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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요 6:41-46 / 하늘에서 온 떡 본문

신약 설교, 강의(이근호)/요한복음

요 6:41-46 / 하늘에서 온 떡

정인순 2013. 12. 28. 11:17

이근호

http://media.woorich.net/~woorich/성경강해/요한복음-2001/john02013030.mp3

 

하늘에서 온 떡

 

2002년 1월 30일 30강

 

본문 말씀 : 요 6:41-46

 

"자기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께 대하여 수군거려 가로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 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 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예수님이 하늘에서 오심으로 말미암아 세상은 두 패로 나뉘어지게 되었습니다. 한 패는, 예수님이 진짜 하늘에서 오셨다는 쪽이요 다른 한 쪽은, 예수는 그냥 보통 인간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두 패 사이에서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모른다'고 대치해 있습니다. 그렇다면 서로 헤어지면 그만인데 예수님을 안다는 쪽에서 "너희들은 우리 예수님의 세계를 모른다"고 큰 소리치면서 자꾸 접촉을 하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전도를 해야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니 전도 자체의 논리가 앞 뒤 안 맞습니다. 안 맞으면 돌아서 버려야 하는데 "안 맞아"라고 하면서 자꾸만 안 맞는다는 저 쪽 세계를 기웃거리고 포섭을 하려고 합니다.

 

특히 오늘 본문 가운데 44절 같은 말씀은 여기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과연 전도가 가능할 것인지 난감하기만 합니다.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이 말씀을 우리 인간 입장에서 들으면 이렇게 이해될 것입니다. "아무리 인간쪽으로 구원을 받고 싶어서 예수님을 믿고자 하여도 예수님의 아버지되시는 하나님께서 불러 주지 아니하시면 어느 누구도 예수님를 믿을 수 없다."는 겁니다.

 

비록 스스로 예수님께 와도 예수님이 도리어 호통을 치게 된다는 거지요. "왜 하나님이 부르시기 전에 네 멋대로 나에게로 왔느냐? 저리 가란 말이야. 가 있다가 하나님이 불러 주시거든 그 때에 나에게 오란 말이야"라는 식으로 해석하기 십상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모으신다는 의미보다도 우리 쪽에서 믿고자 해도 예수님이 거부하면 구원은 물거품이 될 뿐이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주체는 우리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홀로 쥐고 있으니 인간들이 애쓰고 힘쓰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하는 식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가족 중에 예수님을 안 믿는 자식이나 부모님이 있어 어떻게 하든지 믿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도 도리어 이런 행위에 대해서 예수님이 호통을 칠 것이 뻔하다는 겁니다. "왜 내가 시키지도 않는 일을 하느냐? 집에 가서 가만이 있어. 하나님이 그 가족을 불러 줄 때까지 가만 있으란 말이야. 그러다가 안 불러주면 그냥 지옥 가!"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이런 취지로 다가온다는 것은 그만큼 예수님을 모른다는 말입니다. 즉 예수님을 우리들의 자의로 판단해서 "그래 나는 믿어야지. 예수님은 정말 믿어도 좋을 분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없음을 우리 자신들이 아직도 모르고 있다는 겁니다.

 

그 예가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41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하늘에서 온 떡'이라고 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유대인들은 이렇게 대꾸합니다. 42절에 보니 "가로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 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면전에서 볼 수 있었고 심지어 떠밀고 만지기까지 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그 어느 구석에서도 인간들이 예상한 '하늘의 떡' 다운 면모를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왜 인간들은 자력으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일까요? 왜 그 어느 인간도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 보는데 성공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여기에 대한 해답이 멀리 신명기 8장에 봐도 나옵니다. 3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하려 하심이니라" 이 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돌아다니던 때입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먹든 양식을 원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떡을 내려주셨습니다. 이것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식으로 해석하고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잘못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만나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했습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산다"는 취지에서 만나라는 것을 하늘에서 내려주었습니다. 도대체 이들은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하나님과 의견이 맞지 않는 겁니까? 먹으라고 준 만나를 주워먹고 사는 것이 뭐가 잘못된 결정이라는 겁니까?

