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아모스 5:14-17 / 선과 악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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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
이근호
본문 말씀: 아모스 5:14-17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녹취:이한례 14강-암5장14-17(선과 악)120205-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 아모스 5장14절에서17절 말씀입니다. 구약성경 1279 페이지입니다. 아모스5:14-17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긍휼히 여기시리라 그러므로 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모든 광장에서 울겠고 모든 거리에서 오호라 오호라 하겠으며 농부를 불러다가 애곡하게 하며 울음꾼을 불러다가 울게 할 것이며 모든 포도원에서도 울리니 이는 내가 너희 가운데로 지나갈 것임이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기 오늘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지시하기를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이러면 우리 인간들은 바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라.’ 그렇다면 선을 찾아서 그것은 행하면 되고 악이라는 것을 발굴해서 그건 없애면 되고 문제가 의외로 굉장히 간단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여호와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사람들은 놓치고 있어요.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이방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이라서 그걸 성경에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 ‘우상’이라고 합니다. 우상에서 나오는 선과 악으로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선과 악은 그냥 인간에게 똑바로 오는 것이 아니고 중간에 뭘 하나 거쳐서 오게 됩니다. 그게 뭐냐 하면 희생양입니다. 이제 머리 좋으신 분들은 감 잡았죠?
세상의 신은 여기 팔공산에 있는 갓 바위 생각하면 딱 맞습니다. 정성을 다하는 것, 그걸 네 자로 지극정성이라 하죠. 지극정성으로 섬기면 그 자체가 선이라고 여기고 하나님께서 복을 준다는 겁니다. 간단한 거래예요. 거래가 아주 간단합니다. 나름대로 정성을 다했으면 복을 받고 정성이 빠지면 니가 벌 받는다. 간단한 겁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했고 그걸 지키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 나타날 때는 중간에 뭘 거쳐서 오죠. 그게 뭐냐 하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을 거쳐서 우리에게 오기 때문에,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의 취지와 의미를 모르면 그게 악한 것이고, 어린양의 생명의 취지를 알면 그게 선이 되는 겁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요건 약간 어렵지만 한걸음 나아가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오기 이전에 먼저 우상과 싸워야 된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십계명 제 1계명에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가 십계명 제일 첫 번째 계명에 나옵니다. ‘나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니까 너희들이 나 말고 다른 신을 섬기면 나는 가만두지 않겠다. 왜, 질투하기 때문에, 사랑이 넘치면 질투가 되거든요. 너무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너희들을 그냥 방치하지 않겠다고 하는 겁니다.
인간들 입장에서는 여호와나 저쪽 신이나 저쪽 신이나 여호와나 부처나 뭐든지 우리는 한 가지만 알아요. 뭐냐 하면 착하면 복주고 선하면 복 받고 악하면 나쁜 짓하는 것. 우리는 어느 신이든 어느 종교든 관계없이 이건 보편적이고 이건 동일하다고 보는 겁니다.
성경책 펼쳐놓고 여호와와 다른 신의 차이점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성경책 펼쳐놓고 내가 평소에 자기 마음속에 있는 ‘내가 이번에 뭐를 하면 착한 일해서 복을 받을까.’ 이런 식으로 생각해서 성경을 펼쳐서 거기에 나오는 모든 조항들과 규칙들을 지켜놓고는 ‘내가 선을 행했으니까 값을 하라’ 이 말이죠. 보통 선을 행한 경우가 언제냐 하면 11월 달, 12월 달에 집중적으로 해요. 왜, 입시가 있거든요. 그리고 가게가 개업할 때, 이사 갈 때, 그리고 혼사 앞두고 있을 때, 바짝 선을 행합니다. 그걸 징크스라 할까요? 어떤 큰 시합이나 큰 전쟁이나 계약을 앞두고는 그때는 몸가짐이 달라집니다. 말도 함부로 안 하고 아주 정숙하게 말하면서 되도 않는 액이 올까봐 액이 올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은 다 제거합니다. 갑자기 지하도에 구걸하는 노숙자에게 몇 푼 줬다가 그런 것은 다 머리에 입력이 되죠. 하나님께서 이런 착한 일을 했는데 ‘가만있으면 하나님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그때는 행동도 잘해야 될뿐더러 스스로 나쁜 일이다 하는 것은 전부 다 금합니다. 술, 담배, 화투, 그리고 노래방에 가는 것을 금하죠. 이것은 무슨 의미로 하느냐 하면 내가 일단 얻을 것을 얻었다 싶으면 그때부터는 술 담배 다합니다. 노래방 갑니다. 예, 다 얻었는데요. 내가 그렇게 자제하면서 조마조마하면서 행여나 안 줄까봐 걱정했는데 딱 얻으니까 됐다 이 말이죠.
