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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요한복음 15:1-6 / 포도 나무 본문

신약 설교, 강의(이근호)/요한복음

요한복음 15:1-6 / 포도 나무

정인순 2013. 12. 28. 22:33

이근호

http://media.woorich.net/~woorich/성경강해/요한복음-2001/john02122475.WMA

 

 

포도 나무

2002년 12월 24일

본문 말씀: 요한복음 15:1-6

 

15:1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15:2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15:3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크리스마스는 참 이상한 일이 일어난 날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겁니다. 인간 나라에 예수님께서 구태여 등장할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무엇을 알려주시기 위해 일부로 내려오신 겁니까?

 

그것은, 세상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의지로 되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보통 우리 인간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나 된 것은 나의 의지로 된다. 그리고 앞으로 나의 미래도 내 의지에 따라 확연하게 달라질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엉터리라는 겁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사람이란 자기 의지로 충만하기 때문에 자기 외에 그 어떤 존재라도 이러한 자기 의지에 침범하게 되면 싫어하게 됩니다. 만약 세상과 자기 자신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진행된다면 그러면 진정 자기 의지를 이끌고 있는 분은 누구이며 우리를 어떤 모습으로 변하도록 합니까?

 

오늘 본문에서 보면, 한 마디로 말해서 '포도나무'입니다. 하나님은 포도나무를 내세웁니다. 오늘 본문 6절에 보면,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참으로 하나님의 일방적인 횡포처럼 보입니다. 어떤 이유로 해서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께서 내세우는 포도나무의 열매를 맺지 못하면 불로 사름을 당한 대상이 되어야 한단 말입니까?

 

크리스마스가 되면 모두들 들뜬 분위기 속에서 나름대로 오는 해에 대한 소망을 품에 안게 됩니다. "내년에는 제발 이러 이러한 소원이 이루어지는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런 소원들이 뭉쳐서 생긴 나무는 하나님이 제시한 포도나무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나의 나무'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나무를 가꾸고 있고 또한 본인이 기뻐하는 열매들은 따로 생각해 두게 됩니다. 좋은 열매냐 아니면 나쁜 열매냐 하는 것은 본인의 구미에 맞게 정해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들의 생각은 기껏 인간이 태어나서 짧디짧게 살 동안에 구축된 본인의 의지의 산물일 뿐이지 결코 원대한 하나님의 의지와 상관없는 열매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등장하신 것은 이러한 인간들의 크리스마스의 소망을 들어주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갑자가 포도나무를 언급하시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오로지 포도나무 하나 잘 키우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포도나무가 아닌 모든 인류를 다 멸망시키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것은 포도나무는 하나님의 의지가 집약된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에 보면,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즉 포도나무는, 하나님을 농부로 봤을 때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하나님의 의지의 산물입니다. 누가 감히 하나님의 의지에 대들 수 있습니까?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의지 앞에서 자신의 의지를 뭉개야 하고 포기해야하고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내 인생 내 의지로 키운다"는 당연해 보이는 자신의 의지를 사실상 접어야 합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된 것만으로 행복하고 안도의 한심을 내쉬어야 합니다. 인간들의 의지란 이러한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 앞에서 사실상 초라한 것들입니다. 그리고 사실 무용지물에 불과합니다.

 

이 포도나무 앞에서 그 어떤 개인적인 나무도 함께 자라날 수 없습니다. 그저 불태움을 당할 따름입니다. 이 세상은 인간들의 의지로 충만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의지만 충만히 넘치는 세상입니다. 예수님은 이 포도나무 하나 제대로 성사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 분은 하나님의 의지에만 복종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실제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마태복음 8장에 보면, 로마인 백부장이 나옵니다. 마치 일제 치하에 조선 땅에서 근무한 헌병대 중대장 격이 되는 사람입니다. 어지간한 사람들은 천하의 안하무인격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없을 정도로 자기 의지로 충만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백부장이 어찌된 영문인지 예수님의 메시야 됨을 믿었습니다. 당연히 지배국가인 로마의 종교도 아니라 지배당하는 나약한 민족의 종교의 교리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실제 상황으로 받아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이 가라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겠습니다."

