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아모스 2:1-3 / 모압 족속의 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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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압 족속의 죄
본문 말씀: 아모스 2:1-3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녹취:이한례 05강-암2장1-3(모압 족속의 죄)111204-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 아모스 2장1절에서3절 말씀입니다. 구약성경 1275페이지입니다. 아모스2:1-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모압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가 에돔 왕의 뼈를 불살라 회를 만들었음이라 내가 모압에 불을 보내리니 그리욧 궁궐들을 사르리라 모압이 요란함과 외침과 나팔 소리 중에서 죽을 것이라 내가 그 중에서 재판장을 멸하며 방백들을 저와 함께 죽이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러 가지 이스라엘과 걸쳐 있는 경계를 이루는 여러 가지 이방민족들의 그 벌에 대해서 그 죄에 대해서 벌한다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아모스에 나오는 예언 중에 포함이 돼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민족 마다 꼭 이스라엘 민족의 여호와만 신이 아니라 사람들은 자기 민족이 섬길만한 그러한 신들을 다 같이 갖고 있습니다.
요즘 식으로 하면, 하나님 다 믿습니다. 그런데 다 하나님 믿는다는데 성경을 펼치면, ‘하나님 믿는데 너 망한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나님 안 믿다가 하나님 믿으면 얼마나 착한 일이고 훌륭한 일처럼 그렇게 여겨집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니 하나님 믿나?’ ‘믿습니다.’ ‘망해라.’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럼 하나님 안 믿어도 문제고, 안 믿어도 망하고 믿어도 망하고 그럴 것 같으면 ‘나 그런 하나님 안 믿을래.’ 라고 삐지게 되죠. 그럼 삐졌으면 그 삐진 것으로 인하여 망하게 돼 있습니다. ㅎ 빼도 박도 못해요. 모든 인간은 무덤에 가봤자 소용없어요. 무덤에 가봤자 ‘아휴, 지긋지긋한 교회 안 와도 된다.’고 생각하고 하나님 안 믿어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무덤에 가는 그 순간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인자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고 심판이 개시되는 겁니다.
그것을 가지고 영속성이다. 죽음으로 단절되는 것이 아니고 죽음도 우리 인생의 영속성을 끊을 수 없습니다. 죽음이 우리의 인생을 두 동강 낼 수도 없어요. 계속해서 뭔가 이렇게 국물처럼 이어져 가는 겁니다.
그래서 이 성경은 요새 현대인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요새 나 교회 나와서 하나님 믿어.’ 하면 ‘아! 망하는구나.’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다른 기준을 성경은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믿는다고 해서 그 하나님이 그 하나님이 아니라는 거죠. 예수를 믿는다고 그 예수가 그 예수가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 어머니 집에 자꾸 예수 이야기하는 두 아줌마가 찾아온다고 전화가 왔었어요. 여기 우리 어머니 계시지만, 어머니 하시는 말이 ‘예수 잘 전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예수가 그 예수인지, 그 예수가 아닌지 그 예수를 잘 들어보고 그 예수를 잘 이야기해보라는 말이죠.ㅎ
성령 이야기한다고 안 망한 게 아니에요. 그 기준이 있어요. 그 기준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하나님 믿는다는 모압, 하나님 믿는다는 암몬, 하나님 믿는다는 블레셋, 하나님 믿는다는 여러 가지 그들이 말한 인간들이 쉽게 말해서 인간들이 보편적으로 나올 수 있는 신을 한번 규명해 보자 이 말입니다. 사람들이 이 성경 덮고 나올 수 있는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하나님인지 성경 덮고 나올 수 있는 예수, 성령, 그런 것들이 어떤 내용으로 돼 있는지를 살펴보자 이 말입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중심으로 모압, 암몬, 주변에 있는 신들을 믿는 나라가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서 전부 다 징벌 받고 저주받고 멸망당하는 것처럼 이것이 신약 시대에 오면 교회 내부에 같은 예수 같은 성령 같은 복음 이야기 하면서도 거기 망하는 사람들이 교회 내부에서 쏟아져 나온다는 것을 고린도후서 같은 경우에는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에 보면 유명한 말씀은 아닙니다. 이건 안 유명해요. 숨어있는 말씀인데 ‘어떻게 너희들이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성령을 이야기하느냐, 이렇게 돼 있어요. 이 말씀이 고린도후서 11장 4절에 나오는데 안 유명한 이유가 하여튼 예수 믿으면 형제라고 쳐주자는 거예요. 일반 대세가. 얼마나 그런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까? ’아니 같은 예수 믿는다는데 왜 자꾸 비난하느냐, 이렇게 나온다 말이죠. 무슨 예수인지 그러면 내가 한번 물어볼게. 너희들이 생각하는 고린도후서 11장 4절에 나오는 예수와 다른 예수의 차이점을 너희들은 어떤 기준점을 가지고 두느냐, 물으면 또 쑥 기어들어가요. 두더쥐 때리면 동굴 속으로 들어가듯이 쑥 기어들어가요.