만약에 자식이 서울대학교 합격이 될까 안 될까 엄마는 항상 몸가짐 잘하고 봉사 잘하고 갓 바위 가서 빌고 교회 가서 빌고 했는데 합격이 되었다. 그 다음부터는 마음이 풀어지는 거죠. 됐는데요 뭐. 좋은 거 뺏어갈 일도 없고 됐는데요.
그래서 우리가 인간으로서는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그 말씀의 취지를 몰라요. 저 신이나 이 신이나 나이키나 운동화나 관계없이 전부 다 신은 똑같은 신이라고 여기는 겁니다. 어떤 신이 있든 간에 내가 생각하는 기본적인 양식, 착한 일하면 복 받고 나쁜 일하면 벌 받는 이런 규칙과 부합될 때만 우리는 그걸 참된 신이라고 간주할 마음의 준비가 돼 있어요. 그 자체가 문제 있다는 생각을 못하고, 우리 자신에게 문제 있다고 생각을 못하고, 그냥 내가 생각한대로 따라주면 좋은 신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린양을 배치하는 것은 바로 그렇게 생각하는 그것이 바로 우상을 섬기는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 값도 못 되며 진짜 하나님도 아니며 너희들이 조작해 낸 상상의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을 바꾸라는 겁니다.
어떻게 바꾸는가, 오늘 본문에 보면 이렇게 돼 있습니다. 17절에 보면 “이는 내가 너희 가운데로 지나갈 것임이니라” 하나님을 바꾸는 방법은 우리가 우리 쪽에서 바꾸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통과함으로써 바꿔진다는 겁니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 말입니까? 이 성경을 보지 않고서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요.
‘하나님이 통과한다.’ 여러분들이 비행기가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비행기가 시시해 보이고 겁이 안 나죠. 그런데 에어쇼를 하면서 비행기가 고공을 날아야 할 비행기가 관중석 앞으로 그냥 지상 1미터 위를 싸악 지나가 보세요. 깜짝 놀라죠. 애는 경기 납니다. 멀리 있을 때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가까이 와서 자기 덩치를 다 보여 버리면 우리는 공포의 대상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가까이 우리 가운데 온다는 말은 그 자체가 심판이고 두려움 이예요. 거룩이 우리 가운데 오는 겁니다. 그야말로 ‘화로다 망하게 되었구나.’ 제가 요번에 울산에서 그런 강의했는데, 하나님이 가까이 왔을 때 거기 있는 백성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이여, 너무 가까이 오지 마시오.’ 진짜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그런 말이 서슴없이 꾸미지 않고 그냥 나오는 거예요. ‘하나님이 너무 가까이 오게 되면 우리가 죽겠나이다.’
성경 출애굽기 20장에 보면 ‘우리에게 가까이 오면 죽겠나이다. 좀 멀찍이 떨어져 주시면서 우리를 관계하면 좋겠습니다.’ 할 때 하나님께서 뭐냐 멀찍이 떨어지는 대신 가까이 있을 만큼이나 심판 성을 가지는 것처럼 거리 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니가 제단을 쌓고 거기서 제물을 바치라는 거죠.
한번 정리해 봅시다. 하나님이 가까이 와 버리면 우리는 감당이 안 된다. 그래서 그러면 하나님께서 떨어질 수는 없는 문제니까 하나님 쪽에서 내린 조치가 뭐냐 하면 하나님이 가까이 온 이상으로 그 정도로 정말 거룩을 유지할 수 있는 이 지상적인 방식, 하늘의 방식이 아니고, 이 지상에서나 나타날 특수한 방식, 하늘같으면 천사 보내서 조져 버리죠. 그거 말고 지상에서 사람과 섞이면서도 사람이 다치지 않으면서도 사람이 충분하게 무서움과 거룩함과 두려움을 다 가질 수 있는 방법은 그것은 뭐냐 하면 죽음입니다. 늘 하나님이 우리대신 죽었다는 것을 품고 살아라. 그것이 가까이 계신 하나님의 지상적인 역사속의 방식입니다.
