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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아모스 1:9-15 / 두로, 에돔, 암몬 나라의 죄 본문

구약 설교, 강의(이근호)/아모스

아모스 1:9-15 / 두로, 에돔, 암몬 나라의 죄

정인순 2011. 11. 27. 15:31

 

 

두로, 에돔, 암몬 나라의 죄

음성   동영상


이근호
2011년 11월 27일                            

 

본문 말씀: 아모스 1:9-15

(암 1:9, 개역)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두로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그 형제의 계약을 기억지 아니하고 모든 사로잡은 자를 에돔에 붙였음이라』

(암 1:10, 개역) 『내가 두로 성에 불을 보내리니 그 궁궐들을 사르리라』

(암 1:11, 개역)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에돔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가 칼로 그 형제를 쫓아가며 긍휼을 버리며 노가 항상 맹렬하며 분을 끝없이 품었음이라』

(암 1:12, 개역) 『내가 데만에 불을 보내리니 보스라의 궁궐들을 사르리라』

(암 1:13, 개역)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암몬 자손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자기 지경을 넓히고자 하여 길르앗의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갈랐음이니라』

(암 1:14, 개역) 『내가 랍바 성에 불을 놓아 그 궁궐들을 사르되 전쟁의 날에 외침과 회리바람 날에 폭풍으로 할 것이며』

(암 1:15, 개역) 『저희의 왕은 그 방백들과 함께 사로잡혀 가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약속의 땅은 실은 각자 신들에 의해서 배치되어 있는 땅입니다. 각 나라나 민족마다 자신이 자신 땅에 살 수 있는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각자 자신들의 ‘신의 이름’으로 거기에 살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지역에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땅’이라는 이름으로 이스라엘을 기거하게 하신 겁니다.

자연적으로 충돌이 일어나지 않을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떤 의미를 충돌을 조장하기 위해서 자기 백성을 그들의 민족과 마주치게 하셨습니다. 신과 신의 싸움으로 유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두로나 에돔이나 암몬이라는 나라는 모두 각자 자신들의 신을 따로 섬기고 있는 나라입니다.

신들이 상호 다르다는 말은 사람과 신들과의 교제하는데 있어 각자 다른 원칙들이 동원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계약이란 실은 이스라엘과 하나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신들이 있는 곳에서 그 신과 접선하기 위한 계약과 약조와 계시들이 나름대로 정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과 다른 신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이라는 범주를 벗어나 전지구적인 신으로 행세하겠다고 나선다는 점에 있습니다.

즉 전에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만 잘못을 저지르면 자기 백성에게만 벌을 내리시던 하나님께서 자기 이스라엘이 당하는 환경을 빌미로 해서 그 징벌의 범주를 확대시켜 나갑니다. 그 이유는 지금 자기 백성이 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필히 하나님의 백성으로 숫자적으로 충족되어야 합니다.

이는 자기 백성이라고 해서 원칙에 맞지 않는 자들마저 백성이라고 간주해주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신약 예수님 때에 와서 확실히 이 원칙은 펼쳐집니다. 어떤 임금이 자기 아들의 혼인잔치를 배설했는데, 전부터 친분있는 사람들에게 종들을 보내어서 참석하라고 통고를 보내었습니다.

그런데 참석할 줄 알았던 사람들이 이 핑계 저 핑계대면서 모두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화가 난 임금님은 사거리에 나가서 사람 가리지 말고 강제로 자신의 아들 혼인잔치에 참석토록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참석 원칙을 양보되지 않습니다. 예복을 입지 아니하면 참석한 사람은 임금님의 취지를 모독한 죄가 큰 형벌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천국입니다.

즉 천국이란 순전히 천국을 배설한 주인님의 의사만 반영되고 그것도 영원토록 반영되는 곳입니다. 또 다른 천국 비유를 예를 들면, 이번에는 포도원 비유입니다. 아참 10시 온 사람들부터 오후 늦게 온 사람들까지 다 등장하는데 당연히 일을 한 시간은 같을 리 없습니다. 먼저 온 사람들이 분명히 일을 더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포도원 주인의 의도적으로 나중 온 사람에게 약속한 품삯을 줍니다. 그 광경을 맨 처음 온 사람들이 알게 합니다. 나중에 온 사람도 자기들과 같이 똑같은 품삯을 받는 것에 분개한 쪽은 당연히 먼저 온 사람 쪽입니다. 그러나 포도원주인님이 이야기합니다. “네와 내가 약속한 대로의 액수가 아니냐? 그런데 왜 네가 삐지냐?”고 말입니다.