왜 할 말이 없이 기어 들어가느냐 하면, 예수와 다른 예수의 기준을 그들은 몰라요. 왜 모르느냐, 그들은 교회 안 다녔다가 교회 다닌다는 것을 좋게 보기 때문에 교회 밖에는 예수가 없는 곳, 교회 안에는 예수가 있으니까 하여튼 예수 안다고 하면 일단은 구원받은 사람으로 쳐주자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경은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심지어 여호와 믿는 이스라엘마저 망하는 거 보세요. ‘여호와, 여호와.’ 한다고 해서 그 여호와가 그 여호와가 아니라는 거죠.
그러면 예수와 다른 예수, 성령과 다른 성령, 복음과 다른 복음 그 기준이 뭐가 되느냐,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 언급하면서 우리와 고리를 만들어 놨어요. 예수님 십자가 이야기할 때는 그냥 십자가가 아니고 우리 자신, 성도하고 진짜 성도하고 연결시킬 수 있는 고리를 만들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라. 자기를 부인하고!!
결국은 예수, 하나님, 성령, 아무리 이야기해도 뭐가 안 되느냐 하면 ‘자기를 부인하고’가 무슨 뜻인지 모르면 거기서 튀어나오는 십자가, 하나님은 전부 가짜가 되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나 예수님 십자가 앞에서 나는 나를 부인할 수밖에 없다.’ 요런 연관성이 있어야 된다 이 말입니다. ‘나 십자가 믿거든.’ 이러면 안 돼요. 십자가 앞에서 나는 나 자신을 믿는다 할 수도 없는 입장이고 십자가 능력으로 구원받지, 십자가 믿는 그 믿음으로 내가 구원받는 건 아니다 이 말입니다.
방금 한 이 말들을 그들은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이해가 안 되는 이유가 자기 바탕에 좋은 것을 끄집어 당기는 것만 알았지, 그 바탕에 쓰레기 담기는 걸 모르는 거예요. 자기 그릇 자체가 쓰레기인 줄 모르고 자기 그릇은 쓰레기가 아닌데 쓰레기 아닌 좋은 그릇에다 그걸 닦아서 거기에다 좋은 것 집어넣으면 그것이 양쪽 다 세트가 돼서 좋은 데 갈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진짜 주님의 좋은 것, 주님의 것이 오게 되면 ‘화로다 망하게 되었구나.’ 해서 자기를 부인하게 돼 있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게 돼 있어요. 자기를 좀 근사하게 멋있게 포장해 보려고 사람이 무슨 수작을 하기 마련인데 그 수작하기 마련인 그 자체가 ‘아! 이것이 내 모습이고 그것이 자기 부인해야 될 나를 부정해야 될 이유구나.’ 하는 것을 주의 십자가 앞에 고백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스라엘 주변에 모압이라는 이런 나라가 있다는 그 자체는 모압은 망하고 유다는 안 망하고 이러한 것이 아니고 유다 망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모압도 망하게 하셨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은 어느 민족이 내 편이라는 게 없고 하나님의 자신의 언약에 부합되지 않으면 다 망한다.‘라는 것을 양쪽 다 보여주는 거예요. 이스라엘을 치는 앗수르도 이스라엘을 쳤던 그 기준을 동원해서 쳤던 앗수르를 도로 쳐버리고 이스라엘을 쳤던 바벨론도 이스라엘을 쳤던 그 바벨론의 기준을 따라서 바벨론도 쳐버리고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밖에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밖에 모르기 때문에 이 사실을 안다면 하나님도 인정해 주고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식으로 하나님 좋고 내 좋고, 라는 그런 식으로 하나님을 믿지 말라는 거죠. 하나님은 하나님밖에 모르니까 난 그 앞에서 나를 부인하겠습니다.‘ 이렇게 피조물답게 고개 숙이고 들어가라 말이죠.