에어쇼 하는 비행기가 너무 가까이 오니까 애들이 경기 나니까 비행기가 저 하늘만 다니고 여기 관중석은 오지 말라 할 경우에 하늘에 떠 있으면서도 관중석에 오는 방법은 폐비행기 자재, 비행기 부서진 걸 가지고 이렇게 놔두면 되겠죠. 여러분들이 고속도로 휴게소에 보면 칠서휴게소라고 그 동네 좀 다녔어요. 다녀서 아는데 칠서 휴게소에 가면 교통사고의 ‘졸음운전의 무서움‘이라 해서 사진을 찍어놨어요. 사진에 보면 완전히 옆으로 앞으로 다 찌그러져 있는 졸음운전의 비참한 결과, 참혹한 결과를 사진으로 찍어서 사람들을 보게 했다 이 말이죠. 그게 뭐냐 하면 바로 그 빠른 차의 가까운 모습이 그 정도잖아요.
하나님께서 멀리 있으니까 지 맘대로 상상해요. ‘하나님은 이쁘다. 키가 크다.’ 하는데 막상 가까이 와서 보니까 키가 문제가 아니고 몸무게가 문제가 아니고 인물이 문제가 아니고 그저 죽었다는 것, 그것도 세상 죄 때문에 처참하게 사람들에게 매 맞아 죽었다는 그 사실이 바로 진짜 하나님께서 지상에서 나타날 때 그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으로 나타나지 않아요. 이 신 외에 다른 신을 섬기면 너는 저주를 받는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출애굽기 20장의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하는 거예요. 그렇게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 우리가 주의할 것은 그렇게 이야기한 대상이 아무나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특징 중에 하나가 아무나 섬기면 구원받는 이런 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된 사람에게만 믿어지는 것을 용납하시는 거예요. 선택 당한 사람에게만 나, 여호와 믿는 것을 허락하시고 선택되지 않은 자가 하나님께 구원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게 오늘 본문에 어디 나오느냐 하면 15절 끝에 나옵니다.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긍휼히 여기시리라” 여기 보면 요셉의 남은 자, 남은 자라 하는 것은 떨어낼 것 떨어내고 남은 겁니다. 그렇다면 남은 자가 되기 위해서는 떨어내는 작업이 선행되고 그것이 진척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지금 복음을 전하는 이유는 ‘제발 떨어져 나갈 사람은 제발 나가줘‘ 이 말이죠. 천국도 못 가면서 천국 가는 것처럼 그러지 말라 이 말이죠. ’천국 가기 싫지? 싫거든 교회 나오지 마.‘ 그 뜻 이예요. 천국도 안 좋으면서 교회는 왜 찾아서 나와? 정수기라도 팔려고 나오나, 하여튼 그런 짓 하지 말고 내가 지금 만들어 낸 내 생활 영역보다도 ’나는 천국이 더 좋아.‘ 라는 생각이 없거든 교회는 나오지 말라 이 말이죠. 뭐 교회 나온다고 헌금 하나 더 보탠다고 주님께서 입이 벌어지고 주께서 어디 장사 못해서 환장 하십니까? 주님께서 어디 가게 열어 놨어요? 주님은 그런 주님이 아니거든요.
목사들이 자기가 가게 문 열어놓고 목사들이 손님 끌어 모으기 위해서 그런 거짓말 하는 것이지, 정작 주님은 십자가 졌다 이 말이죠. 목사는 십자가 진 게 아니고 똥배 나오죠. 뭐 먹어야 똥배 나오든지 뭘 키워야 되든지 할 게 아닙니까? 그래서 목사의 말만 듣는다는 것은 지옥 가려거든 그 말 들으세요. 목사 말 한번 듣고 성경 한번 보고, 참새가 물 한 모금 마시고 하늘 쳐다보는 것처럼, 목사 말 듣고 성경이 그런가 한번 보라 이 말이죠. 성경 전체를 한번 보라 이 말이죠. 목사가 어떤 의도로 이런 소리를 했는지 보라 이 말이죠. ‘교회 키워야 됩니다. 교회 헌금 안 하면 구원 못 받고 지옥 갑니다.’ 그런 소리를 무슨 의도로 그렇게 했는지 한번 보라 이 말이죠.
