에게서 나오는 에베소의 천사에게 준 그 내용 말고, 이미 사도 바울에 의해서 에베소에 준 편지가 에베소서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그 에베소서의 내용을 여기서 짧게 보게 되면 이거예요. 1장 1~2절에, &amp;ldquo;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amp;rdquo;라고 했거든요. &amp;ldquo;있을찌어다&amp;rdquo;라고 하는 것은, 이 은혜를 뺄 사람이 없다는 뜻이에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그 대상이 누구냐? 교인이 아니에요. 성도예요. 주님이 자기 성도를 성도 만드는 거, 성도 만들기예요. 사람이 아니고 성도라니까요. 성도. 성도는 베드로전서 1장 2절에 보면 피뿌림을 받는 자를 성도라고 해요. &amp;ldquo;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피 뿌림을 받는 자. 인간보다, 인간의 행위보다, 생각보다, 인간이 하는 사랑과 믿음과 소망보다도 피의 위력이 그 사람을 붙들고 있는 것, 그 능력으로 붙들고 있는 것, 피와 함께 살아가는 자, 이게 성도입니다. 왜? 피로 거룩하게 되니까요. 그러면 이 에베소 교회에서 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된 것이, 1장에 보면 창세기 전에 선택되었다고 나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그리고 2장에서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인하여 너희가 이미 거룩한 성전이 되었다고 나오고, 3장 10장에서는 &amp;ldquo;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amp;rdquo;라고 나오고, 5장에서는 네가 죽었는데 살아났다고 나오고, 그다음에 6장 10~12절에 너희는 악한 마귀와 싸운다고 나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amp;ldquo;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이게 뭐냐? 이게 말씀입니다. 문제는 에베소 교인들이 이걸 지키려고 할 때, 이게 사달 나는 거예요. 이걸 지키는 것이 아니고, 지적받고 적용받는 거예요. 지적받으면서 감사하는 겁니다. 왜? 우리의 육신은 아직도 시공간에 있으니까, 아직 눈에 띄는 그런 신체로 있으니까, 이것이 없어질 때까지 계속 지적을 받는다는 것은, 이거는 창세전에 이미 구원되기로 작정 된 사람, 이미 성도가 된 사람, 십자가의 피의 영역에 있기에, 말씀과 더불어서 성령이 찾아오기에, 우리가 딛고 있는, 내가 스스로 나를 구성하는 이 시공간의 이 허사를, 허사로 돌리도록 지적해 주시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따라서 결론적으로 우리가 이 땅에서 성도로 살아가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교인 되고, 하나님 백성 되려는 우리의 헛된 시도, 몸통은 밖에 그대로 두고 손만 내밀어서 도와달라는 이 손을 뗏지! &amp;ldquo;네 몸통이 밖에 있는데 쓸데없는 손 내밀지 말고, 날마다 사건을 통해서, 일상을 통해서 지적이나 받아라&amp;rdquo;라고 하는 그거, 그게 바로 우리 속에, 안 지키는데 말씀이 우리 속에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474747; text-align: start;&quot;&gt;하나님 아버지, 저희들 우리 자신에 대해서 미련과 애착으로 지독하게 붙들고 있습니다. 성경 안다, 복음 안다, 하나님, 주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우리의 육신은, 그러니까 내 인생을 내가 꾸려나간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시도가 끊임없이 있을 때, 날마다 주님의 사랑의 말씀이, &amp;ldquo;너는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amp;rdquo;라는 식으로 찾아와 주시는 이 은혜를 늘 감사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신약 설교, 강의(이근호)/요한계시록</category>
      <author>정인순</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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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4 May 2026 23:19:0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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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천국 만들기 사무엘상 13:9 26052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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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a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href=&quot;http://media.woorich.net/%EC%8B%A0%ED%95%99%EA%B0%95%EC%9D%98/%EA%B4%91%EC%A3%BC26/%EC%B2%9C%EA%B5%AD%EB%A7%8C%EB%93%A4%EA%B8%B0a260522.mp3&quot;&gt;음성1&lt;br /&gt;&lt;/a&gt;&lt;a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href=&quot;http://media.woorich.net/%EC%8B%A0%ED%95%99%EA%B0%95%EC%9D%98/%EA%B4%91%EC%A3%BC26/%EC%B2%9C%EA%B5%AD%EB%A7%8C%EB%93%A4%EA%B8%B0b260522.mp3&quot;&gt;음성2&lt;br /&gt;&lt;/a&gt;&lt;a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href=&quot;http://media.woorich.net/%EC%8B%A0%ED%95%99%EA%B0%95%EC%9D%98/%EA%B4%91%EC%A3%BC26/%EC%B2%9C%EA%B5%AD%EB%A7%8C%EB%93%A4%EA%B8%B0A260522.MP4&quot;&gt;동영상1&lt;br /&gt;&lt;/a&gt;&lt;a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href=&quot;http://media.woorich.net/%EC%8B%A0%ED%95%99%EA%B0%95%EC%9D%98/%EA%B4%91%EC%A3%BC26/%EC%B2%9C%EA%B5%AD%EB%A7%8C%EB%93%A4%EA%B8%B0B260522.MP4&quot;&gt;동영상2&lt;br /&gt;&lt;/a&gt;&lt;a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href=&quot;http://media.woorich.net/%EC%8B%A0%ED%95%99%EA%B0%95%EC%9D%98/%EA%B4%91%EC%A3%BC26/%EC%B2%9C%EA%B5%AD%EB%A7%8C%EB%93%A4%EA%B8%B0C2605-22_Untitled.mp4&quot;&gt;동영상3&lt;/a&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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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녹취:이하림&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광주강의20260522a 사무엘상 13장 9절(천국 만들기)-이 근호 목사&lt;/span&gt;&lt;br /&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신구약 성경에 대한 질문과 답변』42페이지, 오늘 좀 수월하게 시작해봅시다. [20. 시편에 나오는 명령어]. [질문&amp;gt; 요즈음 저희 교회 목사님께서는 새벽예배 때 시편을 강해하고 계십니다. 오늘 새벽에는 시편 15편을 강해하셨는데, 주 내용은 &amp;ldquo;오늘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신자라면 10가지의 규범을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아주신다.&amp;rdquo;는 것입니다. 이 설교를 듣고 돌아오는 제 발걸음이 무척 무겁기만 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살지 못한 저의 책임이 큽니다만, 이곳에서 목사님의 글을 읽다보면 이 본문이 윤리적인(~하라, ~하지 말라) 문제로 끝날 것 같지는 않을 듯 싶습니다. 말씀에 대한 해설을 부탁드립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답변&amp;gt; 시편의 중심점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사마리아 여인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거기에 예배란, 오직 메시아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메시아가 없으면 진리와 영으로 드리는 예배가 불가능해집니다. 왜냐하면 메시아는 마지막 때에 영을 주시는 분으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행 2:31-33).&amp;hellip;]&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요한복음 4장에서 성령과 진리로 예배하는데(24절, &amp;ldquo;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amp;rdquo;) 성령, 그 영은 오순절 성령이 오셔야 가능하거든요. 그러니 바른 예배란 인간에게는 없지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만약 인간들의 모임으로만 예배가 된다고 한다면, 사마리아 여인의 오해와 같은 차원입니다. &amp;lsquo;예루살렘에서 드려야 하나요, 그리심 산에서 드려야 하나요? 일요일에 드려야 하나요, 수요일에 드려야 예배를 받나요? 주일날은 11시에 드려야 하나요, 오후 2시에 드려야 하나요? 본당에서 드려야 하나요? 교육관에서 드려야 하나요? 집에서 드려야 하나요?&amp;rsquo;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시편(15편)에 나오는 의인은, 여호와의 관계성 안에 놓인 자입니다. 그런데 온전한 관계는 장차 오실 예수님과의 관계뿐입니다. 따라서 장차 오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자기 백성을 어떻게 장악하고 관리하고 인도하시느냐에 대한 이야기가 시편입니다. 그런데 시편은 공간적이지만 신약에서는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상태를 말합니다.&amp;hellip;]&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amp;lsquo;시편은 공간적&amp;rsquo;이라는 말은 시편 시대에는 특정한 장소, 또는 특정한 장소를 향하여 그렇게 예배를 드렸어요. 예루살렘이죠. 그래서 공간적이지만 신약에서는 &amp;lsquo;예루살렘입니까, 그리심 산입니까&amp;rsquo; 하는 그런 시대는 이제 끝난 겁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amp;ldquo;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amp;rdquo;(롬 14:17). 그런데 성령은 신약 시대에 와서 오직 예수님의 의와 공로만을 증거하는 데 모든 활동을 집중하십니다.&amp;hellip;]&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렇게 되기 위해서 그럼 예배하는 인간은 어떻게 되는가? 여기는 안 나와 있습니다만, 그럼 예배하는 인간은 어떻게 되는가? 이걸 생각해야 돼요. &amp;lsquo;내가 굳이 인간일 필요가 있는가?&amp;rsquo; 이 점을 한번 생각해봅시다. 내가 굳이 인간일 필요가 있을까? 방금 질문한 이 분의 허점은 뭐냐? 출발점이 뭡니까? 내가 인간이라고 하는 거예요. 이게 문제점이 되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amp;ldquo;내가 인간이다. 인간인데 하나님이 계시니까 예배를 드려야 되겠다.&amp;rdquo; 그런데 하나님은 뭐냐? &amp;ldquo;네가 인간이냐? 너 인간 맞아? 네가 뭘 보고 스스로 인간이라고 자부하느냐?&amp;rdquo; &amp;lsquo;인간이다&amp;rsquo;, 또는 &amp;lsquo;인간이 아니다&amp;rsquo;의 결정은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서 결정되는 거예요. 율법에 의해서. 뭐 모양새가 인간 모양을 하고 있으니까 인간 같아 보이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신약에는, 예배할 수 있는 인간은 없습니다. 신약에는 예배를 할 수 있는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아요. 내가 인간이라고 할 때는 &amp;lsquo;내가 인간이다&amp;rsquo;라는 것을 증명할, 또는 증빙할 조건, 이유를 누가 동원합니까? 누가 동원하죠? 내가 동원합니다. 이게 문제잖아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지금 율법에 의해서 인간이냐, 아니냐를 결정해야 되는데 자기가 인간답다, 나는 인간처럼 제대로 살아왔다는 조건을 누가 제시해요? 본인이 제시하는 거예요. 누구한테? 타인에게. 타인에게 제시하다가 이제는 하나님도 자기에게는 타인이잖아요. 타인에게 &amp;lsquo;나 인간입니다. 내 경배를 받으시고 내 기도를 받으소서.&amp;rsquo; 이렇게 시작되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럼 뭐가 날아가 버렸어요? 뭐가 불필요하게 되었습니까? 율법 자체가 아무 소용없게 되었죠. 본인이 본인을 인간답다고 일단 그걸 전제로 깔고 &amp;lsquo;신이시여, 내 기도와 찬양을 받으소서.&amp;rsquo; 하는데 그러면 율법은 왜 낍니까?&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율법은 무슨 언약이라 하죠? 율법은 무슨 언약입니까? 모세언약이죠. 언약의 출처가 어디입니까? 땅입니까, 하늘입니까? 하늘이죠, 출처가. 그럼 인간은 언약에 대해서 알았다, 몰랐다? 전혀 몰랐죠. 인간은 본인에 대한 조건과 이유를 본인이 알고 있는 걸로 제시하면서 &amp;lsquo;저 인간 맞습니다.&amp;rsquo;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다시 한번 생각해봅시다. &amp;lsquo;내가 굳이 인간일 필요가 있을까?&amp;rsquo; 이걸 생각해보자 이 말입니다. 그럼 신약에 와서 예배드리는 것은 인간이 아닙니까? 그들은 인간이 아니에요. 성도죠. 성도입니다. 인간이 아니무니다. 그들은 성도에요, 성도. 인간은 그냥 자기가 인간이라고 우기는 자이고, 성도는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서 재창조된 자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성도란, 거룩한 존재죠. 이 인간은 하나님께서 전혀 받지도 않는 더러운 존재입니다. 자체가 더러운데, 그 더러운 인간이 드리는 예배, 찬양, 기도를 받겠습니까? 안 받지요. 이 더러운 인간 배후에 누가 있어요? 악령이 있죠. 악마가 있어요. 만약에 이 인간이 천국 간다면 그 뒤에 누가 따라 들어옵니까, 천국까지? 악마가 같이 따라 들어오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래서 여기 &amp;lsquo;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고&amp;rsquo;. 먹고 마시는 것은 누가 할 수 있는 일입니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amp;lsquo;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amp;rsquo; 이것은 인간이 못합니다. 인간이 못하고 누구만 할 수 있어요? 인간은 못하니까 누가 하게 하십니까? &amp;lsquo;성령 안&amp;rsquo;이니까 성령이 하게 하셔요. 성령이.&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amp;hellip;성령은 신약 시대에 와서 오직 예수님의 의와 공로만을 증거하는 데 모든 활동을 집중하십니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다음 계속 봅시다. [따라서 오늘날의 예배란, 시편을 펴든로마서를 펴든 오직 예수님의 복음과 은혜성을 중심으로 성도들이 한데 모여 하나님과 주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에요, 성도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물론 어느 장소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amp;hellip;]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죠. [쉽게 말해서 교회란 고정된 장소 개념으로 보지 마시고, 예수님 복음 중심으로 모여드는 성도들과의 모임과 교제 관계로 보면 됩니다.] 결과적으로 모인 성도들의 모임이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교회는 예수님 중심이라야 하지 결코 교회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래서 끝에 [&amp;ldquo;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amp;rdquo;(마 18:20)]&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 다음 44페이지에 [21. 재질문]. [질문&amp;gt; 목사님의 답변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감사드립니다. 일일이 이렇게 어리석은 자들의 글을 보고 계시노라면 답답도 하시련만 늘 성의 있게 말씀해 주시니 말이죠.&amp;hellip;] 어리석은 자들이 아니고 인간도 아니라는데 지금&amp;hellip; 뭐 인간일 경우에 &amp;lsquo;어리석다&amp;rsquo; 이게 되는데, 인간 자체가 아닌데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어리석은 질문 하나 더 하겠습니다. 첫째, 시편 15편 1절에서 시인(다윗 - 다윗이 어떻게 또 시를 지었는지&amp;hellip; 시를 많이 짓기는 솔로몬이 많이 지었죠.)이 &amp;ldquo;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amp;rdquo;란 구절이 뜻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amp;lsquo;하나님께 예배 드리러 나오는 자는 어떠한 자입니까&amp;rsquo;라는 의미입니까? 그렇다면 다윗은 그만큼 자신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자신 있다는 건가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둘째, 마지막 5절에서 &amp;ldquo;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이다&amp;rdquo;는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 얼핏 보기에도 앞에서 말하는 10가지의 규범들을 지킨 자들을 가리키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성도의 윤리적인 삶을 말하는 것은 아닌지요? 목사님의 글이 이해되었는데 5절의 이 마지막 말씀이 안 풀리네요. 1절의 시인의 질문도 그렇고요. 부탁드립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답변&amp;gt; 언약이란 일종의 노아의 방주와 같아서 그 안에 들어가면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다른 관계가 성립되는 것입니다.&amp;hellip;] 방주의 특징이 &amp;lsquo;폐쇄 공간&amp;rsquo;이라는 거예요, 폐쇄 공간. 언약 안에 있다는 말은 바깥에, 바깥 세상에서 어떤 기억을 갖고 있든 간에 이미 그것은 끝난 문제에요. 왜? 지금 방주 안 노아 가족 입장에서 바깥은 난리도 아니죠. 바깥에 산 생물이 있어요, 없어요? 다 죽었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지난 낮 설교할 때 노아홍수 이야기했잖아요. 노아홍수 이야기를 왜 끄집어냈느냐 하면, 율법의 그 촘촘함이 어느 정도냐? 소낙비 쏟아질 때 논리상은 빗방울이 위에서 내려오는데 한꺼번에 물 붓듯 쏟아지지는 않잖아요. 빗방울이 시차를 두고 여기 내리고 저기 내리니까 그 중간지점으로 빠져나갈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하는데, 한번 빠져나가보죠. 집에 오면 전부 축축하게 다 젖어 있잖아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소낙비 오는 것도 우리가 그 사이사이로 비 안 맞고 못 빠져나가잖아요. 그런데 노아홍수 같은 경우에는 소낙비 오기는 오는데 쏟아지듯이 오기 때문에 못 빠져나가죠. 율법은 이처럼 빈틈이 없다는 것이 바로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하나를 어기면 다 어긴 것이 되는 거예요(2:10). 빈틈이 없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렇다면 노아홍수 때 심판에 빈틈이 없죠. 예를 한번 들어볼게요. 물어볼 테니까 답변해보세요. 노아홍수 때 사람들이 뭐 했느냐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팔고 했죠. 여섯 가지입니다. 그럼 안 먹고 안 마시고 시집 안가고 장가 안가고 장사 안한 사람은 구원받습니까? 구원받아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어떤 조항을 줄 때 열 가지나 스무 가지라는 자체가 의미가 없어요. 가짓수가 의미가 없어요. 이게 한 가지든 백 가지든 천 가지든 빠질 구석은 없어요. 베드로가 예수님보고 &amp;ldquo;일곱 번 용서하면 용서로 끝나는 겁니까?&amp;rdquo; 할 때 주님께서 어떻게 했습니까? &amp;ldquo;일흔 번에 일곱 번.&amp;rdquo; 사백구십 번 용서하라 하죠. 그럼 사백구십 번 용서하면 끝납니까? 일흔 번에 일곱 번에 일곱 번에 일곱 번 용서하라 하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인간이 스스로 자기를 하나의 인간으로 본다는 것은 개체로 본다는 거예요. 율법을 자기가 상대할 수 있는 그러한 조항이라고 보는 겁니다. 율법은 예수님한테 향하게 되어 있어요. 인간은 어디를 걸려도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요구하는 청구서의 빚이 인간이 개인적으로 또는 집단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액수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엄청나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우리가 숨 쉬고 있는 공기 하나 공짜 아닙니다. 예수님의 피의 대가로 주어지는 거예요. 예수님의 피와 살의 대가로 이렇게 목숨이 유지되고 있죠. 그것을 청구할 때 감당 못합니다. 그래서 지옥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이건 참고로 알아두시면 됩니다. 지옥은 뭐로 만들어지느냐 하면 &amp;lsquo;잔&amp;rsquo;으로 만들어져요, 잔. 그 잔은 무슨 잔이냐 하면 &amp;lsquo;쓴잔&amp;rsquo;입니다. 이 쓴잔에 뭐가 가득하냐 하면 &amp;lsquo;저주&amp;rs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예수님의 쓴잔을 마심으로써 그 취지, 갚아주심의 의미를 모르는 자에게는 쓴잔 안에 있는 예수님이 받았던 영원한 저주가 고스란히 거기에 지옥의 본질로 영원토록 계속됩니다. 그 이유가, 지옥이든 천국이든 예수님이 어디든지 주가 되게 하심이라.&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지옥은 예수를 우리가 안 믿어서 가는 게 아니고, 예수님의 쓴잔의 부정적 결과물 때문에 지옥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예수님의 쓴잔, 아버지께 &amp;ldquo;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amp;rdquo; 했잖아요, 그 저주를 마실 때 이미 지옥은 성사됩니다. 이유는 뭐냐? 내 쓴잔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왜 그들은 쓴잔의 의미를 몰랐는가? 그들은 하나님 앞에 나온 피조물이에요. 피조물은 예수님 빼놓고 어떤 자도 대표자가 될 수 없어요. 피조물은 창조자와 거래가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피조물의 형상으로 오셔서 아버지와의 계약, 언약이 체결되면서 예수님의 하신 일을 축복한 자는 복을 받고 예수님이 하는 일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자는 저주받고. 영원토록. 그게 바로 지옥이잖아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게 창세기 12장 아브라함에게 이야기한 아브라함 언약이에요. 아브라함 언약이 아브라함의 유일한 자손인 예수님에게 성취가 되면서 지옥이 마련되어지고 천국이 마련되어지는 겁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니까 이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굳이 인간이 될 필요가 있어요, 없어요? 인간이라고 그런 걸 이야기 안 해도 이미 천국을 가면 되잖아요. 세상에, 이런 복이 어디 있어요. 성도의 기쁨은 다시는 나의 행위와 나의 행동으로 안 돌아와도 된다는 점이에요. Do you understand? 내 행동과 내 행위에 대해서 내가 굳이 안 따져도 나의 운명은 이미 패스(통과)되었고 확정되어 있어요. 세상에, 이런 복이 다 있어요, 이런 복이.&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주님이 하신 일로 인하여 결정되었다는 것. 이게 바로 모든 모텔의 문을 다 열 수 있는 마스터 키. 이 방은 천국, 이 방은 지옥. 모든 키는 누가 갖고 있는가? 예수님이 갖고 있어요. 하나님이 하시는 수준, 위상이 나와 협의하거나 의논할 것 없는, 아버지와 아들의 협의에서 끝나버린 그 위상이에요. 그 원칙으로 지금도 성도를 붙잡아주십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 위상을 여러분들이 내 생각과 내 행동으로 막지 마시고 우리는 그 위상으로만 버텨야 돼요. 평생. 인생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amp;lsquo;내가 잘할 걸. 그때 그렇게 하면 안됐는데, 앞으로 고쳐야 돼.&amp;rsquo; 이러한 식으로 다시 나한테 행동의 책임이 있는 것처럼 돌아오는 경우는, 없나이다. &amp;ldquo;누가 너를 정죄하더냐?&amp;rdquo; 뭐라고 했어요? &amp;ldquo;없나이다.&amp;rdquo; 용서를 주님이 하셨잖아요, 일방적으로.&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참, 이 복을 시기, 질투하는 존재가 있었으니 그게 누구에요? 마귀. 그 마귀 앞잡이들이 누구입니까? 인간들이죠. 인간들이 시편 15편에서 열 가지 끄집어내는 이유가 뭡니까? 네가 너를 관찰하고 네가 너를 잘 관리하라 이 말이잖아요. 이게 바로 복음에 대들었다는 마귀 종들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게 아닌 것 같아서 이렇게 20번, 21번 질문을 하는데 이 질문한 본인도 마찬가지에요. &amp;lsquo;야, 나 이거 믿기만 하면 이제 구원받겠구나.&amp;rsquo;가 아니라, 그 사람도 이 복음은 하나님이 나를 인간취급 안한다는 데서 기쁨을 가져야 되겠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자, 율법 나왔으니까 법에 대해서 잠시 보겠습니다. 