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요한 복음 3:9-15 / 땅의 일 본문
이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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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일 2001년 10월 3일
본문말씀: 요한 복음 3:9-15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성경을 보게 되면, 예수님하고 대화한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적인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에게 나온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관심 두지 않았던 하늘의 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우리는 이 점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저 단순히 자기의 일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찾아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가 하늘의 일에 관심을 가져야 비로소 성경이 담고 있는 하늘의 정보를 한껏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니고데모에게 답변하시는 예수님이 말씀을 우리가 같이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관심사가 하늘에 두고 있어야 합니다. 즉 니고데모의 물음과 같은 물음을 가지고 예수님에게 나와야지 일상적인 일을 가지고 예수님에게 나와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자신의 윤리적, 도덕적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에게 나와서는 아니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완성에 관심을 가져서는 아니 된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윤리적, 도덕적 문제에 신경을 쓰는 것은 불안과 공포심을 갖고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윤리적, 도덕적 문제는 결국 관심사가 자기에게로 돌아오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관심은 하나님에게 돌아갑니다. 니고데모는 하나님의 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보면. 하나님은 복음 중심으로 일하십니다. 교회 중심으로 일하지 않습니다. 달리 말씀해서 인자 중심으로 일하십니다. "누가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느냐?"에 관심이 가 있습니다. 니고데모가 어떻게 질문을 했던지 예수님의 답변 속에는 예수님 이야기 밖에 안 들어 있습니다. 15절이 그러합니다.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교회 설교 단에서 이 이야기말고 무슨 이야기 할 것이 있습니까? 목사의 설교 속에서 세상 적인 이야기가 전혀 없다고 하더라도 불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니고데모의 관심사 속에는 그런 세상 적인 것이 들어있지 않은 채 질문을 드렸기에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하늘에 관한 이야기를 답변으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상당히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 나옵니다. 12절을 보면,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땅의 일과 하늘의 일을 나누고 계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믿으라고 제시한 땅의 일과 니고데모가 이해하려고 마음 속에는 예상한 땅의 일과는 상호 핀트가 맞지 않습니다. 따라서 니고데모는 하늘의 일도 깜깜하게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압니까? 바로 이점이 중요합니다. 니고데모가 어디에서 예수님과 상호 핀트가 안 맞아서 이해를 못하고 있는가를 우리도 알고 있어야 우리도 니고데모와 같은 오류를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니고데모는 무엇과 무엇을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느냐 하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본다는 대목과, 그것이 곧 하나님이 일하시는 땅의 일이라는 대목을 쉽게 연결시키지 못해서 고민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쉽게 연결됩니까? 우리도 이 점에 있어 니고데모와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예수님은 성령의 일을 이해 못하고 있는 니고데모에게 인자, 자신의 일을 가지고 설명해 나가십니다. 즉 왜 사람이 바람이 부듯이 성령으로 인한 거듭남이 필요한가 하면, 그것은 인자의 땅에서 들리심과 연관 있다는 겁니다.
14절에 보면 이 내용이 나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자, 이 점에 대해서 니고데모나 우리들이나 다같이 잘 납득이 안되지요. 성령 이야기하시다가 왜 결론을 인자가 들려야 하는 이야기로 빠지는 겁니까? 우리는 이 '들리심'의 내용을 알아야 오늘 본문이 풀이는 겁니다.
이 '들리심'의 구체적 내용은 요한 복음 12:32-34절에 다음과 같이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 이러라 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 이 말씀을 보아도 '들리심'의 진정한 뜻을 모르시겠습니까?
