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아모스 8:1-2 / 여름 실과 한 광주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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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녹취:이한례 21강-암8장1-3(과일 광주리)120325-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 아모스8장1절에서 3절까지입니다. 구약성경 1282 페이지입니다. 아모스8:1-3 “주 여호와께서 또 내게 여름 실과 한 광주리를 보이시며 가라사대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가로되 여름 실과 한 광주리니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은즉 내가 다시는 저를 용서치 아니하리니 그 날에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변할 것이며 시체가 많아서 사람이 잠잠히 처처에 내어비리리라 이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설교자가 설교하거나 선지자가 말을 할 때 사람들한테 호의를 살 수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내용들을 우리가 증거 하려고 애를 쓰게 돼 있습니다. 왜냐 하면 계속해서 교제가 이루어지고 계속해서 사귐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그 가운데서 하나의 권력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가 쓴 이번에 나온 책 ‘복음이냐, 교회냐’ 책에 보게 되면 스님들이 머리 깎는 것도 그리고 신부들이 유니폼을 하나로 통일하는 것도 그것도 권력행위라고 제가 언급했습니다.
사람은 사람 없이는 외로워서 미칩니다. 외로워서 못 살아요. 뭔가 알아주는 사람, 또는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 그리고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 그 모임 속에서 비로소 사람은 사는 맛을 느끼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모스에게 ‘여름 실고 한 광주리를 보인다.’고 돼 있어요. 야, 왜 갑자기 하나님께서 좋은 소리, 그들이 원하는 소리,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축복 이야기, 잘 된다,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그런 긍정적인 설교를 해도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을까 말까 하는데 하나님께서 여름 실과 하나를 끄집어내서 언급했다. 환상 중에 보이면서 이야기하는 거예요.
환상이라 하는 것은 이제 끝났다. 마지막이다. 더 이상 말해도 소용없다. 그럴 때 보여주는 겁니다. ‘내가 말해도 너희들이 안 듣는데 구태여 내가 사람 말 할 수 있어?’라고 할 때 환상이 등장하는 거예요.
예레미야 1장 11절에 보면 여기도 하나님께서 살구나무를 보여주는 겁니다. 자, 이것이 갑자기 왜 여름실과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그 이유가 있습니다. 아모스 6장 1절에 보면 “화 있을 진저 시온에서 안일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라고 돼 있어요.
사람이라 하는 것은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이 딴 데보다 더 안정되고 지진도 일어나지 않고 경제적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아서 평생 마음 두고 마음 편안하게 살고 싶은 그 공간이기를 원하는 겁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람은 자기 고향을 찾고 싶어요. 그런데 한번 보세요. 명절 날, 설 날, 추석 날, 10시간~12시간씩 차타고 와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광주까지 내려가고 심지어 무안까지 내려가면서 얼마나 오래 걸립니까? 자식들이 와서 ‘고향이다. 그리운 고향, 어릴 때 놀던 고향.’하고 와서는 한 이틀, 한 사흘 가는가, 그 다음부터는 궁둥이가 들썩들썩 빨리 가려는 거예요. 그러면 부모는 ‘얘야, 좀 더 있다 가라.’ ‘바쁩니다.’ ‘있다 가라.’ ‘바쁩니다.’ 그저 빨리 내빼고 싶고 또 아내는 옆구리 푹 찔러서 옆구리 다 멍들게, ‘가라, 빨리 가라, 형님도 갔다. 우리고 빨리 가자. 빨리 처갓집에 가자.’ 푹푹 쑤셔서 옆구리 멍이 벌겋게 들어서 빨리빨리 빠져 나가야 돼요.
아이, 고향이 어디 있습니까? 서울에서는 고향 간다고 바리바리 싸들고 정종 한 병 들고 와서는 고향에 오면 고향에 아예 귀농하던지 그것도 아니고 한 이틀 궁둥이 들썩하다가 심심하면 고스톱 쳤다가 마지막에는 싸우고 초반 끗발 하다가 한바탕 해서 돈 물어내라 해서 후다닥 핑계대고 다시 가는 거예요. 서울 가면 고향 가고 싶고 고향가면 지 집에 가고 싶고 어딥니까? 우리가 머물 곳이 어디에요? 어느 자립니까?
