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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요 8:48-59 / 논 쟁 본문

신약 설교, 강의(이근호)/요한복음

요 8:48-59 / 논 쟁

정인순 2013. 12. 28. 13:48

http://media.woorich.net/~woorich/성경강해/요한복음-2001/john02050143.mp3

 

이근호

 

논 쟁

 

2002년 5월 1일 43강

 

본문 말씀 : 요 8:48-59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는 귀신 들린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어늘 너희가 나를 무시하는도다 나는 내 영광을 구치 아니하나 구하고 판단하시는 이가 계시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어니와 내게 영광을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장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하시니 저희가 돌을 들어 치려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

 

 

보통 사람들은 남의 논쟁에는 무관심하게 마련입니다. 그들만의 관심사이기에 제 3자가 관여할 바가 아니라고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과 유대인들이 치열한 논쟁을 주고 받고 있습니다. 과연 오늘날 우리가 이런 논쟁에 대해서 관심를 가지게 될까요? 예수님과 유대인들, 그들만의 논쟁이 아닐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논쟁 안에는 평소에 인간이기에 가질 수 밖에 없는 편견이나 예수님에 대한 오해 같은 것이 다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인이라는 이름으로 무작정 예수님 편에 서 있다고 간주하시면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하시는 그 취지를 모르게 됩니다. 차라리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공격하고 있는 유대인 편에 같이 서 있다고 간주해 보세요. 그럴 경우에만 그들을 심하게 지적하시는 예수님의 의도를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공격하는 이유는, 아무리 봐도 그는 평범한 보통 인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들은 누구나 스스로 자신에 대해서 과장되게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주변의 사람들은 그 사람이 스스로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확인할 만한 증거를 찾게 됩니다. 자기가 주장하는 것과 외부에 나타나는 모든 것이 일치 될 때, 비로소 사람들은 그 사람의 주장을 신임하게 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에 대해 갖는 태도도 이와 같습니다. 유대인들은 철저하게 오직 여호와 한 분만 섬기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 이외의 모든 존재자는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인간의 수준을 따질 때, 그 어떤 인간도 아브라함보다 더 위대한 인간은 없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그들은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즉 저 예수라는 자가 과연 아브라함과 위대한 선지자 급에 속하는 자일까?를 검토해 보겠다는 겁니다.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만 믿고 섬겨야 하는 것이 확고한 그들에게 있어 예수님이 어느 정도 수준에 속한 인물인가를 자기네들이 측정하겠다는 겁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예수가 제발 자신들의 갖고 있는 관점과 같은 관점에서 대화가 되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나 51절에 보면, 예수님은 실로 충격적인 발언을 쏟아 놓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이 논쟁 안에 끼어 들면서 자진해서 예수님 편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이 유대인들을 납작하게 만들어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방금 보았던 51절을 우리가 듣고 보니 과연 우리들조차 계속해서 예수님 편에 서야 될지 말아야 될지 혼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생각해보세요. 과연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습니까? 과연 우리가 현재 이 점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겁니까? 단순히 예수님을 존중해 드리고 편들어 준다고해서 그것이 자동적으로 예수님 편이 되고 참 신앙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 자신이 이 예수님 말씀에 대해서 거부반응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러한 거부 반응이 유대인들의 입에서 나옵니다. 52-53절에 보면, "유대인들이 가로되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성과 위대함은 단순히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을 받들어 모셔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인정해 준 신앙인입니다. 따라서 유대인은 아브라함을 거론하고 나선겁니다. 하나님께서도 인정해 준 신앙인인 그 아브라함도 하나님 잘 믿고도 죽었는데, 어떻게 예수가 뭐길래 자기 말을 지키면 아예 죽지도 않는 존재가 되느냐 이 말입니다.

 

이 논쟁 현장에 우리가 자신들이 끼어 들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이 무조건 옳다고 예수님을 편들었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공격하던 유대인들이 우리들도 공격할 것입니다. 즉 "당신은 무조건 예수님 편을 드는데 그러면 한 가지 물어봅시다. 당신의 스승인 예수라는 자가 방금 말하기를 '내 말을 지키면 아예 안 죽는다'고 했는데 당신은 그 말을 믿습니까?" 하고 말입니다.

