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요한복음 16:5-12 / 보혜사의 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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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보혜사의 일 2003년 2월 5일 본문 말씀: 요한복음 16:5-12
16:5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느냐 묻는 자가 없고 16:6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6: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6: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16: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하나님이 이 세상을 상대로 하시는 일이 상당히 복잡해 보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짧게 일하시고 하늘로 귀환하시고 또 다른 어르신네가 하늘에서 이 땅을 방문하십니다. 왜 이렇게 번잡스럽게 일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하시는 역할과 성령님이 하시는 역할이 서로 구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직접 신체를 지니시고 나타나신 분입니다. 그 신체로서 하실 일이 따로 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인정하든 아니하든 예수님이 계시다는 사실 만큼은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우리 인간과 같은 신체성을 지녔기에 얼마든지 눈으로 보기도 하고 떠밀기까지 하며 신체적 접촉이 실제로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하늘에서 오실 어르신네는 이런 신체가 없습니다. 따라서 정말 하늘의 보혜사님이 오셨는지 아니오셨는지 사람들로서 판정하기가 곤란합니다. 그냥 기분상 성령님을 받았다고 우길 수도 있습니다. 거짓이라고 판정할 기준이 모호합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는 두 번째 하늘에서 오신 보혜사도 눈으로 볼 수 있는 신체성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점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실제의 인간 신체를 가지고 나타나셨던 예수님에 대해서 눈으로 똑똑하게 보았다고해서 과연 그 분을 지속적으로 믿을 수 있을까요? 그렇지 못합니다.
가롯 유다는 예수님과 동거동락을 했어도 예수님의 본질에 어두었고, 베드로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평생 변함없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능력은 아예 인간에게는 없기에 예수님께서 아무리 뚜렷한 신체를 보여준다해도 지속적인 신앙심은 불가능합니다.
실제로 오늘 본문 5-6절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느냐 묻는 자가 없고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그동안 제자들은 예수님의 신체와 같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께서 자기 곁을 떠나려고 하니 이제부터 누구를 의지하며 살아야 될지 암담한 것입니다. 그래서 근심하고 있습니다. 과연 해결책이 없을까요? 예수님은 도리어 자신이 제자들을 떠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보혜사는 자신이 떠나야 오시게 되어 있는데 그 보혜사께서 이러한 근심들을 근원적으로 해결해 주기 때문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세례 받을 때처럼 제자들의 신체성 자체를 성령께서 자신의 집으로 삼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과연 성령님이 실제로 자신의 신체에 임했는지 아니임했는지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습니까?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제자들 집단에 성령님이 임하는 것이 마치 불의 혀같이 임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임할 순간에 그런 표징이 난 것이지 그 이후에 계속해서 제자들 머리 위에 불의 혀같이 모양이 동반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정말 성령을 받았는지 아니받았는지는 성령의 형태로 결정지울 문제가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2:11-12에서는 다음과 같이 해결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즉, 여기에 보면,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받은 사람은 특별한 점은 바로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안다'는 점에 있습니다. 인간들은 세상살이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성과과 업적을 얻게 됩니다. 주위에 눈에 뜨이는 모든 것이 자기 노력한 댓가들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 있어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사람은 인간의 노력과 힘으로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것들입니다. 사람이 일부로 은혜를 알고자 노력한다고해서 은혜가 알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속에 예수님이 계신 것과 같이 자기 안에 하나님이 들어와 계셔서 생긴 현상입니다. 물론 다른 보혜사가 하늘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오셨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예가 사도행전 5:1-11에 나옵니다. 초대 교회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성령님의 지시에 의해 땅 판 값을 교회에 기부하도록 되어 있는데 그 와중에서 악마가 스며들었습니다. 고의로 성령님의 존재를 무시한 것입니다.
성령님은 인정치 않고 그저 눈 앞에 보이는 인간의 존재만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그만 베드로에게 들키고 말았습니다.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나 감추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서 초대 교회의 온 교인들이 크게 두려워했다고 했습니다. 성령님은 비록 신체성은 없다하지만 예수님과 똑같은 마음으로 우리와 함께 계실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이 하나님께서 어떤 식으로 은혜를 드러내시는 겁니까?
오늘 본문 8절에 보면,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현재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해서 책망하는 것이 은혜의 핵심입니다. 인간들은 신체가 있기에 이 세상에 사활을 걸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도리어 이 세상에 대한 미련과 애착을 나무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러합니다. 현 세상은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하늘의 심판에 대하여 하나님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서 이처럼 성령님께서 세상을 나무랄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모든 세상 일에 대해 마무리 하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을 아무리 했다는 것은 이 점을 믿는 자를 속시원하게 만듭니다.
반대로 일이 마무리 되지 못하고 미진하게 되면 그것을 믿는 사람이 불안해집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관해서 모든 일을 다 마무리 해버렸습니다. 이점에서 대해서 사도행전 17:30-31에서는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즉 예수님께서 일을 마무리 하기 전까지는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몰라도 허물치 않으셨지만 이제 예수님께서 모든 일을 마무리했다면 예수님을 안 믿는 자에게는 더 이상 용서가 없으신 시점에 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이 짓는 가장 큰 죄입니다.
죄란 복음에 무관심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일을 마무리하셨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이 세상에 각양 죄들이 있지만 복음을 생각지 않는 죄만은 용서가 되지 않고 오히려 책망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요한복음 15:24에도 나와 있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저희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면 저희가 죄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저희가 나와 및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근본적인 죄가 됩니다.
오늘 본문 9절은 다음과 같이 되어있습니다. "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만이 의이고 다른 모든 인간들이 하는 것은 의로운 일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의' 개념을 믿지 않는 세상에 대해서 성령님은 책망하십니다.
심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임금이 예수님에게 내린 심판은 전혀 하늘의 심판과는 정반대입니다. 이런 사실로 인해 세상 임금은 이미 심판받은 것이 됩니다. 이처럼 성령님이 하시는 일은 모두다 예수님 중심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마무리 지어 만드신 하늘의 처소가 엄연히 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더 이상 이 세상의 사소한 일에 마음 상해서는 아니됩니다. 정말 우리가 제대로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면 인간들의 노력과 혼신이 힘을 다해서 얻어진 결과 보다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을 더 사모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신체를 가지고 세상에 나서게 합니다. 전혀 이 세상 사람과 차이나는 사람으로 세상 앞에 내세우는 겁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공로만을 증거하는 자가 진정한 성령받은 자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나름대로 이 세상에서 성취하고픈 일들 때문에 고민하지 않게 해주시고 예수님으로 인해 이미 이루어진 새 세상에 마음두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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