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요한복음 12:37-43 / 표적 본문
http://media.woorich.net/~woorich/성경강해/요한복음-2001/john02100263.mp3
|
이근호
표적 2002년 10월 2일 본문 말씀: 요한복음 12:37-43
12:37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니 12:38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가로되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12:39 저희가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까닭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12:40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음이더라 12:41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12:42 그러나 관원 중에도 저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을 인하여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회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12:43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요즈음 시대에서 신앙의 기준을 제대로 잡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흔히 신앙이 좋다, 혹은 훌륭한 신앙인이다, 라는 말들 하는데 그럴 때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신앙이 좋다고 말하는지 따져 봐야 합니다.
교회 열심히 다니고 충성되는 모습을 기준으로 삼습니까? 인격적으로 훌륭한 것이 신앙 좋은 것입니까? 성경에 대해 관심이 많고 신학적인 지식이 풍부한 것이 좋은 신앙입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많은 표적과 기적을 행했지만 의외로 사람들은 예수님을 아니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찾고 있는 믿음의 기준과 사람들이 갖고자 하는 신앙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흔히 사람들이 '누구 누구는 신앙이 좋다'라고 할 때, 정말 예수님이 원하는 그 신앙인지 아니면, 세상에서 서로들 부러워 할 만한 존재라서 훌륭하다고 하는 것인지 잘 분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행하신 표적, 곧 기적이란 예수님 자신을 이 세상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즉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이란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초점이 맞추어져서 발생되는 겁니다. 만약에 인간들이 자신이 소원하는 바가 달성되었기에 기적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이 아니라 마귀가 행한 기적입니다.
정말 제대로 예수님으로부터 기적을 받은 자라면 그 때부터 세상과 세상 영광을 생각하지 않고 예수님과 그의 나라만을 생각하게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기적이란 예수님이 누구신가와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모른다는 것은 현재 생명이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실시하시는 기적이 궁극적으로 자기 백성에게 생명이 되려면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적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안믿으려고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미 인간 내부에 인간을 장악하고 어떤 요소가 있어서 그러합니다.
사람들은 구미에 맞지 않는 것은 극구 저항하려고 합니다. 아무리 메시야로 오시고 하나님으로 오셨다고해도 인간들 마음의 목적과 부합되지 않으면 단호히 거부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43절에 보면,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나름대로 자신의 영광을 노리면서 살아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을 찾고 또 예수님에게 당부하고 요구하는 것에는 그만한 목적이 있기 마련인데 그 목적이 바로 사람의 영광, 세상의 영광입니다.
왜 인간들은 자기 영광, 세상 영광이 우선일가요? 그 원인은 마태복음 4:8에 보면 밝혀집니다.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일부로 예수님과 마귀를 만나도록 주선했습니다.
그런데 마귀 쪽에서 예수님을 회유하려고 내 놓은 카드가 무엇일까요? 바로 세상 영광입니다. 세상 만국의 권세를 쥐고 있는 악마가 인간들의 심령을 다루면서 세상 영광을 미끼로해서 관리하여 왔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 그 어떤 위인도 세상 영광을 마다할 사람은 없습니다.
종교적인 영광이든지, 아니면 인격적으로 존경받는 영광이든지, 그 외의 재력이나 권력이나 그 어떤 것이라도 모두 세상 영광에 다 포함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은 예수님에 의해서만 처음으로 소개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세상 영광에 푹 젖어있는 인간들 앞에서 예수님께서 자기를 드러내는 표적을 보이니, 어느 인간들이 그 표적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자연적으로 거부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인간은 자신의 영광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면 마귀적 본성이 발휘되면서 사력을 다하여 저지하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어떤 일이나 말씀을 전해도 인간 마음 속에 있는 세상적인 기준이 발동하면서 과연 자기 영광에 보탬이 안된다고 여기면 얼굴을 돌리게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은 인간 세상의 이러한 형편을 모르는채 메시야를 보냈단 말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냉정하게도 하나님 자신의 말씀만 성취되면 그것으로 완전한 상태입니다. 만약에 거기에다 더 보태어 인간의 뜻까지 고려한다면 이는 도리어 말씀 자체에 위배되는 사태가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38절에 보면,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가로되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이 사람들의 야망이나 소원을 들어주는 식의 기적이 아니라 도리어 사람들이 도저히 예수님을 믿고자해도 믿지 못하는 방향으로 기적이나 표적을 행했다는 겁니다.
