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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요한복음 16:13-20 / 기 쁨 본문

신약 설교, 강의(이근호)/요한복음

요한복음 16:13-20 / 기 쁨

정인순 2013. 12. 28. 22:41

이근호

http://media.woorich.net/~woorich/성경강해/요한복음-2001/john03021281.WMA

 

기 쁨

2003년 2월 12일

본문 말씀: 요한복음 16:13-20

 

16: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6: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16:15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

16:16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신대

16:17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뇨 하고

16:18 또 말하되 조금 있으면이라한 말씀이 무슨 말씀이뇨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

16:19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가라사대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16: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리니 세상이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예수님께서 우리 앞에 등장하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도 모르고, 천국에 대해서도 모르고, 천국에 들어가는 길도 모르기에 그것을 알려주려고 오셨습니다. 인간들이 이토록 다 모르는 것은 죄에 찌들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설사 예수님께서 이런 내용들을 다 알려준다고 해서 과연 우리 인간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죄의 권세는 모든 하늘의 소식마저 못알아 먹도록 차단시켜 버렸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오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13절에 보면,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성도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진리는 평소에 우리 인간들이 탐내는 내용과는 전혀 딴판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신께 간구하고 기도하고 싶은 것들은 이 세상 것들 중에서 탐낼 만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인간들이 원하고 기뻐할 만한 것들을 한데 모아 종합선물식으로 우리 품에 안겨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는 오직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특별히 예수님의 영광을 안겨주십니다. 예수님의 영광은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과 족히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것들입니다.

 

만약 어느 교회가 자체적으로 큰 수양관을 소유하고 있다고 칩시다. 그 경치가 수려한 수양관에서 교인들이 쉬면서, 본 교회의 교인되었다는 점에 대해서 뿌듯하게 느낄 것입니다. 아무런 수고와 희생도 없이 희희낙락 넓은 수양관을 자기 집처럼 누리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여길 것입니다.

 

오직 그 교회의 소속된 교인이라는 점에서 마음껏 이런 혜택을 누리는 겁니다. 하지만 실제로 어느 교회가 이런 대규모 수양관을 갖게 되면 과연 예수님의 천국을 마음껏 소망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고맙게도 이미 천국을 다 장만해 놓으셨습니다. 다만 예수 안에 들어 있는 성도라는 이유만으로 그 멋진 천국을 마음껏 누릴 수 있습니다. 값없이 말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초에 나와 있듯이, 아들의 영을 받은 사람은 천국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고 했는데 이것은 아버지의 유업을 그대로 이어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런 멋진 천국을 누구나 탐을 낸다는 겁니다. 즉 실제적으로 성령을 받지 않더라도 천국에 대해서는 사람들마다 열망한다는 겁니다. 따라서 과연 제대로 천국에 들어갈 사람인지 아닌지가 구분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구분합니까? 그 구분하는 바는, 예수님 자체에 대한 기쁨이 세상 기쁨과 견주어서 과연 더 큰 것인가를 파악하는 데 있습니다. 마태복음 16:26에 보면,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의 가치를 논하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즉 제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사람은 천국과 세상과 비교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예수님 자체와의 비교에서 예수님을 얻는 것이 천하를 얻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인 것을 확실히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제자에 대해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16절에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신대"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마 제자가 아닌 사람이라면 예수님이 사라지든 나타나든 그저 세상적인 것에 눈독을 들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제자라면 오늘 본문 20절의 말씀이 그대로 적용될 것입니다. 20절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리니 세상이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즉 예수님이 죽었다고 근심하고 애통하고 슬퍼한다는 것은 평소에 그만큼 예수님을 전적으로 매여있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단순히 세상 축복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세상의 모든 것을 잃는다고해도 예수님만큼은 놓칠 수 없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겁니다.