 

이 도전은 결코 죽어서 다시 부활 되고 아니 되고를 문제 삼아 시비거는 것이 아니라 과연 아예 죽지도 않는가 하는 점을 시비거는 겁니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하나님이 제대로 신앙인이라고 인정해 준 아브라함조차도 예수님 주장에 의해서 옳지 않는 신앙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벌써 죽었기 때문이죠.

 

바로 이점을 염두에 두고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공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그 양쪽 편 중간에 끼인 우리들로서는 입장이 난처하기 짝이 없을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죽어도 다시 살 수 있다' 정도만 되어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예수님 편들어 줄 것인데 '예수 믿으면 아예 죽지도 않는다'고 예수님이 말씀 하셨기 때문에 계속해서 예수님 편이 되어 예수님을 옹호해야 할지 어떨지 우리 입장도 같이 난처하게 되어 버립니다.

 

바로 이 점을 겨냥해서 예수님은 그 당시 유대인을 향하여 대담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즉 유대인들의 주장은 그 어떤 인간의 마음 속에서도 사실 다 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예수님 편이 되고 싶어도 막상 예수님이 하시는 그 말씀이 도리어 예수를 믿는다는 우리에게도 걸림이 됩니다.

 

따라서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고자 하신다면 유대인의 회의와 불신의 과정을 거쳐와야만 합니다. 어떻게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면 죽지도 않는 사태가 벌어지는 겁니까? 정말 유대인들의 반격처럼 아브라함도 실제로 벌써 죽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의 말씀보다 유대인들의 주장이 더 일리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로서 우리 자신들이 신앙이 얼마나 허술한 것인가가 들통날 판입니다.

 

56절에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참으로 인정받은 신앙인인 아브라함은 예수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했다고 하셨습니다.

 

즉 아브라함이 신앙인이라고 확증받은 것은 현 유대인들이 자부하는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열심히 믿어서 대표적인 신앙인으로 간주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었고 그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그 때를 즐거워했다는 그 점에 있다는 겁니다. 지금 우리는 혹시 예수님의 한 말씀, 한 말씀에 대해서 불안해 하면서 선별해서 기피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마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평가하면서 자기 납득 기준에 맞추어서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우리의 이해도에 납득되는 말씀을 따로 추려서 그런 예수상으로 예수님을 몰아가는 것이 아닙니까?

 

유대인들은 계속해서 예수님에게 현실적 검증을 제공하도록 요구합니다. 57절에 보면, "유대인들이 가로되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 예수님은 더 충격적인 말씀을 던집니다. 58절에 보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요구한 틀은 이런 겁니다. '아브라함은 태어났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죽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천국에 갔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하신 현실의 틀은 이런 겁니다. '아브라함 이전에 내가 있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등장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예수님의 때를 즐거워했다, 그리고 직접 예수님을 보고 기뻐했다'입니다.

 

자, 과연 이 두 가지 틀 중에 어느 틀에 맞추어 살아갑니까? 예를 들면, 어떤 범죄 사건에 사랑하는 가족이 피해를 입었다고 했을 때, 원망의 말을 예수님에게 퍼붓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을 하시면 과연 이래도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시겠습니까?

 

즉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보지 않는다"라는 말을 아직도 믿겠느냐 이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예수님 때를 보고 즐거워했다고 했습니다. 진정한 신앙인의 자세가 그러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선별해서 믿는 그런 식을 가지고 신앙이라고 우겨서는 아니됩니다. 그렇게되면 예수님을 공격하는 유대인들과 우리와 차이점이 뭐가 있습니까?

 

따라서 우리는 이 유대인과의 논쟁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과연 우리가 예수님을 납득해서 믿고자 하지는 않습니까? 진정한 신앙이란 항상 기적의 선물로 다가오는 것임을 다시 한번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제대로 신앙을 가졌다고 자부하지만 어디까지 우리 자신이 관리하는 신앙이 되지 말고 예수님을 더욱 즐거워하게 되는 신앙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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