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요한복음 5:19-23 / 예수님 공경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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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예수님 공경
2001년 12월 12일 23강
본문 말씀 : 요한복음 5:19-23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
지난 시간에 안식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예수님이 안식일을 범한 축에 들게 된 것을 보았습니다. 왜 하나님은 예수님을 안식일을 어기는 자로 내세웠을까요? 안식일의 규정을 놓고 보면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는 유대인들이 훨씬 하나님으로부터 칭찬 받을 만한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안식일 제도를 내려주실 때는 이런 모습을 기대 했을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셨는데 놀라운 사실은 그 분이 도리어 안식일을 어기는 분으로 사람들에게 비치게 했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가장 기본인 안식일 법조차 제대로 못 지키면서 예수님은 자꾸만 자신이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외치십니다.
이렇게 되니 사람들은 율법을 취하고 그 대신 예수님을 거부하든지 아니면 율법을 버리고 예수님을 믿든지 결단을 요구받게 되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일을 이렇게 복잡하게 하시는 겁니까? 설사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도 왜 하나님은 일부러 안식일을 어기는 그런 분을 사람들에게 보내셔야 하는지 그 이유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치워버리고 그 빈자리에 예수님으로 채워놓고자 하십니다. 율법을 주신 당사자가 곧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이제 와서 율법을 치워버리고 하나님의 아들로 그 자리를 채우시려고 하니 율법을 받은 인간들로서 대단히 충격적인 사태에 직면해 있는 겁니다. 율법을 대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것으로 구원과 복을 받으라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단정할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인간들은 자신만만합니다. 백이면 백, 천이면 천, 율법을 본 자들은 다 그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인간의 허점이 있었습니다. 율법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지시와 명령을 바라보면서 어느 인간인들 우리들은 이 법을 지킬 수 없다고 여기겠습니까!
예를 들면 신명기 28장을 잠시 거론하겠습니다. 2-6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자... 이 말씀을 보면서 어느 인간이 "나는 애초부터 이 복을 받을 권한이 없어!"라고 여기겠습니다. 모든 인간들은 생각하기를, "그래,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사 나에게 복을 주시려고 이 율법을 주셨구나. 물론 완전하게 다 지켜내지는 못하겠지만 최선을 다해 날이 갈수록 많이 순종하면 이 순수한 마음을 하나님이 보시고 복을 주시겠지"라고 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정신 상태로 인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배척할 수밖에 없게 하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사람들은 율법을 대하면서 과연 하나님의 아들을 필요로 하겠습니까? 율법을 대하면서 자신말고 하나님의 아들이 따로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해서 주신 말씀이 어떻게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결론 지울 수 있단 말입니까? 인간에게는 불가능하지요.
사람들은 하나님과 자신만 있다면 얼마든지 구원의 축복이 가능하다고 보고 율법을 통해서 그것을 확인하려고 합니다. 즉 하나님과 자기의 삶을 연결시켜보자고 합니다. 그런데 그 연결이 성사되지 않는다고 알리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연결될 수 없음을 말해줍니다. 그분은 피를 인간들 앞에 쏟아내었습니다. 얼마든지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교류가 가능하다고 여기는 인간들에게 웬 피 쏟음입니까? 예를 들면, 찬양 집회 장소에 가보세요. 한결 같이 주장하기를, 찬양이 인간들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까지 흐뭇하고 영광스럽게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그 찬양 소리가 가득 찬 현장에 십자가의 피 흘림 사건이 터져 보세요.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그 어떤 인간의 찬양도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없다는 겁니다. 비록 구약에 보면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예수님의 오심과 죽으심 앞에서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찬양과 기도와 안식일 지킴이 하나님께 열납 될 수도 없고 영광될 수 없음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리어 예수님을 처단함으로서 이 세상이 율법이 있음으로 인해 정상적으로 잘 돌아가고 있는 것으로 여기려고 했습니다. 바로 이점이 하나님께서 찾고자 했던 인간이 원래의 죄성 입니다. 즉 인간은 이런 이유든 저런 이유든 하나님의 아들을 배척할 수밖에 없는 요소가 이미 마음 속에 박혀 있다는 겁니다. 비록 율법을 잘 지켜보겠다는 갸륵한 마음, 그것이 도리어 하나님의 아들을 죽게 만드니 그 어찌 죄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죄란 바로 예수님을 불필요하게 보는 마음입니다. 로마서 3장에서 보면, 모든 인간이 죄인이매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이 모두 죄인들뿐이라고 단정했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율법을 받았다는 이유로서 자신들은 죄인들이 아니며 하나님께 사랑 받고 구원받을 권리가 있다고 자부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20절에 보면, "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랑을 몽땅 예수님에게 다 넘겼다고 되어 있습니다. 인간들은 자신들이 직접 하나님과 거래할 수 있다고 자부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다른 계통으로 넘어갔다고 여기지를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을 사랑하사 구원해 주시려고 율법을 주었기 때문에 이 당연한 사실에 근거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중도에서 다른 분에게 모두 넘어갈 리가 없다는 겁니다. 또 설사 다른 분에게 넘어가도 인간 자신들은 그분에게 하나님이 넘겨준 사랑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여깁니다. 마치 폭포가 일 단계 떨어지고 중간에 잠시 흐르다가 다시 이 단계로 그 폭포수가 그대로 떨어지게 되리라 여깁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식은 오늘 본문 22절에 의해 다 깨어집니다. 22절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즉 하나님의 사랑이 주님을 거치게 되면 그대로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심판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그러면 인간에게 줄 사랑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어디로 사라졌습니까? 21절에 보면 그 사랑이 이렇게 바뀌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즉 아들이 원하는 자에게만 심판 속에서 사랑을 받아 구원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예수님의 주장은, 그 당시 사람들의 상식적인 신학과 완전히 뒤엎는 이야기입니다.
율법을 받았다는 그 자체를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의 대상으로 간주되고 사랑도 받을 수 있다고 여긴 것이 그 당시의 신앙이요 신학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을 예수님이 독점한다고 나서니 누가 그 예수님의 말씀을 곧이 듣겠습니까. 예수님이나 자기들이다 다 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고려하고 아버지가 목수였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예수님의 이러한 주장은 당연히 사람들로부터 미움과 배척을 받을 수밖에 없는 빌미가 되는 겁니다.
공경? 정말 예수님이 이런 주장을 하는데 어느 인간이 예수님을 공경하겠습니까? 귀신들렸다고 욕하는 것이 율법에 대해서 신뢰성을 가진 자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무마될 수 있는 사태가 아닙니다.
23절에 보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런 터무니없어 보이는 주장을 늘어놓은 그 예수님을 공경하지 않는다면 돌아오는 것은 하나님이 예수님 자기에게 넘겨 준 저주와 심판뿐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자기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의인은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이 점을 안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율법이 있고 또 그 율법을 보니 자기들이 열심히 하면 지킬 수 있는 내용들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 방식이 있는 한 그 사람은 아들을 공경하기 글렀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예수도 믿고 율법도 지켜야 된다고 여깁니다. 그것은 곧 예수님이 추가적 율법을 주신 분으로 간주합니다. 이런 성향은 아직도 자신들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된다고 여기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이미 예수님에게 넘겨져 있습니다. 이제 구원되는 것은 예수님이 원하는 자에게 국한됩니다. 어떤 자가 구원된 자입니까? 자신이 전적으로 죄인이기에 오로지 예수님만 공경하는 그런 자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오직 우리가 죄인이었으면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냈겠습니까? 또한 피를 쏟아내었겠습니까. 그 앞에다 저희들은 다시 세워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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