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요한 복음 1:35-45 / 제자들 본문
이근호
http://media.woorich.net/~woorich/성경강해/요한복음-2001/john01082908.mp3
|
제자들 2001년 8월 29일 본문 말씀 : 요한 복음 1:35-45
1: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1:36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1: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거늘 1: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좇는 것을 보시고 물어 가라사대 무엇을 구하느냐 가로되 랍비여 어디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1:39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 보라 그러므로 저희가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제십시쯤 되었더라 1: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는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1: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1: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1: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1: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1: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흔히 우리들은 제자와 스승과 관계라는 것을 지적인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로 알고 있을 것입니다. 스승을 선택하는 것도 순전히 제자들의 판단력으로 결정짓습니다. "내가 저 사람을 스승으로 모실 때에 얼마만한 지적인 도움을 얻어낼 수 있을까?"를 먼저 고려한 다음 그 사람을 스승으로 모시고자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이러한 내용이 전혀 해당되지 않습니다. 스승을 발견한 그 순간, 그들은 다른 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더 이상 자기 것이라는 것도 남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통치권 속에 들어가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통치권이란 오늘날 민주 사회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겁니다. 모두가 평등한 인간이라고 알고들 있고 또 그 점이 좋아서 민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남녀 노소를 막론하고 인간 위에 인간 없고 인간 밑에 인간이 없다는 것을 늘 자각하면서 사는 것이 오늘날의 현대인들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스승이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복종의 관계가 아니라 이용 대상이 될 뿐입니다. 돈주고 지식을 사는 겁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런 관계에 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자기 인생을 그냥 가위로 오려 내듯이 도려내어 주님에게 바치고 만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통치권 속으로 자진해서 투신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예수님에게 복종하고자 합니다. 더 이상 남겨진 자기 인생이라곤 없습니다. 전부 털어서 주님께 다 드렸습니다. 죽이든 살리든 이제부터는 예수님의 몫입니다. 예수님의 행동 여하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결정되는 그런 상황을 이들은 도리어 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흔히 교회 다니는 정도로서 제자 됨이 가능하다고 알고 있는 것과 다릅니다. 주체 권을 예수님에게 양도하고 자기에게는 상실한 자들입니다. 도대체 구원이라는 것이 무엇이기를 이런 정도까지 나아가야 하는 것일까요?
그 적절한 예가 구약 아브라함에게 나타납니다. 아브라함은 고향 갈대아 우르 지방을 군말 없이 떠나야 했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리고 친척마저 등지고 미련 없이 떠나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장래를 결정 한 것은 단지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이요 계시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 듯이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요 하나님의 친구라는 호칭까지 갖게 됩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전환과 못잖은 것이 예수님의 제자 됨입니다. 구원이란 바로 이런 겁니다. 획기적인 투신이 있어야 합니다. 여전히 자기 인생이고 여전히 나의 삶이라면 구원이라는 것이 그 사람에게 아직 해당되지 않은 겁니다. 목숨도 아깝지 않고 바칠 위인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분의 부름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오늘 본문, 43절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여기에 보면 '나를 좇으라'라는 명령이 나옵니다. 이것은 마치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기를 "너는 갈대아 우르를 떠나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거라"라는 명령과 동일합니다. 왜냐하면 둘 다 구원이 가능한 능력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빌립이나 베드로나 안드레에게 배알도 없고 자존심도 없고 사리를 분별할 능력도 없단 말입니까? 아닙니다. 다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명령은 이 모든 것을 이깁니다. 그럴만한 능력과 내용을 지니고 있습니다. 구원의 방법은 어제나 오늘이나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통치권 속에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기어 들어감으로 구원되게 하십니다. 이 방법 외에 다른 방법으로 구원되는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인생을 좌지우지하고 휘감아서 일방적으로 장악한다는 것을 기분 나쁘게 생각하는 구원받은 자는 없습니다. 도리어 참 다행스럽게 여깁니다. 나의 일생을 내 손에 맡겨지지 않는 것을 도리어 기뻐하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제자 된 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예수님에 관한 내용이 세 가지가 나옵니다. 첫째는 세례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말한 겁니다. 35절에,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는 안드레가 베드로보고 예수님을 소개하는 대목입니다. 41절에 나옵니다.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세 번 째는 45절에 나옵니다. 이것은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예수님을 소개하는 대목입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제자들은 예수님을 1) 어린 양, 2) 메시야 3)선지자가 기록한 선지자..이상 세 가지로 소개하고 또 그 소개를 들었습니다. 자... 