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요한복음 13 : 21-30 / 예수님의 지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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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예수님의 지시 2002년 10월 30일 본문 말씀: 요한복음 13 : 21-30
13:2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에 민망하여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13:22 제자들이 서로 보며 뉘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13:23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의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13:24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한대 13:25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오니이까 13:2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찍으셔다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주시니 13:27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13:28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이가 없고 13:29 어떤이들은 유다가 돈 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의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 가난한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13: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이 세상은 각가지 모임들이 많이 있습니다. 계모임, 동창회, 정치모임, 친목회 같은 것도 많이 있습니다. 남자 13명이 모여서 만든 단체가 한 둘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이 중의 어떤 한 단체가 자기네끼리 선언하기를, "우리 단체에 온 우주의 운명이 달렸다"고 한다면 비웃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임의로 어떤 단체가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그네들의 자유일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하는 행위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각자 자기 일에 열중할 뿐일 겁니다.
세상이란 항상 이렇습니다. 특수한 한 인물이나 단체가 인류의 미래를 장악하고 있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너에게는 네 생활이 있고 나에게는 내 생활이 있어 각자의 운명은 각자의 하기 나름이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 말이 맞을까요? 예수님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이 점에 관한 겁니다. 오늘 본문에 들어가지 전에 제가 한 예를 들겠습니다. 군대를 보면, 최고 정점에 사령부가 있습니다. 그리고 말단에는 예하 부대가 있습니다.
자, 사령부에서 최고급 장교 서너명이 모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에 최저 말단 일반병들이 화장실 양지바른 곳에 서너명 모여 잡담을 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 두 모임이 똑같은 모임입니까? 물론 양적으로는 둘 다 서너명의 모임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각자의 행동들이 자기네들 모임에 의해서 이루어질까요? 아닙니다. 사령부에 모인 서너명의 명령은 곧장 화장실에 모여 있는 일반병에서 지시가 떨어지게 되고 그들은 즉시 전투에 들어가도록 명령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군대 내에 모든 사람들의 행동은 각자가 알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 사령부의 지시와 명령에 따라 움직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군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놀랍게도 이 세상도 그러하다는 겁니다. 우리는 이 점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날 교인들이 예수님을 믿노라고 하면서도 실생활에 있어 모든 사고방식은 각자가 게획하고 꿈꾸던 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이런 행동은 예수님의 사령관됨을 무시하고 인정치 않는 태도들입니다.
자신의 운명은 현재 자신의 행동 여하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대장되심을 인정할 틈이 전혀 없습니다. 이것이 무슨 신자입니까. 마태복음 8장에서 백부장은 예수님을 보고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더러 오라 하면 오고 가라 하면 가겠나이다" 이런 모습을 보고 예수님께서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이 백부장을 크게 칭찬했습니다.
이처럼 신앙적인 삶이란 내가 만들어가는 삶이 아니라 예수님이 만드심을 인정하는 삶입니다. 군대 내에 있어 사병이나 장교나 그 모든 자의 하루 스케줄은 모두 최고 지휘관에 의해 이미 사전에 결정되대로 움직입니다. 비록 지휘관은 한 사람이고 사병들은 다수라도 군대의 중심은 다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지휘관에게 있습니다.
사령관은 일반병들과 군대의 장래를 위해 의논하거나 의견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 다같이 모여 상의해서 조직을 꾸려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신자들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권리를 그 누구에게 빼앗길 생각이 전혀 자들입니다만,
적어도 신앙인같으면 이 우주의 운명은 자신의 운명과 더불어 이미 예수님에 의해 확정되었음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이 곧 이 우주의 중앙통제소인 것을 믿어야합니다. 그리고 현실로 간주해야 합니다. 우주의 모든 움직임은 예수님의 태도 결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홍해가 갈라진 것이라든지,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거라든지, 베드로가 고넬료를 만난 것도 마찬가지요, 마지막 심판 행위도 모두 예수님에게서 나옵니다. 그런데 이런 점을 인정안하게 되면 인간은 사사건건 모든 면에서 신에게 항변하고 달려들고 불만을 털어놓게 됩니다.
교회를 다니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소위 신자라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상투적인 하소연이 이런 것들입니다. "하나님, 왜 세상이 갈수록 험악하게 방치하십니까? 왜 이단들이 더 큰소리치도록 보고만 계십니까? 왜 약한 자가 억울함을 당하고 강자가 더욱 세력이 커지는 겁니까? 왜 성실하고 바르게 사는 사람에게 배가 더 큰 환란과 어려움이 닥치게 하십니까?"하고 말입니다.
