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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요한복음 13:1-10 / 끝까지 사랑 본문

신약 설교, 강의(이근호)/요한복음

요한복음 13:1-10 / 끝까지 사랑

정인순 2013. 12. 28. 22:21

이근호

http://media.woorich.net/~woorich/성경강해/요한복음-2001/john02101765.WMA

 

 

끝까지 사랑

2002년 10월 16일

본문 말씀: 요한복음 13:1-10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줄 아시고 세상에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13: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13: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13:5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13: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13: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13:8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13:9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 발 뿐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13: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사람들이 교회를 찾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정말 참으로 이상한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이 결코 돈이나 건강이나 출세를 보장해 주지 못한다고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돈이나 건강이나 출세는 모두 자신들의 힘으로만 쟁취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인들은 왜 세상 사람과는 달리 예수님을 찾습니까? 혹시 돈이나 건강이나 출세를 예수님께서 보장해 준다고 믿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교인들은 세상 사람들보다 더 무지하고 음흉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돈이나 건강이나 출세를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는 점에서 세상 사람들은 교인들보다 더 똑똑하고 훌륭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교인들 중에서도 진정한 성도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분들이 교회를 찾고 주님을 찾는 이유는 딴데 있습니다. 결코 돈이나 건강이나 출세를 노리고 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찾는 이유는 예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이 그립고 좋아서 교회를 찾고 주님을 찾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세상 사람들은 진짜 성도들을 보고 의아해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사랑이라는 것도 사실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되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에 있어 뜨거운 애정이라는 것도 기분에 따라 얼마든지 철회될 수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겁니다.

 

즉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교인들이 예수님이 좋다고 교회에 충성하고 봉사들 하지만 얼마 안가서 시들해 질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던, 혹은 하나님을 사랑하던, 그 때 그 때 기분이나 감정에 의해 좌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실제로 교회에서 보게 되면 교인들이 일시적인 흥분 상태에서 신께 충성을 맹세했다가도 자기 형편이 복잡해지면 교회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만약 이런 사랑으로 천국에 들어간다고 한다면 세상사람들이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예수님의 사랑은 그런 인간들의 사랑과 같지 않습니다.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해 주십니다. 여러분, '끝까지'라는 말을 세상에서 자주듣게 됩니까? 이 세상에서는 '끝까지 보장'이라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사랑도 일시적일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랑만큼은 '끝까지'가 적용되는 사랑입니다. 한 번 사랑한 사람은 끝까지 놓치지 않고 사랑해 주십니다. 그 이유는, 애초부터 그 사람의 조건보고 사랑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긍휼이라는 말이 여기에 적당합니다. '긍휼'이란 불쌍히 여겨주신다는 말입니다. 불쌍히 여기겠다는 그 마음을 누가 막을 수 있단 말입니까! 또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인간들이 신의 사랑을 유도하기 위해 스스로 처참한 몰골을 한다고해서 하나님의 긍휼이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순전히 하나님쪽에서의 일방적인 태도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이 끝까지 사랑을 바로 알아서, 자신의 오류나 실수나 실패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질 수 있다는 오해는 해서는 아니됩니다. '끝까지'라는 말씀을 예수님께서 괜히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점도 더불어 알아야 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끝까지 사랑해 주지 않는 이도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지독스럽게 끝까지 미워하는 대상도 따로 있습니다. 흔히 성경공부하면서 예수님의 일관된 사랑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대단히 기뻐들 하십니다.

 

그러나 그 뒤 예수님의 일관된 미움을 말씀드리면, 아까까지 그렇게 기뻐했던 마음은 싹 가시고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겁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긍휼'을 제대로 몰라서 그렇습니다. 즉 "하나님이 나를 끝까지 사랑해 주신다는 면은 참으로 고마운 마음인데, 그렇다면 아직도 예수 안믿고 곧 죽을 날을 기대하는 내 부모를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이 참으로 야속하다. 어떻게 자비로운 하나님이 그렇게 지독스럽고 잔인할 수 있는가?"하고 원망의 마음을 가집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뜻을 다시 자기에게 적용시켜 보시기 바랍니다. "나도 하나님으로부터 지독스러운 미움을 끝까지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존재인데 어떻게 큰 은혜를 주셨는지 도리어 끝까지 사랑의 대상으로 삼아 주시니 이 얼마는 큰 행운이냐!"라고 말입니다.

