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야고보서 2:11-13 / 긍휼 본문
야고보서 2:11-13 긍휼
이근호
인간은 얼마나 자신이 정신적으로 허약한 존재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레위기 5:4-5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혹 누구든지 무심 중에 입으로 맹세를 발하여 악을 하리라 하든지 선을 하리라 하면 그 사람의 무심 중에 맹세를 발하여 말한 것이 어떠한 일이든지 깨닫지 못하다가 그것을 깨달을 때에는 그 중 하나에 허물이 있을 것이니 이 중 하나에 허물이 있을 때에는 아무 일에 범과하였노라 자복하고”
즉 인간은 ‘무심코’을 본인의 정신으로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구약의 제사법에서는 이러한 죄에 대해서 제물을 바쳐서 죄사함이 일어나는데 이 일은 항상 제사장의 중재를 거쳐야 합니다.
“그 다음 것은 규례대로 번제를 드릴지니 제사장이 그의 범과를 위하여 속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레 5:10) 이것이 바로 ‘긍휼’입니다.
냉혹한 율법 안에만 긍휼이 들어 있습니다. 무섭고 무거운 심판과 저주 안에서만 긍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무서운 율법이 닥쳐온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신 자비와 긍휼이 다가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철저하게 인간은 자기에게 절망해야 합니다. 자신을 믿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를 포기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을 대신할 자를 발견해야 합니다.
자신의 주체성과 주도성이 곧 악마의 술책임을 파악해야만 합니다. 그 이유는 악마에게는 일절 긍휼과 자비와 사랑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형벌과 저주가 악마에게 돌아갑니다. 악마 입장에서는 발악 외에 할 게 없을 겁니다. 악마와 한패가 된 인간도 이런 악마의 심정을 대변하면서 평생을 지새게 됩니다.
소위 ‘남 탓’하며 사는 삶의 태도를 말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은 두 부분으로 나누십니다. 긍휼 입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그것입니다.
중간 지역은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여서 ‘중간 지대’를 만들었습니다. ‘서로 좋은 게 좋은 것이니 진리는 빼고 마음 상하지 않는 방향으로 함께 삽시다’는 식입니다. 이것이 지옥의 전조 현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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