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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아모스 1:6-8 / 블레셋 나라의 죄 본문

구약 설교, 강의(이근호)/아모스

아모스 1:6-8 / 블레셋 나라의 죄

정인순 2011. 11. 20. 15:37

 

 

블레셋 나라의 죄

음성  동영상

 

이근호
2011년 11월 20일                           

 

본문 말씀: 아모스 1:6-8

(암 1:6, 개역)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사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모든 사로잡은 자를 끌어 에돔에 붙였음이라』

(암 1:7, 개역) 『내가 가사 성에 불을 보내리니 그 궁궐들을 사르리라』

(암 1:8, 개역) 『내가 또 아스돗에서 그 거민과 아스글론에서 홀 잡은 자를 끊고 또 손을 돌이켜 에그론을 치리니 블레셋의 남아 있는 자가 멸망하리라 이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본문에 나와 있는 블레셋에 대해서 우리는 ‘나쁜 나라’라고 일방적으로 매도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블레셋 나라입장에서 생각하면 자신들이 행하는 모든 것은 자위권 발동입니다. “우리도 살자. 우리의 존재 가치와 자존심을 인정해달라”는 원칙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만 나라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블레셋 나라가 하나님의 관점에서 나쁜 나라라고 낙인찍힌 것은 바로 이스라엘와 연관있는 이웃 관계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즉 이스라엘이 여타의 나라의 차이점을 극명하게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붙어있어야 나라요 나타나야 할 나라요 유지되어야 될 나라로 존재하게 됩니다.

즉 다른 이방 나라들은 이스라엘을 이스라엘답게 지켜주기 위해 회초리를 들고 있는 훈련소 조교라고 보면 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자기 힘으로 이스라엘다움을 유지 할 수 없다는 말이 됩니다. 주변에 배치된 나라로부터 얻어맞아야 될 나라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나라만이 죄가 무엇이고 의가 무엇이고 저주가 무엇이고 축복이 무엇인지를 유일하게 발현되는 구심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매를 맞으신 분 중에서 제일 많이 맞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 십자가 안에는 저와 여러분들의 죄가 들어 있습니다. 그 죄를 근거로 해서 은혜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겁니다. 따라서 우리의 죄가 있는 그곳에서 눈 돌리면 아니되는 겁니다. 만약에 우리가 십자가 안에 있는 우리의 죄에서 눈 돌려버리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원천을 잊고 사는 것이 됩니다.

이럴 때 하나님께서는 가만 있지 않고 우리에게 회초리를 드십니다. “나는 이스라엘 속의 이스라엘, 남은 자 속의 남은 자, 교회 내에 교회를 만드는 하나님이시다”고 하시면서 말입니다. 원래 가사라는 곳은 블레셋의 수도로서 상업의 요충지였는데 이곳은 노예 매매의 중심지였습니다.

이 가사 사람들이 지은 죄는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에돔인들에게 노예로 판 것이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유다를 침략하여 여호람의 가족들과 왕궁의 모든 재물을 약탈해 간 사건(대하 21:16-17)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잡아 포로들을 노예로 팔아먹은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앗수르의 산헤립이 유다를 침공할 때, 블레셋으로 피난한 사람이 많았는데 이 피난민들을 그들이 사로잡아서 헬라인에게 팔아넘긴 사실도 있습니다.(욜 3:4-6) 당시 에돔 사람들은 이스라엘 족속과는 부구 대천의 원수지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할 수만 있다면 이스라엘 족속들을 괴롭히거나 멸망시키려 하였는데 이런 자들에게 유다 사람들을 노예로 판 블레셋 사람들의 죄악을 엄청나게 큰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달려듭니다만 애초에는 이 블레셋 땅은 이스라엘 관할 아래에 있는 나라였습니다. 유다 지파에게 할당된 기업이었습니다.(수 15:47) 이는 곧 유다 지파가 가사를 지속적으로 정복할 책임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유다 지파는 계속 그곳을 지배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기타 민족들이 가사까지 마음대로 공격해 왔기 때문입니다.(삿 6:4) 그리고 삼손의 때에는 가사는 완전히 블레셋에 의하여 장악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블레셋의 공격이 없으면 이스라엘의 정체성이 정립되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이라는  개념에서 참 하나님이 따로 있고 가짜 하나님이 따로 있습니다. 이 구분을 위하여 지상에서 이방 민족과 이스라엘을 나란히 근방에 자리잡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참 하나님이라는 것이 인간들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신이 아니었습니다.

