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6/06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복음과 믿음

요한복음 14:25-31 / 성령의 사역 본문

신약 설교, 강의(이근호)/요한복음

요한복음 14:25-31 / 성령의 사역

정인순 2013. 12. 28. 22:32

이근호

http://media.woorich.net/~woorich/성경강해/요한복음-2001/john02121874.WMA

 

성령의 사역

2002년 12월 18일

본문 말씀: 요한복음 14:25-31

 

14: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14:28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14:29 이제 일이 이루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이룰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14:30 이 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14:31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의 명하신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시니라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 이상스러운 대조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가만히 있는데 예수님 혼자 바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도해서 성령도 보내셔야 하고, 또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가셔야 하고, 또 예수님께서 다시 제자들에게 오셔야 하고, 또한 세상 임금과 만나셔야 하고 말이지요.

 

지금 제자들은 예수님 혼자 무슨 일을 하시고자 하는지 전혀 감을 못잡고 있습니다. 어리둥절하고 황당할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라는 겁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들어도 왜 자신들의 마음에 근심이 꼭 찾아와야 하며 또 자신들이 두려움에 찾아드는 처지에 놓여야 하는지 그 이유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세상 임금이 왜 예수님을 찾아와야 하는지, 그리고 예수님은 왜 그 세상 임금과 관계할 것이 없다고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과 제자들의 상황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예외가 아닙니다. 교회 다니는 신자라고 할지라도 역시 이 분주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니 이 세상 흐름의 속도에 맞추어 같이 분주해 질 수 밖에 없는 입장입니다. 따라서 정신을 딴데 쏟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니 자연적으로 예수님이 하시는 일과 대비가 되고 대조가 일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 나름대로 자기 일에 바쁘고, 우리는 우리들의 일에 바쁘고, 이래가지고서 무슨 하나님의 자녀라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당부하신 말씀, 즉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도, 일단 전적으로 예수님의 일에 합세했을 경우에는 적용될 말씀이지, 세상의 일에 몰두해 있어서 예수님의 일을 거들떠 보지도 않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엉뚱한 당부가 될 뿐입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을 하시면서 일방적으로 일을 혼자서 처리해 버린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연적으로 제자들마저도 그 일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나설 수가 없는 겁니다. 무슨 일이든 이해가 되고 납득이 되어야 되지 않습니까?

 

의논도 안된 일을 예수님께서 저질러 버리시는 것에서 제자들이라도 협조해 드릴 수가 없지요. 그런데 하나님이 하시는 매사가 다 이런 식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일을 하실 때 일방적으로 처리해 버리시는 겁니까?

 

한 가지 비유를 들면 이렇습니다. 제자들은 모여서 세상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까에 고민하고 주위 사람들에 대해 경계하기도 하고 자신의 앞 일에 대해 걱정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순간에도 예수님은 삽으로 그런 제자들의 발밑을 계속 파십니다.

 

그래서 거대한 풀장 같은 구덩이를 다팠다고 칩시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떠밀어 그 거대한 구덩이로 밀어넣는다고 칩시다. 그렇게해서 구덩이에 빠진 제자들은 그 구덩이가 너무 장대하고 깊기에 더 이상 구덩이 밖의 세상의 조금이라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온통 사방이 구덩이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일단 그 구덩이에 빠진 제자들에게 이제 관심거리가 더 이상 세상 이야기가 아닙니다. 남은 일은 이 구덩이라 얼마나 크고 넓고 웅대한 세계인지를 감탄하고 환호성을 보내는 일만 남았습니다. 전에 예수님께서 혼자서 열심히 구덩이를 팔 때는, 예수님께서 왜 홀로 그런 행동을 하시는지 전혀 이해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모든 일이 마무리되고 예수님께서 홀로 이루어놓으신 그 성과에 들어서고 보니 더 이상 세상이 위협되지 않을 정도로 이쪽 세계가 거대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구상하신 성도들만의 천국입니다.

 

성령님이 이 제자들에게 오셔야 한다는 말은 바로 바깥 세상에 염려하던 제자들을 강제로 이 구덩이 속으로 던져 넣어서 더 이상 세상 일이 근심거리가 전혀 되지 못함을 깨닫게 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이런 거대한 구덩이를 염두에 두지 않고 만약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려고 한다면, 기껏 종교적인 자기 절제와 자기 통제를 시도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당부하기를 더 이상 근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어. 따라서 우리는 마음을 크게 먹고 주님의 일을 계속 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잘 다스려 대담한 마음이 유지되도록 통제시키여야 돼."라는 정도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기 통제는, 예수님이 체포될 때 이러한 결심도 여지없이 허물어졌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대로 일 따로 하고, 우리들은 우리 나름대로 그 예수님의 일을 따라잡기 위해 열심히 뒤쫓아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신앙은 전혀 예수님이 원하시는 바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원하는 바는, 예수님께서 홀로 이루어놓으신 거대한 구덩이에 완전히 빠져서 그 속에서 나올 필요로 없이 만족스러워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속에 빠진 성도들이 얼마나 대단히 만족스러운지 바깥 세상에서 무슨 난리나 소란스러운 일이나 낭패에 해당되는 일이 일어나도 그로 인해 근심되거나 전혀 두려워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정도입니다. 과연 이러한 신앙 상태를 인간적인 힘으로 가능할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불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시겠다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사람의 지혜나 힘으로 예수님이 해놓으신 세계의 기쁨을 찾을 수도 거기에 빠질 수도 없습니다. 오직 성령님의 강권적인 사역으로 인해 그 세계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세계에 빠졌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에베소서 1:17-23에서는 이 구덩이 속이 광경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 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이 말씀에 의하면 교회라는 이름의 그 구덩이 속에서는 원 세상에 죽은 자도 살아난답니다. 이 얼마나 희한안 세계입니까? 이에 비하면 바깥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란 모두 시시껄렁한 일이라서 문제꺼리도 안되는 겁니다.

 

물론 제자들도 이런 성령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자신들을 훌쩍 떠나고 난 뒤 자기네들을 기다리는 바깥 세상과 조화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대단히 걱정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이 강림하고 난 뒤에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도리어 바깥 세상에서 대해서 자랑스럽게 이 예수님이 이루어놓으신 새 세상을 소개했습니다. 베드로후서 1:17-21에 보면, 베드로는 자신의 과거 변화산에서의 체험에 대해 성령을 받고 난 뒤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여기서 자칫 생각하면, 베드로가 너무나도 황홀한 경험을 했기에 용감하게 복음을 전한다고 여기시겠지만, 성령님이 베드로한테 오기 전까지 이런 초월적 경험도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는 그 마음씨를 막는데 하등 도움이 될 수 없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오늘날에도 정말 성령받은 사람은 늘 성령님의 간섭하에 웅대한 주님의 웅대한 새 세계에 속해 있는 희열과 감격으로 인해 자꾸만 이 세상의 일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현상을 보이게 됩니다.

 

이런 자만이 예수님의 소원대로 하나님으로 성령을 받은 진정한 신자입니다. 끝으로 고린도전서 2:10-12를 봅시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즉, 이 세상의 일은 더 이상 성도에게는 고민거리나 근심거리나 두려움을 제공하는 요소가 되지 못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세계의 웅대함에 눌러 그저 탐복하고 감탄하기에도 바쁩니다. 이러한 현상은 그 어떤 종교적 모방술로도 흉내내지 못할 일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주님이 주신 능력 안에서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음을 성령님의 도움으로 깨닫게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저 주님의 대단한 공로만 자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