이처럼 천국의 원칙은 주변 언약을 모르는 사람을 가려내는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데 구원 받지 못한 자들을 삐지게 만드는 요소가 담겨 있습니다. 바로 사실을 이스라엘 자신들도 모를뿐더러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알지를 못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두로나 에돔이나 암몬은 모두 이 긍휼로서의 구원의 의미를 깔보는 민족으로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민수기 23:21-22에 보면, “여호와는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여호와 그의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었으니 그 힘이 들소와 같도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곧 제사장 나라요 유일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나라입니다. 따라서 이 긍휼을 모독하는 것은 이스라엘과 함께 있는 참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 되어서 그 나라는 ‘긍휼을 이해못해서’ 저주받아야 될 나라입니다. 이스라엘처럼 말입니다.

두로는 형제의 계약을 기억치 않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괴롭혔다. 여기서 ‘형제의 계약’이란 두로의 왕인 히람이 이스라엘의 왕이던 다윗과 솔로몬과 맺은 동맹 관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노예로 팔지 못한다는 조항이 삽입되어 있습니다.(삼하 5:11, 왕상 5:1-12/ 9:13) 그런데 두로는 이것을 무시하고 어떤 경로로든 그의 수중에 떨어진 이스라엘 포로들을 에돔인들에게 팔아 넘겼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포로들이 어떤 어려움에 떠는가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도모했던 것입니다.(겔 27:13) 그리하여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노의 예언이 임하였는데, B.C 333년 마게도냐의 알렉산더 대왕이 두로를 함락시켜 약 3만 명의 거민들을 노예로 팔았고 수천 명의 지도자들을 사형시킴으로써 이 진노의 예언을 성취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돔에게 진노를 발하신 이유는 ‘저가 칼로 그 형제를 쫓아가며 긍휼을 버리며 노가 항상 맹렬하며 분을 끊없이 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형제‘란 이스라엘 족속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원래 에돔 족속의 조상이 에서였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조상은 야곱으로서 이 둘은 형제지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형제라면 당연히 아끼고 긍휼히 여겨야 함에도 불구하고 에서의 후손인 에돔 사람들은 이스라엘 족속을 칼로 도륙하고 긍휼을 베풀지 않았습니다.(민 20:18/옵 1:10) 암몬 족속에게도 하나님의 저주가 퍼부어집니다.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이 자신의 두 딸 중 작은 딸과 동침하여 낳은 아들이 ‘벤암미’인데 이가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창 19:38)

한편 ‘벤암미’를 뜻하는 히브리어는 ‘나의 백성의 아들’ 혹은 ‘나의 아버지 혈통에 속한 종족의 아들’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암몬과 이스라엘 사라의 실제적인 친족 관계가 있습니다. 이 암몬이 조직화된 국가로서의 모습을 나타낸 시기는 이스라엘의 사사 시대 때였습니다.( 삿 3:13/10:7)

이 후부터 암몬 족속은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통일 왕국 시대(B.C. 962-922) 동안에는 이스라엘의 속국으로 머물러 있었으나 점차 세력이 확장되어 가면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가시와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B. C. 580년경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하여 멸망당하고 맙니다.

암몬 자손의 저지른 죄는 자신들의 영토를 넓히기 위해 길르앗의 아이벤 여인의 배를 가르는 잔인한 죄악을 범한 일입니다. 원래부터 암몬 족속(현재 요르단)은 영토 확장에 대한 욕심이 많은 민족으로 아람 나라와 동맹을 맺어(삼하 10:6) 이스라엘 침략할 때 이런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암몬 자손의 저지를 죄악의 결과는 ‘수도인 랍바 성’이 불타게 되면 왕과 신하들이 사로잡혀 가는 일입니다.

『하나님,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힘을 늘 만끽하면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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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이한례

 04강-암1장9-15(두로,에돔,암몬의 죄)111127-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 아모스 1장9절에서15절 말씀입니다. 구약성경 1275페이지입니다.

