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사람의 진짜 모습 230507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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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진짜 모습 230507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오늘은 나아만 장군과 소녀. 옛날부터 소녀, 여자들도 무시하는데 여자 아이는 더 무시하겠죠. 평소에 나아만 장군이 포로 잡혀왔던 종으로 잡혀온 노예로 잡혀온 그 이스라엘 소녀에 대해서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아만 장군이 그 포로 잡혀온 아람 나라라는 요즘 같으면 시리아인데 시리아 장군이 신경 쓴 것은 자신의 약점이 느껴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근데 인간에게 약점이 있다는 것 자체가 건방진 이야기예요. 인간 자체가 약점이에요. 인간은 장점이라는 게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루를 산다는 것은 인간에게 방향성이 있어가지고 죽음이 그냥 발목을 잡아당긴다고 보면 돼요. 이건 뭐 철학이고 과학이고 다 필요 없어요. 그냥 이건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 뭘 아는 것도 없는 무식한 사람이라도 가끔은 거울을 보고 가끔은 거울 봐도 잘 몰라요. 사진 찍어보면 알아요. 사진 찍어보면. 한창 자라날 때는 사진 찍으면 그 얼굴이 그 얼굴로 보이지만 나이 서른 살 넘어서 사진 찍어 보면 40 대에 사진을 찍은 그 모습은 아직도 뭔가 볼 만하네 하지요. 나중에 한 사십 다섯 찍어보세요. 사진 찍기 겁난다 하죠. 육십 대에서 사진을 한번 찍어봐요. 다시 내 사진 찍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하죠. 팔십대 그때는 사진 찍히겠지요. 남의 친척집 결혼식에 가면 사진 찍히잖아요. 이게 뭐 귀신이야 이게 뭐야? 좀비야. 사진을 찍어보게 되면 이게 지식이 있고 없고 간에 자기가 늙고 이제는 무너지고 망가진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사람의 약점이 많아서 그런가요? 아닙니다. 인간은 약점이라는 말을 사용하면 안 돼요. 인 인간 자체가 인간에게는 결함입니다. 고장 난 거예요. 한 마디로 고장 난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아만 장군에게 문둥병을 걸린 것은 나아만 장군이 약점이 생긴 것이 아니고 인류의 오점을 나아만 장군이 대표해서 보여주기 위해서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 걸린 겁니다. 좀 재수가 없다 이렇게 할 수 있어요. 다른 사람은 감기 걸렸는데 이 사람은 문둥병 걸렸어요. 문둥병이 그 시대의 특징이 뭐냐? 문둥병은 첫째는 못 고친다. 고칠 수가 없어요. 두 번째 는 못 고치는 이유가 이거는 신이 직접 관여해서 저주했기 때문에 못 고친다는 거예요. 그래서 세 번째는 뭐냐? 고치면 안 돼요. 이게 고치면 안 돼요. 왜냐? 신이 저주했기 때문에 고치면 안 돼요. 신이 저주한 걸 고치겠다는 것은 저주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문둥병자는 고치는 게 아니고 격리되는 겁니다. 격리. 많이 해봤죠? 격리. 코로나 때문에 많이 해봤잖아요. 격리되는 거예요. 어느 정도 격리되느냐? 특히 이스라엘 같은 경우에는 율법에 보면 격리하는데 어디서 격리하는가? 하나님의 이름이 계신 성전으로부터 될 수 있는 대로 멀리 격리. 하나님의 자비를 가까이 가면 자비, 멀어지면 저주.