매맞는 가운데서 파악되는 신이십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해방된 나라입니다. 이 해방에 주도적으로 관여한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이스라엘이 섬기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하나님을 잊는다는 것은 자신이 애굽에 있을 때처럼 노예 생활을 하고 있지 않는 감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전에 애굽에 갇혀 있는 상황을 주변에 있는 이방나라를 재료로 삼아 재현에 나서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못살겠다고 아우성치면서 다시 전에 애굽에서 구원해내신 참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이 때 등장해서 구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아이디어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희안한 방법들을 동원하십니다.

사람의 방법이 아닌 이유는 이 모든 전쟁이 사람의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쟁임을 말씀하시기 위함입니다. 이 방법에 있어 일체 인간의 공로나 자존심이나 위신 같은 것은 끼어들 여지를 없는 방식을 통해서 지상 전쟁에 개입하십니다. 여기에 대한 예가 구약성경에 여러 번 나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라는 두 제사장이 블레셋과 전쟁을 치르다가 법궤도 빼앗기고 자신들도 그 법궤 옆에서 죽음을 당한 사건 같은 것이 그런 겁니다. 그리고 삼손의 경우에는 머리카락에 난 힘으로 블레셋과 전쟁을 했고, 특히 다윗에 있어서는 거대한 블레셋 장수인 골리앗을 소년 다윗이 돌멩이 하나로 승리케 되었던 일들도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블레셋과 이스라엘 사이에서는 결국 누구의 신이 참된 신이었던가를 분명히 하는 사건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블레셋 나라의 존재 이유가 나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사람을 팔아넘겼다는 이유만으로 저주를 필히 받아야 될 민족 중 하나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블레셋은 앗수르의 세력이 강대했던 시대에 디글랏-빌레셀3세가 시리아 팔레스타인 정벌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가사와 그곳의 왕을 포함해서 많은 성들로부터 금과 은과 안티몬과 아마포와 의복들을 징수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 것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우리 안에 장착되어 있다면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절감하게 됩니다. 혼자 독야청청 도닦는 것이 성도의 삶이 아니라 매일같이 이런 다른 신의 산물들과 시장통에서 마주쳐야 합니다. 즉 세상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 속에서 부새통을 떨면서 살아가면서 진정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오로지 십자가 피로만 나온다는 사실을 절감해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십자가에서 눈 돌리지 말게 하옵소서. 십자가에서 눈 돌리는 순간, 세상 좋아하는 습성에 휘말린다는 사실을 명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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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이한례

03강-암1장6-8(블레셋 나라의 죄)111120-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 아모스 1장6절에서8절 말씀입니다. 구약성경 1275페이지입니다.

아모스1:6-8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사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모든 사로잡은 자를 끌어 에돔에 붙였음이라 내가 가사 성에 불을 보내리니 그 궁궐들을 사르리라 내가 또 아스돗에서 그 거민과 아스글론에서 홀 잡은 자를 끊고 또 손을 돌이켜 에그론을 치리니 블레셋의 남아 있는 자가 멸망하리라 이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호와께서 그냥 사랑하고 인간이란 이유 때문에 예쁘게 보면 되는데 보통 우리 부모가 자식을 낳고 여러 명 중에서 말썽꾸러기 자식이 있더라도 이게 남의 자식이 아니고 내 자식 아닙니까? 남의 자식 같으면 방송을 보면서 욕을 퍼부어대도 지 자식이 그렇게 하면 구치소에 면회 가는 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그래서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밖으로 꺾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역시 본성적으로 내 자식은 보호하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니까 또 어머니라도 관계없고 아버지든 어머니든 간에 아버지 하나님이든 어머니 하나님이든 간에 일단은 만든 피조물들을 일단 사랑하고 아프지 않게 살도록 해주는 것이 인지상정이며 그것이 하나님의 본모습이다.‘라고 알고 있다면 그게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우상입니다. 하나님도 아닌데 하나님 행세하는 걸 우상이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우상이 좋아요. 왜, 우리의 육적인 구미에 딱 들어맞거든요. 우상을 섬기는 것이 자연스럽고요. 우상이 아닌 참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과 함께 동행 한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스러운 겁니다.

