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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아모스 6:1-7 / 안일함 본문

구약 설교, 강의(이근호)/아모스

아모스 6:1-7 / 안일함

정인순 2012. 2. 27. 07:41

 

 

안일함

음성    동영상


이근호
2012년 2월 26일                      

 

본문 말씀: 아모스 6:1-7

(암 6:1, 개역) 『화 있을진저 시온에서 안일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열국 중 우승하여 유명하므로 이스라엘 족속이 따르는 자들이여』

(암 6:2, 개역) 『너희는 갈레에 건너가고 거기서 대 하맛으로 가고 또 블레셋 사람의 가드로 내려가 보라 그곳들이 이 나라들보다 나으냐 그 토지가 너희 토지보다 넓으냐』

(암 6:3, 개역) 『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강포한 자리로 가까워지게 하고』

(암 6:4, 개역)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취하여 먹고』

(암 6:5, 개역)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암 6:6, 개역)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로다』

(암 6:7, 개역) 『그러므로 저희가 이제는 사로잡히는 자 중에 앞서 사로잡히리니 기지개 켜는 자의 떠드는 소리가 그치리라』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 나라 귀족에 대해서 파멸을 선언하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자신들이 많이 가진 것으로 인하여 본래의 자기 자신의 모습을 가리워졌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하나 둘을 뜯어내십니다. 그 뜯기는 작업을 통해서 인간 본래의 모습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께서의 징벌 작업이란, 외부 축복에서 내부 축복으로 전환시키는 작업입니다.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 도로 파괴되는 과정을 통해서 정작 우리 자신의 내부가 어떤 식으로 교만할 수 밖에 없는 속성을 지니고 있느냐를 말해주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작업 취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갈레에 건너가고 거기서 대(大) 하맛으로 가고 또 블레셋 사람의 가드로 내려가 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나오는 갈레는 니므롯이 시날 땅에 건설한 도시였는데(창 10:10) 디글랏 빌레셀 3세(B.C. 744-722)에 의하여 앗수르 제국에 합병되었습니다.

그리고 대 하맛은 수리아의 수도로서 매우 번영하였으나 B.C 720년에 앗수르의 사르곤 2세에 의하여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가드’는 블레셋 5대 성읍 중의 하나로서 다윗 때에는 블레셋의 수도였는데 수리아의 하사엘에 의하여 정복되었습니다.(왕하 12:17) 이런 이야기는, 인간이 아무리 넓은 영토를 부동산으로 갖고 있어도 망하려면 그런 것들이 도리어 징벌을 안겨다 주는 요인이 된다는 겁니다.

벌받은 것들을 한아름 안게 되니 그 때부터 인간은 본래의 자기 위상에서 어긋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니 받았다는 것이 분명 축복인 줄 알았는데 결국은 축복이 아니라 자기에게 저주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것이 하나님이시며 더나아가서 그 저주라고 여기는 것은 곧 다른 차원의 축복인 것으로 결론짓게 하시는 겁니다.

이처럼 외부의 것으로 시작해서 내부의 문제로 옮겨가는 이유는, 하나님이 언약이 생명이 없는 이 세상에 ‘생명의 온천수’로 나타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것이 우리 자신의 것을 다치지 않고 곱게 유지시키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속에 온천 작업을 실시해버립니다.

생명나무로 통하는 길이 차단되고 난 뒤에,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통해서 생명수가 전달되게 하시는데 그 작업을 현장을 우리의 외부적인 재산이나 소유물이 아니라 우리 자체로 두시고 실시하시겠다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은 하나님에 의해서 접수당해야 합니다. 바로 이점을 이스라엘이나 유다 나라 귀족들은 놓치고 있는 겁니다.

그들은 너무나 풍부한 재물을 어떻게 하면 재미나게 계속 소비하느냐가 그들의 일과였습니다. 이런 와중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나 목적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다시 일깨어주는데 그것은 그들의 구원을 위함이 아니라 언약 활동이 계속해서 전개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실컷 즐겼던 것들이 졸지에 사라지면서 그들은 본 모습을 노출시키게 됩니다. 오늘 본문 6절에 보면 '요셉의 환란‘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즉 그들보다 먼저 언약에 의해서 노출 당했던 인물을 하나님께서는 거론하시는 겁니다. 말씀의 적용이란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이 의미가 가지고 역사 위를 늘 뒤덮고 있음을 나타내면서 이루어집니다.