 

성령께서 성도들에게 어떤 마음을 심어주었기에 이런 마음가짐을 지니게 되는 겁니까? 이 점을 알기 위해서 잠시 누가복음 15장의 내용을 조사해 봅시다. 거기에 보면 예수님께서 세 가지 비유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비유는, 잃어버린 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무려 99마리나 되는 양을 갖고 있지만 목자의 심정은 괴롭습니다. 왜냐하면 한 마리 양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목자는 99마리의 양을 놔두고 한 마리 양을 찾아나섭니다. 그리고 기어이 찾아서 너무 좋아 어깨에 매고 돌아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이유가 이러합니다. 따라서 성도는 자기 자신을 볼 때 그저 아무 것도 모르고 천국 가기도 무능력한 잃어버린 양에 불과하다는 것을 자인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번에는 잃어버린 동전 비유를 듭니다.

 

어떤 여자가 10개의 동전 중에서 하나를 잃어버렸습니다. 그 여자는 밤이 맞도록 온 집을 샅샅히 청소해서 기어이 잃어버린 하나의 동전을 찾아냅니다. 그다음 그 여자는 너무나 기뻐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모아 잔치를 벌립니다. 얼마나 좋았으면 그러겠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신 취지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세 번째 비유는, 탕자 비유입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받아서 도시에 나가 모두 다 써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는 그 아들은 돼지가 먹는 것으로 배을 채우려하지만 이러한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처참해서 도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너무나 염치가 없이 아들 자격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아예 아버지의 집에 종이라도 받아준다면 감지덕지하다는 마음으로 돌아갈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집에 들어가자 도저히 예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버지께서 망나니 같은 자기를 도로 내쫓는 것이 아니라 가락지를 미리 준비하셔서 손에다 끼어주시고, 소를 잡아 잔치를 베풀어주시고, 제일 좋은 옷으로 입히시고, 발에는 신을 신겨주십니다.

 

이것을 보고 있던 첫째 아들이 불만을 가졌으나, 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바로 이런 하나님의 마음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바로 아는 자는, 자신이 잃어버린 양에 불과하며, 자신은 잃어버린 동전에 불과하며, 자신은 온갖 못된 짓을 한 탕자임을 자인하는 자입니다.

 

이런 자는 결코 세상적인 것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예수님을 상대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세상에서 얻고 싶은 것보다도 하나님이 친히 마련해주신다는 천국의 가락지와 천국의 소와 천국의 좋은 옷과 신발에 대해서 너무나도 황공스러워하고 감격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신의 기쁨을 성령을 통해서 그대로 성도 안에 집어 넣으시려고 하는 겁니다. 즉 철저한 잃어버림을 분명히 해서 구세주가 이 땅을 찾게 된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어합니다. 여기에 해당되는 자만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런 자와 구세주와의 만남이 천국의 실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자신과 이 세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고 자신을 잘 도와주지 않는다고 그저 하나님과 예수님에게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 분수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위치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전혀 낯선 세계로 초대받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세상 것을 끌고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도저히 받은 자격이 못되는 자에게 그저 주시는 하나님의 혜택입니다. 따라서 성도에게 아무리 괴롭고 힘든 상황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예수님에게 속해있다는 기쁨을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탕자인 주제에 고생스럽다는 것은 너무나도 마땅한 대우라고 여기기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진정 믿음이 하나님이 내리신 선물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이 세상이 주는 그 어떤 고생도 거부하지 않게 됩니다.

 

성도에게 있어 참으로 괴로운 것은 예수님을 도로 잃어버리는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이 자기 곁에 사라지게 되면 진정 애통하게 되면 또한 도로 나타나시면 진정 기뻐하는 겁니다. 예수님 때문에 울고 웃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신약 성경을 보면 모든 것이 다 풀립니다.

 

빌립보서 1:29에 보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특히 베드로전서 4:12-14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성령께서는 세상 것들을 주워모아 우리 성도에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예수님의 영광으로 우리에게 안겨주십니다.

 

그리고 진정한 성도는 이것만 있다면 세상이 주는 그 어떤 괴로움 속에서 여전히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의 능력을 능가합니다. 성령님만이 가져다 주시는 능력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기뻐할 만하고 여긴 세상 것을 제대로 주지 않는다고 그동안 하나님은 얼마나 원망했습니까? 이토록 예수님을 무시하고 구박한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