구원은 십자가의 능력인데 인간들은 교회가 구원의 능력이라고 자꾸 사기를 치니까 이건 다단계도 아니고 보험회사도 아니고, 큰 교회 가면 구원되는 줄 압니까? 물론 작은 교회가도 구원 안 되고 교회 나와도 구원 안 되고 하지만, 주님께서 우리들 가운데 그저 앞으로 지나가는, 그 지나가는 방식에 대해서 감사히 여겨야 되고 그 취지를 알아들어야 돼요. 주께서 지나가는 방식!
비행기가 하늘만 날을 때는 우습게보지만 막상 우리 곁을 싹 지나가 보세요. 우리는 깜짝 놀라서 무서울 겁니다. ‘비행기야, 비행기야, 하늘로 다니고 이 골목으로는 오지마라.’고 손시레를 칠거예요. 너무 무서워서.
누구에게만 이 여호와를 믿게 하느냐 하면 여러분이 아는 많이 들었던 이야기지만 아브라함 자손에게만 이것이 주어집니다. 아브라함 자손에게 이것이 주어지는데 어떤 식으로 주어지느냐 하면 직접 니가 말씀 지켜서 착해지는 게 아니고 아브라함 자손들은 하나님이 제시한 어린양에 관해서 믿음으로, 행함이 아닙니다. 자기 착함의 솜씨를 발휘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의로움의 솜씨를 발휘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중지시키고 중단시키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다 이뤘다는 것 앞에서 ‘믿습니다.’로 고백하는 그 사람들이 아브라함 자손이고 요셉의 남은 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요셉의 남은 자 하나 남기기 위해서 자기 의와 자기 착함 가지고 복 받겠다는 사람을 떨쳐내는 작업을 하나님께서 암몬을 통해서 실시하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오늘 본문은 ‘니들이 남은 자를 알아? 니들이 게 맛을 알아?’ 말하다 보니 게 철이 됐네요.ㅎ‘니들이 남은 자를 아느냐’ 이 말입니다. 남은 자! ‘아이, 우리 이스라엘 몽땅 구원합시다.’ 몽땅 다 구원 없어요. 교회 째 다 구원 받읍시다. 교회가 다 구원 받는 거 없어요. 남은 자예요. 남은 자. 요셉의 남은 자예요.
그 남은 자가 누구냐고 물을 때 이렇게 답변하면 됩니다. 남은 자는 자기 행함이 아니고 믿음으로 의인이 된 사람을 남은 자라 합니다. 믿음으로 의인되기 때문에 자기 행함을 의지하는 사람을 떨쳐내고 잘라내고 이걸 솎아내는 작업을 오직 복음으로만, 십자가 복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십자가 복음 +행하자, 이래서는 솎아지지가 않아요. 십자가 복음만이 솎아지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남은 자 하는데 십자가만 기준이 되는 이유가 뭐냐, 창세기 15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그때는 아브라함도 아니었어요.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는데, 그때까지는 아직 아브람 시절일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람하고 계약을 체결합니다. 이게 언약식인데 일방적이죠. 언제 아브람이 언약 체결하자고 요청한 적도 없고,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찾아와서 언약을 체결합니다.
일본에서는 요새 뭣이 유행 되냐 하면 이혼식이 유행이랍니다. 이혼 식 할 때 아주 경건하게, 헤어지더라도 깨끗하게 깔끔하게 헤어지자고 이혼 식을 하는데 이혼식의 하이라이트는 ‘니가 서로 준 거 커플링이라든지 약혼반지를 꺼내 놓고 망치 가지고 때릴 때 바싹 깨지겠죠. 제가 거기서 궁금한 것은 거기 하객들이 참석한다는 것인데 그 하객들이 두 사람 결혼할 때 다 부조 준 사람 아닙니까? 그러면 이혼 식 때 그 부조를 돌려줘야 하느냐 하는 그 문제, 요거 약간 애매하죠. 어쨌든 그 사람들은 박수를 치면서(박수까지는 치는지 모르지만...) 깔끔한 이혼 식에 대해서 굉장히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지저분하게 놀지 말자 이 말이죠. 헤어질 때는 깨끗하게 헤어지자는 거죠.