아까 이야기 들으니 집사님 이사 간다 하는데, 저도 이사를 열댓 번 다녔습니다만 이사를 왜 가는 거죠? 안정감이 없는 거예요. 머물 때가 없는 겁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 행동하는 것, 몸부림친다는 것, 돈 벌려고 하는 것, 전부 다 뭐냐 하면 나만의 든든한 그러한 공간, 장소, 그거 하나 장마하려고 그렇게 애를 쓰는 겁니다.
여자들이 결혼하는 것도 불행 끝, 행복 시작이잖아요. 제가 아내하고 오늘 아침에 사담을 했습니다. 여자가 결혼을 하는 것은 불행을 자처한 것이다. 그런데 그 불행을 자처할 때 비로소 결혼하기 전에 알았던 행복과 사랑을 불행 속에서 새로운 사랑과 행복을 찾는다. 만약 결혼을 안 해버리면 그냥 혼자 살면서 누리는 나 혼자 자유를 만끽하는 그것이 행복의 전부고 사랑의 전부인 줄 알지만, 이렇게 어려운 환경 가운데 같이 고생한 가운데서 비로소 내가 사전에 예상도 못한 전혀 새로운 차원의 행복과 사랑이 나오기 때문에 남자나 여자나 결혼을 하는 것이 옳다. 왜, 고생을 사서 해야 되기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마는 제 아내야 내 말을 항상 반대하니까, '나는 불행하려고 결혼한 적 없다.’라고 한마디로 끝내버리죠.ㅎ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 우리는 항상 내 든든한 거, 나만 안전하고 든든하고 행복하면 모든 세상만사가 다 잘돼가는 줄 오해하고 있어요. 그런데 본론이 뭐냐 하면 실과 한광주리 이야기를 왜 하느냐, 그게 올무였습니다. 든든하다 할 때에, 예를 들면 든든하다고 앉아있을 때에 보자기로 묶어버립니다. 묶어놓고 그걸 과일바구니처럼 달랑달랑 ‘잡았다. 드디어 심판에 집어넣을 광주리를 내가 만들었다.’ 하는 겁니다.
범인을 궁지로 몰아넣기 위해서 그물을 쳐놓았는데 경찰이 쳐놓은 줄 모르고 카페로 유인해서 돈 받아 내려고 유인할 때 전체가 포위된 걸 모르고 자기는 거기서 돈 받고 튀면 되는 줄 알고 들어올 때, 그게 옴팍 사로잡히는 거예요. 우리는 ‘든든하다.’라고 여기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든든하지? 많이 든든해. 자, 보자기 싸라.’하고 보자기 싸버리면 그걸 달랑 크레인 갖고 딱 들어버리면 그게 뭐냐, 여름 과일 바구니입니다. ‘걸려들었지. 걸려들었지.’ 딱 바구니를 드는 거예요.
결국 이 말은 뭐냐 하면, 사람이라 하는 것은 죄를 맘대로 짓는 게 아니고 자기 맘에 안 드는 식으로 죄를 짓게 돼 있는 게 인간입니다. 그러니까 그냥 사시면 예상 못할 죄의 올무에 서서히 빠져 들어가는데 그렇게 빠져 들어가는 그것이 ‘여자가 결혼하는 것이라‘ 이 말입니다. 아까 제가 말한 여자가 결혼하는 이유가. ’결혼하는 것은 죄가 아닐 거야. 죄가 아닐 겁니다.‘라고 그렇게 생각 들겠죠. 하지만 결혼 해보세요. 해보면 결혼하기 전에는 짓지 못했던 죄가 결혼하고 난 뒤에 죄를 지으라고 주께서는 결혼을 하게 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뭐냐 하면 ‘나는 내 맘대로 죄를 안 짓겠어.’라고 할지라도 인간은 지 맘대로는 아니지만 필히, 반드시 죄 짓게 돼 있는 상태로 주께서는 쓸어 담아서 그걸 여름 과일 광주리로 딱 포장을 그렇게 만든다니까요. 그러니 이 이야기가 어떤 긍정적인 이야기보다 기쁜 이야기예요. 가만있으면 깔때기로 빠지듯이, 모래톱에 빠지듯이 우리는 내가 알지 못하는 죄를 어느새 짓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전략이고 작전이었습니다. 이 기쁜 소식이 뭐냐 하면, 맘대로 사세요! 그러면 당신은 반드시 ‘죄 지을 수 있습니다.’ 이 말 이예요.
