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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요한복음 3:16-21 / 빛과 성도 본문

신약 설교, 강의(이근호)/요한복음

요한복음 3:16-21 / 빛과 성도

정인순 2013. 12. 28. 10:48

이근호

http://media.woorich.net/~woorich/성경강해/요한복음-2001/john01101014.WMA

 

 

 

빛과 성도

2001년 10월 10일 14강

 

본문 말씀: 요한복음 3:16-21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사람이 가장 행복한 순간은, 무상으로 얻은 것이 자신이 노동해서 얻은 것보다 더 크게 다가 올 때입니다. 세상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은혜로 사는 것임을 알 때, 행복은 저절로 따라 오는 것입니다. 하루를 살더라도 행복하게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20년, 30년, 지금보다 더 수명을 연장해서 그 때에 행복하겠다는 생각보다 오늘 행복하고 오늘 죽더라도 상관없는 것이 더 낫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행복하지 못하는 주제에 어떻게 10년 후를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행복을 못 느낀 사람은 10년 뒤까지 계획을 잡아 그 때에 행복하겠다고 나섭니다. 이런 마음을 먹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불만족스러우면 그런 생각을 다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한 순간이라도 아신다면 그 순간부터 행복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과연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 받은 적이 있습니까? 어떤 자는 교회 가서 돈벌었다고 으스대는데 그런 경험이 없는 자도 과연 은혜 받은 자입니까?

 

오늘 본문을 보게 되면 이러한 생각이 잘못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3:16절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극악무도하고 인정사정 없는 테러범은 빈 라덴이 만약이 이 말씀을 우리에게 하면서 이 말씀을 믿으라고 한다면 과연 우리는 이 말씀을 선뜻 믿겠습니까? 혹시 이 말씀을 그대로 믿다가는 빈 라덴처럼 광신도가 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할 것입니다. 극악무도한 자가 이 말을 했다고 해서 우리가 이 말씀이 못 믿을 말씀입니까?

 

사실 요한 복음 3:16절만 믿어도 우리는 광신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빈 라덴처럼 광신자가 될까봐 겁을 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을 얻기 위해 교회 오면서도 그 행복은 자신의 꿈이 달성됨으로 얻으려 합니다. "나는 광신자는 안 되어 어야 해 광신도는 안 될 꺼야"라고 다짐에 다짐을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행복은 그렇게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 복음 3:16절을 그대로만 받아들이면 그 때부터 이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아무리 해도 불행한 자가 되지 않습니다. 누구에게 말입니까? 이 말씀을 그대로 믿는 광신자에게만 그러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요한 복음 3:16절의 말씀을 외면하고 안 믿으려고 한다는 겁니다. 각양 각색의 광신자를 비난하고 공격하면서 자신은 하나님 말씀으로부터 멀찍이 거리를 둠으로서 광신자가 안된 것으로 바른 신앙을 갖추고 있는 사람처럼 여기려고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는 조금은 받아들이면서도 조금은 밀쳐야 된다는 조심스러운 마음이 있기에 요한 복음 3:16절을 대하면서 이 진리에 푹 빠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빈 라덴처럼 광신자 안되고 균형 잡힌 신자가 된다는 구실 하에 말입니다. 그래놓고는 교회 와서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하고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런 태도는 곧 이것입니다. 현재로서는 자신에게 행복과 만족함이 없으니 나름대로 달성 목표를 정해놓고 그것을 달성함으로서 행복을 얻고자 하는 겁니다. "나는 절대로 기독교 광신자는 안 되어야지. 빈 라덴처럼 안 되어야지"라고 결심을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도 고개를 돌려버립니다. 성경이 잘못이 아니라 흠뻑 성경 말씀에 안 빠지려는 나의 태도가 자신의 인생을 비극과 불행과 멸망의 덩어리로 만듭니다. 우리의 인생은 각자 자신이 망칩니다. 교회나 국가가 나를 망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 신앙으로 인해 망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해서 아들까지 보내셨는데 우리는 자신이 만든 꿈으로 달려가고 그것을 달성해 달라고 횡포를 부립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요한 복음 3:16절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광신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이것만 있으면 다 됐습니다"라고 믿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행복은 없습니다. 홀가분한 것도 없습니다. 매일 자신이 애써서 얻은 대가만 찾아 헤매는 불행의 늪 속에서 살게 됩니다. 설교의 대가, 기도의 대가, 헌금의 대가, 심방의 대가만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의 노동의 대가보다도 내가 준 것이 더 크다는 것을 왜 모르나?" 하나님이 무상으로 주신 어마어마한 은혜의 값어치를 놓쳐서는 우리에게는 행복이 없다는 말입니다. 물론 이러한 신앙 인이 되고자 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광신자가 된다는 불안감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너무 많이 알아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만 알고 사는 자가 되지 않겠는가. 안 돼! 안 돼! 그렇게 되면 내 노동의 대가는 어디서 찾지?"라고 걱정부터 튀어나옵니다.

