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요한복음 5:30-38 / 인간의 증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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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인간의 증거
2001년 12월 26일 25강
본문 말씀 : 요한복음 5:30-38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하지 않고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거하면 내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되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그 증거가 참인줄 아노라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였느니라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거를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은 켜서 비취는 등불이라 너희가 일시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나의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것이요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거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용을 보지 못하였으며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의 보내신 자를 믿지 아니함이니라"
한국 교회에서는 그동안 오랫 동안 복음을 전했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런데 대중들의 복음의 대한 이해는 영 복음적이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복음을 이해하는데 있는 이미 각자 나름대로 선입감이 작용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교회가 복음을 전한다 할지라도 정작 복음을 제대로 알게 되는 것은 인간의 이해도와 상관없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비롯해서 하나님이든 예수님이든 전하기만 하면 자신이 얼마든지 이해 할 수 있다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바로 이런 결과로 인해 오늘날 교회 안에서 복음은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예 중의 하나가 바로 크리스마스 설교에 관한 메스컴에서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목사가 아무리 복음을 전하고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외쳐도 나중에 방송국에서 요약하는 것을 보면 기껏 "가난한 자와 함께 보람있는 성탄절이 됩시다"하는 정도입니다. 이렇게 되면 교회는 사회사업 하는 단체에 지나지 않습니다.
구원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대단히 싫어하고 받아드리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구원이라는 말 자체가 그들에게 못마땅한 개념입니다. 구원받아야 한다는 것은 곧 자신의 현 생활이 비정상이다는 말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어떻게하든 떠나지 않으려는 자에게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면 이 세상에서 손 떼고 떠나야 한다는 것이 되니 얼마나 그들에게 거슬리는 말이겠습니까.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이 납득이 되는 방향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즉 자신이 제시하는 증거에 하나님이 포착이 되는 식으로 자신이 천국이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비단 오늘날 뿐만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바로 이점에 대해서 지적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34절에서 상당히 이상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거를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이 대목을 보면, 사람에게 증거를 취하지 않으면서도 너희에게는 구원을 얻도록 해 주겠다는 겁니다. 어떻게해서 이것이 가능할까요?
그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에게 여러 가지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질문이라는 이러합니다. 자신이 기대하는 답변이라는 것은 사실은 자신이 던지 질문의 범위 안에서 이해되는 식의 답변이기를 기대하는 겁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과연 메시야 이냐 아니냐 하는 것을 파악하는데 있어 이미 잘못된 선입감으로부터 이들은 출발하는 것에 대해서 예수님은 벌써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번 보았던 요한복음에서 이와 같은 말씀이 나왔습니다. 그것은 요한복음 2:25절입니다.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 이 말씀에 보면, 사람의 속을 예수님이 훤히 아시므로 인해 사람으로부터 그 어떤 증거도 받지 않겠다는 겁니다.
물론 오늘 본문에 세례 요한에 대해서 예수님은 언급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세례 요한에게 기대하는 바와 예수님은 달리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세례 요한을 선지자로 알고 그 세례 요한이 전하는 말씀을 자신들이 잘 납득을 해하게 되면 얼마든지 오실 메시야도 알아 볼 수 있으리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례 요한 조차 자신의 영원한 증거자가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단지 일시적인 증거자일 뿐이라고 합니다. 35-36절에 그 말씀이 나옵니다. "요한은 켜서 비취는 등불이라 너희가 일시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나의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것이요"
여기에 보면 예수님은 자신을 영원히 증거할 자로 하나님을 내세웁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수님의 뜻이 오히려 인간들에게 더욱 더 절망적입니다. 왜냐하면 누가 하나님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겠으며 누가 감히 하나님의 영광을 구경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점에 대해서 예수님도 말씀하십니다. 37절에 보면,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거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용을 보지 못하였으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되니 도무지 인간들의 자체적인 이해력으로 아무리해도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왜 하나님은 일을 이런 식으로 진행 시킬까요? 구약 성경에 보면 마치 인간들은 참 선지자와 가짜 선지자를 쉽게 가려낼 수 있는 듯이 보입니다. 신명기 18:22에 보면,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찌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선지자 본인이 한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면 참 선지자요 만약 성취가 되지 아니하면 가짜 선지자인 줄 알라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의 판단력이 잘못된 상태에서 정작 말씀이 성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취 아닌 것으로 곡해 할 수 있고 또 성취된 것도 아닌데 스스로 기대감에 벅차게 성취되었다고 여기면서 가짜 선지자를 참 선지자로 모실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에게 자신이 메시야 임을 증명할 수 있는 표적을 보여달라고 했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내가 보여줄 수 있는 표적인 요나의 표적, 즉 십자가의 표적 뿐이다"는 겁니다. 이미 우리의 마음은 악하고 음란하기에 예수님을 해석하는데 있는 잘못된 선입감으로 판단하기 쉽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능력으로 구원받은 위인이 없는 겁니다. 아무도 없다는 것이 요한복음 3:32에 봐도 나옵니다.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될 수 있는 자입니까? 바로 이점에 대한 암시가 요한복음 3:32절 말씀에 연이어 나옵니다. 33-34절을 보게 되면,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아무도 예수님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증거를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도장을 꽉 받은 자가 따로 생긴다는 겁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까요? 그 도장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성령이라는 겁니다. 하늘에서 오시는 성령이 임할 때만 비로소 예수님이 메시야이며 예수님에게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모든 활동이 곧 예수님이 메시야임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알아 모시게 됩니다.
이와같은 사실을 보다 확실하게 보여주는 구절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2:8-9의 말씀을 봅시다.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여기에 보면 십자가 사건이 터진 이유가 사람들이 자신들의 눈과 귀과 마음을 총동원해도 예수님이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결과라는 겁니다. 만약 그들의 선입감과 이해력으로 예수님을 제대로 알았다면 결코 십자가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만큼 십자가란 인간쪽에서 하나님으로 나아오는 것이 근원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증표입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곧 이어 나오는 고린도전서 2:10절에 보면,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성령'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도장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진정 구원받은 자입니까? 그렇다면 결코 자신의 노력이나 공로가 우리들의 구원에 개입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열성적인 기도나 아름다운 겸손의 미덕이 넘치는 경건한 분위가라도 결코 거기에서 믿음은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으로부터 나오는 그 어떤 증거를 거부하십니다. 어릴 때 목사 가정에서 양육받았다고해서 그것이 곧 신앙이 아닙니다.
참으로 구원받은 자는 모든 공로를 하나님의 몫으로 돌립니다. 하늘의 증거, 즉 하나님은 말씀은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만 우리 마음 속에 남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짜 신앙인이라면,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 즉 "나는 결코 사람의 증거를 받지 아니한다"는 이 말씀 자체를 기쁨으로 그대로 받는 자입니다. 우리의 모든 구원의 과정은 전부 하나님의 솜씨인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때로는 예수님을 인위적으로 끄집어내어 믿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까? 없는 신앙이 억지로 만들어내는 상상해서 믿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참으로 성령이 있는 자에게만 참으로 구세주임을 알게 하신 구원의 방식을 감사하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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