그러면 이혼식이 있다는 말은 그 앞에 약혼식, 정혼식이 있다 이 말이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자진해서 결혼식을 합니다. 아침에도 이야기했지만 신랑이 와서 신부를 일방적으로 강제로 결혼을 해요. 결혼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준 선물이 뭘까요? 반짝반짝 빛나는 사파이어? 다이아몬드? 25K금? 뭐겠습니까? 사람은 약속할 때 금반지 주고 예물을 주고 받는데 하나님의 예물은 뭐냐 이 말이죠.
제가 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과 이혼할 때 뭣에서 눈 돌리면 이혼인 줄 아시라 그 말입니다. 우리가 진짜 하나님에게서 눈 돌려서 우상의 하나님께 돌아갈 때 그때 우리의 시선에서 무엇이 사라지면? ‘그건 하나님이 아니고 우상이다.’가 되느냐 하면 그게 바로 어린양입니다.
처음에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체결할 때에 금반지를 준 게 아니고 어린양을 바치게 해요. 양을 바치고 그 다음에 암소 바치고 산비둘기 바치고 3년 된, 3년 된, 3년 된, 해서 장차 오실 예수님께서 3년 동안 하신 모든 사역을 미리 앞당겨서 여기에 집약을 시켜 놨어요. 이미 아브라함 때부터 예수님을 미리 내다보고 있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예수님을 바라보고 보고자 했다가 보고 기뻐했다 이 말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읽어야 돼요. 아브라함과 예수님이 서로 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착함이나 악함이나 그걸 염두에 두고 해야 돼요. 직접 하나님과 말씀이 왔다 갔다 하는 걸 원하지 말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운데 두고 십자가를 통해서 변경된 착함, 변경된 악함이 무엇인지 그걸 받아들여야 돼요. 지 착한 거 자랑하지 말고, 지 선한 거 과시하지 말고 그건 다른 신들이 하는 것이고, 전~혀 우리 예상 밖의 진짜 하나님은 반드시 이렇게 아브라함 언약을 위해서 하나님의 계약과 협약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 이예요.
그 협약이라는 것이 말로만 계약이 아니라 실제로 어떤 증거물이 있다는 거예요. 그 증거물은 제물의 가운데를 하나님께서 밤중에 지나가시는 거예요. 완전히 에어쇼 하는 겁니다. 창세기 15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모든 걸 마주보고 쪼갤 때, 해질 때 아브라함이 깊이 잠든 중에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더니”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마주보게 하시고 솔개가 그 사체위에 내릴 때에 쫒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17절에 보면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하나님이 그대로) 지나더라.”
지나가시며 하는 말이 ‘계약이 체결되었다.’ 이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양 잡고 소 잡고 비둘기 잡아라.’ 하는 것도 하나님이고 쪼개놓으라고 명령하신 것도 하나님이고 여기 어떤 착함도 어떤 선함도 없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착함 선함은 우리가 지어낸 것이고, 진짜 하나님과 약혼하고 맺어주는 진짜 착함 선함은 우리의 행위 차원이 아니고 우리가 믿기지 않는데 ‘이건 니가 믿을 수 있느냐’와 관련된 착함과 선함 이예요. 왜 그러느냐 하면 믿음만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만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만이 착함 이예요. 백날 저 혼자 착해봐야 하나님이 제시하는 방법과 어긋난 것이고 방법과 눈 돌려 버리면 지 딴아 착하지, 전혀 착한 게 아닙니다. 울지 마 톰슨, 테레사 수녀, 그런 건 착함이 아니고 진짜 착함은 복음에 죽고 복음에 살고 복음 외치다가 복음대로 복음 믿다가 죽는 것, 세리와 창기들, 예수님 옆의 강도, 강도 얼마나 착한지 몰라요. 그동안 강도짓 하느라 애먹었어요.ㅎ
성경 내용 자체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우리 상식을 초월합니다. 그리고 제물을 죽이라고 한 것도 하나님 뜻이고 그 가운데, 제물 가운데, 아브라함이 제물을 어떻게 장치를 하고 아브라함이 어떤 제물을 어떻게 하든 간에 그 제물이 놓여있는 모든 책임을 본인이 지겠다고 아브라함이 잘 때에 그 가운데를 지나가시는 거예요. 쪼개진 제물을 일방적으로 한쪽은 아브라함이고 다른 쪽은 하나님이고 하나님과 인간 쪽을 연결시키는 것은 아브라함 니가 아니고 니가 수고하는 제사가 아니라 내가 직접 하나님의 약속 속에 ‘이건 내 약속이야.’하고 인정하시고 그대로 삽입해 들어가는 거예요. 그게 바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주께서 친히 오셔서 그 둘을 본드처럼 딱 들어붙게 만들어요. 이 딱 들어붙는 이 언약으로만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때문에 거기에 붙어야 될, 지남철에 갖다 붙어야 될 자기 백성을 요셉의 남은 자가 되는 거예요.