 

그래서 신약 성경에 보면 중요한 개념 하나 나오는데 그게 뭐냐 하면, 교회 안의 교회, 남은 자 중에 남은 자, 그거 참 이상하거든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면 구원하는 건데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 그 안에 참 이스라엘이 따로 있다는 겁니다. 참기름이 다 참기름이 아니고 참, 참, 참, 참기름 따로 있거든요. 진짜 중국 산 말고. 벌꿀도 다 벌꿀이 아니고 참 벌꿀 따로 있고, 참 벌꿀 따로 있으면 참 벌꿀 아닌 나머지는 자동적으로 가짜 벌꿀 되죠.

 

죽을 끓이는데 송이 죽을 끓이는데 세상에 송이 죽을 팔면서 자연 산 송이 그램 수를 속인다고 소비자 고발에 보면 나와 있어요. 그러면 그건 송이 죽이 아니고 밥 죽이죠.ㅎ

 

하나님 백성만 가짜, 진짜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자체도 가짜 하나님이 있고 진짜 하나님이 있다는 것은 성경을 통해서 보면 충격적입니다. 하나님이 가짜가 있다??? 우리를 만드셨다는 것은 동일한데 그게 왜 가짜냐? 우리는 그걸 이상스럽게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성경은, 특히 오늘 아모스 같은 데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사랑하는 분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를 사랑하지 죄에 대해서는 미워하는 분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죄 있는 곳에 벌이 있고 벌 있는 곳에 죄가 있도록 보여주겠다 이 말 이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냐, 죄에 대해서 벌하시는 하나님, 죄에 대해서 벌하시기 때문에 죄인에 대해서도 벌하시는 하나님!

 

심지어 아담이라 할지라도 선악과 따먹지 말라 했는데 과실을 떠먹었을 경우에는 에덴동산에서 가차 없이 추방시키는 하나님! 도대체 하나님은 뭘 위하여 뭘 노리고 뭘 바라겠다고 뭘 기대하고 자기가 만든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지옥으로 몰아넣고 고통 속에 몰아넣고 질곡 속에 몰아넣고 저주 속에 몰아넣는 겁니까? 도대체 뭘 원하겠다고 그렇게 함으로써 얻을 게 뭐 있다고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느냐 말입니다. 그건 인간이 인간이라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참 인간은 따로 있다는 겁니다.

 