 

여러분, 자... 이런 자세 같으면 예수님 앞에서 전혀 자신의 의지를 내세우지 않는 자세입니다. 그리고 오로지 예수님의 의지에만 묶여 살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 이방인인 백부장의 믿음에 감탄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에서 아브라함의 본 자손들은 다 추방당해 바깥 어두운데서 통곡하게 될 것이며 천국은 이런 자의 나라가 될 것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크리스마스는 개인적인 소망이나 이루는 날로 생각하지 맙시다. 사실상 일년 365일 모두 크리스마스가 되어야 합니다.

 

즉 오직 하나님의 의지만 가득찬 날이 되어야 되고 우리들의 의지가 그 앞에서 무용지물 되기를 바라는 날들이 되어야 합니다. 백부장의 믿음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포도나무는 어떻게 시작한 나무입니까?

 

예레미야 2:21에 보면, 이스라엘 민족 자체를 포도나무로 보고 있습니다. 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포도나무입니까?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타민족과 전혀 다르게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7:7-8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본문에 의해서 보면, 하나님의 이스라엘 민족의 택하심은 결코 숫자가 많다는 점에 가치를 두고 다른 민족과 구별지은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되게 된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사랑이며 그 사랑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맹세에서 나왔습니다.

 

즉 하나님은 이 지상에 자신의 맹세한 바로 발생되는 어떤 작품을 염두에 두고 일을 하십니다. 그 작업의 열매가 바로 이스라엘의 등장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일들은 결코 인간의 소원 달성 차원에서 진행되지 않습니다. 순전히 하나님의 자기 일에 대한 자기 사랑입니다.

 

이스라엘은 그 사랑을 그냥 일방적으로 받은 것 뿐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타민족보다 더 선하고 더 훌륭한 자들이 아닙니다. 순전히 위에서 오는 사랑만 받고 있을 뿐입니다. 보통 인간들은 생각하기를, 자기를 최종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결국 나 밖에 없고 장담합니다.

 

그러나 포도나무인 이스라엘의 등장을 놓고서 볼 때는 이런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자기보다 자기를 더 사랑한 그 사랑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등장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기이한 일입니까? 세상에 나보다더 더 나를 사랑하시고 먼저 사랑하시고 태초부터 사랑하신 사랑이 있다니 말입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서의 포도나무도 이런 사랑의 결정판으로 등장된 것입니다. 쉽게 말씀드려서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셔어 이 땅에 오신 것은 개인적인 나무를 나무라고 인정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전에부터 하나님께서 맹세하신 그 사랑의 결정판을 성취히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이런 의지의 강렬함이 각가지 신비로운 일들을 생기게 했습니다. 누가복음 2장에 보면, 밤에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갑자기 하늘 나라의 전경이 펼쳐집니다. 그들은 무서워 떨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나는 천사의 음성은 무서워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뻐해야 될 일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늘에서 울려나오는 노래 가사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하늘에서는 영광이요 땅에서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의 평화로다"

 

즉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이 주신 평화의 혜택을 입는 것이 아니라 오직 기뻐하심을 당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평화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일방적인 사랑, 나보다 더 나를 먼저 사랑한 그 혜택을 입은 사람들에게 평화요 포도나무가 되는 겁니다. 마치 천장이 무너져 내린 것처럼 그 순간은 하늘 나라의 영광의 무게에 눌러서 지상이 곧 하늘 나라가 된 셈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무게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랑으로만 생겨난 포도나무만이 참된 인간, 참된 백성으로 간주하시고 그들만 영원토록 복을 주십니다. 누가 포도나무입니까? 이러한 하나님의 일방적 사랑을 느끼는 자가 참된 주의 백성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의지로 우리들의 인생을 설계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를 알았습니다. 내 사랑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으로 살아가는 생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