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요 9:1-7 / 소경과 어두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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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소경과 어두움
2002년 5월 8일 44강
본문 말씀 : 요 9:1-7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지난 시간에는 죽음에 대해서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내 말을 지키는 자는 죽음을 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왜 유대인들은 이런 예수님의 이야기를 안 믿는 것입니까? 그것은 자기 자신의 근본을 모르는 상태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엇인가 하고 싶다"든지, "내가 무엇인가 되고 싶다"라는 것들은 쉽사리 생각하면서 과연 내가 어떤 자인지,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는지는 모르고 있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제자들 자기 입장에서 나온 생각이 또 예수님으로부터 공박을 당합니다. 이는 자기 자신이 누군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나오는 생각이기에 예수님의 마음과 같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심하게 나무래고 싶은 분이 과연 우리들 가운데 있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제자들의 발언이 흔히 오늘날 우리들이 무심코 내뱉는 일상적인 버릇과 똑같은 것은 아닙니까?
직접 그들의 말을 들어 봅시다. 2절에 보면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떤 소경을 길을 가고 있으니 제자들은 저 소경의 불행한 운명이 무슨 죄 때문에 주어졌는지를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즉 자신들은 자신들이 제대로 알고 있다는 겁니다. 자신들은 소경이 될 만큼의 죄가 없는 것이 분명하다는 겁니다. 자, 이러한 제자들의 잘못을 예수님은 어떤 식으로 지적하십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런 발언을 하는 것은 여전히 어두움에 처해 있기에 나온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즉 어두움이란 인간이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인간이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는 환경이 됩니다. 마치 밤을 인간이 임의로 조성할 수 없듯이 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본인들도 어쩔 수 없는 환경에 이미 놓여 있음을 알려주는 방법으로 낮과 밤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즉 "너희들의 그런 생각은 밤이기에 결국 나올 수 밖에 없는 생각이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소경의 개인사에 대해서 물었지만 예수님은 자기 자신은 밤이 아닌 '낮'이라는 답변으로 대신합니다. 이는 제자들이 '밤'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낮이 아니고 밤이니까 그런 잘못된 질문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밤이 어떻게 낮으로 바뀌는지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잘못된 인식으로 놀림감이 되는 그 소경을 부름니다. 그리고 그를 붙들고 어떤 일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것은 '낮이기에 해야 될 일이다'고 하십니다. 과연 제자들이 도저히 짐작도 못할 '낮의 일'이라는 것이 어떤 것입니까?
소경의 눈에다 자신의 침을 뱉아 이겨서 만든 진흙을 발라줍니다. 소경은 의도적으로 자신의 눈을 뜨게 해달라고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일방적으로 불러 나온 것 뿐입니다. 왜 불러나왔을까요?
여전히 어두움에 처해 있는 제자들을 대신해서 불려 나온 것입니다. 왜 예수님만이 밤이 아니고 낮일 수 밖에 없는 가를 말해주고자 하는 겁니다.
우리는 십계명을 들여다 보면서 흔히 빠지기 쉬운 과오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뭔고 하니, 예수를 잘 믿게 되면 십계명에 담겨 있는 계명을 서서히 지킬 수 있는 능력자로 출발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 십상입니다.
즉 "이 정도로 오래 예수 믿었으니 이제부터 슬슬 십계명을 못지켰다는 비난을 듣지 않을 정도의 사람으로 서서히 변모되어 죄인의 자리에서 벗어날 것이다"라는 오해입니다. 바로 이러한 오해가 여전히 어두움에 속해 있고 밤에 속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인간은 평생, 십계명 하나 제대로 지킬 능력이 없는 자입니다. 늘 십계명의 지적을 온 몸으로 받을 죄인의 위치에 있습니다. 한 발자국도 죄인의 자리에서 벗어난 적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은근히 죄인의 자리에서 의인의 자리로 떠나가고 있는 줄로 여깁니다. 이것이 자기 자신은 기껏 어두움에 속한 존재자에 불과한 것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불러 나온 소경이 훌륭하다든지, 대단하다든지, 하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아니됩니다. 그도 역시 어두움이요 밤입니다. 하지만 빛이 그 소경이라는 어두움을 호출해 내어 자기 앞에 세웠다는 점이 놀라운 일입니다.