참 인간이 따로 있다는 것은 창조 때의 원리를 보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은 분은 따로 있다 이 말이죠.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 된 분은 따로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같이 살고자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그 존재, 그것에 대해서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영광을 받으시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물으신다면, 이렇게 출애굽기 33장의 말씀으로 답변하시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 줄자에게만 은혜를 주신다. 이렇게 이야기하시기 바랍니다. 은혜 줄자에게 은혜 주신다는 말은 사람이란 이유 때문에 그냥 공짜로 은혜가 오는 그런 법은 없다는 겁니다. 은혜 줄자에게 은혜를 주고 그 다음에 긍휼히 여길 자,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면이 있느냐, 불쌍히 여겨주는 면이 있기 때문에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가 내세울 게 없는 거예요. 거지보다 더 못한 존재죠. 불쌍히 여겨줄 경우에만 구원받기 때문에 안 불쌍하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있을 수 없다는 거죠. 우리는 매일 하는 짓이 주님 보시기에는 같잖죠. 그게 우리 인간이고 그것을 덧붙여서 인간이 신을 만들어 냈으니까 그 신이 올바른 신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모스 같은 경우에 지난 시간에 그랬습니다만 지난 시간에 아람나라와 이스라엘 나라,  오늘 이 본문에는 블레셋 나라와 이스라엘 나라를 연관을 시키는데, 성경에서 이스라엘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주변 국가에 대해서 이야기가 많이 나올 때 우리는 그것이 거추장스럽다는 생각을 우리는 하게 마련입니다. 복잡하게 ‘이스라엘이 어떻다’ 이렇게만 이야기하지, 그 나라 에돔, 암몬, 아람, 모압, 블레셋, 미디안, 헬라, 앗수르, 바벨론, 로마, 이런 나라까지 하니까 ‘아이쿠, 이거 천당 가는 데 왜 이리 알아야 되는 게 많으냐. 이거 모르면 천당 못 가느냐.’ 하는 그런 걱정 겸 부아 겸 이렇게 나올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변 나라를 이렇게 배치를 하는 것은 이유가 뭐냐 하면, 항상 이스라엘 나라가 그렇게 온전한 상태로 자력 적으로 유지될 수가 없어요. 주변에서 도와줘야 됩니다. 주변의 나라들은 전부 다 하나님이 넘겨 준 회초리들이 있어요. 맞아야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남보다 훌륭하고 뛰어나기 때문에 그들이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매를 많이 맞아서 그래요. 매를 많이 맞아서 구원받는 겁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 제일 매를 많이 맞은 분은 누구냐 하면 예수님 이예요. 예수님은 남들이 겪지 못한 심한 고초와 아버지의 모든 저주를 다 받았습니다. 매를 그만큼 많이 맞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세상을 제대로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너희 맞는다. 너희 지옥이다. 세상은 지옥이다.’ 성경에 이런 말 있죠. ‘세상 것을 사랑하지 마라.’ 그것은 하나님께로 온 것이 아니다. 요한일서 2장 16절에 나오는 말씀이죠. 세상 것을 사랑하지 마라.

 

내가 그 세상 것을 사랑한다면 그 세상을 통과했던 나는 매를 많이 맞았다. 예수님은 죄가 있어서 맞은 것이 아니고 아담의 죄를 대신하다 보니까 이 세상 속에서 있는 겪었던 인간들이 만들어 낸 그 죄를, 자기가 만들어 낸 죄도 아닌데 옆의 사람이 지은 죄를 자기가 이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에 지은 죄를 뒤집어쓰니까 하나님은 놓치지 않고 죄에 대해서 벌이 주어지는 겁니다. 또 이 사람 죄도 뒤집어쓰니까 매를 맞고 베드로 장모의 병을 뒤집어쓰니까 베드로 장모는 나았지만 예수님은 그 죄로 인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말은 안에 뜯어보면 그 안에 저와 여러분들의 죄가 그 안에 포함이 돼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돼요.

 

십자가 안에 내 죄가 있기에 우리는 ‘십자가’라 하고 달려들지 말고 그 안에 ‘내 죄다.’하고 달려들어야 돼요. 그 안에 속에 있는 나의 죄, 저와 여러분의 죄가 담겨있는 것이 행복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 그게 구원이고 그게 사랑이고 그게 축복 이예요. 그 죄가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께서 그걸 담당하심으로 이쪽에 죄 있던 우리에게 죄 씻음을 받는 거예요.

 

그러니까 죄 씻음을 받는다는 말은 우리는 죄 있는 의인이 되는 거죠. 죄 있는 의인!! 날마다 죄를 생산하고 그 죄는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이 가져가고, 가져가시고 씻어주심으로 우리는 없이 되고, 또 죄를 만들면 또 가져가시고 그러한 방금 제가 이상한 소리 한 것 같지만 이 이상한 것이 이스라엘 안에서 주변 나라에 이방나라를 가지고 같이 엮이면서 그 원리와 원칙을 구약 내에서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오늘 본문은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나라의 주변 국가가 그렇게 배치돼 있는 겁니다. 현재 이스라엘 너희 하는 행세가 주변 나라들이 하는 행세와 똑같다는 겁니다. 하나님, 하나님 이름은 온 천지에 말씀으로 가득 찼는데 너희들의 본성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거죠. 그래서 이스라엘이 몰라요. 자기가 지금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처럼 그렇게 우깁니다. 우길 때마다 주위의 블레셋이 쳐들어 와서 힘들게 할 때 그 힘들게 해버리면 이스라엘은 옛날에 애굽에서 노예 생활 했던 것처럼 그 시절을 또 다시 경험하게 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돼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해방되었다. 하지만 주변나라가 애굽 나라 역할을 톡톡히 해서 이스라엘에서 주님이 사라지고 주님의 뜻이 사라지고 언약이 사라졌다 싶으면, 그 주변의 블레셋이 애굽 나라처럼 또 다시 쳐들어 와서 이스라엘 나라 옛날 출애굽 되기 전의 힘든 상황을 또 다시 거기다가 집어넣게 됩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이스라엘이 자기 자력으로 버텨보려고 까불다가 안 되니까 ‘오! 주님이여 살려주소서.’ 이래 나와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전혀 이상한 방법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겁니다.