니는 니 자리는 저주가 합당해. 자비는 안 돼. 그래서 저 문둥병 걸린 사람은 따로 거주지가 따로 있어요. 문둥병 거주지가 따로 만들어놨다는 것은 기존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기쁠까요, 즐거울까요“ 같은 말이구나. 기쁠까요, 슬플까요? 기쁜 일이에요. 왜? 자기는 복받고 있다는 증거를 장애인을 통해서 반대로 증명이 가능하기 때문에. 역시 착하게 살던 내가 어지간히 착해야지. 이렇게 착하게 살았더니만 나로 하여금 코로나도 뒤늦게 걸리게 하시고 뭐 이런 거. 오늘 코로나 걸려가지고 두 분이 못 나왔어요.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은 자기 합리화하잖아요. 내가 역시 내가 하는 일 쪽쪽 하나님 보시게 이쁘기 짝이 없지. 그러니까 내가 저 저주받은, 저 저주받은 세리와 창기와 같지 아니하고 저 문둥병자와 같지 아니하고. 이거는 오히려 자기를 가치를 높이는 계기로서 격리한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그게 하나님께 굉장히 고마워했던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생각은 여기서 완전히 반대로 뒤엎어 버립니다. 의사가 훌륭할까요. 환자가 훌륭할까요? 이게 묻는 내가 잘못이죠. 의사가 신날까요, 환자가 신날까요? 의사는 돈 벌어서 신나고 환자는 뭐 의사한테 돈 갖다 줘서 신납니까? 아니죠. 스스로 불행을 느낄 거예요. 주께서 이걸 반대로 뒤집습니다. 어떻게 뒤집는가? 의사야 네가 지옥을 알아? 니가 게 맛을 알아? 하는 것처럼 지옥을 알아? 죽음의 맛을 알아? 나는 지금 니가 모르고 있는 내가 죽음의 맛을 알잖아요. 죽음의 맛을 가까이 한다는 것은 내가 누군가에 가까이 내가 누군가에 대해서 보다 더 많은 지식을 얻고 있다는 뜻이에요. 나를 치료하는 너보다 내가 그 치료조차 효과 없는 쪽으로 지금 몰리고 있는 내가 내 진실에 대해서 진짜 내가 누군가에 대해서 지금 더 많이 아는 순간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마약이라는 게 이게 무서운 약이죠. 마약이 왜 나쁜 줄 알아요? 지 몸은 망가지는데 심리적으로 고통이 없으니까 안 망가졌다 기분 좋다, 이러고 있으니까 이게 자기하고 괴리돼 있으니까 무서운 약이 무서운 그 알약이죠. 그런 거 먹으면 안 되죠. 어쨌든 간에 내가 누구냐를 알려면 주께서 이끌어줘야 돼요. 어디로 이끄느냐?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가야 되지요.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문둥병 환자로서 이 나아만 장군은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갑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을 가는데 그 계신 곳은 선지자가 있는 곳이죠.
근데 엘리사 선지자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쉽게 제가 각성하면 이렇습니다. “나? 하나님 없어. 그 소녀가 느그 시녀로 있는 소녀가 너 나아만 장군에게 거짓말 했구나. 나? 나 하나님하고 같이 안 있어.” 그러면 나아만 장군이, 제가 각색 한 거예요. 그 성경 내용을 이렇게 다시 편집한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딨는데?” “그거는 내가 모르지. 내가 니 만들었냐? 내가 니한테 병 줬어? 그거는 내 소관 아니지. 다만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다루는 것처럼 하나님이 너를 저주 받은 문둥병 걸려서 다루게 하셨다는 것부터 시작하자. 시작하자. 나아만 장군은 그거 시작하자. 문둥병 걸렸다. 하나님의 일이 시작. 스타트. 그렇게 이해하고 시작하자. 니가 나한테 오면서 뭔가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은 게 있을 거야. 그게 바로 하나님한테 가까이 가는 방법이야.”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나아만 장군이 이제 엘리사가 고쳐줄 줄 알고 온 거예요. 나아만 장군이 아직도 오해하고 있습니다. 어떤 특정 인간이 특정 인간을 병을 고쳐준다, 그거는 이거는 안 돼요. 왜냐하면 인간의 근원적인 병은 죽음의 병이에요. 죽음의 병은 죽음의 병을 낫게 하게 되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수명을 늘어나게 만들어 놔가지고 이거는 점점 더 자기 본질에서 본질에 가까이 가는 기회를 박탈하는 셈이 돼요. 진정한 의사는 주님밖에 없어요. 진정한 의사는.
어떤 의미에서는 의료 활동 자체가 니가 그 관계자이기 때문에 이야기하는 건데 의료 활동 그 자체가 한마디로 사람을 기쁘게 하는 거예요.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은 안중에 없고 사람을 기쁘게 하는 거예요. 제일 정답은 죽는 자로 하여금 그냥 죽도록 내비 둬. 차라리 의사보다 보람상조 직원이 훨씬 더 주의 일에 가까워요.
하나님께서는 나아만 장군을 죽게 만듭니다. 죽게 만드는데 죽이는 방법이 일번 목 졸라 죽인다. 이번 빠져 죽인다. 삼번 문둥병 걸려 죽인다. 사번 자기를 죽인다. 몇 번이겠습니까? 정답은 4번이에요. 하나님께서 나아만 장군에게 특혜를 줬는데 뭐냐? 니가 너를 죽이게 만드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게 뭐냐하면 요단강에 오게 해요. 요단강에. 요단강에 하필 그 요단강이 나아만 장군이 딱 왔을 때, 다시 각색을 한다면 요단강에 물이 너무 질이 안 좋았어요. 하필. 하필이면 어제까지 2시간 전까지 깨끗한 물이 갑자기 나아만 장군이 등장하니까 시커멓게 된 거예요.
