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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요한복음 5:39-47 / 영생과 믿음 본문

신약 설교, 강의(이근호)/요한복음

요한복음 5:39-47 / 영생과 믿음

정인순 2013. 12. 28. 11:11

이근호

http://media.woorich.net/~woorich/성경강해/요한복음-2001/john02010226.mp3

 

 

영생과 믿음

 

2002년 1월 2일 26강

 

본문 말씀 : 요한복음 5:39-47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오면 영접하리라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자 모세니라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믿음을 대해서 이야기를 하십니다. 어떤 것이 믿음이 아닌가 하는 점도 아울러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이 점을 가볍게 보면 안됩니다. 사람들이 흔히 믿음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은 그저 지식으로 아는 것에 불과할 수가 있습니다.

 

믿기 위해서는 우선 아는 것으로부터 출발하거든요. 따라서 사물이나 대상을 골라 잡아서 "나는 이것 저것을 안다"라고 하면서 머리 속에 기억해 놓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나 예수님에 대해서도 이런 식으로 수용해 놓고서는 "믿는다"라고 주장할 수가 있습니다. 과연 제대로 된 신앙이지 오늘 이 본문을 가지고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믿는 것이 참된 믿음이라"는 겁니다. 참 쉽지요? "누구나 다 믿겠다"고 안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이러한 안일함에 예수님의 다음 말씀이 경종을 이르킵니다.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한다"고 하십니다.

 

즉 인간들이 나름대로 지니고 있는 소위 '영광스럽다'는 상태를 염두에 두고서 그 영광의 상태을 가지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해하고자 하는 자들은 결코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하나님의 영광만으로 만족하는 자에게만 이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만을 사모하는 마음 상태에서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을 예수님은 믿음으로 간주하십니다.

 

반대로 이런 만족함이 아니라, "내가 예수님을 믿음으로서 내게 돌아오는 반대급부가 어떤 것이며 어떠한 반사 이익이 생기는가?"를 생각하면서 예수님을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과 더불어 세상 영광도 같이 챙기려는 수작에 불과합니다.

 

39절에 보면,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 영생을 어떻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까? 자신들에게 주어진 있는 모세의 글과 선지자들의 글을 준수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일종의 거래이지요. 가게가 가서 돈 주고 물건 사듯이 내 쪽에서 무엇을 주고 자기가 얻고자 하는 것을 얻으려고 합니다.

 

여기에 대한 좋은 사례가 마태복음 19:16-22에 나와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어떤 부자 청년이 나옵니다. 일단 돈은 많이 소유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빠진 것이 하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것은 영생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영생도 소유하려고 했습니다.

 

영생이란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사람들이 왜 이 영생을 가지려고 합니까? 사람에게는 자기 보다 높은 분이 있으면 마음 한 구석에 압박감을 갖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그것마저 자기 것으로 만든다면 높은 분의 지배권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여기는 겁니다.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일이 바로 이런 심정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에덴동산의 모든 것은 다 허락했습니다. 그러나 단 한가지, 선악과는 따먹어서는 아니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되니 인간에게는 마음 한구석에 미흡함이 생기겠지요. 그때 마침 마귀가 인간에게 다가와서 유혹했습니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것은, 만약 인간이 그것을 따먹게 되면 인간도 자기네들과 같이 신이 될까봐 두려워서 못먹도록 했다. 사실 선악과를 따먹어도 죽지 않고 오히려 너도 신이 된다"라고 했습니다.

 

인간에게는 경계선을 넘고 싶은 충동이 있습니다. 마저 정복되지 않는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인해 매사에 만족함이 다 채워지지 아니합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결국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나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 누구의 후손입니까? 지금 우리는 선악과를 따먹을까 말까 하는 그런 입장에 놓여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말미암아 신도 아닌 주제에 신처럼 행세하는 중에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것이든 타인의 것이든 아직 갖지 못한 것이 있으면 만족함을 누리지 못하는 성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뭐든지 내 소유가 되고 내 것이 되어야 안심을 하는 그 조상의 후손들이 우리들입니다.

 

부자 청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에게 돈은 있지만 영생은 아직 없다고 생각했고 그 영생을 얻기 위해 나름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릴 때부터 지켜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영생이란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는 마음과 이어지지 결코 자기 자신이 신이 덜 되어 안달이 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기서 선악과 따 먹은 인간들이 생명나무 과일을 따먹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빼돌리는 의의를 알아야 합니다. 이렇듯 자기 사랑에 매여 있는 자는 영생과 무관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이 다가오신다는 그 앞에서 인간이 자기 부인이 되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부자 청년을 볼 때, 전혀 영생을 가질만한 인물이 못됩니다. 그래서 이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제안합니다. "네 가진 모든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나를 따라올 의향이 있느냐?" 예수님은 청년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 것과 같습니다. "네가 너를 사랑하느냐 아니면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너로 만족하느냐 아니면 네가 이 예수로 만족하고 싶으냐?"라고 말입니다.

 

부자 청년은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여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영생을 코 앞에도 두고 놓친 것입니다. 정말 이 부자 청년이 하나님의 영광만을 사모한다면 결코 예수님 앞에서도 등돌리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44절에 보면,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즉 자기 자신의 영광을 계속 위하겠다는 의식으로 예수님을 믿겠다는 것은 결코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끝입니까? 아닙니다.

 

오늘 본문 45절에 보니,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자 모세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고소당하는 처지라는 겁니다. 자기 영광을 버리고 예수님의 영광을 바라보든지 아니면 예수님의 영광을 안보고 계속 자기 영광을 만을 추구하든지 이 둘 중의 하나의 운명은 이 세상 어느 인간에게 다 적용된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자기 위에 또 다른 권위자가 놓이는 것을 죄악된 본성으로 인해 거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8장에 나오는 이방인 백부장은 예수님으로부터 큰 칭찬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중에 이만한 믿음을 못봤다"고 말입니다. 그는 어떻게해서 이런 큰 칭찬을 받았습니까? 그의 하인이 병이 들으니 그는 예수님에게 병 고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주님이 직접 가실 것이 아니라 주님의 종에 불과한 저에게 말씀만 해주십사"라고 했습니다. 마치 자기의 군졸들이 자기 명령에 따라 가라 가면 가고 오라 하면 오듯이 자신도 예수님에게 군졸에 입장이라는 겁니다.

 

즉 백부장은 자기 위에 권위자가 계신 것을 만족하며 기뻐했고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정말 놀라운 겸손입니다. 이런 백부장에 있어 영광이란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 뿐일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참 신앙입니다. 만약 이런 신앙이 없으면 그렇게 추앙하는 모세의 그 말씀으로 도리어 책망과 고소를 당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함부로 자기 영광을 위해 모세의 말씀을 거론하는데, 모세는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만을 쳐다 보면서 그 말씀을 했습니다. 따라서 정말 모세의 말을 이해하고자 한다는 오직 하나님과 주님의 영광으로 만족하는 자에게만 통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럴 때 비로소 모세의 모든 글이 오직 예수님과 그 영광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을 발견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을 이용해서 이득이나 보려는 자신을 부인하고 오직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을 감사하고 예수님의 영광만으로 만족하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