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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요 6:60-71 / 택한 자 본문

신약 설교, 강의(이근호)/요한복음

요 6:60-71 / 택한 자

정인순 2013. 12. 28. 11:20

http://media.woorich.net/~woorich/성경강해/요한복음-2001/john02021332.mp3

 

 

이근호

 

택한 자

 

2002년 2월 13일 32강

본문 말씀 : 요 6:60-71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가라사대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그러면 너희가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것 같으면 어찌 하려느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군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 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 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예수님의 말씀이 그토록 어려운 것입니까? 여러분들도 그렇게 느끼십니까? 그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 내린 결론은, 어렵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을 더 나아가서 누가 알아듣겠는가 아무도 이해 못할 말을 하고 있다고 보았고 또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다 떠나가고 다시는 예수님과 다니지 아니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들은 예수님을 떠나지 않고 있는 겁니까? 그들이 우리보다 더 바보라서 그러합니까? 우리가 그들보다 더 똑똑해서 그러합니까? 아닙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누가 알아 듣겠는가?"에서 이 '누가' 안에는 우리 모두도 다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 뿐만 아니라 인간은 누구도 못 알아듣는 말씀을 하신 겁니다.

 

그런데 왜 우리들은 그들처럼 떠나지 않고 아직도 주님을 믿고자 하는 겁니까? 그것은 다음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는 아직도 예수님을 제대로 몰라서 제멋대로 예수님을 상상하고 믿고 있기 때문이요, 다른 이유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전혀 관심조차 없고 오로지 예수라는 이름으로 이 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많다고 여기기 때문에 예수님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예수 믿는다고 하면 사회적으로 신용도가 증가한다든지, 목사나 장로 같은 자들은, 예수를 이용하면 아직도 교회 장사가 된다는 점 때문에 예수라는 이름을 못버리고 있는 겁니다. 만약 제대로 예수님을 안다면 예수님 앞에서 남아 있을 자들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말씀은 인간의 이해를 피해 가면서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야지만 예수님의 선택이 비로소 제 가치가 발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모두 다 예수님을 떠나지만 어느 한 사람이 예수님을 안 떠나고 있다고 한다면 예수님이 십자가 결코 대신 죽으심이 아닐 것입니다. 주님을 안 떠나고 있는 그 한 사람의 죄에서는 주님을 버리지 않는 죄는 포함되지 않기에 그것만 빼놓고 나머지 죄에 대해서 대속해야 하는 일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한 사람의 구원은 예수님의 대속과 자신의 선행이 보태져서 자기 구원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육으로도 구원이 되는 수가 생기고 마는 것입니다. "육은 무익하다"는 예수님의 주장이 거짓말이 되어 버립니다. "육도 쓸모있다"가 되어 버립니다. 여기서 왜 예수님이 인간들에게 이해되지 않는 말씀을 할 수 밖에 없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는 자기 곁을 떠나는 자의 심정에 동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곁을 떠나는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거부하고 신앙을 버리겠다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을 포기할 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신 모든 일을 하나님과 결부시킨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떡과 고기를 먹고 이 일을 옛날 광야의 기적과 연관시켜서 생각했던 자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자신의 왕으로 삼고 메시야로 추앙시키고자 했던 사람들입니다. 정말 진심으로 이들은 하나님을 섬기고자 했던 자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의 신앙에 대해서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과 결별하게 된게 그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게 있다고 보았습니다. 자신들의 신앙이 대단히 순수하다는 것은 하늘의 하나님도 잘 아시는 일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따라서 참으로 예수라는 인물이 참 메시야라면 결코 자신들의 순수한 신앙심을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신앙을 독려하고 납득이 되도록 대화를 주고 받을 것으로 여겼습니다.

 

특히 영생에 관해서 그들은 구약 성경 말씀대로 최선을 다하여 말씀을 지켜왔다고 자부했기에 당연히 생명을 얻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6:53-54에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보면, 인자의 살과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생명이 없다고 단정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자신들이 확보했다고 여긴 생명은 졸지에 가짜가 되어 버립니다.

 

결코 하나님이 자신의 현 신앙을 부정하시면서 메시야를 보낼 리가 없다고 여긴겁니다. 따라서 누가 엉터리 인가 하면, 바로 예수님 쪽이 엉터리 임에 분명하다고 본 겁니다. 더 이상 엉터리 메시야하고 같이 다닐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본 것입니다. 정말 예수라는 자가 메시야라면 자신들의 신앙과 일치되는 말씀으로 대화가 통할 것이라고 그들을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영생이란 예수님 자신이 주시기 전에는 결코 인간들이 간직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독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63절에 보면,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내가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는 겁니다.