아모스1:9-15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두로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그 형제의 계약을 기억지 아니하고 모든 사로잡은 자를 에돔에 붙였음이라 내가 두로 성에 불을 보내리니 그 궁궐들을 사르리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에돔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가 칼로 그 형제를 쫓아가며 긍휼을 버리며 노가 항상 맹렬하며 분을 끝없이 품었음이라 내가 데만에 불을 보내리니 보스라의 궁궐들을 사르리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암몬 자손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자기 지경을 넓히고자 하여 길르앗의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갈랐음이니라 내가 랍바 성에 불을 놓아 그 궁궐들을 사르되 전쟁의 날에 외침과 회리바람 날에 폭풍으로 할 것이며 저희의 왕은 그 방백들과 함께 사로잡혀 가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성경에 오늘 나오는 두로와 에돔과 암몬, 이런 나라는 이스라엘 주변에 있는 나라인데 그 주변에 있는 나라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이러한 여러 가지 계시를 주시고 멸망 소식을 한다는 것은 그동안 이스라엘에게만 적용됐던 축복과 저주의 그 징후가 이제는 전 세계로 퍼지게 되었다 그런 뜻입니다. 지금까지는 이스라엘만 다루고 이방나라에는 손을 안 대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만 주어졌던 그 축복과 징벌을 범 세계적인 것으로 확산시켜 나가게 된 시점에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어야 될 이스라엘을 주변에서 굉장히 너무 유혹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이스라엘을 너무 심하게 아주 무시하고 핍박을 해왔었습니다. 이웃나라에서는 그랬죠. 이스라엘 여호와 하나님이라 하는 것은 이스라엘에만 국한된 하나님이지, 필리핀이나 인도나 그쪽은 그쪽 신이 있기 때문에 자기 나라 신을 가지고 제멋대로 그 범주를 넘어서서 전 세계 모든 동족에게 일관되게 해당된다는 그러한 무모한 논리는 펴지  말라는 것이 이방나라의 의식  있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고, 어떻게 들으면 그것이 상식적이겠죠.

 

지금 여호와 하나님과 보통 우리나라의 태고 적부터 내려오는 단군 할아버지와 하나님의 차이점이 뭐냐 하면 단군 할아버지 하나님은 우리 민족과 관련된 하나님인 반면에 이스라엘 하나님은 온 인류에게 다 관여할 그만한 자격이 있는 하나님이라고 이렇게 돼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자동적으로 자존심 싸움이 되겠죠. ‘그냥 니 것이나 섬겨라. 남의 것 간섭하지 말고,’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너희들이 이스라엘 하나님을 깔봤잖아. 이제 보복을 받아야지, 이제 매 맞을 시간 되었어요.’ 그런 침범이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개인적 하나님이 인류의 전 역사를 통괄해서 하나님으로서 심판한다는 그 증거가 무엇이냐 하면, 증거가 어디 있느냐 하면,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만들어 준 자기백성들로부터 배신당한다는 것이 그게 또 하나의 증거가 돼요. 하나님을 섬겨야 될 백성한테 정작 자기백성한테 서러움을 당하고 배척을 당함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받을 자가 없는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내 백성, 내 백성, 내 백성.’ 하나님께서 약속된 내 백성은 어디서 이 빈칸을 채우겠어요? 하나님께서는 자기 언약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한다는 요 조건을 그냥 텅텅 빈 채로 남겨둘 수는 없는 거다 말이죠.

 

하나님의 긍휼로, 또는 하나님의 희생으로 죄 용서 받아서 구원될 사람이 있어야 되는데 그 있어야 될 자리에 자기 백성들이 ‘웃기네.’ 하고 박차고 나가버렸다 말이죠. 나가버렸으니까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전의 이스라엘을 긍휼로 구원했던 그 방식 그대로를 수용할 수 있는 이방사람이라도 좋다. 저주받을 사람도 좋다. 이건 거기다가 다 집어넣는 겁니다.

 

쉽게 예를 들게요. 어떤 임금님이 혼인잔치를 했는데 잔치를 하려면 하객들이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는 친척들 소개장 보내서 ‘너도 오너라. 나도 오너라.’ 이렇게 하니까 그 사람들이 뭐라 하느냐 하면 ‘아이쿠, 나는 밭을 샀다. 어디 행사 있다. 장가가야 된다. 어떻게 장사해야 된다.’ 이래서 전부 다 가버렸다 말이죠. 가버리니까 임금님이 화가 나서 ‘아이고, 모르겠다. 아무나 만나는 대로, 경상도 말로 대내끼는 대로, 만나는 대로 사거리 나가서 ’아무나 오소.‘ 해서 불러서 내 집을 채워라. 채우는데 조건이 하나 있다. 올 때는 ’우리가 여기에 들어올 자격이 없는데 주인님(임금님) 덕분에 감히 아드님의 혼인잔치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라는 걸 표를 낼 수 있는 옷(유니폼)을 입어라. 그럼 유니폼은 어디 있는가, 출입구에 마련돼 있어요. 그래서 ’아! 나 억지로 왔어. 술 한 잔 줘라.‘ 하지 말고 ’세상에 우리가 들어갈 수도 없는 이 혼인잔치에 우리가 들어오다니. 정말로 고마워라. 아이고, 그동안 이 부끄러운 죄, 내 맘대로 산 죄, 어떻게 가릴 수 있는 옷이 없을까,‘ ’옷이 저기 있구나.‘ 하고 예수 그리스도 옷 입고 그 혼인잔체에 참석하란 말이죠.