그런데 그것이 아니고 죄를 안 지으려고 이건 죄니까 안 짓겠다고 노력하고 내빼는 그것은 어느 전략에 매이지 않으려고 하느냐 하면 주께서 하시는 여름 과일 광주리 만드는 그것에 끼어들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몸부림치는 거예요. 그러면 그런 인간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모스에게 여름 실과 한광주리를 보이면서 이스라엘이 든든하다고 여기는 그것을 보자기에 싸서 ‘내가 용서치 아니하리라.’ 불행의 시작이죠. 멸망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러한 과정을 필히 거쳐야 되는 겁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은데요. 흔히 사람들 보면 성경을 보게 되면 성경을 보기 전부터 ‘내가 지금까지 죄 지었는데 이제부터 예수 믿고 죄를 안 져야지.‘ 하는데 한번 생각해 보세요. 지가 그동안 ’내가 죄 졌다고 하는 그것은 지가 알고 있는 죄는 죄 짓거나 안 짓거나 할 수는 있을 거예요. 그러나 그에게 기다리는 것은 자기가 미처 ‘이것도 죄야? 이런 것도 죄냐 말이야.’ 하고 알지 못하는 죄가 남아 있는데 거기서 자기가 그것을 피해버리면 그건 하나님의 전략과 차질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냥 곱게 사세요. 하고 싶은 대로 사시하고요. 하고 싶은 대로 살다 보면 다 구덩이에 빠지게 돼 있고 ‘아, 빠졌구나.’ 이렇게 되시면 그것이 인간은 필히 이런 절차를 밟아서 구원하게 돼 있습니다.
성경말씀을 해석하면서 오해를 했지만 제가 기존교회 이렇게 교역자나 교회 평을 죽 들으면서 여러 가지 못마땅한 해석이 뭐냐 하면, 장로님들이 기도할 때 성경을 인용하는데 우리교회 장로님은 그런 분이 안 계시니까 맘대로 이야기합니다만, 이런 대목을 해요. 마태복음 12장 20절에 보면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이 대목 있잖아요. 그 대목을 아는 구절이 그것밖에 없는 것 같아요. 수시로 이걸 들은풍월로 외워서 하는데 어쩌란 말 이예요? ‘하나님이여 다 주소.’이거거든요. 그거 인간 갋아서 뭐 합니까? 돈 벌어서 무슨 짓 하더라도 눈 한번 질끈 감아주시고 ‘이번 일만 잘 되면 헌금 듬뿍 할 테니까 눈 질끈 감아주세요.’ 평소에 그렇게 살아간 모양이라.
그러니까 여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하는 그 대목을 굉장히 인용하는데 이 원래 대목이 뭐냐 하면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이 말은 뭔 뜻이냐 하면 심판이 너를 이길 때까지 나는 너희들을 계속 지켜보겠다. 그런 뜻 이예요. ‘그래, 그래 상한 갈대가 상한 갈대같이 살아야지, 옳지, 그것도 상한 갈대야. 옳지, 꺼지는구나, 심지가 가물가물 꺼지려 하네, 아니야 더 가물가물 거려야 돼, 옳지, 더 가물거려야지.’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에 대해서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우리가 개과천선한다는 말은 없습니다. 개과천선하니까 갑자기 사자성어 생각이 나네요. 쾌도난마, ㅎ 난 뭔 뜻인지 몰랐는데 나중에 케이블 보니까 나오네요. 주님께서는 너무도 잘 아시기 때문에 우리가 개과천선한다는 이것은 개과천선하겠다는 그 심보 자체가 그것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어요. 무슨 교회 와서 개과천선을 합니까? 개가 웃겠어요. 제발 주께서 파놓은 함정에 좀 푹~ 빠져주세요. 빠지면 그게 우리의 안정된 자리예요. ‘아, 여기가 내가 미처 몰랐던 나의 죄의 자리구나. 아이쿠, 편하다.’ 그 자리가 우리의 고향 이예요. 죄인의 고향이 그 자리예요.