‘여러분, 착하게 사세요. 말씀은 공연히 있는 게 아니고 지켜야 복 받습니다.’ 이런 식의 이야기가 이건 아닙니다. ‘여러분, 일상이 잘 안 되죠. 분명히 벌 받아서 그러니까 교회 충성 하세요.’ 이런 식이 아니에요. 헌금 한두 번 어기고 한두 번 아끼니까 여러분 폭삭 망했습니다. 다음엔 헌금 많이 하세요.‘ 이런 식이 아니라니까요. 이건 처음부터 여러분이 어떻게 하면 복 주겠습니다.’가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님이 친히 여러분 가운데를 지나가고 매일같이 지나가고, 지나가고, 지나가고, 계속 지나가므로 말미암아 여러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약속이 찢어지지 않도록 그렇게 조치하는데 그 대상이 바로 계속 믿음을 유지하게 합니다. 행함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믿음을 유지하게 하고, 행함은 죄밖에 나올 게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죠.
우리는 만날 우상을 섬기고 내가 알아서 복 받겠다고 우상 섬기고 내 힘으로 구원받겠다고 섬기는데 거기에 매일같이 솔개는 내보내고 그 솔개 있던 자리에 주님이 친히 오심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내가 ‘조만간에 인간 세상 내려갈게, 그때 보자.’ 하는 것처럼 밑에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대를 이어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계속 대를 이어서 가죠. 밑에서 기차가 달리고 위에는 솔개처럼 하늘에는 메시야가 있다가 드디어 지상에 있는 기차가 하늘에 있는 솔개와 만나는 비행기와 솔개의 접촉 지점, 그게 십자가입니다. 만나고 솔개가 낚아채듯이 그 아브라함의 남은 자를 낚아채서 성령으로 하늘나라에 우리의 생명이 거기에 보내도록 그렇게 조치하시는 겁니다. 주님은 솔개예요. 낚아채시는 전문가입니다. 그 낚아채실 때 ‘니가 이 땅에서 행한 것은 버리고 오직 내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를 니가 믿으면 그것이 바로 낚인 거예요. 그전에 우리는 자신의 행함으로 자기, 내 행함 알아달라고 하는 그 모든 우상 적인 것에 대해서는 울어야 됩니다. ‘아! 나는 내 착함을 남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나는 안 알아주면 그 교회 안 갈래.’ 이런 식으로.
왜, 내 착함을 남들이 알아야 됩니까? 남들이 알아줘야 설치고 안 알아주면 안 설치는 이유가 뭡니까? 평소에 믿음, 믿음해도 어떤 의미에서는 우상을 섬기고 자기 자신을 섬긴 게 아닐까요?
이 아모스라는 이 신약과 구약이 중간 지점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언약을 놓치지 않고 그리고 십자가를 빼먹지 않습니다. 전부 다 한 아브라함이라는 한 열차, KTX 한 열차 속에 같은 칸입니다. 그 칸에 우리는 지금 그 뒤편에 자유 석 15, 18석에 우리는 앉아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잘 가고 있습니다. 왜, 기관차가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그분이 주신 약속을 우리의 행함 믿지 말고 주님의 약속을, 주께서 우리 가운데 매일같이 지나가는 열차 차장처럼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매일같이 잊지 맙시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아모스가 주는 말씀, 남은 자의 의미가 무엇인지, 남은 자 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찾아오심으로 됐는데 이러한 하나님의 가까이 오심이 우리에게 죽음으로, 십자가 죽음으로 나타났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만 진짜 하나님을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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