지난 낮 설교(약 2:10-11, &amp;lt;율법이라는 톱날&amp;gt; 260517)도 법에 대해서, 율법에 대해서 언급했죠. 율법이 뭐냐? 그때 반드시 &amp;lsquo;율법이 아닌 것이 뭐냐?&amp;rsquo;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율법이 아닌 것이 뭔지 생각해봅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사무엘상 13장 9-10절, 사무엘상 14장 25절, 그리고 사무엘상 28장 3절, 이 세 구절을 찾아봅시다. 사무엘상 13장 8절부터 보면 &amp;ldquo;사울이 사무엘의 정한 기한대로 이레를 기다리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사울이 가로되 번제와 화목 제물을 이리로 가져 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amp;rdquo;죠. 전쟁할 때 사울이 뭐부터 드립니까? 제사 드리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거 율법입니까, 율법 아닙니까? 사울이 율법을 왜곡했죠. 전쟁할 때 제사 드린다, 율법처럼 보이죠. 율법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게 율법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amp;hellip; 율법을 주시고 난 뒤에 그 의미를 인간이 어떤 식으로 터치하고 관련짓고 그걸 이해할 때 동일한 문자로 된, 동일한 자국으로 되어있는 율법이라도 인간을 경유하면 율법이 안돼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10절에 &amp;ldquo;번제 드리기를 필하자 사무엘이 온지라&amp;hellip;&amp;rdquo; 올 걸 좀 앞당겨 왔으면 참 좋을 뻔했죠. 그런데 사무엘은 사울이 기다릴 때 왜 제때 안 왔습니까? 사울의 율법에 대한 이해가 진짜 율법을 주신 취지와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까발리기 위해 하신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아까 이야기했지만 자기가 인간인 줄 알고 율법을 통해서 율법을 매개로 해서 인간은 율법대로 살고 율법을 지키면 율법대로 지켰기 때문에 하나님이 도와준다는 이 의식 자체가, 있는 율법의 의미를 완전히 훼손시키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따라서 율법이 뭐냐 하는 것은 반드시 뭐를 거쳐야 되죠? 율법이 아닌 것이 무엇이냐를 거쳐야 율법이 등장합니다. 율법은 반드시 인간이 율법대로 살고 난 뒤에, 행하고 난 뒤에 반드시 뒤에 찾아와요. 그래야 율법이 우리를 지적할 수 있기 때문에.&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자, 식사할 때 기도합니다. 율법입니까, 율법 아닙니까? &amp;lsquo;식사하는 게 뭐가 나쁘냐?&amp;rsquo; 이렇게 되죠. 식사할 때 기도했습니다. 기도 내용이 뭡니까? &amp;lsquo;이렇게 식사를 줘서 감사합니다.&amp;rsquo; 했죠. 기도하고 난 뒤에 국을 먹는데, 짜요. 그럴 때, &amp;ldquo;오늘 당신 뭐 배고프니까 화가 났어? 화가 나서 나 지금 엿 먹이는 거야? 소금을 왜 이리 많이 넣었어? 응? 화나면 화난다고 이야기해야지, 왜 이렇게 많이 넣었어?&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방금 뭘 냈어요? 화를 냈죠. 그러면 아까 기도내용은 뭡니까? &amp;lsquo;오늘도 귀한 식사 주셔서 감사합니다.&amp;rsquo;라고 했죠. 그러면 그 국을 끓였던 아내 자리에 남수단 어린아이가 앉아있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지금 굶은 지 일주일 됐는데 짜다는 건 얼마나 포시러운 거예요. 시건방지다는 뜻이겠지요. 지금 우물도 다 말라서 기생충 있든지 말든지 도랑에 고인 빗물 마시는 입장에서 &amp;ldquo;콩나물국이 좀 짠 것 같아.&amp;rdquo; 그런 말이 나와요, 안 나와요? 가자 지구에 한번 가봐야 돼. 이스라엘에 잡혀서 가봐야 돼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니까 우리가 습관상 하는 식사기도 자체가 우리를 지적하기 위함이에요. 그걸 지적할 때, 그것은 율법은 아니고 율법적 기능이 작동한 거죠. 율법적 기능이. 콩나물국을 통해서 우리를 지적하기 위해서.&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다시 해보겠습니다. 어렵게 하지 않고 천천히 하겠습니다. 다시는 나의 행동과 행위로 돌아오지 않게 할 정도로 모든 우리의 미래, 최후는 주님이 일방적으로 값을 치르고 다 끝났어요. 끝났죠. 그러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뭡니까?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범사에 화 안 내고 감사할 것만 남아있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콩나물국 하나 짜다고 해서 갑자기 화를 냈죠. 그러면 결국 뭡니까? 예수님께서 이미 다 이루었던 율법이 복음 안에서 우리의 죄를 지적하는 용도로 살아있죠. 율법기능이 살아있는 거예요. 그게 야고보서에 나옵니다. 이번 주 본문에 나와요. &amp;ldquo;네가 율법에서 자유로워?&amp;rdquo; &amp;ldquo;예.&amp;rdquo; &amp;ldquo;그런데 왜 너는 긍휼을 몰라? 불쌍히 여김을 몰라?&amp;rdquo; 이렇게 되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amp;ldquo;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amp;rdquo;(약 2:12-13)&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니 분명히 이것은 인간에게 하는 게 아니고, 성도에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성도에게. 성도에게 율법적 기능을 발휘해서 그걸 통해서 주님이 우리에게 거저 주신 -엄청난 가치가 있지만 우리에게 거저 줬잖아요-, 거저 갚아주신 그 갚아주심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가 얼마나, 진짜 갚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는 것을 또다시 우리에게 일깨워줌으로써 매사에 감사의 폭이 넓어지도록 하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 다음에 사무엘상 14장 25절, 마찬가지 질문을 할 수 있어요. 14장 24-27절, &amp;ldquo;이 날에 이스라엘 백성이 피곤하였으니 이는 사울이 백성에게 맹세시켜 경계하여 이르기를 저녁 곧 내가 내 원수에게 보수하는 때까지 아무 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백성이 식물을 맛보지 못하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들이 다 수풀에 들어간즉 땅에 꿀이 있더라 백성이 수풀로 들어갈 때에 꿀이 흐르는 것을 보고도 그들이 맹세를 두려워하여 손을 그 입에 대는 자가 없으나 요나단은 그 아비가 맹세로 백성에게 명할 때에 듣지 못하였으므로 손에 가진 지팡이 끝을 내밀어 꿀을 찍고 그 손을 돌이켜 입에 대매 눈이 밝아졌더라&amp;hellip;&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왕이 말하기를 &amp;ldquo;블레셋 사람이 다 패배할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마라. 만약 내 명령을 어긴 자는 저주를 받는다.&amp;rdquo; 했어요. 이거 율법입니까, 율법 아닙니까? 율법 아니죠. 하여튼 인간에게는 율법이 없어요. 유사 율법이죠, 유사 율법. 유사 율법을 그렇게 싫어하는 이유가 뭐냐? 유사 율법, 명령을 내리는 왕의 명령은 하자가 없다는 것을 현실과 억지로 일치되게 하고자 노력하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내가 내린 명령대로 될 때, 그때 주어지는 효과가 뭐다? &amp;lsquo;명령내린 나는 하나님께서 편들어줄 정도로 이게 진짜 현실화되었다.&amp;rsquo; 이 말은 &amp;lsquo;나는 그만큼 하나님 편에 서 있다&amp;rsquo; 이 말이거든요. 그걸 본인이 확인하고 싶은 거예요. &amp;lsquo;하나님도 내 편이다&amp;rsquo; 그걸 확인하고 싶은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아들이 꿀을 먹었어요. &amp;ldquo;꿀 먹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amp;rdquo; 아주 공개적으로 선언을 했는데, 아들이 꿀을 먹었어요. 그럼 어떻게 됩니까? 아들 요나단을 죽여야 돼요, 살려야 돼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게 29절에 나오죠. &amp;ldquo;요나단이 가로되 내 부친이 이 땅으로 곤란케 하셨도다 보라 내가 이 꿀 조금을 맛보고도 내 눈이 이렇게 밝았거든 하물며 백성이 오늘 그 대적에게서 탈취하여 얻은 것을 임의로 먹었더면 블레셋 사람을 살육함이 더욱 많지 아니하였겠느냐&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무슨 뜻이냐 하면요. 지금 요나단을 뭐를 보느냐? 블레셋이 하나님 원수잖아요, 이스라엘을 공격했기 때문에. 그럼 결과가 뭐냐? 하나님의 뜻이 뭐냐? 하나님의 원수 블레셋이 망하는 게 하나님이 원하는 거잖아요. 지금 사울 왕은 자기 가오를 세우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어요. 일의 성과가 자기에게로 돌아오는 데에 관심이 있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래서 오기가 나서 44절에, &amp;ldquo;사울이 가로되 요나단아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amp;rdquo; 45절에 &amp;ldquo;백성이 사울에게 말하되 이스라엘에 이 큰 구원을 이룬 요나단이 죽겠나이까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옵나니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은 그가 오늘 하나님과 동사하였음이니이다&amp;hellip;&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자, 백성들이, 하나님이 사울 편에 섰다는 말을 합니까, 아니면 요나단 편에 섰다고 말합니까? 요나단 편에 섰다고 하는 거예요.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요나단을 공격하는 것은 결국 사울로 하여금 &amp;lsquo;당신은 하나님 편에 애초부터 서지 않았다&amp;rsquo;는 것을 들키는 셈이 되겠죠. 이것이 하나님과 함께 있다고 폼 내다가 아주 우사를 당하는 경우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 다음에 더 우사스러운 일이 또 있습니다. 사무엘상 28장 3절. 인간에게 나오는 법이 이렇게 한계를 갖고 있어요. 자기의 가오, 자기의 가치 거기서 자유롭지 못하고 항상 그걸 노리고 있죠. 사무엘상 28장 3절, &amp;ldquo;사무엘이 죽었으므로 온 이스라엘이 그를 애곡하며 그의 본성 라마에 장사하였고 사울은 신접한 자와 박수를 그 땅에서 쫓아 내었었더라&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쫓아냈는데 블레셋이 쳐들어오니까 7절에 사울이 누구를 찾아갑니까? 엔돌에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죠. &amp;ldquo;무당 굿하는 거 다 죽여라! 쫓아내라!&amp;rdquo; 해놓고는 신접한 여인을 찾아갑니다. 신접한 여인이 보고 싶어 찾아간 게 아니고, 신접한 여인이 있어줘야 죽은 사무엘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사무엘은 이미 죽어버렸잖아요. 사무엘은 하나님의 선지자니까 앞으로 자기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한데 사무엘은 죽어버리고, 신접한 여인은 자기가 쫓아내고. 그러니까 답답한 사람이 물 찾는다고, 자기가 신접한 여인한테 가는데 왕이 가오가 있지, 자기가 쫓아내고는 가오가 있으니까 변장을 하고 가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변장을 하고 다른 옷을 입고 갈 때, 신접한 여인이 거기에 속아 넘어갑니까, 안속아 넘어갑니까? 안속아 넘어가죠. 9절에, &amp;ldquo;내가 당신 수법 다 아는데, 점치러 왔다는 핑계대고 나를 체포해서 죽이려고 왔죠?&amp;rdquo; 그러니까 10절에서 &amp;ldquo;아니다. 답답해서 왔다.&amp;rdquo;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지금 도대체 사울의 관심사가 어디에 있어요? 자기 구원에 있죠. 자기 위치, 자기 구원, 자기가 잘 되는 데에 있죠. 사무엘상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뭐가 없느냐 하면, 인간 구원은 없어요. 인간 구원은 없습니다. 구원은 예수님의 구원이에요. 인간 구원은 애초부터 없습니다. 왜냐하면 법을 줘도 법을 전부다 자기 위주로 하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45페이지 봅시다. [그것도 &amp;lsquo;다윗 언약&amp;rsquo;에 속합니다. 다윗 언약이란, 왕 한 분의 신앙심에 의해서 소속된 전 백성이 구원을 받게 되는 방주입니다. 다윗의 성산 진입은, 다윗을 왕으로 인정하는 백성들의 장래를 보장하는 길이 됩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쉽게 생각합시다.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성산에 이르는 길을 제시받았습니다. 그는 기뻤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며 찬양의 시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다른 백성은 다윗과 &amp;lsquo;왕-백성&amp;rsquo;이라는 관계 속에 놓여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다윗에 의해서 열려진 성산의 생활에 그들이 무상으로 합류할 수가 있습니다.&amp;hellip;]&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중간에 봅시다. 왜냐하면 다윗은 기름 부은 자에요. 기름 부은 자의 사명을 감당한다, 다윗은 기름 부은 자에요. [시편에 나오는 말씀은 다윗 자신에게 요구하는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성산에 먼저 시범조로 들어가야 될 &amp;lsquo;기름 부음을 받은 자&amp;rsquo;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까지는 유대교 신학도 주장하는 바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다윗 본인이&amp;hellip;] 뭐했습니까? [실패했다는 겁니다. &amp;hellip; 마치 십계명을 받은 모세가 십계명을 다 지킬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십계명을 받은 모세가 십계명 지켜서 구원받았습니까? 질문 들어갑니다. 그럼 모세는 어떻게 구원받습니까?&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힌트, 변화산 이야기. 누가복음 9장에 변화산 나오죠. 변화산에서 모세하고 엘리야하고 무슨 이야기했습니까? 예수님의 별세에 대해서 이야기했죠. 그럼 답이 나왔죠. 모세가 십계명을 지켜서 자기가 받은 은혜를 갚을 길이 없어요. 오직 예수님의 피만이 영생입니다. &amp;ldquo;내 피와 내 살을 먹는 자는 영생이다.&amp;rdquo;(요 6:54)&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모세가 십계명 들고 온다고 폼 낸다고 그걸로 구원받는 게 아니다 이 말이죠. 다윗이 다윗 언약 받았다고 구원받는 게 아닙니다. 구원받는 게 아니에요. 그럼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시편 50편 보겠습니다. &amp;lsquo;오늘날 성도, 구약의 성도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amp;rsquo;가 시편 50편에 잘 나와 있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14절이 정답입니다. 앞에 50편 1절에서 13절까지는 제물을 들고 와요. 제물을 들고 오는 것은 그 당시 사람들이 이것이 율법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해서 제물을 들고 오죠. 그런데 시편 50편 1절에서 13절에, 제물을 왜 들고 오느냐? 산에 있다고 안 받고 들고 온다고 받을 줄 아느냐, 이런 이야기를 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amp;ldquo;내가 너의 제물을 인하여는 너를 책망치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수염소를 취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amp;rdquo;(8-12절)&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럼 내가 원하는 것은 뭐냐? 14절이죠. 다 같이 해봅시다, 14절. &amp;ldquo;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amp;rdquo;.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자. 감사함으로. 왜? 산에 있는 양이나 가축을 안 끌고 와도 되니까. 감사로, 감사로 드리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23절 봅시다. &amp;ldquo;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amp;hellip;&amp;rdquo; 정답 딱 나왔잖아요, 정답. 그렇게 감사, 감사하는 이유가 다 있죠. 감사하려면 내 쪽에서 행한 게 아니고, 나 말고 다른 쪽에서 행동을 하셔서 그 행동을 하나님께서 받은 결과로서 나한테 감사가 올라왔다는 뜻이거든요. &amp;lsquo;엮어져있다.&amp;rsquo; 다른 분의 행위가 나와 엮여져있는 거예요. 그분은 행하고 나는 감사하고, 이런 식으로.&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면 네 할 일은 뭐냐? 그게 시편 51편 16절, 17절에 나와 있습니다. &amp;ldquo;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라&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하나님께서 상한 심령을 원한다는 말은, 상한 심령을 반드시 경유해야 이제는 더 이상 내 행함, 내 율법지킴에 대해서 내가 미련을 두지 않는 거예요. 율법은 나를 상한 심령으로 유도하고 상한 심령을 만들기 위해서 지적하는 기능이기 때문에. 그래서 주의 은혜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주의 은혜로 여호와의 성을 쌓아나간다. (18절, &amp;ldquo;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제사 드리고 번제 드리고, 율법에 나와요. 출애굽기, 민수기에 나오잖아요. 신명기에. 그런데 그 율법이, 인간들이 접근하게 되면 졸지에 그게 율법이 아니고 인간이 만든, 인간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법이 되고 말았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52편 9절에, &amp;ldquo;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영히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이 선함으로 주의 성도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의지하리이다&amp;rdquo; 주의 이름을 &amp;lsquo;의지한다&amp;rsquo;. 어린아이가 되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어린애는 누가 자기 곁에 있어요. 혼자 못 살아요, 어린애는. 좋으면 좋다고 까불기도 하고 찡찡대기도 하고. 어쨌든 어린애의 특징은 뭐냐? 자기 혼자 있다는 의식이 없고 자기 곁에 의지할 분이 계시다는 거예요. 마치 참새나 들풀처럼 주께서 친히 기르신다는 거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만약에 제가 이렇게 말씀드렸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자기 행위에 대해서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주님의 전면적인 행하심에 대한 전면적인 모독입니다. 그게 바로 죄죠. 주님이 뭘 하든 간에 영 자기 성에 안 찬다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자, 그러니까 여러분들 이걸 통해서 지옥 가는 사람들을 너무 편들지 마세요. 지옥 가는 사람에 대해서 도와주려고 생각하지 마세요. 도와준다고 해서 그 사람이 지옥에서 방향 돌릴 사람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자기 행한 것만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46페이지에서 맨 위에 봅시다. [따라서 우리는 그 시편에서 예수님의 공적을 발견해야 하고, 그 분이 시편의 말씀을 이룬 의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성산에 들어가 살게 되는 겁니다. 그 와중에 우리는 우리 자신들이 얼마나 완벽하지도 못하고 늘 불안한 상태를 지속할 수밖에 없는지를 통감하게 되겠지요.] 글쎄요. 질문한 사람이 통감하는지 안 하는지&amp;hellip; 저는 좀 자신감이 없어지네요. 자신감이 없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십자가에서 십자가 효과를 결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강도가 한 명이 아니고 몇 명 있었어요? 두 명의 강도가 같이 십자가 졌죠. 구원받은 강도의 특징은 뭐냐 하면, 예수님의 모습에서 자기가 그동안 발견 못했던 자기의 최종 본질을 발견하게 된 거예요. 진짜 자기 모습을 거기서 발견한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건 뭐냐 하면, 내가 이 땅에 저주받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강도는 자기 자신이 저주받기 위해 태어났다는 그걸 보고 굉장히 기쁘죠. 자기가 저주받기 위해 태어났기 때문에 강도는 자기가 강도질 했다, 혹은 안 했다에 더 이상 신경을 안 쓰죠. 내 본질을 알려줬다는 그 자체가 예수님과 연관되어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에 그래요. 강도 짓한 나 자리에 뭐가 박혔어요? 예수님의 &amp;lsquo;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amp;rsquo;가 거기 박혀버린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제 두 번째 시간에는 제가 초반에 &amp;lsquo;힘&amp;rsquo;에 대해서 언급할 거예요. 아까 얘기했듯이 우리가 굳이 인간 될 필요 없죠. 인간 아니죠. 그럼 주께서, 인간이라고 우기는 인간들을 향하여 &amp;lsquo;너 인간이 아니야&amp;rsquo;라고 없애버리면서 나타나는 것은 뭐냐? 바로 힘, 또는 힘의 장(場)이 나타나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걸 두 번째 시간에 시작하면서 하겠는데 그 전에 46페이지에 [22. 창세기 12장 1-3절에 대해서] 질문을 한번 보겠습니다. [질문&amp;gt; 존경하는 목사님,] 그냥 넘어갑시다, 이건. 실체를 알면 존경이고 뭐고 쑥 들어간다. 아, 22번 질문은 두 번째 시간에 하고요. 마태복음 10장을 잠시 설명하고 첫째 시간 마치겠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마태복음 10장 21-22절 보겠습니다. &amp;ldquo;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 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amp;rdquo; 23절에, &amp;ldquo;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amp;rdquo; 이렇게 되어있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여기 &amp;lsquo;피하라&amp;rsquo;는 말이 나와요. 피하라. 왜 피해야 되느냐? 20절에 보면 &amp;ldquo;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amp;rdquo;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있으면 예수님의 복음의 본질을 실고 움직이는 사람이 돼요. 성령께서 그렇게 만들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만들면 성령께서 어느 코스로 인도하느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와서 갔던 코스 있잖아요, 그 코스를 그대로 밟게 해요. 그러면 이건 주도권이 누구한테 있습니까? 성령한테 있죠. 성령님에게 있죠. 그러면 이 본문 말씀을 우리가 지켜야 됩니까, 아니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어떻게 돼요? 될 수밖에 없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럼 아까 첫째 시간 초반에 이야기한 율법과 관련해서 이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amp;ldquo;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 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amp;rdquo; 이 말씀은 &amp;ldquo;네가 형제하고 싸우지 말고, 부모하고 싸우지 말고, 자식하고도 싸우지 말라. 그리고 네가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도록 싸우지 말라. 그리고 사람들 앞에 견디는 것을 좋아하지 말라.&amp;rdquo; 이렇게 되는 겁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왜? 성령께 주도권이 있되 성령이 주도권을 갖는 그 대상이 누구입니까? 죄인이잖아요. 죄인이니까 우리는 어떻게 돼요? 예를 들어 23절, &amp;ldquo;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amp;rdquo; 이렇게 되죠. 죄인 같으면 피하겠어요, 아니면 맞서 싸워서 순교하겠습니까? 순교하겠죠. 그게 이단이란 말이죠. 복음 전하면서 미움 받고 복음 전하면서 집안끼리 싸우는 것.&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성령은 율법의 완성이잖아요. 그런데 이 말씀을 율법화 시켜서 누가 지키려 해요? 내가 이걸 지켜야 내가 구원받을 수 있다고 아이디어를 내는데, 인간에게는 구원이 없어요! 구원은 주님의 구원이지, 인간의 구원이 없다고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니까 이 말씀은 성령께서 이렇게 하게 하신다는 뜻이지, 이걸 의도적으로 우리가 지키려고 하는 것은 자기가 이단으로 등장하는 거예요. 그냥 사시면 가족들이 미워하더라도 이것은 내가 노린 게 아니고 성령께서 이렇게 하시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예수 믿는다고 해서 감자도 안 삶아주고 강냉이도 안 삶아줄 수 있어요. 혹시 삶아주면 고맙게 먹으면 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10분 쉽시다.&lt;/span&gt;&lt;/p&gt;
