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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요한복음 19:9-11 / 권세 본문

신약 설교, 강의(이근호)/요한복음

요한복음 19:9-11 / 권세

정인순 2013. 12. 28. 23:04

이근호

http://media.woorich.net/~woorich/성경강해/요한복음-2001/john03051494.WMA

 

 

권세

 

2003년 5월 14일

본문 말씀: 요한복음 19:9-11

 

19:9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서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19:10 빌라도가 가로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는줄 알지 못하느냐

19:1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 하시니

 

인간은 기억의 산물입니다. 인간들의 마음 속에는 온갖 조각들이 뒤섞인 걸레 같습니다. 이러한 지저분함은 모두 세상 권세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권세의 맛을 보고 싶은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모든 문제는 권세로부터 풀어야 합니다.

 

인간들 끼리의 평화로움과 사이좋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이미 권세 아래 놓여져 있습니다. 이 매듭은 인간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늪입니다. 힘을 안느끼고 살 수 없을 정도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오는 것도 권세의 맛을 더 많이 얻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또 다른 권세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고 현재 인간들이 얻고자 추구하는 권세는 나쁘다는 것을 말해 주십니다. 마태복음 18장에 보면, 제자들 사이에 시비가 일고 있습니다. 저들이 생각하기를, 예수님 따라 천국 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천국에 가서 과연 우리 제자 중에 누가 더 높은 자인가에 대한 시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난데없이 그들 앞에서 어린 아이를 하나 세워놓습니다. 그리고 이같이 말씀하십니다.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흔히 세상 권력에 관심두는 자는 어린 아이들이 아닙니다. 성인들입니다.

 

그들 눈에 보기에는 이런 현실 권력에 무관심한 어린 아이들이 참으로 철없이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린 아이를 세우시면서, 제자들은 지금 천국과는 거꾸로 된 길로 가고 있다고 일침을 놓으시는 겁니다. 사람이란 세상을 오래 산만큼 세상 권력의 맛에 점점 길들여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 안이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소위 텃세라는 것을 내세워 교회 안에서까지 권세의 맛을 보려고 합니다, 천국가는 교회가 아니라 아예 지옥으로 단체로 몰려가는 교회들이 되고 있습니다. 목사패와 장로패로 나뉘어 싸움하기 일 수 있습니다. 그들이 교회를 만들어 피신해도 결코 현실 권세의 구조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전혀 다른 권세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 앞에 일부로 빌라도를 두게 하십니다. 그리고 빌라도로 하여금 자신 만만하게 세상 권력자의 위엄을 마음껏 발휘하게 만듭니다.

 

그는 예수님에게 이렇게 큰소리칩니다. "빌라도가 가로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는줄 알지 못하느냐" 그 당시 사람들은 빌라도가 이와같은 권세를 휘두르는 것에 완전히 주눅이 들어 있습니다.

 

그들 눈에는 빌라도의 권세가 최고의 권세이요 또다른 힘센 권력이 없어 보입니다. 심지어 예수님마저 분명 그 빌라도의 권세 아래 복종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입니다. 마태복음 1:21에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하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구원으로 성급하게 나서기 전에 먼저 '죄'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 죄라는 것을 말씀해 주기 위해 하나님은 일부로 예수님과 빌라도를 최후로 대면시켰습니다. 즉 죄란 악한 권세에 복종하고 선한 권세에는 복종하고 싶어하지 않는 성향이라는 점을 알리고 싶으신 것입니다.

 

구원이란 이처럼 권세 싸움를 통해서 진행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히브리인들은 애굽 나라의 바로왕의 권세에 꼼짝도 못했습니다. 애굽의 권세에서 벗어나기 보다는 차라리 바로왕에게 밉상받게 될까봐 걱정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 무서워하던 애굽왕의 권세에서 벗어나므로서 비로소 후대에 구원이라는 것이 어떻게 진행되는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18에는,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라고 했습니다. 진정 십자가의 능력을 받은 구원자라면 참된 권세의 능력을 제대로 실감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에스더나 다니엘과 세 친구의 경우를 보면, 그들이 믿는 권세는 세상 권세가 아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늘의 권세였습니다. 다니엘서에서는 두 가지를 가르칩니다. 하나는 현재 세상의 모든 권세는 질이 악하다는 것입니다.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이 배후에서 조종하는 권세라는 겁니다.

