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스데반집사 140720 본문
스데반집사 140720
설교: 이근호
녹취: 정인순
여기에 나오는 그림만 봐서는 이들이 뭘 하고 있는지를 잘 모르겠지요.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갔어요. 같이 있을 때 좋았는데 물 위를 막 걸으시고, 사람들을 오천 명을 기도만 하니까 오천 명이 먹을 음식이 마련되고, 참 그때 참 좋았는데 주님은 훌쩍 구름 타고 올라갔어요. 그것도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간 것이 아니고 구름 타고 올라갔어요, 구름 타고 올라가서 쳐다보니까 천사가 와가지고 “쳐다보지 마. 너는 니 할 일 해.” 이래 가지고 자기 할 일 했다 이 말이죠.
그래서 주님 가고 난 뒤에 뭐 하지요? 뭐 할 거예요? 주님 가고 난 뒤에 멍하니 쳐다보고 있으면서 뭘 해야 되는데 주님 가버리고 우린 남아가지고 할 게 있어야지요. 그때 성령님이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니가 예수님 올라가셨다는 것을 전하라.” 아무도 이 지상에서 하늘로 구름 타고 올라간 사람이 없어요. 왜 올라갔는가? 천국에 처소를 마련하기 위해서 올라갔거든요.
따라서 천국은 있고, 없는 게 아니고 있고, 있으면 거기 들어갈 사람들이 있고, 거기 들어갈 사람들이 이 땅에서 그 천국이 있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했음을 이 땅에서 이야기하게 되어 있고, 그 이야기 하면서 여러 가지 어려운 사람들을 같이 도와주는 일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 빌립 집사님이 있는데 이 집사를 일곱 명 뽑았을 때에 예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에 한해서 사도들이 뽑아서 일도 시키고 또 복음도 전하고 이렇게 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전했는데 이 사람들이 전한 사람 중에서 다 듣는 사람이 “그래, 그래.” 이렇게 나오면 참 좋겠는데 이 사람들이 듣는 사람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은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예수님은 뭔가 잘못 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어요. 그 당시에 유대인들 중에서 굉장히 많았어요.
많아가지고 빌립이라는 사람이 전도를 하니까 그쪽에서 하는 말이 “저 사람도 예수님과 똑 같은 소리하네. 저 사람도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저 사람도 죽여야 돼. 잡자.” 예수님 하고 같은 이야기 한다고 그 사람들이 스데반 집사를 옥에다가 집어넣어버렸어요. 그러니까 예수님 믿던 사람들도 걱정이 되어가지고 ”왜 예수님 잘 믿고 잘 전했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집사님을 갇히게 했지?” 아직도 이 집사님을 갇히게 한 이유에 대해서 사람들은 하나님은 왜 그렇게 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몰랐어요.
여러분들도 막 집에서 청소 잘 하고 공부 잘 하고 숙제 잘 하고 엄마 말 잘 듣는데 엄마가 미워하고 반대로 동생은 공부도 안 하고 숙제도 안 하고 말썽을 부리는데 맨날 동생만 이쁘다 이쁘다 하고 맛있는 것 해주고 동생한테 휴대폰 사주고 좋은 것만 사주면 여러분은 어떻겠어요? 이상하다. 동생은 나쁜 짓 하는데 잘 사주고 나는 바르게 하는데 엄마는 날 미워하고. 어떻게 해? 이거 어떻게 하면 좋지? 그걸 “엄마, 왜 그래?” 하고 물어보면 “니가 동생을 질투하나?” 하고 더 크게 나무라니까 말도 못 끄집어내고 난감하지요. 스데반 집사가 그런 입장이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 예수님 시키는 대로 잘 했는데 옥에 갇히고 말았어요. 하지만 스데반의 역할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옥에 갇힌 걸로 하면 옥에서 풀려나오면 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스데반 집사는 옥에 갇히고 있고 주변에 유대인들은 이 스데반 집사를 어떻게 처리할까를 생각하면서 마지막 스데반 집사한테 이야기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습니다. “스데반 집사야, 마지막 기회다. 니가 만약에 지금 말 안 들으면 니는 죽는 거야. 그러니까 말 잘 해. 너는 예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스데반 집사한테 이야기하니까 스데반 집사가 알았어요. 감 잡았어요. 내가 마지막 설교를 하는 거구나. 내가 살아서 못 나가겠구나.” 그걸 알게 되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이유가 있어요. 짜잔, 이게 이유에요. 누가 보였지요? 지금 스데반 집사한테는 옥에 가둔 사람들이 보이죠? 사람이 보이지요? 남들한테는 스데반 집사만 보이는 거예요. 근데 스데반 집사한테는 누구도 또 보였어요? 사람도 보고 있지만 누구도 보고 있어요? 하나님이 예수님과 더불어 함께 자기를 보고 있다는 것을 스데반 집사님은 옥에 갇혀있으면서 돌에 맞아가면서 그것을 자기가 보고 있는 겁니다. 이게 바로 신앙이라는 거예요. 신앙이라는 것은 남들 보는 것만 보는 게 신앙이 아니고 남들이 보지 못 하는 것까지 보는 게 신앙이거든요.
