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6/06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복음과 믿음

요한복음 19:12-16 / 예수님과 유월절 본문

신약 설교, 강의(이근호)/요한복음

요한복음 19:12-16 / 예수님과 유월절

정인순 2013. 12. 28. 23:06

http://media.woorich.net/~woorich/성경강해/요한복음-2001/john03052195.WMA

 

이근호

 

예수님과 유월절

2003년 5월 21일

본문 말씀: 요한복음 19:12-16

 

19:12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19:13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와서 박석 (히브리 말로 가바다) 이란 곳에서 재판석에 앉았더라

19:14 이 날은 유월절의 예비일이요 때는 제 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19:15 저희가 소리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가로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19:16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저희에게 넘겨주니라

 

현대인들은, 남이야 죽든 말든, 사형당하든 말든 여전히 자기 일에만 신경씁니다. 옛날 예수라는 분이 죽든 말든, 지금 자기 가슴 속의 심장이 튼튼하게 잘 뛰고 혈관 속으로 피가 잘 돌아가면 만사 문제없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어떤 내용이 담긴 뜻입니까? 십자가를 경계로 하여 이 쪽 편에는 천국이요 저쪽 편에는 지옥이 되게 하시는 경계입니다. 마치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공동경비구역과 같습니다.

 

그런데 십자가는 특수한 거울과 같아서 천국 쪽에서 세상을 보면 인간 세상의 전체가 다 보이는 반면에, 세상 쪽에서 십자가를 통해서 천국을 보고자하면 전혀 안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십자가를 통해서 천국을 보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그것은 성령을 받아야 가능한 일입니다. 십자가가 이런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을 미리 앞당겨 보여준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구약에 나오는 유월절 사건입니다.

 

유월절이란 구약에 있는 십자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유월절을 통해 하나는 멸망당하고 하나는 멸망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유월절 중심에는 '어린 양'이 있습니다. 왜 '어린 양'이 등장해야 합니까? 그것은 인간으로는 천국에 도달 할 수도 없음을 말씀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출애굽기 12:21-25에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가서 너희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너희는 우슬초 묶음을 취하여 그릇에 담은 피에 적시어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밖에 나가지 말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러 두루 다니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설주의 피를 보시면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로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 너희는 이 일을 규례로 삼아 너희와 너희 자손이 영원히 지킬 것이니 너희는 여호와께서 허락하신대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이를 때에 이 예식을 지킬 것이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너희는 이 일을 규례로 삼아'라는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일으키신 일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그 뜻을 우리 인간에게 전달하여 그런 식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합니다. 사실 사람들은 세상 가운데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인간들이 일으킨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비록 히브리인들이 양을 잡고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른다 할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 '히브리인'이라는 인간들이 행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쯤이야 얼마든지 사람의 머리로도 창안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즉 인간들은 이 인간 세상에서 신의 일이라는 것에 일체 허용치 않으려고 아예 작심을 하고 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만약에 하나님께서 친히 시건을 일으키시면 그만큼 인간들의 자존심과 자립심이 훼손되기 때문에 이 점에 기분 나빠합니다. 신을 섬기든, 신의 법을 실천에 옮기든 무엇이 되었든 모두 인간의 지혜와 아이디어에서 나온 능력에서 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인간 나름대로의 자존심이 계속 유지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사고 방식이 옛날 애굽 나라에게 유월절을 생기게 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믿는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일을 시키십니다. 그리고 애굽 사람들을 배제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무시한다든지, 여호와를 있으나마나 하는 신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하지 않는 지시를 하나님께서 히브리인들에게 지시하였습니다. 그것이 밤에 양고기를 온 식구가 들러앉아 같이 먹고,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양을 잡을 때 나오는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죽음의 심판을 감행하시는 여호와께서 그 피를 보고 자기 집을 그냥 건너 넘어가기를 고대하는 모습을 지시한 것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지시는 인간의 머리에서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지시사항입니다. 참으로 엉뚱하기 짝이 없는 지시사항입니다. 전에 예행 연습한 적도 없는 지시였습니다. 과연 이런 지시에 순종할 사람들이 있겠습니까?

 

정말 여호와께서 멸하시는 자를 친히 가가호호 방문시켜서 문설주에 양의 피가 발린지 아니발린지 조사하실까요? 과연 문설주에 피가 없는 집마다 맏아들이 죽었다는 통곡소리가 터져나올까요? 참으로 합리적으로 따져보면 모든 면에서 의심할만한 내용들입니다. 인간들은 믿어도 따져서 믿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을 무슨 근거에 의해서 함부로 따질 수 있단 말입니까? 결국 예수님께서 이런 유월절 지시를 내린 것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고자 함이 아니라 데려갈 자만 데려가겠다는 조치에서 나온 것입니다. 차라리 제대로 믿는 사람은 철저히 인간적인 지혜로 따져보게 됩니다.