 

즉 생명은 예수님 말씀의 능력으로만 새삼 주어지는 겁니다. 절대로 인간들이 쟁취하거나 획득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가 요한복음 3:35-36절에 나옵니다. "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여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만물을 아들의 손에 맡겼습니다. 쉽게 말해서 예수님께서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유일하게 갖고 계시다는 말입니다. 영생이란 바로 이런 권세자가 제공될 때 얻어지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오늘 본문의 핵심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수님의 주장이, 지금까지 유대인 자신들이 알고 있던 영생 획득 방식과 너무나도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을 철저하게 믿는 이것이 신앙의 축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하나님의 일도 단지 추가적으로 보탤 요소에 불과하지 결코 그 축조차 뽑아버리고 다른 것으로 대체할 일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흔히 신앙이란 근본이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를 믿으라는 말은 단지 추가적인 정보 입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만 알았다가 덤으로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사항까지 보탠 것이지 결코 전에 믿던 것을 내팽개치라는 말로 이들은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예수님이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그 근본 취지를 모르는 자입니다. 예수님의 권세자라는 말은, 지금까지 믿던 모든 것을 버리고 이제부터는 철저하게 예수님의 그 권세 안으로 사로잡혀야 된다는 말입니다. 자신이 믿던 것, 자신이 알던 것 모두를 다 버리고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인간이 이것이 가능할까요? 아무도 가능치 않습니다. 따라서 생명을 얻는데 있는 육은 무익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익한 육의 자리에 무엇이 들어갈 때 생명을 얻는 것이 성사될까요? 65절에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즉 선택이 아니면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겁니다. 이는 아무도 자발적으로, 자기 의지로서 예수 믿어 구원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오로지 선택시켜 주셔야 하는데 이 선택을 성사시키는 권세와 능력이 오로지 예수님의 손에만 있다는 겁니다. 이러한 예수님이 주장이 낯설어 보이겠지만 사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구약을 보세요. 홍해 바다 한 가운데 갈라져서 애굽 군대를 따돌리는 것이 누구의 아이디어입니까? 순전히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요 하나님의 아이디어입니다. 인간들이 머리를 맞대고 연구한 것에 대해서 하나님이 후원한 것이 아닙니다. 도저히 인간들의 머리나 예측에서 나올 수 없는 식으로 하나님은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광야에서 물이 없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위에서 물이 나온다는 발상은 하나님만이 내신 아이디어입니다. 지나가 보니, "아 그런 방식이라면 나도 얼마든지 사전에 짜낼 수 있겠구나"라고 여기시겠지만 그 당시 수십만 사람들의 머리에서 전혀 떠오르지 않는 방안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인도하셨습니다.

 

오늘 날도 마찬가지입니다. 100가지 항목을 놓고 기도해도, 또 1000명의 사람들이 각자 아이디어를 짜내어도 정작 인도하시는 방식은, 100가지 항목이나 1000 사람의 예측도에 전혀 들어 있지 않는 또 다른 방식으로 성도를 인도하십니다.

 

예를 들면, "모든 것이 성도에게 예정되어 있으니 나는 기도도 안하고 아무 것도 안해야지"라고 마음 먹으신다면 그것 조차 인간에게서 끄집어 낼 수 있는 인간의 방식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이 방식마저 피하시면서 다른 방식으로 그 사람을 구원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영생이란 순전히 예수님의 권세 행사의 산물임을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 이것이 선택 작업입니다.

 

사람들이 도저히 예상 못하는 식으로 인도하시므로서 믿는 자로 하여금 독보적인 예수님의 권세만을 인정하고 믿음의 내용으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믿는다'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자신을 믿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자신은 육이기 때문이요 육은 항상 무익하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힘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이 생명이요 영생이기에 성도는 오로지 예수님 일변도로 나갑니다. 기존의 하나님의 존재에서 출발하던 자신의 종교심을 부정해 버리고 예수님의 권세로부터 새로 시작하게 됩니다. 이런 자가 바로 택함 받은 자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그저 주시는 권세로부터 신앙을 시작하지 않고 자신의 믿는 행위부터 신앙을 시작한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