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요한복음 15:18-21 / 핍박 본문
이근호
http://media.woorich.net/~woorich/성경강해/요한복음-2001/john03010877.WMA
핍박
2003년 1월 8일
본문 말씀: 요한복음 15:18-21
15: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15:20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15:21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을 인하여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니라
사람이 사람하고만 관계한다고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성립되어 있어야 합니다. 인생의 주도권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지 결코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떤 관계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까? 예를 들면, 이 세상에서 갑자기 자기 빼놓고 모든 사람들이 다 사라져 버렸다고 칩시다. 자기 혼자 남았다는 것은 더 이상 누구로부터 평가받거나 간섭받거나 신경 쓸 필요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자...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살렵니까? 마음놓고 자기 하고 싶은대로 다 하면서 살 것입니까 아니면 그런 순간에도, "하나님 저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습니다"하고 기도할 것입니까? 주위에 남들이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이 설사 이 우주에 혼자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의식하며 사는 사람만이 진정 하나님과의 관계가 성립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관계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경우가 실제로 있을까요? 보통의 경우에는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사람과의 관계 맺기에 분주한 것이 우리네의 일상생활입니다. 그러나 사람과의 관계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시급하고 중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의 경우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라는 일단의 모임이 나옵니다. 이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구성된 소규모 단체가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비웃든지 상관없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지시에 따르는 것이 관권인 모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제자들과 자신과의 모임을 세상의 그 어떤 모임과도 차별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19절에 보면,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을 보고,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다'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대범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누가봐도 그 제자들은 분명히 이 세상에 속해 있는 것이 당연한대도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자신의 제자들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증거가 바로 '예수님으로 인해 미움 받음'에 두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성경의 내용을 남의 이야기인처럼 여기면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성경은 있으나 마나 하는 책이 됩니다.
적어도 성도라면 예수님이 체험한 그 체험이 성령님에 의해서 오늘날 성도의 체험 안에 되찾게 해주십니다. 즉 '미움'이 단지 예수님 당시의 미움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도 같은 차원이 미움이 발생되게 합니다.
그렇게해서 이 미움을 받는 자가 곧 성도가 되는 것이요 동시에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천국의 자녀로 확인됩니다. 달리 말씀드려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단지 예수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미움이나 핍박을 받지 않는다면 성도라고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단지 사람이 개인적으로 고생을 하는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란 누구나 이 세상에서 다 고생을 하게 됩니다. 핍박도 받게 됩니다. 그렇다고해서 모두 천국의 자녀라는 뜻은 아닙니다.
고생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에서 고생하는 것이 있는 반면에 단지 예수님 때문에 받는 고생도 있습니다. 먼저 개인적인 고생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아침을 엽니다. 그것은 현재 이 세상 돌아가는 것이 자기 마음에 흡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울분을 갖게 됩니다. 왜 이 세상이 자신이 원하는대로 자리잡지 않고 있는가 하는 점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하루 일과는 이런 못마땅함에 대한 나름대로 도전 정신으로 일관됩니다. 못마땅한 현상황에 대해 변화를 시도해 보는 겁니다.
자기 구미에 맞도록 말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이 얼마나 힘들고 조마조마하고 긴장되고 염려되겠습니까! 이 자체만해도 엄청 고생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상황으로 뒤바꾸기 위해 타인과 투쟁에 나서게 되니 이 과정에서도 또한 얼마나 핍박을 받는지 알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개척교회하는 목사가 1년이 지나가도 교인 수가 3명입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그 목사는 신에 대해 울분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변화를 추구하게 됩니다. 1년 후에 교인이 100명이나 되는 교회로 부흥시키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노력을 투입하게 됩니다. 자기 목표에 대한 자신의 도전정신의 발휘입니다. 이 과정에서 그 목사는 얼마나 마음 고생이 컸겠습니까! 그런데 목사의 이러한 노력에 대해서 주위에서 또한 방해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 또한 얼마나 큰 핍박입니까? 이것이 바로 개인적인 차원의 고생입니다.