&lt;hr contenteditable=&quot;false&quot; data-ke-type=&quot;horizontalRule&quot; data-ke-style=&quot;style2&quot; /&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광주강의20260522b 사무엘상 13장 9절(천국 만들기)-이 근호 목사&lt;/span&gt;&lt;br /&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46페이지에 질문이 있습니다. [22. 창세기 12장 1-3절에 대해서] [질문&amp;gt;&amp;hellip;제가 성경공부 모임에 참여하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서 아브라함에 대해서 공부하게(창세기 11장부터 시작했습니다) 되었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어서 이렇게 목사님께 질문 드립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창세기 12장 1-3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이 말씀을 곧 내게 하시는 말씀으로 이해해도 되는지요? 즉, 2-3절에 나오는 &amp;ldquo;너&amp;rdquo;를 오늘날의 &amp;ldquo;나&amp;rdquo;로 바꾸어 볼 수 있는지요? 그렇게 보는 이유는 오늘날 우리 신자들 역시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기 때문에 우리는 아브라함과 같은 복의 근원인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12장 1-3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요? 부족한 자를 깨우쳐 주세요.] 부족한 게 아니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될 것 같은데&amp;hellip;.&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답변&amp;gt; 몇 단계 거쳐야 됩니다. 우선 축복과 저주는 사람 중심이 아니라 복음 중심입니다.] 이 말은, &amp;lsquo;인간은 구원 중심&amp;rsquo;이지만 &amp;lsquo;하나님은 천국 중심&amp;rsquo;이에요. 천국은 예수님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구원 중심이면, 인간은 &amp;lsquo;좋은 나라에 내가 들어간다.&amp;rsquo;에 꽂혀있어요. 그 나라에 내가 꿈틀거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자기 자신에 대한 미련과 애착을 끝까지 견지하고 유지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겁니다, 인간은. 그리고 자기의 그러한 집요함에 대해서 하나님도 같이 협조해주고 좀 도와주기를 원하고 있어요, 인간들은. 이게 바로 종교 아닙니까. 마귀가 만든 종교.&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나 성경은 인간 구원 중심이 아니고 천국 중심이에요. &amp;lsquo;천국은 이렇다&amp;rsquo;에요. &amp;ldquo;나의 구원은 어떻게 됩니까?&amp;rdquo; &amp;ldquo;네 구원은 없고, 천국은 이러하다.&amp;rdquo; 그러니까 이것은 나와 천국을 절단내죠. 관계를 끊어버리면 천국은 누구 중심이냐 하면 예수님 중심이잖아요. 사랑의 아들의 나라, 골로새서 1장처럼. 아들의 나라기 때문에 내가 거기에 끼면 안 되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내가 들어갔다 하면 무조건 나는 누구 나라가 돼요? 이게 예수님의 나라든 뭐든 내 나라가 되니까. 만약 5월 5일 어린이날 돼서 가족끼리 서울에 에버랜드 놀이공원에 갔다 합시다. 그럼 용인 에버랜드의 주인은 삼성그룹이잖아요. 그런데 그 공원에 가면 삼성그룹 중심으로 삽니까? 내 가족 중심이잖아요. 바로 이 의식, 이 사상이 천국가도 마찬가지에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유월절에 사람들 많이 모인 데에 예수님의 가족이 갔을 때, 예수님은 아버지 중심이었는데 요셉과 마리아는 누구 중심이었습니까? &amp;lsquo;내 아들 예수 어디 갔느냐?&amp;rsquo;하고 사흘 동안 찾아다녔잖아요. 지금 이 유월절에 중심이 어디 있느냐? 예수님이 나중에 자기 아버지를 나무라죠. &amp;ldquo;내가 아버지 집에 있을 줄 몰랐습니까?&amp;rdquo; 몰랐지, 그걸 누가 알아요! 당연히 몰랐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여러분 나중에 자녀 결혼해서 손자 낳아보세요. 어디 마을에 갔는데 애가 없어. 장날 구경 갔다가 없어요. 경찰서에 가보니까 어떻게 찾았어요. 그때 손자가 하는 말이 &amp;ldquo;할아버지, 내가 아버지 집에 있을 줄 몰랐습니까?&amp;rdquo;하고, 교회 가서 기도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런 경우에 &amp;ldquo;너 찾는다고 얼마나 걱정한 줄 아느냐?&amp;rdquo; 이렇게 할 때 진짜 효도하는 자식 같으면 &amp;ldquo;죄송합니다.&amp;rdquo; 그거부터 먼저 나와야 되는 거 아니에요? 누가 누굴 나무라야 돼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래서 계속 보게 되면, 여기 답변은 이겁니다. 47페이지 중간에 [&amp;hellip;성령께서는 오직 말씀만 증거하시고, 그 증거자조차 그 말씀에 저촉이 된다는 사실도 함께 증거해야겠지요.] 말씀을 증거하는조차 자기가 전하는 말씀에 의해서 지적을 받는다는 거예요. 따라서, 아브라함 속에 우리가 끼어든다, 안 끼어든다? 끼어들 수가 없죠. 우리는 아브라함 자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아브라함 자손은 갈라디아서 3장에서 오직 한 분밖에 없어요. 여럿이 아니고 오직 한 분, 예수님이 아브라함 자손입니다(16절). 그래서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예수를 믿으면 되지 않느냐 할 때 그 믿음은 안 받습니다. 예수님의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 가짜인 것을 밝혀내면서 믿게 하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래서 신앙은 반드시 신앙이 아닌 것을 들추어내면서 신앙의 주인이 나에서 끊어지고 예수님의 신앙이 나를 점령하는 관계가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내 신앙이 아니고 주님의 신앙이 벌써 나를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이 증명해주고 있고 성령이 증명해주고 있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다음 [23. 아브라함의 순종] [질문&amp;gt; 4절에 &amp;ldquo;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amp;rdquo;란 말이 있는데, 이는 곧 아브람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는 것이 아닌지요?&amp;hellip;] 아브람이 이렇게 했고 저렇게 했고 쭉 긴데, 답변은 이렇습니다. 그 답변을 24번 질문을 통해서 말씀드릴게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24. 아브라함의 기도] 질문에서 &amp;lsquo;아브라함의 중보기도가 있지 않습니까?&amp;rsquo; 이렇게 했는데 정답은 이거에요. 아브람이 아니고 아브라함이 순종했죠. &amp;lsquo;아브람&amp;rsquo;이 아니고 &amp;lsquo;아브라함&amp;rsquo;이 순종하죠, 아브라함이. 아브람은 불순종이죠. 불순종을 거쳐야&amp;hellip; 아브람의 믿음과 아브라함의 믿음이 왜 이렇게 중간에 끊어져 있어야 마땅하냐를 알 수 있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리고 끊어진 것을 이은 것은 뭐냐?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이삭이 아브람과 아브라함을 이어주게 되고, 그 아브람과 아브라함이 이어지는 데에 있어서 희생이 되는 자가 누구냐? 이삭이에요. 이삭. 이삭의 희생으로 말미암아&amp;hellip; 아브람은 아브라함이 되면서 순종해서 내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은 게 아니고, 희생했던 이삭의 자손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전환되면서 하늘의 별처럼 자손이 많아지는 거예요. 그러면 그 자손의 생산에 있어서 이삭의 희생이 말씀을 통해서 계속해서 주입이 되겠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제부터 아브라함의 내용을 생각하면서 이 점을 제가 생각해봤어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그리고 요한복음, 그리고 사도 바울의 편지에서 &amp;lsquo;천국은 어떻게 달성되는가?&amp;rsquo;를 제가 한번 생각해보았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쉽게 가겠습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서는 이미 있는 인간을 공격함으로써 천국이 이루어져요. 이미 있는 인간을 공격합니다. 공격해야 될 이유가 여기에 마태, 마가, 누가에 나오는 인간들은 구원을 원하기 때문에 그래요. 구원을 원하게 되면 이들이 원하는 천국은 뭡니까? 구원을 원했던 내가 가담하게 된 천국이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예를 들면 마태복음 8장에서 유대인들이 자기가 천국에 먼저 가 있다고 생각했잖아요. 그런데 마태복음 8장에서 백부장이 &amp;ldquo;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나이다&amp;rdquo;. &amp;ldquo;이만한 믿음을 본 적이 없다.&amp;rdquo; 하면서 그 뒤에 나온 말씀이 &amp;ldquo;천국에 있는 본 자손들은 자기 자리도 아닌데 뭐 하러 가 있는 거야? 다 나와!&amp;rdquo;하고 부끄럽게 천국으로부터 다 끄집어내서 어디로 집어넣습니까? 지옥에 보내고, 그 빈자리에 &amp;lsquo;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나이다&amp;rsquo; 이 백부장의 믿음이 있는 자만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amp;lsquo;본 자손들은 이를 갈며 통곡하리라.&amp;rsquo; 지옥 가는 사람들은 그렇게 되는 겁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니까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이미 있는 인간들- 유대인들이죠,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그리고 제자들이 의식이 있잖아요. 그 의식으로 &amp;lsquo;약속대로, 율법대로 하나님이 우리 구원한다고 약속했죠?&amp;rsquo; 약속대로 어떻게 이루어지냐에 대해서 그들은 관심이 많고, 그들은 천국가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주님 보기에는 그게 거추장스러운 거예요. 주님이 이루는 천국에 전부 다 방해물이 되는 겁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래서 마태복음 13장 같은 경우에 그들이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말씀을 줘버려요. x축, y축에서 +(플러스)에 있는 인간들을 전제로 하고, 그들이 &amp;ldquo;우리 어떻게 천국 갑니까?&amp;rdquo;하면 주께서 말씀으로 &amp;ldquo;너희들이 무슨 천국을 가?&amp;rdquo;하고 이렇게 구박하고 그걸 공격하는 식으로 하는 내용이에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사도 바울은 출발이 +(플러스)가 아니고 -(마이너스)에 인간이 있어요. &amp;ldquo;너는 나를 핍박하는 자로다&amp;rdquo;부터 해서 &amp;lsquo;주님이 어떻게 핍박하는 자를 동원해서 천국을 이루겠는가?&amp;rsquo; 그 이야기에요, 사도 바울의 편지가. 좀 뉘앙스가 다르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amp;ldquo;구원해주소서.&amp;rdquo; &amp;ldquo;안돼! 그래가지고 천국 안돼. 저리 가!&amp;rdquo; 이거하고, 사도 바울은 뭡니까? 핍박하는 자인데 &amp;ldquo;나는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amp;rdquo; 하고 있는데, &amp;ldquo;너희 같은 사람을 건져서 천국을 이루겠다.&amp;rdquo;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의 사도에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유대인들이 막 달려들죠, 사도 바울에게. 너 왜 배신 때리느냐? 다시 옛날로 돌아오라 하겠죠. &amp;ldquo;그들은 율법도 없는 자들인데 무슨 구원을 받아? 천국을 가? 천국은 율법이 완성되어야 되는데 율법 자체에 해당도 안 되는데 무슨 구원을 받아?&amp;rdquo; 그럼 사도 바울이 이야기하잖아요. &amp;ldquo;그럼 율법도 없는데 성령 세례는 왜 받느냐?&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아니, 율법도 없는데 성령 세례 받아버리면 유대인 입장에서는 무슨 절차 하나가 빠졌죠. 구약&amp;rarr;모세가 율법 줌&amp;rarr; 율법의 완성으로서 신약 대에 자기 백성 건짐, 지금 순서가 그렇게 되는데, 율법 자체가 없는데 갑자기 성령부터, 합격 통지서부터 와버렸단 말이죠. 그러면 그들은 율법 준 취지가 날아갔으니까 율법을 하나님께서 주신 취지를 누락시키게 되면 사도 바울 네가 전하는 하나님은 진짜 하나님이 아니고 그건 이단이다, 이렇게 주장하게 되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요한복음은 뭐냐? 요한복음은 아예 사람이 없어요. 마이너스도 없고 플러스도 없고 사람 자체가 없어요. 요한복음에서는 누구만 있어요? 누구만 사람이에요? 예수님만 사람이에요. 예수님만 사람이라서 요한복음 10장 30절에서, &amp;ldquo;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amp;rdquo; 31절, &amp;ldquo;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 다음 33절 봅시다. &amp;ldquo;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을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amp;hellip;&amp;rdquo; 예수님께서 나는 선한 일을 했는데 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하니까, 선한 일을 해서 돌로 치는 게 아니고 무엇 때문에 돌로 치려 합니까?&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자칭 하나님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모독, 신에 대한 모독죄로 그러하다 했어요. &amp;ldquo;참람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amp;rdquo;. 그럼 요한복음 10장 33절을 통해서 요한복음 전체 내용은 뭐냐 하면, &amp;ldquo;내가 바로 하나님이다.&amp;rdquo; 그거에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니까 요한복음에 의하면 구원받을 인간 자체가 없죠. 말씀이 육신이 되었고, 그 분만이 인자(人子)니까, 진짜 인간이고 또 하나님이시니까 아버지와 아들의 언약에 의해서 진짜 인간이 요단강에서 받은 세례가 있죠, 성령 세례. 그 다음부터 예수님이 받은 성령 세례를 나누어주게 되면, 인간은 없는데, 천국 갈 인간은 없는데 새로운 백성들이 생기죠. 천국 백성이 새로 생기는 거예요. 이게 요한복음이에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마태복음 27장 같은 경우에는 십자가에서 언급하고 강조하는 내용이 좀 달라요. 마태복음 27장에 보면 여러분 잘 아시다시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46절 &amp;ldquo;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amp;rdquo; 예수님이 인간의 입장에서 아버지로부터 인간이라는 이유 때문에, 인간의 육신을 가졌다는 이유 때문에 그냥 버림받으시는 겁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마가복음도 마찬가지에요. 마가복음 15장 34절, &amp;ldquo;제 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amp;rdquo; 마가복음, 마태복음에서는 하나님이 &amp;ldquo;너 구원받지 마.&amp;rdquo;하고 버리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요한복음에는 &amp;ldquo;다 이루었다&amp;rdquo;(19:30)에요. 요한복음에서는 아버지와 아들 관계밖에 없어요. 인간은 아예 제켜버려요. 다 이루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누가복음에서는 &amp;ldquo;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amp;rdquo;는 없지만 역시 인간적인 요소가 있어요. 마지막에 십자가에서 하신 말씀이 &amp;ldquo;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amp;rdquo;(23:46)&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요한복음에서도 십자가 사건 앞에는 인간적인 요소가 나와요. 요한이 모친 곁에 선 것과 자기 어머니 마리아를 보고 &amp;ldquo;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amp;rdquo; (19:26-27)&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니까 어쨌든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이 되든 요한복음이 되든 사도 바울 서신이든, 특히 요한복음 뿐 아니고 요한일서, 이서, 삼서도 아예 인간은 없죠. 요한일서 1장에 보면 인간이 죄 없다 하면 아예 그건 가짜(8절)니까 오직 피로 말미암아 새 생명이 주어지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물로서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내는 걸로 되어있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요한일서 전체, 또는 요한복음 이렇게 전체를 바라보게 되면 천국을 이루는 것은 순전히 누구 소관입니까? 아버지와 아들 소관이죠. 여기서 나온 결론은 뭐냐? 애초부터 인간 구원은 없어요. 없는데 인간 구원 아이디어는 누가 끄집어낸 거예요? 마귀가 끄집어냈죠. 마귀가. &amp;lsquo;죽고 난 뒤에 좋은 데 가야되지 않겠느냐?&amp;rsquo; 마귀가 그렇게 끄집어내는 겁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구약에 여러분들이 잘 아는 이야기지만 창세기 32장 야곱 이야기를 찾아보겠습니다. 1절에 &amp;ldquo;야곱이 그 길을 진행하더니&amp;rdquo; 누구를 만납니까? &amp;ldquo;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amp;rdquo; 이렇게 되죠.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났어요. 그래서 야곱이 만나졌죠. 야곱이 원해서 만난 건 아니니까.&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amp;lsquo;야, 이건 하나님의 군대구나.&amp;rsquo; 해서 그 땅 이름이 마하나임이에요(2절). 그리고 헤어졌어요. 야곱 생각에는 &amp;lsquo;천사가 왜 나를 만났지?&amp;rsquo; 몰랐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32장 끝에 31절을 보면 &amp;ldquo;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해가 돋았죠. 밤중에 무슨 일이 있었어요. 밤중에 일이 있었고, 그 일이 뭐냐 하면 야곱으로 살던 나는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죽음의 대상이었습니다. 인간을 죽여 버린 거예요. 처음에 만났던 천사들을 야곱은 왜 만나야 되는지 몰랐죠. 자기가 야곱 언약을 받았고, 앞으로의 자기 인생도 자기가 멀쩡히 살아있으니까 누가 잘하면 되겠어요? 멀쩡히 살아있는 내가 내 힘으로 잘하면 되잖아요. 힘으로.&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amp;ldquo;브니엘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amp;rdquo; 장애자가 되었어요. 절었어요. 이제 자기 힘을 의지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누구하고 한판 붙어도 이기지도 못해요, 장애인이니까. 약하게 되어버렸죠. 약하게.&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여기 &amp;lsquo;해가 돋았다&amp;rsquo; 했어요. 그러면 해가 돋기 전까지는 어두움이었다. 그 어두움에서 천사와 싸웠던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이에요, 안 그러면 야곱이었습니까? 야곱이었죠. 어두움의 상황에서 야곱은 하나님과 대결상대, 경쟁상대, 도전하는 대상으로 야곱이 있었어요. 그 시기가 어두움의 시기에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다시 해가 돋았잖아요. 해가 돋으니까 어떻게 되었어요? 자기 힘의 원천은 망가졌고, 그런데 자기 이름은 이스라엘로 바뀌면서 다른 사람 되었다. 그러면 해가 돋은 새로운 입장에서 나라는 것은 이제는 홀로 있는 것이 아니고, 나를 찾아와서 만났던 그 천사의 세계에 자기가 놓여있다는 것을 알게 되죠. &amp;lsquo;이 언약은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고, 천사가 인도하는 대로 이루어진다.&amp;rsquo;가 되는 겁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고린도후서 12장 10절에 &amp;ldquo;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amp;rdquo; 되어 있죠. 나는 약한데 누가 강해요? 나를 약해지게 하신 주님은 강하게 하나님의 계획대로 진행하신다. 달리 말해서, 하나님의 뜻이 강하게 진행되면 될수록 내가 점점 더 약해져야 되는 거예요. 그것이 주님께서 주시는 영적 힘 안에서 이루어진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자, 그럼 여기서 우리가 약해지려면 어디까지 약해져야 되는가? 방금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사도 바울의 계시를 근거로 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봅시다. 성도가 있고, 인간이 있습니다. 인간은 자식을 낳죠. 흔히 부모들이 낳은 자식이 컸을 때 자식을 압박하면서 하는 표현이 있어요. &amp;ldquo;너는 내가 낳은 핏덩이다.&amp;rdquo; 맞는 말이죠. 피가 묻혀서 태어났잖아요. 이걸 한마디로 해서 &amp;lsquo;육신&amp;rsquo;, &amp;lsquo;육체&amp;rsquo; 또는 &amp;lsquo;신체&amp;rsquo;, &amp;lsquo;육&amp;rsquo;이죠, 육. 이게 인간이잖아요. 명확한 인간이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성도는 뭐냐?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사도 바울의 하나님의 계시에 의하면 인간은 안 받죠. 천국에서 안 받아요. 그런데 하나님의 목적은 &amp;lsquo;천국 만들기&amp;rsquo;잖아요. 인간을 안 받으면서 &amp;lsquo;천국 만들기&amp;rsquo;에 누가 거기서 사느냐? 새로운 인간들이 살겠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럼 새로운 인간의 모형, 핵심, 원형, 출발점은 어디입니까?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된 예수님이 인자가 되어서, 사람의 아들이 되어서 여기서 천국에 들어가야 될 사람의 원형을 예수님이 보여줬죠. 이게 바로 &amp;lsquo;아들의 형상&amp;rsquo;, 또는 &amp;lsquo;하나님의 형상&amp;rsquo;이라고 한다 이 말이죠. 거기까지는 이해되겠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그게 성도인데 천국의 백성은 예수님의 몸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느냐 이 말입니다. 예수님이 원형인데 천국에 예수님 혼자 계시는 건 아니잖아요. 혼자 계시는 건 아니다 이 말이죠. 그러면 천국에는 하나님 계시고, 성령도 계시고, 예수님 계시고, 주위에 보좌하는 천사들이 있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그 천사들이 지시에 의해 땅에 내려와서 야곱을 만난단 말이죠. 야곱을 왜 만나요, 천사들이? 야곱을 만나서 야곱이 뭐로 바뀝니까? 이스라엘로 바뀌잖아요. 바뀔 때 곱게 바뀌었습니까, 한판 싸우고 바뀌었습니까? 대판 싸우고 바뀌었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싸우는데 어느 정도까지 싸웁니까? 대충 혼내주고 살려줬습니까? 아니면 그냥 죽여 버렸어요? &amp;lsquo;브니엘&amp;rsquo;이라는 뜻이 &amp;lsquo;생명(하나님의 얼굴)&amp;rsquo;이거든요. (&amp;ldquo;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amp;rdquo; 창 32:30)&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야곱을 그냥 죽여 버린 거예요. 따라서 인간이 죽어야 돼요. 죽는다는 말은 하나님이 천국에서 안 받아준다는 거예요. 일체 인간 요소는 들어가면 안돼요. 그러면 천국 자체가 이뤄지지 않아요. 죽여 버리죠. 죽여 버렸는데 야곱과 싸웠던 천사가 누구냐 하면 바로 &amp;lsquo;예수님&amp;rsquo;이란 말이에요, 예수님.&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래서 예수님은 &amp;ldquo;약한 데서 강함이라&amp;rdquo;는 말씀을 성사할 수 있는 분이 되는 거예요. 예수님도 이 땅에 와서 약했고요.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약했잖아요. 요한복음에서는 아주 작살을 냈지만, 아예 인간은 없지만,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서는 약했어요. 그래서 십자가에서 &amp;ldquo;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amp;rdquo; 했잖아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만나는데, 야곱은 천사를 만났다고 했어요. 그래서 힘이 빠졌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빠진 정도의 진짜 본질은 신약에 와서 어떻게 되느냐? 천사하고 야곱하고 싸우다가 천사가 죽었습니까? 천사가 죽지는 않았죠. 하나님 쪽에서 오신 분이 죽었어요, 야곱한테 얻어맞아서? 마지막에 어퍼컷 한방 먹이고 살아서 무사히 새벽녘에 다시 하늘로 올라갔잖아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을 만난 예수님은 죽은 척도 아니고 죽을 뻔도 아니고 진짜 죽었습니다. 진짜 죽음으로써 &amp;lsquo;모든 인간은 천국에 못 간다.&amp;rsquo;가 확정되었죠. 끝났어요. 끝나고 난 뒤에 &amp;lsquo;예수님께서 성도를 어떻게 만들어내는가?&amp;rsquo; 그 문제가 남게 되었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 문제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어요. 잘 알고 있는데 제가 새삼스럽게 강조하는 것은 아까 그 &amp;lsquo;만남&amp;rsquo;입니다, 만남. 야곱이 천사를 만났잖아요. 