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요한복음 5:24-29 / 심 판 본문
이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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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판
2001년 12월 19일 24강
본문 말씀 : 요한복음 5:24-29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5: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5: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5:27 또 인자 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5:28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오늘 이 말씀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여기는 유대인들을 보고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물론 결국에는 우리에게도 해당될 것입니다. 모든 심판은 하나님의 손에 있고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심판을 행하시는 주인공을 바꿨다는 이야기를 예수님이 하시고 계십니다. 예수님 자신이 심판하신다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심판을 받는 우리들의 입장에서 보면, "참 이상스럽다. 하나님이 왜 직접 우리에게 심판하시지 않고 왜 심판을 예수님이라는 특정 인물로 바뀌었느냐?"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혹은 어떤 사람은 자포자기하는 식으로 "에라 모르겠다. 하나님이시든 누구이시든 그저 우리들은 심판 받을 준비만 하고 있으면 됐지 누가 심판을 하느냐 하는 것이 우리 운명과 무슨 상관이 있담" 하실 것입니다. 바로 이런 문제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에게 심판을 일임하신 것입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게 된다"고 여기는 바로 이런 생각을 품고 있기에 예수님이 나서서 심판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인간들이 하나님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점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갖지도 않고 설사 전해도 믿지도 않고 오로지 자신이 알고 있는 상황에만 묶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실제로는 군대를 제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꿈속에서는 아직 제대하지 못해서 초조해 하고 있는 경험 같은 경우입니다. 하나님이 제시한 상황은 하나님의 아들로 통해 심판을 감행하시는 대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을 인간들은 전혀 감 잡지 못하고 계속해서 기존에 자신이 알고 있던 심판 방법을 고수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점으로 인해 이들 인간들은 지옥 가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현실 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심판을 받는다고 여기는 사람은 아직도 구원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고집하고 있는 겁니다. 구원받지 못한 증거 중의 하나가 예수님을 통한 심판의 의의를 감 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교들은 하나님이 벌리시는 심판의 대비해서 자기 절제와 자기 관리와 신앙 생활에 열심을 내고 있었습니다. 이 죄는 상황 판단을 못한 죄입니다. 하나님 쪽으로 일을 어떻게 하시는가에 대해서는 관심 없고 하나님이 뭐라든지 나는 내 식으로 심판에 대비하겠다는 겁니다.
좀 더 쉬운 예를 들면, 6.25 사변이 터져서 서울 지방 법원에 근무하는 판사나 검사나 심지어 변호사까지 다 보따리 싸들고 부산 쪽으로 피난을 갔는데,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피고는 빨리 재판 진행하라고 고함치는 격입니다. 이 피고는 판사, 검사 세계에서 무슨 일이 터졌는지를 전혀 믿지 못하고 자기 딴에 심판 받겠다고 그 법원의 현장을 안 떠나고 있는 식입니다. 너무나도 자기 위주입니다.
우리는 민요에 '회심곡'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가사를 보면, 살아 생전에 부모한테 효도 못하면 나중에 죽어 지옥 가서 고생 많이 한다는 내용입니다. 회심곡 내용대로 믿는 자들에게 있어 심판의 기준이 딴 것이 아니라 부모한테 효도하느냐 아니하느냐의 여부입니다. 물론 불교 신자들은 이 주장에 동의하련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심판 기준이 되겠지요.
하지만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까. 이들은 각자 심판의 기준에 나름대로 갖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그런 기준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무관심의 표시입니다. 바로 이것으로 인해 그들은 여전히 심판과 저주의 대상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에게 심판을 맡기시므로 말미암아 인간의 심판 기준을 마치 불도저로 오징어를 납작하게 만드는 식으로 밀어붙이려고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예수님에게 일임하시므로 말미암아 예수님 이 외에 심판에 대해서 딴 소리하는 자를 심판하시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이런 주장을 도저히 수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항상 하나님에게만 종속되어 살아야하며 심판의 기준도 하나님이 알려준 만 유효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게는 "네가 뭔데?" 하는 식으로 대했습니다.
이런 태도가 마태복음 9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어떤 중풍병자가 예수님으로부터 고침을 받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 주위를 바리새인들과 유대 성직자들이 둘러서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하나님 관을 잘 꿰뚫어보시고 중풍병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러한 선언은, 죄 사함에 있어 오로지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만이 하실 몫이라는 점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임을 감안하시고 의도적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과연 그들이 이 발언에 시비 걸고 나섭니다. "참 방자하다. 인간의 죄를 씻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인데 어찌 네가 감히 그런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가?"라고 했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과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어느 말이 쉬운 말인가?" 이 말씀은 둘 다 인간들이 감히 못해내는 일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달 따는 것이 어렵습니까 별 따는 것이 어렵습니까? 둘 다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는 일이며 이 둘을 논하는 것이 인간 수준에서는 무의미하지요. 바로 예수님은 그런 위치에 계신 분입니다. 거기에 비해 유대인들은 그런 예수님의 모습 자체가 하나님을 모독하는 악마가 역사 하는 것으로 보였던 겁니다.
그러면 어떤 자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알고 믿는 자입니까? 오늘 본문 28절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즉 너 나 할 것 없이 다같이 무덤 속에 있어 보세요. 비로소 누가 심판 주이며 누가 생명을 줄 수 있는 분이며 누가 저주받아 마땅한 자인가가 확연해 질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이나 오늘날 우리들이나 자신을 저주받아 그냥 무덤에 짓눌러 있어야 될 자로 간주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비해서 나름대로 선한 일에 매진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런 자세는 곧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마음가짐입니다. 우리는 모두 무덤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고 또한 당연히 그러해야 합니다.
구원될 자격이란 아예 우리에게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름대로 구원받을 노력을 하는 바로 이러한 행위를 묵살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예수님을 심판 주로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인간들은 주장하기를, 구태여 예수님이 오실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직접 하나님과 상대해서 그 결과로 심판이든 구원이든 받겠다고 나섭니다. 우리는 생명이 아니며 생명이란 오로지 예수님뿐이라는 점은 우리가 무덤에 가 있을 때 확실해질 것입니다.
왜 우리는 이런 상황을 자신의 상황으로 안 받는 겁니까? 24절에 보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이 28절까지 이어지는 겁니다. 즉 무덤에 이를 때까지 말입니다.
그 때 사람들은 예외 없이 아들의 음성을 들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미리 와서 이 말씀을 하니까 사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하는 겁니다. "어떻게 해서 예수라는 자의 말만 들으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질 수 있는가? 심판도 없이" 하고 말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말씀드립니다. 아직도 심판이 남아 있다고 여기는 그자들만 바로 심판을 받아 지옥가게 됩니다. 마치 판검사 다들 피난 갔는데 아직도 재판 받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미련한 피고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예수님을 통해서 심판을 실시하는데 이러한 하늘의 사정을 완전히 도외시하고 아직도 직접 하나님에게 심판을 받겠다는 것은 큰 실수는 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예수님을 욕 먹이고 하나님을 욕 먹이는 자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너무 크게 달라짐을 오히려 큰 기쁨으로 받아 이제는 아예 심판이 없음을 감격 속에서 자기의 미래로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은 자기 입장만 믿고 예수님 입에서 나오는 하늘의 진리를 외면하는 그런 불 신앙적인 신자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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