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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사도행전 6:3 / 말씀의 판 / 251118 본문

신약 설교, 강의(이근호)/사도행전

사도행전 6:3 / 말씀의 판 / 251118

정인순 2025. 11. 19.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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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홍민희

강남-사도행전 6장 3절 (말씀의 판) 251118a-이근호 목사



사도행전 6장 1절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그렇게 돼 있지요. 일곱 집사가 애초부터 생긴 건 아니고 규모가 커졌으니까 뽑은 겁니다.


이들을 뽑을 때에 일곱 집사의 조건이 있어요. 조건이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성령에 충만하고 그리고 지혜에 충만한 사람 그렇게 돼 있어요. 그럼 성령은 있는데 지혜가 없다. 집사가 될 수 있어요? 없어요? 일곱 집사가 안 된다는 거예요. 근데 그거는 성령 있는데 지혜 없는 게 말이 안 되고요. 성령 있는데 시근이 하나도 없다. 철이 없다. 이게 말이 안 되지요. 그러니까 이 지혜라는 것이 성령의 컨트롤 내에서 주어지는 성령 받은 사람만이 낼 수 있는 지혜, 성령 있기 때문에 나오는 지혜, 그게 충만한 사람 그러면 칭찬받는 것은 당연하지요. 칭찬받는다는 것은 바로 열두 사도 중심으로 된 그 교회 내부에서 칭찬을 받는 것이지 교회 바깥에서 칭찬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되는 건 아니죠. 어쨌든 간에 이 사도행전 6장 1절에서 4절까지의 내용은, 성령 받은 자에 한해서만 집사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돼 있어요. 성령 받은 자.


그럼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성령을 받지 않은 자는 어떤 자를 두고 이야기하느냐? 성령을 받더라도 충분하게 받은 자죠. 이런 게 뭐냐 하면은 교회 내에 성령 안 받은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냐? 교회 내에 모두 다 성령 받았으면 모두가 집사 돼야지. 왜 일곱만 따로 집사가 되느냐? 나머지는 성령 안 받은 사람이냐? 이렇게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옛날 구약 이스라엘 생각하면 되는 거예요. 이스라엘 사람 전체가 다 구원받았느냐? 하는 그 문제예요. '구원 문제에 있어서 구약 이스라엘은 들락달락했어요'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혈통 가졌다고 이스라엘 되는 거 아니예요. 열두 지파의 혈통 있다고 구원이 되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새로운 사건들을 유발 시켜서 새로운 사건을 유발 시켜서 제거할 자를 제거하는데 그 새로운 사건의 그 근거는 뭐냐 하면은 '율법대로 살지 않았다.' 율법대로 살지 않은 자를 제거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을 수시로 집합 시켜 놓고 수시로 마치 그 군에 점호하듯이 모아놓고 여기서 율법 위반자 끄집어낸다. 위반자 나가. 늘 그걸 정기적으로 그렇게 했습니까? 그렇게 하지 않았지요. 이스라엘의 존재 이유는요. 구원 되지 않는 자를 제거하는 게 목적이 아니고 율법이 현실 속에서 어떤 사건을 유발하느냐 그걸 드러내는 것이 이스라엘의 특징이에요. 이스라엘 특징은 "율법이 인간 현실 속에서 어떤 사태로서 나타나느냐?" 이스라엘은 이러한 율법이 나타나기 위해서 이스라엘은 환경 조성에 해당되는 것이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환경 조성. 그게 교회도 똑같이 마찬가지 적용됩니다. 이 율법 자리에다가 십자가를 대입해 보는 거예요. 십자가를 율법에 대입해 보면 십자가가 인간 현실 속에서 어떤 사태로 나타나느냐 환경 조성이 뭐냐면 이 교회가 돼요. 교회라고 구원받는 게 아니죠. 교회가 누가 구원받고 누가 구원 안 받고 목적이 아니죠. 십자가가 어떻게 생생한 현실로 나타나는 그런 무대, 그 제공된 그 무대가 바로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예를 사도행전 5장을 보게 되면 정말 생생하게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도행전 5장 1절에 아나니아와 그 부부 삽비라가 나옵니다. 아나니아 삽비라 나오는데 3절에 보면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이렇게 돼 있죠. 자, 여러 가지 문제를 우리가 여기서 질문할 수 있어요. 교회인데 사탄이 교회 안에 들어올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분명히 교회라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 돼 있잖아요. 못하면 아예 이제 사탄은 교회 안에 얼씬거리지 말아야 되잖아요. 교회라는 하나의 단체를 최종 궁극적인 최종 계시의 형태로 봤을 경우에는 사탄은 교회 내에 들어오면 안 돼요. 에덴 동산 안에 사탄이 들어오면 안 돼요. 에덴 동산은 완벽한 곳이라면 우리가 생각하는 완벽한 곳이라면 사탄이 들어오면 안 돼요.


그러나 하나님 생각은 이렇습니다. 완벽하기 때문에 사탄에 들어온다는 거예요. 왜 그러냐 하면은 완벽이란 개념 자체가 사탄의 활동을 보여 주면서 동반해서 드러나는 그 완벽이어야 되지. 요런 공간 있으면 이런 공간 들어오면 나는 끝. "아 이 공간은 완벽한 공간이야." 이거는 누구 중심이냐 하면은 인간이 자기의 구원 욕심에 의한 자기 구원 중심의 그 세계관이잖아요. 시간 공간 개념이잖아요. 하나님께서는 뱀이 에덴 동산에 들어와서 활동하는 그 자체가 선악과나무 생명나무가 갖고 있는 그 완벽한 의미를 그 뱀이 활동을 해 줘야 이렇게 건들어줘야 그 완벽한 의미가 나타나게 되어있어요. 개인이 뭐 얼마나 힘들다. 어렵다. 죽는다. 그런 문제 가지고 끼어들어 가지고 마치 에덴 동산이 완벽하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완벽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그 언약과 말씀이 온전하게 드러난다면 인간이 그 어떤 처지의 형편에 있더라도 완벽합니다.


교회 세상 사람들 뭐라 합니까? 안녕하십니까? 뭐 이렇게 하지요. 그럼 그 인사를 바꾸겠어요. 완벽하시죠? 오늘도 많이 완벽하시지요. 사탄한테 많이 후달렸지요. 그게 완벽이십니다. 이 완벽하다는 거 교회의 완벽은 이렇게 사탄이 아나니아 삽비라 속에 사탄이 들어가서 들어갔는데 또 5장 3절에서 중요한 것은 그 사탄과 동반해서 같이 등장하는 개념이 있어요.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그 다음에 나온 단어 네가 무엇을 속이고? "성령을 속이고" 이렇게 되어있죠. 그러니까 무슨 관계죠? 성령과 사탄은 서로 반발하는 관계 반발해야 하기 위해서 같이 등장해야 되는 관계, 따라서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네가 이제는 악령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활동하느냐를 네가 알게 되었다 하는 사람에게 성령 받은 거예요. 사탄은 노골적으로 이야기해서 사탄이 인간 세계 속에 교회고 이 땅에 활동하는 이유는 바로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어떤 식으로도 현실에 유포되지 않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하여 어떤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 막는 게 사탄의 방법입니다.


제가 문제를 낼 테니까 맞춰보세요. 다음 중 어느 것이 사탄의 주장인가? 1번 이런 죄를 짓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 저로 죄를 짓지 않게 하옵소서. 여기 1번이 사탄의 주장인가.. 2번 하나님 저로 하여금 선을 행사하지 않게 하옵소서. 어느 것이 사탄의 주장인가? 근질근질하게 3번이 나와야 되는데. 1번 2번 어떻습니까? 1번 2번 전부 다 equal이에요. 같은 말이에요. 왜 그러냐면 이거는 어디냐? 선악체계입니다. 사탄은 선악 체계를 동원해서 십자가에 다 이루었다는 것을 막습니다. 말씀을 막아요. 이 두 주장이 사탄이에요. 그러면 성령은 사탄의 주장의 반대죠. 그 성령의 일은 뭐냐? '판은 주님이 까소서' 장판 깔 때 새 장판 까면 깔끔하죠. 판을 쫙 깔면 애들이 새로 깐 장판 좋다 그래서 막 자기 배를 거기다가 밀어붙이고 막 미끄러질 때 하지요. 그 깔리는 것이 말씀 판이고 성도는 납작 엎드려서 그 판 위에 자기의 두 팔 벌리고 쫙 미끄러져요. 마치 신부가 신부될 때 그 행사하는 거죠. 엎드려 가지고. 말씀 판에 자기 배를 깔고 그 말씀 속으로 삽입되어 들어가는 거, 이게 누구의 일이라고요? 성령의 일이에요.