‘요셉의 환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요셉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살펴야겠지요. 요셉의 이야기는 창세기 37장부터 잘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건들의 나열들을 하나로 묶는 의미 제출은 시편 105편에 나와있습니다. 15-19절에 보면, “이르시기를 나의 기름 부은 자를 만지지 말며 나의 선지자를 상하지 말라 하셨도다

그가 또 기근을 불러 그 땅에 임하게 하여 그 의뢰하는 양식을 다 끊으셨도다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고 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요셉에게 있어 자기 인생이라는 것을 존재할 수 없다 는 말입니다.



요셉은 본의 뜻과 상관없이 꿈을 두 개가 꾸게 됩니다. 어린 요셉의 인생 경험으로는 도저히 납득될 수 없는 포괄적인 내용을 담은 꿈입니다. 형들의 곡식단이 자기 곡식단을 향하여 일제히 절을 하는 꿈이라든지, 해와 달과 11별이 요셉을 향하여 절을 하는 꿈 같은 것을 말합니다.

이 꿈은 곧 같은 형제들이라는 노선으로부터 이탈되어 다른 노선으로의 진입을 알려주는 겁니다. 하지만 형의 입장에서는 그런 ‘노선 이탈’이 참으로 교만하고 건방지고 되발아진 발상으로 보이는 겁니다. 어떤 서열 자체가 붕괴된다는 것은 기존 질서 속에서 서열을 정하는 사람들의 행함을 모독하는 언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요셉을 접수해서 실시하는 과정 속에서 계속 일어나게 됩니다. 요셉의 일대기는 마치 예수님의 일생을 복사해 놓은 일생 같습니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지속적인 미움이 유발되는 사태 속에서 요셉을 밀려들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시편 105편에서는 ‘한 사람을 앞서 보냈다’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하나님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고 단서를 붙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서 장차 오실 언약의 완성자를 소개해 왔던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요셉도 상당히 불안했습니다. 일을 하나님께서 실시하는 과정에서 요셉 본인의 미래상은 계속 묵살됩니다.

하지만 그래도 꾸준히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이끄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요셉을 일종의 ‘블랙박스’로 사용하시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큰 사고가 일어나도 블랙박스가 장착되는 차 주인은 느긋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미래를 우리 자신의 계획으로 밀어붙이려고 해서는 아니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내부에 하나님께서 큰 공사를 하고 있음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녹취:이한례

 17강-암6장1-7(안일함)120226-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 아모스 6장1절에서 7절까지 말씀입니다. 구약성경 1280 페이지입니다.

아모스6:1-7

“화 있을진저 시온에서 안일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열국 중 우승하여 유명하므로 이스라엘 족속이 따르는 자들이여 너희는 갈레에 건너가고 거기서 대 하맛으로 가고 또 블레셋 사람의 가드로 내려가 보라 그곳들이 이 나라들보다 나으냐 그 토지가 너희 토지보다 넓으냐 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강포한 자리로 가까워지게 하고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취하여 먹고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로다 그러므로 저희가 이제는 사로잡히는 자 중에 앞서 사로잡히리니 기지개 켜는 자의 떠드는 소리가 그치리라”

 

