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요 7:1-9 / 형제들의 불신앙 본문
이근호
http://media.woorich.net/~woorich/성경강해/요한복음-2001/john02022033.mp3
|
형제들의 불신앙
2002년 2월 20일 33강
본문 말씀: 요 7:1-9
"이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 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의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거함이라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나는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갈릴리에 머물러 계시니라"
우리가 성경을 볼 때 난감한 경우가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모든 것이 사람이 한 말이라면 쉽게 이해될 수가 있는데, 성경에 의하면 이 세상에 인간과 하나님이 함께 섞여 있다는 겁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인간의 말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까지 이해를 해야 될 판입니다.
과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는 여기에 대한 한 예가 나옵니다. 3-4절에 보면,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의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은 당연히 예수님에게 우호적입니다. 특별한 분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하시는 이 좋은 일을 지방에 묵히기에 아깝다고 여긴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그 일을 어떻게 하면 크게 벌릴 수 있을까를 고려해서 예수님에게 간곡히 조언을 한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도 주의 일에 있어 큰 일꾼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 다음의 말씀을 보면, 우리의 예상은 크게 빗나갑니다. 5절에 보면,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그 현장에 있었다면 이런 형제들의 제안에 같이 동조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도 또한 예수님으로부터 믿음이 없다는 책망을 받을 것이 뻔합니다. 예수님 형제의 제안같은 것은 이 인간 세계에서 충분히 호응받을 제안입니다.
예를 들면, 개척 교회를 성공하려면 될 수 있는대로 사람들이 들끓는 아파트 촌에 세워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정말 누가 들어도 동의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 세계에서 통하는 이 제안같은 것이 과연 예수님에게도 칭찬 받을 만한 것일까요?
예수님 형제들의 제안이 거부 당한다면 현재 우리의 신앙도 점검 해 봐야 합니다. 혹시 신앙적이라고 간주하면서 실행하는 일이 도리어 예수님과 상관없는 일이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형제는 어디에 신앙의 허점이 있었을까요? 6-7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과 형제들의 제안을 서로 비교해 봅시다. 6-7절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거함이라" 얼른 듣기에는 예수님께서 동문서답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때'는 무엇이며, '너희의 때'는 무엇입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의 형제들은, 자신의 때를 기준으로해서 예수님의 때를 일방적으로 함부로 해석한 고로 믿음이 없다는 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예수님의 때'가 무엇인지를 알고 믿어야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때'에서 예수님을 이해하는 것을 부인하고 포기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이 제안한 것이 곧 '인간의 때'의 차원에서 예수님을 본 결과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불신앙이었습니다.
정말 우리가 신앙인이 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의 형제의 허점을 파악할 줄 알아야 하고 그 제안이 나쁘다고 비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과연 그런 안목이 우리에게도 있는 겁니까? 만약 있다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습니다. 즉 예수님은 이 세상과 화해하려 오신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세상 사람들은 왜 예수님이 이 세상과 화해 될 수 없는 인물인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형제는 예수님의 이런 태도를 참으로 답답해 합니다. 정말 예수님이 일을 하시고자 한다면 세상 사람들과 잘 융화를 하고 그들의 신경을 안 건드리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지 않는가 하고 여길 것입니다. 세상이 악하다고 세상의 비위를 건드리게 되면 예수님이 본래 하시고자 하는 일은 공중에 붕 뜰 것이 뻔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 예수님의 형제들의 생각입니다.
형제들은 예수님의 하실 일을 모릅니다. 내용도 모르면서 효과가 크게 번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최종 하실 일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지난 시간에 나온 본문을 잠시 돌아가 봅시다. 요한복음 6:70-71에 보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 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 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습니까? 이 내용을 제대로 믿으신다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답변도 제대로 믿는 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예수님이 자신을 따를 제자를 12명 택하여 뽑으시는 것은 충분히 이해될 만합니다. 그러나 악마인 줄 알면서 그 악마를 자기 제자로 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도 일부로 택해서 까지 말입니다. 거룩한 제자 군에 마귀가 억지로 침투 하려고 해도 막아야 될 스승이 왜 의도적으로 마귀를 제자군에 포함시키는 겁니까? 우리는 무조건 믿을려고 하지 마세요.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아부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귀도 뽑고 장차 구원받을 제자도 뽑으시는 것은, 이 제자의 집단이 곧 인류의 최종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인간들이 도저히 예측도 못할 인류의 최종 상황을 미리 만들어 자기 주위에 배치하신 것입니다. 즉 구원받은 자도 오직 예수님의 택하심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고 어떤 자가 악마가 되고 지옥가는 것도 오직 예수님의 택하심의 결과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드러나는 그 시점을 예수님은 '자기의 때'라고 하신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에 도달되지 못한 것을 '사람의 때'라고 보신 겁니다.
