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6/06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복음과 믿음

요한 복음 2:13-22 / 성전과 부활 본문

신약 설교, 강의(이근호)/요한복음

요한 복음 2:13-22 / 성전과 부활

정인순 2013. 12. 28. 10:44

이근호

http://media.woorich.net/~woorich/성경강해/요한복음-2001/john01091911.WMA

 

 

 

성전과 부활

2001년 9월 19일

 

본문 말씀: 요한 복음 2:13-22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륙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예수님의 일대기가 표적의 연속입니다. 기적이란 흔히 요란스럽고 획기적이고 깜짝 놀랄만한 신기한 일이라고 간주하고 있습니다. 홍해가 갈라지고 요단강이 갈라진 것은 분명한 기적입니다. 그러나 요단강 갈라진 것만 기적이 아니라 광야에서 하나님 따라 나왔던 백성들이 징벌을 받는 것도 기적입니다. 왜냐하면 둘 다 "하나님은 여기 계시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표시가 되기 때문입니다.

 

기적은 그 현상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나타내는 바가 더 중요합니다. 자기 백성을 광야에서 멸망케 하시는 방식으로도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감추고 들키고 싶지 않는 죄가 하나님 앞에 나타나는 것도 섭섭해 여기지 마시고 오히려 하나님의 기적으로 기뻐해야 합니다. 다윗이 간음을 하고 살인을 했을 때, 그에게 주어진 기적은 딴 것이 아니라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죄를 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때 다윗은 눈물로 그 기적을 기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상상 속의 멋진 세계만 천국이라고 보지 마시고 초막이나 궁궐이나 우리 주님과 함께 있는 이것 자체가 천국인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요한 복음은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복음입니다. 이것만해도 큰 기적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님보고 표적을 내 놓아라 는 겁니다. 말씀되시는 예수님이 육신이 된 것 만해도 표적으로 충분한데 이것은 거부하고 표적을 보여달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현재 자신들이 성전 중심으로 신앙 생활을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나 사람이 보거나 누가 봐도 제대로 신앙생활하고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발언입니다.

 

자기 딴에 완벽하게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는데 난데없이 예수님이 와서 시비를 거니까 이는 분명 예수님 쪽에서 뭔가 자신들에게 실수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는 겁니다. 유대인들은 지금 확신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말씀하신 그대로 자신들은 완벽하게 순종하고 있어 도무지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겁니다. 우리가 유대들의 이런 주장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한다고 하면서 흔히 유대교인 식으로 성경을 이해하고 실천하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행위에다 중심을 놓고 성경 전체를 보고 있습니다. 16-17절에 보면, "비둘기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런 행위를 보면서 그들은 그 많은 구약 성경의 구절 중 어느 하나를 잡아내는 데 그것이 바로 시편 69:9절의 말씀, 즉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를 끄집어내고 있습니다.

 

원래 이 말씀은 다윗이 하나님에게 기도하면서 나온 말씀입니다. 시편 69편을 잠시 보면, 1절에는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물들이 내 영혼까지 흘러 들어왔나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4절에는 "무고히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내 머리털보다 많고 무리히 내 원수가 되어 나를 끊으려 하는 자가 강하였으니 내가 취치 아니한 것도 물어주게 되었나이다"라고 되어 있고 이제 9절에 보면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훼방하는 훼방이 내게 미쳤나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다윗은 무고하고 억울한 일을 당해서 하나님에게 하소연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난데없는 원수들과 적들이 와서 자기를 무리하고 고통을 주고 있으니 하나님이 어서 자신을 도와 달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다윗을 공격하는 적들이 어떤 취지에서 다윗을 공격하느냐 하면, 주의 전을 위한 열성으로 하나님의 종 다윗을 공격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제자들 눈에는 성전에서 비둘기를 팔고 돈을 바꾸고 소양을 판매하는 행위가 다 주의 전을 위한 열성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비둘기나 소나 양을 판매라는 것이 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사야 56:7절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다윗과 솔로몬 왕에 의해 이곳에 성전에 세워져 있다는 것은 누가 뭐라도 분명한 하나님의 계시요 축복으로 간주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사야 56:7절에 의거해서 번제와 희생을 드리는 것도 분명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기쁘게 받게 되면 곧 기도의 응답이 주어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누가 뭐래도 이곳 성전은 하나님의 집의 역할을 충실히 하게 됩니다.