 

그 옷에는 뭐가 묻어 있느냐 하면 예수님의 피가 묻어있어요. 그래서 이 많은 이야기를 하시면서 천국은 무엇이냐, 이것이 천국이다. 자기 들어올 자격이 없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예수님)의 피 때문에 피 묻은 옷을 입고, 영원히 천국에서 사는 그것이 바로 천국이다. 우리가 엉뚱한 천국을 상상하면 안 됩니다. 우리 행함으로 구원받는 생각하면 안 됩니다.

 

어제는 멀리 있는 제 딸하고 영상 통화를 하면서 제가 물었어요. ‘니가 주일학교 교사인데 애들에게 뭐를 가르쳤느냐,’ 하니까 우리 애가 하는 말이 마태복음 20장의 포도원비유를 초등학교 애들에게 가르쳤다는 거예요. 어떻게 가르쳤느냐 하니까, 포도원비유가 뭐냐 하면, 아침에 10시에 온 사람, 12시에 온 사람, 3시에 온 사람, 1시에 온 사람, 그런 사람들을 가르칠 때에 너는 어떻게 가르쳤느냐고 물어보니까, 애들에게 ‘포도원 주인이 좋아? 나빠?’ 하니까 ‘좋아요.’ ‘그러면 누가 나빠?’ ‘먼저 왔다고 일 많이 했다고 품삯 더 달라고 하는 그 사람이 나빠요.’ ‘나쁘지, 그러니까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야지. 지 행한 것 있다고 까불면 안 돼.’ 이렇게 가르쳤다는 거예요.

 

그래서 ‘호오! 야가 알기는 아는구나. 그런데 거기다가 니가 하나 더 놓친 게 있다. 뭐냐 하면, 품삯을 줄 때에 처음부터 먼저 온 사람에게 품삯을 주지 않고 먼저 온 사람이 다 있는 장면에서 제일 나중에 온 사람에게 품삯을 줘서 그래서 저쪽(먼저 온 사람)이 삐지게 만드는 그걸 니가 놓쳤다.ㅎ 그 말은 뭐냐 하면 앞으로 가르칠 때는 그거 하나 첨가해라. 먼저 믿었다고 먼저 높은 계급이라고 교회에서 목사, 장로가 우겨대는 것, 그 사람은 지옥 가고 니들이 천당 간다. 앞으로는 집어넣어라.’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ㅎ 지금 그 교회 어이 될지 모릅니다.ㅎ

 

천국이라는 것은 이렇게 지상에 온 천국은 살살 약을 올리는 천국 이예요. 뭔가 지가 했다고 여기면 약을 올리는 천국이라 이 말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멸망의 원칙을 서서히 뭐로 바꾸느냐 하면 양쪽 다 확산시키는 이스라엘 방법을 이방에게도 적용시키는 이 와중에서 등장하는 것이 뭐냐 하면 두로와, 여기에 에돔과 암몬이란 세 나라입니다.

 

성경에서 이렇게 지명 나오면 벌써 교인들은 뭐 이렇게 자는 척 하려고, 모른다 이 말이죠.^_^ 관심 없다 이 말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구약을 할 때마다 늘 지명에 대해서 일단 대구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줘요. 대구 중심으로 두로는 어디냐 하면 충남 태안반도입니다. 그리고 에돔은 어디냐 하면 경남 울산 지방, 기장, 저쪽 지방이 에돔 이예요. 암몬은 어디냐 하면 강원도 삼척 영월지방, 지금은 이스라엘과 요르단 지방 이예요. 그러면 대구 지방, 경북 지방은 이스라엘이 되는 겁니다.