잘 산다고 이스라엘 귀족들이 여유만만하다고 온갖 향락과 사치를 즐길 때에 바로 그것이 하나님께서 징벌을 가할 때 제 일번 타자 제일 먼저 타깃(target)으로 삼는 자들이 너희들이라는 겁니다. 이방나라보다 죄가 많다는 뜻이 아니고 이방나라를 비롯해서 전 세계를 심판하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의 집, 하나님과 연관돼 있는 이스라엘부터 내가 아주 조져버리겠다 그것이 오늘 내용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징벌과 심판을 행하심으로써 인간에게 소위 뭔가 자꾸 들어온다. 가졌다. 풍부하다. 풍성하다. 이것이 화근이 되는 거예요. 이게 징벌의 이유가 되는 겁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자꾸만 뭔가 소유되고 많아지고 자기 것이 증가하게 되면 무엇을 놓치느냐 하면 정작 내 자신은 하나님에게서 어떤 존재인가를 자꾸 가리게 돼 있어요.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 되는데 언약이라는 것이 세상 재물로 인하여 꽉 막히게 되고 가려지게 되니까 주님께서는 그걸 철거하는 거예요. 치워버리게 되는 겁니다.

 

그동안 안 치워서 세상 것이 많게 되면 마치 자기 자신이 이런 재물을 마땅히 얻어야 될 사람으로 그만큼 대단한 존재인 줄 알고 있다가 주께서 ‘가만있어 보자, 요거 내 새끼 내 자녀 어디 갔지?’ 고 찾는 그 작업이 뭐냐 하면 뜯어내는 징벌 받는 심판받는 과정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할 때는 목적이 딴 데 있는데 우리는 그 목적을 갑자기 재물이 여유가 있고 만사가 형통하게 되면 내 자신이 그만 내 존재의 목적이 돼 버려요.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으로 그것이 내가 이 땅에 태어난 이유가 되는 것처럼 그렇게 오해하는 겁니다. 그러니 이것을 방치할 수 없죠. 남의 자식, 지옥 자식 같으면 방치해도 되는데 천국 갈 자식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색깔, 하나님의 빛을 발산해야 되는 쪽이기 때문에 이걸 방치할 수는 없죠. 뜯어내는 겁니다.

 

그래서 그것을 뜯어내면서, 이 말은 뭐냐 하면 우리가 외부를 바라볼 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외부만 말고 우리의 내부를 바라보라는 절차 중에 하나가 이렇게 징벌과 환난이 오는 겁니다. 그 핵심은 6절에 나와 있습니다.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로다”

 

요셉의 환난! 갑자기 옛날 사람의 이름이 툭 튀어나왔어요. 요셉의 환난, 옛날이야기, 요셉은 옛날 사람인데, 요새 같으면 이 시대에서 벌써 한 700년 전 된 먼 옛날 700년이 더 되죠. 1000년 전의 사람인데 여기 툭 튀어나왔단 말이죠. 성경에서는 이렇게 시간 구분도 없이 과거 것이 여기 집어넣고 그 과거 것을 집어넣음으로 말미암아 지금 현재 상태를 살피는 엑스레이? 또는 단층 촬영하는 것, 그것을 과거에 실시했던 기계 동원해서 동일하게 집어넣는 겁니다. 옛날에 그런 식으로 해서 하나님의 백성의 본질을 드러냈듯이 ‘슬슬 기계 한번 작동 시켜봐?’해서 옛날 기계를 여기다 집어넣어서 진짜 우리는 어디서 왔으면 어디로 가고 있으며 우리는 왜 이 세상에 잠간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이유가 뭐냐, 그냥 나, 나, 나 하나만 위해서 있는 게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그게 아니라면 나는 왜 존재하는가, 골로새서 1장 16절에 나와 있죠.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만들어졌고 그리스도께서 친히 만들었다는 이 사실이 평소에 우리가 너무 많이 가진 것 때문에 고만 거기에 넋을 빼앗겨서 본래 우리의 해야 될 것을 놓치고 마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이 이스라엘 귀족들, “시온에서 안일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시온은 남쪽 나라, 사마리아는 북쪽 나라, 북쪽 이스라엘 남쪽 유다나라 귀족들 다 마찬가지예요. 이런 자들이 자기 딴아 든든하고 여유 만만하죠. 우리나라에서는 상위 1%, 거기에 해당되는 재벌과 준 재벌에 해당되는 사람들, 그런 교인들 우리교회 없으니까 천만다행이니까 마음 놓고 설교해요.