그게 본인한테 얼마나 이건 막대한 마음의 행복이, 막대한 마음의 평안이 찾아드는지, 마음으로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한번 바꿔 생각해 보세요. 내가 우선이고 그 다음에 하나님이 부수적이라면 우리는 매일같이 하나님께 원망하다가 세월 다 보냅니다. 복권 샀는데 복권 안 됐다고 원망하고 뭐 일했는데 일 꼬인다고 원망하고 따지고 보면 원망 안 할 것이 하나도 없어요. ‘ 이렇게 하나님 믿는 나를 이렇게 약을 올리겠습니까? 이렇게 하나님, 나를 힘들게 몰아넣어야 속 시원하겠습니까? 아이쿠, 잘났다 하나님.’ 이런 식으로 만날 하나님 원망하다가 볼일 다 본다 이 말이죠.
원망하다가, 원망하다가 나중에는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 없다.’로 결론 지어버립니다. 그런데 그건 하나님이 기다렸던 고백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그 사람은 하나님이 없던 거예요. 괜히 흉내 내다가 흉내 내는 것도 하루 한 두 번이지, 나중에 몇 번 내다보면 내는 것도 지도 귀찮아서 못 내요. 흉내 내는 것도.ㅎ
그러면 모압이 벌을 받는데 모압에게 벌을 주시는 그 기준점이 뭐냐를 생각하는 것이 오늘 설교의 포인트가 되겠어요. 모압이란 나라가 이스라엘과 엮어지게 된 이유가 있어요. 모압과 지난 시간에 암몬 이라는 나라는 원래 조상이 아브라함과 관계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롯이라는 조카가 있었는데 그 조카는 소돔과 고모라 성에 살고 있었습니다. 천사가 다른 사람은 다 놔두고 이 롯에게만 천사가 와서 ‘빠져나가라, 얼마 있으면 이 도성 불바다 된다. 빠져나가라.’ 라고 천사가 그렇게 했었어요.
보통 천사가 오게 되면 이건 신문에 날 일입니다. 조 중 동.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에 날 일이예요. 천사 사진 찍고 천사 인터뷰하고 천사 본다고 아파트 베란다 내려다보면서 사진 찍어서 확대하고 생중계 할 거예요.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에 천사 나타나도 사람들이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왜 하늘에 사는 천사들이 인간 동네에 왜 왔는데?‘ 그럴 리가 없다는 거예요. 하여튼 천사는 왔어요.