 

그런 주변에 있는 나라들이 본의 아니게 이스라엘과 역사 속으로 관여하게 되었습니다. 관여하면서 그들은 뭘 몰랐느냐 하면 자기 민족이 땅이 있는데 땅은 자기들 땅이라고 했던 거예요. 우리 땅이라고 한 겁니다. 특히 에돔 같은 나라는 우상을 잘 지어내요. 몰록, 밀곰, 이런 거, 암몬 같으면 그모스, 각종 우상을 자기 나름대로 신을 만들었는데 그 신은 뭐냐 하면 ‘우리 신께서 이 땅을 우리에게 주었다.’ 이런 식으로 한 겁니다. 그러한 환경이죠.

 

그렇다면 한번 정리해 봅시다. 인간이 땅에서 사는 것이 아니고 인간은 각자 자기 신의 땅에서 사는 거예요. 신이 주신, 신이 은총을 주신 땅에서 사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염두에 두시고 땅 싸움을 신들의 싸움으로 전환시키는 방법으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는 거예요. 땅 싸움이 아니고 신들의 싸움!!

 

옛날의 군대들은 전쟁할 때 반드시 자기 깃발에 자기 신들의 심벌 같은 것을 앞장 세워서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옛날의 왕들은 왕만 나온 것이 아니고 옆에 보좌관이 있는데 제일 첫 번 보좌관이 뭐냐 하면 자기들이 믿는 신에게 승리를 기원하는 그러한 점쟁이나 제사장, 이런 사람들을, 요새 같으면 군목이죠. 군목들을 옆에 최고 보좌관으로 앉혀놓고 전쟁에 나서는 겁니다. 그러면 군목은 총질, 칼질 할 필요 없이 참 편하겠네, 이렇게 생각하시겠죠? 요거 위험 부담됩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그 나라에서 가뭄이나 어떤 홍수나 지진이나 이상한 자연현상이 일어났을 때에 인간의 손을 넘어서는 것은, 비가 안 온다든지, 이런 경우에는 제사장 담당입니다.

 

만약에 제사장이 제사하고 기도해서 비가 제 때 오고 또 비가 너무 많이 오면 안 오게 하면 그 제사장은 아무 행한 것도 없이 막대한 부를 자기에게 남길 수가 있는데 이건 뭐냐 하면 만약에 제사해도 비가 와야 하는데 비가 안 온다. 그러면 일가족 몰살입니다. 복불복이라 하죠. 이건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죽기 아니면 살기예요. 아주 위험한 직업입니다. ‘니 가짜 점쟁이 아니야?’ 가짜냐, 진짜냐 하는 것은 실제로 보통 사람이 못하는 것을 해낼 수 있어야 ‘아! 진짜구나.’ 아니면 ‘이거 가짜 아니야, 어디 가짜가 우리나라를 망하게 해.’라고 나쁜 선지자라 해서 단번에 목을 쳐버려요. 상당히 위험한 직업입니다.

 

그런 느낌이 있는지, 요즘 사람들도 자식 신학교 가라하면 마음이 우울해지죠. ‘하필이면 아들을 신학교를 보냅니까?’ 이렇게 하는데, 글쎄 갈 데 없으면 가는 거죠.ㅎ 수능 점수 안 나오면 가야죠. 어떡합니까?

 

이러한 신들의 전쟁에서, 그러면 신들의 전쟁이란 뭔 뜻이냐 하면 너희들이 여호와 위주로 생각하는 거예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그냥 베푸는 방식에 대해서 너희들이 협조하지 않으면 너희들은 이제는 죽었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다시 생각해 봅시다. 한 나라가 유지하려면 점쟁이가 있다. 그 점쟁이는 용한 점쟁이라야 그 점쟁이는 유지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각 나라마다 있는 점쟁이나 제사장들은 아슬아슬하죠. 그런데 아예 진짜 용한 점쟁이들끼리만 모인 나라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나라가 이스라엘이거든요. 그 나라가 이스라엘이니까 하나님의 뜻은 이거예요. ‘각 나라에 있는 점쟁이들아 사표 내라. 각 나라에 있는 제사장들아, 다 사표 내라. 어디 감히 가짜들이, 진짜 하나님과 내통하고 있고 접선되고 있는 유일한 제사장나라, 집단적으로 온 나라가 제사장, 전체가 제사장 나라는 오직 이스라엘뿐이니라. 길을 비켜라.’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럴 때 에돔의 나라가 길을 안 비켰어요. ‘뭐야, 어디서 날아온 돌이 박힌 돌을 빼려고?’ 이런다 말이죠. 이 약속의 땅이라는 것은 지도를 그려보면 신들의 땅 이예요. 각자 넘어갈 때마다 신들이 달라요. 신들이 다르고 신들마다 신들을 지키는 신들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그 신에 속한 제사장들과 점쟁이들이 각자, 각자 갖추어져 있는 겁니다.