 

재벌과 준 재벌에 해당되는 분들 안 계시죠? 그 사람들을 주위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었어요. 주위 사람들이 ‘당신은 대단합니다.’ 그걸 여기에서는 1절 끝에 보면 우승, ‘당신은 최곱니다.’ 뜻 이예요. 상위 1%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부추기는 것은 평소에 콩고물이라고 얻어먹으려는 거예요. 나도 저렇게 되고 싶어서 그래요. ‘저것이 내가 놀던 자린데, 내가 옛날에 저렇게 살았는데, 잘 나갔었는데.’

 

그래서 어떻게 잘나갔는가 보니까 우선 부동산이 많아요. 부동산 많이 가진 분 안 계시죠? 부동산이 많고 상아침대, 우리는 뭐 다들 돌침대 하나씩은 가지셨죠? 그거 말고, 상아침대, 돌침대는 5백만 원밖에 안 하지만, 상아침대는 수입품이라..., 상아침대에다 그리고 송아지 고기를 먹고 사는 사람, 송아지 고기에다 비파니까, 요즘 같으면 최고 비싸다 하니까 하프, 파이프 오르간 정도는 돼야 노래를 하고, 노래방도 시시하게 하는 게 아니고 밴드 불러서 하고, 쉽게 말하면 Party(파티), 늘 파티를 반복해서 여는 사람, 상위 1%, 파티 참석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이런 직급 아니면 아예 파티에 등록도 하지 말라 하는 그러한 부류, 변태적인 부류, “자기를 위해서 악기를 제조하며” 그 다음에 포도주를 마시는데 6절에 보니까 뭐로 마시느냐 하면 대접으로 원 샷해서 마시면서, 그러니 하루 눈만 뜨면 하루 스케줄 짜기, 일과 짜기가 뭐냐 하면 있는 돈 어떻게 이렇게 잘 쓰느냐 하는 그걸 일상으로 스케줄 세워 하고, “귀한 기름으로 몸에 바르면서” 로션 한두 가지, 파운데이션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귀한 기름으로, 그냥 기름이 아니에요. 흔한 기름으로 하면 재벌이 아니죠. 귀한 기름으로 몸에 쳐 바르고, 우유로 목욕한다든지 우유 섞는 것 말고 목욕한다든지, 자꾸 말 기준을 자꾸 낮춰야 돼요. 자칫하면 걸리는 수가 있어요.

 

그런 식으로 결국은 뭣에서 벗어나야 하느냐 하면 어떻게 하면 고생 덜하면서 인생을 마감하는 이것이 내 존재의 이유고 목적이다. 나라는 인간은 절대로 이 세상에서는 고생해서는 안 될 존재가 원래부터 나라는 인간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귀족이 되어서 내가 이렇게 쳐 바르고 있고 이렇게 사치한 모든 것들이 어디서 나왔느냐가 아니라 이것은 신의 축복이고 반드시 나는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합당한 존재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간다는 겁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아모스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너희가 재물과 사치를 퍼부어주는 것은 제 일번 타자로 하나님이 외부에서 복 주는 하나님, 나의 소유물에 복 주는 하나님이, 그 축복의 하나님이 내부적인 축복으로 바뀔 때 너희들이 어떠한 수모를 당하고 부끄러움을 당하는지를 첫 번 타자로 시범조로 걸려든 것이 너희들이라는 거예요. 실컷 주고 한 꺼풀씩 벗겨내는 작업을 하시는 겁니다. 줄 때 조심해야 돼요. 우리는 받아 본 적도 없겠지만, 주실 때 조심해야 돼요.

 

그래서 오늘 본문의 핵심은 뭐냐, 요셉의 환난이 뭐냐 하는 겁니다. 지금 벗겨내는 작업이야 주께서 하시지만 벗겨내면서 뜯어내면서 어디에 도착하느냐, 어디가 하나님께서 작업을 하는 그 작업 지점이냐 하는 겁니다.