'사람의 때'의 시절은 이러합니다.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구원도 될 수 있고 잘못하면 지옥에도 가게 된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에게 잘 협조하는 그것으로 믿음 좋은 것이 아닌가 하고 여깁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믿음이 있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최종 상태를 미리 앞 당겨 그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제 힘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택해 주어야 구원됩니다. 그 어떤 인간도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될 수 없는 것이 옳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인간 세계가 마지막 때에 어떤 형제로 조정되며 재배치되는가를 우리들 입장에서 예상해서는 아니됩니다. 예수님이 괜히 말씀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우리의 이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이야기이지만 예수님의 하신 말씀이 옳다고 믿어지는 바로 그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니, 인류 최후의 광경을 아십니다. 그 때를 '자기의 때'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생각을 미리 눈치 챈 무리가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보니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이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여기에 보면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다. 영적 고수들은 서로의 정체를 압니다. 결코 타협될 수 없을뿐더러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들이 당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철없는 인간들은 이러한 영적 고수들이 알고 있는 것을 모릅니다. 오히려 세상을 극단적으로 몰아가는 예수님과 그리고 예수님을 싫어 양 쪽 다를 비난합니다. "제발 한 발자국씩 양보들 하세요. 예수님도 너무 세상이 악하다고 너무 몰아세우지 마시고, 유대인들도 예수님이 하는 일을 너무 과격하게 끊고자 하지 마세요. 그리고 휴전하세요"라고 말입니다.
예수님 형제들의 입장이라면 흑 백 논리를 싫어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서 유명 인사만 되면 목적은 달성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계속해서 세상을 악하다고 비난 하는 것을 못 마땅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최종의 광경을 이미 12제자 군으로 틀을 잡아 놓았습니다. 이 틀을 가지고 세상에 나서니 세상이 악하고 비난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악마와 하나님 사이에 화해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자, 우리들의 입장은 어떠합니까? 양다리 걸치고 있는 사람들로서는 예수님이 행동이 너무 과격하다고 느껴지지는 않나요? 느껴진다면 불신앙적인 예수님의 형제들이 바로 우리 모습입니다. 신앙이라고 자처하지만 이 신앙의 허점을 지적하기 위해 요한복음 7장에서 예수님의 형제가 등장되도록 하나님은 조처 했습니다.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자신의 편익을 위하여 예수님보고 도리어 너무 심하게 행동하신다고 불만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아직도 예수님의 때, 두 극단으로 종결되는 인류의 최종 상태를 인정치 않는 자들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때를 믿지 마시고 예수님의 때를 믿읍시다.
초대 교회 교인들은 참으로 과격했습니다. 예수가 아니면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교인들은 삶의 여유를 위하여 예수님 정도는 얼마든지 포기할 마음의 준비가 늘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고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너무 안일하게 예수님을 믿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서 세상의 끝을 봅니까?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가 하나님이 제공하실 수 있는 최고의 극단이요 과격한 몸짓입니다. 거기에 우리는 눈을 돌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류의 최후를 미리 알고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의 안일이 오히려 저희들을 불신앙 세계로 인도한다는 것을 똑똑히 알게 하옵소서. 우리의 때와 예수님의 때의 차이를 늘 비교하면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신약 설교, 강의(이근호) > 요한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요 7:25-36 / 예수님의 승리 (0) | 2013.12.28 |
|---|---|
| 요 7:10-24 / 예수님과 율법 (0) | 2013.12.28 |
| 요 6:60-71 / 택한 자 (0) | 2013.12.28 |
| 요 6:49-59 / 예수님의 살과 피 (0) | 2013.12.28 |
| 요 6:41-46 / 하늘에서 온 떡 (0) | 2013.12.2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