이런 자세는 물론 백부장의 신앙과는 전혀 상관없는 겁니다. 오히려 정반대되는 태도입니다. 과연 예수님이 우주 통제소인 것을 믿습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과 12제자 그룹은, 남들이 보면 그저 평범한 친목모임에 불과할 것입니다. 오늘날의 불신자들이 보기에 따라서는 마음을 수양하는 단체 정도로도 간주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27절에 보면 악마가 본격적으로 자기가 해야할 일을 개시케하는 진원지가 됩니다.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즉 예수님은 악마가 자신의 일을 하도록 허용하는 입장에 있는 겁니다.
이 말의 뜻은, 예수님이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통제하는 중앙통제소의 역할을 차질없이 잘 수행하고 계시다는 겁니다 악마가 열심히 활동하고, 이단들이 활개치고, 불신자가 이 세상의 모든 권력과 사상을 장악하게 된 것도 모두 예수님의 전략 아래에 놓여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본문의 시점에서는 다른 제자들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악이 악답게 활동을 개시하는 이 점은 다른 제자들은 모두 배제되고 예수님과 가롯 유다만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무시하고 악마의 활동을 인정치 않는 사람에게는, 현재 이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악의 원천에 대해 알 길이 없는 겁니다. 12제자와의 모임에서 먼저 말씀의 운을 뗀 것은 제자들이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21절에 보면 "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에 민망하여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제자중 하나가 예수님을 판다는 것을 이미 예수님을 훤히 알고 있고 그리고 그 배후에 악마가 있다는 것도 예수님은 사전에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 사실을 이제와서 제자들에게 이야기하시는 겁니까? 그리고 이런 악마의 일을 아예 막지 못할 것 같으면 살짝 가롯 유다에게만 말씀하시지 왜 제자들에게 먼저 광고하시는 겁니까? 우리는 여기서 가롯 유다가 남보다 인간적인 면에서 더 저질이고 나쁘다고 봐서는 아니됩니다.
사실 가롯 유다의 인간됨됨에 대해서는 한 솥밥을 먹고 살아온 다른 제자들도 익히 하는 바입니다. 결코 예수님에 대해 악담을 하고 예수님을 팔아넘기겠다는 그런 악한 마음을 품을 사람이 아닌 것을 알기에 예수님께서 친히 가롯 유다의 입에 떡조각을 넣어주시면서 암시를 해도 다른 제자들은 전혀 눈치챌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가롯 유다는 꼭 악마의 종이 되어야 합니까? 그것은 다른 제자들 때문입니다. 즉 사실 예수님께서 12제자 모두에게 떡조각을 모두 넣어주시면서, "자 이제부터 모두들 악마의 하수인이 되어 마음껏 나쁜 짓을 하라"고 해도 이의를 달수 없는 제자들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개야 이제부터 악마 노릇을 하여라"하여도 거부할 자격이 없이 마땅히 저주받아야 될 자가들이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12제자 모두에게가 아니라 오직 한 사람 가롯 유다에게만 악마가 들어가도록 허용하시므로서 나머지 11제자에게 베푸신 사랑과 자비와 은혜가 얼마나 귀한 것임을 말씀하시고자 하는 겁니다.
물론 이 때는 제자들이 이런 사랑을 알지 못할 때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오시게 난 뒤에 이들 제자들은 모든 것이 예수님의 사랑이고 돌보심의 행동들이었구나 하는 점을 알게 됩니다. 그 전에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현사태를 알려 준 바 있습니다.
요한복음 6:67-71절에 보면, "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 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 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무도 올 수 없는 천국, 아무도 올 수 없는 예수님 곁, 하지만 오게 된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보내준 결과요 예수님께서 일부러 선택하신 덕분입니다. 바로 이러한 사랑이 제자들에게 지속적인 것을 보이는 그 와중에 오직 한 사람 가롯 유다는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의 말로가 어떤 것인가를 시범조로 보이기 위해 선택되어 제자된 자입니다.
"가롯 유다가 참 안됐다"고 측은해 할 것이 아니라 우리라도 얼마든지 예수님을 팔아버릴 수 있는 존재들이지만 특별히 하나님의 사랑이 임해서 그렇게 되지 않게 되었음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흔히 목사들이 교인들에게 내내 사랑을 받아오다가 갑자기 뚝 끊어져 버리면 갑자가 부화가 치밀어 오르게 됩니다. "왜 나를 계속 사랑안하고 존경 안해주는 거야 이 괘심한 자들!"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목사 본인은 원래 사랑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동안 은혜받을 것을 도리어 감지덕지해야 합니다. 이처럼 우주의 중앙통제소이신 예수님은 모든 일은 선택의 사랑이 부각되는 중심으로 일하십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그동안 구원받은 사랑과 은혜는 감사할 줄 모르고 매사가 내 원대로 안된다고 얼마나 하나님을 원망했습니까? 자기 주제 파악이 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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