 

아침 설교에서 연속해서 말씀 드리면 주님께서는 우리 죄 많은 우리 속에 하나님의 의로써 시추를 해버리죠. 그럼 십자가라는 것이 우리한테 터져 버리면 우리는 하나의 온천수가 됩니다. 온천수! 뭐가 나오느냐 생명은 심판과 저주와 환난 속에서 비로소 생명의 맥이 터져요. 날마다 생명수가 팍~ 솟구쳐 올라오죠. 심 봤다죠 뭐. 완전히 여기 땅 사서 온천 지으면... 생명수의 샘물이 어느 곳에도 없든 이것이 생명나무 가는 길이 차단돼 있어서 어디에도 생명수가 없었는데 주님의 십자가 영이 오게 되면 십자가 앞에서 내가 죄인인 것을 발견하는 그 순간, 그것은 하나의 온천수, 온천탕이 된다고요. 생명수가 나오니까.

 

그걸 가지고 어렵게 이야기해서 언약의 자리라 이렇게 합니다. 그런데 온천수가 되는데 그 주변에서는 그 사람을 환난의 속에 있다.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게 요셉의 환난 이예요. 요셉의 환난, 야곱의 환난, 아브라함의 환난, 예수님이 환난, 예레미야 환난, 오늘날 성도의 환난이라 하는데 다 공통점이 뭐냐 하면 뭔가 작업이 개시됐어요. 공사가 된 거예요. 온천 공사를 하나님이 죄 많은 자기 성도에다가 실시해 버립니다. 그럼 구멍 나는 거죠. 구멍 나고 거기 밑에 온천을 뚫어야 되는 작업이죠.

 

그 작업이 성경에서 요셉에게 벌어졌습니다. 요셉의 환난을 너희들이 생각지 아니한다. 원래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지파가 열 세 지파인데 그 중에 레위 지파는 전체를 대표하기 때문에 빠지고 열 두 지파가 돼요. 열 두 지파 중에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한 다윗을 선택했기 때문에 선택한 지파는 밑으로 빠집니다. 다윗을 선택하면서 덩달아 같은 어미 출신 베냐민을 같이 묶었어요. 그리고 다른 어미, 야곱의 아내가 두 명인데 자식을 낳은 어미는 네 명이거든요. 다른 쪽의 그쪽 지파 열 지파는 북쪽 이스라엘로 규정을 해놓고 북쪽 이스라엘이 정통이 아니니까 정통 아닌 것은 어떻게 정통 아닌 면면을 드러내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북쪽 이스라엘을 설치해 놨어요. 그런데 이 북쪽 이스라엘에 주동적인 역할을 한 지파가 요셉지파입니다. 그래서 요셉지파가 주동이 돼서 열 지파가 우르르 따라가서 나라가 됐는데 남쪽보다 훨씬 크죠. 크기 가지고 비교하고 경쟁하면 북쪽이 셉니다. 남쪽은 미미하기 짝이 없습니다.

 

교회가 갈라질 때 교인 100명인데 80명 저쪽 가고 20명 저쪽 가면 누가 봐도 누가 정통이고 누가 분류라고 주장하겠습니까? 많은 쪽이 정통이고 작은 쪽이 떨어져 나간 것처럼 오해되잖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시는 거예요. 다수가 필요한 것이 아니고 언약이 있는 곳에 필요하기 때문에 그래요.

 

요셉의 환난이 무엇이냐, 그것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요셉에게 어떤 작업이 있고 그 작업을 우리가 알아야 될 이유는 그 작업대로 지금 우리가 실시당하고 있기 때문에 요셉에게 있었던 그 환난의 이유를 우리가 알아야 되겠죠.

