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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요 10:11-18 / 목자와 죽음 본문

신약 설교, 강의(이근호)/요한복음

요 10:11-18 / 목자와 죽음

정인순 2013. 12. 28. 13:57

이근호

http://media.woorich.net/~woorich/성경강해/요한복음-2001/john02061950.mp3

 

 

목자와 죽음

 

2002년 6월 19일 50강

 

본문 말씀 : 요 10:11-18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군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우리는 예수님이 어떤 본심을 지니시고 이 말씀을 하고 있느냐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과 같은 심정이어야 하고 동감해야 합니다. 예수님 인생 따로, 나의 인생 따로 놀면 안됩니다. 그러면 목자와 양 관계가 아닙니다. 양이라면 목자가 어떤 취지에서 이와 같은 말씀을 남기시는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은 이것 입니다. 예수님이 알고 계시는 양은 따로 있다는 겁니다. 즉 스스로 하나님의 양이 되고자 한다고 해서 양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양이라고 규정하시며 내미시는 그 양의 기준에 합치되어야만 참된 구원받을 양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시편 23편에 나오는 목자와 양에 관한 이야기를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목자로 나서시고, 자신들은 그 여호와의 양이 되는 관계에 놓여 있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말씀에도 양과 목자의 관계가 자주 등장됩니다. 예수님께서 양 이야기를 Rm집어 내시는 것이 이 세상에 분명히 구원받을 양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모든 자가 다 예수님을 버렸다는 불신앙의 세계처럼 보일 지라도 그런 와중에서도 양과 목자의 관계가 형성시켜줄 만큼 양이라는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16절,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만약 복권 당첨 될 해당자가 아예 없다고 한다면 누가 무슨 낙으로 복권을 사려고 할 것입니까?

 

마찬가지로 가끔 우리들은 이런 의심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참으로 구원받을 자가 있는가? 괜히 구원받았다고 주장하며 돌아다니는 과대망상 증세를 보이는 자들의 일방적 주장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하고 말입니다. 정말 구원도 없고 양이라는 것도 없다면 예수님이 스스로 목자라는 주장이 허풍에 불과하고 복음 -구원이라는 원칙도 해프닝으로 끝날 것입니다.

 

만약 정말 양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 전부를 잃는 한이 있더라도 이 양의 신분을 놓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양이란 돈 많이 벌어서 그 돈 주고 살 거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천하 최고의 복권 당첨금보다 더 큰 선물을 받은 자가 되는것입니다.

 

자... 과연 구원받을 양이 확실히 있다면 그 양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나는가가 궁금할 것입니다. 14-15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이 말씀을 보면, 양과 목자의 관계에 대해서 예수님은 놀랍게도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의 관계로 설명하고 계십니다. 즉 목자와 양의 관계가 얼마나 강하고 확실한지 마치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의 관계와 같다는 겁니다. 우리는 이 관계를 좀 더 살펴봐야 합니다.

 

예수님이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싶어서 성자 하나님의 자리에 차지하게 된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성자 하나님과의 사이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부 하나님와 성자 하나님은 마땅히 그런 관계에 놓여 있어야 하는 사이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목자와 양의 관계로 그러합니다. 양의 구원 욕구나 요구에 의해서 목자 되시는 분이 동원된 것이 아닙니다. 양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목자 되시는 분의 일방적 관계 설정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마치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의 관계와 같습니다.

 

따라서 양이 된 쪽에서 목자를 임의로 고르다든지 또 더 나아가서 자기가 선택한 목자를 스스로 거부하는 그 어떤 권한이나 경우도 생겨날 수 없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를 거부 안하는 경우와 마찬가지입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의 관계가 인간들의 뜻한바와 전혀 무관하게 이미 성립되어 있는 것처럼 양과 목자의 관계도 이와같습니다.

 

그 어느 세력이나 힘도 이 목자와 양의 사이를 틀어지게 하지 못합니다. 마치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사이에 어떤 세력이 들어가서 그 관계가 깨어지게 할 수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과연 목자되시는 예수님의 양이 된 채 예수님과 관계 맺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여러분 정말 부럽지 않습니까? 우리 자신들이 그 목자의 그 양이 된다면 더 이상 이 세상에서 뭘 더 추가적으로 얻어질 것에 눈독을 돌리려 하겠습니까. 정말 우리들 자신이 하나님의 양만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도 없고 부러울 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참된 목자와 참된 양 사이의 관계를 눈 여겨봐야 합니다. 먼저 요한복음 1:47-49에 나오는 이야기부터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본문 말씀은 찾아보면 이렇습니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이 대목에 보면,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보고 하시는 말씀이, "너는 참 이스라엘이다. 너에게 간사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과연 나다나엘의 마음 속에 무엇이 들어 있고 무엇을 지향했습니까? 그는 세상적인 부귀 영화를 사모했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이 무화과 나무 아래 있는 것과 그 마음속을 다 읽고 있었습니다. 즉 나다나엘은 참 이스라엘 됨을 사모하고 있었고 거기에 온통 관심을 두고 살아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란 출애굽기 4장에 보면, 하나님의 장자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하나님의 가족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황공스러운 신분입니까!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교회 내에서는 이런 나다나엘이 얻은 이 이스라엘, 즉 하나님의 아들됨의 신분을 그토록 관심두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기껏 한국 축구팀이 한 골 더 넣어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시편 23편에 나오는 내용처럼 참된 목자가 오셔서 자신들이 참된 양이 되는 것을 목숨걸고 소망하지 않습니다. 그저 목자가 오셔서 자기가 지상에서 벌리는 사업이나 번성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과연 참된 목자가 되시는 예수님이 제시한 양의 기준이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 17절에 보니, "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참된 양이라면 목자가 어떤 분인지를 압니다. 마치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확실하게 아시고, 성자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을 확실하게 알 듯이 말입니다. 참된 목자는 오직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시는 바로 그 분입니다.

 

쉽게 예를 들자면, 동대구역 광장에 어떤 한 사람이 피켓을 들고 있는데 그 피켓에 쓴 내용을 보니, "나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노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숱하게 많은 사람들이 그 피켓의 내용을 보고서는 그냥 무관심하고 지나쳐버립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위해서는 목자의 희생 뿐임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 피켓을 보고 반가움에 그 분과 재회할 것입니다.

 

이런 자만이 진정 그 목자가 찾은 그 양입니다. 마치 나다나엘처럼 마음 속에 간사함이 없는 참 이스라엘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예수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양이라는 그 신분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하고 영광스러운 것인가를 우리는 통감해야 합니다. 천하를 다 얻은 것 보다 더 귀한 것이 목자와의 관계성입니다.

 

아무나 양이 되는 겁니까? 목자를 못알아보는 자는 지옥가라고 하나님께서 일부러 창조해 낸 존재들이기 때문에 너무 그들의 인생 자체에 깊이 관여하려고 하지 마세요. 하지만 양이 되기 위해 창조된 자는 세상적인 축복관으로 목자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십자가의 죽으신 것만으로 참된 목자임을 알아보게 될 것입니다.

 

다른 방식은 없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지정해 주신 양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으신다면 우리는 오로지 십자가만 증거해야 합니다. 혹시 압니까? 목자가 든 피켓을 이해할 양이 어디서 나타날지 말입니다.

 

기도합시다.『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목자를 이용하려고 하지 말고 목자가 어떤 모습으로 그리고 어떤 말씀으로만 오시는지만 주목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