야곱이 천사를 처음 만났을 때는 왜 만났는지 모르잖아요. 그런데 천사가 야곱을 만날 때는 만날 대상, 야곱이라는 대상이 있었단 말이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면 여기 &amp;lsquo;성도&amp;rsquo;라는 대상은 없어요. 없고, 성도 이전에 인간은 있죠. 인간이 있을 때 주님이 인간에게 찾아오게 되면 인간은 와락! 하고 멧돼지처럼 주님께 달려들겠죠. 인간은 육이라는 자식을 낳았으니까, 아버지의 품성이 그대로 자식에게 이전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죽였던 그 품성이 인간의 자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겠죠. 인간이 예수님께 달려들겠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인간은 예수님께 달려들고, 그 인간을 만났던 예수님은 또다시 어떻게 돼요? 죽임을 당하죠. 이 일을 반복하는 거예요. 야곱이 하나님을 만났는데 야곱에서 이스라엘이 되어가지고 그다음부터는 어두움이 지나고 해가 떴더라. 힘은 약하지만 구원은 받았더라. 어떻게? 언약에 종속된 사람이 되었더라.&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것을 구약 창세기 32장에서 예시했다면, 마찬가지로 &amp;lsquo;인간이 예수님을 만날 때 인간은 예수님을 공격하는 본성 그대로 살아있고, 그 본성에 의해서 예수님은 수난을 당하면서 죽임을 당한다.&amp;rsquo; 이 내용으로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서 인간에게 다가가는 겁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상당히 논리가 복잡해요.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니에요. 예수님은 계시는데 예수님께 뭐가 나오죠? 영이 나오죠. 예수님의 영은 뭡니까? 성령이죠. 성령이 나오죠. 성령이 특정 인간을 창세 전에 구원하기로 작정하시고요. 인간은 안 됩니다. 뭐로 바뀌어야 돼요? 성도로 바뀌어야 되잖아요. 그래서 성령으로 찾아가게 되면 인간은 와락, 성령에게 자기 본색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겠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면 성령은 핍박을 받아요. 핍박이 탄식이 되겠죠. 사울이 예수님을 만날 때 예수님께서 하는 말씀이 뭡니까? &amp;ldquo;사울아 사울아 너는 나를 핍박한다.&amp;rdquo; 핍박하는 거예요. 핍박을 받음으로써 무슨 사건이 재현되느냐 하면, 십자가 사건이 시간과 공간을 떠나서 되풀이 돼요. 십자가 사건 이후에 성령이 오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십자가 사건을 반복시켜서 성도가 될 인간은 십자가 사건 안으로 끌어당겨버립니다. 십자가 사건 안으로 끌어당겨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면 예수님께서는 누굴 보냅니까? 요한복음에서, 아버지가 나에게 성령 세례 준 것처럼 내가 원하는 자에게 성령 세례를 베푼다. 핍박받았다는 사건을 그에게 넘긴다, 그 현장을 넘기는 거예요. 그러면 십자가 안으로 들어오는 거예요. 그게 사도 바울의 복음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십자가 안에 들어오게 되면 여기서 무슨 현상이 일어나느냐? 예수님은 단수죠. 구원되는 사람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구원돼요. 단수가 예수 이름의 다수, 또는 복수 현상이 벌어집니다. 예수님의 영을 복수 현상으로, 예수님의 사건 안에 여러 인간이 예수님의 한 몸으로 모집되고 이어지게 되는 거예요. 예수님의 몸으로.&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래서 이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서 내가 무슨 표현을 쓰느냐? &amp;lsquo;분사(噴射)&amp;rsquo;. &amp;lsquo;분사&amp;rsquo;라는 것은 뿌린다는 뜻이에요. 여러분 어릴 때 골목에 모기차 와서 모기약 뿌리는 것 경험했죠? 아이들 막 뒤에 따라가고 안 합니까. &amp;lt;기생충&amp;gt;이란 영화 보면 나오잖아요. 그때 모기약을 꽁무니로 뿌리는 보건소 차가 있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면 애들이 모기약 뿌린 것을 맞으면 이미 그 아이들은 죽은 아이가 되고, 모기약을 먹었으니까 죽은 아이가 되고, 죽었으니까 그들은 모기약만 흠뻑 젖겠죠. 그걸 저는 &amp;lsquo;분사에 의한 힘의 장이 성립된다.&amp;rsquo;고 보고 이것을 &amp;lsquo;천국의 공간&amp;rsquo;이라고 보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amp;lsquo;십자가 안&amp;rsquo;이에요. 십자가 사건이 주는 힘이 작용하는 공간, 그것을 천국의 장(場)으로 보는 거예요. 이 인간을 저는 &amp;lsquo;기체 인간&amp;rsquo;이라고 봅니다. 오늘 제목은 &amp;lt;기체 인간&amp;gt;이에요. 모기약 알맹이처럼 기체 인간이 되는 거예요. 액체 인간 정도가 아니에요. 더 나갑시다. 기체 인간이에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기체 인간의 특징은 사건화 된 인간 존재에요. &amp;lsquo;뭐를 받았다&amp;rsquo;가 아니라 &amp;lsquo;누가 계속 부여한다&amp;rsquo;만 강조되는, 그것만 드러내는 그런 존재가 됩니다. 기체 존재가 돼요, 기체 존재. 기체 인간이 되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그리고 요한복음, 사도 바울의 모든 복음이 기체 인간으로 전부다 그 안에 사건화 되어서 통합되어 들어가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게 뭐라고요? 힘의 장. 끊임없이 죄 사해주고 끊임없이 이미 너의 죄를 용서해주는 힘의 장. 힘의 장이니까 우리가 굳이 입자라고 할 것도 없죠. 만약에 입자가 되어버리면, 여기서 입자에 또 반지름이 생기는 거예요. 이렇게 되어버리면 주님의 힘의 장에서 자체적인 입자로서 자기의 장이 따로 생겨버리는 것이고, 그럼 천국이 깨져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아니, 천국 가서 뭐할 겁니까? 천국에 은혜의 장에서, 생명의 장에서 그야말로 분사된 가스처럼 되어야지, 거기서 개인적으로 존재가 되어버리면 누구 생각하겠어요? &amp;lsquo;아휴, 나는 여기 천국 왔는데 우리 딸내미는 지금 지옥 가 있을 건데. 편지도 안 되고, 한번 전화해볼까?&amp;rsquo; 또 이렇게 걱정된다니까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아까 자식은 뭐라 했습니까? 내가 낳은 피투성이 자식이잖아요. 갑자기 그 자식 생각한다는 말은 누구를 잊지 못했다는 겁니까? 내가 내 존재를 계속 거기서 의식하고 있다는 겁니다. 어디서? 천국에서. 그러나 천국에 존재자는 누구밖에 없어요? 천국의 몸은 누구밖에 없어요? 예수님 몸밖에 없어요. 우리는 그 몸이 분사된, 몸에서 나온 몸의 지체일 뿐이에요. 단독적으로 내 지체라는 것은 천국에선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표정들 보니까 전-혀 이해가 안 되는 표정이에요. 내가 각오했지요. 머리카락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우리 세상에서는 머리카락이 있지요. 그러나 성경에서는 머리카락이 없어요. 머리만 있죠. 머리카락은 어디서 자라납니까? 몸 안에 있어야 자라나는 털이잖아요. 털이 있다는 게 아무 의미가 없어요. &amp;lsquo;나 털이야.&amp;rsquo;가 의미가 없다니까요, 천국에서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천국에서 의미는 뭐냐? &amp;ldquo;네 털인 줄 아는데 네 털이 어디에 박힌 털이고?&amp;rdquo; 이걸 묻지, &amp;ldquo;난 그래도 털인데요?&amp;rdquo; &amp;ldquo;그래, 네 털 굵다.&amp;rdquo; &amp;ldquo;털이 난 이유가 뭐냐?&amp;rdquo;하면 &amp;ldquo;주님의 머리 됨에서 났습니다.&amp;rdquo; 이거 하라고 털이 된 거지, &amp;ldquo;나도 털이야. 날 무시하지 마.&amp;rdquo; 지금 그 소리하라고 된 게 아니잖아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머리카락은 있어요, 없어요? 있어도 없습니다! 이게 사도 바울의 복음이에요. 사도 바울이 &amp;ldquo;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서로 도와주라.&amp;rdquo; 했잖아요. 이게 예수님을 경유해서 도와주는 거예요. 주의 이름으로. 그것도 성령 안에서. 또 십자가 안에서. 이미 부활의 영, 성령 안에서.&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아까 하늘나라는 성령 안에서 서로 즐겁고 의와 희락과 평강이라 했죠. 왜 평강입니까? 왜 평안하고 기쁘고 감사합니까? 이게 단독입니까, 아니면 누굴 경유했기 때문에 그래요? 경유했기 때문에 그래요. 만약에 머리에 머리카락이 a, b, c, d 이렇게 있으면 누구끼리 싸워요? a, b, c, d끼리 싸운다고요. 머리카락끼리. 네 머리카락은 뭐 금발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노래 했잖아요. 강남강의에서. &amp;lsquo;머리카락이 은발이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늙지 않았다.&amp;rsquo; 아, 머리카락이 은발인데 왜 늙지 않았죠? 당신은 뭐 교회 다니고 난 뒤에 벌써 40년 되었는데 많이 늙었네, 그게 의미가 없다고요. 교회 다니고 40년 되고 50년 되어도 우리가 늙지 않는 이유는 &amp;lsquo;늙었다, 안 늙었다&amp;rsquo;가 우리한테는 해당되지 않는 지층이기 때문에, 표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자, 49페이지. 믿든지 안 믿든지 난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머리카락은 없어요, 그냥. 있더라도 없다고요. 있더라도. [24. 아브라함의 기도]. 중보기도 이야기입니다. 그냥 넘어갑시다. 이건 수십 번 이야기한 거니까 넘어가고요. [25. 시편 16편에 대해서] [질문&amp;gt; 목사님, 자세한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시편 16편 질문이 뭐냐?&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시편 16편에 나오는 내용이 답변에 보면 나와요. 51페이지에 사도행전 2장 25-30절, &amp;ldquo;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amp;hellip;&amp;rdquo;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 보면 52페이지, 53페이지, 54페이지 굉장히 길게 설명했죠. 길게 설명했고, 이것도 여러 번 설명했거든요. 다윗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다. 다윗은 머리카락이다. 다윗은 머리카락이기 때문에 죽든 살든 의미 없어요, 그냥. 내 안에 그리스도가 나를 이용하면 끝나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다음 55페이지 봅시다. [26. 이름을 창대케 한다는 의미]. [질문&amp;gt;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amp;ldquo;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amp;rdquo;는 말은 이해가 되는데, 그 다음 말인 &amp;ldquo;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amp;rdquo;는 말이 이해가 안 됩니다.&amp;hellip;]&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거기 보면 [답변&amp;gt; &amp;lsquo;아브람&amp;rsquo;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amp;lsquo;아브라함&amp;rsquo;이라는 이름을 창대케 합니다.&amp;hellip;] &amp;lsquo;사래&amp;rsquo;가 아니고 누구 이름? &amp;lsquo;사라&amp;rsquo;. 의미를 바꿔요. &amp;lsquo;야곱&amp;rsquo;이 아니고 &amp;lsquo;이스라엘&amp;rsquo;. 전부다 의미를 바꿔버린다고요. 그 전에 있는 사래, 야곱, 아브람은 천국에서 안 받아줘요. &amp;lsquo;아브람이 어떻게 구원받느냐? 야곱이 어떻게 구원받는가? 사래가 어떻게 구원받는가?&amp;rsquo;는 하나님의 관심사도 아니에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인간 구원은 없어요. &amp;lsquo;천국을 이루는 데 있어서 사래와 야곱과 아브람을 어떤 식으로 주께서 언약으로 활용해서 천국 백성 되게 하느냐?&amp;rsquo; 주님께서는 그게 관심사다 이 말입니다. 누구 이름으로? 주의 이름으로 합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 다음에 하나만 하고 마치겠습니다. 61페이지, [32. 최초의 인간]. 가인이 만난 사람에 대해서인데, 가인이 하나님한테 벌 받고 쫓겨났잖아요. 그때 가인이 사람들을 만났잖아요. 그 사람들 어디서 생긴 사람들이냐, 그 질문이에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답변&amp;gt; 긴긴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창세기 5장에 보면, 아담의 연세가 930세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농경 시대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그러니까 기원전 약 1만 년 전의 인구를 약 400만 명으로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 1000년마다 인구가 두 배로 늘어납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기원전 1000년에는 전 세계 인구가 약 5000만 명입니다. 인구는 그 후 약 500년 만에 두 배로 불어납니다. 기원전 500년 경에는 약 1억 명이 됩니다. 중국 한나라와 로마 제국이 전성기를 이루던 서기 200년 경에는 인구가 2억 명으로 늘어납니다.] 지금은 인구가 85억 명이 되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따라서 처음 농경 시대를 시작했던 시절에는 농경지가 제한되어 있기에 가인이 얼마든지 타 지역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농사지을 터가 제한되었기 때문에 몇 다리 건너면 다 만나게 되어있고, 가인도 얼마든지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니까 인간의 역사를 주께서 인정하지 않는 이유가, 인간 자체에 관심이 없어요. 구약이든 신약이든 어떻게 천국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언약이 특정 사람을 찾아가고 특정 사람을 배제하느냐 여기에 관심이 있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런 질문들의 관심사의 기본이 뭐냐? &amp;lsquo;나 어떻게 하면 구원받습니까?&amp;rsquo; 자꾸 자기 구원에 관심을 두고 질문을 해요. 성경에서 말하는 그런 답변을 원하지 않는 거예요, 인간들은. 자기 답변을 원하는 거예요. 그 점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주의 사항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기도하겠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무엇 때문에 사는지 성경을 보면서 다시 생각케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사는 이유와 목적이 뭔지, 내가 낳은 핏덩어리 살리기 위해서 내 자존심이나 의를 살리기 위해서 살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신밖에 모르는 우리를 주께서 어떻게 천국 백성 되게 하셨는지, 그 중간에 하나님이 어떤 일을 벌였는지, 그 일로 인하여 우리의 미래가 확정되었음을 늘 기뻐하고 감사하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lt;/span&gt;&lt;/p&gt;
&lt;hr contenteditable=&quot;false&quot; data-ke-type=&quot;horizontalRule&quot; data-ke-style=&quot;style2&quot; /&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광주강의 동영상 2와 3 사이, 빠진 내용 조금(2026.5.22) - 구자근&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amp;hellip; 그러면 십자가 안으로 들어오는 거예요. 이게 사도바울의 복음입니다. 십자가 안에 들어오게 되면 여기서 무슨 현상이 일어나게 되냐면, 예수님은 단수죠. 구원되는 사람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구원돼요. &amp;lsquo;예수 이름&amp;rsquo; 단수가 &amp;lsquo;예수 이름의 다수 또는 복수&amp;rsquo; 다수, 복수 현상이 벌어진다. 예수님의 영을 복수 현상으로, 예수님의 사건 안에 성도 여러 사람이&amp;hellip; (동영상2, 끝)&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동영상 2와 3 사이의 빠진 부분&amp;hellip;&amp;ldquo;예수님의 한 몸으로 모집, 이어지게 되는 거예요. 예수님 몸으로. 그래서 이 상황을 내가 묘사하기 위해서 무슨 표현을 사용할 거냐면&amp;rdquo;]&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amp;hellip;분사, &amp;lsquo;분사&amp;rsquo;라는 것은 &amp;lsquo;뿌린다&amp;rsquo;라는 뜻이에요, 뿌린다. 여러분 어릴 때, 골목에 모기차가 와서 모기약 뿌리는 거 기억 나지요. 애들이 막 뒤따라붙지 않습니까. 기생충이라는 영화 보면 나오잖아요&amp;hellip;&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성경에 대한 질문과 답변(26광주)</category>
      <author>정인순</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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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23 May 2026 09:52:4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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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516강 / 517강) 부끄러움 / 두로의 변신 / 260519</title>
      <link>https://chninsn.tistory.com/17213208</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516강&lt;span&gt;&amp;nbsp;&lt;/span&gt;&lt;/span&gt;&lt;a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href=&quot;http://media.woorich.net/%EC%8B%A0%ED%95%99%EA%B0%95%EC%9D%98/%EC%9C%A0%ED%8A%9C%EB%B8%8C26/%EB%B6%80%EB%81%84%EB%9F%AC%EC%9B%80260519.mp3&quot;&gt;음성&lt;br /&gt;&lt;/a&gt;&lt;a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href=&quot;http://media.woorich.net/%EC%8B%A0%ED%95%99%EA%B0%95%EC%9D%98/%EC%9C%A0%ED%8A%9C%EB%B8%8C26/%EB%B6%80%EB%81%84%EB%9F%AC%EC%9B%80260519.MP4&quot;&gt;동영상&lt;br /&gt;&lt;br /&gt;517강&lt;span&gt;&amp;nbsp;&lt;/span&gt;&lt;/a&gt;&lt;a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href=&quot;http://media.woorich.net/%EC%8B%A0%ED%95%99%EA%B0%95%EC%9D%98/%EC%9C%A0%ED%8A%9C%EB%B8%8C26/%EB%91%90%EB%A1%9C%EC%9D%98%EB%B3%80%EC%8B%A0260519.mp3&quot;&gt;음성&lt;br /&gt;&lt;/a&gt;&lt;a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href=&quot;http://media.woorich.net/%EC%8B%A0%ED%95%99%EA%B0%95%EC%9D%98/%EC%9C%A0%ED%8A%9C%EB%B8%8C26/%EB%91%90%EB%A1%9C%EC%9D%98%EB%B3%80%EC%8B%A0260519.MP4&quot;&gt;동영상&lt;/a&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녹취:이하림&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516강-YouTube강의(부끄러움 예레미야 14:4)20260519-이 근호 목사&lt;/span&gt;&lt;br /&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제516강, &amp;lsquo;부끄러움&amp;rsquo;. 보통 부끄러움 같으면 개인적으로 타인이 있을 때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amp;lsquo;저 사람 보기에 내가 참 수치스럽다.&amp;rsquo; 그런데 원래 창세기 보면 아담과 하와가 자기 부부만 있었어요. 타인이 없었어요. 타인이 없는데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거예요. 수치를 느꼈다는 겁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래서 &amp;lsquo;남 앞에서 부끄럽다. 혼자 있을 때는 옷 갈아입지만 남 앞에서는 옷도 못 갈아입는다, 부끄럽다.&amp;rsquo; 하는 이 논리가 근원적으로 문제 있는 거예요. 부끄러움은 그보다 더 깊은 데에 근거, 원천이 따로 있다고 보셔야 돼요. 그 원천은 이방사람들은 모르고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계시, 율법이 주어지면서 이스라엘에게 특화된, 하나님의 계시를 받지 않으면 몰랐던 부끄러움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 새롭게 다른 차원의 부끄러움이 노출됩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예를 들어서 &amp;lsquo;동창생 만났는데 옷차림새가 나보다 못하다. 부끄럽다.&amp;rsquo; 이건 뭐 계시를 받을 것도 없이 이방인들 사이에, 하나님의 말씀도 없는 인간들 사이에 얼마든지 그런 현상이 일어나잖아요. 그러다 보면 인간들은 그저 인간들 눈앞에 어떻게 보이느냐에 따라서 부끄럽다, 덜 부끄럽다, 또는 자랑스럽다는 그러한 느낌을 갖는데 그 자체가 하나님의 계시가 없을 때, 하나님의 말씀과 연결되지 않을 때 인간들 입장에서 자연스러운 부끄러움, 또는 자랑스러움이 되겠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허세죠. 허세고 위선이고 그런 겁니다. 사람 있으면 고상한 체하다가 사람 없으면 제 마음대로 사는 것. 그건 이미 계시 없는 세계에 물들여진 상태에서 타인의 존재를 전제로 해서 부끄러움이 발생되겠죠. 범죄한 인간이 교도소 가도 전혀 안 부끄러운 이유가, 거기엔 자기와 똑같이 죄지은 인간들밖에 없기 때문에 오히려 나는 쟤보다는 죄 덜 지었다는 데에서 오는 어떤 뿌듯함? 나도 인생 나름 선방했네? 저렇게 망가지지는 않았잖아, 이런 거. 스스로 위로할 수가 있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계시가 왔을 때 이 부끄러움이라 하는 것은 인간이 있고 없고 관계없이 근원적으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부끄러움이 하나님의 계시가 도달했을 때 비로소 밝혀집니다. 그 예가 예레미야 14장 4절입니다. 예레미야 14장 1절에 보면 가뭄에 대해서 나와 있고요. 그리고 2절에 보면 유다가 슬퍼하며 예루살렘에 부르짖음이 있다 했고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다음에 3절, 4절을 유념해서 보겠습니다. 예레미야 14장 3절, &amp;ldquo;귀인들은 자기 사환들을 보내어 물을 길으라 하나 그들이 우물에 갔어도 물을 얻지 못하여 빈 그릇으로 돌아오니 부끄럽고 근심하여 그 머리를 가리우며&amp;rdquo; 4절에 &amp;ldquo;땅에 비가 없어 지면이 갈라지니 밭가는 자가 부끄러워서 그 머리를 가리는도다&amp;rdquo; 이렇게 되어 있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것은 절망적인 상황을 두고 이야기합니다. 절망적인 상황, 예를 들면 비가 있으면 모내기한다. 그런데 비 없으면 모내기 못하고 농사 망친다, 이렇게 되잖아요. 농사 망치면 되죠. 망치면 왜 안 되는데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인간들이 뭔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어요, 오해.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내가 비리비리하게 못 살면 이건 나한테 수치가 되고 부끄럽다고 하는 그 기준 있잖아요. 그 기준 누가 정한 거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 본문에 의해서 인간들은 자기 위주로 어떤 기준이 있고, 그 기준에 미흡하면 본인이 거기에 대해서 수치감을 느낀다는 그 사실을 오늘 본문은 이야기합니다. &amp;lsquo;나는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 돼.&amp;rsquo;라는 그 기준.&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3절에 귀인들이 자기 종들을 보내어 물을 길으라 하는데 그들이 우물에 갔어도 바짝 메말랐기 때문에 물이 있을 턱이 없죠. 물이 없으니 빈 통을 들고 왔다 이 말이죠. 그런데 귀인들이 그걸 보고 하는 말이 &amp;ldquo;부끄럽구나.&amp;rdquo; 부끄럽다는 거예요. &amp;ldquo;물이 없다.&amp;rdquo; 이러면 될 걸, 부끄럽다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자연에 비가 오지 않는다, 날씨가 덥다, 구름에 가렸다 이런 자연현상에 대해서 인간은 거기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면서 내가 필요한 물, 내가 필요한 햇빛, 내가 사는데 아주 만족스러운 적정 온도가 되지 않을 때 인간은 자처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amp;ldquo;아, 부끄러워라.&amp;rdquo; 이렇게 돼요. 부끄러워라.&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면 이 세상에 자연현상과 모든 세상 돌아가는 것이 그 인간 안 부끄러우라고 돌아가는 겁니까? 인간은 분수를 넘었어요. 세상 돌아가는 것이 자신의 기준대로 딱딱 떨어져야 된다는 그 옹고집. 억지죠, 억지. 그건 말도 안 되잖아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영화감독이 아역을 뽑는데 아니, 내 손녀 빼놓고 다른 손녀를 캐스팅해서 넣었을 때, 그럼 이제 할아버지는 &amp;lsquo;내 손녀 빼고 다른 손녀 들어갔으니까 영화 망해라.&amp;rsquo; 했는데 영화 너무 잘됐어요. 시청률이 막 10% 넘어요. 그 집 손녀는 아주 경사 났어요. 그런데 자기 손녀가 캐스팅되기를 은근히 기대했던 이 집안은 &amp;lsquo;아, 부끄럽구나. 내 인생 내가 보기에 참 수치스럽다.