 

또 다른 하나는 그 악한 세상이 참된 권세자를 인정하는 하나님의 자녀를 못살게 군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모든 이가 꼼짝못하고 굴복하는데 놀랍게도 그 막강한 세력도 겁나지 않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다니엘과 세 친구입니다.

 

우상에게 절하지 않는 죄로 극력한 용광로 불에 던져졌지만 그 불속에서는 네 번째 분과 더불어 거닐고 있었습니다. 즉 세상 권세도 어찌 할 수 없는 분이 장차 이 세상에 오신다는 것을 미리 말씀하시는 대목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빌라도와 예수님의 만남은 서로 이질적인 권세가 그동안 따로 존재해 왔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28에서도,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권세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권세 싸움인 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보다 많은 권세를 얻어 편하게만 살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평안과 안심과 행복은 제대로된 권세를 인정하며 사는데 있습니다.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스데반 집사라는 분이 등장합니다. 그 분은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시는 예수님을 보고 있습니다. 마음편하게 말입니다. 그러나 그 예수님의 권세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마음껏 자기 나름대로의 권세를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즉 돌맹이를 들고 스데반 집사에게 마구 던집니다. 죽어라고 말입니다. 물론 스데반 집사님은 그로 인해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어가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스데반 집사는 죄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참된 권세자를 두려워하지 않고 속된 권세에게 굴복하는 모습을 두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교회라는 것을 조직하는 것도 그 조직체로서 새삼스럽게 신앙을 검증 받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세상 권력체로 돌아설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 세상에서의 검증 방법이 힘의 논리 뿐이기 때문입니다. 결코 스데반의 순교가 참된 교회, 참된 신앙의 검증 방식으로서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마태복음 4장에는 예수님께서 악마로부터 시험을 받습니다. 그런데 제일 마지막 시험이 바로 세상 권세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과연 어느 누가 이 유혹을 이길 수 있단 말입니까? 마귀는 평소에 인간들이 무엇을 얻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른 권세의 지시를 받으시는 분입니다. 결코 세상 권세를 새삼스럽게 얻고자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유혹할 수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 신앙이란 세상 권세를 믿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하늘에서 오신 권세에만 매여 사는 것을 말합니다.

 

도대체 이런 믿음을 세상의 그 어떤 권세가 방해할 수 있단 말입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머리카락과 우리의 발걸음을 세십니다. 예수님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어떤 현상도 우리에게 일어날 수 없습니다. 당장 편하게 살고 싶어 세상 권세를 주어 모으려고 하지 마세요. 그런 것은 신앙도 아닙니다.

 

십자가 사건은 예수님에게만 해당하는 사건이 아닙니다. 예수님 이후로 모든 성도에게 적용됩니다. 질 나쁜 권세 때문에 핍박을 받게 될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에게 하던 행패를 성도에게도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에게 임한 구원의 능력은 그 어떤 세상 권세에게도 빼앗기지 않는 대단한 권세입니다.

 

하늘이 허락하신 권세를 세상이 감히 끊을 수 없습니다. 이로서 예수님 권세가 얼마나 위대한가가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올 때 세상 것을 더 얻으려고 오지 마세요. 이미 주어진 십자가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하고 좋은 것인 가를 실감하면서 오시기 바랍니다.

 

주의 자녀에게는 이것이 반복됩니다. 그래서 다함께 예수님의 권세만이 영원한 계속되는 권세임을 높이 찬양합시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예수님만 믿고자 하는 자들을 교회를 믿는 자들이 죽이려 합니다. 그 와중에서 십자가가 어떤 의미인지를 우리들로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