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요 7:27-29 / 예수님과 성령 본문
이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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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성령
2002년 3월 13일 36강
본문 말씀 : 요 7:27-29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오늘 본문은, 인간 세계에 사는 자에게는 누구나 생소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배에서 강이 흘러 나온다니요? 무슨 말이 이런 말이 다 있습니까? 특히 흘러 나온다는 것은 한번만 쫄쫄 나오다는 마는 정도가 아님을 뜻합니다. 넘치듯이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을 보면서 저는 빠징꼬나 성인 오락 게임을 생각했습니다. 수박 그림 세 개가 같이 나오면 동전이 사태난 것처럼 가슴으로 우루루 터져나오는 것을 영화 같은데서 본 적이 있습니다. 도박을 하는 사람들이 그런 기분을 만끽하면서 돈을 투자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빠징꼬나 도박은 일단 본인이 투자한 댓가나 보상이라는 차원에서 되돌려 받는 거잖아요.
오늘 본문 예수님의 말씀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 인간 쪽에서 아무 것도 한 것도 없이 그냥 주어지는 겁니다. 사실 인간들이 공짜를 좋아할 것 같지만 너무 꽁짜는 또 사람들이 거절합니다. 왜냐하면 너무 거지 같아 보여서 자존심에 손상을 입기 때문이죠.
어쨌든 오늘 예수님의 표현은 마치 믿기 싫거든 믿지 말라는 식으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착하게 살고 사랑하며 살라고 하시면 우리 인간들에게 납득이 쉽게 되어 예수님을 열심히 믿어 줄 것인데 오늘 본문과 같이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온다는 주장을 하시면 믿고 싶어도 못 믿을 정도입니다.
예수님이 왜 이런 말씀을 하신 걸까요? 오늘 본문 37절에 보면,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명절은 초막절을 말합니다.
초막절이 되면 유대인들이 연례적으로 하는 종교 이벤트가 있습니다. 그것이 뭔고 하니 오실 메시야를 대망해서 실로암 못에서 물을 길러다가 성전에서 물을 붓는 의식을 행합니다. 이것을 언제 하느냐 하면 바로 초막절 제일 마지막 날에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명절 끝날이 바로 이 날입니다. 이들이 무엇 때문에 성전에서 부을까요? 에스겔 47장에 보면, 하나님이 친히 지으시던 새 성전이 완공되고 나면 성전에서 물이 흘러 나와, 성전을 적시는 것은 물론이요 성전 완공으로 인해 거룩해진 사방의 거룩한 땅까지 흘러 들어서 만물에 생명을 주고 소생케 한다는 겁니다.
처음에서 발목까지 물이 스며나오다가 그 다음에는 무릅까지, 그 다음에는 허리까지, 그 다음에서 헤엄칠 정도로 막대한 물이 성전에서 흘러 나온답니다. 참 신기하죠? 다른 물이 아니라 바로 그 물로 인해 새 이스라엘이 사니까 물을 공급받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생명을 공급받는 겁니다. 그래서 '생수의 강'이라고 표현 할 만합니다. 유대인들은 바로 이러한 성경의 내용을 그대로 재현함으로 초막절에 의미를 담으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현장에 나타나서, 이런 모습을 염두에 두시고 오늘 본문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에스겔 47장에 나오는 생수의 강은 그렇게 이해해서는 아니된다는 겁니다. 그 물이란, 예수를 믿는 자에게는 끊임없이 나오는 성령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자, 여러분 에스겔 선지자의 말을 놓고 여러분 같으면 유대인 쪽이 납득이 됩니까 아니면 예수님 말씀에 더 납득이 됩니까? 예수님의 주장이 너무 일방적인 개인적인 주장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어째서 에스겔 선지자가 예언한 그 물이 성령이 되며, 또한 그 성령이 유독 예수님라는 인물을 믿는 자에게만 나와야 되는 당연한 이유가 또 무엇입니까?
여기서 우리는 물이 곧 바로 성령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그러면 물은 무엇과 연결됩니까? 물, 곧 강은 생명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2:10에 나오는 유명한 에덴 동산의 구조를 한 번 살펴 봅시다.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동산 한가운데 뭐가 있었습니까? 바로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심겨져 있습니다. 동산 한 가운데 있는 두 나무는 곧 에덴 동산의 본질이 함유된 채 심겨져 있습니다. 따라서 에덴동산에서 강이 흘러나온다는 것은 그 중앙을 차지하는 두 나무의 본질이 강의 속성으로 인하여 사방 팔방으로 흩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요한계시록 22:1-3을 봐서 보다 분명해 집니다.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 두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이 본문에 보면 생명수 강은 바로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흘러 나온다고 되어 있습니다. 즉 만물이 생명을 부여 받기 위해서는 '강'이라는 것을 통해서 흘러 들어야 되고 그 '강'은 생명이 원천이 되시는 곳부터 출원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과 주위에 모든 영토가 에덴에서 나온 생명으로 인해 그들이 존재해 있습니다.