주여, 제가 결정한 일은 주께서 다 이루었기 때문에 일체 제가 결정한 일은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천국을 가든 지옥을 가든 그거는 그 결정은 주님이 알아서 하시고 저한테는 어떤 권한이 없습니다. 천국을 주시면 천국을 받겠고 지옥을 주시면 지옥을 받겠습니다. 이 고백이 바로 로마서 9장 3절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주께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으실지라도 이것은 주께서 하셨기 때문에 마땅히 내가 원한다" 이 말이에요.


자 여러분들이 갤러리 갔어요. 갤러리 갈 때 여러분이 취향이 어디 쪽인지 한번 물어봅니다. 자, 그림이 풍경화 쪽이 있고 초상화 쪽이 있다. 여러분, 어느 쪽을 원하십니까? 하나, 둘, 셋. 풍경. 예. 믿음이 대단하십니다. 풍경은 환경이에요. 환경. 환경이 이미 결정된 거고 초상화는 자기 얼굴에 주목하는 자아에 주목하는 게 초상화예요. 화가들은 풍경화 그리는데 어려움이 없는데 초상화 그릴 때는 그렇게 어려움이 있어요. 물주 얼굴 이상하게 나오는 거 곤란하지 않습니까?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일부러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이 예수님 보내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이 땅에는 어떤 세상이냐면 이렇습니다. 더 이상 신이 필요치 않는 세상이에요. 신이 필요치 않는 세상에 이미 민중들은 여기 합세되어있어요. 한 통속이 돼 있다고요. 이게 풍경이에요. 풍경화로 보면 근데 이렇게 신이 필요치 않기 때문에 필요치 않는 그 결과가 뭐냐? 각자가 자기 초상화를 그리는 식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요즘 어떻게 지내" 초상화죠. 이걸 이제 복음적으로 하면 문장이 너무 길어져요. "주님께서 오늘 당신에게 무슨 지시를 내렸는가?" 말씀이라는 그 말씀 판에 판은 누가 깔았어요? 주님이 깔았죠. 다 이루었으니까. 말씀을 다 이루었으니까 주께서 말씀을 이 어두운 세상에 쫙 깔아 놓으면 거기서 십자가의 능력이 나오잖아요. 이걸 누가 기겁을 하고 허겁지겁 그걸 막 뿌리는 거예요.


무슨 이거 화산재에 얼마 전에 일본에 화산 터졌잖아요. 화산재가 십자가의 능력을 흙을 덮듯이 이걸 덮어 버리는 겁니다. 이걸 덮어 버려요. 이걸 덮으니까 나오는 것은 뭐냐면 이 세상은 풍경화는 존재하지 않고 초상화들의 집합체, 쉽게 말을 해서 이 세상은 인간 대 인간의 결집체, 인간 대 인간의 결집체가 세상이고 그 안에 그 결집한 단체를 유지하려면 인간과 인간은 서로 협의해야 되고 의논해야 된다. 끝. 이게 인간 사회에서 유일하게 통하는 진리입니다. 머리를 맡대고 어떤 결정을 하게 되면 이 난관을 극복할 비책이 나온다. 우리 인류의 문명은 그런 식으로 꾸준히 이어져 왔다. 협동하여 살아가자. 뭐 이런 거.


근데 그 협동이 될까요? 안 될까요? 협동이 안 돼요. 초상화 초상화끼리 모였어요. 물론 초상화 초상화 모여서 어떤 전람회를 만들 수 있지만 갤러리에 여러분들 초상화를 한 열 개를 걸었다 칩시다. 초상화 걸렸다고 일가 친척 온통 전화 다 해 가지고 꽃 들고 오라 점심 내라 해가지고 쭉 왔는데 올 때 다른 초상화는 어떻게 봅니까? 그냥 훑어보고 누구 초상화? 지 아는 사람 초상화에다가 눈 뜨고 보면서 꼼꼼하게 터치 하나하나에 신경 다 쓰면서 요거 색깔 조금 별로 색깔이 안 나왔다. 뭐 신경을 그렇게 쓰겠지요. 이게 뭐냐면 '초상화의 확대'입니다. '자기 세계의 연결망' 주일 낮에 이야기했죠. 자기 보존과 가치 증대를 위해서 이런 결과물을 얻고자 합니다. 장에 가는데 분주한 장에 갔을 때 어린 애가 거기 아주머니들 많이 있잖아요. 그러면 애가 아주머니들 어떻게 사는가 그거 구경합니까? 누구만 쳐다봐요? 자기 엄마만 쳐다보죠. 왜? 자기에 연결되어있습니다. 인간은 자기에 연결된 걸 주목해요. 그게 초상화의 확대입니다. 마귀는 좋~다 하지요.


여기에 아나니아 삽비라가 남의 돈 횡령했어요? 자기 돈을 속인 겁니까? 자기 돈을 속이잖아요. 이 세상에는 초상화 세상에는 자기 돈을 속인다는 자체가 성립이 안 돼요. 왜냐? 내가 노동해서 얻은 내 건데 내 거를 속인다는 말은, 도적질 했다 하거든요. 일종에 도적질로 보는 거예요 베드로는. 어떻게 그게 도적질이 돼요? 내 건데 남의 것 같으면 도적질이 되는데 내 건데 어떻게 도적질이 되느냐 이 말이죠. 속이든 안 속이든 결정을 누가 한다? 내가 하잖아요. 그런데 말씀의 판에 배 대고 납작하게 말씀 속으로 스며들어서 나는 없고 말씀이 새로운 환경이라고 하는 사람한테는 그 무엇도 내가 결정하거나 결정 지을 권한는 그냥 없다. 그건 뭐냐? 그냥 받아들인다 이 거예요. 뭘 받아들였는데 뭘 받아들여? 하면 되어진 모든 일의 원인이 인간에서 나온 게 아니고 보이지 않는 분에서 지금 이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받아들인다 이 말입니다.


그거에 대해서 이 마귀 나라에서는 뭡니까? 마귀 나라에서는 항상 중요한 것은 '의견의 합' 예를 들면 종교 대통합, 신부 원불교 목사 티벳 불교 이슬람 종교 단체 모여서 종교 대통합하잖아요. 종교 대통합은 어디에 해당되느냐 하면은 자기 세계의 연결망이죠.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현실을 뚫고 진짜 현실로서 낯선 현실이지만 제대로 된 현실로서 기존 현실을 찢어버리는 식으로 나타난다. 이걸 보여주는 게 이스라엘의 기능인데 구약 이스라엘에서는 이스라엘 자체가 궁극적인 목적이 되고 말았어요 이스라엘 구원이.


그럼 오늘날 교회 교인들이 교회 가는 것은 자기의 구원이 궁극적인 목표가 되고 말았어요. 말씀이 나를 자아를 찢어야 되는데 그 사람 뭐라 해요? "나는 말씀을 지킬 테니까 지킬 만한 말씀을 우리한테 목사님이 지시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목사가 지시를 내리면 지킬 만하게 느끼게 되면 그걸 지키려고 하는 거예요. 지키려면 그건 어디에 속하느냐 하면 바로 자기 초상화에 색깔 하나 더 칠한 것이죠. 자기 세계의 연결망이 증대되는 거예요. 커지는 거예요. 성령 받았다는 말이 이 말이에요. "믿어라" "뭘?" "일은 주님이 하지 네가 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어라“


그렇게 되면 한번 정리해봅시다. 방금 이 사실을 지금 누구만 알고 있어요? 성령 받은 자만 알고 있죠. 그 당시 초대 교회에 아나니아 삽비라 같은 이런 사람들 왔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은 베드로한테 들켰지요. 표 없이 천국 가려고 이 밑으로 들어간 거예요. 옛날에 그 동네에 서커스 오게 되면 표 값이 비싸니까 애들이 어떻게 합니까? 천막 쳤는데 뒤에 가가지고 등치가 작으니까 몰래 막 들어오죠. 몰래 들어온 거예요. 몰래 들어오는데 베드로한테 딱 걸렸어. 사도행전 5장 4절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뭐다? 하나님께 했다 이 말이에요. 베드로의 이런 이야기도 베드로가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잖아요.


그러면 성령을 안 받은 사람들은 이런 사건 일어나더라도 성령 안 받은 사람은 그게 무슨 뜻인지를 이해하겠습니까? 이해 못 하지요. '아이고 베드로도 별나기도 그것 좀 뭐 자기 돈 얼마 내든지 좀 맡겨 주지 뭐 그걸 끝까지 물고 늘어지나 독한 사람' 뭐 이런 식으로 할 거예요. 실제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선지자가 성신 받은 선지자가 뭐 잘못된 게 있습니까? 선지자가 개인의 의견이었습니까? 의견의 합을 이루기 위해서 자기 개인적 의견을 제시한 겁니까? 아니죠. 하나님의 계시 받고 선지자는 이야기했잖아요. 그럼 반대는 누가 합니까? 이스라엘 바깥에서 반대합니까? 이스라엘 내에서 반대해요. 이게 그 선지자의 수난이잖아요. 이스라엘 내부에서 하잖아요. 그러니까 이게 뭐냐 하면은 이스라엘이 전쟁을 치르고 약속의 땅에 들어오고 난 뒤에는 외부 전쟁은 잠시 휴전에 들어갔지만 내부 전쟁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는 겁니다.


