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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요한복음 20:1-10 / 부활 본문

신약 설교, 강의(이근호)/요한복음

요한복음 20:1-10 / 부활

정인순 2013. 12. 28. 23:12

이근호

http://media.woorich.net/~woorich/성경강해/요한복음-2001/john030625100.wma

 

부활

2003년 6월 25일

본문 말씀: 요한복음 20:1-10

 

20:1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

20:2 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20:3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쌔

20:4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아나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20:5 구푸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20:6 시몬 베드로도 따라 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20:7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 있더라

20:8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20:9 (저희는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20:10 이에 두 제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하나님의 일은 결국은 인간의 눈에 뜨이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해석을 못하고 이해를 못해서 그렇지 하나님의 일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인간들이 아무리 이 세상이 자기네들만의 세상이라고 우겨도 어느 것 하나 하나님의 일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사도행전 17:24-27에 보면,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년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에 의할 것 같으면 하나님을 배제한 세상 일이란 전혀 존재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벌리시는 일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됩니다. 보통 누구를 동등한 상대로 대할 때는 서로가 서로의 독자적인 영역이 구성되어 있다고 자부할 때나 가능한 일입니다.

 

만약 어느 한 쪽이 어느 한 쪽을 온전히 장악하고 있다고 한다면 결코 동등한 상대가 될 수 없습니다. 육군 대장과 그 부대의 말단 졸병이 대화하면서 동등한 상태의 대화를 기대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명령만하고 다른 한쪽은 그냥 순순히 따라야 될 입장입니다.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일인 것을 이유없이 인정하고 순순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선악을 아는 지식을 소지하고 부터는 관계가 이상해졌습니다.

 

감히 신에게도 한 번 대들고 싶은 어떤 충동의 지휘를 받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7;28-30에 보면,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도 인간들이 비정상적인 존재가 된 것을 아십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인간들이 그런 식으로 신에게 대드는 것을 용인할 생각도 없으십니다. 물론 지난 날까지는 묵과하셨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즉 이 세상의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심판을 감행하시려고 만반의 채비를 차렸다는 점을 확실히 하십니다.

 

그 중의 하나의 일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을 안죽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이 물론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달려 거의 죽게 될 위기 시점에서 갑자기 하늘에서 천군 천사들을 총동원시켜 지상의 로마 집행관들을 죽이고 예수님을 구출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꼭 예수님을 죽도록 방치하셔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에서 영원히 같이 살아야 될 자들을 위해서입니다. 성도라 할지라도 자기 죽음을 스스로 취소하는 능력은 없습니다. 외부의 다른 능력자에 의해서만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예수님도 부활 때에 하나님의 힘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고린도후서 13:4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예수님과 인간을 부활시키시는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은 무엇에 근거해서 실시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 9절에 보면, "저희는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과연 어느 성경에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다는 구절이 있습니까?

 

시편 16:10절을 봅시다.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그 당시 성직자는 물론 일반인들은 다 알고들 있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이라는 집단은 자신들의 부활을 확실하게 믿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아직 알지 못하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시편 16편의 내용은 그 누구도 선입견 갖지 않고 솔직하게 읽는다면 그 내용은 어디까지나 다윗 개인의 장래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일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 자신을 보호하시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히게 하시고, 다윗 자신을 더 이상 음부에 두지 않게 하시고 거룩한 자신의 시신에 무덤에서 썩지 않게 하신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이해하면, 그것은 성경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는 겁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일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의 지식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싶은 악한 충동도 아울러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비정상인 것입니다.

 

자신의 이해와 해석의 절대성이 결국 하나님의 일을 곡해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무지한 자로 전락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분명 세상의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발견할 수 없는 그런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원인은 하나님의 모든 일을, 인간들 각자가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예를 들면, 시편 16편을 보고서도 '다윗 너만 부활되는줄 아느냐 나도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 말이야 따라서 나도 다윗처럼 부활 될 수 있어"라는 희망으로 해석하게 됩니다.

 

이 해석 안에서 그 어디에도 나사렛 예수라는 분의 부활로 이해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심지어 제자들이나 예수님을 충실하게 끝까지 따르던 여인들에게도 말입니다. 여기서 인간이 어떤 식으로 세상을 보고 자신을 보고 성경을 봐야 구원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정리됩니다.

 

그것은 아무리 신을 높여 찬양하고 신에게 환호성을 버낸다 할지라도 자신보다 예수님 위주가 되지 아니하면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제대로 모르면서 과연 천국을 갈 수 있다고 보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매사를 예수님 중심으로 다시 보는 인식의 변화를 뜻합니다. 즉 쉽게 말씀 드려서, 물론 세상의 모든 일어나는 현상은 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만 알고 있다고해서 심판을 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정도는 일반인들도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중심입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나타내고자 이런 일들을 개입하시고 발생시켰는가를 바로 아는 것이 구원의 관권입니다. 전에 비록 예수님 중심으로 세상을 보지 않더라도 허물치 아니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예수님 중심으로 보지 못함에 대해 회개치 아니하면 어느 민족이든 상관없이 멸망당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단순히 혼자만의 부활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아담입니다. 첫 번째 아담이 온 인류를 대표하듯이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도 같은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마지막 아담은 우리를 '살려주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비록 연약함 가운데 돌아가셔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대로 분명케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것처럼, 우리들도 비록 연약하게 외롭게 죽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잊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통해서 전달하신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이루리라"라는 약속 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이것은 결코 우리도 나중에 부활될 수 있다는 소망만 급히 제공하려는 취지가 아닙니다. 정말 부활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들의 사고방식이 무엇이 문제인가를 먼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은 '나' 중심으로 생각하기에 우리들은 걸핏하면 하나님을 원망하기 일 수입니다. 잘 되면 자기 탓이요 못되면 모두 하나님의 탓이 되어 버리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처음부터 우리 중심으로 일하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앞장 세우시고 예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접근하셨습니다. 이런 조치에 대해서 우리는 회개하고, 예수님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는 이 현실성을 순순히 받아드려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실수 아닌 것이 없고, 잘못 아닌 것이 없습니다. 우리 딴에 최선을 다했지만 예수님 중심성을 상실된 해석이었고 이해였습니다. 그저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