 

만나를 하루도 빠짐없이 실컷 먹었던 이들은 결국 약속의 땅에 못들어간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만나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만나는 먹을 양식으로만 알았던 것입니다.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내는 마음은 아예 생긴 적이 없었습니다. 마치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을 면전에서 보고서도, "저 양반은 목수의 아들이잖아"라고 읽어내는 마음과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보고 예수님이 하늘에서 온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압니까? 46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아무도 하나님을 본 자가 없다고 단정지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인 고로 믿습니까? 정답은 이렇습니다. 사실은 믿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믿을 능력이 우리에게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떤 자가 예수님을 믿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도 되는 겁니까?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하늘에서 온 떡'이라고 온 취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신명기 8장에서, 만나를 가리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소개한 취지는, 다른 것이 아니라 모든 백성들이 오로지 하늘에서 온 이 만나에 철저하게 예속시키겠다는데 있습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남녀 노소를 막론하고, 개인적인 자질이나 인격이나 품성의 구별성을 완전히 무시하고 오로지 만나에서 묶여 있는 집단이 바로 광야 때의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아무리 지난 날까지 만나가 아침마다 꼬박꼬박 내려도 다음날 안 내리면 수십만 백성들은 그 자리에서 다 죽는 겁니다. 백성들이 만나를 어떻게 해석했든지, 어떻게 이해했든지 상관없이 이처럼 그들은 만나에 목숨 걸고 완벽하게 묶여져 있는 상태에 있습니다.

 

바로 이 광야 상태를 하늘의 떡이신 예수님이 지금 실시하고 있습니다. 철저하게 예수님에게만 매여 있는 그런 자에게만 하늘의 떡은 떡으로서 제 효과를 다 내고 있는 중이다는 겁니다. 마지막 날에 그들만이 기어이 다시 살리겠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인간들이 모두들 각자 갖고 있는 자질과 역량을 깡그리 무시당하고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날이 갈수록 신앙적 재주와 기술와 신앙을 지탱하는 여력이 커졌다고 여기는 자들은 완전히 비신자로 분류될 뿐입니다. 하늘의 떡이신 예수님의 주장은 오직 다음과 같습니다. "내 백성은 내가 모은다."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생각을 인간들은 이렇게 여깁니다. "아하, 이런 생각은 처음 믿을 때만 생겨날 뿐이지, 신앙이 어느 정도 자란 사람에게는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고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절대로 그런 식으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확신 같은 것으로 인해 사람들은 예수님의 얼굴과 하시는 일과 말씀을 직접 들어도 이들은 그 내용을 수용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이들은 예수님과 다 뿔뿔이 다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예수님이 44절에 하신 말씀, 즉 "아버지께서 이끌지 않으시면 내게로 올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취지는, "현재 인간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구원받겠다는 의지도 결국 아무 것도 모르는 데서 나오는 헛수고이다. 그러니까 아무도 나에게 나올 수 없는 것이 당연하지. 이런 상황으로 인해 아버지께서 직접 이끌어서 이 예수께 온 자는 정말 큰 복을 받은 자이다"입니다.

 

여러분, 전도라는 것은 자신이 이런 입장을 삶 자체로서 그대로 노출시키는 겁니다. "너는 누구에게 묶여져 사느냐?" 물으면 "나는 예수님에게 묶여져 산다. 왜냐하면 그분의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어서 비로소 나는 예수라는 분을 알고 믿게 되었기 때문이지"라고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 대답하게 되는 자들이 참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기에 그 어떤 개인적인 자질과 관련된 차별성은 없습니다. 성도는 서로가 오로지 하늘의 떡에만 예속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스스로의 힘으로 믿는 것이 믿음이 아님을 알게 하옵소서. 애초부터 그럴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순전히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구원되었기에 철저하게 예수님에게만 묶여 사는 자가 되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