사사기 3장 봅시다. 사사기 3장 5절부터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마침내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이에 거하여 그들의 딸들을 취하여 아내를 삼으며 자기의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고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 이렇게 돼 있죠.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향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더니" 8절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8년을 섬겼더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시니 그는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이렇게 되어있어요.


사사기 초반부터 어떤 패턴이 있어요. 어떤 형식이 있는데 그 형식은 뭐냐? 이스라엘이 형식적으로는 여호와 민족 맞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형식이고 자기의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어요 인간은. 근데 그 인간 가는 마음대로 하는 그 마음이 어느 마음과 동일하냐 하면은 이스라엘의 경계선 바깥에 있는 이방 신을 찾는 사람의 마음과 서로 똑같다는 겁니다. 똑같아요. 똑같은데 차이점이 뭐냐 하면은 이방 자손이 우상 섬긴다고 하나님께서 뭐라 합니까? 그냥 내어버려 둬요. 로마서 1장 나와요. "내어버려 두사“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여기 이스라엘에게는 어떻게 합니까? 이스라엘에게는 그 이방 민족을 향하여 압박을 가하죠. 압박을 가하는데 그 압박을 가하도록 배후에 조치한 그 분이 누구냐 하면은 하나님이에요. 하나님이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리사다임을 8년을 섬겼다. 8년을 섬겼더니만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를 찾았다 이렇게 되어있어요. 자, 여기서 문제 나갑니다. 이거 쉬운 문제예요. 자,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 왕에게 7년을 섬겼더라. 그 다음에 그들이 여호와를 찾았습니까? 안 찾았습니까? 안 찾지요.


이게 뭐냐 하면은 말씀의 장판이에요. 세상 돌아가는 것이 어렵다고 부르짖는 게 아닙니다. 말씀이 말씀대로 돼야 돼요. 아직 그때까지 7년째는 아직 옷니엘이 준비가 안 돼 있어요. 주님께서는 구원자의 존재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활용하고 있는 거예요. 이스라엘 구원이 목적이 아니고 그들에게는 이스라엘은 구원자를 필요치 않습니다. 인간이 아는 인간은 그냥 인간들이 협의하고 의논하고 노력하고 애써서 만들어낸 일상이에요. 나는 두 손 들고 다른 분이 내 일을 도맡아서 다 한다. 이거는 우리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요. 왜 그러냐? 자기 세계의 연결망이거든요. 꼬마한테 "꼬마야 너 집 가난해? 부자야?" "가난해요" 그러면 "너 엄마 가난해? 부자야?" "엄마 돈 없어요" 그러면 "돈 있는 새 엄마 올래? 돈 없는 엄마하고 같이 살래?" "돈 없는 엄마하고 같이 살래요" 왜? 그동안 자기가 구축한 자기 세계 연결망이 지금 있는 엄마가 자기 연결망 속에 포함이 돼 있어요. 이거는 내 마음대로 빼도 박도 못 해요.


이 연결망을 뭐라 하느냐? 이 연결망이 환경입니다. 환경이고 내 세계 연결망 이 환경이 인간에게는 뭐냐 하면은 '저주의 환경'이에요. 이건 창세기 3장에 아담이 땅에 내려왔잖아요. 에덴 동산 살다가 땅에 내려왔죠. 근본 토지에 내려왔죠. 그 땅은 뭐가 기다리고 있습니까? 저주가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그 인간의 모든 출생은 저주에서부터 출생한 겁니다. 저주에서 출생하기 때문에 죽는 것도 어디로 갑니까? 영원한 저주의 지옥 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거예요. 그런데 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선지자 살아 있고 말씀이 살아 있고 율법이 계시가 살아 있으면 여기서 뭐가 일어납니까? 여기서 구원이 일어나죠. '구원'. 구원은 누가 한다? 뒤에 뭐가 붙어요? 구원자가 따로 있죠. 바로 이 구원자를 돋보이기 위해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계시의 환경으로 사용해 주시는 겁니다.


이론상 전혀 어려움이 없지요. 납득 돼요? 안 돼요? 납득되지요. 우리 몸이 안 되지. 우리 몸이 납득이 안 되잖아요. 우리 몸이 납득이 안 되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우리 몸까지 납득하기 위해서 바로 사사기의 패턴을 오늘날 우리에게 반복해서 제공합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 들고 오죠. 손 들면 나중에 팔이 아파요. 손을 내린다고요. 내려오면 또 어려움이 와가지고 또 손 든다구요. 또 들다 보면 또 손이 아파요. 천부여 의지 없어서 내가 이 세상에 의지할 게 없어서 오직 의지할 분은 누구밖에 없다? 주님께 맡기는 수밖에 없어서 주께 나옵니다. 이 가사잖아요. 가사인데 정말 주님을 새롭게 이해했습니다 하면서 팔을 내려놔요. 들었던 두 손을 내려버리면 그 다음부터 어떻게 되느냐 하면은 내가 나를 구원한 것은 그 주님밖에 없다는 것이 나의 관계망의 속에 들어와서 이 전체가 이게 내 것이 돼 버립니다. 예수 아는 나를 이제부터는 그 나를 내가 가동 시켜서 이 험한 세상을 천국으로 돌파하겠다고 그렇게 나서게 마련이죠.


그건 뭐 사사기 3장 12절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므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케 하여 그들을 대적하게 하시매 에글론이 암몬과 아말렉 자손을 모아 가지고 이스라엘을 공격했다"이렇게 나오잖아요. 그래서 그들은 18년을 또 섬겼어요. 아까는 8년인데 이제 18년을 섬겼습니다. 근데 이 구원자를 보내야죠. 구원자가 누구냐? 왼손잡이 에훗이었어요. 이 패턴이 반복돼요. 왜 이 패턴이 반복되는데? 패턴에 들어가는 등장 인물은 바뀌어요. 왜 바뀌느냐? 인간은 한번 실시한 그것에 무슨 효과 효능이 있는 것처럼 신비의 마법의 테크닉이 되는 것처럼 그걸 사용해서 다음에 어른이 왔을 때는 요런 식으로 하면 내 내 난관을 내가 익히 아는 것으로 내가 극복해 보겠다. 내가 이미 나의 세계 연결망에 있는 나의 나를 위한 환경 속에서 자체적으로 해결 해보겠다고 나서게 마련이에요.


지난번에 뭐 남편 암 걸렸을 때 역시 갈멜산 기도원이 왔다야. 거기 가서 기도했더니 놀랍게도 뭐 완치되었습니다 그 평가받았다. 역시 다른 땅은 기도발이 안 서. 갈멜산 기도원이어야 돼. 그 다음에 또 재발하니까 이번엔 갈멜산이 먹혀요? 안 먹혀요? 안 먹히죠. 왜? 주께서 알아요. 인간은 은혜 주면 은혜마저 자기의 테크닉 속에 포함시킨다는 걸 알기 때문에 주께서는 그 갈멜산 말고 이제는 나는 삐져가지고 "기도 안 해" 차라리 남편 보고 죽으라 나도 할 것 다 했다 하고. 하나님이여 제 할 걸 다 했으니까 아내로서 남편 죄를 못 챙겼다는 그 욕하지 마세요. 하고 나자빠지니까 또 암이 또 낫았네. 아 요런 방법도 있었구나. 제끼는 방법도 있구나. 그 다음에 또 재발 땐 제끼는 방법도 안 돼요. 인간들은 익히 아는 것이 스스로 자기가 자립하는 재료로서 활용하는 그런 꼼수를 부린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요. 여러분 교회 역사라는 것이 그렇게 위험합니다. 신앙 연조가 그렇게 위험해요. 갖다 버려야 될 연조를 그거를 마치 큰 능력이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오해하게 되는 겁니다.


지금까지 한 것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 보겠습니다. 정리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죽여 놓고 그 가운데 살 자를 건지신다.' 이 방법이죠. 전체를 다 죽여 놓는 겁니다. 이걸 다 죽이면 '죽이시는 현장에 생명이 나온다' 이걸 달리 이야기하면 죽이시는 현장이 곧 무슨 현장이다? 생명의 현장이다. 나를 죽이는 이스라엘을 죽이는 그 다른 민족 이방 민족이 이스라엘을 죽이는 그 현장이 상상도 못한 미리 예측도 못한 아 그런 것도 있었나? 깜짝 놀랄 만한 생명이 나오는 환경이 될 때 이 모든 일은 우리가 했다가 됩니까? 누가 했어요? '주님이 관여하는 세상이구나' 안다 이 말이죠.