사막에 가보세요. 개미들이 모래톱이 미끄러지면 거기서 헤쳐 나오려고 몸부림치는데 결국은 소용없습니다. 미끄러지는 모래를 어떻게 당합니까? 지가 모래에 올라타 있는데 모래가 떨어지면 함께 미끄러지죠. 서울에 자주 가는데 지하철 타게 되면 저는 찾아요. 혹시 담배피우는 담배녀 없나, 혹시 나이 많은 사람에게 대드는 그런 막말녀 없나 찾는데 내가 있는 곳에는 조용하니 점잖아요. 책 읽고 가끔 휴대폰....있는데, 그런데 지하철이 복잡할 때는 정말 짜증납니다. 그래서 지하철 안타고 시간이 걸려도 버스타고 가는데, 사당역이나 신도림역에는 이건 마구 밀어대는데 이건 대구 지하철은 지하철이 아닙니다. 완전히 지옥 칸 같아요.
그럴 때 세상은 나 혼자 착하고 나 혼자 반듯하게 살고 이거 꿈도 꾸지 마세요. 이런 일 없습니다. 고등학교 때나 대학교 때 집에서 돈 대주고 공부할 때는 지가 개혁도 부르짖고 나라도 정권 바뀌고 내가 국회의원 되면 뭐 한다고 하죠. 막상 세상에 나오고 직장생활 하게 되면 같이 미끄러지면 같이 우르르 미끄러집니다. 여기 밑에 미장원도 화요일에 노니까 답답해요. 남의 동네가 화요일 날 노는데 지는 수요일 날 놀지, 그런데 다 같이 놀아야 되니까.
이 세상이라 하는 것은 같이 모래톱에 같이 가는 거예요. 가면서 ‘아, 이게 내 코스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 속에 여름실과의 말씀이 생생히 살아있는 말씀의 사람이 되고 ’아, 나는 착 하려고 하는데 하나님이 안 도와주고 난 착 하려고 하는데 세상이 안 도와주고, 난 착 하려고 하는데 이거 마귀시험이니 어쩌니 핑계 대는 것은 아직도 지가 뭔가 개과천선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보통 착각하는 게 아니에요.
세상은 우리 마음대로 되는 세상이 아님을 이미 주님께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럼 세상은 어떻게 되는가, 도대체 불편한 세상, 내 맘대로 안 되는 세상, 착하게 살도록 방치하지 않는 세상, 교회 나와서 예수 믿고 싶어도 예수 못 믿게 만드는 그 세상, 도대체 누가 이일을 저지르게 하는가, 요한계시록 20장에 보면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더라”
참 복잡하긴 복잡해요. 이런 이야기나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 아모스에 나오는 여름실과 이야기나 공통점이 뭡니까? 결국 두 이야기의 공통점이 뭡니까? 그 공통점이라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심판 때가 돼야 세상이라 하는 것이 그 본질과 정체가 다 드러난다는 겁니다. 이걸 성경 말씀을 통해서 니가 미리 눈치 채고 알아채면 고걸로 된다는 겁니다. 아! 올무에 빠졌구나. 그리고 거기서 빠져나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구나. 죽어서 빠져나오지, 살아생전에는 못 빠져 나갑니다. 살아생전에 집단적인 범죄에서 우리는 혼자서 독자적으로 독립할 수가 없는 거예요. 말단 사원 같으면 제외된 줄 알지만 말단 사원이 나중에 승진해서 고급 관료가 되면 지가 앞장서서 말단 사원들 고려해서 지가 먼저 총대들고 나쁜 짓을 해줘야 지 하나 나쁜 짓 한 것 때문에 저 사람들이 나쁜 짓 덜 하는 숭고한 안중근 의사 같은 그런 구조로 모든 게 엮여져 있습니다.