특히 예수님과 하나님이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겁니다. 스데반 집사가 말합니다. “예수님, 곧 갈 거예요. 오겡끼데스까? 곧 만납시다. 곧 갈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딴 소리 안 할 테니까? 주님 보시는데 제가 딴 소리하겠습니까? 예, 알았어요. 내가 딴 소리 안 하고 하나님 말씀 시키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예.” 그래 놓고 스데반 집사가 설교를 시작합니다. 긴긴 설교를 시작했어요.
“옛날 우리 조상들이 하나님 말씀을 은혜를 받아놓고 그들은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외쳤고 그들은 자기 힘으로 구원받으려고 온갖 행동을 했는데 오실 메시아도 모르고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도 모르고 자기의 노력으로 구원받으려고 헛된 짓을 하다가 진짜 오신 메시아 하나님마저 당신 손에 죽였습니다. 이게 바로 펙트예요. 이게 정답이에요. 이게 사실이에요.”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 이야기 잘 했지요? 틀린 것 없지요? 곧 갈게요. 곧 만날 게요.” 하고 스데반 집사가 이야기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스데반 집사를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일, 감동받았다. 객관식 문제예요. 이번, 마구 자기의 헌금을 던지면서 잘못 됐다고 반성했다. 첫째, 감동받았다. 두 번째, 잘못 했습니다. 우리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반성했다. 3번, 다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첫 번째 감동받았다. 두 번째 잘못했다고 회개했다. 세 번째 듣기 싫다고 집에 가벼렸다. 네 번째 돌로 쳐 죽였다. 자, 일 번 이번 삼번 사번 몇 번입니까? 정답은 그 다음 그림에 나옵니다.
“더 이상 들을 것 없다. 저 놈의 소리를 듣지 마라. 저 놈의 입을 막아라.” 해가지고 입을 막는 방법으로 아예 면상에다가 돌로 쳐 죽여서 돌무더기 속에 스데반 집사를 묻어버렸어요. 그런데 이미 스데반 집사는 누구하고 이미 인사가 되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다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짝짝짝 펭귄 박수. “잘했어. 잘했어. 올라와. 올라와. 옳지.”
여기서 이야기가 끝이 아닙니다. 이 돌 던지는 사람들의 옷을 지켜주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 사람 이름이 나중에 사도 바울이 돼요. 사울이라는 청년이에요. “잘한다. 잘 던진다. 그렇지. 저건 죽어야 돼.” 이렇게 외쳤던 사람이 바로 사울이라는 사람이었고, 그 사울이라는 사람이 나중에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에는 “제가 정말 잘못 생각했습니다. 제가 반대로 생각했습니다.”라고 회개해서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많은 성경책을 쓰시고 결국은 그 분도 주와 함께 영원히 거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늘 보고 사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이 지켜보고 있고 지금 부활하셔서 구름 타고 올라가셔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계시오니 주님 생각하면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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