자... 여러분, 방금 이 말씀 자체를 누가 믿을 수 있습니까? 우리네 상식은 흔히 이렇습니다. 즉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신다. 따라서 한 영혼이라도 그 좋은 나라 천국에 들여보내시려고 그토록 애를 쓰신다. 그래서 될 수 있는대로 누구든지 납득이 되는 방향으로 일하시고 그들의 소원까지 아낌없이 들어주시려고 온갖 기적을 행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도 방식이다.
자... 여러분 이런 좋으신 하나님을 믿으십니까?"라는 식으로 해석이 됩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을 믿게 되면 이것은 지옥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참 하나님은 우리네 상식적인 전도를 행하시는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전도 하시는 겁니까?
오늘 본문 39절-41절에 나와 있습니다. "저희가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까닭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음이더라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즉 하나님이나 예수님에게 있어 전도란, 예언자에게 예언된 그 말씀대로만 되면 그것으로 족하고 인간에게 줄 더 추가적인 사랑이라든지 혜택은 아예 없습니다. 이미 악마에 장악되어 있는 인간들에게는, 신이라든지 메시야라는 존재는 그저 인간 영광을 위하여 봉사하고 소원이나 충족하면 훌륭하게 평가할 것입니다.
그런데 참 하나님은 이런 인간성을 도저히 용납하지 않는 것으로 자신의 사랑의 속성을 드러내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시고 일하게 하신 것은, 소위 인간 자신들의 능력과 보는 것과 듣는 것으로서 구원이 되고자 하는 모든 시도를 정죄하기 위함입니다.
왜 정죄되어야 합니까? 그것은 그들의 구원 활동 속에는 인간 영광을 달성하려는 노림수가 간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유대인들도 혹은 이방 종교인들은 입만 띠면, "하나님 영광, 하나님 영광"을 노래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원하는 것은 딴게 아니라 "너희들이 나 예수를 제대로 아느냐?"하는 겁니다. 예수님의 표적인 예수님의 수난, 즉 십자가 죽으심에 초점이 모아져 있습니다. 참 하나님은 영광이란 그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저 편에 있습니다.
따라서 정말 예수님의 영을 받은 사람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게 됩니다. "하나님, 저에게 그 어떤 수난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저는 예수님의 나라와 그의 의만을 사랑하렵니다"라고 말입니다.
로마서 8:17-18에도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또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하셨습니다. "너희들이 내 잔을 마실 수 있느냐?" 사실 이런 말씀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고 도리어 배척하는 것이 본래의 심성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영이 임하게 되면 이런 고백이 놀라운 기적으로 튀어나오게 됩니다.
오직 이것이 큰 기적이기에 오늘 본문 38절에도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즉 누구나 다 함부로 믿을 수 있는 것이 메시야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메시야가 친히 베푸는 기적적인 능력이 임하지 않고서는 감히 예수님을 믿을 수 없는 겁니다. 여러분, 무엇이 참 믿음이며, 무엇이 구원받은 자입니까? 그것은 세상 영광을 과감히 포기한 사람입니다. 마치 스데반 집사님처럼 말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믿음의 원칙에 대해서 혼동하지 않게 해주옵소서. 상식적인 원칙을 버리고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그 내용대로 이루어짐을 믿는 신앙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신약 설교, 강의(이근호) > 요한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요한복음 13:1-10 / 끝까지 사랑 (0) | 2013.12.28 |
|---|---|
| 요한복음 12:44-50 / 심판과 구원 (0) | 2013.12.28 |
| 요한복음 12:34-36 / 빛과 어두움 (0) | 2013.12.28 |
| 요한복음 12:27-33 / 예수님의 기도 (0) | 2013.12.28 |
| 요한복음 12:20-26 / 사랑의 열매 (한 알의 밀알) (0) | 2013.12.2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