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요 7:25-36 / 예수님의 승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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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예수님의 승리
2002년 3월 6일 35강
본문 말씀 : 요 7:25-36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혹이 말하되 이는 저희가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저희가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줄 알았는가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가라사대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로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이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7:29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니라 하신대 7:30 저희가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7:31 무리 중에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찌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사람의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 7:32 예수께 대하여 무리의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그를 잡으려고 하속들을 보내니 7:3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7:34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신대 7:35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저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터인가 7:36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 사람은 예수님 한마디 한마디가 용기가 됩니다. 마치 멀리 있는 태양이 바로 코 앞에서 활활 타는 것처럼 눈부시게 환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물론 예수 믿는 사람도 안믿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이 어두운 세상에서 모든 것이 공포스럽고, 두려움에 싸여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 본인이 어른으로 모시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으로 인해 다 날라가 버리는 겁니다. 대단히 좋아하고 흠모하고 사모하는 분이 한 마디 던진 말이 본인에게는 큰 위안이 됩니다. 모든 것이 평정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기쁨은 바로 이런 겁니다. 주위의 숱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안다는 이유 때문에 구박을 받아도 예수님이 던져주시는 그 한 마디 말씀으로도 느끈하게 원기회복이 되는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남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 쪽에서 지레 세상 평가가 겁나서 남으로 간주하고자 합니까? 세상의 시선에 너무 시달려서 자신도 모르게, "주님, 저 그만 주저 앉으렵니다. 저도 힘듭니다"라는 생각을 가져서는 아니됩니다. 세상이 강하게 나오면 나올수록 다시금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눈여겨 봐야 합니다.
오늘 볼 이 말씀이 이 시대에 처해 있는 우리에게도 힘이 된다는 점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들어가기 전에 요한 일서 5;4를 잠시 봅시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그러니까 오늘 요한복음을 보면서도 우리가 어떤 사람으로 달라져야 하는가 하면, 세상을 이긴 사람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역시 우리도 세상을 이긴 사람이야"라는 감이 나와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신자가 세상을 충분히 이길 수 있음을 말해주는 바는 이것입니다. 세상은 온통 인간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또한 그런 식으로 조용스레 흘러 가는 것같지만 실은 그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서도 예수님께서 조용스레 일하고 계시다는 점을 발견함으므로서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그냥 내버려주지 않는다는 점을 우리가 즐거워해야 되고 기뻐해야 되고 반겨야 합니다.
정말 세상이 인간들 손에만 돌아간다면 그 가운데 놓여있는 신자는 낙이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 뭐하십니까? 왜 하나님은 제 때에 조치해 주지 않는 겁니까? 정말 힘듭니다"라는 식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보니, 불신자들이 초막절이라는 이름의 큰 종교 부흥회를 열어서 온 천하가 자기네들 세상인 양 떠들어도 주님은 조용히 움직였습니다. 아, 그러니까 주님은 결코 무관심한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세상 모두가 가까요 이단으로 흘러간다고 해서 신자가 너무 낙심할 필요는 없다 이 말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예수님이 관여하셔서 어두움 안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생기도록 조치해 놓으시는 겁니다. 이런 현상, 현상들이 곳곳에서 일어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면 거의 없지만, 거의 없다고 여기면 놀랍게도, 기적과 같이 더러 더러 복음을 받은 자들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의 자질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조용스럽게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로 생긴 현상입니다.
연못에 빗물이 떨어지면 빗방울이 떨어질 때만 물결이 잠시 일다가 다시 살아지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세상이 이기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예수 믿는 자들이 낙담할 수 밖에 없이 이 세상에서도 예수님은 자기 자녀들의 낙담과 상관없이 꾸준히 일하고 계시는 겁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간다 온다 말씀도 없으시면서 조용히 그 어두움의 세계 안에서 등장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두 가지 반응이 생겨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무시했습니다. "아, 저 사람은 자칭 그리스도라는 예수 아닌가? 하지만 우리가 알기로는 그리스도는 그 예수라는 저 모습으로 오실 리가 만무해.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오실 때는 자신의 출생이나 근원이 전혀 밝혀진 바가 없는 상태에서 출현해야 그리스도 다운 거니까 말이야"라고 합니다.
또 다른 이는, "저 분은 진짜 그리스도일거야 왜냐하면 진짜 그리스도가 오셨더래도 저 분이 하신 일보다 더 많은 기적은 행하지 못했으니까 말이야"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을 안믿는 자들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안일하게 예수님을 믿게 되면 안믿는 자들의 논리와 같아져서 결국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는 메시야를 신봉하는 격이 되기 때문입니다.
