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요 6:16-29 / 썩는 양식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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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썩는 양식
2002년 1월 16일 28강
본문 말씀 : 요 6:16-29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저희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가라사대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신대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섰는 무리가 배 한척 밖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의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 곳에 가까이 왔더라) 무리가 거기 예수도 없으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성경은 예수님에 관해서 설명할 때에 예수님만 독자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주변에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의 움직임도 같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자 할 때는 주변의 인물들을 제거하고 보시면 안됩니다.
우리가 혹시 잘못 생각해서, "직접 예수님을 내가 만나게 된다면 만사 제쳐두고 예수님을 위하여 목숨바쳐 살건데"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오해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직접 예수님을 만났던 자들은 대부분은 예수님과의 관계를 끊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기대했던 바와 전혀 상관없는 것을 예수님이 제시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자 할 때는 예수님만을 고립시켜서 알려고 하지 마시고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을 포함시켜서 예수님의 뜻을 이해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도 그 예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만 정답이라고 챙기지 마시고 인간들이 예수님에게 했던 질문까지 겸해서 같이 고려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26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했습니다. 민중들이 예수님을 찾아오기는 왔는데 번지 수가 잘못되었다는 겁니다. 엉뚱한 다른 인물을 찾아왔다는 말입니다.
진짜 예수님을 놓친다면 모든 신앙 생활은 헛수고입니다. 가짜 예수는 구원시켜 줄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민중들은 그들 나름대로 메시야 상이 있었고 거기에 예수님의 행위와 부합되었다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거부하십니다. 떡을 먹고 배부른 것과 연관된 예수라면 자기는 아니라는 겁니다. 진정한 표적을 알지 못한다면 예수님을 직접 만나는 한 있더라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우리를 배부르게 하는 떡하고 예수님은 상관없어!"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과연 떡은 거부하고 표적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자입니까? 아니면 "야, 떡을 축복으로 주시면 이렇게 좋구나. 예수님 믿고 따라가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런 혜택을 입게 될거야"라는 정신으로 그 때 그 민중들과 똑같은 식으로 예수님을 찾을 사람은 아닙니까?
이 시점에서 예수님의 다음 말씀을 귀담아 들으시기 바랍니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고 하십니다. 지금 민중들에게 있어 썩는 양식은 뭡니까? 조금 전까지 자기네들이 예수님으로부터 얻어먹는 것 그 떡과 고기입니다.
그렇다면 민중들 입장에서 봐서 예수님의 말씀이 잘 납득이 안되겠지요. 배불리 먹으라고 떡을 제공한 쪽은 예수님 본인이면서도 막상 그 떡을 배불리 먹고 만족해서 또다시 예수님을 찾으니까 이제와서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들은 썩는 양식을 위해 나를 찾는구나"하고 호통을 치시더라 말입니다.
이런 식으로 나무랄 것 같으면 애초부터 떡을 배불리 먹으라고 주시기는 왜 주신 겁니까? 그냥 생색 내듯이 조금만 주시면서 "애들아 이 떡에 욕심내지 말고 그냥 표적이라고 여기는 정도에 머물러라"라고 당부하시면 되잖아요. 왜 썩는 양식을 주시기는 왜 주시는 겁니까?
그 이유는 이러합니다. 애초부터 민중들이 원하는 것을 주지도 않았다면 이들은 예수님을 찾아오지도 않고 그 이름 조차도 기억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을 예수님을 착안하신 것입니다. 민중들 마음 깊은 곳에 뭐가 있는지는 민중들 본인들 조차도 모릅니다.
그러나 막상 예수님이 떡을 주시니까 잠자던 민중들의 메시야상이 고개를 들고 본색을 나타낸 겁니다. 즉 썩는 양식과 결부된 썩어질 메시야 상이 전부터 민중들 속에 다 들어 있었던 겁니다. 하늘에서 오신 메시야와 민중들이 고대하는 메시야 상이 완전히 충돌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내용을 파악할 때만 떡은 떡이 아니라 표적이 됩니다.