&amp;rs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럴 때 하나님의 계시가 도대체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우리의 잘못된 표준, 나는 이 정도 되어야 나답다는 그 기준 자체의 문제성을, 이방민족 말고 이스라엘한테는 가뭄이라는 자연현상으로 이걸 깨우쳐줍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우리 하나님이 함께 있는 나라에서 먹을 물조차 없다는 것. 남수단도 아니고 에티오피아도 아니고 이슬람 무장단체가 설치는 소말리아도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전국적으로 다 여호와를 인정한다는 나라에서 먹을 물도 없다, 그럴 때 백성들은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 그 부끄러움이 자동적으로 발생된 데에 대해 도리어 질문하죠.&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amp;ldquo;내가 비 오지 않게 했는데 부끄럽기는 네가 왜 부끄러워해? 너 지금 엉뚱한 생각을 품고 세상 하루하루 살아온 것 아니야? 네가 여호와한테 뭘 기대했어?&amp;rdquo;&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amp;ldquo;저 하나님 믿습니다.&amp;rdquo;&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amp;ldquo;그래서 어쩌라고?&amp;rdquo;&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amp;ldquo;저 예수님 믿습니다.&amp;rdquo;&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amp;ldquo;그래서 뭐 어쩌라고?&amp;rdquo;&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amp;ldquo;내가 예수 믿을 때 난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습니다.&amp;rdquo;&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amp;ldquo;그래? 가뭄 한번 줘봐? 3년 6개월 째 안 비 안 오게 해줘봐?&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럴 때 네 입에서 &amp;lsquo;하나님 참 잘하셨습니다.&amp;rsquo; 이런 고백이 나올 것 같으냐 이 말이죠. 나오겠어요? &amp;ldquo;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하나님 이렇게 나오면 우리 곤란하죠. 나 안 믿는 수가 있어요, 이렇게 나오면. 하나님 쪽에서 먼저 건드렸잖아요, 나를. 나도 어지간히 성격 좋지만 더 건드리면 가만있지 않습니다.&amp;rdquo;라는 이런 본성이 나오겠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바로 그 본성 때문에, 이스라엘은 이러한 자체적인 이유 때문에 망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망했습니다. &amp;lsquo;망했다&amp;rsquo;는 말은 뭐냐 하면 나라가 있어서 백성들은 &amp;lsquo;우리나라 최고. 이 나라와 더불어 우리 열심히 후손까지 살자.&amp;rsquo;라고 의지하고 기대고 믿는 구석이 있는데, 주님께서는 그 믿는 구석을 날아가게 했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누가요? 너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 믿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한테 혜택을 주는 그것을 은근히 기대하면서 믿게 했던 겁니다. 중요한 이야기에요. 하나님이 살아있음 그 자체가 좋은 게 아니고, 살아있어서 나를 안 부끄럽게 만드는 어떤 현상들을 채워주길 은근히 고대하고 희망하고 기대했고 우리는 그 기대한 것을 감추면서 &amp;lsquo;저 하나님 믿습니다.&amp;rsquo;라고 자기 주제도 안 되면서 믿었던 거예요. 주제도 안 되면서.&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끝으로 이 이야기하겠습니다. 골프를 처음 배워서 신이 났는데, 골프 내기에서 평소 실력대로 잘 안되었어요. 그때 골프 처음 배운 사람이 뭐라고 합니까? &amp;ldquo;부끄럽구나. 하나님, 이럴 수 있습니까? 내가 골프 배우는 게 뭐 나쁩니까? 그런데 왜 내 뜻대로 안 됩니까? 부끄럽구나.&amp;rdquo; 이러고 있다고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니까 한번 생각해보세요. 도대체 내가 안 부끄러우려면 안 부끄러울 조건을 얼마나 그동안 해대야 됩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종이에요? 정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인간은 존재한다는 자체가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러운 거예요. 내가 여기 있다는 것 자체가. 그런데 인간은 &amp;lsquo;이왕 존재하는 거 내가 기분 좋게 만족스럽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습니다.&amp;rsquo; 거래하듯이 이렇게 한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스라엘 예레미야서에서 &amp;lsquo;부끄럽다&amp;rsquo;는 말은 네 본래의 자리, 아예 없던 자리로 가라. 없음의 자리로 가라. 그러면 부끄러워할 것은 하나도 없고 모든 게 다 주 앞에 고맙고 감사할 하나님의 은혜로만 보일 것입니다.&lt;/span&gt;&lt;/p&gt;
&lt;hr contenteditable=&quot;false&quot; data-ke-type=&quot;horizontalRule&quot; data-ke-style=&quot;style2&quot; /&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517강-YouTube강의(두로의 변신 에스겔 27:31)20260519-이 근호 목사&lt;/span&gt;&lt;br /&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제517강, &amp;lsquo;변신&amp;rsquo;. &amp;lsquo;변신&amp;rsquo;이라는 것은 중국에 옛날 연극할 때 가면 쓰고 나오는 것 있죠.(경극 변검(變臉): 중국 전통극 중 배우가 가면을 순식간에 바꿔 쓰는 기술). 이런 프로그램도 있잖아요, 옷을 확확 바꿔 입는 것, 또는 가면을 순식간에 바꿔 쓰는 것. 관객들이 놀라죠. 그걸 &amp;lsquo;변신의 귀재다&amp;rsquo; 이렇게 하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인생 자체가, 인간은 자기를 주인공이라 여기면서 환경 따라 변신해요. 바뀝니다. 그런데 인간 내면에 마귀가 넣어준 어떤 고집이 있어요. 그걸 어렵게 표현하면 &amp;lsquo;동질성&amp;rsquo; 또는 &amp;lsquo;자아의 동일성&amp;rsquo;이라 합니다. 이것은 사실은 억지에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왜냐하면 세월 가면 얼굴도 달라지고요. 오랜만에 동창생 만나면 전에 알던, 기억 속에 있던 고등학교 때 모습이 아니니까 다른 사람인 줄 알고 얼른 못 알아봐요. 나중에 여러 가지 기억들, 증거들을 주고받는 데서 경상도 말로 &amp;ldquo;아, 갸가 갸가? 그 때 너가 너였어?&amp;rdquo;라고 이야기하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인간은 흐름이지, 잠시도 똑같은 걸 유지하지 않았습니다. 바람은 흘러간다, 맞죠. 강물도 흘러간다, 전도서에 나오잖아요, 맞죠. 그럼 인간은 어떻습니까? 인간도 자연의 일부기 때문에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그냥 변신해요. 자꾸 변화한다고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자꾸 변화하는데, 사람들에게 마귀가 넣은 고집이 뭐냐 하면 한때 자기가 스스로 자기 보기에 흡족했던 순간이 와요. 그러면 그것이 진짜 내가 나답다고 아주 대만족을 하면서 거기서 자기가 스톱을 해버려요. &amp;lsquo;나는 이래야 돼. 이것보다 더 발전되면 발전되었지, 이것보다 퇴보하면 나는 못 살아. 나는 힘들어 못 살아.&amp;rsquo; 한순간에 바짝 자기가 잘되었다고 해서 그걸 고정적으로 계속 유지해야 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억지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렇다면 이것을 제가 말로 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인간들이 어떻게 어떻게 변신되고 변화하고 어디로 처박히는가, 어떻게 끝나는가에 대해서 성경말씀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에스겔 27장 31절, &amp;ldquo;그들이 다 너를 위하여 머리털을 밀고 굵은 베로 띠를 띠고 마음이 아프게 슬피 통곡하리로다 그들이 통곡할 때에 너를 위하여 애가를 불러 조상(애도)하는 말씀이여 두로 같이 바다 가운데서 적막한 자 누구인고&amp;rdquo; 그다음 계속 보면 &amp;ldquo;네 물품을 바다로 실어 낼 때에 네가 여러 백성을 풍족하게 하였음이여 네 재물과 무역품이 많으므로 세상 열왕을 풍부케 하였었도다&amp;rdquo; 그다음 36절, &amp;ldquo;열국의 상고-상인들, 무역상들-가 다 너를 비웃음이여 네가 경계거리가 되고 네가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하리라 하리로다 하셨다 하라&amp;rdquo; 이렇게 되어 있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두로라는 것은 지금의 레바논을 이야기합니다. 레바논 해변가에서 약간 떨어진 섬나라인데 거의 10m 가까이 되는 엄청난 성벽을 쌓았어요. 난공불락이죠. 난공불락의 성벽을 쌓고, 그 자리는, 지금의 스페인에서 지금의 이란, 이라크, 그때의 아시아, 그리스를 거쳐서 튀르키예, 인도까지 가는 그 중간 길에 두로가 있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두로는 오늘날 싱가포르처럼 무역상을 해서 떼돈을 벌었어요. 최고 잘 살았어요. 인구는 별로 안 되는데 떨어지는 돈이 너무 많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서역에 있는 인도, 중국 저쪽에 있는 사람들이 유럽에 물건 팔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될 곳이 두로였습니다. 가면서 이윤 남기고 오면서도 이윤 남기고. 그 가운데서 중계무역해서 거기서 가공을 하면서 남는 이익 또 따로 있고요. 환차도 있고 하여튼 서류 조작만 해도 돈을 버는,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었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에스겔 27장 18절에 보면 &amp;ldquo;너의 제조품이 많고 각종 보화가 풍부하므로&amp;hellip;&amp;rdquo; 이게 왜 제조품이 많고 보화가 풍부하냐 하면 주문생산이거든요. 본인이 공장에서 만드는 게 아니에요. 어느 나라에서 생산되는 걸 미리 알기 때문에 자기가 그 물건을 (주문받아) 미리 갖다놓으면 동쪽에서 받아가고 서쪽에서 받아가면서 거기서 이윤 떨어지잖아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17절에 보면 &amp;ldquo;유다와 이스라엘 땅 사람이 네 장사가 되었음이여 민닛 밀과 과자와 꿀과 기름과 유향을 가지고 네 물품을 무역하였도다&amp;rdquo; 이 물품들은 두로에서 나온 게 아니에요. 두로는 조그만 섬인데 뭐가 생산되겠어요. 온 각처에서 나오는 모든 귀한 것들이 다 모아지는 하나의 터미널 같은 곳이 바로 두로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14절도 마찬가지고 15절도 마찬가지고요. 12절에 &amp;ldquo;다시스는 각종 보화가 풍부하므로 너와 통상하였음이여&amp;hellip;&amp;rdquo; 하여튼 잘사는 나라들의 값진 무역품들이 두로에 다 왔다 이 말이죠. 다 왔을 때 이천년 동안이나 너무 잘 사니까 주변 나라에서 침범을 해서 잘사는 보화를 빼내기 위해 공격을 했는데, 바다로 둘러싸이고 섬이고 요새가 단단해서 어떤 나라도 성공한 나라가 없어요. 아무도 정복 못했습니다. 나중에 멸망당한 것은 바벨론한테 멸망당하고 그 전에는 없어요. 앗수르라는 강대국도 이기질 못했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니까 두로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에 대해서 이사야, 그리고 에스겔 이런 데서 뭐라고 하느냐? &amp;ldquo;우리는 하나님이다. 우리는 신이다. 우리보다 더 화려하고 잘 살고 행복한 민족은 없다. 우리는 대대로 영원토록 잘살게 될 것이다.&amp;rdquo;하고 자신만만한 고백을, 이사야나 예레미야나 에스겔이라든지 여타 선지자들이 두로에 대해서 집중해서 이렇게 언급해놨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그 모습을 이사야나 에스겔에서 마귀를 빗대서 이야기했어요. 두로의 마음자세를 악마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으로 그렇게 하나님의 계시에 나와 있습니다. 이들의 문제점이 뭐냐? 한결같이, 지금의 잘 될 때가 그게 딱 진짜 내 모습이라는 것을 자부하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여기 25절에 보면 &amp;ldquo;다시스의 배는 떼를 지어 네 물화를 실었음이여 네가 바다 중심에서 풍부하여 영화(영광)가 극하였도다&amp;rdquo; 인간의 예상 밖으로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랬던 그가 풍랑이 불고 천재지변이 일어나면서, 무역하려면 배가 있어야 하는데 그 배가 몽땅 다 부서지고 무너진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래서 아까 봤던 31절에 &amp;ldquo;그들이 다 너를 위하여 머리털을 밀고 굵은 베로 띠를 띠고 마음이 아프게 슬피 통곡하리로다&amp;rdquo; 다른 사람들이 두로 걱정해서 도리어 그들이 통곡하는 거예요. &amp;ldquo;아이고, 우리의 이상적인 나라인데 망했대, 망했대. 폭싹 망했대.&amp;rdquo;라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자, 이 이야기가 에스겔 예언서에 들어있어요. 왜 이 예언이 있느냐 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델로 삼은 나라가 두로였어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amp;lsquo;하나님, 하나님&amp;rsquo;하지만 말만 하나님이지 안중에도 없고, 우리가 저 나라처럼 잘 살아봤으면 더는 소원이 없겠다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니까 두로가 뭐냐 하면, 하나님의 계시가 없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목적의식, 그리고 그들의 기대치의 최종적인 것을 두로라는 현실로 그대로 다 보여준 거예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안 좋아요. 두로같이 사는 것이 좋아요. 하나님이 사랑스럽지 않아요. 두로 같이 사는 그 사람이 부러운 거예요. 북이스라엘 아합의 부인도 두로 사람이잖아요. 그 두로가 바알을 섬겼습니다. 왜? 복을 주는 신이니까.&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래서 이제 결론적으로 에스겔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망한 이유를, &amp;lsquo;하나님을 안 믿어서 망했다&amp;rsquo;가 아니라, &amp;lsquo;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동안 왜 여호와를 안 믿었는가&amp;rsquo; 하는 것에 대해서 찾아요. 왜 사람들은 건성으로 예수 믿고 건성으로 예수 안 믿는지 그 이유가 뭐냐?&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마음이 딴 데 가 있어서 그래요. 마음이. &amp;lsquo;아, 나도 저 사람처럼 살았으면 좋겠다. 우리 하나님 뭐하시노? 나 좀 도와주시지.&amp;rsquo;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그럼 그들이 망하면 예수님 믿고 망하면 하나님 믿습니까? 아니죠. 아닙니다. 따라서 망해서 예수 믿는 것, 그건 예수 믿는다 할 수 없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진짜 예수 믿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보다도 세상 부귀영화에 정신 팔려있다는 그것이 진짜 내 모습인 것을 발견할 때, 그 발견은 진짜 살아계신 주님께서 말씀에 입각해서, 두로를 예시로 한 계시에 입각해서 오늘날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지적할 때 그 지적해주시는 하나님이 우리가 믿는 진짜 예수님의 활동입니다.&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유튜브 강의(이근호)/유튜브 강의</category>
      <author>정인순</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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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0 May 2026 10:03:0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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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도행전 9:40 / 육의 한계 / 260519</title>
      <link>https://chninsn.tistory.com/17213207</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a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href=&quot;http://media.woorich.net/%EC%8B%A0%ED%95%99%EA%B0%95%EC%9D%98/%EA%B0%95%EB%82%A8%2026/%EC%9C%A1%EC%9D%98%ED%95%9C%EA%B3%84a260519.mp3&quot;&gt;음성1&lt;br /&gt;&lt;/a&gt;&lt;a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href=&quot;http://media.woorich.net/%EC%8B%A0%ED%95%99%EA%B0%95%EC%9D%98/%EA%B0%95%EB%82%A8%2026/%EC%9C%A1%EC%9D%98%ED%95%9C%EA%B3%84b260519.mp3&quot;&gt;음성2&lt;br /&gt;&lt;/a&gt;&lt;a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href=&quot;http://media.woorich.net/%EC%8B%A0%ED%95%99%EA%B0%95%EC%9D%98/%EA%B0%95%EB%82%A8%2026/%EC%9C%A1%EC%9D%98%ED%95%9C%EA%B3%84A260519.MP4&quot;&gt;동영상1&lt;br /&gt;&lt;/a&gt;&lt;a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href=&quot;http://media.woorich.net/%EC%8B%A0%ED%95%99%EA%B0%95%EC%9D%98/%EA%B0%95%EB%82%A8%2026/%EC%9C%A1%EC%9D%98%ED%95%9C%EA%B3%84B260519.MP4&quot;&gt;동영상2&lt;/a&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녹취:안순석&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강남강의 육의 한계A&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사도행전 9:40, 260519 이근호 목사님&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오늘은 사도행전 9장 26절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됨을 믿지 아니하니라.여기 예루살렘이라는 지역이 나오죠. 그러면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다는 말인가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 이게 예루살렘이고 다메섹에서 나오고 이러니까, 사도행전 9장에서 또는 성경에서 지명이 나오면 이 동네에 살지 않는 우리들은 좀 약간 골치 아프게 되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거기가 어딘데? 그곳이 어딘데?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스라엘이, 여기 지중해가 있고 지중해 여기 바다가 하나 있네 갈릴리 바다 여기 쭉 갈릴바다가 여기서 헤르몬산에서 물이 내려와서 갈릴리바다 1차 저수지처럼 여기서 고이다가 빠져나와서 여기 이제 갈릴보다 4배나 더 큰 사해바다라는 게 있어요.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이 지중해에서 요단강 그 사이가 이스라엘 지역이라고 보면 됩니다. 예루살렘 어디냐? 예루살렘은 이 사해 꼭대기하고 나란히 뒤에 여기 바로 예루살렘이에요. 이쪽이 예루살렘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 8km 떨어진 곳에 이거 이렇게 하면 이게 베들레헴 전부 다 이거 높은 산이 되겠어요. 높은 산맥이 격격하게 강으로 떨어지겠죠. 전부 다 이거 산 정상 등산하면 등산에 높은 봉우리끼리 가는 길이 있죠. 그렇게 보시면 됩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바로 그 길을 다녔어요. 옛날부터 나온 길입니다. 사울이라는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어디를 가냐? 갈릴리를 거쳐서 여기는 너무 멀어서 안 나오는데 다메섹 다마스쿠스 아람나라의 수도로 갑니다. 가다가 걸렸죠. 가다가 걸려가지고, 이 길을 따라서 이렇게 예루살렘 다시 옵니다. 그 다음에 이 예루살렘하고 비슷한 약간 위에 있는 욥바, 텔아비브 현재 텔아비브 욥바, 욥바의 근처, 여기에 룻다라는 지역이 있고, 룻다(이렇게 해가지고 이렇게 해서 룻다) 가는데 저 위에도 이제 우리 가이사라, 큰 도시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 다음에 시돈 저 위에 두로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다메섹으로 가다가 걸려 가지고 이렇게 해서 예루살렘을 거쳐서, 예루살렘에서 룻다 갔다가 룻다에서 욥바로, 욥바에서 가이사랴, 가이사랴에서 배타고 다소, 현재 튀르키에 있는 섬인 바로 여기 다소라는데 이거 이렇게 빠져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이 다메섹에 어떤 일이 있냐 하면 23절에 보면 다메섹 왕이 있어요. 왕이. 유대인하고 결속을 해서 사울을 아예 체포하기로 체포해서 죽이기로 공모가 돼 있습니다. 그게 23절, 24절, 25절 되어 있어요. 공모되어 있는데,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달아 성에서 내려 가지고 탈출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이게 그 고후11장 32절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는 거 11장 32줄 제가 한번 읽어볼게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고후 11:32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33 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걸 한마디로 식겁 했다. 이거예요. 식겁한 거예요. 그래서 다소에 가서 그 다음에 사도는 어떻게 되는가? 갈라디아서 1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와 있어요. 갈1장 16절(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여기에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돼 있죠. 야 이제 여기서 갈림길이 벌어지는 거예요. 육으로 난 것은 육이니까. 육이 기대하고 육의 행함에 대해서 계속 그것을 지탱한다면, 사도 바울이 가는 길과는 못 따라갑니다. 사도 바울로 가는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가요. 육에서 난 것은 육이니까. 지옥 가는 거죠. 그런데 17절에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가 아라비아에 간 게 몇 년? 3년 동안 아라비아에 갔어요. 3년 동안 다소에서 그냥 노는 게 아니고 3년 동안 있었다는 거예요. 3년 동안 있으면서 뭘 받았냐 하면 바로 예수님의 계시를 받은 거예요. 내가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사도와 의논하지 않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갈 1장 12절에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렇게 되어 있죠. 그러면 여기서 정리가 돼야 돼요. 사도바울은 누구를 만날 때? 사람을 상대합니까? 아니면 그 사람 속에 자기와 똑같이 들어있는 성령이 있느냐 없느냐 성령 있는 사람인 것을 파악하기 위해서 만나는 거예요. 어느 쪽입니까? 저 사람 잘 말 잘해서 구원받게 해주겠다. 그런 마음으로 만난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아니면 나한테 온 성령을 혹시 저 사람도 있을 수 있지 않겠느냐 해서 다가가는 거예요. 어느 쪽입니까? 성령을 보고 가죠. 사람 보고 가는 게 아니고 그 사람의 지식이 어떠냐, 학식이 어떠냐, 인물이 어떠냐 보지 않고 나한테 찾아온 성령을 저 사람에게도 제공될 수가 있다. 그것을 확인하고 파악하기 위해서, 왜? 섬겨야 되니까. 자기는 계시를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한 번만 받은 게 아니에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계속해서 계시가 오니까, 주어진 계시는 그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아직 성경이 확정이 안 됐잖아요. 계시가 사도인지 자기에게 주어졌다는 말은 이방인의 사도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나에게 주어진 그것을 성령 받은 사람에게 제공하고 또 제공하고 또 퍼주고 퍼주기 위해서 누구를 만나는 거예요. 따라서 사도바울은 누구하고만 관계하냐면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도 관계하지 않아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왜, 주시는 분이 그리스도니까요. 사람은 눈에 보이는 사람과 상대하면 그만이겠지만, 사도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살아계신 주님으로부터 하늘나라의 정보를 받아서 그것을 전해보면 그 사람이 성령 받은 사람인지 아니면 성령을 안 받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에요? 육적이 되겠죠. 말씀을 알아먹는 사람인지 아니면 육적으로 그냥 태어난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인지 그것을 구분하는 업무를 사도바울이 하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런 이야기 들어보니까, 의외로 사도바울의 업무가 별로 복잡하지 않죠. 복잡하지 않아요. 진짜야 가짜야 이것만 따지면 돼요. 이거는 사도바울뿐만 아니라 사도베드로도 마찬가지예요. 사도 베드로도 교회가 있다는 것은 사람을 위해서 교회가 세워지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로 해요. 