 

20절에 보면,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라고 되어 있습니다. 빛으로 오지 않는 그것이 곧 악의 최종 모습이라는 겁니다. 우리네 생활 상식에 의하면, 혹시 나쁜 짓을 했으면 용서받기 위해서라도 빛을 찾아 나설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악이란 그런 생각조차도 장악하고 있게 됩니다.

 

즉 자신은 악이고 '예수님이 빛이다'는 그 이유 때문에 악이 악으로 드러날까 바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않는 겁니다. 악한 자들도 모르고 있는 악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까?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빛으로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악입니다. 그렇다면 신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21절에 보면,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신자의 개념이 개인적으로 얼마나 완전하고 완벽하게 살았느냐가 아니라 "너는 지금 누구를 바라보면서 살고 있느냐?"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일반 상식과 일반 종교에서는 개별적인 존재로 놔두고 네 자체가 선하냐 악하냐가 결정짓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너는 지금 누구를 바라보며 사느냐?"라는 그 방향성으로 심판이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이러다 보니 전적으로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사는 광신자 아니고서는 모두 어두움에 속한 자입니다. 왜냐하면 바라 볼 대상은 여전히 자기 자신이 되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21절 끝을 다시 보면,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신자가 빛 되신 분을 알아보고 그 빛으로 나올 수 있는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께서 그렇게 조치하고 계시다는 겁니다.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자신의 신앙 고백으로 삼는 자가 곧 신앙 인입니다.

 

그러나 불신자는 이런 은혜를 달갑게 여기지 않습니다. 빛으로 나오고 아니 나오고도 자신의 능력의 대가로 결정지으려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행함의 능력을 거부하는 빛이 밉다는 겁니다. 그러나 신앙 인은 고백합니다. 요한 복음 3:16절을 현실로 받아들인 것은 하나님이 내 안에서 행하신 결과이지 내 자신이 행한 노동의 결과가 아니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인간 세계를 두 조각을 냅니다.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신뢰하는 자는, 자신의 그런 태도를 어두움이라고 비난하는 빛을 미워해 더욱 빛으로 오지 않게 된다는 겁니다. 성도의 상식 같으면, 하늘에서 영생이 내려온 것이 너무 고맙고 황송스러워서 자신의 공로나 노동의 대가를 초개같이 버리게 됩니다. 하지만 불신자의 상식 같으면, 인간의 노동이나 열심의 대가로 스스로 빛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 어떤 위로부터의 은혜에 대해서 푹 빠져들고 싶지 않는 겁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불행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요한 복음 3: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를 반복해서 읽어도 이 말씀을 자신의 마음으로 믿을 수 있는 것으로 자꾸 간주하고 싶은 겁니다.

 

그러나 제대로 요한 복음 3:16절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자신은 철저히 어두움이기에 하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결코 빛으로 올 수 없음을 아는 자들이 이 요한 복음 3:16절도 온전하게 이해 될 수 있는 겁니다. 즉, 사랑의 힘을 아는 자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실 때에 사랑의 전부라고 보내셨기에 그것을 받는 성도는 '사랑의 전부'라고 이해하지만 반면에 불신자는 그 '전부의 사랑'에 대해서 약간이 호의로서 처리합니다. 그리고 곧장 세상에 나가 세상 안에서 행복과 만족을 얻고자 시도합니다.

 

이렇게 되면 성경 말씀은 천 명이면 천명 각각 해석이 다 올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면, 어느 부자청년이 예수님에게 나아와서 묻습니다.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습니까?"라고 마태복음 19장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 청년은 말하기를, 자신은 어릴 때부터 10계명을 다 지켜 왔다는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것은 그 10계명 안에 안 들어 있더냐 이 말입니다. 부자 청년은 자기 입장에 십계명을 해석한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요한 복음 3:16절 해석에 대해서 마찬가지입니다. 백이면 백, 해석이 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5%만 믿는다고 주장 할 자가 있다면 어떤 사람은 10%만 믿는 다고 주장할 자도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50%, 99% 믿는다고 할 사람도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자신 쪽으로 달성하는 것으로 요한 복음 3:16절을 논한다면 그 사람은 아직도 하나님의 사랑만으로 만족 못해서 세상 쪽에서 만들어 놓은 자기 꿈으로 행복을 찾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3:16절을 전적으로 믿는 광신도 될까봐 되레 염려하는 자일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광신자가 되지 못하는 자들은 자신의 노동의 대가를 통해서 행복을 얻고자 하는 자입니다. 하늘의 큰사랑으로 내려주신 은혜를 조금만 얻겠다는 것은 은혜 자체를 자신의 노동의 산물로 전환하는 것을 은혜로 삼겠다는 어두움 적 생각입니다. 따라서 은연중에 빛 되신 예수님을 미워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바로 이것이 악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여러분 이제부터 확실하게 광신자가 됩시다. 비빔밥 먹을 때에 그릇 깨끗이 다 비우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약을 입에 털어 넣을 때, 단숨에 탁 털어 넣듯이 말입니다. 그런 식으로 광신자가 됩시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한 번이라도 모든 것을 비우고 하나님의 큰 은혜에 맡기는 광신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