 

그런데 진짜 하나님이 같이 있는 나라가 그쪽에 들어가게 되면 그들은 다 헛 쭉정이, 화투로 11월 달이죠. 헛 쭉정이, 똥들을 쥐고 있는 거예요. 아무것도 값도 안 나가는 그런 것들을 쥐고 있었던 거예요. 전부 다 꿇어. 나 졌다 하고 화투 해 다 놔라 말이죠. 진짜 하나님이 나서신다 이 말 아닙니까?

 

이러한 전쟁의 모습은 예수님 당시에도 마찬가지예요. 예수님께서 조그만 사람이 타지 않는 나귀를 타시고 입성할 때에 ‘호산나, 우리의 구원자가 오신다.’ 호산나 노래 부르고 했잖아요. 예수님께서 들어가시고 나서 그 다음에 성전에 들어가셔서 비둘기파는 사람들, 그리고 동전 바꿔주는 사람들, 가차 없이 채찍 들고 상을 뒤집어버렸어요. 형법에도 주먹으로 때리는 것은 형이 가볍습니다. 그런데 손에 무기 들면 이건 가중처벌 돼요. 예수님은 채찍을 들고 동전을 엎고 상을 뒤엎어버렸습니다. 완전히 이거는 국회의사당에서 최루탄 터뜨리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ㅎ 김 선동 의원 이예요. 그때 ‘왜 뒤집는데, 하나님의 성전을 왜 뒤집는데?’ 하니까 예수님 하시는 말씀이 ‘이곳은 성전이 아니기 때문에 뒤집어야 된다.’는 거예요. 상당히 과격하죠. ‘이곳은 하나님의 집도 기도하는 집도 아니다’는 거죠. 다시 말해서 ‘나는 너희를 사랑하기 때문에 뒤집는다.’하는 소리와 똑같은 소리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잘 들으세요.) 사람의 손으로 있는 어떤 곳에서도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동조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지은 집에도 계시지 않을뿐더러 자기 손으로 자기 몸을 성전이라고 유지 관리하는 것도 그 사람은 성전이 아니에요. 성령이 들어있는 성전을 인간이 지 몸을 관리하는 게 아닙니다. 성령이 관리하게 돼 있어요. 전자 제품 수리하고 컴퓨터 고장 나고 하면 만날 전문가들이 하는 소리 있잖아요. ‘제발 전문가가 올 때까지 손대지 마소.‘ 하잖아요. 손대서 오디오 더 망가진다 이 말입니다.

 

성전 수리는 전문가한테 맡깁시다.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구원 받는가 그 방법도 전문가한테 맡깁시다. 그 전문가 되시는 예수님 하시는 방법은, 바로 그동안 하나님 잘 섬긴다고 잘 섬겼던 그들이 왜 결국에는 자기가 섬기는 하나님으로부터 다른 신을 섬긴다는 이유로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가, 그 실패의 역사가, 실패의 그런 경험들이 너희에게 구원의 근거가 된다는 거죠.

 

남들이 실패한 것이 그것을 거울삼아서 ‘하아! 그러니까 아, 우리는 저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 하나의 거울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 보면 스데반 집사님도 그렇고 사도바울도 그렇고 구약 전체를 예수님 중심으로 설교를 죽 해온 그것이 있어요. 그만큼 구약이라 하는 것이 우리에게 구원의 근거로서 삽입되기 위해서 무시 못 할 것이란 말이죠.

 

그러면 여기 에돔이라든지 암몬이라든지 두로가 뭐가 문제가 돼서 이스라엘과 더불어서 망하게 되었는가, 이스라엘도 망하고 양쪽 다 망하는 겁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이스라엘이 망할 수밖에 없던 그 망함의 원리가 이스라엘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경계선을 넘어서서 주변의 나라까지 확대됐다 이 말이죠. 더 나아가서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팔려나가면, 앗수르 나라도 망하게 돼 있고 유다 나라가 바벨론 나라에 팔려나가면 바벨론 나라도 망하게 돼 있습니다. 하여튼 가는 곳마다 다 망하게 돼 있어요.

