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요 8:41-47 / 죄의 종 본문
이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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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종
2002년 4월 24일 42강
본문 말씀 : 요 8:41-47
"너희는 너희 아비의 행사를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한분 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줄 알지 못함이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8:45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매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사람들이 교회 나오게 되면 관심사도 자신의 행동에 집중됩니다.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잘 섬기는지 하나님이 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식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들 보고 하시는 취지와는 거리가 멉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도 그런 내용입니다. 41절에 보면, 유대인들이 주장하기를, 자기들은 한 분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다고 합니다. 즉 자신이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거기에 대해서 예수님의 반응은 정말 투박스럽기 까지 합니다.
흔히 교회의 목사들은 교인들에게 칭찬하는 것에 인색하지 않고 후합니다. 그러니까 교인들은 교회에서 봉사하고 헌금하고 수고하는 것에 보람을 갖게 되지요. 그러나 과연 예수님도 목사님들처럼 칭찬에 후하고 그렇게 친절할까요?
예수님은 칭찬이나 친절이 아니라 진리를 나태내려 오신 분입니다. "너희가 진리가 아느냐?"가 예수님이 하실 수 있는 최고의 친절입니다. 유대인들은 말할 것입니다. "우리는 한 분 하나님을 섬깁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입장에서 봐서 그것은 진리가 아니고 도리어 거짓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거짓의 정의를 원초적으로 밝혀봐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예수님의 말씀과 찾아오심은 인간의 근본을 겨냥하시기 위함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의 근본을 하나님이라고 예수님 앞에서 감히 주장했습니다. 교회 다니고 있는 우리들도 얼핏 그렇게 주장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그것이 진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은 한 통속으로 집어넣어 버립니다. 즉 너희 아버지는 하나님이 아니라 마귀라고 쏘아 붙입니다. 예수님이 어째서 이렇게 자신있게 말씀하실 수 있는 겁니까?
지금 유대인들은 분명 자신의 입으로 한 분 하나님을 섬긴다고 명확하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의 주장을 묵살하고 인정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특히 이들 유대인들은 요한복음 8:30에 보면 예수님을 믿는 다고 나선 유대인들이라는 점을 유념해 보셔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진리나 의라는 것은 신앙인이 된 이후에는 우리 자신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고 믿고 싶어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는 것까지 자신의 성품이나 판단력이나 좋은 자질에의해 달성할 수 있으리라 여깁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 그 사람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마귀에 관한 사항으로 거침없이 적용시켜 버립니다. 과연 예수님에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우리가 마귀라고 했을 때 무엇이 연상됩니까? 예수님은 마귀라는 말씀을 하실 때는 반드시, '거짓' 혹은 '거짓말'의 근본된 자라는 안목으로 보십니다. 따라서 거짓 것을 사랑하고 거짓말을 하는 자들은 이 거짓의 근본인 마귀의 자녀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비록 예수님을 자진해서 믿고자 하여 나온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통계에 의하면 성인들이 하루에 수백번씩 거짓말을 한다고 합니다. 왜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게 될까요? 성경 히브리서 2:14-15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마귀와 인간의 관계가 나옵니다. 마귀는 인간에게 죽음의 공포를 주는 존재이고 인간은 이 죽음이 주는 공포가 족쇄가 되어 평생을 마귀에게 묶인채 살아가는 신세입니다. 따라서 평상시에 흔히 하는 모든 거짓 혹은 거짓말의 밑바탕에는 "어찌되었든 나만이라도 살고 보자"하는 의식이 깔려 있기 때문에 튀어 나오는 겁니다.
여러분 거울을 보세요. 거기에 누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보입니까? 예수님이 보입니까? 보이는 우리들 자신의 몸뚱아리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있어 진리라는 것은 이처럼 우리 몸 하나 간수하는데 진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최종 진리입니다.
오직 그것만이 마지막까지 남겨둔 사랑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그 몸이 불쌍하게도 죽음이라 족쇄에 묶여 마귀가 시키는대로 비진리적으로 즉 거짓의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평생을 다 지나도록 말입니다. 오로지 자기 정당성과 자기 행위의 타당성을 옹호하는 쪽으로 움직입니다. 예수 믿고 새 사람 되었다고 장담하는 가운데서 꼭 이런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만약 어느 목사가 잠버릇이 대단히 나빠서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면 자기와 똑같은 잠버릇이 있는 자에게는 함부로 못합니다. 그냥 못본척 넘어가겠지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왜 인간들이 마귀의 자식인가를 설명합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예수님을 사랑할 줄 모른다는 겁니다.
여러분, 과연 인간이 자신의 몸 말고 다른 몸을 사랑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요? 절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랑이란 양쪽 다를 사랑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한쪽을 미워해야 합니다. 사람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10:37-39 보면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얼마나 우리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지를 잘 압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설교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에게 해 드린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기에 대해서 칭찬을 듬뿍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도리어 이런 자세를 가진 우리의 몸을 향하여 공격합니다. 도리어 미워하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아예 우리의 이 몸과 마음이 마귀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입니다.
사실, 인간은 자신의 행위가 정당화 받기 위하여 온갖 율법을 가지고 동원시키지만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 앞에서 도리어 그런 유대인들을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 둘 씩 다 물러가고 난 뒤에 예수님께서는 사태 파악을 하시면서도 간음한 여인에게 묻습니다. "너를 정죄하는 자가 어디 있느냐?"고 말입니다. 여인을 답변했습니다. "아무도 없나이다" 그렇습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즉 진리도 아무도 없고 마귀의 자녀가 아닌 자도 아무도 없고 의인도 아무도 없습니다.
흔히 "나는 열심히 노력하는대로 불구하고 가끔 실수해서 죄를 지는다"는 의식과 "나에게 의라는 것은 아예 없다"라는 의식은 참으로 엄청나게 틀립니다. 10년 동안을, 100년 동안을 죄 안지었다고 해도 그 다음 해는 누가 장담할 수 있습니까? 즉 그 누구도 늘상 자기를 계속 미워하고 오로지 주님만을 사랑할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 47절에 보니, 하나님께 속한 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즉 인간은 자진해서 자기를 부인하고 미워하고 악마의 굴레에서 벗어나 죽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을 자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한 자에게 있어서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즉 성령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본질을 알게 되는 기적 말입니다. "나는 나 밖에 모르는 죄인입니다"라는 죄의식이 일어나는 기적입니다. 과연 그 어떤 인간이 자진해서 자신을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
성령이 오셔야 오늘 본문과 같은 죄에 대한 나무람이 자신을 향한 나무람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사람이 온 율법을 지켜도 하나를 어기면 다 어긴 것이 됩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이 세상에서 악마의 지배를 받지 않는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평생을 다 가도록 예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기도합시다.『하나님 아버지, 저희 자신의 본심을 바로 지적해 주시고 날마다 주님의 피의 공로만 의지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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