 

원래 요셉 이야기는 시편 37편에도 나오는데 시편 105편에 보면 요셉에 대해서 특별히 거기서 해석을 해놨어요. 이런 대목이 성경 보면서 어려운 대목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창세기 죽 보면 요셉이 이렇다, 이렇게 잡혀 갔다. 이렇게 했다. 형들이 있고 살렸다. 그래서?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구나. 그런데 그 의미는? 몰라? 이렇게 되거든요. 요셉이 이렇다. 이렇게 했다. 그런데 그 의미가 뭐냐, 그 의미는 시편 105편에서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 볼 때에 사건 하나 터지고 사건에 대한 해설과 해명은 뒤에 나오는 일들을 통해서 앞의 것을 설명 해주는 겁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불 떨어졌다. 떨어져서 사람들 죽었다. 아이고, 안 됐다. 그런데 그게 나와 무슨 상관있느냐, 이렇게 되죠. 그런데 예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에 심판 받았다는 것을 예수님 당시에 복음 전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해요. 이 복음을 전하는 현장이 옛날 유황불 떨어지는 현장과 동일한 현장이다. 만약에 너희들이 내가 전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너희 이 도시는 소돔과 고모라 이상으로 혹독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말씀을 외침에 교회든 바깥이든 관계없습니다. 말씀을 전파한다는 것은 그냥 말만 전하는 것이 아니고 그 현장을 수호하는 겁니다. 이것도 복음을 위한 땅을 차압하는 거예요. 이건 내가 사용한다. 이 동네는 내가 복음으로 사용해서 복음을 받아들이면 구원이고 안 받아들이면 저주받는 그러한 것을 드러내는 자로 내가 활용할게, 내가 접수하시는 거예요. 우리는 주님한테 접수당한 겁니다. 성도는 주님 앞에 접수당해서 내 인생이 남아있는 인생은 없어요. 요셉처럼 돼야 돼요. 요셉 인생의 특징이 뭐냐, 여러분 아시지만 요셉은 기껏 자기 인생이라고 산 것이 기껏 몇 년 안 돼요. 그저 태민이처럼 형들하고  재미있게 놀 때 그때는 자기인생인지 모르지만 갑자기 태민이가 등장했는지 모르지만...ㅎ 나중에 형들하고 같이 논 것, 얘가 태민이처럼 자꾸 꿈을 꾼다 이 말이죠.

 

지가 꿈꾸려고 사전에 학원 다닌 것도 아니고, 학원 다녀야 태권도나 했겠지, 그게 아니고 요셉이 난데없이 꿈을 꾼다 이 말이죠. 볏 짚단이 있었는데 나한테, 차렷, 열중 쉬어, 차렷하고 고개 숙여 절하고, 해와 달들이 나한테 절하고, 이건 꿈도 애들 꿈이 아니죠. 애들처럼 소꿉놀이 하는 꿈도 아니고 어른들이라고 함부로 못 꾸는 꿈을 꾸니까 애가 어려서부터 너무 데바라지다고 할까요. 꿈도 애들처럼 꾸면 되는데 너무 어른 꿈을 꿔서, 그때부터 주변에서 밉상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아버지 야곱은 맘에 담아둬요. ‘쟤가 뭐가 되지?’ 그래서 여러분들, 자녀 키우다가 자녀가 이상한 도저히 예상 못한 큰 꿈꾸거든 마음에 두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면 ‘아버지, 난 아버지 복음을 반대합니다.’ 이런 것, 이건 보통 영적 기운이 애들 입에서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게 나올 때는 ‘아버지는 내가 보기에 잘못된 길로 가고 있습니다. 모든 교회가 안 그런데 왜 이상한 말을 하느냐.’ 라고 나올 때 그건 영적 기운이 시작된 거죠. 안 좋은 쪽으로.

 

하여튼 요셉이 꿈을 꾸면서 형제들 레벨을 능가해 버려요. 그러니까 요셉의 인생은 분명히 형제들이 다룰 수 없는 인생인데 주님께서는 지진이 일어나게 합니다. 형제들 사이에 지직, 지직 갈라지면서 아침에 이야기한 것처럼 구약에서 어떤 사람에게 언약이 임해서 선택해 버리면 그게 하나 돌발적으로 튀어나와서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뭔가 하나님의 언약에서 이탈된 것 같은 느낌을 줘서 미움을 유발시키게 만들죠. 그게 바로 요셉의 환난입니다.