 

마치 언약궤가 가는 곳마다 전부 다 전염병이 퍼지는 것처럼, 블레셋 나라가 홀딱 망한 것처럼, 하나님의 약속이 가는 곳마다 그곳은 다 망하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려운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교회라 하는 것은 교회를 의지한다는 것이 우상숭배인 것을 아는 단체가 교회가 되는 겁니다. 교회 없애버린다고 교회 되는 게 아니고 교회를 하세요. 하면서 그 교회를 절대로 믿거나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늘 되풀이해서 말하는 그 교회만이 교회예요. 우리 교회는 우리는 교회를 믿지 말아야 되는 이유는 예수님 때문에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을 믿는 그쪽이 교회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덕분에 믿었다고 우기는 자기 자신을 자꾸 신봉하면 그것도 성전이 아니죠. 그러한 자기 자신을 믿는 이것이 바로 ‘아, 이게 우리의 한계고 이것이 주께서 가르치고자 하는 죄의 모습이구나.’ 하고 깨닫는 그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을 꾸짖게 하시는 분과 함께 동승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교회가 되고 성전이 되는 겁니다. 그 원리가 그대로 적용되는 거죠.

 

서너 가지 죄가 있다고 하는데 그러면 세 나라 전체를 합쳐서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죄가 있어요. 그 죄는 뭐냐 하면 이런 겁니다. 이거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서너 가지 죄의 특징을 보면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속에 왕이 있습니다. 민수기 23장에 있는데 여러분 아시니까보지 않겠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이스라엘만 있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왕이 있어요. 그런데 보이지 않는 왕과 이스라엘 사이는 왕은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십니다. 여호와는 은혜 줄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주십니다. 긍휼히 여기는 그것이 이스라엘 이예요.

 

그런데 다른 나라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무시한다는 것은 긍휼히 여긴다는 말 자체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긍휼히 여기는 그 자체를 무시하는 것이 긍휼히 여김을 당해서 도리어 심판을 반드시 받아야만 긍휼이 긍휼답게 이것이 도드라지면서 유지가 되는 거예요. 말로 하니까 어려운데 예를 들면 쉽습니다. 엄마가 아들을 사랑합니다. ‘아들아, 난 너를 사랑한다.’ 그러면 아들이 일부러 아주 오래 된 이조백자를 탁 깨뜨립니다. 그러면 엄마가 백자를 다 주우면서 몽둥이 들고 애를 죽어라 패면서 팰 때마다 ‘아들아, 난 너를 그래도 사랑한다.’ 죽어라 패면서 하는 거예요. 그 다음에 아들이 사고 쳐서 구치소 가 있는데 합의를 봐야 되는데 면회해서 합의금 주고 빼내오면서 ‘나는 너를 계속 사랑한다.’ 그러면 아들을 계속 사고를 치는 거예요. 사고 칠 때마다 때릴 때마다 그래도 나는 너를 버리지 아니한다는 뜻에서의 긍휼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게 긍휼을 알려주기 위해서 긍휼의 대상이 안 되는 이방나라를 혹독하게 다뤄야 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이고 또 한 가지 이스라엘에게 주신 그 긍휼을 ‘에이고, 그게 무슨 긍휼이야?’라고 모독하는 이방나라에게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긍휼하신 것을 동의하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에 저쪽은 가만있다가 얻어맞아야 돼요. 이런 것이 말씀 드리기 굉장히 어렵습니다.

 

포도원 비유 다시 이야기할게요. 아침에 분명히 10시에 올 때에 오늘 한 데나리온 준다고, 요새는 8만 원 쯤 되죠. 8만원 준다고 계약을 했으면 하나님께서 주인이 돼서 ‘제일 먼저 온 사람 먼저 이리와. 아침에 얼마 계약했지?’ ‘8만원’ ‘자, 8만원’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얼마든지 가능해요. 다 주고 간 뒤에 마지막에 온 사람에게 ‘니 한 시간 일했는데 얼마지?’ ‘8만원이요.’ ‘그래, 8만원’ 이러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다들 보는 앞에서 제일 먼저 온 사람한테 8만원 줌으로써 먼저 온 사람은 ‘ 말은 8만원이지, 사실은 8X5=40,’ 40만원 기대했는데 안 줄 때 그들은 삐지려 하는 거예요.