 

하나의 예를 들면 사사기 7장에 나오는데 기드온이란 사람이 평범한 농부인데 농부가 무슨 전쟁을 할 줄 알겠습니까? 지가 육군 대장도 아니고 뭘 할 줄 알겠어요? 아무것도 못하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농부보고 ‘야, 성신이 임했으니까 니가 미디안을 쳐라.’ 이러십니다. ‘못 합니다. 못 해. 나 못합니다.’ 이래 된 거죠.ㅎ

 

그렇게 할 때 하나님한테 내기하기를 ‘양털을 새벽에 둘 테니까 양털만 이슬이 촉촉이 젖어있고 그 주변의 땅은 그냥 바짝 마른 땅이 되게 하시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을 인정하겠습니다.’ 이러는 거예요. 기드온이 그러한 제안을 한다는 것은 우리는 충분하게 그걸 이해하고 납득을 해야 돼요. 왜냐하면 평소에 살아온 것이 홀로서기로서만 살아왔기 때문에 내 홀로서기하다 보니까 자기가 하는 일은 자기 일뿐이지, 자기 외부의 일은 절대로 안 해요.

 

게 모임해도 그건 자기 위한 게고, 어디 등산을 가도 나를 위한 등산이지, 남 좋으라고 하는 등산이 아니잖아요. 사람이 움직이는 것은 전부 다 지 좋으라고 하는 거예요. 아침에 이야기했잖아요. 교회 나오는 것도 지 좋으라고 교회 나온다고. 참~ 그걸 보면 교회가 위험한 곳 이예요.ㅎ 자기 좋으라고 나오는 교인보고 ‘훌륭하십니다.’ 해버리면 문제가 보통 문제가 아니란 말이죠.

 

평소의 행동이 자기밖에 모르는 행동이니까 기껏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도 자기가 하는 행동하는 식으로 하는 거예요. ‘양털에만 촉촉하고 바깥에는 바짝 마르면 하나님이 함께 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그러면 내 일 안 하고, 내 일 접고 주의 시키는 대로 주의 일을 나서겠습니다.’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해 줬죠. 또 못 믿네.ㅎ 버릇이 어디 가겠습니까? 또 못 믿어요. 이번에는 반대로 합니다. 어려운 문제, 양털은 바짝 마르고 옆의 땅은 촉촉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그 다음날 또 그렇게 해 줬어요. 그러니까 일이 주의 뜻대로 된다는 게 문제예요. 그러니 더 이상 자기 일에 대해서는 손을 떼야 돼요. 기도하시면 암에서 낫게 하옵소서. 그러면 암에서 나으면 문제가 커져요.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암에서 나으면 그 다음에 문제가 커진다니까요. 그 다음부터는 본인이 생각하지 않는 일에 나서게 됩니다. 본인의 명예와 명성 위신과 체면 이런 것은 일체 허락되지 않는 일에 나서게 되는 겁니다.