민중들의 메시야상이 이처럼 하늘의 메시야상과 틀리는 원인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공포 때문입니다. 뭔가 두려움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8-20절에 보면,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가라사대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신대"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다가 잠시 예수님과 떨어져 있던 제자들에게 있어 예수님없는 그 빈 자리에 공포가 찾아들었습니다. 잠사나마 알 수 없는 공포에 휩싸인 이 제자들의 모습은 곧 평소의 민중들의 터전입니다. 민중들은 알 수 없는 공포로 둘러 싸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메시야를 찾고자 한 겁니다.
그런데 그들이 알고 있는 메시야는 기껏 썩을 양식이나 제공하리라 기대하는 그런 엉터리 메시야입니다. 이런 메시야 인식을 가지고 살아있는 진짜 메시야를 만난들 그들은 여전히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결국 예수님으로부터 등돌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답답해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것은 영생도 아니며 진정한 생명도 아니니라"고 말입니다. 민중들은 이러한 예수님 찾으면 또 하나의 공포에 농락당하고 있는 모습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교회 오래 다니고 직분을 맡고 신학교를 졸업해서 목사가 된들 잘못된 메시야 관을 가지고 사는 한, 공포는 늘 따라다닙니다.
그 결과로 사소한 모든 일이 다 큰 공포로 다가서게 됩니다. 그들 나름대로 아무리 수고하고 애써도 잘못된 메시야 관을 가지고서는 문제 해결이 안되고 공포는 그대로 남습니다. 제자들의 입장과 민중들의 처지가 확연히 다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일단 그들의 요구를 거절합니다. 이는 민중들의 메시야 관을 거부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영생을 얻을 양식을 나 예수가 친히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썩은 양식을 얻고자 하는 그 연속된 공포심으로 떨쳐버릴 수 있을까요? 저는 여기서 마태복음 11: 4-5 말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여기에 보면 소경이 나오고 앉은 뱅이가 나오고 귀머거리가 나오고 죽은 자가 나오고 문둥병자와 가난한 자가 나오지요. 여러분들이 이런 자입니까? 아니, 이런 자이기를 원했던 적이라도 있습니까?
세례 요한이 묻기를, "예수여, 당신이 진짜 오실 메시야가 맞습니까?"라고 질문한 거기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사람이 뭔가 가졌기에 더 가지려고 소망을 갖습니다만 여기에 나오는 소경이나 귀머거리나 문둥병자나 죽은 자나 가난한 자들은 이 사회에서 모든 것을 상실한 자입니다. 이들에게는 더 이상 빼앗길 공포같은 것이 있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당연히 갖고 있다고 여기는 건강까지라도 이들에게는 큰 기쁨입니다. 아무런 희망도 없는 이들에게 있어 예수님은 단순히 병고쳐 주시는 분 이상으로 영생까지도 능히 공짜로 줄 수 있는 분으로 이해될 것입니다. 바로 이런 마음이 요구됩니다.
사회가 안겨주는 알 수 없는 공포는 모든 것을 상실한 자, 즉 아예 죽은 자가 된 채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더 이상 공포가 아닐 것입니다. 바로 이런 마음 가짐을 가진 자들에게는 예수님은 떡 이상이요 인간의 어떠한 행함으로도 얻지 못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는 분이지요.
그러나 28절에 보면, 민중들이 아직도 이런 마음이 아니기에 예수님의 뜻을 헤아라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질문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합니까?" 즉 영생을 자기네들이 뭘 하는 것을 통해 획득하리라 여깁니다. 그러나 잘못된 메시야관 속에 갇혀 있는 자들에게는 그런 사고방식을 무엇을 해도 결국 썩을 양식을 찾는 것으로 마감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답변하십니다. "믿으라. 이 예수가 곧 영생할 양식인 것을!" 즉 영생할 양식은 인간이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드님이 공급해 주는 식으로 주어집니다. 마치 오병이어에서 떡과 물고기를 배불리 먹도록 나누어 주듯이 말입니다. 바로 이런 점을 아는 것이 표적을 아는 자요 참된 신자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생존해 있기에 사회로부터 오는 알 수 없는 공포에 주눅이 들어 있는 저희들에게 영생되시는 주님이 함께 있음을 늘 든든하게 여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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