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야고보서 2:8 / 이웃 사랑 본문
야고보서 2:8 이웃 사랑
이근호
이웃 사랑, 곧 대인관계의 진수는 ‘도대체 당신은 내 앞에서 무엇을 자랑하려고 하느냐’와 관련 있습니다. 인간은 자랑거리가 있으면 왜 혼자서 삭이지 못하고 꼭 알리고자 할까요?
그것은 평소에 늘 자기 영광에 도취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자기 잘난 맛’으로 세상을 버텨나가는 힘을 비축하려고 합니다. ‘세상’이라는 환경은 ‘나’를 자연의 무상(無常)으로 되돌리려 합니다.
‘나의 나다움’의 의미를 상실케 합니다. 허무에 대해서 인간들을 필사적으로 거부합니다. 비록 내일 죽음이 온다 할지라도 오늘도 미래의 열매를 기약하면서 사과나무를 심으려고 합니다.
없어지는 그날까지라도 내가 사라지지 않으려는 노력을 합니다. 어떤 실패를 맛보아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점은 인정하기 싫어합니다.
따라서 ‘이웃 사랑’은 인간에게 있어 성립될 수가 없습니다. 타인이 자신에 대해서 뭐라고 하든지 일단 내가 나를 생각하는 수준에 부합될 경우에만 받아들입니다.
따라서 ‘이웃 사랑’이란 없고 오로지 ‘자기 사랑’의 확장뿐입니다. 이러한 문제점은 출발점부터가 틀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방향이 하나님의 사랑, 이웃 사랑으로 나아가지 않고 반대쪽으로 향해져 때문입니다.
이 문제점을 수정하는 방법은 ‘이웃’의 자리에다, ‘나’를 없애고, ‘사람’을 집어넣는 겁니다.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나’나 ‘당신’이 아니라 언제는 ‘사람들’입니다.
죽음이란 모든 인간들을 이미 운명 공동체로 만듭니다. 각자의 죽음은 자기동일적 주체를 깨트리는 죽음이며 이 죽음을 매개로 하여서 ‘함께-있음’이 성립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웃 사랑’이라는 말씀을 실현하기 위해서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인 죽음을 이 ‘이웃 사랑’에 담습니다. 즉 ‘자기 죽음’이 없이는 ‘이웃 사랑’이 아예 성립될 수 없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웃’을 생산하기 위해 죽는 죽음만이 ‘최고의 법’이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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