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요한복음 13:12-20 / 섬김 본문
이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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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 2002년 10월 23일 본문 말씀: 요한복음 13:12-20
13:12 저희 발을 씻기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13: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자보다 크지 못하니 13: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13:18 내가 너희를 다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13:19 지금부터 일이 이루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이름은 일이 이룰 때에 내가 그인줄 너희로 믿게하려 함이로라 13: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성경에 펼치면 거기에는 현실이 펼쳐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점을 고려하기 쉽상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꿈은 현실이 아닙니다. 인간의 소망도 현실이 아닙니다. 현실이 아닌 이런 꿈과 소망을 달성하기 위하여 성경을 들여다 보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점을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현실이 있다. 네가 지금 너의 꿈과 이상 때문에 잘못되게 현실을 보고 있는 점을 이 성경과 비교해 봐서 포기토록 하라"고 말입니다. 사람에게 꿈이 있다는 점 때문에 스스로 파멸의 길로 가게 됩니다.
누가봐도 살만큼 잘 살아가고 있는 자도 어릴 때 꿈꾼 희망 때문에 맨날 자신과 주위 사람들에게 원망의 태도를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여건 속에 있으면서도 스스로 불행과 비극의 씨앗을 마구 뿌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들은 성경을 봐서 자신의 인생관이 참된 현실과 상당히 틀리다는 점을 발견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현실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에 정해놓으신 원칙이 있다는 겁니다. 인간 뿐만 아니라 천사도 그리고 하나님마저도 벗어날 수 없는 원칙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이 원칙으로 하나님은 현실을 만드십니다. 따라서 만약 잘못된 인생관을 가지고 아무리 하나님에게 기도해 봤자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조차도 자기 원칙을 어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성경 본문에서는 어떠한 현실, 어떠한 원칙이 나옵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섬김'입니다. 이 예수님이 제자들을 섬기듯이 너희들도 서로 섬겨야 한다는 겁니다. 섬겨야 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성도가 가질 태도요 실천인데 도리어 섬김받고자 하는 식으로 살아가고 꿈을 꾼다면 바로 이런 경우가 비현실적 사고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흔히들 말하는 '섬김'에는 커다란 함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즉 "여러분 직분 맡은 자는 모두 교회를 섬기는 사람입니다. 목사와 장로와 집사가 그런 자들입니다"라고 목사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이런 외침은 곧장, "목사나 장로 집사가 다른 평신도보다 높은 사람입니다."라는 현실로 이어지기 싶습니다.
즉 "교회를 열심히 섬기겠다는데 왜 존경들을 안해!"라고 교인들을 다구치는 식으로 나오기 마련입니다. 봉사하기까 봉사 받는 사람보다 더 높아야 한다는 인식은 잘못된 것입니다. 봉사나 섬김이 이런 느낌으로 잘못 이해되는 이유는, 소유욕에 집착해 있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즉 일단 나의 소유라고 간주하고 난 뒤에 섬김이라든지 봉사라는 말들을 거기에다 투입시킵니다. 그러니까 실제로는 봉사가 아니라 그 대상을 자기 사람으로 잡아들이겠다는 전략에 불과합니다.
예를 들면, 목사가 어떤 교인을 불러놓고 다음과 같이 호통치며 섭섭한 마음을 토로합니다. "내가 당신을 위해 몇 년을 기도해주고, 심방가주고, 관심가져 주었는데 이제와서 당신은 나의 정성과 은혜를 차버리고 배신자처럼 우리 교회에서 이제 발을 끊겠단 말입니까? 이 의리도 없고 양심도 없는 인간아!"하고 말입니다.
사실 이 목사는 그 사람에게 봉사나 섬긴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투자를 한 것입니다. 일종의 흥정을 한 셈입니다. "내가 이러이러하게 당신께 신경을 써 줄테니 당신도 나에게 이러 이러한 식으로 보답하는 것이 도의에 맞습니다."라고 요구합니다.