여기서 이들이 옛날 하나님이 내리신 말씀을 곧이곧대로 성취될 것인가를 확실히 마음에 두고 있었는지 드러납니다. 즉 모세 및 구약 선지자가 한 말씀은 빈 말이나 흐지부지 될 예언이 아니라는 겁니다.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아무리 일상이 바쁘더라도 최고의 관심사는 말씀 성취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과연 이들처럼 말씀 성취에 관심이라도 있습니다. 개척 교회 한답시고 사람들을 고대하는데 사람들 기다리지 말고 구름 타고 오실 예수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만약 말씀에 아예 관심이 없다고 한다면 세례 요한의 전한 예수님에 관한 소개나 제자들의 소개가 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만약에 수천 쌍의 처녀와 총각들이 모여 합동 미팅을 하는 자리에 나가 마이크 쥐고 외치기를 "저는 오늘 모세 및 선지자들이 이야기하신 그 메시야를 만났습니다. 그 분은 세상 죄를 지고 간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라고 외쳐 본 들 누구하나 호응해 주겠습니다. 지금 한창 맞선 보기에 온통 정신이 솔려 있는데 말입니다. 또 병원에 입원해 있는 자에게 "메시야를 만났다. 내가 소개할까?"해도 그들은 별 반응을 나타내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현 소원은 빨리 퇴원하는 것이요 어서 건강한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은 이미 말씀에 관심이 있다는 겁니다. 메시야를 손꼽아 기다렸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을 고대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모세와 선지자의 말처럼 성취할 위인을 학수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 꼭 하늘을 향해 주먹질하는 것만을 말할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에 무관심하면 그것이 하나님을 무시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찾는데 있는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내세웠다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요? 요한 복음 1:14절에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겁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으면 이미 말씀이 예언한 모든 것은 완성 단계에 돌입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말씀이 육신이 된 그 분의 통치권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주어지는 것은 저주밖에 없습니다. 요한 복음 3:18절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여기에 보면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것입니다. 이 얼마나 다급한 일입니까. 제 개인 문제로 인해 공격받는 것은 입을 다물 수 있습니다마는 복음이 아닌 것을 증거 하는 것은 저는 단호하게 이단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중간에 나서서 대충 조정에 나설 입장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든 아니하든 이미 말씀은 육신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취지에 무관심하거나 무시하거나 모독하는 무리는 무조건 이단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육신이 되게 하셔서 이 세상을 둘로 분리시켜 나가시려 합니다. 하나는 천국 가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다른 쪽은 지옥 가는 부류입니다. 옛날 모세나 선지자에게 남긴 말씀은 그 하나라도 안 이루어짐이 없습니다. 바로 이 점을 제자들은 굳게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세례 요한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예수님을 소개하니 그 제자 중 두 사람이 당장 예수님을 따라 나서게 된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것에 무슨 의미가 담겨 있는 걸까요? 출애굽기 23:32-33에 보면 모세는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합니다. "너는 그들과 그들의 신과 언약하지 말라 그들이 네 땅에 머무르지 못할 것은 그들이 너로 내게 범죄 케 할까 두려움이라 네가 그 신을 섬기면 그것이 너의 올무가 되리라"
여기에 보면, '언약'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절대로 이방 민족과 언약하지도 말고 그들의 신을 섬기지도 말라는 겁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과 달리 거룩이 구분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여기에 합당한 계약을 체결케 합니다. 바로 여기에 동원되는 것이 하나님의 희생 제물입니다.
그 내용은 출애굽기 24:5-8에 나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번제와 소로 화목제를 여호와께 드리게 하고 모세가 피를 취하여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계약이란 "앞으로 너와 나 사이에는 이런 계약의 내용에 따라 이어진다"는 확정을 말합니다.
이 언약의 피에 동원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그러니까 세례 요한이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고 했을 때, 제자들은 이미 하나님의 계약이 완료 상태로 돌입했음을 알고 자신의 전부를 예수님에게 맡겨버린 겁니다.
여러분,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이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회에 나가면 하루에도 수 십 명을 만나게 되고 수 백 개의 상황을 당하게 됩니다. 이 때는 이 사람 눈치, 저 때는 저 사람 코치 보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 가운데서 흔들림이 없어야 하는 것은, 성도는 오로지 계약에 준해서 새 사람으로 분류되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란, '하나님 어린 양'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듣는 자들이며, '그리스도'가 얼마나 소중한 분인 것을 아는 자이며, '모세와 선지자가 예언한 분'이 얼마나 다급하게 필요한 분인지를 알고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도 과연 그러합니까?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사태가 터진다 할지라도 계약의 내용을 믿고 굳건하게 구별되게 살아가는 저희들이 됩시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아직도 내 것이라는 것이 남아 있다면 그것마저 예수님의 통치권 밑으로 던져버리게 하옵소서. 말씀이 육신이 됨을 세상에 알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신약 설교, 강의(이근호) > 요한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요한 복음 2:1-11 / 가나에서의 표적 (0) | 2013.12.28 |
|---|---|
| 요한복음 1: 45-51 / 나다나엘 (0) | 2013.12.28 |
| 요한복음 1:32-34 / 성령 세례 (0) | 2013.12.28 |
| 요한복음 1:29-31 / 세상 죄 (0) | 2013.12.28 |
| 요한복음 1:19-28 / 세례 요한이 증거한 것 (0) | 2013.12.2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