과연 낮의 일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님 자신을 두고 말합니다. 즉 어두움이 빛을 아는 것은 순전히 빛이 그에게 빛의 일을 맡겼기 때문이지 어두움이 빛을 좋아해서 자진해서 빛으로 나왔기 때문이 아닙니다.
마치 소경이 자기 눈을 뜨고 싶어서 자진해서 예수님에게 나올 마음이 있어 나오지 않듯이 말입니다. 소경은 단지 자신에게 빛되신 분의 일이 담겨 있을 뿐입니다. 일종의 빛의 심부름 꾼이 되었습니다. 지게꾼이 짐을 부리면서 남이 맡긴 짐을 자기 짐이라고 우기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이 소경은 일종의 짐꾼이요 심부름꾼입니다. 그에게는 빛이 담겨 있고 낮이 담겨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이 발라준 진흙을 짊어진 지게꾼입니다. 그 진흙은 소경이 스스로 바른 것이 아닙니다. 자기 침이 아닙니다. 그는 단지 낮이 누구이며 무엇이 낮의 일인지를 담아야 될 짐꾼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런 심부름꾼이 되는 것이 곧 낮의 일이요 빛의 자녀이고 어둠에 속하지 않는 자입니다. 과연 소경이라는 짐꾼은 빛을 보게 될까요? 예수님은 그를 실로암 못으로 보냅니다. 그 못 이름은, '보냄을 받았다'라는 이름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심부름꾼이라는 말입니다.
그는 빛이 되시는 예수님이 시키시는대로 그 실로암 못에서 눈을 씻고 왔습니다. 소경은, 자기 힘으로 눈을 뜨지 않았습니다. 그런 능력이 본인에게는 없다는 것을 본인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눈이 떴을까요? 그 눈 뜸은 곧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실행에 옮기시는 낮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즉 어두움에 속해 있는 자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빛을 알고 낮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단지 황당스럽게도 졸지에 불러나와 알게 되고 만나게 된 빛에 의해서 그 인간은 구원이 되는 겁니다.
본인의 공로가 아니라 순전히 낮 되신 분의 혼자만의 힘입니다. 소경이 눈을 뜬 것은 빛 되신 분의 심부름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우리 노력으로 빛이 될 수가 없다. 또한 빛이 되려고 해서도 아니됩니다.
마치 소경이 눈을 떠 보겠다는 일념으로 눈에 진흙을 바르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어봐야 소용없습니다. 왜냐하면 빛은 예수님이지 결코 소경이 눈 뜨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제자들이나 우리들이 구원받는 것이 빛이 아니라 빛되시는 분, 곧 예수님의 심부름꾼이 되는 것이 빛의 일이요 낮의 일입니다.
심부름꾼은 자신이 지고 있는 짐을 결코 자기 짐이라고 우기지 않습니다.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 했더니만 하나님께서 내 소원을 들어주셨다"라고 하는 것은 심부름꾼의 자세도 아니요 그런 식으로 예수님이 일을 시키신 적도 없습니다. 심부름 할 짐을 우리 인간쪽에서 임의로 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황당하게도 그리고 난데없이 뽑혀 나와서 그저 빛의 심부름꾼이 될 때 이것이 믿음이요 제자가 된 것이요, 구원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보냄을 받은 자'만이 빛의 자녀입니다. 스스로 자신은 예수님 앞에 보내지 마세요.
그렇게 되면 자기처럼 노력하지 않는 자들을 바라보면서 다음과 같이 흉볼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 저 사람이 지옥가는 것은 자기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부모 죄 때문입니까"라고 말입니다. 이런 자는 여전히 어두움에 속한 자입니다. 스스로 자신을 주님의 심부름꾼으로 자청해 나선다고 빛의 자녀가 아닙니다. 정말 보냄을 입은 자에 국한됩니다.
기도합시다.『하나님 아버지, 난데없이 주님으로부터 불림을 받은 것이 정말 황공하기만 합니다. 우리자신의 소원을 들어주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예수님의 뜻이 우리에게 실려 있음을 우리가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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