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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요한복음 19:1-7 / 아들 본문

신약 설교, 강의(이근호)/요한복음

요한복음 19:1-7 / 아들

정인순 2013. 12. 28. 22:57

http://media.woorich.net/~woorich/성경강해/요한복음-2001/john03050793.WMA

 

 

이근호

 

아들

2003년 5월 7일

본문 말씀: 요한복음 19:1-7

 

19:1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19:2 군병들이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19:3 앞에 와서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찌어다 하며 손바닥으로 때리더라

19:4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19:5 이에 예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저희에게 말하되 보라이 사람이로다 하매

19:6 대제사장들과 하속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죄를 찾지 못하노라

19:7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저가 당연히 죽을 것은 저가 자기를 하나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달려 죽게 된 죄목은,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이 죽을 죄가 되는 겁니까? 사람들 중에는 헛소리 하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자기를 왕이고 주장하고 어떤 이들은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우겨도 그냥 헛소리거니 하고 방치하면 그만일 것입니다.

 

그래서 빌라도의 입장에서 볼 때 예수님에 대해서는 죄라는 것을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우겨도 남들이 무시하면 그만인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는 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주장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사태입니다.

 

왜 그럴까요? 오늘날 한국 교회는 모두 이방민족으로서 하나님을 섬겨보겠다고 교회에 나오는 셈입니다. 우선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사후의 세계에 그 신의 나라에 합류하겠다는 일념으로 교회 다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같은 이방민족들에게는 신과 천국이라는 신의 나라만 소개하면 구원받는데 아무런 문제될 것이 없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유대민족은 그렇지 않습니다. 유대 민족들의 눈에는 이방인들이 알고 있는 신은 참된 신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신에 대한 진짜 알맹이는 전혀 들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대민족에게 있어 신의 존재나 천국의 존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참 하나님과 지상의 인간들 사이에서 과연 제대로 연결이 되어 있는가 하는 점이 더욱 중요합니다.

 

그 가운데 연결시키는데는 그만한 알맹이가 있어야 합니다. 그 실내용은 이방민족에게 알려진 것이 아니라 유독 유대민족에게만 알려져 있습니다. 즉 세상에 있는 모든 이방민족은 참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있으며 오로지 유대민족만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 증거로 모세라는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친히 새겨신 돌판을 안겨 주셨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배후에는 추상적인 신이 아니라 참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이 관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오직 이스라엘 민족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심도 알고 있었습니다.

 

율법이 엄연히 있는 이상 이스라엘만이 구원받는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양보할 수 없는 자부심을 갖고 하나님의 친히 내려주신 율법들을 귀하여 여기면서 지켜나가기를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율법에 의하면 아들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시편 2:7-12에 보면,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관원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아들'이 등장합니다. 이 아들로 인해 이방족속은 마치 질그릇 깨어지듯이 박살이 난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아들'에게 입맞추지 아니하면 누구든지 저주를 받는다는 겁니다. 따라서 온 천하를 심판하실 이 아들에 대해서 유대민족들이 고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빈틈없이 그동안 성취되어 왔다는 것을 그들은 누구보다 더 확실하게 보아왔고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최후의 심판자에 대해서 목수의 아들에 불과한 어떤 인물이 나타나서, 자신이 '하나님 아들'이라고 우기니 유대민족은 그를 그냥 둘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과거의 역사에서 볼 때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율법대로 제대로 순종하지 아니하면 전 백성이 지독하게 고난을 받는 경우가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그 시대의 신앙지도자들은, 이스라엘에서 비율법적인 무질서가 난무하는 것을 그냥 방치할 수가 없는 겁니다. 하나님의 저주를 자초할 일은 사전에 제거하고자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이 일을 대제사장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아들'이 심판주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일까요? 구약에서 '하나님 아들'이란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지상에 남기고 싶었던 바입니다. 출애굽기 4:22-23에 보면,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놓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세상 안에서 참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 보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이스라엘은 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도리어 이방나라와 같이 왕을 구하는 잘못을 범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왕을 구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왕되심을 거부하는 몸짓인 것으로 하나님은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요구하는 왕 자리를 특별히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왕을 세워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사무엘하 7:14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바로 이 하나님의 아들이 다윗의 자손으로서 오실 분입니다.

 

과연 다윗의 후손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날까요? 이사야 9:6-7에 보면,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한 아기가 인간 세계에 태어나는데 그 아기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된 '그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 아들의 이름이 특이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랍니다. 그리고 그 아들은, 전에 다윗에게 약속하신대로 다윗의 자리에서 일하신다는 겁니다. 바로 이 메시야를 유대민족은 학수고대 하고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1장에서 아이들이 종려나무를 들고 예수님을 대환영하기를,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실 아들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정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예수님에게 복종하지 않는 성직자들이 곧 참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을 입장에 놓인 것이 됩니다.

 

이런 분위기가 유대 사회를 얼마나 큰 혼란을 이르킬 것이라는 것을 뻔히 아는 그들이 예수님을 가만 둘 리가 없습니다. 이로 인해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구약의 약속대로 '한 아기' 즉 '아들'에 대해서 그렇게 중요시하고 고대했는데 오늘날 한국 교회 교인들은 어떠합니까?

 

정말 예수님의 '아들됨' 그 자체에 대해서 심각하게 여기고 있습니까? 그냥 하늘에 하나님 계시고, 땅에 자신들이 있고, 그 가운데 교회만 있으면 그것으로 천국 들어가는데 충분하다고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것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지 결코 예수님의 아들되심을 죽도록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삭개오는 뽕나무 위에 올라가면서까지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아들되심'을 고대했습니다. 과연 이럴 정도까지 예수님의 아들되심에 놀라는 교인들이라고 자부할 수 있습니까?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된 사실을 아는 것하고, 그분의 대통령됨 그 자체를 죽도록 사랑하는 것 하고는 완전히 다릅니다.

 

사랑이란, 사랑의 대상을 잊고서 결코 자기 일에 매진하는 법은 없습니다. 오늘날 교인들이, 예수와는 별개로 자기가 따로 사랑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아들 되심'을 전혀 이해못하는 정신에서 나온 행동입니다. 구약 성경 전체가 예수님을 뒤로 줄지어 따라 붙고 있습니다.

 

마지막 선지자 세례요한이 예수님에게 세례 줄 때, 하늘에서 다음과 같은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그리고 마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의 제자 3명은 어느 산에 올라가서 예수님께서 해같이 변화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여러분, 이런 주님을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뒤에 달고 오신 모든 구약 성경이 약속하신 바입니다. 이방인들이 어떻게 이 사실을 알겠습니까? 인간의 능력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 4:6에 보면,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들이 영을 받지 아니하면 결코 예수님의 '아들됨'을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 많고 많은 행운이 있지만 그 중에 제일 큰 행운은 아들의 영을 받은 것입니다. 성도된 그 덕을 아들되시는 예수님에게 돌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만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 하나님 아버지, 아무 것도 아닌 이방인이 하나님의 자녀의 반열에 들게 된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여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