 

결국 자신의 지혜의 한계와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내려주신 약속을 함께 대조해 가면서 하나님의 약속편으로 돌아서게 됩니다. 하나님이시니 항상 인간의 예상을 넘어서는 일을 하신다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월절이라는 하나님의 사건이 이 지시를 받은 그 당대의 사람에게만 구원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것을 '영원한 규례'라고 하십니다. 이 사건을 직접 경험 못한 그 후손들에게 동일한 구원이 주어지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규례'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유월절 규례를 후손들은 어떤 식으로 지켜야 합니까? 그들은 인간들의 지혜나 수고를 총동원하여 지키게 됩니다. 과연 이것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이 성취될까요? 신약 시대에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규례로 만들어 이것을 그대로 예배화 시켜서 행하면 그것으로 구원이 됩니까?

 

마치 옛날 유월절을 위한 규제처럼 말입니다. 안됩니다. 왜 안됩니까? 유월절을 지켜보겠다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실패했듯이 우리들도 마찬가지로 실패할 뿐입니다. 설교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의 모든 율례와 법도와 율법은 인간이 그것을 지키지 못함을 분명히 하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작든 크든 만만히 볼 율법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다 인간이 감히 도달치 못할 거룩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3:23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태어나면서 이미 죄인으로 출발한 인간이 하나님께 영광돌릴 만한 입장에 있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점을 확실히 하기 위해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아직도 이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성령님이 아직 각 사람 마음속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유월절을 지키서 구원받는 것도 아니요 십자가 사건을 예배화해서 그것을 되풀이하고 참석한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성령님이 직접 오셔야 합니다. 성령님이 오시게 되면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를 알게 됩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십자가의 의미를 모릅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이 요한복음도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쓴 책입니다. 따라서 성령을 받은 자에 한해서만 이 책의 내용을 알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을 받지 못한 자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그 내용이 오늘 본문입니다. 유월절 전 날에 유대인들은 거룩한 유월절 행사에 신경을 썼을 것입니다. 그들은 출애굽기에 나오는 말씀처럼 '영원한 규례'인 유월절을 빠뜨리지 않기 위해 대단히 조심스럽게 준비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유월절 규례가 아니었습니다. '유월절'이라는 규례는 하나님만이 지키고 완전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율례'를 '영월한 율례'로 성취시키기 위해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29에 보면,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세례 요한이 외칩니다. 세례요한은 남이 보지 못하는 면을 보고 있습니다. 유월절의 성취는 결코 인간이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았던 것입니다.

 

세례요한 또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지시를 받게 됩니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줄 알라 하셨기에" 그렇습니다.

 

그 분이 또한 성령을 직접 각 사람 마음에 부어주시겠답니다. 즉 오늘날 우리 신약 성도들이 구원받기 위해 십자가 사건을 예배화시키서 그 예배에 정기적으로 출석한다고해서 구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오직 성령이 오시게 되면 십자가 자체의 능력으로 거뜬히 구원이 됨을 알게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군중들은 왜 유월절 양을 없에려고 합니까? 그들은 생각하기를, '영원한 규례'인 유월절은 자기들의 수고나 종교적 심성으로 얼마든지 성취가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의 거룩과 자신의 의로움 앞에서 예수님은 더 이상은 필요한 인물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 의해서 도리어 마땅히 십자가 죽을 죄인 취급을 받게 됩니다.

 

오늘 본문 18절에 보면, "저희가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쌔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로서 군중들은 예수님이 안 계시는 반대 세계를 형성하게 된 셈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심정은 어떠합니까? 자신이 전적으로 죄인인 줄 알아 온전히 예수님 편에 설 용의는 없으십니까? 심지어 군중들과 사랑하는 일가 친척 가족들이 예수님 반대편에 포진해 있다고 해도 말입니다.

 

우리의 구원의 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앞에서 자기 의를 남겨두는 우리 마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생계나 자기 생존에 불필요한 존재로 늘 취급하려 합니다. 예수를 찾는 우리가 도리어 예수님을 거부하는 하나님의 원수인지 아닌지 자신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의 공격하는 가운데 예수님도 계시다는 점을 우리가 잊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