바로 이런 고생에 놓여 있는 사람은 설교 처음에서 제가 언급했듯이 하나님과의 관계는 성립되지 않는채 사람과의 관계에만 놓여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천국갈 리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천국가는 사람은 오늘 본문 19절의 말씀 그대로 되어 있어야 합니다. 즉 '예수님에게 택함을 받았기에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천국의 백성입니다. 따라서 아까 예를 든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그런 목사는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격하고 고마워할 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천국 자녀가 되는 것은 사람이 도전해서 쟁취할 목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예수님에 의해서 택함을 받아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천국의 자녀라면 자신의 도전 정신과 고생을 투입해서 새삼스럽게 비로소 구원되는 것이 아님을 압니다.
다만 이미 구원받았기에 구원받은 자에게 새로운 현상이 생겨난다는 사실에 눈 뜨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순전히 예수님에 인하여 세상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는 현상이 발생된다는 겁니다. 이 점을 참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믿는 사람이 예수 안믿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되면 우선 다음과 같은 생각이 떠오르기 마련입니다. "혹시 내가 믿는 신자로서 제대로 사랑을 베풀지 못해서 저들로부터 미움받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비록 예수 믿는 것은 양보하지는 못하지만 다른 면에서 저 분들에게 잘 대해주어서 저들도 예수님의 사랑에 탐복하여 다시는 나를 미워하지 못하도록 해야지. 같이 이 세상 살면서 구태어 힘들게 살 필요가 없지"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신자로서 행실이 잘못되어서 저들이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안믿는 자 마음 속에는 악의 세력이 자리잡고 있는 그 악의 세력이 하는 일은 필히 예수를 미워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미움이 나타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악마는 성도들이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사람 되었음' 자체를 미워하는 겁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옛날 히브리인들이 애굽에서 고생할 때 그들은 하나님께 나름대로 부르짖었는데 그들이 요구하는 것이 애굽에서의 '떠남'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애굽에 그대로 살면서 단지 덜 고생스럽게 되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십사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은 겁니다. 그런데 정작 그들 곁에 나타난 모세와 아론은 전혀 엉뚱한 해결책을 가지고 왔습니다. 애굽에서 떠나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번에서 히브리인들이 모세와 아론을 도리어 대적하게 됩니다. 이것이 악의 작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천국만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지옥도 또한 만드셨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천국 백성이 반드시 생겨나야 하는 것 못지않고 지옥에 들어 갈 지옥 백성도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지옥을 채울 지옥 자녀를 만드는데 있어 성심 성의껏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고 계십니다. 그 중의 하나가 '예수 믿는 자 미워하기'입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은 취지로 불신자를 관리하시는 겁니다.
"김 씨, 자네는 제발 지옥가 주어야겠네. 지옥이 텅텅 비면 되겠어? 이 하나님이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자네를 지옥의 사람으로 철저하게 만들어 줄께. 네로 하여금 필히 예수믿는 자를 미워하는 자가 되도록 하여 자네가 과연 지옥가는 사람 맞구나 하는 점을 일깨워주겠네"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바로 비성도 배후에서 열심히 노력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무시하면 안됩니다. 그들이 괜히 성도를 미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 자신이 지옥 갈 사람인 것을 확인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강한 관섭하심의 결과로 그런 현상이 일어나고 또 일어나야만 합니다.
따라서 불신자는 신자를 받드시 핍박하고 미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미움을 받거든, "아 내가 신자됨이 이런 방식으로 확인받는구나 "라고 느끼고 기뻐하면 되는 것입니다. 어쨌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이 세상 모든 짜임새가 우리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꽉 짜여져 있음을 감사합니다. 이 짜임새를 보고 기뻐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신약 설교, 강의(이근호) > 요한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요한복음 16:1-4 / 예수님과 제자 (0) | 2013.12.28 |
|---|---|
| 요한복음 15:22-27 / 죄와 보혜사 (0) | 2013.12.28 |
| 요한복음 15:7-8 / 친구 (0) | 2013.12.28 |
| 요한복음 15:1-6 / 포도 나무 (0) | 2013.12.28 |
| 요한복음 14:25-31 / 성령의 사역 (0) | 2013.12.2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