 

즉 끝까지 사랑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설명해 주기 위해서도 '끝까지 미움'이 반드시 거론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성도가 교회를 찾고 주님을 찾는 이유는, 이 '끝까지' 사랑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것 이외에 다른 이유로 찾으면 예수님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일도 여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난데없이 제자들의 발을 씻겠다고 나섭니다. 제자들의 마음이 항상 깨끗해져 있어야 한다는 취지같으면 구태여 예수님이 친히 나서서 발 씻어줄 이유가 없습니다.

 

이렇게 지시하시면 그만입니다. "제자들아, 너희들의 마음은 항상 정결해 있어야 한다. 이런 것을 상징하는 의미에서 세수대야에 물을 담아 발을 씻어야 하느니라. 알겠느냐? 자 가서 각자 씻으라!"라고 하시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행위의 초점은 예수님이 친히 나서서 제자들을 발을 씻기신다는 점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끝까지 사랑'을 언급하시고 이 행위에 나서신 겁니다. 물론 제자들은 자기 딴에 충분히 예수님의 말씀을 충분히 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예수님께서 먼저 나서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려 하자 제자들은 매우 당황했습니다.

 

8절에 보면,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베드로는 나름대로 평소에 자기 쪽에서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 스승과 제자 관계가 충분히 성립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만큼 제자로서 스승에 대한 존경심과 예우를 갖추고 있었고 이 존경심으로 인해 스승과 제자 관계는 문제성이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주님쪽에서 먼저 도리어 제자들의 발을 씻기려하니 상식적인 스승과 제자 관계가 와해된다고 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도리어 다음과 같이 단언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자... 얼마나 중요한 말씀입니까! 혹시 우리들이 지금도 예수님과 상관없는 행위들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바는, 예수님께서 일방적으로 우리들 사랑했고, 그리고 그 사랑이 끝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을 믿어주는 그 사랑, 그 관계 뿐입니다.

 

이 관계에 절대로 다른 요소를 추가적으로 집어넣으면 아니됩니다. 만약 다른 요소를 가미하면 그 사람은 지옥에 갈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이 이야기를 듣고서 베드로가 깜짝 놀랍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9절에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 발 뿐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여기서 우리는 또한번, 잘못된 인간의 본성을 엿보게 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발 씻음이 단순히 사랑의 개시 행위정도로 본 것입니다.

 

예수님의 한 번 사랑이 끝까지 가는 '끝까지 사랑'임을 모르고 있습니다. 인간쪽에서 요구하고 또 요구할 때마다 그 때 그 때 예수님이 사랑하고 사랑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목욕한 사람은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즉 예수님의 발 씻음을, 발 씻음이 아니라 이미 전체 씻음의 표시로 발 씻음을 한 것입니다. 이게 바로 '끝까지 사랑'입니다. 도중에 인간의 실수로 '끝까지 사랑'이 도중에 깨어질 그런 여지는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

 

일차적으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랑으로 다가왔고, 나머지는 그 사랑에 보답해서 성도가 행할 선행으로 구원이 마무리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성도에게 있어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어떤 교인이 자신의 실수 때문에 좌절한다면, 따지고 보면 평소에 실수 하지 않았을 때는 자신의 신앙 인격이 훌륭해서 방지된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셈이 됩니다.

 

성도에게 있어서는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성도 자체가 은혜 덩어리입니다. '끝까지 사랑'의 구현체입니다. 이미 목욕한 사람만이 누리는 행운의 기쁨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억지로 교회다니고 예수 믿는 것이 아닙니까? 자신의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 예수 믿지 말게 하시고 예수님의 온전한 사랑을 찬미하기 위해 예수님을 더욱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