그래서 성경 해석이 어려운 것이 성경을 해석할 때 롯에게만 천사를 알았기 때문에 내가 저분을 천사로 본다는 이 인식과 그 논리를 옆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방안이 없어요. 이게 바로 미치는 거예요. 이게 굉장히 힘든 겁니다. 이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납득을 시킬 수 있는 재주가 없어요. 그러면 ‘목사님, 성령을 안 받아서 그런 게 아닙니까?’ 그러거든요. 성령 받은 사도바울, 성령 받은 예수님, 사람들이 다 떠났습니다. 예수님 같은 경우에 예수님 설교 하자마자 얼마 안돼서 오던 사람까지 다 go back home. 자기 집으로 다 가버렸어요. 사람들이 뭔가 얻어 챙길 게 있어야 오는 모양입니다. 얻어 챙길 게 없다고 생각하니까 딱 고만 발 끊고 볼일 봐라 하는 식으로 두 번 다시 예수님과 다니지 않았다고 했어요. 흔히 하는 말로 지 복 지가 찬 거죠.ㅎ
예수님을 떠났다는 말은 마지막 심판 주를 심판주로 인정 안 했다는 뜻이거든요. 그 롯에게 천사인 줄 알아먹는 것은 롯의 능력이나 롯의 믿음이 아닙니다. 이것은 바로 아브라함이 배후에서 기도를 해줘서 기도 덕분에 하나님께서 멸망하는 중에 롯을 건진 거예요. 아브라함이 기도를 한 이유가 다 멸한다 하니까 아브라함이 뭘 생각했느냐 하면 거기 자기 조카가 사는 걸 생각해서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한 거예요.
‘의인이 있는데 다 멸합니까?‘ ’그래도 멸한다.‘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특별히 배려해서 뽑아낸 거예요. 그 소돔에서 나올 때 자기 아내와 같이 나왔는데 자기 아내도 나오다가 뒤돌아봐서 멸망당했잖아요. 그래서 지난 시간에 롯의 처를 생각해 보라 이렇게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그 대목은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제가 이야기를 안 했었어요. 롯의 처를 생각하라는 이 말은 설교 한편이 됩니다. 왜냐 하면 롯의 처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말고 롯의 처의 입장에서 롯의 처를 생각해 보란 말이죠.
그래서 롯의 처가 되돌아 본 것은 내가 남 말 듣고 살지 않겠다는 이 말이거든요. 얼마나 상식적이고 얼마나 생각이 똑바릅니까? 똑 바르기 때문에 지옥 간 거예요. 왜냐 하면 나는 내 사랑하는 남편이 간다고 해서 덩달아 동조하고 싶지는 않다 이 말 아닙니까? 얼마나 심지가 굳어요? 유관순 여사 같아. 심지가 굳고 자기 주관이 뚜렷하잖아요. 자기 주관만 뚜렷했지 망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만 소금기둥이 되어서, 소금 값이 올라갈지 내려갈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롯의 처를 생각하라는 말은 제발 교회가 사람 꼬이듯이 건질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왜냐 하면 아무리 그 사람이 안면 받쳐서 아는 관계라서 교회 와 주지만 결국은 인간은 자기 주관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게 돼 있다 말이죠. 지가 갈 길을 가게 돼 있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뭐 돈 주고 꼬이고 잘 해준다고 해서 사업 돌본다 해서 오는 게 아닙니다. 이민 교회서 유학생들 해봐야 유학생들 된다 싶으면 교회 안 나와요. 지가 편리할 때는 나오죠.
그리고 난 뒤에 롯의 후손이 없으니까 딸 둘이 따라와서 아버지 술 먹여서 그래서 낳은 자식이 하나는 모압이고 하나는 암몬이라 말이죠. 모압, 암몬이라는 것은 이스라엘과 관계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먼 인척 관계죠. 그런데 이 모압이란 나라가 어떤 나라냐 하면, 되게 살사는 동네라 말이죠. 양도 많고 포도도 많고 그러니까 이사야 16장에 보면 모압에 대해서 한 마디로 이야기했습니다. ‘니들이 잘 산다고 교만하구나.’ 이렇게 돼 있어요. 잘 산다고 교만하다는 것은 못 산다면 무시한다는 게 함유돼 있죠. 잘 산다고 교만했는데 여기서 열왕기하 3장에 보면 일이 벌어집니다.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와 그리고 여기에 에돔이라는 나라, 세 나라가 연합군을 만들어서 모압이라는 나라와 전쟁이 일어나게 됐어요.