 

기드온이 나서서 승리했습니다. 그 사정을 알길 없는 다른 사람은 ‘기드온이 왕이 돼 달라.’ 왕이 돼 달라 했습니다. 안철수죠, 뭐. 안철수.ㅎㅎ 당신이 있어야 중산층 산다고 세금 많이 내게 해서 잘 사는 사람 세금 뺏어낼 수 있다고 대통령 만들려고 주위에서 하잖아요. 안철수, 안합니다. 안 해, 못해. 기드온이 그거 안 합니다. 왜, 하나님의 뜻은 이겁니다. 하나님이 알아서 하신다는 그것만이 이스라엘 속에 이스라엘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속에 이스라엘, 남은 자 중에 남은 자, 교회 안에 교회되기 위해서 바로 외부에서 시험꺼리 될 만한 것들이 잔뜩 현재도 매일 우리 삶속에서 주변에 지천에 다 깔려 있어요. 전체 전부 다 우리로 하여금 흔들어대기 위한 요인들이 지금도 가득 있습니다.

 

우리는 그걸 매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방송 보고 신문 보고 뉴스 보면서 매일 듣습니다. 이래야 산다고, 이래야 인간답다고, 이래야 체면 산다고, 이래야 니가 사는 이유가 있다고, 매일같이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아닌, 인간이 하면 된다는 소리를 우리는 시달릴 정도로 듣습니다. 듣다 보니까 우리 몸의 내성이라 할까, 남아있는 버릇이라 할까, 이것은 내 몸 내가 아니면 누가 챙기나, 그 생각으로 돌아가죠.

 

그때 드디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블레셋 나옵니다. 가사라는 게 블레셋 나라의 수도입니다. 가사가 오늘날 유명한 명칭으로 바뀌었어요. 가자 지역!! 이 블레셋 나라는 블레셋 나라가 나쁜 나라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블레셋 나라는 지금 한번 생각해 보세요. 가지 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이 성경 용어로 블레셋이라는 거예요. 블레셋이 팔레스타인이 된 거예요. 가사는 가자로 바뀌고, 그 중에서 팔레스타인, 블레셋 사람이 나쁜 사람들입니까? 그 사람들의 하소연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그 사람들은 정말 욕심 없고 욕심 없고 욕심 없는 사람 이예요. ‘그냥 소박하게 우리 부모 살던 땅, 내 땅 되게 해 주세요. 우리는 독립되는 것도 희망하지 않고 우리는 외국 원정도 희망하지 않고 아무것도 희망하지 않고 우리가 이스라엘 종 돼도 괜찮으니까 제발 내가 살던 이 땅에서 나가라는 소리 하지 마라.’

 

이건 서울의 고지대, 미아리 고지대 재개발 지역에 못 사는 사람의 하소연 이예요. 두레 마을 김 진홍 목사 같으면 김 진홍 목사가 아마 팔레스타인 지도자 될 거예요. 그처럼 블레셋 사람 입장에선 나쁜 것이 아닌데 졸지에 성경에서는 블레셋이 저주받는 백성이 되는 이유는 그게 이스라엘이 붙어서 그래요. 하필이면 이스라엘과 붙어있는 배치가 돼 놓으니까 니 소박하게 밥 먹고 사는 것이 죄가 아니라고 여기는데, 니가 지금 소박하게 밥 먹고 사는 그것도 여호와 하나님 뜻이 아니라는 거예요.

 

이스라엘을 주목해 봐라. 거기는 니가 생각하는 진짜 엉뚱한 낯선 하나님이 거기 있다. 그 이스라엘 하나님 앞에 복종할 경우에만 니는 진정 산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성경을 보면서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편으로 보니까 이스라엘한테 멸망당한 민족들은 다 나쁜 민족이라 알고 있는데 여리고성 보세요. 여리고성에 이스라엘이 쳐들어 왔을 때, 사살은 이스라엘이 남의 땅 쳐들어가는 거예요. 거기서 구원받은 기생 라합이 이스라엘 정탐꾼을 살려줍니다. 완전히 민족 배반이고 이건 뭐냐 하면 국가 보안법 위반입니다.ㅎ ‘우리 김정일 장군 만세‘하고 똑같은 거예요. 우리나라는 마땅히 망해야 되고 이스라엘 나라는 마땅히 정복해야 마땅합니다. 그럴 자격 있습니다.’ 이런 소리를 한다는 거예요.