교회는 사람을 위해서 만든 게 아니에요. 다른 말로 하면 사람을 내쫓기 위해서 교회를 만들었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사람을 구제하고 도와주고 하니까 사람들이 얼마나 소문이 좋게 났겠습니까? 이 교회는 어려운 사람 많이 도와준대 배려한대 어려울 때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지 않았구나, 교회에 와서 얻어먹자 이런 싸움하잖아요. 교회 가면 그 구제하는 사람도 많고 헌금하는 사람도 많은데 우리 같이 없는 사람은 그 사람한테 이렇게 받아주는 것도 그 사람의 빛을 빛내게 하는 그런 좋은 일을 하니까 우리가 거기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거저 준다는 소문 듣고 많이 왔다 이 말이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사도가 어떻겠습니까? 야 이거 부흥되니까. 기부하는 사람이라든지. 헌금한 사람, 이 사람들만 있으면 좋겠다. 이렇게 되면 사도 베드로도 사람과 상대하는 거예요. 사람과 상대해서 교회라는 좋은 인상을 제공할 수 있는 특별한 단체에 어서 오시옵소서 이런 거죠. 어서 오세요. 그래서 단체를 키우고, 단체를 키운 것은 성령께서 우리 교회에 역사하시고 일하신다는 증거로서 또 대외적으로 홍보를 하면 교회는 더욱 커진다 이거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교회커서 뭐합니까? 여러분들 오늘 본문에 사도행전 9장&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행9:36~40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37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38룻다가 욥바에서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와 달라고 간청하여 39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그들이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이거늘 40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9장에 보면 욥바에 다비다라는 여제자가 있죠. 여기 욥바 텔아비브 거기, 욥바에 다비다라는 여제자가 있는데, 선행과 구제를 많이 했어요. 선행과 구제를 많이 했습니다. 선행과 구제가 영적입니까? 육적입니까? 다시 말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거예요. 인간이 못하는 거예요. 인간이 해낼 수 있는 거죠. 그런데 그렇게 봉사 많이 했는데 이 다비다 생각하면 꼭 그거 생각나요? 오드리 햅번 생각나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아프리카 가 가지고 많은 재산을 아프리카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거예요. 거기서 그 병으로 돌아가셨는가 되죠. 그 선행과 구제를 많이 했는데 죽어버렸어요. 그 주위 사람들이 혜택 입은 사람들이 어떻습니까? 참 아까운 분 죽었다고 애도할 거잖아요. 애도했을 때 그 근처 룻다가 욥바에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룻다에 있음을 알고, 제자가 룻다 여기 있는 걸 알고, 욥바에서 데리러 가요. 한 10km 되는가 모르겠어요. 여기서 데리고 가가지고, 도로가 또 이름이 두 개예요. 다비다 또는 도로가 이 사람을 놓고 기도해서 시체 보고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 보고 일어나 앉은지라 이래 있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여기서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다비다가 죽었어요. 죽었는데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육입니까? 영입니까? 죽을 때 육으로 죽었잖아요. 그럼 살아난 것은 육일까요? 영일까요? 육이죠. 육입니다. 이 소문 듣고도 사람들이 또 몰려오죠. 야 이제 죽은 자도 살아나더라.&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것은 예수님께서 귀신 쫓아내고 물위를 걷고 오병이어 줄 때 엄청 많은 사람이 따라다녔어요. 그런데 예수님 십자가 질 때 제자들 다 도망갔죠. 그게 절차고 순서입니다. 육이 원하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전하면서 육은 어디까지 따라올 수 있는가를 보여줘요. 육이 종교 신앙 영적이라는 표현을 하면서 결국은 육의 소행에 불과한 그 극한의 그 한계점이 어딘가를 말씀을 통해서 알려줍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래서 이 사도행전에서 어떤 죽은 자를 살리고 뭐 이렇게 하는데 그리고 병든 자를 고치고, 막 일어났잖아요. 그건 예수님에게도 그렇게 일했었어요. 그런데 예수님의 뜻은 그거예요. 한결같이. 죽은 자가 살아나고 구제를 하고 선행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육에서 영으로 변하거나 달라지지 않습니다. 바뀌어지지 않아요. 괜히 인간이 육적인 인간이 기대감을 업되고, 부풀리게된 부분입니다. 도와준대, 병고쳐 준대, 해결책 준대. 그것도 어디에 속한 겁니까? 육 안에 육이라는 그 인식 안에 그대로 남아있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예를 들면 베드로 같은 경우에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아까 지금 다비다 같은 경우는 베드로가 예, 바보를 죽은 데 살려줬잖아요. 그런데 사도행전 5장을 한번 봅시다. 사도행전 5장에 보면 거의 베드로가 등장하는데&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행5:5 ~10 5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6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7 세 시간쯤 지나 그의 아내가 그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8 베드로가 이르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이르되 예 이것뿐이라 하더라 9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10 곧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니)&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5장 8절에서 보면 5장 5절에서 보면 아나니아가 이 말 듣고 엎드려고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그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3시간쯤에 아내가 그 생긴 것을 알지 못하고 들어왔다. 그러니까 이 땅값이 그것뿐이냐 말하자. 이것뿐입니다. 예 하니 그때 장사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너도 메어 가리라.&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시체 정리하는 사람 그날 좀 바쁘게 생겼어요. 남편 죽은 시체 옮기고 다시 교회 오니까 또 이번 누가 죽느냐, 사이좋게 그 아내가 또 죽어가지고 이 일을 한꺼번에 죽었으면 한꺼번에 할 건데 차례차례로 일을 두 번 하게 됐어요. 왔는데 또 가서 또 여자 시체를 가져갔습니다. 베드로가 사람 살리는 일을 했어요. 죽이는 일을 했습니다. 죽이는 일. 죽이는 일을 하죠. 죽지 아니하면 말씀을 몰라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amp;ldquo;죽지 아니하면 말씀을 모른다&amp;rdquo;&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죽지 아니하면 말씀을 몰라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육이 죽지 아니하면 영의 세계로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나 예수님 따른 사람들은 그들은 본인이 원하지 않는 조건을 부여받게 되었어요. 이걸 주일날 제가 청부살인이라고 했는데, 원하지 않는 조건이 뭐냐 하면은, 산상설교를 그들은 무조건 들었어야 한다. 산상설교를. 산상설교를 듣고 산상설교 그 마지막에 뭐라고 되어 있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누구든지 내가 전하는 산상설교대로 지키지 아니하면 죽는다. 죽는다. 그러면 산상설교는 인간이 지킬 수 있는 내용이 그 중에서 한 개라도 있어요? 없어요. 단 하나도 없어요. 산상설교는 단 하나도 인간이 지킬 수 없습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산상설교에 의하면 죽었다 죽었다가 돼요. 가만히 있으면 늙어 죽는 걸 주님께서 왜 말씀을 줘서 죽는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거 못 지키면 니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말을 왜 하느냐. 그 죽을 때 죽더라도 이유를 알아야 돼요. 산상설교를 주는 것은 인간의 인간이 자기 내부에 욕망이 있다는 것. 그것도 추잡은 욕망이죠. 천국 못 가게 만드는 욕망입니다. 마귀의 욕망이죠. 욕망이 있다는 것을 말씀과 맞닥뜨릴 때 비로소 내가 주인이 아니고 내 안에 욕망이 나의 주인이었던 거예요. 이걸 다른것으로 표현 해보겠습니다.&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amp;ldquo;인간은 병든 것이 아니고 불균형이고 무질서예요.&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인간은. 균형 잡히지 못하고 무질서한 게 이게 병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균형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거기에 인간이 피조물이니까. 호응해야 되잖아요. 이게 호응이 안 되는 거예요. 왜? 인간 내부의 말씀에 대적하는 속성이 이미 악마로부터 부여됐기 때문에, 균형이 이게 맞지를 않아요. 이 병들었다 하지 마세요. 내 속이 무질서하다고 보세요. 이 무질서한데 이 무질서가 인간이 어떻게 손댈 수 없는 무질서예요. 여기서 잠깐 제가 한번 정리해 드리겠어요. 뭘 정리하느냐 하면은&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1) 상상계 - 거울단계&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2) 상징계&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3) 실재계&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걸 제가 한번 짧게 정리해 드리겠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1번, 2번, 3번이라면 1번으로도 우리 인간에 의해서 다 설명이 가능해요.&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2번으로도 설명이 가능해요. 상징계&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3번으로도 다 설명이 가능해요. 그런데 이 3개가 다 필요한 겁니다. 상상계라고 하는 건 뭐냐 하면 거울단계. 거울단계라고 합니다. 상상계. 거울 단계라고 하는 건 뭐냐 하면 거울을 보면서 아이가 거울을 보면서 비로소 자아를 안다고 하는데 그건 잘못된 거고요. 그건 정신분석에서 잘못 이해한 거고요. 거울을 보게 되면 그 대화 상대가 거기 나타나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너 누구야? 거울 보면 거울이 비치잖아요. 너 누구야? 그럼 거울은 말을 하지 않겠죠? 지가 알아듣겠죠? 아 저거는 나잖아. 그런 단계는 뭐냐 하면 나는 누구하고만 이야기한다? 나는 나하고만 이야기한다. 자기의 상대를 자기라고 확정 지은 세계가 상상계입니다. 어릴 때부터 발생된 이 상상계가 나이가 80이 넘어도.&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죄송합니다마는 80이 넘어도 80이 혹시 만입니까? 80이 넘어도 이거는 요지부동이야. 예 요지부동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아이가 엄마 아빠 싸우는 걸 봤다면 아빠가 엄마 막 때리니까 아빠 엄마 때리지 마. 엄마 때리지 마. 그러면 이 말 듣고 누구도 아이는 누구 편이라고 생각됩니까? 엄마 편을 엄마 이제 매 맞고 있는 가련한 엄마 편이라 생각되죠? 그런데 맞던 엄마가 이제는 잔소리를 해댑니다. 아빠한테. 그러니까 엄마 너무 아빠 힘들게 잔소리 많이 하지 마. 이렇게 나온단 말이에요. 자 그러면 아이는 누구 편이에요? 자기 편이죠. 그게 한계니까.&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내 아빠 내 엄마니까 앞에 아빠 엄마에다가 뭘 붙인다? 나를 집어넣는 게, 내 엄마니까 아빠한테 얻어 맞은 엄마가 불쌍하고, 잔소리 듣고 있으니까 이번에 내 아빠가 불쌍한 거예요. 누가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를 물으면 정답은 뭐냐? 나는 내가 좋다가 정답이겠죠. 나는 내가 좋아. 한결 같아요. 예 다시 한번 이야기하자면 80이 넘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위에 나머지는 80 아래니까. 자동적으로 포함됩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항상 내 편이에요. 이것을 나라는 셀프 자아가 이걸 통제할 수가 없습니다. 이게 상상계예요. 상상계입니다. 어린 왕자에 보면 자기가 떠나온 고향에, 그 행성에 장미꽃 심었다고 그 장미꽃 구경하러 돌아 가야 된다고 하잖아요. 인간은 어느 자리에 어떻게 성공을 하든, 어떤 실패하든 또는 어느 미국에 이민을 가든, 항상 인간이 머물게 되는 것은 나와 나 사이에 상상계의 세계입니다. 샌드위치처럼 나와 나 사이에 끼어 있어요. 여기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걸로 이 상상계로서 인간의 모든 관계, 인간의 생각, 행동을 다 설명하는 것. 이게 상상계입니다. 이게 상상계적 설명이에요. 안 되는 게 없어요. 다 돼요. 모든 게. 그러면 사람을 만날 때 (그냥 만나지 않고 이걸 응용하기 위해서) 사람 만날 때 자기가 자기한테 물었잖아요. 자기가 자기가 물었던 그 거울 있잖아요. 거울을 상대방에게 던지는 거예요. 전부 다, 만난 사람마다. 던지면 그 사람하고 전화할 때는 누구하고 대화하는 겁니까?&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 사람 속에 던져진 그 사람에 있는 나하고 대화하는 거, 나하고 정말 3시간 동안 하면서. 막 따지고 따지려고 너 왜 그랬어? 막 이렇게 따지는 거. 그래서 전화하면서 뭐냐 하면 남들은 대화한다. 하잖아요. 각자 자기 혼자만 하고 있는 거에요. 양쪽 다. 그것도 사이좋을 때 그렇게 대화가 되지. 사이 안 좋으면 입 다물고, 더 이상 저거는 내 요소가 찾을 게 없으면, 우리 말하지 말자.&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우리 다음에 보지 말자. 내가 원하는 건 나의 나됨을 찾는 것이지, 못한 것은 대화를 끊어버리죠. 나는 내가 그리운 거예요. 내가 내가 그리운 거예요. 그러면 나는 누구? 그럼 그리워하는 니는 누군데? 내 안에는 내가 모르는 다른 무질서가 들어 있어요. 무질서. 무질서에 불균형이 들어있어요. 불균형이라 하는 것은 주님의 율법과 말씀은 이걸 원하는데 그것과 서로 사맛디 아니할 때 이게 일치되지 않는 오히려 말씀에 대해서 토달고 틱틱거리고 나한테 간섭하지 말라고 대드는 그런 요소가 내 안에 불균형이고, 항상 불균형이라는 것은 주님의 어떤 조치라도 나는 항상 거기서 반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일이죠. 그게 뭡니까? 무질서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무질서. 이게 무질서가 되죠. 무질서 이유가 없어요. 싫으니까 싫은 거예요. 왜 하나님을 안 믿습니까? 싫으니까. 예수를 안 믿습니까. 싫으니까. 싫다는 말을 빙빙 돌려 가지고 바쁘다 보니까 어떻게 하면 그래도 4대 신앙가족이다. (어떻게 어떻게 말들을 하는데) 인간에게 예수님께서 말씀을 주시는 것은 인간은 자기 말을 하고 있지 않고, 안에 괴물이 이런 괴물이 들어있다는 것을 언급하기 위해서 말씀을 주시는 거예요. 누가복음 23장 34절 한번 찾아 찾아서 말씀해 주세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눅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23장 34절 예,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가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하시더라 자기가 하는 말을 본인도 알지 못한 것만 입에서 나오는 거예요. 그리고 주님께서 십자가 지시는 것도 주님 쪽에서 일방적인 사건이잖아요. 말씀을 주시는 것도 주께서 일방적으로 주신 사건이잖아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주님 쪽에서 우리에게, 인간에게 쏟아지는 주어지는 모든 것은 우리를 상대하는 게 아니고 우리 안에 괴물이 있어서 인간은 자기 괴물을 처치 못하고 어떻게 관리를 못하고 있음을 들추어내기 위해서 말씀을 주신 거예요. 그걸 육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육을 하나의 매개로 보는 거예요. 영적 존재. 악마가 인간의 몸을 매개로 해서 악마가 자기 의사, 자기 표현, 자기의 뜻을 이 땅에 이미 펼친 거예요. 이게 두 번째입니다. 상징계.&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상상계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짐작을 해요. 아 그래? 잘 알아. 나도 막 상상해. 상상하게 나는 내 혼자 나르시즘에 빠져서 상상해도 되는데 두 번째 상징계 이야기하면 상징이라는 말 자체가 일반인들은 잘 쓰지를 않아요. 그런데 상징이라는 와 닿지가 않아요. 상징이라는 말이. 이거는 정신분석학자들, 신학자들이 어렵게 자기가 돋보이기 위해서 일반인은 잘 안 쓰는 단어를 써서 우리 사람들로 하여금 진입 금지하도록 니가 어디 이런 이런 고상한 계통에 니가 들라꼬 니가 상징을 알아, 몰라! 몰라도 좋잖아. 우리 유식한 사람끼리 하는 거야.&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 상징이란 말을 씀으로써 어떤 계급화, 지적인 계급화를 시도한 것처럼 그거를 그렇게 보이죠. 이 학자들도 상징학 쓸 때 얼마나 고민을 했겠습니까? 적당한 말이 상징이라는 말 외에는 적당한 말이 없기 때문에 상징을 쓴 거예요. 그런데 상징 말이 이게 너무 어려워요, 내가 봐도 불만이에요. 이걸 이렇게 상징계라 하지 말고 이렇게 해야 돼요. 이게 허상계라고 해요. 허상. 망상계, 망상계 해야 이게 맞아요. 상징이라 하니까 이게 무슨 말인지&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본래는 허상도 망상인데 이 망상계의 내용이 뭐냐 하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현실 그대로의 세계입니다. 이제 학자들이 상징계 쓴 이유를 알겠죠? 망상계 허상에 가면 현실 그대로의 세계 같으면 이게 객관적으로 뭡니까? 객관적으로 실제로 있는 세계잖아요. 실제로 있는데, 이게 왜 망상이냐는 말이에요. 그래서 학자들이 고민하다 낸 게 뭐냐? 상징계라고 하는 겁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상징계 소개합니다. 상징계란 뭐냐 하면 아이는 자기밖에 모르죠. 자기밖에 모르는데 아이에게 즐거움이 있어요. 그러면 쉬하고 싶을 때 자기 마음대로 쉬하는 거. 먹고 싶을 때 자기 마음대로 먹는 거. 그러면 몸이 어떻습니까? 굉장히 프리하고 자유로워요. 지 울고 싶을 때 울고, 지 갖고 싶은 장난감 자기가 딱 해야 되고, 안에 욕망이 있으니까, 시도 때도 없이 엄마 잠자는데 깨워 가지고 젖 달라고 요구하고, 요구하면 애는 고민입니까? 즐겁습니까? 즐겁지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래서 이걸 가지고 인간이 신체가 갖고 있는 도대체 윤리, 도덕과는 정반대로 그냥 내키는 대로 몸이 마음껏 욕구대로 그것은 욕망이라 하지 않습니다. 욕구대로 펼치는 이걸 쾌락이라고 했어요. 쾌락. 그런데 이 쾌락이 나이 10살, 20살까지 하면 돼요. 오줌 쌀 때 손도 안 대잖아요. 그럴 때부터 뭐야? 배변부터 가르쳐 주지. 개한테도 가르쳐주지.&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오줌 눌때 여기서 누지 말고 화장실이 있으면 집에 가라 하죠. 그럼 누가 이야기합니까? 그걸 누가 이야기하죠? 집안의 어른이 이야기 해야 되죠. 어른이 누구죠? 아버지. 아버지 이름으로 뭐가 주어졌느냐? 통제가 이루어져요. 통제. 통제할 때 통제하는 매개가 뭐냐 하면 언어죠. 언어. 땠지? 맞는다. 그럼 혼나볼래? 혼나볼래? 땠지? 다음이 뭐예요? 언어지요. 그 언어가 철없는 아이 깨울 때 여기서 뭐가 생겼느냐? 의미가 생깁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 의미의 연결망이 바로 상징계예요. 의미의 연결망이 의미 많은 사람들이 말을 주고 받잖아요. 인터넷하고 말 주고 받죠. 말없이 살라카면 지리산 들어가면 되고 지리산 들어가도 말없이 못 살아요. 장날 와 가지고 신발을 하나 살라면 말을 해야 돼요. 그건 안 되잖아요. 말을 한다는 것은 의미를 실어서 상대방에게 내 뜻을 전하잖아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면 인간은 언어의 동물이 되는 거예요. 이 말이 적당할까? 적당하지 않을까? 고민을 할 때 그 고민을 정하고 이거는 할 말 못할 말을 그걸 누가 정하느냐? 집안에 누가 있어요? 자기보다 우월한 존재. 기성세대 아버지가 훈육했고 양육하면서 내 자아 안에 언어가 담기고 내 안에, 정신에 언어가 담기고 의미가 담기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언어가 담기면 이 상징계에서 제멋대로 했던 내가 의미와 언어로 인하여 어떻게 되느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없어요? 없지요. 그게 뭐냐면 억압이에요. 억압. 세상 너 혼자 사는 거 아니다. 그렇지? 그렇게 사는 거 아니야? 억압이죠. 억압으로 인하여, 여기서 뭘 하냐면, 억압이 나의 자기 맘대로 하는 그 신체적 쾌락을 억누를 때, 여기서 우울증이 나타나요. 정신병 정신병 또는 도착증, 정신병, 나는 나팔레옹이다. 이런 거죠. 나는 아버지가 없다. 이런 거. 나는 아버지가 아니고. 나는 내가 성인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게 무슨 뜻입니까? 누구를 전제로 하는 거예요? 나한테 누가 있다? 아버지가 있다는 뜻 아니에요? 아버지가 있으니까 아버지처럼 안 살래. 이래 되잖아요. 아버지 대신 찾는 게 뭐냐면 신을 찾아요. 왜? 신이 아버지니까 새로운 지시와 의미와 명령을 주니까, 그것이 자아 속에 있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제가 뭐라 했어요? 상징성 속에 있는 것은 뭐라 했습니까? 무질서와 불균형을 뭐로 커버했어요? 사회 타인들이, 남들이 그렇게 사니까 참 가정교육 잘 받았네요. 그렇게 사니까 참 훌륭하십니다. 당신 같으면 어디 가도 어느 회사에도 취업될 거예요. 라는 의미를 위해서 내가 어떻게 해야 됩니까? 아버지께서 받은 교육, 학교에서 받은 교육대로 내가 조정해야 되죠. 조정하게 되면 뭘 잃어버려? 내 근원적인 올라오는 무질서한 쾌락을 잊어버리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쾌락을 잊어버리니까 억압되고 잊어버리니까 여기서 뭘? 원하느냐 하면은 보상을 원하겠죠. 보상을 원하는데 보상을 원할 때, 그 보상을 원하는 그것을, 아 이건 뭐 해야 돼? (칭얼대는 걸 이거 가지고 증상이라고 해요.) 징후라고 이야기합니다. 징후. 정신병의 증상과 징후에 있는 정신병자들의 집단을 뭐라고 하느냐? 사회라고 해요. 어떤 사회? 현실사회죠. 현실사회. 그러니까, 이게 태극기는 우리나라의 상징이라고 할 때, 상징은 실체가 없어요. 없는데 의미는 있잖아요. 늘 결핍될 수밖에 없는 의미. 그러니까, 이거는 진짜 보면 뭡니까? 망상의 세계에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허상의 세계인데 사람들은 어디서 어디까지가 한계라고 했어요? 상상계에서? 나로부터 해서 나 안에 갇혀 있는 거예요. 나로부터 내 안에 갇혀 있으니까, 나와 나 사이의 상징계에 와서 누가 그게 누가 끼어들었어요? 아버지의 훈육이 끼어들었죠. 그리고 사장님의 훈육이 끼어들었죠. 지가 한 번만 더 하면 내쫓아낸다. 예 그렇게 하면 어디 가도 니 회사 안 받아줘. 그러면 그 사회에서 주위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뭐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나의 명령체제로 아버지를 대신하는 아버지를 대신한 명령체제가 있대요. 아버지의 이름. 아버지의 이름에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시고 나중에 돌아가세요. 없잖아요. 하지만 아버지한테 훈육받은 그 빈 그릇이죠. 빈 그릇에 아버지의 이름처럼 누가 지시하고 명령하지 않으면 본인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못해서 더욱더 무질서 할때 그때는 뭐냐 하면 누구를 의지 해야 되겠죠. 그렇죠? 누구를 의지? 아버지를 아버지의 대타 아버지를, 어머니의 대타를 찾을 게 아니겠습니까? 그게 바로, 사회에서 교회에서 말하는 이유는 뭐냐 하면 신앙이라고 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신앙. 신앙이 얼마나 육적이에요. 육적. 결국 그 신앙은 누구의 안정? 끌어오르는 자기의 본능을 위해서 억압하면서 사회에서 사람다운 인정을 받기 위해서 자기 조정에 나서면서 뭔가 불안한 나를 안정되기 위해서 의지하고 믿고 따르는 아버지 같은 대상 그게 바로 상징계입니다. 그래서 회사 이제 힘든 일 하고 그 다음에 뭡니까?&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누구한테 보상해야 돼요? 힘든 작업하고 야근하고 누가 보상해야 돼요? 나한테 해야 되죠. 오늘 삼차갈까? 이런 거 있잖아요. 술 먹을까? 이게 뭡니까? 애쓴 나를 내가 달래줘야 할 때 유흥업소가 필요한 거예요. 유흥업소. 유흥업소 아니면 또 어디 가야 됩니까? 한화 한화가 왜 있는지 모르겠어요. 한화 롯데 삼성 야구 또는 6월에 열리는 월드컵 그러면 골프 골프 이야기 스스로 나를 달래줘야 이 사회에서 또 내가 기능을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으니까, 그거 안 하면 짜증나서 진짜로 미칠 것 같으니까 사회에서 그걸 뭐라? 상징계에서는 자아가 없어요. 뭐냐면 자아가 없는 게 아니라 있는데, 그걸 감춰지고 뭐가 나서지요? 주체가 나서지요. 주체가 사람들에게 팔릴 수 있는 상품화된, 퇴직하고 나면 나중에 상품 가치 또 아무도 사지도 안 해. 그럼 어떻습니까?&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 상상계에서는 인간은 누구를 원한다? 내가 대화할 수 있는 상대를 원하죠. 대화하는 상대. 나를 다시 한번 확인해 줄 수 있는 상대. 나의 거울. 이 상상계 이게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고, 이거는 이 상징계는 언제 없어지냐 하면 자연인이 될 때나, 요양병원에 들어가면 지마음대로 오줌 싸고, 지마음대로 자고 싶을 때 잘 때, 이걸 사회에서는 사람으로 봅니까? 시체로 봅니까? 거의 귀신으로 보죠. 귀신이 되게 되면 요게(상징계) 없어져요. 뭐는 남아 있어요? 끝까지 가는가?) 중얼거리면서 자기하고 대화하고 나이 많아서 저러다가 진짜 귀신 됐다. 진짜 죽어버려. 그러니까, 어떻게 봅니까? 이 두 개만 있어도 이 사회에서는 설명을 다 한 거죠. 이 사회에서 설명을 다 한 거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실재계라고 하는 것은 왜 필요하냐? 실재계는 이 두 개 상상계와 상징계의 나를 자꾸 건드려요. 이 실재계가 건드린다고요. 왜 건드리냐 하면 이유가 이래요. 여러분 해와 달과 별이 내 마음대로 움직입니까? 아니죠. 그렇죠? 들풀이나 참새가 시간 따라서 참새가 나가는 거 아니잖아요. 지 맘대로 하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내가 통제하는 내 세계, 상징계. 