전쟁이 일어난 이유가 솔로몬 죽고 난 뒤에 모압이 조공을 바치다가 ‘이제는 별 볼일 없다. 우리가 언제 이스라엘한테 조공을 바쳤느냐, 바치지 말자.‘ 해서 이스라엘에게 조공을 안 바쳤습니다. 독립하고 말았습니다. 독립한 것에 대해서 이스라엘이 ’손 좀 보자.‘ 해서 이스라엘의 여호람과 유다의 여호사밧과 그리고 에돔 왕의 세 연합군으로 해서 모압을 손봐주기 위해서 공격하는데, 그런데 이런 이야기도 보세요. 이런 이야기도 제 삼자가 볼 때는 뭐냐 하면 기득권 유지하기 위해서 약한 자를 공격하는 것밖에 안 되거든요.
그러니 하나님의 일을 윤리적 도덕적으로 오늘날 현대 윤리 도덕적으로 해석하면 해석이 하나도 안 됩니다. 손 좀 봐주러 가는데 연합군이 공격을 하러 가는데 광야 길에 가뭄이 들어서 물이 없어요. 물이 없어서 물 없다는 소식이 모압 땅에 들어가면 모압 군사가 역공을 해서 세 나라가 졸지에 한꺼번에 다 당하게 돼 있습니다. 그럴 때 지금부터 약간 어렵습니다. 제일 어려울 때에 그때에 대책이 없을 때 그들은 누굴 찾느냐, 엘리사 선지자를 찾게 됩니다. 그들은 엘리사를 뭐로 보느냐 하면 제갈공명 정도로 보는 거예요.
자기 전쟁을 하는데 어떤 지략가, 지략을 베풀 수 있는 그런 사람, 하나님 편에 섰으니까 ‘하나님, 우리 전쟁을 이기게 해주는데 어떻게 엘리사 찾았으니까 찾은 그 겸손한 마음을 알아주셔서 도와 달라 이런 식으로 나온다 말이죠. 그런데 엘리사가 그 네 나라의 전쟁에 개입했다는 것은 사실은 네 나라 몽땅 다 부정하는 조치예요. 세 나라는 그걸 몰라요.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시면 우리는 승리케 된다는 것만 생각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 돼 주시면 우리는 적들을 이긴다. 왜, 우리는 이스라엘이고 저쪽은 모압이니까, 이방민족 모압은 그모스 신을 섬겼어요. 그모스 라는 우상을 섬기니까 아마도 여호와가 그모스 신을 이겨줘야 여호와 값이 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니 생각이죠. 이것은 흔히 인간들이 생각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편리할 때만 여호와 찾고 지 자존심은 자존심대로 그냥 지탱하고 유지하려는 자기 부인이 안 돼요. 엘리사가 등장합니다. 등장해서 ‘나 당신 도와줄 의무 없습니다.’ 이래 나왔어요. 그러니까 남쪽 유다 여호사밧 왕이 간청을 해요. ‘아이고, 와 이러십니까?’ 하면서 간청하니까 ‘그럼 여호사밧 왕 얼굴을 보고 내가 하나님의 뜻을 전하겠습니다.‘하고 거문고 타는 사람을 불러서 띵~띵~ 띵~ 띵~♬♫ 거문고를 타고 있으니까 그때 하나님의 신이 임해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어요. 완전히 부채도사 비슷하죠. 그 당시에는. ’너희들이 이기겠다. 물이 온다.’ 물이 와서 이기겠다는 거예요.
자, 여기서 모압이라는 사람이 당하기만 했는데 그래서 전쟁할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전쟁했느냐 하면 모압 왕이 착각을 일으키게 해서 물이 흐르는데 물에 석양이 지니까 물이 벌건 거예요. 그래서 모압 왕이 감수성이 예민해서 저희 세 왕들, 연합군이 마음이 안 맞아서 서로 싸워서 그 군사들의 피가 물이 돼서 흘러왔다. ‘이때다. 공격하자.’ 까불다가 오히려 역습 받아서 다 죽었어요.