 

쉽게 말해서 ‘예수님은 내 자리를 점령해도 마땅하고 나는 주님한테 점령당해도 마땅하고 쌉니다.’ 이 소리하고 똑같은 소리예요. 그게 기생 라합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정탐꾼을 숨겨놔서 나중에 수능에 합격됐잖아요. 수시에 합격했잖아요.ㅎ 구원이라는 게 그런 거예요. 성경을 안 보신 사람은 도대체 상상을 못합니다. 무슨 그따위 구원이 다 있나? 그게 구원 이예요. 그게. 나는 무조건 망해야 되고 주님은 무조건 흥해야 되고, 이게 세리요한이 외쳤던 겁니다. 이게 이해 안 되는 줄 알아요. 저도 인간이니까 압니다. 알면서도 성경은 이것만 외쳐서 이것만 알아듣는 사람만 구원받아요.

 

그러니까 블레셋은 졸지에, 블레셋의 절정은 뭐냐, 이스라엘은 블레셋 나라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답다. 이스라엘 되었다. 아까 제가 이야기했잖아요. 주변 나라가 회초리고 때려줘야 이스라엘 나라가 된다고요. 홉니와 비느하스 제사장은 블레셋 하고 전쟁할 때에 언약궤 들고 승리할 줄 알다가 언약궤도 빼앗기고 둘 다 다 죽어버리고, 그래서 엘리 가문은 폭삭 다 망해버리고 대를 이을 자가 없으니까.

 

그 다음에 블레셋 나라가 또 붙은 것이 뭐냐, 사사기 16장에 보면 삼손 이야기, 블레셋의 지배를 받고 있던 이스라엘이 완전히 얼마나 혹독하게 당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거기에 신이 임한 삼손이 사자새끼를 찢고 했는데 여자를 밝히네. 여자를 밝히니까 그 점을 블레셋이 이용해서 삼손 머리카락을 홀랑 밀어버리고 눈알을 완전히 빼고 힘도 못 쓰게 만들었잖아요. 그런데 마지막 최후의 순간에 ‘나도 죽고 너도 죽어라’ 해서 그래서 희생정신, 나실 인 정신이죠. 날 때부터 나실 인이 됐다는 그 정보, 그 예언을 성취하면서 죽게 되는데 그때 또 잠시 블레셋에서 해방되는가 하다가 또 쳐들어 와요.

 

그 다음에 사무엘상에 보면 블레셋이 쳐들어 와서 사무엘이 금식하고 미스바에서 물러나라 금식해서 물러났습니다. 물러나도 회초리가 멀리 안 가요. 또 잠시. 왜 그러느냐 하면 이스라엘 속에 이스라엘, 남은 자 속에 남은 자, 교회 안에 교회. 이건 한번 교회 됐다고 까불다가는 언제 또 썩어버려요. 계속해서 주변의 세상 사람들이 세상의 문화와 이 세상 것만 좋아하는 사람들이 울타리 쳐서 그 안에서 우리는 살 수밖에 없습니다. 따로 기도원해도 소용없어요.

 

저는 우리교회 나가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교회 누구든지 오셔서 같이 블레셋이 오든 암몬, 모압, 다 오라 해요. 그러나 추구하는 것은 십자가 밖에 없어요. 우리끼리 살면 갑자가 우리가 도사돼 버려요. 우리끼리 살면 지방교회처럼 저희끼리 거듭난 교회, 우리는 진짜 교회, 이렇게 착각하는데 그러지 말고 다 덮고 다 오라 해요. 오라 해도 안 오지만.ㅎ

 

교회라 하는 것이 이처럼 우리의 자생력, 우리의 절제력으로 내가 구원받는 게 아닙니다. 주께서 세상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 자기밖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엉켜서 시장바닥에서 굴러야 되지, 혼자 기도원에 가서 기도원 짓고 해서 천성 사처럼 빌고, 혼자 산위에서 절 짓고, 그런다고 해서 도 닦는다고 해서 그게 아니거든요. 아! 세상 시장바닥을 보면서 ‘아! 저 모습이 내 모습이구나. 전부 다 지 살려고 하는 것밖에, 저래 살다가 언제 죽는지도 모르고, 왜 죽는지도 모르고 언제 죽는지도 모르고 또 언제까지 살 보장도 모르면서 무작정 그냥 모면하듯이 하루하루 때우듯이 그냥 사는 거예요. 때우듯이.

