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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요한복음 11:1-11 / 영광을 위한 죽음 본문

신약 설교, 강의(이근호)/요한복음

요한복음 11:1-11 / 영광을 위한 죽음

정인순 2013. 12. 28. 21:04

이근호

http://media.woorich.net/~woorich/성경강해/요한복음-2001/john02071053.mp3

 

 

영광을 위한 죽음

2002년 7월 10일

본문 말씀 : 요한복음 11:1-11

 

11:1 어떤 병든 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촌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11: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기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러라

11: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11:4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11: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11: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11:7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11:8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11: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 두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11:10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고로 실족하느니라

11: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인간은 원래의 인간이 어떤 모습인지를 알 수 있을까요? 어릴 때, 돌 때의 자기 모습이 본래의 인간이 아닙니다. 창세 때에 하나님께서 어떤 취지로 인간을 만들었는가 하는 것이 원래의 인간입니다.

 

그 내용은 잠언이나 전도서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거기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것을 어느 교육 기관에서 가르쳐 줍니까? 설사 가르친다고해도 인기 없습니다. '지식의 근본'이다는 말은, 사람다움의 기본 요건을 두고 말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기 위해서 여호와께서는 사람을 지어놓았습니다. 처음 인간상은 항상 하나님의 마음 속에 들어있는 바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생각은 안중에 없고 그저 남들은 어디를 향하여 달려가는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관심을 두고 삽니다. 사람들이 신을 찾을 때는 다급할 때 찾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근본을 바로 알기 위해 하나님을 스스로 찾지는 않고 있습니다. 목사보고 심방이나 상담을 의뢰할 때는 자신의 근본을 바로 알고 그대로 살기 위해 찾는 것이 아니라 세상적인 괴로움을 덜기 위해서 찾는 경향이 많습니다.

 

사람이란 정신적인 압박감에도 몹시 괴로워합니다. 누가 옆에서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데도 단지 기분이 우울하다는 이유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이런 경우입니다. 속상한 것, 기분 나쁜 것,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러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못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못돌려서 속이 상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몰라서 화가 치밀어 오릅니까? 대부분은 이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야심과 욕심이 신속히 안 이루어지는 것 때문에 속상하고 화내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인간의 근본과 거리가 먼 행동들입니까!

 

점 칠 생각이나 사주, 관상 봐서 위로 받을 생각하지 말고 잠언이나 전도서나 성경을 봐서 정말 '나'라는 존재는 어떤 취지로 만들어졌는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나사로 집안에 우환이 덮쳤습니다. 그런데 특히 이 가정은 예수님이 지극히 사랑해 주었던 가정이요 또한 그 세 식구도 모두 예수님을 지극히 섬겼던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왜 난데없이 병마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겁니까?

 

오빠가 시들시들 죽어가서 자매는 사람을 예수님을 보내어 이 위급한 사태를 알립니다. 왜 전갈을 보내는 겁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예수님을 찾습니까 아니면 자신의 근본을 알기 위해 찾았습니까? 이것도 저것도 아닙니다. 단지 심각한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에 이 시태를 해결해보고자 예수님에게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기 자녀들에게 난데없는 위기를 조성하십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인간이란 자기 자신의 근본에서 무관심 한채 하나님에 대해서, 주님에 대해서 잘 아는 것처럼 교제를 나누기 일 수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일부러 나사로 가정에 병을 주신 것은 오로지 아들이신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째서 나사로 가정, 그것도 누구보다 더 사랑하는 가정에 병을 내리시는 것이 예수님에게 영광이 될까요?

 

4절에 보면, '이 병을 죽을 병이 아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도 이틀을 더 지체해서 나사로가 완전히 죽고 난 연후에 나사로 가정을 방문하게 됩니다. 과연 이래도 나사로의 병이 죽을 병이 아닙니까?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의 취지를 제대로 파악해야 합니다. 9-10절에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의미 있는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 두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고로 실족하느니라"

 

자,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을 빛, 그것도 12시 대낮의 빛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들은 무엇입니까?바로 어두움에 속해 있는 존재들입니다. 이것은 제자들이나 유대인들이나, 그리고 나사로 가정이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인간들은 자신들이 실패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자신들이 빛이 아니라 어두움이면서도 계속해서 그것을 마치 정상적인 인간 본래의 삶인 양 고수하고자 합니다. 지옥갈 인간들 같으면 하나님께서 그냥 그대로 내 버려둡니다.