이 세상에 안정된 곳이 어디 있습니까? 주님께서 심판하기로 작정하고 아예 작심을 하시고 세상으로 하여금 홀로 착함이 성사되지 않도록 주께서 의도적으로 일부러 일을 그렇게 한 겁니다.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고 머리 깎고 중 된다고 해서 남보다 덜 나쁜 짓하고 그런 것 없습니다. 수녀 돼서 저희끼리 모여서 유기농 채소 기르면서 기타 치면서 가스펠송만 부른다고 해서 그 수녀들의 몸이 젊어지는 게 아니에요. 죄 값으로 온 몸이 흉측하게 흙이 돼 가는 겁니다. 그 가운데도 심판이 있고 그 가운데도 죄가 있고 범죄가 있는 겁니다.
오늘 본문 3절에 보면 “그 날에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변할 것이며” 궁전이라 하는 곳은 나라에서 가장 안정된 곳입니다. 나라는 망해도 궁전은 망하면 안 된다는 것이 모든 것의 취지죠. 그런데 “그 날에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변할 것이며 시체가 많아서 사람이 잠잠히 처처에 내어비리리라” 시체가 많아서 처리를 못해서 처처에 사람들의 시체가 나가떨어져 있다 말이죠.
누가 그렇게 하셨는가, 주께서 이미 이 광경을 전부 다 우리에게 내다보고 있고 반드시 추적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이렇게 된다. 그러니까 이 시체 중에서 내가 하나 빠져나올 생각은 아예 하지를 말아라. 중요한 것은 이 사실을 미리 눈치 채면 나, 내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에서 벗어나서 확대해서 세상은 더불어서 같이 더불은 중에 나구나. 그렇다면 내가 거기서 혼자 똑똑하고 혼자 의롭고 착하다는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나만의 착각이죠.
우리가 전도할 것은 뭐냐 하면 바로 이미 여름 실과 한광주리! 이런 보자기를 주께서 이미 보자기 속에서 사람들이 꾸물거리고 노닥거리는 이야기를 보자기 속에서 일으키는 작용이 오늘날 지금 눈에 보이는 모든 세계입니다. 석유문제, 핵문제, 선거문제, 이 모든 것이 같은 보자기 내에 놓여있는 겁니다. 우리는 거기에 대해서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만약에 정권이 바뀌면 나중에 세금이 늘어난다든지 이렇게 되면 ‘아, 그때 대통령 잘 찍을 걸. 국회의원 잘 뽑을 걸.’ 언젠가는 그 영향력이 우리한테 다 돌아오게 돼 됩니다. 그런데 대통령을 잘 찍은들, 국회의원을 잘 찍은들 그건 죄 아닙니까?
말을 쉽게 가겠습니다. 나한테 불리하지 않고 유리하게 한 조치가 미처 내가 옛날에 몰랐던 새로운 죄가 나로 하여금 발휘되는 그 순간입니다. 그러니 아예 이 땅에서 우리가 하나님 보자기 속에서 혼자 의롭게 살려고 생각하는 그 발상 자체가 잘못된 거예요.
광주에 가서 그런 이야기했습니다만 사람이 자기 인생에 대해서 기쁘고 즐겁게 본다는 것은 그 사람을 중지시켜 놓고 봤기 때문에 그런 오해가 생기는 겁니다. 뭐든지 중지시켜 놓으면 ‘야, 내가 이런 인간이 되다니, 아! 내가 생각해도 대단해.’ 그런데 그 순간에 이미 그 순간에 나는 변하는데요. 그래서 뭐든지 이렇게 스톱시켜 놓고 보면 그 자체가 우상이 돼 버립니다. 그래서 뭐든지 자기 인생은 주께서 말씀에 의해서 떠밀려 가는데 떠밀려 가면서 우리 자신을 스톱시켜 버리면, 사진에 착 찍어 보면 나는 또렷한데 옆에 있는 사람들은 굉장히 화면이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늘어져서 흐릿하게 보이는 경우가 있어요. 그건 나는 내 중심으로 보기 때문에 나만 또렷하게 보고 남은 안 또렷하게 보이거든요. 그런 오해를 우리는 매일같이 하는 거예요.