바로 이게 뭐냐? 이게 성령 받은 사람 일곱 집사의 공통점입니다. 일곱 집사의 특징은 '자기가 할 게 아무것도 없음을 아는 사람'. 이걸 다른 식으로 말하면 '독자적으로 살 생각이 없는 사람'. 독자적으로 내 힘으로 살 생각이 없는 사람, 성령 받은 사람. 너 살았나? 물으면 내 안에 주님이 살았어요. 이렇게 답변할 사람.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 안에 주님이 살아 있어요. 그 사람이 바로 성령 받은 사람이죠.


그러니까 성령 받은 사람은 성령 안 받은 사람이라고 내가 말을 할 수 있는데요. 성경에서는 성령 안 받은 사람이라는 말을 하는게 아니고 악령 받은 사람이에요. 성령 안 받은 사람이라는 말보다도 그냥 악령에 계속 놀아나고 있는 사람이에요. 악령에 계속 놀아나는 사람은 이거는 성령 받은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성령 받은 사람도 주의 지시를 따르게 되면 예상 못할 생명 현상을 본인이 그걸 알고 본인도 놀래요. 아 주께서 이런 걸 준비하셨구나. 이 생명을 준비했구나. 왜냐면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세상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본인이 예측이 안 돼요. 예측할 수 없듯이 악령 받은 악마에 속한 사람도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예측이 안 돼요.


그 예측 안 되는 것이 누가 한번 마태복음 8장 12절 한번 읽어 보세요. 그 예측 안 되는 모습이 나옵니다. 8장 12절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여기에 어두운 지역은 어두워요. 어두운 데로 쫓겨 가서 거기서 뭐 하냐? 울며 그냥 우는 게 아니고 이를 간다는 것은 쉽게 말해서 이럴 줄을 몰랐다. 이럴 줄을 몰랐다는 거예요. 인간의 비극은 미래가 있다는 게 비극이에요. 왜냐면 미래의 결정할 일이 앞에 결정한 것을 전부 다 완전히 무효로 돌리기 때문에 이게 아주 청천벽력 같은 소리예요. 난 미래 모르는데? 이런 핑계 댈 수 없어요. 미래는 이미 끝났어요. 끝났는데 다만 지금 인간들이 모를 뿐이에요.


나중에 결국은 미래가 되면 과거에 어떻게 살았다는 것은 다 이거는 없어져요. 미래가 현재잖아요. 현재가 되어버리면 과거는 사라져 버리니까. 이거는 뭐 어려운 이야기 아니에요. 이거는 마땅한 일이고 확실한 일이에요. 자 지옥에 왔다. 빼도 박도 못 해요. 그냥 끝났어요. 끝났으면 그야말로 끝난 거예요. 이럴 줄 몰랐다. 이럴 줄 몰랐는데 남아 있는 이빨까지 다 갈게 생겼어요. 이를 팍 갈면서 이럴 줄 몰랐다. 이럴 줄 몰랐다. 이럴 줄 몰랐다 하면서 영원토록 이럴 줄 몰랐다 이래요. 하나님의 심각한 복수죠.


누가복음 6장 24절 한번 봅시다. 참 예수님께서 얼마나 단호한 말씀을 하는지 듣는 사람도 무시했을 거예요. 그러나 지금 이렇게 기록된 걸 보면요. 무시무시한 말씀이에요. 6장 24절 "그러나 화 있을지 너희 부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무엇을 이미 받았다? 너희의 위로를 다 받은 거예요. 보너스 없어요. 월급 없어요. 이미 다 위로 다 받았어요. 먼저 부자로서 위로를 다 받았어요. 근데 지옥 가도 부자입니까? 시편에 보면 나오죠. "재물은 나를 구원하지 못한다" 나를 구원하지 못한 재물에 정신 팔려서 살아간다. 골프도 치고 주식도 하고 코인도 하고. 해도 되죠. 재밌으면 해야죠. 하면서 이렇게 하면 되죠. "주식해서 코인 돈 번다 해도 나는 이런 이딴 것으로 위로받지 않고 나는 이런 데서 위로받는 세계로부터 나한테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는 것이 나를 덮는 도배지로 되었을 때 내가 이제는 돈을 사랑하지 말아야 되지가 아니라, 나는 이제는 주의 이 말씀 처분대로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 나는 이제는 이런 말씀이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그 즐거움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6장 24절 이런 말씀 있더라. 전에도 있었죠. 있는데 좀 이렇게 골프 치고 하다 보니 이게 또 실감나게 확 다가오는 거예요. 아, 내 본 마음은 이런 걸 좋아하는 구나. 특히 내가 마음으로 좋아하는 게 성경에 다 나와 있어요. 내가 좋아하는데 말릴 수가 없잖아요. 근데 이것이 바로 인간들이 왜 예수님이 다 이루심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이 없는 이유가 돼 버리죠. 자기한테 정신이 팔려 있으니까. 특히 누가복음 6장 24절 위로란 말이 있죠. '위로' 위로라는 것은 언제하냐 하면은 뭔가 인생 살면서 고달프다 또는 스트레스 받는다 그런 뜻이다 이 말이죠. 고달프고 스트레스 받을 때 내가 했던 관계망 내가 의도해서 내가 계획대로 되어서 될 그래서 한방 잭팟을 터트릴 때, 살아 있어~ 살아 있네~ 그게 나에게 위로처럼 느껴지는 거. 이것은 우리가 예측하고 있는 거잖아요.


근데 그 불신자에게 지옥은 예측했습니까? 예측 안 했습니까? 이를 갈며 통곡한다는 것은 불신자 가운데 예측한 사람 단 한 사람도 없어요. 왜냐? 그거는 말씀에 나오기 때문에 말씀 자체를 밀어내기 때문에 밀어내는 말씀 나오는데 그 말씀도 같이 밀려 나가 버린 거예요. 안 볼란다~ 밀어내는 거예요. 말씀 가지고 내 언약 턱 이렇게 찍어 버리면 찍지 마라~ 그 말씀 나에게 가까이 오지 마라. 밀어내는 거죠. 이게 우리의 패턴입니다. 사사기에 나오는 패턴. 사도행전 6장에 보면, 이제는 내부 전쟁 헬라파 과부들이 구제에서 명단에 빠졌기 때문에 불평이 일어난 거예요. 불평이라는 것은 뭔 뜻입니까? 사람이 누구한테 누구한테 불만 있다? 같은 인간에게 불만 있는 거죠. 결국 이건 집합체는 뭐냐? 인간 대 인간의 집합체죠. 인간 대 인간의 집합체가 무엇을 가린다? 하나님께 말씀과 기도하기를 가린다는 결정을 사도들이 하고 이 업무는 일곱 집사가 담당하고 우리는 더 중요한 거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자 이런 제도가 설립된 겁니다. 10분 쉽시다.


강남-사도행전 6장 3절 (말씀의 판) 251118b-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입니다. 성령이 오시고 난 뒤에 죄란 자기 결정을 유지하는 게 죄입니다. 모든 현장은 죽이고 난 뒤에 살리기 때문에 자기 결정이 없을 수는 없지만 그 결정을 주께서 어떻게 그 결정에 대해서 그 결정의 죄를 말씀과 만나서 죄라고 어떤 식으로 지정해 주는 사태가 일어날 것인가를 기대하면 돼요. 일어나는 삶의 환경이 내 결정을 하는 가운데서 어느새 내 연결망을 구축하고 있다는 것을 낌새를 내가 느끼게 만들어요. 내 연결망이 그렇게 우상처럼 얼기설기 윤곽을 드러내게 되면 보이지 않는 십자가 사건에 다 이루었다함에 그 연탄 재 뿌리는 거랑 똑같아요. "아 나 이게 된다 이게 삼성 전자 이게 된다. 나 이거 될 줄 알았어" 그럼 십자가에 기쁨은? "없어. 남 팔으라 할 때 안 팔고 최저 수매가 된다. 이 최저 수매가 되네. 이게 제일 단가 낮을 때 샀구나. 세상이 이런 주여 영광 할렐루야“


미국의 대공황이 경제의 얼음이 왔을 때 미국 센트럴 파크의 교회가 그렇게 교회 사람들이 기도한다고 북적였다고 합니다. 하루에 주가 40% 폭락하는데 거기 기도 안 하는 사람 누가 있겠어요? '내가(나의 연결망과 더불어) 살아 있으면 나에게 애도한다.' 내가 나에게 슬픔을 표해요. 이렇게 되면 나는 나의 연결망에 인하여서 하나의 권력체가 돼요. 이러한 현상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사도행전 6장부터 서서히 거기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지금 말씀은 말씀이고 9절 하는데 왜 우리는 명단에서 그 헬라파 과부들 명단에서 빠지는가? 빠지는 이유는 뭐 당연하죠. 텃세가 있으니까. 헬라파 유대인들은 먼데 다른 나라에 있던 사람들 말고 그 토백이들 있잖아요. 토백이 유대인들 히브리파 사람들이잖아요. 그 사람들은 자기의 토백이다 이 말이죠. 자기의 그 생존으로 꽉 구축되어있다 이 말이에요. 그 뜨내기들 도와줘봐야 소용 없다 그건 당연한 거죠. 근데 이거는 뭐냐면 설교는 설교고 텃세는 텃세다. 이거거든요.


