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요한복음 18:33-38 / 진리가 무엇이냐? 본문
http://media.woorich.net/~woorich/성경강해/요한복음-2001/john03043092.WMA
|
이근호
진리가 무엇이냐? 2003년 4월 30일 본문 말씀: 요한복음 18:33-38
18:33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18: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뇨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여 네게 한 말이뇨 18:35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18: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18:37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18:38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
구원은 십자가로 이루어집니다. 교회에 돈바친다고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자신의 선행으로도 하나님은 구원해 주시기 않습니다. 구원은 오직 십자가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에 대한 견해가 구구 각색입니다. "십자가를 믿습니다"라고 주장들 하지만 이 십자가 안에 뭐가 들어 있고 담겨있는지에 대해서 무지한 상태에서 그냥 껍데기 십자가를 믿기 십상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직전 상태를 말해줍니다. 즉 십자가 사건이란 그냥 형태에 예수님의 신체가 매달려 있는 그것만 생각하면 안됩니다. 십자가에 매달리게 만들었던 그 요인이 이런 재판 절차를 통해서 형성되는 법입니다.
따라서 십자가 안에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가 하는 문제는, 십자가로 가는 길에서 어떠한 요인들이 개입되어 있는가를 파악해야 알 수 있는 문제입니다. 자 어떤 내용들이 이 십자가 사건을 형성시켰습니까?
오늘 본문은 빌라도와 예수님의 만남입니다. 이 만남을 통해서 십자가로 가는 길은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는 십자가 안에서 빌라도의 요소와 그리고 예수님의 요소가 함께 담겨 있는 겁니다.
그러면 빌라도의 요소가 어떤 것입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빌라도는 본격으로 예수님을 심문하려고 합니다. "네가 과연 유대인의 왕이냐?"라는 질문부터 시작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거기에 대해서 고분고분 답변하시지 않습니다. 도리어빌라도에게 질문을 합니다.
그 질문은 이러합니다.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뇨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여 네게 한 말이뇨?" 도대체 예수님께서는 무슨 의도를 갖고 이런 질의를 하시는 겁니까? 그것은 빌라도 본인이 이 예수님 자신에게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를 묻는 것입니다.
즉 백성들이 하도 재판을 해달라고 간청하니 할 수 없이 자신이 나서서 재판하는 그런 마음인가 아니면 빌라도 본인이 예수님에 대해서도 감히 재판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그렇게 마음먹고 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왜 이 물음이 중요한가 하면 십자가 사건 안에서 두 개의 상반된 귄세가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즉 오늘날 성도들이 십자가를 믿는다고 십자가 사건을 받아드릴 때는, 이 십자가 안에는 서로 합당한 권세라고 주장하는 두 개의 세력을 발견해야 하고 그리고 더욱 중요한 문제는 그 세력 가운데 어떤 쪽에 서야 하느냐를 요구받게 되는 것입니다.
결코 두 개의 세력 모두에게 양다리 걸칠 수는 없습니다. 만약 두 개의 세력에 모두 양다리 걸친다면 실제의 십자가와 전혀 상관없는 허구적 십자가를 신봉하는 것밖에 안됩니다. 실제로 발생된 십자가를 믿고자 한다면 완전히 대치되는 두 세력을 감잡아야 하고 그리고 어느 자신은 어느 한쪽의 편에 서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제대로 아는 자라면 이런 결과적 현상은 당연히 일어나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14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이 고백과 동일한 고백으로 십자가를 이해하는 자만이 제대로 십자가를 이해하고 있는 자입니다. 그렇다면 계속해서 우리는 예수님과 빌라도와 대화을 들어봅시다. 빌라도도 예수님에게 기죽지 않고 자신에게 말합니다.
"네 백성 유대인들이 나에게 너를 재판할 수 있는 권한을 넘겨주었다. 그러니 자칭 유대인 왕이라는 너보다 나 빌라도가 더 큰 권세를 지닌 것이 확실하지 않는가?"라는 계속 심문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맞받아 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예수님은 전혀 다른 권세를 말씀하십니다.
결코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권세 운운할 자격조차 없다는 겁니다. 만약 예수님의 나라가 이 유대나라라고 한다면 주님의 종들이 나서서 예수님을 유대인들에게 결코 체포되지 않게 했을 것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과연 십자가 안에 담긴 내용은 무엇입니까? 서로 이질적인 권세와 권세의 만남이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이 십자가 안에 담긴 내용을 그대로 믿노라고 말한다면 그도 또한 세상 권세에 굴복하거나 기죽지 말아야 합니다.