현실 세계 그리고 내가 나하고는 항상 자기하고 이야기하는 상상계 이것만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해와 달과 별과 그러니까 갑자기 내려오는 폭우. 오랜만에 가족끼리 화목하게 산에 갔는데 갑자기 예상 밖에 폭우가 내려 가지고 텐트가 차고 다 떠내려가서 털털 빈몸으로 내려올 경우에 그때 어떻습니까?&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 해와 달과 별과 그 바람과 구름을 누가 통제해요? 하나님이 만들었다 말은 그렇게 하나님이 만들었다 하면 어느 세계에 속합니까? 이 상징계에 속해요. 상징계는 의미가 있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실재계의 특징은 뭐냐? 이겁니다. 의미 없음. 의미 없음이 누굴 구박한다. 평생. 나를 구박한다. 예측 불가. 우연한 사건이 누구를 구박한다? 악착같이 내가 나로서 살아볼라꼬 그렇게 애쓰는 상상계와 상징계의 나를 여기 자아와 이 주체를, 의미 없는 것 의미 없으니깐 언어로 표현이 안 돼요. 언어의 표현이 안 되지만 손에 잡힐 수도 없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해와 달을 멱살 쥐고 달 이쪽으로 나와 할 수 없잖아요. 그래 놓고도 내가 없는 건 없는 겁니까? 내가 없다고 해서 해와 달이 없는 거예요? 아니죠.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해 달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평소에 사는 것은 자기 중심으로 살면서, 그러면 자기 중심으로 살면서 모든 것과 자기와 관련돼서 살았거든요. 그게 무슨 세계? 현실 세계잖아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 현실 세계인데 천문학자들이 북극성 연구하는 거하고, 농사짓는 사람이 북극성 연구하고 같아요. 달라요. 다르지요! 다르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북극성이 있다. 그걸 객관적으로 보는 과학자 그리고 첫 번째로, 본 과학자라는 것은 별이라는 별은 실재계에 대해서 뭘 여기다 투사합니까? 자기가 알고 있는 수학 공식과 이거 가지고 의미를 투사하죠. 의미를 알아서 박사학위를 논문을 받으면 이 자본주의 현실 세계에서 자기에게 뭐가 돌아와요? 돈이다. 돈 돈이 있으면 자기 세포는 그 돈으로 양식을 사 가지고 세포를 돌리고 자기가 산다 살아있다를 성취할 수 있잖아요. 그게 뭐냐 하면은 그게 주체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자아는 돈 없어도 자아가 될 수 있어. 혼자서 이렇게 돈이 누워. 자아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체는 돈 없으면 주체가 될 수가 없지요. understand. 이해돼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나 혼자 있으면 나 혼자 있을 수도 있어요. 곧 굶어 죽겠지만, 돈 없지. 하지만 사회에서 나 혼자 있을 경우에 나를 사람 취급을 안 한다니깐요. 당신 신용, 은행에 잔고는 얼마 있는데, 주머니는 얼마 있어? 저리 가 없으면 가. 이게 뭐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눈에 보이는 현실 사회에서 돈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래요. 돈이 없으면. 여러분 다 주의해야 됩니다. 당당히 챙기세요. 돈이 없으면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이 아니라는 말은 자아가 아니라는 말이 아니에요. 혼자는 궁시렁궁시렁 할 수 있어요. 그냥 현실에서는 안 받아줘요. 왜? 신용이 없으면 그 사람이 하는 말에 대해서 의미를 신용을 안 주니까 의미를 줄 수가 없어요. 내가 다음에 갚아줄게. 그 의미는 소용 없어요. 한두 번 떼먹나? 니가.&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아까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상상계에서는 자기 안에 갇혀 있죠.&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자기 안에 갇혀 있는데, 상상계에 있는 아이가 아버지의 훈계를 받아서 아버지한테 교육을 받잖아요. 니가 산다는 것은 쾌감이다. 죽으면 아픈 거야. 감기 들리니까 아픈 거 알지? 그리고 어쨌든 간에 니가 살아나갈 때 건강하게 살아야 돼. 그럼 건강하려면 건강에 뭐가 필요한지 알아? 돈이 필요하지. 아빠는 언제까지 니한테 돈 못 대줘. 니가 나가서 공부 열심히 해 가지고 직장생활을 하면 남들이 니 노동을 대가로 너한테 돈을 줄 거야.&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돈 주면 니는 살아 죽어? 살아요. 그러면 니 기분 좋아 기분 나빠? 기분 좋아요. 그게 바로 그게 니 사는 거야. 라고 가르쳐 줬잖아요. 줬는데 실재계에서 뭡니까? 실재계에서 이건 우연한 사건이죠. 이거는 내가 통제 못하죠. 내 마음도 통제 못하지만.&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게 실제로 바깥에 통제 못 하죠. 그리고 갑자기 뭐가 왔는데 거기서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내가 아는 의미 사슬의 외적 요소가 내 안에 갑자기 사건으로 벌어졌잖아요. 그리고 나는 당하면 당할 수밖에 없지요. 실재계 이게 딱 접하는 순간 갑자기 누가 의미가 없어요. 나라는 존재 자체가, 자아든 주체든, 나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그걸 자극 주는 세계가 무슨 세계입니까? 이게 실재계예요. 실재계.&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자 아까 별 북극성 별 이야기 합시다. 과학자는 별을 연구하면서 뭐가 주어져요? 자기에게 돈이 주어지죠. 연구해서 논문 통과하면 자기 교수 자리 고정직이 주어지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럼 농부가 별 보는 거. 그럼 별 볼 일 없어요. 그럼 별 볼 일 없지요. 이건 뭐냐 하면은 상상계와 상징계에서 인간은 객관적이라고 말을 하지만 모든 인간은 뭐다? 주관적이에요. 자기 주관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걸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은 자기한테 되돌아오는 의미의 연결망 속에 인간은 오롯이 갇혀 있습니다. 그런데 아나니아 삽비라 그리고 사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 만난 거 어떻습니까? 그거는 자기가 예상했어요? 예상 못 했어요? 예상 못 했죠. 이 실재계에서는 이 전체를 육으로 봅니다. 니 원대로 사는 것은 니가 좁혀진다. 현실 세계라고 좁은 안목 말고 다른 세계가 있다. 그 세계가 뭐냐? 육의 바깥 세계에 영이 있다는 것을 주께서는 고맙게도 친절하게도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줬습니다.&lt;/span&gt;&lt;/p&gt;
&lt;hr contenteditable=&quot;false&quot; data-ke-type=&quot;horizontalRule&quot; data-ke-style=&quot;style2&quot; /&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강남강의 육의 한계B&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사도행전 9:40, 260519 이근호 목사님&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영적 세계라 하는 것은 성령이 와야 알아요. 인간의 머리에서 나오는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비해서 보이지 않는 걸 영이라 한다는 것은 기꺼해봐야 육의 생각입니다. 거기서 종교가 나오고 신학이 나오고 교회가 나와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교회라 하는 것은 사람을 위한 모임이 교회가 아니에요. 남들이 그렇게 이해하든 말든 상관없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하나님은 사람을 위한 교회가 아닙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아나니아 삽비라 죽일 때 죽인 이유가 뭐냐 하면은 니가 나를 속임이 아니고 성령을 속인것이라 합니다. 난데없이 성령을 언급해버렸어요. 니 눈에는 이 교회와 사도들의 활동만 보이지? 그렇게 보이지? 그게 전부 다인 줄 알지? 아니야? 성령이 있어. 성령을 속이기 때문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죽죠. 그 죽음에 대해서 본인 스스로 그걸 애석하게 생각하면 안 돼요.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창조를 재편해요. 시편104편에 나옵니다. (시편104편 30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성령께서 모든 걸 창조하기 때문에. 오래 살아도 죽고 일찍 죽어도 죽고 태어날 때부터 죽었기 때문에 그다지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에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인간이 죽는 게. 원래 죽기 위해서 태어났기 때문에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닙니다. 그래서 그렇다면 목사님이 이야기하는 결국 인간의 육의 한도 바깥에서 뭐가 와야 된다는 뜻인가요? 그래요. 육의 인간이 끄집어낼 수 있고 끄집어낼 수 있는 모든 것은 나와 관련돼 있어요. 나와 나는 배후에 누가 있냐 하면 나라는 게 원래 없는건데 여기 마귀가 관련돼 있어. 마귀가 나라는 것을 만든 거예요. 나를 만들었어요. 나라는 것은 뭐냐?&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쉽게 말하면 나라는 것은 뭐냐? &amp;ldquo;내가 아는 원리로 내가 살아가는 살아가는 것&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게 나거든요. 내가 알고 있는 원리로 내가 꾸역꾸역 살아가는 거. 그러면 들풀에게 나가 있습니까? 참새도 나가 있어요? 없어? 없지요. 그런데 왜 살지요? 성경에 보면 주께서 친히 기르시나니 돼 있잖아요. 그게 안 되는 거예요. 그게 안 되는 거예요. 인간에게. 그게 되는 경우는 어떤 경우냐? 어린아이 같은 경우에.&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래서 주님께서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면 누구든지 하늘나라 못 간다 했어요. 지금 사단이 어디서 났냐 하면, 나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자체가 사단이 난거죠. 진리를 알고 싶다 하는데, 진리를 누가 알고 싶은데요? 내가 알고 싶잖아요. 거기 진리를 알고 싶다 할때 누가 자꾸 방해 해야 돼요? 나의 존재를 전제로 할 때 방해되는 거예요. 그러면 나를 비켜서 주께서 일을 일으키면 어떻습니까? 그때는 어떻게? 영이 돌겠어요? 안 돌겠어요? 돌겠지요. 그걸 구약에서 말해줍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구약에서. 내가 가만히 있는데, 주께서 훅, 훅이죠? 훅 들어온 거예요. 오늘 제목을 훅으로 할까? 훅 들어온 거야. 훅. 예. 이삭이 자기 상속권을 줄 때, 축복 줄 때 이미 내정돼 있죠. 누구한테 주기로 했습니까? 큰아들 에서한테 주기로 돼 있죠. 너한테 줄게라는 말을 다른 말로 하면 내가 먹고 싶은 사냥한 고기를 다오 이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 짜고 치는 고스톱입니다. 이거는 뭐 이미 축복권은 형식에 불구하고, 이미 다 내정돼 있어요. 내정돼 있다고요. 공천 다 내정돼 있습니다. 다 내정돼 있다고요. 그런데 여러분 놀라운 것은 그 이삭이 야곱을 에서로 착각했다는 거예요. 자, 이 정답은 이삭이 야곱을 에서로 착각했습니까? 아니면 야곱이 거짓말을 했습니까? 몇 번입니까? 문제 너무 어렵게 냈나? 몇 번이 정답이에요? 착각했어요? 착각했습니다. 왜 착각해? 왜 착각했느냐? 이삭은 자기 할 도리를 다 했어요. 면밀하게 만져봤고, 목소리는 좀 이상한 톤이 이상한 말은, 손 만져봐서 털 있는 것. 이것은 하루아침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별미를 먹었고 약간 일찍 왔다 하는 약간 그 낌새가 이거 수상하다 싶으면 그냥 넘어갔고, 결국 이삭은 이래요.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본인이 몰랐던 겁니다. 본인이. 그뿐만 아니에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어느날 야곱이 다리를 절뚝거리고 있습니다. 형한테 맞았어요? 아니면 동네의 불랑배한테 맞았습니까? 안 맞았죠? 야곱이 하룻밤 지나가는데 다리를 절었다. 나는 다리 절고 싶어. 이런 게 있었습니까? 없지요. 어느 사람한테 얻어맞지도 않았지요. 자, 성경 덮고 어느 날 어떤 사람이 하룻밤 자고 난 뒤에 다리를 절었다. 다음 중 몇 번이 원인일까요? 1번 불량배한테 맞았다. 2번 잠자다가 자세 꼬여서 아프다. 3번은 어젯밤에 운동 너무 해가지고 지쳤다. 4번은 하나님의 영이 와서 쳤다, 천사가 와 쳤다. 이렇게 할 때 4번이라는 게 왜 끼어들죠? 납득할 만한 원인 결과가 의미가 성립되려면 그 원인도 납득돼야 되고 거기에 절차로 그 모든 mechanism의 원인 결과와(mechanism이 딱 결과와) 둘 다 납득이 돼야 되잖아요. 그런데 4번 같은 경우에는 뭡니까? 어젯밤에 천사가 밤중에 나타나서 야곱에게 씨름했다라는 사실을 야곱이 알았어요? 몰랐어요. 야곱이 처음에 알았어요? 몰랐어요? 몰랐지요? 말씀은 그렇게 오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말씀은 뭔가 차고 얻어 맞은 (멀쩡한 나 되기 위해서 공들이고 있는 나의 인생에 대해서) 스스로 나를 쪼다로 만드는 예 있으나 마나 한 존재, 쓰레기 같은 인간으로 (아이고 내가 인간을 왜 사나 하는 조로) 만들어 주시는 공통점을 가지고 누가 찾아옵니까? 주님이 찾아오는 거예요. 사울아 사울아 니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은 예수님을 핍박한 적이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했죠. 왜? 현실 세계의 그게 전부니까 눈에 보이니까.&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게 전부니까 사상적으로 예수 믿는 이단사상을 공격했을 뿐이죠. 이게 오늘날 평소에 우리가 악마의 존재가 자꾸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거는 주님에게도 마찬가지지만 악마에게도 마찬가지예요. 악마한테 늘 지시를 받고 있으면서 이거는 악마가 그렇게 했다는 사실을 인간은 몰라요. 악마가 무슨 짓을 하느냐? 하면은 예수 그리스도의 다 이루심에 대해서 자꾸 악마는 그 이야기를 못 듣게 만들어요. 자꾸 그 자리를 피하게 만들어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왜냐하면, 다 이뤄버리면 누구 할 게 남아 있지 않아요. 누구 의미가 남아 있지 않잖아요. 상상계 날라가죠. 그다음에 누구 상징계 날라가 버려요. 의미 있게. 무당이에요. 무당. 사도행전의 귀신들린자. 무당 특히 귀신들 특징은 여기에 상징계도 넘어서고 상상계도 넘어선 자에요. 무당이 특이하게. 그런데 무당은 누구한테 매였어요? 이게 악마한테 매였잖아요. 귀신한테.&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실재계에 매인 거예요. 그걸가지고 뭐라 하느냐면, 무병. 병이 와도 원인을 모르겠는데 아파, 자꾸 아파요. 딴 걸 못해요. 그런데 무당질하니까 어떻게 돼요? 좀 이렇게 증세가 호전돼요. 정신과 정신의학에서는 딱이죠. 딱입니다. 자기의 춤추고 싶고 허슬어 지고싶은 자기의 쾌락을 삶에서 용인을 안 해주니까 그동안 억눌렀던 데서 오는 예 괴로움을 이제는 눈치 코치 안보고 무당질을 하니까 작두 위에 올라가니까 신바람 이 박사 되어 가지고 병이 치유가 된 거죠. 그래서 사도행전 19장에 나오죠.&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행19:15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안다. 귀신이 귀신 같아요. 아까 그 사울이 어느 편에 속했냐? 육의 편에 속했냐? 영의 편에 속했어요. 영의 편에 속했죠. 사도 바울은 사람에게 설교해서 설득해서 구원받고자 하는 일이 아닙니다. 나한테 일어난 이 특이 현상이 나에게만 일어난 게 아니고 이렇게 일어난 사람이 있을 것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어떻게? 말씀에 대해서 말씀에 대해서 원인 없이 그냥 순풍순풍 순하게 (뭐 얻어맞고 이거 없이) 그냥 순하게 그 말이 맞네? 그럼 그 말 맞잖아. 하나님이 자기 아들 보내서 죄값을 치렀다. 그거 하나님이 잘 하셨네. 아무 그냥 순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 안에 누구가 개입되지 않아요. 자기의 의가 감정과 자기 지식이 개입됐어요, 개입이 안 됐어요. 전혀 개입되지 않은 거예요. 이거는 그 성경에서 찾아보니까 그게 내가 원함이 아니고 누가 원함이다? 주님께서 나를 원했기 때문에 그런 예 그 자연스러운 현상이 난 겁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 실재계에서는요. 실재계 쪽으로 간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예술가들이에요. 예술가들은 그 예술에 미쳐야 돼요. 마약을 하든지 뭘 하든지 미쳐야 새로운 창의성이 나와요. 기존의 상징계에서 나왔던 작품 말고 특이한 작품은 이게 실재계에서 무당한테 얻든지 귀신한테 하든지, 뭔가 특이점이 나와야 됩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근원적인 본성 먹음직하고 그 다음에 보암직하고 그 다음에 뭡니까? 탐스럽기 하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것을 이 숨어 있는 잠재되어 있는 잠재를 현실로 끌어올리는데 여기 예술이 동원되죠. 예술. 피카소니 누구니? 그 당시에는 전혀 아름답지 않아요. 지나가다 보니까 야 이게 우리의 아름다움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아름다움이구나 이래 되죠. 그러면 성경에서 무화과 나무 따먹었기 때문에 이런 사단 난 거예요. 그럼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뭘까요? 여기 로마서에 나옵니다. 로마스 10장 15절을 한번 읽어보세요. (롬10: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아름다운 뭐라 했죠? 아름다움 아름다움 좋은 소식을 전합니다. 예 아름답도다. 예 뭐가요? 뭐가 아름다워요? 좋은 소식. 복음을 전하는 자의 뭡니까?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이사야에서 예언된 겁니다. 사도바울은 본인을 포함해서 많은 성도들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은 완전히 인간 자신의 자아 주체를 개박살 내는(이거 박살 나면 뭐 얻는다가 아니라) 그냥 나는 개 박살 대상 고걸로 끝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개 박살 나야 돼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야곱이 야곱은 그냥 육일 뿐이에요. 육이니까. 내가 육일 뿐이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은 누굴 만났을 때? 영을 만났을 때 알 수 있는 거예요. 영을 만났을 때. 야곱이냐 에서냐 에서냐 야곱이냐 그거 뭐 자체 내에서 혼돈이 나와버리니까 누굴 탓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삭은 야곱을 탓하지 않아요. 자기한테 거짓말한다고 탓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누굴 건드렸다? 나를 건드려 내가 착오를 일으키도록 건드린 거예요. 아브라함에게 난데없이 자기 이삭을 바쳐라고 제사하는 것도 마찬가지인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런 것을 신약에 와서는 방금 구약 이야기 했잖아요. 이제는 신약에 본격적으로 됩니다. 그게 마치 폭격할 때 편대가 와서 폭격하듯이 뭐냐? 말씀이 와서 폭격을 해버려요. 말씀이 육에 대해서 영적으로 폭격을 해버린다고요. 그러면 그 절차가 어떻게 되냐 하면은 먹는 거 입는 게 좋다. 몸이 튼튼한 게 좋다. 하는 그 과정을 몸이 죽었다 살아나는 것보다 뭐가 더 중요하냐? 굳이 안 죽어도 굳이 죽었다가 살아나지 않더라도 뭐가 아름다워요? 말씀이 아름다운 거예요. 이걸 쑥 하고 그냥 받아 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사도 바울과 한 편이다. 같은 편에 속한 사람이에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막 5장 38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39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40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마가복음 5장 40절에서 41절에 보면 예수께서 예 39절에 들어가서 저희께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아까 무슨 우리 뭐 배웠습니까? 상상계 고다음에 상징계 말고 뭐 배웠어요? 아무 의미 없는 상징계에 포함되지 않고 그 외에는 의미는 끝 그 이상 다른 의미 없음 했는데 여기에 주님께서 어떤 단어를 썼나요? 얘는 죽은 것이 아니고 살아있다.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의미죠. 그러니까 40절에 저희가 비웃더라.&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야곱이 천사 만날 때 야곱은 자기를 죽이러 온 자객인 줄 알았지. 천사라는 걸 몰랐어요. 이처럼 주의 모든 말씀은 우리가 살아 있으면 무슨 뜻인지를 몰라요. 우리가 살아 있으면. 저희가 비웃더라 하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 말씀에 대해서 비웃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비웃더라. 예수께서 저희를 다 내어 보내신 후에 아이와 부모와 함께 있다가 아이 손을 잡고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이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니가 일어나라. 살아났지요. 자 이제 문제 나갑니다. 이 소녀가 살아났을 때 영이 되었어요? 육이 되었어요? 육이 되어있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면 영은 어디서 있습니까? 영은 어디있죠? 예수님께서 인간에게 말한 그게 영이죠. 말한 그게 영이에요. 내가 살아났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인간을 향하여(죽은 인간을 향하여) 말씀을 전할 때 죽은 인간은 그 말이 뭔 뜻인지를 모릅니다. 심지어 당사자도 뭔 뜻인지를 몰라요. 앉은뱅이를 일어나 걸어 할 때 앉은뱅이도 뭔 뜻인지 몰라요. 그냥 일어났어요. 누가 이렇게 했느냐? 살아계신 주님의 말씀이 살아있기 때문에 내가 살아있는 게 말씀이 살아있기 때문에 그 말씀에 우리가 순간적으로 훅 들어온 거예요. 말씀이 나한테 훅 들어온 게 아니고 내가 말씀에 쑥 빨려 들어간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그 다음부터는 말씀의 사람이 되면서 그걸 영의 세계 영이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지금 베드로나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나 바울이나 지금 말씀 전파에 있어요. 예 여기에 아까 봤지만 로마서 10장 나오죠. 로마서 10장에서 구원은 어떻게 됩니까? 죽었다 살아나야 구원 됩니까? 여러 가지 질문을 할 수 있는데, 이게 로마서 10장에서 분명히 이야기했어요. 내 전한 말을 믿으면 믿고 믿으면 니가 구원을 얻으리라 해. 왜냐하면, 그 말씀이, 그 의미가 인간 세계에서 없는 분이 말하거든요. 그게 뭐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를 받아들이면 그러면 우리는 인간 편에 속한 게 아니고 인간에서는 이미 죽었고, 죽어야 사니까, 말씀으로 죽이고 말씀으로 살아 나니깐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아는 거예요. 상상계에서 우리는 나를 못 떠나잖아요. 말씀이 오니까 못 떠난 나를 옴팍 뭐로? 이중 포위해 버렸어요? 나만 아는 나만 챙기고 내 이익만 챙기는 나를 뭘로 포위해 버렸습니까? 말씀으로 완전히 카바해서 포위해 버리니까 죽은 데서 살아나버린 거예요. 나는 죽고 말씀이 그 십자가 사건의 능력이 다 이루었다. 함이 이렇게 죽은 나를 이렇게 살리시는 거예요. 어디 안에서? 말씀 안에서 주 안에서 살리시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뭐가 아름다운데요? 이 세상에, 뭐가 목숨과 바꿀 수 있는 겁니까? 말씀입니다. 누군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날 따라오라. 이걸 누가 할 수 있는 사람 없어요. 그러나 말씀 안에서 우리는 매일같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가는 면면을 우리를 통해서 보여줍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평소에 하는 말. 나는 뭐 내가 한게 있어야지 이 말이 바로 십자가 지고 죽어가는 예수님의 경로에서나 나올 수 있는 제3의 영역, 상징계, 상상계 아닌 다른 영역에서 오는 주의 말씀이 입을 통해서 툭 튀어나오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럼 구약의 예를 들게 되면 여러분들을 확실하게 보여줄 겁니다. 예 아 요건 한번 찾아봐야 되겠네 이거는. (역대상 21장 1절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육에서 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예 다윗 경우를 한번 봅시다. 역대상 21장 1절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개수하게 하느라. 여기 다윗으로 하여금 이스라엘 숫자를 숫자 개수하는 게 누가 그렇게 시켰습니까? 사탄이죠. 영의 세계에 속한 악마가 그렇게 했던 겁니다. 악마가 다윗이 정신 차려야 돼. 똑똑하게. 이게 소용없어요. 하여튼 우리는 우리 자신의 관리에 대해서 늘 구멍 뚫렸습니다.&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뭐 방어 체제 소용 없어요. 우리 방어 체제 아무 소용 없습니다. 자기를 지키려고 해서도 안 되고 할 필요도 없어요. 주께서 친히 기르신다는 말씀만 우리에게 주어지면 돼요. 인구조사를 했는데 인구조사를 하면서 21장 제일 마지막을 한번 보겠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역대하 21:29 옛적에 모세가 광야에서 지은 여호와의 성막과 번제단이 그 때에 기브온 산당에 있었으나)&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29절 옛적에 모세가 광야에서 지은 여호와의 장막과 번제단이 그때 기브온 산당에 있었으나, 기브온 산당이 있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은 지금 다윗 성전짓기에서 기획안을 제시한 자는 누굽니까? 솔로몬이 아니고 누구예요? 다윗이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역대상 22:1~6, 1 다윗이 이르되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이요 이는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라 하였더라 2 다윗이 명령하여 이스라엘 땅에 거류하는 이방 사람을 모으고 석수를 시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돌을 다듬게 하고 3 다윗이 또 문짝 못과 거멀 못에 쓸 철을 많이 준비하고 또 무게를 달 수 없을 만큼 심히 많은 놋을 준비하고 4 또 백향목을 무수히 준비하였으니 이는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이 백향목을 다윗에게로 많이 수운하여 왔음이라 5 다윗이 이르되 내 아들 솔로몬은 어리고 미숙하고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할 성전은 극히 웅장하여 만국에 명성과 영광이 있게 하여야 할지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그것을 위하여 준비하리라 하고 다윗이 죽기 전에 많이 준비하였더라 6 다윗이 그의 아들 솔로몬을 불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부탁하여)&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22장에 넘어가면, 다윗이 가로되 이건 여호와의 전이요 이스라엘 번제단이다. 