우리는 같이 빠른 속도로 같이 변합니다. 문제는 불신자들은 자기가 어디로 변하는지 그걸 모르고 있다는 것과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악마가 만든 세상이라는 것이 드러나기 위해서 주께서 우리를 활용한다는 그 점이 뭔가 다른 겁니다. 그래서 말씀을 맺겠습니다. 그냥 사시면 우리가 어제 몰랐던 내가 미처 몰랐던 죄가 오늘의 삶을 통해서 새롭게 발견하는 기쁨을 얻을 겁니다. ‘아! 요런 죄 때문에 주께서 나의 착함으로 인하여 나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 너도 똑같은 인간이야.‘라고 깨닫게 할 때 더 이상 우리 자신을 우상화 시키지 않는 심적인 부담에서 우리는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저는 잘 돼야 돼요. 남들은 망해도 저는 성공해야 돼요. 저는 안 아파야 돼요. 저는 이빨도 아프면 안 되고 저는 똑똑해야 되고 최고가 돼야 돼요.‘라는 그러한 부담, 그런 스트레스에서 우리는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요새 TV 거의 안 봅니다마는 만날 나오는 것이 알칼리성으로 체질을 바꿔라. 그래서 저도 안 듣는데 자꾸 나오니까 읽혀져요. 닭고기 가슴살 먹고, 바나나 먹고, 채소 많이 먹고, 쌀밥은 다 현미로 바꾸고, 이 이야기는 전에 충청도 지방에 갔을 때 유기농을 장려하는 어떤 의사분이 있는데 그 사람한테 교육받은 그대로 다 나와요. 몇 가지 우유 먹지 말고, 고기 먹지 말고, 대구 의료원에도 그런 사람 있답니다. 고혈압 오를 때는 그 사람한테 가면 직방인데 하여튼 ‘먹지 마라’로 일관해요. 고기 먹지 말고, 생선 먹지 말고, 우유 먹지 말고, 쌀밥 먹지 말고, 또 한 가지 있는데 한 가지는 잊어버렸어요.
그걸 듣는 순간 ‘하나님께서 이걸 안 먹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건강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된다는 것을 확인시키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또 자기 자신을 정지해 버린 거예요. 그런데 실제로 고기 안 먹고 우유 안 먹고 생선 안 먹고 닭고기 안 먹고 그 다음에 쌀밥 안 먹을 때마다 ’내가 혈압 내려가면 반드시 먹고 말거야. 치토스, 반드시 먹고 말거야. 내가 혈압 정상되면 언젠가는 못 먹었던 거, 한 맺힌 거, 피자 치즈, 닭고기 다 먹을 거야.‘라는 생각을 가지고 ’지금은 내가 건강하기 위해서 참아야 돼,’ 이게 선입니까? 이거는 우리가 고혈압이 안 돼 봐서 그러는데 고혈압이 돼 버리면 생각이 예수님 생각, 하나님 생각은 없고 무슨 생각이냐 하면, 어쨌든 나는 안 죽어야 돼, 더 살아야 된다는 자기 생각밖에 없다 이 말이죠.
그럴 때, 목사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의사가 고혈압이라고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거야? 저는 우유 안 먹고 고가 안 먹고 생선 안 먹습니다. 왜, 이게 자연스러우니까. 이게 더 살고 싶은 감추어진 본능, 혈압이 오를 때 비로소 아! 내가 더 살고 싶어 하는 인간이구나. 혈압이 올라가서 의사한테 그런 처방 받을 때, ‘야, 비로소 내가 미처 몰랐던 과일 광주리 속에 나도 여느 인간과 똑같은 인간에 불과하구나.‘를 깨닫게 될 때 그때 스트레스가 확 없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꼴리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그냥 사시면 그것이 심판은 주께서 하시고 구원도 주께서 자기 십자가 피로 하시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과일 광주리 그 안에 들어있는데 마치 혼자 거기서 빠져나온 것처럼 착각했습니다. 우리가 우리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주께서 너무 잘 아셔서 십자가 피로 모든 죄를 용서하셨다 했사오니 그 죄가 그 용서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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