마치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십자가를 가운데 놓고서 세상과 그 사람은 상호 별개의 세계와 권세를 구축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이래야지만 제대로 십자가를 아는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7장에 나오는 예수님 기도에서도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즉 십자가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리고 그 내용도 실제 상황을 거침없이 수용한 사람이야말로 예수님처럼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교회에 나오면서, 그리고 십자가를 안다고 주장하면서, 세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찾는다면 이 분은 십자가를 완전히 곡해한 것입니다. 십자가를 믿는다는 것은 어느 권세를 참된 권세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흔히 교회 오는 사람은 자신의 당한 세상 문제를 해결되기를 은근히 기대하게 됩니다. 그러나 십자가나 성경책은 그 문제를 수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예 세상의 그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문제조차 되지 않음을 말씀하기 위함입니다. 왜나하면 모든 것이 권세 문제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빌라도는 마지막으로 예수님에게 다음과 같이 질의합니다. "진리가 무엇이냐?" 여러분들은 진리가 무엇인지를 아십니까? 진리를 어느 정도로 신봉해야 진리다운가 하면, 그 진리를 아는 것으로 세상 모두를 이미 다 알아버린 것이 될 정도이어야 합니다.
진리란 진리다운 값어치를 모르는 자에게는 대답조차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진리를 믿겠다는 성도에게는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일부로 온갖 악조건을 다 불러 이르키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도가 알고 있는 진리라는 것이 세상에 그 어떤 악조건에도 끄떡없이 계속 진리답다는 것을 보이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자녀가 된 자는, 자신의 것을 지키려고 해서는 아니됩니다. 도리어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것, 진리를 지키고 알리는데 주력해야 합니다. 진리를 자신이 가진 권세보다 더 하짢게 여기는 빌라도에게 해줄 답변은 예수님에게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목숨 걸고 기뻐해야 될 그 진리 자체에는 관심이 없는 채 그저 세상에서 얻은 자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도하고 교회 나오는 사람에게 들려줄 예수님의 답변은 없습니다. 진리는 교회가 사람 포섭용으로 사용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스스로 진리답게 되는 품위 유지를 위하여 나타나는 겁니다.
우리가 자기 딴에 아무리 바르게 살고 아무리 휼륭하게 살아도 십자가 안에서 흘려 나오는 예수님의 요청은 이것입니다. "너는 지금 어느 권세에 굴복하려느냐?"하는 겁니다. 과연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처럼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자입니까? 그렇다면 왜 우리는 지옥갈 백성들의 말에 왜 그리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것입니까?
여기에 믿음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것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살 길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진리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이 세상 말고 또다른 진리는 없다고 간주합니다. 그러니까 이 자체가 곧 예수님의 나라와 이 세상 나라가 한데 섞이지 않는다는 사실일 뚜렷해진 것입니다.
즉 누구나 자기가 속해 있는 세상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그것을 증거하기 마련입니다. 만약 세상 것으로 머리 속에 가득찬 사람이 있다면 진리가 들어갈 자리는 없을 것입니다. 더욱 무서운 일은 바로 이런 자들로 인해 십자가 사건이 터졌다는 점입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를 제대로 알았기에 그 십자가를 가지고 세상과 격리된 자기 자신의 입장을 말하는데 당당한 근거로서 제시했습니다.
우리도 그런 식으로 십자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세상 권세만을 느끼고 있으면서 그저 형식적으로 예수님보고 말하기를 "당신이 진정 누구요? 당신이 말하는 그 진리라는 것이 뭐요?"라고 물어봤자 예수님은 거기에 대해서 답변하지 않습니다.
목자의 음성은 자기 양에게만 알려지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다른 양이나 늑대의 자식들까지 알려질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자가 참된 양일까요? 빌라도처럼 세상이 주는 권세로서 자신을 치장하지 않는 자가 참된 양입니다. 세상 권위, 권세, 남들의 평가나, 눈총, 그런 것이 진리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는 자가 진리의 자녀들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모든 사실이 예수님을 통해서 백일하에 다 드너났건만 왜 우리들은 계속해서 머뭇머뭇거리고 있습니까? 진리가 우리 삶의 능력이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신약 설교, 강의(이근호) > 요한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요한복음 19:9-11 / 권세 (0) | 2013.12.28 |
|---|---|
| 요한복음 19:1-7 / 아들 (0) | 2013.12.28 |
| 요한복음 18:15-18 / 베드로의 배반 (0) | 2013.12.28 |
| 요한복음 18:10-11 / 쓴 잔 (0) | 2013.12.28 |
| 요한복음 18:1-9 / 제자 사랑 (0) | 2013.12.2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