교회에서 목사 설교하고 이제 그 다음에 점심 먹고 점심 먹으면서 이제 오후 예배까지 이야기를 하는데 그 이야기 주제가 뭐냐? 설교는 설교로 현실은 우리가 현실을 따로 생각해야 되지 않느냐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게 바로 뭐냐 하면은 직장 내 회식 문화예요. 회식도 근무의 연장이에요. 무슨 뜻입니까? 정통과 관습에 기한 텃세 문화. 그 텃세 문화가 인간에 벌써 하나의 기본 자질처럼 들어 있었던 거예요. 그러면 성령을 받았다는 말하는 그 뭐냐? 교회가 성령 받았다 하는 것은 그 구정물 같은 더러운 그 텃세성을 어떻게 돼요? 안쪽에 보이지 않은 감추어진 것을 바깥으로 다 들추어내는 작업을 이 성령이 하는 겁니다. 어떤 40살 먹은 그 가정주부인데 지금은 중학교 교사예요. 이 가정 주부가 정신 상담가를 찾아왔어요. 정신 분석에서는 그 환자라 하지 않고 내담자 찾아온 사람이라 하고 의사라 하지 않고 상담가라 해요. 뭐 때문에 찾아왔는가?


음식을 거부하는 거식증. 그 다음에 거식증이 지나고 난 뒤에는 폭식증. 이 순환이 계속되는 거예요. 폭식하면서 했던 폭식을 손가락 집어넣어서 그걸 다 일부러 또 토해내요. 이 거식증이라 하는 것은 음식을 거부하는 겁니다. 정신 분석하는 그 여자 분을 상담하면서 이 층층을 파고들어가야 돼요. 대화를 통해서. 파고들어갑니다. 의식 밑에 무의식이 있으니까 의식부터 무의식에 파고 들어가서 상담을 합니다. 상담자가 "당신 생각에는 왜 이렇게 당신은 음식을 거부하도록 하느냐?" 남들이 내 살찌는 것을 이렇게 응시하는 것 같아서 그 타인의 말을 듣기 위해서 맞추기 위해서 그들이 응시해서 당신은 뚱뚱해라는 그 평가를 듣고 남들 보기에 내 몸을 뚱뚱하게 하게 관리해서 내 몸을 제대로 호감 가는 몸으로 관리하지 못한 죄책감에 자기가 자기를 징벌내리는 거예요. 채찍질하는 거예요. 그럼 당신의 의식수준에서는 이게 그렇다 했지요. 더 물어봤어요. 이제 더 들어갑니다. "어릴 때 어머니가 어땠어요?" 물어보니까 어릴 때 어머니가 이랬어요. '여자는 자기 관리를 하지 안 하면 사랑받지 못한다.' 소리를 자주 들었다는 겁니다.


'여자는 자기 관리를 못하면 사랑받지 못한다.' 이게 엄마가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엄마가 이렇게 했을 때 상담가가 드디어 이 여자의 거식증을 원인을 파악해냈습니다. "당신은 어머니의 욕망에 떨어져 나간 파편 조각입니다." 나이가 40이 돼도 당신은 아직 엄마에서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모든 욕망은 엄마의 욕망에 예속되어있습니다. 엄마로부터 벗어나지를 못했어. 파편 조각. 그래서 엄마의 지시사항을 따르지 않으니까 따르지 않는 그 벌을 자기가 결혼해서 애 하나 있는데 남들 학교 가서 교정이나 학생들 앞에서 뚱뚱하다 소리를 드는 것은 바로 어릴 때부터 엄마의 욕망을 충족하지 못한 그 처벌을 지금 내가 아직도 받고 있다. 따라서 난 손가락 집어넣어서 배고프니까 폭식을 했을 거 아닙니까? 폭식한 것을 빨리 엄마가 요구하는 수준에 빨리 거기에 부흥해야 된다. 이렇게 된 거예요.


결국 그 정신 상담의사가 내린 결론은 '당신은 당신을 보는 시선이 상실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보는 시선이 상실되어 있습니다. 무슨 뜻이냐면 당신이 생각하는 이 모든 것은 의식에서 나타나지 않고 무의식에서 꿈에서 나타나는데, 꿈은 무슨 세계냐 하면 환상의 세계예요. 환상의 세계인데 이 환상의 세계는 어떻게 해소가 되느냐 하면 의식 세계에서 말로서 표현을 할 때 이게 해소가 된다 이겁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고 몸으로 표현한 거예요.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몸은 인간의 몸은 말씀을 표현하게 되어있어요 성경적으로. 왜냐면 말씀이 육체 되었으니까? 우리의 몸은 우리 자신을 위한 게 아니고 말씀의 내용이 우리 몸을 통해서 스스로 자기가 표현되도록 우리는 동원되기 위해서 이 땅에 만들어지는 것이 우리 몸이에요.


그러면 성령을 받았다는 말은 뭔 뜻입니까? 죄인인데도 불구하고 죄인은 원래 주께서 거룩한 분이 같이 합체할 수 없어요 너무 더러워서.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함으로써 더러운 몸이지만 이제는 말씀이 하나로 접합할 수 있는 그러한 그 매개체가 성령의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성립이 된 거예요. 성립이 되었다면 우리 몸이 만약에 바퀴라면 주님의 바퀴에 같이 동승하고 있는 작은 바퀴가 성도의 몸입니다. 보이지 않는 주님이 움직이는 대로 우리는 같이 가서 우리 몸이 주의 말씀을 드러내는 거예요. 바르게 살라는 말씀을 드러내는게 아니고 '다 이루었다'를 드러내는 거예요. 이 미친 거예요. 그야말로. 열심히 바르게 착하게 살자가 아니라 그래서 의인 되자 가 아니라 이미 의인이기 때문에 의인 될 수밖에 없는 행위를 죄의 몸으로 드러내는 거예요. 그 가운데서 뭐가 드러나겠습니까? 십자가 드러나겠지요.


따라서 이 40대 여자는 뭘 해야 되냐 하면은 이제는 환상을 현실로 끄집어 당길 때는 반드시 자기 말을 해야 돼요. 자기가 만들어낸 말을 해야 된다고요. 남들이 이렇다는 말을 하면 안 돼요. 그러면 이 정신병은 고쳐지지 않아요. 이게 환상은요. 환상이기 때문에 상징으로만 나오거든요. 그 인간의 모든 언어는 상징을 표현하는 거예요. 실체가 없어요. 없는데 말 자체가 그 유일한 실체예요. "난 당신을 사랑합니다" 실체가 어디 있어요? 당신 사랑하면 목걸이 사줬어? 뭘 어디 여행을 보내줬어? 뭔 사랑인데? 그거는 실체고, 사랑이라는 말했다는 그 자체가 그게 상징어 상징으로서만 끝난 거예요. 상징은 실체가 없는게 상징이에요. 태극기는 우리나라다. 태극기가 무슨 우리나라입니까? 태극기는 우리나라를 상징하죠. 그러면 한화 이글스의 그 야구 팀이 치어걸이 무슨 춤을 추죠? 삐끼 삐끼 춤을 추지요. 그럼 우리나라 전체가 삐끼삐끼 이렇게 총을 추면 됩니까? 아니죠. 그 춤 자체 행위 자체가 한화 이글스를 응원하는 모습이잖아요. 그 응원하는 모습 아닙니까? 그런 것은 실체는 없어요. 실체는 없고. 내 마음은 그냥 한국을 응원하고 싶다. 한화 이글스 응원한다. 그걸로 끝나는 거예요.


정신 분석에서 이 여자한테 요구하는 건 딱 하나입니다. "당신을 귀하게 여기세요." 끝. 이게 최고입니다. "당신은 소중히 여기세요. 이제는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남들의 평가에 얽매지 말고 본인의 시선을 가지고 본인이 본인을 평가하세요. 그리고 본인의 말을 하세요. 남들 말 하지 말고." 그러면 어릴 때 엄마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었고 아빠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었던 간에 그거는 어디까지나 그거는 옛날이고 지금 나는 그 이야기를 지금의 나로 내가 주인으로서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게 바로 이 정신 분석학의 진수입니다. 버틸 필요가 없지요. 왜 말을 내가 하는데 왜 버텨? 남이 압박을 가하면 버텨야 되지만, 내가 나를 묘사하는데 그게 무슨 버틸 게 있어요? 그냥 표현할 뿐이죠.