 

특히 본문이 나오는 이 날은 유월절입니다. 이 유월절 축제 때는 전 세계 각지로 흩어졌던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구원과 언약을 기대하면서 성전으로 몰려들어 옵니다. 수백 만 명이 모여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제사에 참여하자면 희생제물을 가지고 와야 하는데 먼 외국에서 어떻게 양이나 소를 몰고 오겠습니까. 현지에서 조달하는 것이 편리하지요. 그리고 그 양과 소나 비둘기를 사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그 외국돈은 현지민들이 쓰는 돈으로 바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판매 행위와 환전 행위는 모두 이사야 56:7절 같은 말씀에 준해서 이 성전이 진정한 '하나님의 기도하는 집'이 되게 하기 위한 조치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현재 자신의 제사나 예배 활동과 거기에 수반되는 각가지 조치들이 곧 진정한 말씀 성취에 해당한다는 누가 뭐래도 자부심과 자신감이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대항해서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난리를 피웁니다. 제자들은 여기에 대해서 예수님의 행동을 정당화할 성경 구절을 생각해 놓았고, 유대인들은 이런 횡포를 부릴 정도의 인물이 과연 예수님이 될 수 있는지 그 권위성에 대해서 기적 실현으로 가름하겠다고 나섭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성전에서의 행위를 다음과 같이 이해해서는 아니 됩니다. 즉 "성전 안쪽 깊숙한 곳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곳인데 더럽고 시끌법석한 장사치가 밖에 떠드니 성전의 거룩 성을 훼손하기 때문에 장사하는 사람은 성소에서 될 수 있는 대로 멀리 떨어진 구획에서 장사하시라는 말씀이구나"하고 말입니다.

 

성전의 참 성전 됨이란 말씀 성취를 실제 내용으로 갖추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실제로 사 행위를 반복하는 것이 말씀 성취에 준한 진정한 성전이라는 반면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시편 69:9절의 나오는 말씀, 즉 엉터리 성전 고수의 관심사와 열성으로 인해 하나님의 택한 기름부음을 받은 하나님의 종이 수모를 당하는 현상이 일어나면 이는 말씀이 성취된 것이기에 그 피해 당사자가 곧 성전이라는 겁니다. 이처럼 성전이란 말씀 성취가 구체화 된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성전이 아닌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장사치를 성전에서 내쫓는 것은 그들만 내쫓아 버리면 참된 성전이 된다는 말이 아니라, 이런 유대인들 식으로 아무리 예배하고 제사해 봤자 성전 자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선언해 버리는 행위입니다. 시편 69:9절을 생각하라는 겁니다. 성전에서 제사 드리면서 제대로 열성을 다하여 하나님의 전을 위한다는 그 행위가 도리어 참된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다윗을 핍박하는 원수로 전락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유대인들은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면 유대인들 입장에서 시편 69:9절을 자기를 위한 말씀으로 얼마든지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예수 당이라는 이단 집단들이 나름대로 하나님의 전을 바로 세운다는 의도를 가지고 지금 잘 예배드리고 제사하는 자기들 유대인들을 공격하니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시편 69:9절의 성취가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따질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은 단호하게 예수님의 잘못을 기적하기 위해 아예 성전에 대한 기적을 요구하게 됩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이 성전 건축을 완성하느냐에 있습니다. 이것을 미리 아시는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은 표적을 제시합니다. 19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대단히 놀라워했습니다. 20절에 보면,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자 여기서 과연 예수님은 이 성전 건축물을 사흘만이 지어주었을까요?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말씀의 담긴 진리를 다음과 같이 깨달았습니다. 21-22절에 보면 그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이는 인간들이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하신 대로 아무리 제사하고 희생예물을 바친다할지라도 그것은 성전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말씀 성취는 인간들 손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여기에 바로 요한 복음 전체 취지가 담겨 있습니다. 즉 말씀이 육신이 된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모든 말씀은 예수님의 육신 됨으로 완성된 것입니다. 아직도 더 성취를 필요로 하는 구절은 없습니다. 말씀이 성취된 그 세계 안에서만 기도가 진정 가능한 법입니다. 유대인들은 유대인들 나름대로 자신들을 피해자라고 여길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들만큼은 성경을 성경대로 온전히 지킨다고 자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그 누구라도 성경을 자기 입장을 변호하기 위한 방책으로 해석하려고 할 것입니다. 과연 이런 진위를 확실하고 결정지을 기준은 없을 까요?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보고 난 뒤 예수님의 하신 말씀도 믿게 되었고 성경이 어떻게 완성되는 것도 믿었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잘못되었다고 선언했지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오히려 사람들이 잘못되었다고 부활을 통해서 확실히 해버렸습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인 것만 잘못된 것이 아니라 평소에 그들이 믿어왔고 해석해 왔던 모든 성경 해석도 거짓말이었으며 엉터리였습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많은 계시와 기적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변화들에 위협을 느낀다든지 부러움을 가져서는 아니 됩니다. 모든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로 통해 완성된 것입니다. 성전 안에서 제사 행위는 아무 짝도 소용없는 짓입니다. 46년 간 짓는 화려한 예배당도 성전이 아닙니다. 성전은 하나님에 의해서 직접 만들어졌습니다. .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 체 입니다. 그 안에서만 말씀은 성취를 보고 기도도 가능합니다.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신기한 일에 마음 빼앗겨서는 아니 됩니다. 그런 것은 계시로서 가치가 없습니다. 우리가 믿을 것은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자기 신상에서 일어난 일에 예민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은 구원의 참 내용을 상실케 합니다. 참된 부활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뿐인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쓸데없는 변화와 현상에 놀아나서 끌려 다니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하시고 오로지 말씀이 육신이 됨으로 곧 그것이 말씀의 완성이요 성취임을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