그럴 때 모압 왕이 화가 나서 뭘 했느냐, 자기 아들을 그모스란 신에게 산채로 불로 태워서 그모스 신에게 제물로 드리는 사건이 나옵니다. 자, 여기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모압을 치는 이유가 여기서부터 시작이 되는데 오늘 본문도 나오지만 시작이 되는데, 사람이 화가 났을 때 신에게 과잉 충성을 하기 마련입니다. ‘좀 바쳐도 안 돼, 교회 나와도 안 돼. 새벽기도까지 나와 줘도 안 돼. 에라, 그러면 ’내 아들 신학교 보낸다.’ 이런 식으로 뭔가 오기로 하나님 믿으면 성경의 하나님도 너무 과한 거니까 ‘저 인간 가만 놔두면 탈나겠다. 내가 어서 가서 성질 누그러뜨려야지.’ 그렇게 도와준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마치 사람 대 사람으로 상대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그런 식으로 상대하는 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 다음에 본문에 나와요. 1절에 보면 “모압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가 에돔 왕의 뼈를 불살라 회를 만들었음이라” 그 뒤에 그들은 여기 성경에 나온 사건은 아닙니다만 그 뒤에 이 모압이 에돔이라는 나라가 연합군에 붙은 것에 화가 나서 그것에 대해서 이를 갈고 있었다는 거예요. 이를 갈고 있어서 그 에돔 왕의 죽은 왕의 무덤을 파헤쳐서 뼈를 골라서 가루를 만들어 버렸어요.
이것은 뭐를 의미하느냐 하면 자기 속에 담겨있는 그 저주와 분노와 격분을 그런 식으로 표출해 나간 거죠. 이것이 바로 하나님 보시기에 자기 부인이 안 되는 거예요. 이스라엘에게 조공을 바치지 않은 것이 그것이 잘못이고 그로 인하여 여호와 하나님 섬긴 것이 잘못인데 그냥 그모스, 모압 자기 나름대로의 신이 있다 말이죠. 내가 내 원하는 신을 내가 믿겠다는데 니가 왜, ‘이건 가짜며 그건 엉터리며 지옥 가며 왜 그런 되도 않게 남의 신까지 경계선 넘어와서 주제넘게 간섭하고, 그건 반칙이지 이건 안 되잖아.’라는 생각이 저주받을 생각이라고 오늘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입니다. 길게 이야기했는데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그거죠.
왜 자꾸 여호와, 십자가, 예수, 왜 이것만 인정하고 왜 부처 믿는 거, 안 믿는 거, 교회 다니는 것이 내 자유인데 니 자유 가지고 왜 내 자유라 하고 함부로 폄하하고 낮추고 무시하고 모독하고 예수님 공로 아니면 지옥 간다고 그런 엉터리로 협박 공갈하고 이런 민주 사회에 서 이런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그러니 사람들 사이에서 화합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발언이냐 이 말이죠. 그건 자기의 신념에 불과한 건데.
이러한 모압 적인 사고방식은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서 충분히 습득을 해야 돼요. 이것을 습득을 해줘야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 똑같은 생각을 우리는 매일같이 내부에서 치밀어 오른다는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됩니다. 그 다음에 중요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믿지 않으면 그 누구라도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는 모든 공로는 바로 멸망당해야 될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성령입니다. 그것이 바로 다른 영이 아니고 진짜 성령, 그게 다른 예수가 아니고 진짜 예수, 그게 다른 복음이 아니고 진짜 복음이 그런 거예요. 그래서 진짜 복음은 항상 ‘자기 부인하고’와 엮여진 채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남의 일이라고 무관심할 게 아니라 바로 그 남의 일이 매일같이 우리에서 솟구쳐 올라오는데 단지 예수 안 믿는다고 지옥 가고 저주받는 것이 불합리하게 보이고 억지같이 보이고 일방적인 고집처럼 느껴지는, 바로 그 생각 속에서 우리가 십자가로 구원을 받았사오니 우리의 행함이나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주님의 은혜의 찾아오심인 것을 날마다 증거 하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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