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요한복음 19:23-30 / 다 이루었다. 본문
이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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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루었다. 2003년 6월 4일 본문 말씀: 요한복음 19:23-30
19:23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19:24 군병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저희가 내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병들은 이런 일을 하고 19: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19:26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19: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19:28 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19: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준비는 별게 아닌데 결과는 엄청나게 크게 벌어지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신앙이라는 겁니다. 사실 신앙생활하는 것은 엄청나게 요란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더 시급하고 더 다급한 일들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 될 동안에도 신앙이란 의외로 조용하게 있습니다.
신앙을 가졌다고해서 외부적으로 크게 드러나는 것도 없습니다. 있는 둥 없는 둥합니다. 우리 자신이 신앙을 가진 순간부터 늘 우리 주변에 지진이나 태풍이 동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이라는 것이 있으면 나중에 천국에서의 생활이라는 엄청난 결과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예를 들면, 10원짜리 동전 100개 모으면 아파트 한 채 공짜로 준다고 한다면 어느 누가 동전 안모을 사람 누구 있겠습니까. 믿음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한 것에 비해서 하나님이 그 믿음을 보시고 주시는 선물은 놀라운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은 쉽게 조용한 것이지만 일단 믿음을 가지고부터 외부인들이 쏘아대는 눈총과 눈치는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모든 것을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런 것을 계산해보고서는 쉽게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믿음과 동반해서 세상이 무시못할 기적 같은 것이 늘 따라 오기를 고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열왕기상 19:11-13를 잠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있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만나시는데 금방 만나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쪽에서 각가지 요란한 환경을 일단 먼저 선을 보이십니다. 강한 바람이 먼저 등장하고, 그 다음에 지진도 일어나고 심지어 불도 나타납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그 속에 계시지 아니한다고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계시지도 않는 상황을 먼저 발생시킬까요? 그것이 엘리야의 세상적인 임무와 상관있습니다. 즉 최종적으로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해서 전하고 하시는 하나님의 본 뜻은 강한 바람이나 지진이나 불을 동반하는 것이 아니라 세미한 말씀으로 이 세상에 다가오신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겁니다.
즉 그 당시 엘리야는 위급한 상황에 쫓기고 있습니다. 아합 왕이 모든 선지자를 다 죽이고 이제 마지막 남은 엘리야를 추적해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황급히 피신길에 올랐던 것입니다. 과연 엘리야가 하는 일이 제대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제대로 사명을 맡기신 것일까요?
기적적인 강한 바람이나 지진이나 불을 일으키지도 않는데도 과연 엘리야는 여전히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엘리야는 아무런 이상없이 하나님의 일을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비록 쫓기는 몸이 되었더라도 말입니다.
그건 왜 그러합니까? 하나님께서는 바로 세미한 소리 가운에 일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나타나시면서 먼저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을 보여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이런 요란한 기적을 행하실 수는 있지만 실제로 최종적으로 백성에게 다가서는 하나님의 방식은 세미한 소리입니다.
그 세미한 소리 가운데 하나님은 엘리야하고 만났으며, 엘리야도 이와마찬가지로 백성들과 세미한 소리를 매개로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당시 사람들은 엘리야의 말씀 그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마음껏 예수님을 얕잡아 보면서 희롱합니다. 예수라는 자가 더 이상 옛날처럼 권위를 회복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보고 마치 '약한 놈 더 때려주기'하는 식입니다.
자... 과연 예수님은 세상의 강한 힘에 패배한 것일까요? 자신의 사명 완수는 결국 민중들의 반대로 인하여 결국 실패극으로 끝나는 것일까요? 우리가 복음을 받아드릴 때,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이 결코 '세상적인 성공 사례'가 담겨 있는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기쁜 소식'이란 하늘의 뜻이 차질없이 완료되었다는 점에서 기쁜 소식이지 인간들이 노리는 성공의 길을 보장한다는 의미에서 기쁜 소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 및 많은 선지자를 뽑아서 세상에 내어보는 취지도 이와 같습니다.
세미한 음성처럼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외롭게 외칩니다. "다 이루었다!"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말씀을 믿기를 원하십니다. 자...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죽어가는 그 상황 안에서만 "다 이루었다!"를 비로소 선포할 수 있게 하십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0:15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즉 예수님은 자진해서 죽으시려고 합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0:27-28에 보면,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이 만약 영생을 주는 메시야라면 그냥 말로서만 자기 양들에게 영생을 줄 것 입니다. "자 양들이 나 앞에 선착순으로 줄 서라. 이제부터 내가 마음껏 영생을 주겠다"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 양들에게 절대로 빼앗기지 않는 영생을 주시기 위해 먼저 자진해서 죽으셔야 하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죽으셔야지만 자기 양들에게 영생이 주어지는 겁니까? 요한복음 6:53-54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인 예수님에게 일을 맡기시기를 자기 백성에게 영생이 돌아가는 방법으로 예수님의 살과 예수님의 피를 나누는 방식을 채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예수님은 완벽하게 순종하셨습니다.
요한복음 4:34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떡과 잔을 나누어 주시는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 자신의 하나의 떡에서 그것을 떼어내어 각 제자들에게 나누는 방식을 사용하셨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의 그 어떤 인간도 자기 노력과 자기 선행으로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구약의 제사제도에서 마지막은 화목제로 끝맺습니다. 화목제란 하나님쪽에서 제시한 고기와 떡을 온 백성들이 같이 나누어 먹는 방식의 제사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외치신 "다 이루었다"는 그 말씀은, 하나님이 영생주시는 방식에 합당하게 성취시켰다는 겁니다. 자.. 과연 이러한 "다 이루었다"는 말씀을 사람들이 쉽게 수긍을 하고 동의를 할까요?
사람이란 자신의 가치가 포함되지 않는 일에 대해서 단호하게 배격하기 마련입니다. 영생이 예수님의 생명에서 일방적으로 나누는 방식으로만 주어지기에 인간의 그 어떤 열성이나 순수함은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게 되어버립니다.
따라서 인간들을 예수님의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을 달리 해석해서 받아드려 믿을려고 합니다. 즉 예수님의 '다 이루심'이 일단 인간들 손에 넘겨오면 인간들은 그 취지와 뜻을 알아 바른 삶을 유지하게 되고 그때 비로소 구원받아 영생얻는 것으로 이해하고 싶어합니다.
예수님은 대단하지만 그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의지도 대단함을 구원에 포함시키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히 엉터리입니다. 영생이란 순전히 예수님의 살과 피에서만 나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 상 위에서만 그 선언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상에서 행하신 각가지 기적을 일으키는 현장에서는 결코 "다 이루었다"라는 선언을 하실 수가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예수님께서 자기 양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영생이지 기적 부스러기 같은 것이 아닙니다.
진정 "다 이루심"이 가능하려면 그 어떤 경우에는 인간편의 실적이 끼어들어가서는 아니됩니다. 분명코 십자가 상에는 돌아가심 분은 예수님 혼자이십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우리가 분명히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목숨만이 영생의 근거가 됨을 변치말고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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