즉 그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그 나름대로의 메시야관과 하나님관이 따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요, 이 인간적인 아이디어는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주류가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왜 예수님을 거부했는가를 알게 되면 현재 우리 자신들이 알고 있는 메시야가 참인지 거짓인지 판가름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직접 만나기 전만 해도 그들이 생각한 구원관은 완벽하다고 믿었습니다. 메시야관도 대단히 은혜스럽게 조성한 것이 있었습니다. "메시야는 결코 평범한 보통 인물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체면과 위신을 고려해 볼 때 하나님은 결코 그런 식으로 일하실 리가 없다. 우리가 그 근원을 모르는 식의 존재로 나타날 때만 정말 하나님다운 발상이라고 볼 수 있다"는 식으로 자신만만했습니다.
그런데 소문에 듣기에 예수라는 자가, 마치 그리스도 행세를 하니, 물론 뒷조사해 봤겠지요. 그랬더니만 가정 환경이 다 파악된 그런 일반인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들의 선입감입니다. 즉 그리스도관을 그리스도 본인이 결정 지어주는 것이 아니라 아예 인간들이 마련한 그리스도관에 참된 그리스도가 맞추어 들어와야 한다는 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의 마음까지 간파하시고 그들의 선입감에 포착되지 않는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그리스도가 그들 가운데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들은 자신들이 충분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진짜 그리스도가 나타나 버릴 때 그들은 곧 이단임이 들통났습니다.
오늘날도 예외가 아닙니다. 어질고 순수하고 남에게 사랑을 많이 베풀고 열심히 교회 충성, 교회 봉사하는 자라고 할지라도 참된 그리스도를 전하면 인상이 확 변하는 그런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나름대로 정해놓은 그리스도에 관한 인식을 따로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더 나아가서 "신이시여. 이러이러한 요소가 있어야 참된 교회요 참된 구원입니다. 알았지요?"하는 식입니다. 사람이 왜 교회를 세우고 성경을 봅니까? 바로 이 점부터 옳은지 그른지를 성경에서 찾아보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이 필수적인 것을 빼버리면 결국 진짜 예수님을 거부하는 결과로 돌아옵니다.
물론 참되게 믿는 자라 할지라도 믿음이 주어지기 전까지는 나름대로 기준이 서 있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라면 적어도 이런 분이 되셔야 마땅하고 예수님이 구세주라면 적어도 이런 정도는 돼야 되"라는 기준 같은 것이 분명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된 믿음을 갖게 되고 부터는 이런 그 전의 기준을 저주하고 부인하게 된다 이 말입니다. "주여 저는 모조리 죄이며 철저히 죄 뿐인 존재입니다"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정말 기적이 일어나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이 기적은 어디서 주어진 겁니까? 이 모두는 조용히 이 어두운 세상에서 계속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거부한 그 이유로서 예수에 관해서는 그 배경을 충분히 자신들이 잘 알고 있다는 바로 그 점을 들었습니다. 예수님도 이 점을 인정했습니다. 28절에 보니, "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가라사대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로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이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안다고 자신만만 해 하는 그 점을 도로 죄가 되게 하는 방식으로 메시야를 보내었습니다. 즉 인간들은, "왜 우리들이 아는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야만 했는가?"라는 질의를 할 줄 몰랐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러합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를 인정못한 것은 나름대로 하나님은 안다고 주장하고 싶었던 것이고, 예수님께서 그들이 아는 배경을 가지고 나타나신 것은,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으로서 결국 그들은 하나님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싶어서입니다.
결국 이것은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하여 무지 상태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자 하는 겁니다. 동시에 만약에 구원받게 되는 자가 생기게 된다면 이것은 그들의 자질에 속한 문제가 아니라 계속해서 행하실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얻어질 문제입니다. 주님의 은혜는 자기 죄를 아는 경우에만 나타날 현상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바와 하나님의 역사가 같이 만날 수 있다고 여긴 그런 체제를 고수했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예수님의 공로나 인간의 무능을 주장하면서 실제로는 하나님의 힘과 인간의 노력이 한데 어울리는데서 유지시키고자 하는 교회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죄입니다.
예를 들면, 뛰어난 과학자가 아무리 예수님의 피를 놓고 분석하고 파악해도 거기서 '거룩'이라는 의미를 찾아낼 수 없습니다. 이와마찬가지로 예수님의 피 선포는 일방적으로 예수님의 주장이며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점을 확산시켜야 합니다. 그것도 즐겁게 말입니다.
설교 처음에 언급한 요한 일서 5:4를 다시 언급하면,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라는 말씀은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자신있게 자신의 메시야 됨을 증거하는데 근거가 있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 뭐라 말하든지 그들을 신경쓰지 말고 예수님을 메시야 됨을 당당하게 말 할 수 있게 된 점을 세상의 대한 승리라고 간주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동안 우리는 세상에 주눅들어 있었고 숨죽여 살았고 겁먹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예수님이 승리 한 것에 대하여 대단히 기뻐하게 해주시고 우리도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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