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요한복음 12:34-36 / 빛과 어두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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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빛과 어두움 2002년 9월 25일 본문 말씀: 요한복음 12:34-36
12:34 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 12:35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 12:36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사람들은 이 사회를 인간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 졌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이 사회의 어느 구석이라도 사람의 손이 안닿은 곳이 없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결국 사람의 손과 머리로 만들어낸다고 보고 있습니다.
사회는 온통 인간들만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이 사회가 잘 되기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들이 잘 행동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여기서 잘 행동하는 자와 잘못 행동하는 자와 구분됩니다. 잘못 행동하는 사람은 사회의 발전에 저해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사회의 발전이 되려면 잘 행동하는 사람을 본받아야 된다고 가르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세요. 예수님은 세상을 달리 구분합니다. 빛과 어두움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그 빛은 오직 예수님 뿐이며 예수님 이 외의 모든 것은 다 어두움입니다. 과연 이러한 구분을 이 세상 사람들이 받아들이겠습니까? 예수님쪽에서 인간 사회의 구조를 인정치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들 역시 예수님세상 구조를 거부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받아드린다면 지금까지 인간들 사회에 구분 짓는 인간들 끼리의 구별은 다 소용없는 것이 됩니다. 과연 인간들이 스스로 자기 가치 체계를 부술 용의가 있을까요? 없습니다. 없기 때문에 인간 사회는 더욱 더 어두움으로 드러날 뿐입니다.
인간들만의 사회 구조는 더 이상 외부에서 들어오는 새로운 구조를 배격합니다. 인정치 않습니다. 만약 외부의 구조가 들어오게 되면 지금까지의 인간 구조는 다 악한 것으로 취급받게 됩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전력을 다하여 외부에서 들어오는 구조를 거부하게 됩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과 인간만으로 만들어내는 교회이기를 원합니다. 즉 더 열심있는 교인과 나태한 교인으로 구분지어, 나태한 교인들로 하여금 교회 발전에 의하여 열심있는 교인들을 본받으라고 부축입니다.
그래서 얻어지는 결과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오로지 인간들만의 이룩해 낸 인간들의 교회라는 자부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교회에 들어오게 되면, 예수님의 구조 속 분류는 다음과 같습니다. 즉 우리 모두는 어두움이며 빛은 오직 예수님 뿐이다고 믿는 부류와 그렇지 않고 교인들 끼리 격차가 있다고 믿는 부류로 나누어집니다.
예수님만이 빛이라고 믿는 교인들은 정말 빛의 자녀인 반면에 인간들 끼리라도 차이난다고 여기는 자들은 여전히 어두움의 자식들입니다. 따라서 이렇게 되면 교회는 인간과 인간들의 노력과 무관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교회 부흥과 교회 커짐을 염원하는 자들은 극구 예수님이 교회 안에서 개입하는 것을 저지하게 될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그저 바깥에 머물면서 우리 인간들을 도와주시기만 하시고 실제적인 모든 일은 우리 인간들의 몫으로 남겨 달라고 그들은 요구하게 됩니다. 그들이 믿는 것은 예수님이 빛이라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도움으로 우리 인간들이 빛이 되는데 있습니다.
즉 예수님만이 빛이라는 것은 결코 그 자체로서 완성이 아니라는 주장을 이들은 하게 됩니다. 실제적으로 빛의 능력을 받아야 비로소 하나님의 교회가 된다고 이들은 믿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향하고 예수님만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힘을 빌려와서 자신의 행함으로 교회를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과연 이것이 예수님을 통해서 개입되는 새로운 세상 구조에 적합한 것일까요? 요한복음 3:19-2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즉 하나님 보시기에 정죄받을 일은 딴 게 아니라 빛 되시는 예수님보다 여전히 자기 행위에 미련을 두고 사는 자들의 태도입니다. 이들은 빛 그 자체를 따라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저 자기 행위에 집착을 두고 살려는 사람입니다.
자기 행위를 고수하는 자는 결국 빛을 미워하게 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21절에 보면 그 이유가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즉 진정 하나님이 작용하는 사람은 항상 오로지 빛만 추구하게 되는데 이런 행위는 그 사람의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께서 벌리시는 행위로 말미암은 결과입니다. 달리 말씀드려서, 자기 행위를 주장하는 사람치고 정말 하나님에 의해 행동으로 사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개입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빛 되시는 예수님만 내세우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만이 빛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구조로 가지고 세상 구조와 비교해 보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 만큼의 인간과 인간들 끼리의 경쟁이나 비교는 애초에 용납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되었든 무조건 어두움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5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왜 빛을 깨닫지 못하는 겁니까? 그것은 어두움 자체적인 속성으로 인해 빛을 철저하게 미워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세상에서 일하는 것은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을 흔히 사람들은 생명, 혹은 목숨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생명일까요? 아닙니다. 생명은 따로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에 보면,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생명은 말씀되시는 예수님입니다.
빛이 생명이라면 그렇다면 어두움은 무엇입니까? 어두움은 죽음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들이 살아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죽음에 묶여있는 목숨에 지나지 않습니다. 애쓰면서 살아보려고 행동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은 그만큼 죽음이 늘 자신의 영혼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죽음이 두려워서 일해야하고 일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기에 믿을 것은 자신의 행함 뿐입니다. 이러한 구조 자체가 곧 어두움이 지배하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른 구조로 된 세계를 몰고 왔습니다. 그분이 곧 생명의 빛입니다.
그 외의 다른 목숨이나 생명은 다 어두움 세계에서 통하는 가련한 죽음의 흔적일 뿐입니다. 산다고 하나 실은 죽은 자들입니다. 이 죽은 자들은 얼마나 철저하게 죽었는지 세상에 빛 되신 분조차도 미워하고 접근을 불허합니다.
교회 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가졌다고 여기는 순간부터 신앙 생활은 이제 막을 내린 것과 다름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앞으로 무슨 행동을 하든 직분이 주는 자존심 때문에 다른 이와 차이를 두려고 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빛되시는 분만 자랑하고 그 분이 최고다고 내세우면 될 터인데 그렇지 않고 직분 가진 자기와 그 직분을 가지지 않는 타인이 구분지우려고 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어두운 세계의 구조를 재탕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모두다 어두움이다는 것을 도저히 인정 못하게 되는 겁니다. 마지막 심판에서는 교회별로 단체로 구원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개개인의 가진 직분이나 능력 차이로 구원되고 말고가 아닙니다. 오로지 예수님만이 빛이며 그 외는 모두가 어두움이며 죽음인 것을 인정하는 자만이 구원받습니다.
이것만이 예수님이 개입한 참된 교회입니다. 여기서 요한복음 12:46를 한 번 봅시다.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예수님의 생각은 오직 하나 뿐입니다. 나 외의 세계는 오직 어두움그 자체인 줄을 철저하게 아느냐 하는 겁니다.
얼마나 간단한 물음입니까! 교회는 교인들의 능력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예수님만 내세우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행하심으로 존재할 뿐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간단한 하늘 나라의 구조 밑에서 우리는 왜 복잡하게 생각하며 살아갑니까? 모두다 욕심과 무지의 결과이니 이제부터 인간들의 보는 사회 구조를 버리고 예수님이 제시한 세상 구조를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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