 

김 종환이 불렀던 그 존재의 이유, 그 가사, 지금도 가슴이 찡합니다. 밤늦게 일마치고 오니까 피곤해서 내 손에는 당신의 사진뿐, 그냥 피곤해서 그냥 뻗어버리는 거예요. 옛날에 김 종환 그 사람이 너무 힘들어 가지고, 결혼은 해야 되겠지, 돈은 없지, 그냥 힘들어서 신도림동 새벽차 타는 것처럼 힘들어 죽는 거예요. 사람 다 그렇게 사는 거예요. 전부 다 너 나 없이. 거기서 무슨 하나님을 찾고 예수를 찾습니까? 하루하루 그냥 넘어가는 것도 몸이 만신창이 돼서 힘들어서, 성경을 보면 슬그머니 잠이 오는데, 기도할 시간이 어디 있어요? 잠이 오는데.

 

세상 것을 안 사랑할 수가 없어요. 돈 좀 많이 주셔서 여유 있게 살면 신앙생활 잘 할 건데 이렇게 빡세게 굴려버리면 신앙생활 못 할 건데 어쩌라고 주께서 이런 식으로 빡세게 돌립니까? 원망이 터져 나오죠. 그게 블레셋이죠.

 

그 다음에 블레셋에서 하이라이트는 뭐냐, 골리앗입니다. 골리앗 장군, 얼마나 이스라엘을 얕보는지, ‘너희들 믿으면 나도 믿겠다. 여호와, 그런 식으로 믿지 마라.’ 실제로 맞는 말이거든요. 다윗이, 소년 다윗, 어른 다윗이 아니고 소년 다윗이 살립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블레셋이 악한 사람이지만 블레셋 입장에서는 이스라엘이 있는 한 자기 나라가 보존되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을 잡아다가 에돔 사람한테 팔아넘겼어요. 에돔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또 원수지간이거든요.

 

그 다음에 블레셋이 무슨 짓을 했느냐 하면 나중에 아라비아 사람이 쳐들어 왔을 때 사람들을 잡아다가 헬라 사람에게 노예로 팔았습니다. 헬라 사람은 어디 쪽이냐 하면 유럽 쪽 이예요. 지금의 부도나기 직전의 그리스, 그리스를 헬라라 해요. 로마 저쪽. 그 사람들에게 어린아이 소년과 소녀, 도가니죠. 어린 소년과 소녀를 성 노예로 팔아먹었습니다. 그런데 이 팔아먹은 것은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블레셋 나라가 스스로 자위권 발동이 돼요. ‘나도 살자, 나도 좀 살자, 너희 이스라엘만 사느냐, 나도 좀 살자.’라는 자연스러운 서로 더불어 살겠다는 정신으로 그들은 힘과 힘의 충돌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디 우상 믿는 자가 어디 감히 내가 불쌍히 여긴 민족을 건드려.’ 해서 저주케 한다는 그것이 바로 지옥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지옥이란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긴 사람을 세상적인 세상 살아가는 원리 원칙으로 판단해서 그 사람 속에 있는 십자가의 보혈의 피를 모독할 때 그 경우에 하나님의 가차 없는 지옥의 저주가 주어진다.‘라는 원리를 세우기 위해서 세상 사람과 똑같은 우리 속에 난데없이 십자가의 긍휼하심을, 피를 집어넣은 거예요. 우리는 이것을 싫어하겠지만 주께서는 교회 안에 교회, 남은 자 속에 남은 자, 이스라엘 속에 이스라엘 속에서 주께서는 우리를 남들이 우리를 때려가면서 우리로 하여금 내 안에 중심을 세우고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있다는 것을 증거 하는 용도로 지금 우리 남은 인생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참 블레셋이 나쁜 짓 했다지만 주를 사랑하지 않으면 그들이 저주 받는다 하지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웬 은혠지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주시고 은혜 줄자에게 은혜를 주시는 그 주님의 십자가의 능력이 있기에 저희는 예수님 덕분으로 구원 됐다는 사실을 세상과 말씀을 통해서 새삼 느끼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