그래서 이 40대 여자가 정신 삼당학자한테 왔을 때 특징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눈을 남하고 잘 마주치지 않는다. 그리고 남들이 뭐라 하면 내 평가한 줄 알고 발끈하는 반응을 나타내다. 무의식적인 반감을 나타내요. 그리고 자기를 숨기려는 그런 경향성이 강해요. 이 정신 분석가의 분석을 하고 그 여자가 이제는 몸으로 표현하지 말고 막 먹는 거 표현하지 말고 그걸 간단하게 말로 표현하면 되는데 말이 그동안 안 나왔던 거예요. 왜냐하면 자기가 말을 못 만들어내니까. 말이 나오려면 말이 환상을 환상으로 다룰 줄 알아야 되는데 자기 내부에서는 이게 실제가 돼 가지고 이미 지나간 것은 다 지나간 거잖아요. 근데 지나간 것이 실제로 남아 있어 가지고 이것이 지금까지 자기를 다스리고 왔던 겁니다. 이 정신 분석학 이런 사례는 꼭 그런 정신과나 정신분야 찾지 않더라도 모든 인간을 다 포함하고 있어요. 그래서 성경에서 이 이야기를 성경으로 확대시켜 보겠습니다. 성경과 관련해서요.


로마서 12장 19절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되 내가 갚으리라" 이 말씀을 한 이유는 인간은 바깥 전쟁에서 밀리면 인간은 내부 전쟁 형태로 바꿔요. 바깥 전쟁을 하려 하니까 완력이라든지 뭐 재력이라든지 또는 말발이 밀리니까 자기를 지키는데 좀 지장이 되잖아요. 지장이 되니까 이걸 어떻게 하냐 하면 지금 자기 내부 전쟁으로 가져와서 타인에 대한 복수심을 안에 내부에서 만들어내요. 하나님이 너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이런 거죠. 그러면 전체적으로 보면 인간은 뭐냐? 이 성령 받지 못한 악령 속에 있는 사람은 뭐냐면 '자기 할 일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 내 할 일을 여전히 지니고 있어요. 근데 성경 안의 일곱 집사는 자기 할 일이 없어요. 자기가 안 바빠요. 누가 바쁘시냐? 주님이 바빠요. 왜 자기 할 일이 없는가? 인간은 성령 받은 사람은 왜 자기 할 일 없는가? 이유는 간단합니다. '세상 경영 운영에 또는 운영에 대해서 본인이 기여한 바 없다’


기여한 바가 없거든요. 송전씨, 그 달 만드는데 어떻게 기여한 바 있어요? 아 단호하게 인정하시네. 욥기에 나와요. 별 만들 때, 네가 관여 했나? 안 했나? 황무지에 비 오고 안 오고 결정을 네가 관여했어? 안 했어? 못 하죠. 현재 이란에 비가 안와가지고 1천만 명이 지금 대피를 내렸어요. 15일 지나면 전부 다 바닥 나와요. 그거는 옥토에 비가 안 온 거잖아요. 황무지에 비 오는 게 이상하잖아요. 이상하죠. 그 아무도 없는데 비 왜 내리냐? 그러면 비 올 자리에 비 안 온다. 그것도 같이 이상해야 되는데 그건 안 이상해, 당연한 걸로 여겨요.


인간이 당연한 걸로 여긴다는 말은 세상 경영에 자기가 관여하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관여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으니까 여기서 만약에 자기 뜻대로 안 되면 나오는 것은 뭡니까? 나는 관여할 만큼 관여하고 노력할 만큼 노력했는데 왜 세상이 내 마음대로 안 됩니까? 여기서 나오는 것은 뭐냐면 이 복수심이에요. 인간에게 복수하는 것이 그거는 형식이지만 더 나가서 결국 누가 누구한테 복수하는 거예요? 세상 돌아가는 모든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 복수하는 겁니다. 왜 헬라 과부들은 빠져야 되는데? 불평이 늘어납니다. 사도들에게 설교 받은 은혜는 다 날아갔어요. 왜 나한테 밥을 안 줘? 교회 내부전쟁이죠.


처음에 이야기했듯이 그래서 교회가 불완전합니까? 완전합니까? 이게 완전이죠. 교회가 그래야 되는 거예요. 교회가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요. 교회 안에서 주님이 다 이루시어 어떤 식으로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는 가가 궁극적이고 우리의 몸은 그 모습을 드러내는데 활용될 뿐이에요. 따라서 우리가 이 세상 살면서 몸을 살면서 남한테 복수한 일 있으면 이제 복수 안 해야지. 복수 안 해야지 하는 인간이 없어요. 짜증나는데 복수할 수 있어요. 하더라도 그 복수가 난다는 그것을 바로 이것이 내 구원이나 교회 구원이 목적이 아니고 주께서 일관되게 주님의 다 이루심, 내가 다 이루심이 아니고 주님의 이루심에 내가 아무것도 기여한 바 없이 값없이 구원 됐다는 사실을 우리를 통해서 증거케 하시는 거예요.


아까도 이야기했던 사람은 자기 개인주의로 만들어졌어요. 마귀가 인간을 아까 그 아나니아 삽비라처럼 내 돈 내가 알아서 하는데 속이긴 나를 왜 속여 나를 속인다는 건 성립이 안 되거든요. 내가 알아서 내가 줬는데 그걸 속였다고 저 외부에서 다른 평가가 내려온 거예요. 그 정도로 인간은 결국은 자기 중심으로 돌아서는 거예요. 그러니까 주님께서 십자가가 계속 이야기해서 세상에 해 뜨고 해 지고 하는 것에 대해서 전혀 기여한 바도 없으면서 네가 왜 화를 내? 네가 별이 반짝이는데 네가 보태준 거 있어? 네가 왜 화를 내는데? 네가 받은 건 생각 안 하고 내 중심의 연결망만 그걸 쥐고 그걸 절대화시키는 거예요. 이게 악령의 세계 악마의 세계가 그렇게 함으로써 뭐를 분산시킨다? 모든 것이 말씀대로 다 이루었다는 그 예수님의 공로를 화산재 덮듯이 완전히 덮는 것이 이 마귀가 활동하는 거예요.


그래서 안양 강의에서 한 것 잠시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어떤 분이 저한테 전화가 와서 안양 강의가 지금까지 강의 가운데 제일 어렵다는 거예요. 나는 무슨 말인지 전혀 어렵게 하지도 않고 했는데 어렵다는 거예요. 무슨 부분이 어려운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안양 강의를 다시 한번 간략하게 핵심만 이야기한다면 그거예요. 나 복음 안다. 나 복음 안다. 복음 안다. 복음 아니까 어디 가자? 천국 가자. 이것을 중간에 끊어 버린 거예요. 이걸 끊어 버린 게 이게 뭐냐면, 나는 천국 간다. 복음 안다. 이게 연속성이고 이걸 중간에 연속성 가지고는 못 온다 끊어 버린 게 이게 단절이에요. '단절'.


자, 현금 수송 차량이 있습니다. 현금 수송 차량에서 중요한 것은 뭡니까? 바퀴, 엔진, 안 그러면 차 도색 뭐가 중요합니까? 그 안에 뭐가 들어 있어요? 현찰 현금이 중요하죠. 주님께서 하는 것은 우리 성도를 현금 수송차로 해가지고 안에 뭐냐? 십자가의 피, 십자가의 피의 공로 효력, 효능, 능력 그리고 그 복음의 위력, 죄 사함 위력과 지옥에서 마귀가 터치 못하는 그 위력 그 위력을 수송 차량으로 성도를 뽑은 거예요. 그러니까 성도가 돈이 있다 없다가 중요합니까 중요 안 합니까? 하등 중요하지 않아요. 성도가 착하다 안 착하다 중요합니까 안 중요합니까? 안 중요해요. 성도가 거식증인가 폭식증인가 중요합니까? 중요하지 않아요.


근데 정신상담가는 거식증을 끊어버리고 폭식증을 끊어버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찾아왔고 상담가는 그걸 해결해야 당신이 인간답게 산다고 그 인간 자체에 당신이 중요하다 하잖아요. 그게 바로 마귀의 생각인 거예요. 밥을 끊든 폭식을 하든 중요하지 않는 시답지 않는 이 문제는 십자가에서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거예요. 주께서 찾아가는 것은 현금 수송 잘 했나? 보혈의 피 수송 잘하고 있나 그거 묻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그거 물어요. 왜? 성령은 전쟁을 누구하고 합니까? 마귀하고 하기 때문에 악령하고 하기 때문에. 우리의 싸움은 사람하고 하는 게, 혈과 육이 아니에요. 마귀하고 싸운다는 거예요.


