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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요한복음 10:26-29 / 예수님의 양 / 2008년 5월 11일 본문

신약 설교, 강의(이근호)/요한복음

요한복음 10:26-29 / 예수님의 양 / 2008년 5월 11일

정인순 2013. 12. 28. 13:59

 

 

본문 : 요한복음 10장26-29절
제목 : 예수님의 양
듣기 : 음성 , 보기 : 동영상

 

예수님의 양
2008년 5월 11일                       

이근호

 

본문 말씀: 요한복음 10:26-29

(요 10:26)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요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요 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 10:29)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이웃에 새로 이사온 사람을 내가 알듯이 아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존재를 인정한다든지, 예수님이 실제로 그런 일을 행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입에서 나오는 약속의 말씀을 여기 있는 내가 인정하는 것이 믿는 것입니다.

즉 오늘날 여기 앉아있는 우리 자신들과 예수님과 실제로 무슨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라는 분을 묘사하듯이 이야기하듯이 할 수는 없습니다. 그 분의 키가 몇 센티며 허우대가 멀쩡하다는 것을 아무리 정밀하게 묘사해도 그것을 가지고 그 분을 믿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 분이 말씀하신 그 세계로 인하여 이미 우리 세계가 덮침을 입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말씀대로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음을 즐겁고 흥겨운 마음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더 쉽게 말해서 ‘예수님께서 일하심으로 인하여 나는 가볍다’라는 마음이 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믿는 분위기입니다.

자 이제 그 분의 입을 통해서 어떤 약속의 말씀이 나오는지를 봅시다. 첫째, ‘나는 너희에게 영생을 준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겠다는 겁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영생을 준 적이 없는 인간은 현재 영원한 멸망 상태에 그냥 놓여 있다는 뜻입니다. 달리 말씀드려서, 예수님께서 영생을 주시지 않는다면 그 어떤 인간도 영생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영생을 주실 때만 비로소 영생이 발생된다는 말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거기에 두 사람이 나옵니다. 한 사람은 부자요 다른 한 사람은 거지입니다.  그런데 부자도 죽고 거지도 죽었습니다. 죽은 이후에 부자가 말하는 자신의 신세 한탄을 들어옵니다. 그 부자는 지옥불에 들어앉아서 비로소 자기 인생은 자신이 결정하?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자기보다 먼저 계신 분에 의해서 자신의 인생을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즉 부자는 지옥불에 사는 것이 결코 자기 취향도 아니고 취미도 아니었습니다. 부자의 취미는 날마다 열락하고 파티를 여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자기가 원하지도 않는 자리에서 영원한 고정되어 버린 운명을 떠안게 되었습니다.

본인이 원하지도 않았고 본인이 요청하지도 않는 영원한 삶을 떠안게 되었습니다. 그가 지옥에 가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은, 이 세상이 자기 마음대로 되는 세상이 아니라 거지를 저 천국에 보내시는 그 분이 바로 자신을 지옥에 보내었다는 겁니다. 동일한 분이 저지른 서로 다른 결과물을 거지와 부자는 각자 받게 되었습니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말입니다.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을 부여받은 겁니다. 변동이 안됩니다. 이처럼 미래라는 것이 우리 인간 손으로 이루어질 일이라면 그 미래가 현재가 되었어도 부지런하면 또 다른 현재로 변동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애초부터 인간의 운명이란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영생 주시지 아니하면 지옥을 가야만 하는 운명이었던 것입니다.

부자는 아직 죽지 않고 이생에 살고 있는 동생 다섯 명을 걱정했습니다. 자신이 이미 포기해 버린 상태에서 말입니다. 동생들만큼은 자신이 살고 있는 이곳 지옥으로 오지 말라고 나사로를 자기 대신 보내어 주십사하고 아브라함에게 부탁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말은 냉정합니다. 우리가 지금 펼치고 있는 이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비록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 그들에게 가도 결과는 마찬가지라고 하십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우리의 이해여부를 넘어서서 이 말씀 자체가 믿는 능력까지 제공될 수 있음을 뜻합니다. 물론 영생받기로 작정된 자에게만 해당됩니다. 이 영생받기로 작정된 자를 오늘 본문에서는 ‘내 양’이라고 합니다. 즉 예수님의 양입니다. 양은 목자를 알아보고, 목자는 양을 알아봅니다.

어떤 내용으로 상호 알아보는 겁니까? 양은, 목자가 자신에게 영생을 준다는 사실을 압니다. 이것이 첫 번째 약속이라고 미리 말씀드렸습니다. 두 번째 약속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미 주신 영생을 뺐을 자는 아무도 없다는 겁니다. 심지어 우리 자신도 우리 속에 들어온 예수님의 영생이 없어지게 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얼까요? 제가 싶게 열차 비유를 들겠습니다. 열차는 앞장서서 달리는 기관차 부분과 뒤에 쭉 이어져 붙어있는 객차로 되어있습니다. 이 객차는 앞에 기관차가 인도하는 대로 그냥 끌려갈 뿐입니다. 만약에 KTX의 18번째 차량에 우리가 앉아있다고 칩시다. 그러면 기관차가 코너를 돌 때, 그 방향이 틀어지는 것이 창문너머 보이게 됩니다.

앞에 있는 기관차가 방향을 틀고 앞서 나갈 때, 그것을 마냥 부러워할 일만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무리 멀리 기관차와 멀리 떨어진 객차에 앉아있더라도 같이 연결된 마당에 기관차가 방향 틀은 그 쪽으로 가게 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준 영생은 이 세상의 그 어떤 피조물도 뺐을 수 없는 영생을 주었노라”고 말입니다.

심지어 우리 자신도 우리 속에 들어있는 영생을 뺐을 수가 없습니다. 열차 손님이 무슨 장비가 있어서 앞에 있는 기관차와 객차의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단 말입니까.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그것을 끊을 재주도 없고 능력도 우리에게 없습니다. 이 사실을 믿어야 제대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끝머리 객차에 앉아있는 우리가 속에 부글부글 끊는 시기와 질투와 미움을 품고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만약에 뚜껑으로 덮었다고 한다면 그 뚜껑을 한 번 열고 들여다 보세요. 마치 뱀 열 마리 이상이 뙤아리를 틀고 앉아 있는 것처럼 온갖 더러움을 가득차 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12: 44-45에 보면,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힘으로 이 뱀과 괴물들을 처단시킬 수가 없습니다. 소제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영생은 이점을 고려해서 들어오셔서 악마가 무서워 물러나시는 법도 없고 자진철수하는 법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직접 넣어주시는 영생입니다. 이 사실을 아무리 믿고자 해도 목자의 음성을 안 듣고자 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 또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양이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 창세 전에 예정된 자만이 목사의 음성을 인정하는 그 양입니다.

이로서 우리는 세상 일로 근심하지 맙시다. 객차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기관차는 벌써 영생의 나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들 속에 예수님의 약속이 들어왔고 또한 그 약속을 믿을 수 있는 능력까지 있음을 감사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