 

이게 뭐냐 하면 천국은 오직 긍휼과 사랑과 거저 베푸는 은혜로만 유지된다는 사실을 본인은 안다고 우기는 거예요. 난 이게 제일 답답해요. 오늘날 한국 교회가 기독교 교회 가는 사람치고 사랑모르고 은혜 모른다고 하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다 안다고 하는데 막상 자기의 행동하는 거, 헌금 기도 봉사 이런 게 다 죄라고 하면 다 삐져 버려요. ‘뭐가 잘못됐는데, 뭐가 잘못됐는데, 이거 해서 복 받았는데,’ 그러니까 여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주신 이스라엘이 자기 백성이 매 맞으니까 주변에서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참, 이스라엘 사람들 포로로 노예로 팔아먹어야지, 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렸으니까, 우린 마땅히 포로 잡아야지.’라고 하는 사람에게 그들은 긍휼을 알고 가져가는 것과 긍휼을 모르고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따지는 것과 이것은 지옥과 천국 차이입니다.

 

맘대로 살 때 긍휼을 모르고 맘대로 사는 것과 긍휼을 알면서 맘대로 사는 것하고 같은 막국수 막 사는 것이라도 틀려요. 같은 막국수가 맛이 다릅니다. ‘그저 뭘 해도 막사는 겁니다.’ 하는 사람은 긍휼을 아는 이스라엘이고 ‘막 살아도 된다며? 아, 이제는 잘 됐다. 이제는 뭐든지 해도 되겠다.’ 이러면 이미 긍휼을 떼놓고 자기밖에 모르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징벌을 내리는 거예요.

 

암몬이라 하는 것은 롯의 손자죠. 소돔과 고모라에서 롯이 나오고 난 뒤에 후손을 이을 길이 없어서 두 딸이 아버지를 술 먹여서 낳은 자식이 암몬 자식이고, 모압하고 형제간입니다. 암몬 자식은 요새는 요르단, 영월 삼척 지역, 동해시 묵호 저쪽 방면이 뭘 노리느냐 하면 ‘에이그, 이스라엘이 은혜 받아놓고 망했다네. 이 판에 저 은혜 받은 사람 전부 다 우리 것 만들자.’할 때 그들이 손을 댄 순간 정전 이예요. 정전. 하나님의 백성을 건드린 게 아니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그들은 겁도 없이 예수님의 피로 거치지 않고 그냥 막 되먹게 그들을 함부로 다뤘던 거예요. 이게 바로 오늘날 교회, 진짜 십자가를 모르는 교회 목회자나 교회 다니는 사람들, 세상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진짜 끝으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북한에 쌀 보낸다고 기독교 천주교 인사 불교 인사 합쳐서 북한에 쌀 보냅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기독교하고 천주교하고 불교하고 어떻게 통합이 되겠습니까? 안 돼요. 진짜 기독교 복음 아는 사람은 자기가 죄인인 걸, 아는 사람인데 천주교 불교는 뭐냐, 이런 일을 함으로써 지 잘 났다는 사람인데 어떻게 그게 하나가 될 수가 있습니까? 결국은 그것은 정치적으로 나중에 돈 타내려고 하는, 나라에서 보조금 타내려고 하는 그런 속임수를 뒤에 감추고, 현재 신부가 할 짓이 없거든요. 요새 절이 운영이 안 돼요. 돈 많은 나이 많은 사람이 죽어가니까 시주 하는 사람이 시주를 얼마 하지를 안 해요. 절에 가는 사람이 돈이 없어서 대부분 시주를 얼마 안 해요. 전부 다 동화사 갈 때 비구니 하나 뜯어먹으러 가는 사람들 이예요. 돈이 안 되니까 정부 보조금 타내려고 착한 일 한다고 그 짓한다 이 말이죠.

 

주님의 긍휼을 입어버리면 우리가 아무리 교회 나오고 예수 믿는다 해놓고 실제로 생활 속에 모든 속에 주님의 사랑과 긍휼을 입기 때문에 함부로 우리가 ‘그것은 이제 내거’라고 주장하면 안 됩니다. 밤에 잘 때나 무엇을 할 때나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의 힘으로 꽉꽉 차인 어느 순간도 운전 할 때나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구석이 없어요. 전부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온 몸으로 전율 하듯이 매일같이 느끼면서 그렇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우리가 믿는다 하면서도 사실은 이용하려는 생각이 없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이용하기 보다는 막 살수밖에 없음을 용서하신 그 용서를 우리가 잊지 않고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