 

참, 성경을 해석하면서 성경을 이해할 때 정말 어려운 점이 뭐냐 하면  ‘사서 미움 받으세요.’라는 말을 설득해도 안 되고, 왜냐 하면 사랑받기 위해서 교회 왔는데 사랑받기 위해 온 교인들 보고, 사서 주위로부터 원수가 되시고 미움을 받으세요.‘ 라고 하는 그게 바로 그렇게 성경에서 행함, 행함, 행함이 딴 게 아니고 ’제발 미움 받으세요.‘라는 게 그게 예수님과 함께 좁은 길로 가는 행함이라니까요. 아유, 만날 저보고 행함이 없다고 하는데 행함을 내놓으라 하는데, 행함은 딴 게 아니고 예수 믿는 게 행함 이예요. 예수 믿는 게 하나님의 일이고 행함의 전부인데 뭐 지가 예수 치워버리고 지가 지 맘대로 멋있는 걸 내놓는데 그건 행함 아니거든요. 더불어 함께 살다 보면 예수님과 더불어 미움 받게 돼 있고 이 쓰레기 같은 지옥 같은 세상에서 그런 대우를 받는 것은 우리 주인님이 그렇게 미움을 받았기 때문에 제자들도 마땅히 미움을 받게 돼 있다고 요한복음 15장에 이미 나와 있잖아요. 그래도 미움을 안 받으려 하는데 그건 환난 구원도 못한 사람이죠.

 

그래서 시편 105편에 이렇게 수록돼 있습니다. 이 대목이 어려운데요. “16.그가 또 기근을 불러 그 땅에 임하게 하여 그 의뢰하는 양식을 다 끊으셨도다 17.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18.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그 다음에 19절이 절정이죠. “19.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접수! 하나님이 요셉을 접수해서 장차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미리 앞서서 복사를 해버려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반짝 들어서 복사기 뚜껑 제키고 거기에 우리가 밑에 종이로 슥 들어가면 그 복사기 판에 누워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미지가 밑에 들어가는 종이에 복사돼서 나오면 요셉1, 요셉2, 요셉3, 이렇게 되는 겁니다. 성도 하나, 성도 둘, 성도 셋, 이렇게 해서 나오는 거예요. 건축자들의 버린 돌처럼 자기도 버린 자들이 거기서 버린 돌이 합세해서 하나의 성전이 된다. 이게 베드로전서 2장에 나오잖아요. 여기 무슨 우리 나름대로 행함이 뭐가 있습니까? 우리는 복사 당하기만 하는데 우리 나름대로 행함이 있어요? 환난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마시고 환난 속에 있는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또 뭐 환난 하니까 돈 벌고 고생하고 이런 환난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환난이라는 것은 남들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벌써 여기서 가지가 갈라져서 길이 니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처럼 길이 갈라지게 된다 말이죠. 사랑받고 싶어 환장해서 교회 다니고 축복 받고 싶어 환장해서 교회 다니고 그런 노선과 점점 더 갈라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꿈이 강력하게 요셉으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가신 길을 가도록 밀어붙입니다. 여기에 보면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렇다면 여호와의 말씀에 동원되는 엑스트라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이 요셉의 형들이고 애굽의 바로 왕이고 그 다음에 아버지 야굽, 그런 분들이죠.

 

그러니까 하나님의 언약이 요셉에게 떨어졌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엑스트라가 되는 겁니다. 이런 환난 속에 있으면서 우리가 초조하고, 요셉도 얼마나 불안하고 초조했습니까? 그래서 요셉이 옥에 갇히고 난 뒤에 또 하나님의 꿈이 떨어지니까 이 꿈은 뭐냐 하면 감옥소에 같이 갇혀있는 신하들의 꿈을 해몽하는 지혜를 받아서 잘 해몽하면서 얼마나 기대했겠어요. ‘아저씨 제가 꿈 해몽 잘했으니까 나중에 아저씨 잘 될 때 저를 생각해서 억울하게 갇혀 있으니까 뽑아내 달라.‘고 그렇게 요구를 해도 신신당부를 해도 잔소리를 해댔겠죠. 그래도 해놓고 잊어버렸어요. 그것을 얼마나 기다렸겠습니까? 언젠가는 불러줄 건데. 안 불러주는 거예요. 그 초조함, 불안감. 오늘날 우리는 없습니까?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구름타고 온다고 했잖아요. 안 오면?? 어떻게?? 괜히 사도가 헛소리 했다면, 예수님이 헛소리 했다면, 완전히 우리는 병신 쪼다 되잖아요. 세상에. 온천수라 하는데 온천수도 없어요. 그냥 뼈다귀 몇 개 있고 신장 있고 온천수는 없는데요.

