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요한복음 20:19-23 / 성령과 죄사함 본문
이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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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죄사함 2003년 7월 9일 본문 말씀: 요한복음 20:19-23
20:19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20: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0:21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0:22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20:23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은 각가지 이단과 사이비를 양상되는 근거처럼 인식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성령을 받은 자는 누구든지 남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것처럼 유용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천주교에서는 오늘 본문을 가지고 많은 개신교 목사들과 교인들은 회유하기도 합니다. 천주교만이 하늘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는 유일한 기독교라고 말입니다.
그들이 이런 주장을 과감하게 펼치는 것은 22-23절 말씀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런데 과연 이 말씀이 교회 내의 특정인에게 죄사함의 권리가 독점되어 있다는 것을 정당화 할 수 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무엇입니까? 성령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서 소개하는 대목입니다. 즉 성령께서 활동하시는 일의 내용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천주교의 주장은 이러합니다. 교회란 역사 안에서 연속성을 유지하기 마련이다는 겁니다. 즉 교회 있다 말다 하는 것이 아니라 늘 교회는 마지막 때까지 역사 안에 존재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교회라는 것이 죄사함의 중심 센터가 되니까 죄사함의 활동의 연속성도 보장받는다는 겁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그 죄사함의 권리를 12제자에게 위임을 하셨는데, 그 위임권 또한 역사 안에서 연속적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 위임권이 후사도, 혹은 속사도에게 전수될 것이고 그런 식으로 교회는 역사 안에서 구체적 조직으로 자리잡는다는 겁니다.
이러한 죄사함에 관한 연속성이 있는 교단이 과연 천주교 말고 이 세상에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을 하는 겁니다. 개신교는 일종의 집나간 서자들이라고 보는 겁니다. 그래서 다시 형님 품 안으로 돌아와야 된다는 겁니다.
교회의 정통성, 즉 천국의 열쇠는 개신교에는 없고 천주교에만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밝히시는 구원받은 자의 상황이 어떠 한가 하는 점은 요한일서에서 보다 구체화 되어 있습니다.
즉 오늘본문의 이야기는 나중에 구원받게 되는 후대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벌어질 상황의 모델 케이스 역할을 담당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의 순서는 이러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면서, 그러니까 평안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난 뒤 성령을 부어주시면서 죄사함에 관한 권한을 허락하셨습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일하시는 모든 근거가 제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에 있음을 말씀해 주시는 겁니다.
즉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외치시기를,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과연 무엇을 다 이루었다는 말씀입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홀로 이루어내신 일, 즉 죄사함과 죄사해주지 않음에 관한 업무가 이제는 성령님을 통해 실제 적용 단계에 들어섰다는 겁니다.
이 상황이 예수님 당시 뿐만 아니라 오늘 이 자리에 앉아있는 저와 여러분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상황이라는 것이 요한일서에서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요한일서는 오늘 본문을 어떻게 보다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지를 봅시다.
요한일서 1:7에 보면, "저가 빛 가운데 계신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되어 있습니다.
오늘 요한복음에서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친히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지만 오늘날에는 예수님께서 그런 식으로 보여주는 방식을 취하지 아니하십니다. 그렇다면 무엇입니까? 요한일서 1:7의 말씀에 나오는 표현처럼, '예수의 피'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렇다면 요한복음에 나오는 죄사함의 권한을 제자들에게만 전폭적으로 위임했다는 상황이 오늘날에는 어떻게 적용됩니까? 요한일서 2:19-20에 보면,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두 가지 점을 요한복음과 공통성을 띠고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라는 닫혀진 집단의 입장을 말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기름부음 받았다'고 해서 성령을 지칭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만약 어떤 자가 12제자들이 알고 있는 복음이 듣기 싫다고 다른 복음을 따라가거나 스스로 만들어내면 그 자의 죄는 그대로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12제자 제각기 죄사함 권한을 받은 것이 아니라 교회의 터와 기둥이 되는 사도들이 품고 있는 복음 안에서 죄사함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이들 제자들이 그런 권한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기름부음이 제자들에게 생기는 현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제자들 이후 하나님께서 성도들이라면 누구에게도 기름부음이 주어지게 됩니다.
요한일서 2:27-28에 보면,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든지 죄사함을 성령의 기름부음으로만 가능합니다. 따라서 교회 내의 특별히 어떤 지배계급으로부터 죄사함을 따로 받을 필요조차 없는 겁니다. 결국 요한복음에 나오는 경우는, 후대에 등장하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됨의 입지를 말해주는 모델 케이스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이 왔을 때 과연 우리가 평안해지기 위하여 우리가 무슨 노력을 따로 해야 하는 겁니까? 그러나 이런 노력을 필요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평소에 남기시고 말씀하신 모든 예언이 십자가 이후에 있어 본격적으로 적용단계에 접어든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의 오심 이후에 성도들에게 있어 평안함이 찾아올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십자가 지시기 전에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말씀에서 찾아야겠지요. 마태복음 16:18-20에 보면,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음부의 권세보다 더 강한 권세'를 약속하셨고, 그리고 '천국의 열쇠'를 약속하셨습니다. 물론 이 말씀을 처음 대했던 그 당시 제자들은 그저 이 약속의 말씀의 지식의 일종으로 받아드린 것입니다. 실제 상황에 관한 것이 아니라 단지 이론에 머문다고 보았습니다.
아직 이 말씀의 적용 능력을 못 받아서 그러합니다. 그래서 이 약속을 듣고서도 베드로는 말하기를,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거부하고 나섭니다. 그 때 예수님을 말씀하십니다. "사단아 베드로 뒤에서 물러서거나.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가지 약속, 즉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능력과, 천국의 열쇠는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난 뒤부터는 모든 것이 적용 상황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왜 성령이 오시게 되면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능력일 수 밖에 없는가하면, 성령이 주시는 힘은 곧 부활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이긴 힘으로 죄의 값이 죽음의 세력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사람이 두려움을 가질 때는 오직 한가지 경우 뿐입니다. 즉 "아직도 내 죄가 남아 있어 그것이 나에게 화를 초래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약속하시기를, 죄를 사함받은 자에게는 더 이상 죄가 '그대로 있는' 상황이 절대로 될 수 없다는 겁니다. 즉 성령을 받은 사람에게는 그 안에 들어 있는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다 사해졌기 때문에 더 이상 남아 있는 죄가 있을리 없습니다. 그렇다면 죄로 인해 주눅들 필요가 없는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을 통해서 주어지는 평안의 능력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죄라는 인식으로 인해 더 이상 협박 받지 않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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