 

그러나 나사로나 제자들은 그런 대상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본래의 인간들로 되돌아 설 자들입니다. 따라서 인간들이 보기에 당연히 실패요 파멸이라고 간주되는 사태를 의도적으로 일으키신 겁니다.

 

인간들은 본래의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데 관심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 생각에 이 세상 삶에서 별 탈이 없으면 그것으로 성공적 일생을 보냈다고 여기는 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 만큼은 이런 착각에서 빼내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이 크신 사랑입니다. 사람이 실패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의 근본 쪽으로 근접해 들어가는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 금식 끝에 험한 시험에 시달리는 이유를 말입니다. 누가, 어느 인간이 그런 낮은 선까지 자신을 던져 넣겠습니까? 성령에서도 의도적으로 예수님으로 하여금 마귀에게 험한 시험을 받게 하신 것은 인간들의 현 모습을 적나라하게 말씀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말고 어느 인간이 떡을 이기며, 명예 욕을 당해 낼 것이며, 세상 권세를 마다 하겠습니까? 사람들은 마귀가 던져주는 그런 것을 받아 챙기면서 성공적인 삶이라고 위로받았으며 반대로 그것들이 없을 때는 자살 충동까지 가지면서 자기 인생을 실패작이라고 낙담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의 근본 취지를 망각한데서 비롯된 결과입니다.

 

누구보다도 이 점을 잘 알고 계시는 예수님이시기에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나사로의 병을 죽을 병이 아니라고 미리 단언하신 것입니다. 그 때 제자들은 너 나 할 것없이 오해했습니다. "아, 나사로는 병으로 인해 죽는 지경까지는 안가겠구나"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나사로가 그대로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죽을 병은 아님'에 대해서 오해한 것입니다. 그 오해가 곧 어두움에 속했기에 나온 발상의 산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자기 백성은 근본적으로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 취지로 완전히 바뀌어져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창조력은, 없는데서 있게 하시고 죽은데서도 살리시는 겁니다. 어두움의 인간 세계가 아니라 빛의 세계에서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병에 걸린 것이 실패가 아닙니다. 마태복음 4:24에 보면, 예수님은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외쳤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이 세상에 나타나신 취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어두움에 속해 있기에 평소에 어두움에 속한 그대로의 속성을 가지고 자기 목숨을 살리고 병을 고치는데 예수님의 솜씨를 이용해서 덕을 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 백성만큼은 근본에서 새로 시작하시려고 합니다. 분명히 죽을 병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실제로는 죽이신 것입니다.

 

그래야 어두움에 속한 삶의 법칙과 빛에 속한 법칙이 확연히 다름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로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겁니다. 제자들은 어두움의 힘을 두려워했습니다. 조금전까지 유대 지방에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돌로 쳐 죽이려고 덤벼든 것을 기억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창조주 그 분입니다. 그런 어두움이 짙으면 짙을수록 빛이 빛 됨을 더욱 빛나게 됩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느낍니까?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일부러 큰 낭패처럼 보이는 일을 일으키시는 것은 어두움의 깊은 자리에서 제대로 그 인간들을 근본대로 새로 창조하기 위함입니다.

 

그 창조의 힘은 오직 예수님에 의해서만 주어집니다. 이럴 때 그 자녀로 인해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을 받으시는 겁니다. 이것말로 더 큰 성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성도로 하여금, 예수님보다 더 고귀한 것은 없음을 가르치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일관된 구원 작업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의 뜻대로 잘 안된다고 수시로 하나님께 짜증을 부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에게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영광에 있음을 우리로 깨닫게 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