 

우리는 늘 상 이런 시험을 받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육으로서 하늘나라 못 가고 성령이 오셔야 늘 이걸 지적하고 다시 한 번 지적하고 책망하시고 이끄시는데, 이런 일이 있어요. 차 사고가 일어났는데 어떤 아저씨한테 있었던 일인데요. 차타고 가는데 약간 술 취한 건 아니고 정상적인데 차가 가는데 앞에 사람이 얼쩡거리니까 차를 스톱시켰어요. 그러니까 아저씨가 본네트 앞에 툭 튀어나온 데에 지가 엎어지는 거예요. ‘어!’ 하고 지가 넘어지는 거예요. 뭐냐 하면 보험 타내려고. 그 순간 그 사람은 당황한 거예요. ‘이 억울한 사정을 누가 알지?’ 누가 알긴 누가 알아요? 자기가 블랙박스 있는 걸 깜박 잊어버린 거예요. ‘아하! 블랙박스.’ 그래서 경찰이 오고해서 해서 ‘어떻게 됐습니까?’ ‘이 사람이 내가 차가 가는데 이 사람이 와서 일방통행이고 뭐고 하다가 이 사람이 좋게 생각하는데 이 사람이 가라했다.’ 거짓말을 막 하면서 사기를 치는 거예요. 그럴 때 이 사람은 딴 소리는 안 했어요. ‘저 경찰 아저씨, 나한테 블랙박스 있는데.’ 하니까 그 전까지는 ‘악~’ 하다가 ‘안녕히 계세요.’ 하고 머리 긁으면서 가버렸잖아요.

 

우리 속에 블랙박스가 있어야 돼요. 그래서 느긋해야 됩니다. 그러면 이렇게 말해요. ‘블랙박스가 없으면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하긴 없으면 종교생활 해야지 뭐. 조금 있다 지옥 가야지 뭐. 블랙박스가 있느냐, 없느냐 계속해서 묻는 것이 뭐냐 하면 ‘십자가 복음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까.’를 계속 묻는 거죠. 복음 가지고. ‘당신 성경 구절, 십계명 몇 개 지킵니까?’가 아니라 그런 블랙박스는 어쩔 수 없어요. 없기 때문에 그걸 떼버리려고 그 짓 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은 우리가 정말 느긋하고 참으로 느긋하고 이미 요셉처럼 접수된 사람, 그야말로 온천수가 터진 사람은 모든 일에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까불면서 모든 일에 감사하고 느긋해야 돼요.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엑스트라예요. 형제가 나를 미워하고 아버지, 엄마도 내 꿈을 이해 못하고 모든 것이 이상하게 자꾸 외골수로 몰아넣는 대로 그 외골수와 외골수가 뭉쳐지면 그게 예수님이 들어있는 블랙박스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창세전에 선택했다는 의미는 뭐냐 하면 아무나 선택했던 게 아니라는 거죠. 블랙박스를 아무나 장착시키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바로 어떤 우리의 신앙 경험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이 십자가 앞에서 나는 죄인으로 발각되고 이 죄인은 오직 피로만 구원된다는 이 사람의 지혜로는 알 수 없고 주께서 몰아세워야 알 수 있는 십자가의 그것이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를 원하노라.‘하는 그 사도바울의 고백에 같이 동참하는 것이면 그것이 바로 우리를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는 세상의 비밀이 담겨있는 블랙박스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뭔가 잘 될 때 우리 자신에 대해서 놓쳐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있는 것이 곧 축복이고 그보다 더 큰 축복은 우리 안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담겨있다는 이 사실을 우리가 가진 것보다 더 귀하게 여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