마귀는 자꾸 인간 보고 너는 너답게 제대로 인간답게 서라 자립하라. 꿇리지 말고 너를 귀한 존재로 여기라. 성령은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주님이 사랑하셨다. 주님이 죽고 살아나셨다' 그 이야기하잖아요. 지난 주일날 천사가 그 대목에서 내가 속으로 굉장히 기뻤어요. 천사가 예수의 무덤을 굴러내고 그것까지는 별로 안 무서워요. 근데 그 돌 위에 다리 꼬지마~ 그 돌 위에 앉아 있다 이 말이에요 천사가. 그럼 천사는 본인이 지금 구원 문제에 신경 쓰는 겁니까? 천사는 지금 복수하고 있는 거예요? 천사 전쟁은 없어요. 누구 전쟁입니까? 주님의 전쟁에서 주님이 승리했다는 것을 천사가 지금 자기 성도들에게 소개하는 거예요. 막달라 마리아한테 제자들에게 소개하는 거예요. 왜 우리는 그렇게 못 사느냐 말이에요. 왜? 왜 내 싸움을 해요? 왜 쓸데 없이 내 싸움을 내 자존심 싸움을 하냐 이 말이죠. 정신과 의사 찾아다니면서. 정신과 의사 지도 같은 정신병자면서. 정신과 의사야 뭐 약물이나 주지, 상담가는 뭐예요? 약도 안 주고.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은 반드시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되어요. 자기 결정을 자기를 믿어요. 내가 믿을 만한 자기 결정을 믿습니다.


그래도 오늘도 예상에 어긋나지 않게, 노래는 안 틉니다. 가사만 말씀 드릴게요. 이 가사 보시고 집에 가서 숙제로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낯설은 이 비가 내 몸을 적시면 살며시 찾아드는 외로움' 외로워요.

'조용한 선술집에서 생각하는 그대 모습 길가에 가로등 내 몸을 비추면 살며시 찾아드는 외로움' 이렇게 되어있어요.


여러분 상상해 보세요. 어느 허름한 선술집에 같이 술 먹는 사람도 없이 혼자서 바깥에는 비가 추적추적 오고 지 혼자 술 먹고 있단 말이죠. 신세가 좀 처량하지요. 처량한 건 맞아요. 근데 그게 모든 인간의 본모습이에요. 그 외로운 모습이 인간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 겁니다. 인간은 누가 안 찾아와서 외로운 게 아니고 원래 외로움이 지 모습이에요. 그동안 찾아왔다. 연락했다는 거는 거추장스러운 장식 같은 겁니다. 뭐 또 비가 도와주지요. 차박차박.


'그대가 내 곁에서 멀어져 바람 속에 묻힐 때 또 다시 길을 나서며 맞는 낯설은 비와 외로움’

'내 마음 쓰러져 길가에 쓸쓸함이 쌓이네' 비와 외로움.


들어보면 아 이 노래 이야기할 거예요. 내가 이 몸을 가지고 갈 때 이걸 끊는 이유가 뭐냐? 내가 있으면 반드시 여기서 뭐냐 하면 선악 체제가 가동이 돼요. 복음 아는 내가 악한 존재가 아니고 무슨 존재? 선한 존재가 돼요. 그러면 나의 선과 악을 굳게 하는 내 의식이 그대로 살아 있는 채로는 천국에서 천사가 안 받아줍니다. 천사가 받아주지 않아요. 왜 천사가 안 받아 주냐? 이미 내가 나를 평가했기 때문에 안 받아줘요. 마태복음 13장 한번 봅시다. 이게 성령 온다는 게 정말 이건 기적이에요.


13장 39절에 보면,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41절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했죠. 이 천사가 심판했던 경우는 이미 이스라엘 역사 속에 있었습니다. 그게 뭐냐면 애굽에서 빠져나올 때 천사가 밤중에 돌아다니면서 뭐 바빠서 나름대로 애굽의 모든 맞이는 다 죽였잖아요. 그 죽일 때 기준이 뭐였습니까? 선악체계입니까? 이게 밤이잖아요. 밤이고 문밖에 나오면 안 돼요.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천사님 맛있는 감주 했는데 드시겠습니까?" 이런 거 없어요. 그냥 집구석에 앉아 있어야 돼요. 무서운 심판의 거리예요.


천사들 살해할 때 그 사무라이 두건 한 사무라이 있잖아요. 칼을 꼭 이렇게 안 차고 옆에 등 뒤로 이렇게 차 가지고 맞이는 다 죽이는 거예요. 귀멸의 칼날 아니에요. 살벌한 칼날이 다 죽일 때 걸리기만 하면 다 죽는데 그걸 어떻게 나갑니까? 그들을 뭘 보고 그 표식이 뭐예요? 유월절 피로 넘어가는 거예요. 네가 얼마나 인격이 착하냐? 인터뷰하겠습니다. 현재 마음이 어떠십니까? 기분 그거 묻지도 않아요. "어떻게 거식증 되십니까?" 이런 거 묻지도 않아요. 피 보고 그냥 다 죽여 버린다고요. 주일날 설교한 것처럼 애매모호하지도 않아요. 그리고 천사한테는 뭐가 없다? 의식. 천사한테는 뭐 불안감도 없고 의식도 없어요. 있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예요. 있는 그대로 실시하는 그런 존재가 천사들입니다.


"천사 정말 대단해요" 하지요. 근데 천사도 성도보다 못해요. 왜냐하면 천사는 주님의 고통과 아픔을 이해 못해요. 천사는 성령이 없어요 결정적으로. 기계니까. 그러나 우리는 기계가 아니고 마음이 있어요. 예수님의 마음이 곧 이 땅에서 악마한테 죽임을 당한 그 복수심이 우리한테 있어요. 그리고 로마서 12장에 뭡니까? 우리의 어깨를 탁탁 하면서 "심판. 내가 갚아 줄게" 너는 심판할 자격이 없어. 왜냐면 네 몸은 네 몸이 아니고 내 몸이니까 심판도 내가 해 주는 거야. 그 심판의 결과는 아까 마태복음 8장 12절. "울며 이를 갈며 통곡하리라" 이럴 줄을 몰랐다. 오늘 제목 달 거 많다. '이럴 줄 몰랐다' 그 다음에 '현금 수송 차량’


따라서 이러한 성경이 이 말씀, 다 이루심. 세상 경영은 우리가 관여하고 기여할 바 없어요. 주께서 우리를 활용해 주지요. 그러면 오늘 본문에 여기에 나오는 사도행전 한번 봅시다. 사도행전 6장에 나오는 일곱 집사 명단을 한번 봅시다. 명단에 보면 거기 누가 있어요? 빌립이 있죠. 스데반 다음에 두 번째가 뭡니까? 빌립이죠. 빌립이라면 사도행전 8장에 보게 되면 주의 사자가 빌립 더러 가라 했고 그리고 올 때도 빌립이 주의 영에 임하여서 빌립이 홀연히 내시는 홀연히 길 가고 빌립은 이끌려가다 그쪽에서 다시 속히 원래 있는 쪽으로 되돌아왔잖아요. 이 세례식 빌립과 내시의 만난 세례식 이건 누가 기여했습니까? 빌립은 그냥 지시대로 움직였을 뿐이에요. 예~도 안 했어. 그냥 가게 한 거예요. 예~ 답변 들을 필요 없어요.


그러면 아니요 한다고 그러면 안 시킵니까?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예요. 나 이거 안 합니다. 해서 그 일이 안 일어납니까? 주님께서 '이 고집에 못 이기겠다' 이게 어디 뭐 우리 엄마 아들 관계입니까? 이런 주님이 아니에요. 그냥 할 뿐이에요. 우리에게 일어나는 이게 뭐 골프를 치든 뭘 하든 그 모든 일도 주께서 하게 하신 겁니다. 빨리 이 기쁜 소식을 전하세요. 주께서 하게 하신 거예요 이게. 이게 내 일이다 주의 일이다? 주의 일이다. 정답이 빨리 나와버려요. 머뭇거리면 안 돼. 주의 일이에요. 판을 누가 깔았다? 주님이 깔았다.


그럼 판 깔 때 우리 어떻게 되느냐? 우리는 판 타야지. 뭐 접영으로 할까요? 자유형으로 할까요? 그 말씀 속을 들어가는 거예요. 들어갈 때 우리 몸은 뭐냐? 이 마귀하고 똑같은 마귀 자식으로 들어가 당하는 거죠. 하나님이여 기도 빡세게 했습니다. 요거 반드시 이루어져야 됩니다. 저 인간 내가 손 봐야 됩니다. 그 온갖 이거 뭐 직장 후 회식도 해 가지고 우리 교회는 단결을 해야 돼요. 말씀 전하고 난 뒤에 정치 이야기해서 못 살겠습니다. 빨리 이거 바꿔야 되고 예배 시간 11시인데 11시 10분에 오고 이거 어떻게 조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교회 11시 모여서 뭐 할 건데요? 예배 기여하는 거하고 천국 기여하는 거 다르지요.