다윗이 명령을 해서 이스라엘 땅에 이방 사람 모으고 속속 모아 가지고 그다음에 뭐합니까? 백향목 준비하고 결국 뭐 하는 거예요? 계속해서 5절 6절에 보면 7절에 보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뭘 지어라? 성전을 지어라 그러면 기드원에 있던 언약궤가 언약궤가 단순히 예루살렘으로 이동하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성전되는 겁니까? 아니지요. 이게 어려운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언약궤 있으면 그냥 텐트만 치면 그게 성전되는 겁니까? 아닌 거예요? 아니에요. 그 당시 언약궤는 예루살렘에서 8km 떨어진 기브온 산당이 있었어요. 그 산당에는 처음에 솔로몬이 성전 짓기 전에 산당에서 1천번제를 드린 장소가 그 산당입니다. 사무엘하 6장에 보면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모셔옵니다. 사무엘하 6장에 보면 모셔오는데 예루살렘에 늘 두지는 않았어요. 그걸 기브온 산당에다가 넣은 거예요. 이동시킨 거예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사무엘하 6장에 보면 그 언약궤가 에돔의 집에서 언약궤가 예루살렘에 오잖아요. 나팔 불고 난리 났지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삼하6장 15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 16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래서 그 부인이 사울의 딸 미갈이가 거기서 좀 어떻게 내 남자가 다른 여자들 앞에서 체면 구기고 춤추느냐 질투해서 짜증낼 때 어떻게 돼요? 미갈은 어떻게 돼요? 애기를 못 낳아요. 저주 받았습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잠깐 응용해볼까요? 저 남편은 내 남편이라 할 때 앞에 남편 앞에 뭐가 붙습니까? 나가 붙죠. 그러면 다른 남자, 다른 남자 이 시간 없어요. 내게 내 소유가 되잖아요. 그러면 여기는 무슨 계라고 했습니까? 상상계 인간은 내 것과 대화하는 거예요. 내 것과 대화해요. 85살 먹은 할머니가 뒤늦게 미술대학에 가서 졸업했어요. 인간극장 지금 하고 있어요. 자기 어릴 때에 못했는데, 어려울 때마다 거울 보고 하는 말이 힘내라 힘내라. 이렇게 자기가 자기보고 격려하는 거예요. 이 인간은 죽을 때까지 못 벗어나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지금 다윗은 뭘 보고 있습니까? 언약궤를 보고 있죠. 언약궤 앞에서 다윗은 지금 깔끔하게 옷을 차리고 예의를 갖춥니까? 그거는 어디에 해당돼요? 상징계에서 왕은 체신을 지켜야 됩니다의 의미로 통하죠. 그게 남들이 나한테 요구하는 의미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의 가치는 인간들이 체면을 가지고 마중 나가면 그 하나님의 가치가 죽어버려요. 나는 그 앞에서 내가 지금 체면을 지키든 안 지키든 관계없이 그 자체로서 하나님의 복음, 하나님의 진리 그 자체로서 빛나야 되는 거예요. 그게 아름다운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사도바울이 복음 전하면서 얼마나 고생했습니까? 고생해도 그게 자기한테 상이라고 했어요. 왜? 진리가 진리답게 나오려면 고난 받아야 되니까. 핍박합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고난으로 나타날 때 이게 바로 영이 육에 나타날 때(침투할 때) 징후고 증상이잖아요. 주의 이름으로 복음 기뻐하라. 내 이름으로 핍박받고 비난받은 것을 기뻐하라. 하늘나라 상이라 신자들도 이와 같이 고생했다. (마태 5장 12절 13절 말씀 )&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마5: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지금 성전이 있어요? 없어요? 성전은 없어요. 없는데 지금 다윗이 없는 성전을 만들려고 합니다. 장소가 뭐냐 장소가&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역대상21:1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7 하나님이 이 일을 악하게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시매 8 다윗이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14 이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염병을 내리시매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죽은 자가 칠만 명이었더라&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22 다윗이 오르난에게 이르되 이 타작하는 곳을 내게 넘기라 너는 상당한 값으로 내게 넘기라 내가 여호와를 위하여 여기 한 제단을 쌓으리니 그리하면 전염병이 백성 중에서 그치리라 하니 25 그리하여 다윗은 그 터 값으로 금 육백 세겔을 달아 오르난에게 주고&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26 다윗이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여호와께 아뢰었더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시고&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27 여호와께서 천사를 명령하시매 그가 칼을 칼집에 꽂았더라)&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역대상 21장에 보면 장소가 오르난 타작마당에서, 오르난 타작마당에서 다윗이 대표로 천사의 칼을 맡습니다. 천사의 칼을. 천사는 현재 7만 명은 죽는데 7만 명에서 멈출 기세가 아니에요. 이스라엘 다 죽여버릴 거예요. 다 죽여버릴 기세로 왔다 이 말이에요. 그때 타작마당에서 다윗이 재단과 화목제를 쌓고 재단과 번제단을 드리면서 할 때, 26절 하나님께서 불로서 응답을 했죠.&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역대상 21:25그리하여 다윗은 그 터 값으로 금 육백 세겔을 달아 오르난에게 주고&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26다윗이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여호와께 아뢰었더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시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불로서 응답했다는 말은 다윗이 다윗이 드린 재단의 자리에 상상제, 상징제 다윗이 드린 재단들 자리에서 뭘로 대체되었어요? 그 눈에 보이는 인간의 바친 재물과 재단 재물을 인간이 바쳤잖아요. 바쳤으면 인간의 손때가 묻었겠죠. 손때가 묻은 것을 뭐가 와서 그것을 다 없애버립니까? 하늘의 불이 떨어져서 있음, 인간의 성의가 있음, 인간의 신앙이 있음 있음의 자리가 불이 오니까, 어떻게 돼요? 없음의 자리로 바뀌죠. 성전은 바로 없음에서 시작하는 것이 성전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성전. 그게 언약궤의 취지와 맞아요. 왜? 언약궤 있는 곳에 인간이 만약에 한 발짝 들어가면 어떻게 돼요? 인간은 죽어 나옵니다. 없어요. 없애버립니다. 없는 무서운 세계가 이스라엘을 통해서 인간 세계에 침투했다는 자체가 인간한테는 위기예요. 위기입니다. 현재 세상에 철학사에 많은 실재라고 하는 것은 위기가 아니고 인간에게 많은 실재라고 하는 것은 통제할 수 없는 쾌락과 흥분 이런 걸 말하거든요. 그러나 성경에서의 실재계라 하는 것은 인간은 죽어 마땅한 세계. 인간은 죽어 마땅하고 인간 살았다고 하지만, 사실은 죽은 자라는 것을 알려주는 말씀이 대기하고 있는 세계가 실제계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게 야곱에게 찾아왔고 그게 이삭을 하여금 착오를 이렇게 만들었고, 그게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요구한 거예요. 그러나 이 철학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안 받았으니까 성령을 안 받았으니까 인간 선에서 생각하다 보니까 인간은 상상한다, 못 벗어난다. 그리고 세상에 나와서 출세하려고 성공하려고 의미를 찾고 하는데 인간의 모든 과학, 아까 에너지 어땠잖아요. 에너지 전부 다 의미잖아요. 그거 다 어디에 속합니까? 상징계에 속해요. 인간의 허상세계에 속한다고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허상세계지만 그들이 몸이 살아있으니까 허상 아니라고 우기죠. 그런데 그 세계 살다 보니까 어떻게 내부적으로 너무 속이 상하죠. 정신 스스로 핍절하고 직장 오래 했다고 정말 60대가 퇴직하고 난 뒤에 그 다음 어디 갑니까? 동남아로 놀러 가죠. 스스로 자기한테 위로를 하는 게 고생 많이 했다. 좀 쉬어도 괜찮다. 해외여행 한 1달 동안 크루즈 여행 갔다 올래? 갔다 와 또 병 걸려가지고. 아니 그건 악담하면 안되죠? 그런데, 역시 인간은 예술이 최고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예술은 뭐냐 하면은 아까 자기가 성깔대로 사는 거야. 주체할 수 없는 성깔자로. 그게 비디오 아트로 유명한 사람 누굽니까? 백남준 그런 사람들. 예술가 다 그래요. 거의 미쳐야 예술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성경은 그게 아니고 마귀자식아 딱 기다려. 내가 너를 저주하겠다. 이게 실재계입니다. 말씀으로 우리를 못 지키니까 말씀이나 언어에 우리가 합치 못하니까 마땅히 죽어. 마땅하죠. 죽여놓고 주께서 문둥병자 어떻게 합니까? 문둥병자가 저주받아야 마땅한데 주께서 그걸 고쳐놓고 어느 쪽으로 보냅니까? 레위기에 있는 말씀 쪽으로 가버리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 문둥병을 자비로 고쳐놓았을 때는 반드시 레위기 14장, 15장에 나온 그 재물이 있어요. 그 제사를 이루기 위해서 내가 십자가 죽으러 왔다. 이게 예수님께서 하고 싶은 이야기예요. 다윗이 그 제사의 한복판에 있습니다. 있으면서 자기가 제사장이 돼요. 제사장이 될 때 하나님께서 응답을 해서 불로 나타냈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렇다면 이 장소 다윗이 제사장 되어서 재물 드려서 응답받은 이 장소가 어떤 장소입니까? 있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서 죽이려고 했던 그 장소잖아요. 죽이려고 했던 그 작업이 육적인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바꾸는 필수적인 절차임을 알죠? 그게 다윗 언약입니다. 다윗 언약. 예수님은 다윗언약을 준수하러 왔고, 이스라엘 사람 유대인으로 오셔 가지고, 죽죠. 그 십자가가 예수님의 십자가가 바로 우리를 용서하는 십자가가 되는 그 원리와 합치되죠. 이게 바로 주께서 일관되게 일하는 거거든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럼 다시 사도행전 다시 가 봅시다. 사도행전에서 왜 베드로가 죽은 자를 낫게 하고 그 다음에 초대 교회 때 그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이랬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이거는 핍박 받기 전이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자, 핍박이 시작되면 어떻겠습니까? 이 사람들이 어디로 다 도망을 쳐요? 어떤 사람은 잡혀 죽고 어떤 사람은 전 세계로 퍼지죠. 전 세계로 퍼지면 전세계에 퍼진 그 사람 뒤따라서 누가 따라갑니까? 이방인의 사도가 누구예요? 사도바울이 뒷따라 가는 거예요. 뒷따라 가서 그 당시에 이방인한테 전합니까? 유대인한테 전해요. 회당이 어디 가서 가요? 회당에 들어가죠. 유대인들 회당에 전하는데 듣기는 누가 들어요? 이방인들이 듣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방인들이. 이 말은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몰라도 되고 예수 몰라도 상관없어요. 율법이 없었기 때문에. 하지만 그들에게 하늘에서 뭐가 오냐? 성령의 세례가 와요. 성령의 세례가 오니까 누가 부끄러워요? 유대인들이 부끄러운 거예요. 그래서 좀 어려운 대목인데 한번 봅시다. 이 어려운 대목하고 음악 노래 한번 봅시다. 3장 2절에서 3절요. 갈라디아스 3장 2절 3절 좀 어려워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갈3: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거는 어렵다고 내가 먼저 당부했습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게 이거예요. 지금 말씀의 세계가 있잖아요. 말씀의 세계. 이건 말씀이 없지요. 말씀이 있어도 말씀을 추방했잖아요. 예수님을 추방해서 보냈잖아요. 말씀 없는 세계죠. 말씀 없는 세계. 들어올 때는 반드시 뭐냐 하면 핍박으로 와요. 고난으로 말씀이 이 세계를 이런 식으로 왔기 때문에 죽은 자가 살아났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핍박이 올라옵니다. 여기 반드시 말씀이 그냥 쓱 하고 들어온 거예요. 성령에 의해서 들어왔는데 누가 가만두지 않습니까? 말씀 없는 세계가 예수님을 포위해서 구박했듯이 그리고 유대인들이 스테반을 포위해서 돌로 쳐죽였듯이 이 말씀 없는 세계의 사람들이 성령세례 받은 이 성도를 영의 사람을 육의 본색을 드러내면서 공격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상징세계에서 또 이해가 안 되죠. 현실 세계에서. 현실 세계에서는 무슨 세계라고 했습니까? 의미, 서로 아는 의미를 통용하는 세계에서 아무 행함도 없이 아무 한 것도 없이 착한일 하지도 않았는데 천국을 갔다. 이들이 가만두겠어요? 안 두겠어요? 안 두고 핍박하겠지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오늘 교회도 핍박하는데 그 사람들이 가만두겠어요. 그래 부모한테 효도해야지 맨날 그러잖아요. 이래야만 무슨 소린지 모르는 거예요. 이게 달리다굼하고 똑같아요. 죽었는데 어떻게 살아나요? 그런데 살아났잖아요. 어떻게 착한 일도 안 하고 율법도 모르는데 어떻게 구원받았어요? 구원받았잖아요. 그래 어떻게 모르는데? 구원은 받았단 말이죠. 아니 말씀이 말씀대로 들어오는데 어떻게 해요? 아니다. 하는 게 더 어려운데. 주께서 십자가 지고 사흘만에 부활했다. 맞잖아. 저쪽에서는 미쳤어.&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니가 그게 왜 맞는데? 한번 따져볼까? 따져볼까가 뭡니까? 무슨 의미 따져볼까가 뭐예요? 이게 상징계 아닙니까? 따져볼까가? 어떻게 몸이 아파서 니가 기도하니까요? 아니야. 그냥 왔다니까. 백날 몸 아파도 교회 다니고 몸 아파도 구원 안 못 받아요. 그냥 성령이 와서 받는 거예요. 내시가 뭡니까? 성령 와서 오니까 이사야의 말씀을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 그거 알았잖아요. 주저하지 않고 세례 받았잖아요. 갈라디아서 2장 그 대목에서 이게 어려운 2장 내가 너에게 이걸 알게 하면 너희가 성령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에서냐 이건 별로 어렵지 않다고 느껴지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니가 복음을 십자가를 알고 복음을 알게 된 것은 니가 율법 행위로 얻은 것이냐 (행위로 얻으면 누가 살아 있어요? 상상계가 살아 있죠? 예 그 상징계가 살아 있잖아요. 나는 율법의 흠이 없는 자로다. 이게 상징계 아닙니까?) 남들이 보기에 니는 완전해. 사도바울에게 이게 상징계잖아요. 그런데 성령을 받았다. 이거는 성령 받으면 끝이잖아요. 그런데 뒤에 말이 이상하잖아요. 성령을 받았는데 어떻게 율법의 행위로 빠져들어갈 수가 있어요. 있습니까? 없습니까? 되게 어렵다 이 말이죠. 이거 왜 그러냐? 성령 안 받았어요. 안 받아놓고 성령 받은 흉내를 내는 거야. 성경 말씀을 복음 말씀을 달달 외우면서 신학까지 공부하면서 늘 감사가 나온 게 아니고 늘 주체가 나오고 자아가 나온 게 좀 더 완벽하게 좀 더 완전하게 누가 봐도 신앙인처럼 해야지&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게 어렵다는 게 뭐냐 하면 이거예요.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뭐라고? 육체로 끝났죠. 육체로 마감했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 이 말은 뭐냐? 사도가 뭐였던 사람이에요? 육에서 시작한 사람인데 뭐가 되었어요? 성령이 되었죠. 육에서 해서 성령이 된 이 사람 중심으로 이 사람 근방으로 중심으로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으로 빠진 사람들이 포진돼 있다는 뜻이에요. 포진돼 있다. 그래서 교회 나오고 사도바울 핍박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 육의 한도에 대해서 한번 나눠주세요. 죄송합니다. 육의 한도. 인간의 육이 어떤 한도가 있는지 이것은 팝송인데요. Silver threads among the rest, among the gold인데 영어 가사가 되게 쉬워요. 한번 보겠습니다. Darling, Im growing old. 드디어 내가 늙어가고 있어요. 실버드레스 어몽드 골드 금발 사이로 은빛 머리카락이 보이네요. Shine upon my brow today. 오늘 내 이마 위에 빛나고 있어요. Life is fading fast the way. 인생은 참 빠르게 흘러가네요. 그러나 My darling will be 내 사랑. 당신은 내게 언제나 젊고 아름다울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거 보세요. 늙어가는 것을 부정합니까? 인정하죠. 인정하는데 뭐라? 언제나 젊고. 아름답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거는 영의 세계에서는 복음은(아는데 복음 벌써 다 알았어) 아니야. 말씀은 내게 부딪히는 이 고난 가운데서 날마다 갱신돼요. 이 말씀이 다 아는 말씀. 좁은 길로 가서는 안 된다. 이 다 아는 말씀이. 인생을 우리 육신이 살아있는 계속 갱신돼 가지고 새로운 감사와 기쁨이 계속 나오는 거예요. 예스 그래요. 내 사랑 당신만은 언제나 젊고 아름다울 거예요. 여기 2절 가사는 안 했는데 2절 가사에 보면 이런 게 있어요. You have never old grown. 당신은 결코 늙지 않았어요. 늙지 않았어요. 늙은 거 늙다고 분명히 언급해 놓고 내가 보기에는 당신은 늘 젊고 아름다워요. 늙지 않았어요라고 되겠어요. 이 아름다운 노래 예 1절만 잠시 한번 들어봅시다. 또 유튜브 저작권 해대니 신경 쓰여 1절만 한번 들어볼게요. 예 1절만 가서 한번 봅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Darling, I am growing old. 여보, 나 늙어 가고 있소&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Silver threads among the gold 이젠 금발 속에 은빛 머리카락들&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Shine upon my brow today. 내 이마 위에서 희끗거리고 있소.&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Life is fading fast away. 인생은 빠르게 사라져 가고 있소.&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But my darling, you will be, will be 하지만 내 사랑, 당신은 내게&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Always young and fair to me, 언제나 젊고 아름다울 것이오.&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Yes, my darling you will be 진정 내 사랑, 당신은 내게&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Always young and fair to me. 언제나 젊고 아름다울 것이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참 이 노래 가락을 혹시 들어본 적 있습니까? 중학교 음악 시간에 느티나무가지 위로 초저녁별 하나가 그 노래예요. 옛날에 초저녁별이라는 중학교 음악책에 나오는데 이게 원래 팝송의 노래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분명히 늙어가고 있는데, 아름답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사람이 뭔가 사귀면 사귈수록 진국이 나온다는 이야기죠. 진국이, 우리 인생을 이렇게 쓰레기로 박아놓는 이유는 그걸 비교적으로 쓰레기 같은 나를 그 일체 가치를 묻지도 않고 (원래 쓰레기니까) 주님의 엄청난 가치로 인하여 너가 아름다운 사람으로 우리 천국에 입성하게 합격했다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인간치고 정상인 건 아무도 없어요. 하지만 주님께서는 말씀을 주신 것은 말씀이 와야 우리가 망가지게 돼 있어요. 난데없이 야곱에게 난데없이. 난데없이 야곱은 그 환도뼈가 무너짐으로써 더 이상 자기 힘으로 못 살아요. 바로 아까 에너지가 있는 그걸 쳐버려요. 그런데 야곱은 자기 위에 누가 일하느냐? 야곱 언약이 일해버리죠. 야곱 언약. 자기는 활용당하고 지난번에 서울강의에서도 했죠. 우리는 활용당하고 있고 주께서 말씀으로 그냥 사용하고 있는 거예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이제 말씀을 맺고 강의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를 재편합니다. 뭘로 재편하느냐? 말씀으로 재편해요. 말씀으로 재편한다. 말씀은 뭐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육신이 됨으로써 이 세상에 육신이 말씀이 될 수 있다는 그 바탕을 그 재료를 가지고 우주는 우주는 이렇게 재편이 되죠. 재편이 되면서 여기서 뭐가 나오냐?&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징후가 나오고 증상이 나오죠. 그 증상 징후가 사도행전입니다. 이거는 사도행전을 우리가 지금 보면서 사도행전에 있던 뭐 병고치고, 귀신나오고 있잖아요.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사도바울이 사도행전에서 설명하지 않았지만, 사도바울의 편지에 보면 우리가 죽어야 우리를 말씀으로 죽여야 우리가 산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게 병의 문제가 아니고 신체적인 병의 문제가 아니고 이게 얼마나 훌륭한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게 어디 나와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로마서 8장 1절이 나옵니다. 결국 오늘은 로마서 8장 1절 하나만 딱 해도 여러분 땡 잡은 거죠. 다 같이 시작!&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롬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러므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장소 문제거든요. 장소 문제라고. 주께서 우리에게 뭐냐 우리의 발에게 새로운 공간을 준 거예요. 새로운 공간. 그 공간은 뭐냐 우리를 아예 육신을 죽여버린 거예요. 그래서 다시는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이 죽은 육체로 돌아갈 게 없도록 말씀으로 항상 우리를 그런 식으로 이끄시고 인도합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사도바울은 말하기를 마지막에 내가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이제는 내게 있는 것은 생명의 면류관이 남아 있다. 내가 너희들 떠난다고 해서 또 잡혀 죽는다고 해서 너희가 서러워하거나 슬퍼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이 고난을 받는다는 것이 우주 재편의 징후와 징조가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알아듣는 인간의 의미와 못 알아듣는 하나님의 말씀이 경계선을 이루는 고 지점에 주께서는 불꽃처럼 성도들을 배치를 해 놓은 거예요. 배치를 해 놓으면서 성도는 바보도 아니고 무식한 사람도 아닌데 성령이 이끄니까 어떤 상황 속에서 뭐를 탁탁 내뱉어요? 말씀이 나온다고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게 바로 다윗이 말하는 우리가 성전이에요. 하나님과 함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기 때문에 주께 하신 일만 툭 나오는 거예요. 너 뭔데? 나 아무것도 아니야. 나 쪼다야. 그것을 늘 일깨우는 거예요. 그런데 지난번에 서울강의 했잖아요. 그렇게 해놓고, 이제 세상에 나가니까 세상은 무슨 세계? 상징계, 의미 있는 세계. 특히 가까운 일가친척 지인들이 뭐라고 해요? 니 요새 어떻게 살아 하고 의미를 요구해요. 의미를. 니 계획을 해봐. 절대로 우리는 목표 같은 게 있으면 안 돼요. 계획이 있으면 안 되거든. 길이 있으면 안 되거든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자꾸 요구해요. 목표 제시해. 앞으로 어떻게 살 건데 뭐 어떻게 할 건데 하니까 우리는 그 자체가 우리에게 뭡니까? 진짜 경력이 나지. 고난 받아 못 살겠다. 처음부터 그래야 된 게 아니고 갑자기 이런 계획이 있거든. 그거 상상계입니다. 내가 이런 계획이 있거든. 여기 해서 이렇게 있거든. 우리 돌아가신 아버지가 얼마나 그리웠다고 아버지 이름으로 막 튀어 나오고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우리는 우리 아는 가족들이 얼마나 기대한 게 많았다고 기대가 막 나오고요. 그게 무슨 겁니까? 상징계 하다가 또 된통으로 말씀한테 걸려가지고 복음에 걸려가지고 저희가 또 아무것도 아닌 게 아무것도 아닌 분수를 못 차렸습니다. 하고 차리는 것 그걸 깨닫게 하시는 게 누굽니까? 그게 바로 예수 안에 있는 사람에게 주신 특혜입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404040; text-align: start;&quot;&gt;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진리를 알아도 그것이 내가 소유가 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반대로 진리가 우리를 이미 장악한 것을 쉬지 않고 감사하고 모든 일에 고마워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내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진리가 움직이고 예수님이 움직이고 말씀이 움직인다는 것을 왜 우리는 자주 잊어버리는지 이제는 늘 생각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신약 설교, 강의(이근호)/사도행전</category>
      <author>정인순</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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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0 May 2026 09:38:4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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