여기서 들린다는 말은 그 전에 필히 죽게 된다는 뜻입니다. 죽어서 들린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그 당시 무리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알고 있는 메시야는 하늘에 영원히 계시는데 어떻게 이 땅에서 죽게 되는 충격적인 사태가 일어날 리가 있느냐?"하고 반문한 것입니다. 즉 "들려야 한다"는 말씀에는 "죽게 된다"는 내용이 벌써 함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죽는 구세주 인식, 이것을 니고데모에게 답변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이 이 땅에서 죽는 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땅의 일이어야 할까요? 그 점을 예수님은 자신의 "들리심"과 옛날 광야에서의 모세가 든 놋뱀과 관련시키고 있습니다. 민수기 21:9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여기에 보면, '뱀에게 물린 자마다'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뱀에게 물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에게만 모세가 든 놋뱀이 의미가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씀 드려서 예수님이 들려야 하는 이유는, 다른 말로 말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서 죽으셔야 하는 이유는, 놋뱀 시절 식으로 말하자면 '뱀에게 물린 자' 때문이라는 겁니다. 어떤 사람이 모세가 치든 놋뱀을 쳐다보겠다는 것은 스스로 "나는 뱀에게 물려야 마땅한 인간이다"라는 점을 인정해야만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모세가 놋뱀을 높이 쳐들고 쳐다보라고 이야기한 것은 달리 이야기해서 "너희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마땅히 불뱀에 물러야 싸다"라는 것을 우선인정하고 있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자로 자기 딴에 확신을 가지고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이 놋뱀 이야기를 하신 것은, 모세의 놋뱀과 예수님의 들리심과의 연관성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겠다는 예수님의 말씀도 이해 못하고 있다는 점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왜 인간은 다시 태어나야 합니까?"라는 질문이나 "왜 예수님은 죽어서 들려야 하는가?"하는 질문과 동일하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모세의 놋뱀에서 출발하자는 겁니다. 오로지 '뱀에 물린 자'에게만 효능이 있는 그 차원에서 예수님은 들려야 한다는 겁니다.
이 사실을 모르게 되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늘 나라를 보게 된다는 뜻도 모르게 됩니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충분히 아는 자라야 지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함의 정당성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행하신 땅의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성령 이야기했다가 왜 끝에는 십자가 이야기로 니고데모의 대화를 마무리하는 겁니까? 도대체 성령과 예수님의 죽으심과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이점을 알기 위해서 시편 51:9-11절을 같이 봅시다. "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여기에 보면, 죄와 성신의 관계가 나옵니다. 즉 우리 인간의 죄는 성신이 임해야지만 용서와 해결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자기 스스로 힘으로 못한다는 말입니다. 오죽했으면 다윗이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라고 했을까요? 성령이 임했다는 말 자체가 이미 우리에게는 죄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임재하신 성령이 아니고서는 우리의 죄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자... 이제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서 보면, 예수님은 "인자를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인자가 무엇을 했습니까? 죽어서 들리는 일을 하셨습니다. 왜 죽었다가 들여야 하는 걸까요? 그것은 마치 모세가 놋뱀을 든 것 같이 우리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저주와 징벌 속에 놓여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즉 인간들이 죄인이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죄를 씻는 것은 시편 51편에 나오는 말씀처럼 성령을 받아 계속 임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 성령이 떠나지 않아야 될까요? 그것은 요한 복음 12:32에 나오는 말씀처럼 메시야 들림 기능 속에는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로 이끄는' 기능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 복음 12:32절을 같이 볼까요?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말씀은 놋뱀을 쳐다보기만 해도 나아 버리는 경우와 같습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자는 거듭 태어남의 의미도 모르는 사람이요, 예수님이 죽어서 들여야 하는 이유도 모르는 사람이요, 더구나 놋뱀을 쳐다보기만 해도 낫게 되는 그 연유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성령, 예수님의 죽으심, 부활 이 모두는 인간이 전적으로 죄인 됨을 기본 전제로 하기 위한 땅의 일입니다. 니고데모가 자신이 전적으로 뱀에 물려야 하는 죄인의 인식을 갖지 않기에 이 땅의 일 중 어느 것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교회 올 때 무엇에 관심을 두고 옵니까?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이 알고 싶습니까? 하늘의 하나님이 무엇을 집중 겨냥해서 일하시는 지가 궁금하십니까? 하나님은 모두 복음 중심입니다. 예수님 하신 일 중심입니다. "인자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는 복음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합니까? 예수님의 하신 일은 모두 인간의 죄를 지적하기 위함입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오해하고 있듯이 우리도 자신이 하나님의 보내신 불 뱀에 전적으로 물려 죽어도 마땅한 죄인 인 것을 알지 못한다면 복음도 모르는 자입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면 비로소 그 때에 자신의 죄인 됨과 모세가 놋뱀을 높이 쳐들어야 될 이유와 그것도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의 뜻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참으로 들어야 될 내용은 바로 이런 내용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잘못된 접근으로 인해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혼동한 적은 없었습니까? 이제부터 예수님이 알려준 것만으로 기뻐하는 저희들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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