자 그 다음에 사도행전 6장 8절 스데반이 나옵니다. 그것 잠깐 하고 마치겠습니다. 이 스데반 집사가 10절에 보면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하지 못하여" 그러니까 아까 이야기한 지혜라는 것이 사람의 똑똑함을 말한 게 아니고 뭐냐면 성령이 오게 되면 성령에 입각한 근거한 성령이 시킨 대로 그대로 나오는 그 지혜를 말하죠. "지혜를 말하매 사람들을 가리켜 말 시키되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한다" 자, 11절 중요합니다. 모세가 성령에 입각해서 설교를 했잖아요. 이게 물론 집사가 그 과부들 구제하고 그들에게 나눠주는 것도 하지만 성령께서 어떻게 하느냐 하면은 이 전도나 말씀 전하는 것도 성령께서 하게 하셔요. 이것은 사도의 결정에 성령이 주님이 매일 이유가 없어요. '너 결정했나? 알았어 나는 내 결정을 할 테니까’


인간들은 어떤 단체를 만나면 거기서 그걸 법을 만들어요. 그 법을 만들어 버리면 이게 얼마 안 가서 이게 뭐냐 텃세 문화로 작용한다니까요? 신인이 와 가지고 "아 이거 뭐 불합리한데요?" 하면 "옛날부터 그래 왔어 옛날부터" 그렇게 하는 거예요. 지난 수요일 날 제가 동영상 올려 놨더니만 어떤 분이 이런 댓글 달아놨어요. 목사님 설교 가운데 제일 재밌는 것이 꿈 이야기가 제일 재밌었다고 그래서 자기가 궁금한데 그래서 그 스스로 카바레에 가 가지고 어떻게 죽습니까? 그걸 이제 답변을 한 거예요. 그 제가 답변을 또 달아드렸어요. 죽는다는 말은 이미 죽은 자기 때문에 죽은 자로 2차에 가기 때문에 거기서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내가 거기에 대해서 책임지거나 어떻게 미리 예상할 권한이 박탈되는 거예요. 그게 현장성의 좋은 점이에요. 그 현장 미리 걱정하거나, "이렇게 하면 술 먹을 때는 나는 술은 약해요. 거부해야 돼요. 난 개혁주의적 신앙을 지켜야" 자꾸 이렇게 조작하게 되면 마귀가 얼마나 웃겠어요. 너 아직도 내가 가르친 선악 지식으로 완전히 너는 못 빠져 나왔어. 얼마나 놀리겠어요? 그러면 영적 전쟁이 안 되잖아요. 왜냐하면 죽는다는 말은 어떤 현장이든 간에 그 현장을 가는 거예요. 가게 되면 그 현장에 누가 같이 가요? 주님이 가지요. 그러면 주님께서 지르박 추라면 춰야지요. 물론 주께서 지시하기 전에 음악 나오면 몸이 따라가게 돼 있지만.


어쨌든 거기에 대해서 책임질 이유가 없어요. 왜? 지르박 추는 죽음을 죽으니까요. 문제는 제대로 살겠다는 게 문제예요. 살겠다가 문제예요. 골프 치게 하심으로 죽으면 되잖아요. 얼마나 기쁜 소식이에요? 골프 치다 죽어라. 죽음이 죽게 하기 위해서 골프 치게 하셨기 때문에 골프 치고 죽으면 돼요. 훈련하고 죽으면 되는 거예요. 그것이 주의 일입니다. 스데반 집사는 바로 그것을 현장화 시켜요. 어떻게 하냐? 스데반 집사를 공격합니다. 다시 말해서 스데반 집사를 체포하고 거짓 증인을 세워서 스데반 집사를 죽이려고 합니다. 지금까지는 스데반 집사 죽이려고 했지요. 근데 스데반 집사가 7장에 설교를 하지요. 근데 설교 끝나서 집사님이 어떻게 풀려났습니까? 죽었습니까? 죽었지요. 이왕 죽을 거 빨리 죽이지 설교까지 하고 죽였어요. 설교해놓고 죽였죠. 죽였는데 스데반 집사가 몸이 누구 겁니까? 주님 거죠. 주님께서 스데반 집사를 통해서 나타내고자 하는 뜻은 예수님의 재현이었습니다. 죽는 것이 바로 사는 것이다. 스데반 집사는 말씀에 입각해서 죽었어요. 말씀 때문에 죽었어요. 말씀 때문에 복음 때문에 죽었다고요. 복음 때문에.


그러니까 하나님은 성도로 하여금 복음이라는 그러한 사태를 일부러 일으켜서 그 사태에서 성도가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들어요. 갑자기 카바레 이야기죠. 카바레에 갔는데 당회장 목사가 원로 목사가 따라서 갔는데 춤 못 춘다고 오늘부로 당신 잘려서 굶어 죽었다고 친다면 이 장소가 뭐냐 하면은 바로 그 이유가 복음적 이유가 아니죠. 그 이유가 나옵니다. 12절부터 보면, 이 말이 중요합니다.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 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이르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14절에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모세가 주는 규례마저 우리는 이거는 고쳐야 된다 라는 말을 스데반 집사가 했다는 거예요. 이게 거짓 증인들이 했다는 말이거든요. 이 거짓 증인의 말이 거짓입니까? 진짜입니까? 스데반 집사 설교 보면 되잖아요. 진짜예요. 그들 수준에서 진짜예요. 왜? 이 말을 듣고 스데반 집사가 그 주제는 피했으면 "나는 그런 말 한 적 없어. 나는 그저 뭐 예수님은 참 훌륭한 분이다 이렇게 이야기했지" 이러면 안 죽었어요. 안 죽으면 생명이라는 것이 죽음에서 생명이 나오는데 안 죽어 버리면 생명도 같이 날아가버리고 없어요. 그런데 스데반 집사님은 이 바로 "헐고" 하는 그 대목에서 48절 49절에 이 땅에서 누가 집을 짓겠느냐 하는 거짓 증인이 내세우는 그 입술을 그걸 덥석 가지고 그걸 설교의 마지막 핵심 목적으로 삼고 설교를 해버려요.


하나님은 어디 계시느냐? 하나님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다. 이 이야기를 해 버렸어요. 모세한테 이야기했잖아. 나와 같은 선지자 온다고. 선지자가 바로 예수님이야 라는 것이 사도행전 7장 설교에 나와요. 그러니까 자기를 고발하기 위해서 흠집을 내는 그 흠집을 오히려 스데반 집사는 그걸 덥석 가지고 그걸 제대로 설명해 줘요. 더 깊이 있게 설명을 해 줘요 복음적으로. 너희들 보기에 거짓으로 보이지? 예수님이 죽으신 것이 바로 너희들 보기에 거짓 메시아라는 선입감으로 인하여 예수님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면 오늘 강의를 끝내면서 물어봅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잖아요. 질문. 안 믿는 사람들이 똑똑하다 주장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 다니는 사람들이 "하나님은 그냥 필요한 사람이지 하나님이 아니잖아. 그건 뭐 당연한 이야기데 그게 무슨 하나님이야? 부활이라는 것은 그냥 제자들이 사도 바울이라는 건 나쁜 사람이 지어낸 거고 예수님은 보통 인간인데 참 훌륭하게 남을 위해서 희생한다는 점은 내가 높이 사 줄게. 그렇지만 하나님은 아니잖아" 라고 이야기할 때 우리는 그 말 들을 때 어떻게 해야 돼요?


그걸 덥석 가지고 와야지요. 오면서 이렇게 이야기해야 되죠. "바로 여러분들이 지옥 가는 이유는 딱 하나다. 마음이 착해서가 아니라 형제를 돌보지 않고 부부 사이에 나빠서도 아니고 가정을 돌보지 않아서가 아니라 인격이 나빠서가 아니라 딱 하나, 예수님이 그리스도 하나님인 것을 믿지 않는 그것으로 당신은 예상 밖에 이를 갈며 통곡하는 지옥이 있는데 그게 하나님을 죽인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잔혹한 복수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장이 이 세상입니다" 그럼 저쪽에서 뭐라 해요? "너 죽을래?" 하면 "네 마음대로 죽는 게 아니야. 죽고 사는 것은 그거는 네가 거기에 관여 못 해" 주께서 우리의 죽고 사는 것을 관여하십니다. 우리가 할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건은 누가 판은 누가 깔았다? 주님이 깔았어요. 그 판 위에서 우리는 신나게 놀면 되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 우리 지킨다고 얼마나 생각하고 우리 사수한다고 얼마나 조심스럽게 인생을 살아왔습니까? 마귀 보면 코웃음 칠 짓을 했습니다. 성령이 임하게 되면 이런 모습까지 주께서 활용하신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받아서 원 없이 한 없이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기뻐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