이것은 섬김이 아니라 사람을 자기 수하에 두기 위해 정복 작전의 일책입니다. 그래서 교회 내에서 "제가 여러분을 섬기겠습니다."라고 공개적으로 나서면, 이 말은 곧 "이제부터 나를 존경할 사람으로 보시기 바랍니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됩니다. "앞으로 내 말 안들으면 재미없어"라고 하는 협박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섬겨야 제대로 섬기는 것입니까? 어떤 대상자가 나타나면, "왜 하나님은 저 분을 나에게 보내었을까? 아, 내가 저분을 도와주라고 붙여주셨구나. 그렇다면 혹시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그 도움을 가지고 멀리 타지역에 가서 살더라도 보다 기쁘고 감사하며 살기를 바란다."라는 마음을 가져야 이것이 섬김입니다.
이러한 섬김은 교회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나 남편이나 자식의 관계에서 상대를 자기 소유로 삼을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생각이 앞서는 상태에서 가정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예가 에베소서 5:22-25에 보면,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찌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여기에 보면, 아내의 복종과, 남편에 대한 섬김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복종과 섬김은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섬김이 있으려면 먼저 선행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남편이 어떤 남편이냐 하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 사랑하기를 마치 예수님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친 그런 남편에 한해서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마치 주님 섬기듯이 말입니다. 남편이 아내에 대한 이런 선행되는 섬김이 없이는 아내로부터 섬김을 강요할 수 없습니다.
또한 이런 희생과 사랑이 없는 남편에게 죽도록 복종하고 섬겼다고 하나님께서 그 여자를 보고 "훌륭하다"고 하시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현실관과 다릅니다. 일방적인 열녀는 '자기 의'에 대한 집착일 뿐입니다. 남편이 잘못되었을 때는 꾸중하고 나무라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아내를 위하여 어떤 식으로 목숨을 바쳐야 합니까? 아내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기 위해 목숨바쳐야 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남편는 아내를 위해 사는 사람이 되면 안되고 예수님을 위해 살아야 될 사람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제시한 원칙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14에 보면,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성도는 오직 예수님만이 자기의 자랑거리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자기 아내가 이 세상 최고의 자랑거리가 된다든지, 아니면 아내를 사랑하는 자기 자신이 최고의 자랑거리가 되면 안됩니다.
달리 말해서 자신의 아내의 소유도 아니고 아내는 또한 남편의 소유도 아니고 남편 또한 자기 자신의 소유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예수님의 소유로만 족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럴 때만 그 누구라도 마음 편하게 봉사하고 섬기게 됩니다. 예수님만을 사랑하고 자랑하면서 말입니다.
예수님 자랑이 더욱 강렬하기 때문에 세상의 갖가지 일들은 예수님에 비해서 모두 가벼운 일인 것입니다. 바로 이런 마음으로 아내를 대하든지 남편을 대하면 이것이 곧 복종이요 희생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발을 씻기신 것은, 이런 사랑과 이런 예수님을 최고로 여겨라는 뜻에서 서로 서로 섬기고 사랑하라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어떤 결과가 될까요?
오늘 본문 20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이 구원의 원칙이 성립되려면 그 가운데 있는 제자들은 예수님만을 자랑하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얼마 안있으면 도로 하늘 나라로 가버립니다. 그렇다면 남아 있는 자들은 제자들 뿐입니다. 그러면 이들이 얼마나 허전해 하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당부하십니다. "나는 내가 택한 자를 알고 있다" 즉 예수님이 혼자서 훌쩍 사라져 버렸다고해서 하늘 나라에서 제자들을 내몰라라 하고 버린 것이 아니라 예수님쪽에서 선택했기에 결코 그 선택 자체를 예수님께서 굳게 하신다는 겁니다. 한 번 사랑을 끝까지 가는 사랑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만을 사랑하고 예수님만을 자랑하고 믿는 것이 참으로 힘겹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그 말씀, 즉 "나는 누구를 택했으며 누구는 택하지 않았음을 누구보다도 나 예수가 확실히 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가 결코 놓쳐서는 아니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이 평소 교회에서 수고한 것으로 예수님을 붙잡을 생각말고 오로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만 귀 기울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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