물론 그 중에 에덴 동산에서 살던 인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이 규칙을 어겼습니다. 그리고 돌아 온 댓가는 바로 생명 나무로부터의 차단이었습니다. 그것은 곧 죽음으로 이어졌습니다. 생명의 혜택보다 죽음의 지배가 더 강렬하게 작용하는 운명이 되었습니다. 우리들 생각 같으면 도로 에덴 동산을 찾아 돌아가면 될 것이라고 여기겠지만 하나님쪽에서 생명 나무 근처에 얼씬도 못하도록 길을 차단시켜 놓았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문제가 우리 인간들이 죄를 지은 죄인이라는 점입니다. 달리 말해서 거룩되지 못한 존재라는 말입니다. 거룩되지 못한 자에게는 생명이 아니라 죽음이 안겨질 뿐입니다.
그렇다면 에스겔 47장에 나오는 성전에서 흐르는 생수의 강은 왜 예언되어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지으신 새 성전에서 에덴동산처럼 생수의 강이 흐르는 이유는, 그 성전에는 거룩한 분에 의한 완전한 제사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즉 거룩이 지상에서 성사되었기에 그 거룩됨에서 다시 생명의 강은 넘치도록 흘러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인간이 살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강물이 흘러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백성들이 있기에 그들을 향해 생명의 강을 흘러 넘치는 겁니다. 쉴새없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지금도 유대인이 생각한 것처럼 실제로 강물이 흘러야지 예수님은 왜 갑자기 성령을 언급하시는 걸까요? 그 원인을 알기 위해서는 민수기 11장을 봐야 합니다. 거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엄청 원망합니다.
원망하는 내용이 민수기 11:4-6에 나옵니다.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 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 하니"
즉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는 다시 세상적인 세계를 못내 그리워하고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어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생각해 놓으신 새세계를 원치 않았습니다. 따라서 지도자급에 있는 자들을 제대로 다스릴 필요가 있었습니다. 소위 장로급에 있는 자들입니다. 모세는 물론 시내산 위에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을 모세 혼자 감당하기에 업무량이 너무 과다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가 경험한 그 새 세계를 70 장로에게도 갖게 해 주려고 했습니다. 그 취지가 민수기 11:16-17에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노인 중 백성의 장로와 유사 되는 줄을 네가 아는 자 칠십인을 모아 데리고 회막 내 앞에 이르러 거기서 너와 함께 서게 하라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신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지지 아니하리라"
과연 실제로 그들도 하나님의 신이 임해서 모세가 가졌던 그 경험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그 대목은 민수기 11:24-25에 나옵니다. "모세가 나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백성에게 고하고 백성의 장로 칠십인을 모아 장막에 둘러 세우매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그에게 임한 신을 칠십 장로에게도 임하게 하시니 신이 임하신 때에 그들이 예언을 하다가 다시는 아니하였더라" 즉 이들도 예언했습니다.
예언이란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내용이지 결코 이 인간 세계에 관한 내용이 아닙니다. 달리 말씀드리면, 생명의 세계를 알게 될 때는 필히 성령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겁니다. 이점을 예수님이 에스겔서 언급한 생수의 강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런데 민수기 11:25을 주의 깊게 보면, "그들이 예언을 하다가 다시는 아니였더라"라는 대목이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즉 그들은 성신이 임할 때 그 때만 예언을 했지 계속해서 예언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는 바로, 장차 메시야되시는 분이 오게 되면 영원히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성령이 그분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뜻합니다.
광야를 통과하고 있는 이들 70인 장로들은 그저 맛배기로 잠시 잠깐 성신을 받은 것뿐입니다. 그러나 장차 메시야가 오시게 되면 모든 신자가 다 이와같은 성신받는 자가 될 것이라고 민수기 11:29에 나와 있습니다.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위하여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 신을 그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런데 예수님이 과연 영원히 성령을 주실 메시야인지 아닌지 어떻게 확정됩니까? 바로 에스겔 47장의 새성전은 거룩한 분이 왕으로 오셔서 온전한 제사를 마무리 했을 때문에 생수의 강을 흘러 보내게 되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은 초막절 끝날에서 이 점을 본인에게 적용시키고 있는 겁니다. "내가 바로 그 메시야이다"라는 그런 말씀입니다. 물론 예수님이 아직 십자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성령이 무한정으로 오시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 39절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그 당시 사람들이나 오늘날 인간들이 예수님을 제대로 이해 못하고 귀하게 여기지 않는 이유는, 아직도 세상적인 영광과 세상적인 것을 더 얻고자 시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인간에게 가장 귀한 것은 기존의 것이 아니라 새 나라의 것입니다.
곧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 귀한 것을 주시고 또 주시고 또 주실 수 있는 세상을 예수님은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돈 주고 이것을 살 것입니까 아니면 기도 노동으로 얻을 겁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을 이 세상 어떤 것보다 더 귀하다고 인정하기만 하면 예수님으로부터 공짜로 주어지는 생명을 끝없이 공급받게 된다고 예수님께서 직접 약속하셨습니다.
세상적인 빠징꼬에만 미치지 마시고 우리의 자존심을 접어놓고 예수님만 쳐다 보며 삽시다. 그렇다면 하늘 나라의 생명이 넘치도록 여러분의 마음 속에서 밀려들어 오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부~자 되세요. 꼭 요!"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교회 나오면서 몸과 마음은 그대로 세상쪽으로 향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저희들 성령받아 하늘 나라의 생명 강가에서 헤엄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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