그리고 난 뒤에 엘리사가 “내가 받은 지시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니보고 요단강 물에 일곱 번 들어가래.” 딱 들어가려고 딱 할 때 나아만 장군이 가만 생각해 봤어요. 이제 또 다시 각색한다면 오늘 각색 너무 하는데 다시 각색한다면 “여봐라! 거기에 과학자 따라왔냐?” “예. 따라왔습니다.” “여기 요단강 그 성분 분석해 봐. 여기 아미노산이 어떻고 여기 몸에 이익 된 어떤 요소 물질이 어느 정도 있는지 그거 조사해봐. 조사해보고 그 샘플 가져왔지? 우리나라에 있는 강 샘플하고 비교해서 어느 것이 인간의 신체에 유리한 효과 있는 그러한 특효가 있는 물질이 많이 포함돼 있는지 해가지고 조사해. 몇 퍼센트, 몇 퍼센트, 아미 아미노산 몇 퍼센트, 뽑아와.” 각색이니까 무슨 소리도 할 수 있어요.
뽑아보니까 성분이 질이 안 좋아. 더럽기 짝이 없어요. 대장균이 막 나오고요. 더러워서 못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엘리사한테 가서 이야기해. 안 간다고. 우리나라에 있는 강물이 이보다 훨씬 깨끗해. 내가 이 더러운 물에 가가지고 치료로부터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죠. 더러운 물에 가면 그만큼 내가 악화가 되지 치료가 될 리가 없잖아요. 엘리사가 이야기합니다. 바로 그게 그런 너를 죽여야 된다는 거예요. 니가 문둥병 걸린 자는, 걸렸던 이유는 내가 문둥병 걸리기 전부터 이미 죽을 자라는 것을 내가 몰랐는데 문둥병을 걸리면서 내가 죽을 수도 있구나, 라는 가능성으로 약간 전환됐죠. 전환되고 더 나가버리면 ‘도대체 누가 나를 죽게 해서’까지 나와야 되죠. ‘누가 나를 죽게 합니까?’ 나의 고집, 나의 의, 나의 자존감, 나의 자긍심, 이게 나를 죽게 하죠.
그러면 그걸 바꾸는 방법은, 나는 치료 받아야 될 나를 죽여버리죠.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더러운 물에 들어가는 방법. 더러운 물에. 이거는 나의 극한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해결책이었습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극한 너머에 있는, 내가 아는 모든 것도 물에 다 빠뜨려야 돼. 옆에서 가는데 소녀가 말립니다. 이 소녀가 참 좋은 소녀예요. 소녀와 가로등, 그 이상보다 좋은 소녀가 말하기를 “이까지 왔는데. 어차피 한번 그냥 좋은 강에 가더라도 일단은 한번 들어가 보고 갑시다.”
그래 한 번 들어가 보니까 낫질 않아요. “아. 가자. 가자.” “일곱 번. 일곱 번이에요. 여섯 번밖에 안 남았는데 그건 뭐 힘듭니까?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결정적 마음에 범민이 온 시기가 뭐냐? 몇 번째겠어요? 여섯 번째. 여섯 번 해봤어요. 내가 쓰잘데없는 짓을 하고 있다는 것. 더 쪼다 되고 바보 되고 멍청이 되기 전에 내가 여기 지금이라도 발을 빼야 내가 똑똑한 사람을 유지하기 때문에 가자. 이왕 멍청이 벌써 여섯 번 멍청이 됐어요. 이왕 멍청인 거 바보 더 되세요. 마지막 바보가 남아 있습니다. 마지막 바보. 그 바보가 되면 당신은 똑똑한 나는 이제 완전히 죽이는 거예요. 그 완전히 바보 되게 들어갔더니만 나았어요. 깨끗이 나았습니다. 이것은 뭐냐? 나아만 장군이 나는 죽은, 이거는 죽어 가기 전의 사람이 아니고 벌써부터 태어날 때부터 죽은 채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나아만 장군이 발견한 거예요. 이것이 자기 본질이었고 이 본질을 아는 순간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이 하는 일이 매사가 나의 본질과 내가 누군가에 관련돼 있는 일로 가득 차 주심을 감사합니다. 한 순간 한 순간 진작 죽어야 될 살이 살아서 모든 것을 은혜를 주셨음을 한시도 잊지 말게 하옵소서. 범사에 감사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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